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13일자 기사 '무엇을 위한 연대인가?'를 퍼왔습니다.
‘야권 연대’ 특별기획 (3)
말고 탈도 많던 선거연대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서 일단 형식을 갖춰 맺어졌다. 민통당은 그동안 공천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에게 밀린 인기도를 이로써 만회할 기대를 가지고, 통진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숙원을 이루겠다고 꿈꾼다. 이 두 갈래의 꿈이 일단은 봉합되어 연대의 대강에는 합의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기만 하고, 그보다 더 큰 과제는 정권을 교체한 다음에 성공적인 공동정부를 엮어내야 하는 일이다.
우선 두 당이 선거연대에 합의한 것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처음 일궈낸 “쾌거”가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일찍 합의가 성사되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명박은 전체 유권자 30%의 지지만으로 2007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유권자 가운데 정치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고, 뚜렷한 의사를 가지지 못하고 여론의 일시적인 풍향에 휘둘리는 사람들도 많으므로, 선거 민주주의의 지형은 본시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현재 상태의 지배구조에 만족하여 결속된 30%가 나머지 70%를 지배할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나머지 70%가 수많은 갈래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12년 선거에서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연대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 명제였다. 수많은 영혼이 이 점을 지적했고, 그 결과 2010년의 지방선거 이후 부분적이나마 연대의 흐름이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서 종합적인 연대의 설계도가 작성된 것은 획기적인 만큼 환영할 일이 틀림없다.
다만, 합의가 더 빨리 나왔더라면 한국 정치를 민주화하는 흐름에 훨씬 도움이 되었으리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연대라는 것은 모든 면에서 일치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입장이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서로 입장이 심하게 또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끼리, 그럼에도 더 큰 목표를 위해 협력이 필요할 때, 연대가 이뤄지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현재 국면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협동이야말로 바로 그런 필요 때문에, 다시 말해 서로의 입장들이 “본질적으로” 다름에도 민주주의의 회복 및 강화라고 하는 더 큰 목표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절박성 때문에,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절박성은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을 때부터, 아니 사실은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기 전부터 드러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정권을 잡아서 일시적인 이득을 꾀하는 정도가 아니라 뭔가 한국의 국가체제 자체의 성격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절박한 목표에서 첫 번째 동기를 찾았어야만 했다.
올 두 차례의 선거에서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 승패가 갈리더라도 어느 정도의 격차가 나타날지, 등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에 각 경쟁세력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린 일이다. 단, 민주진보 연합세력의 경우, 과연 그들에게 수권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광범위한 의심이 퍼져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열린우리당 시절의 지리멸렬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의심과 불신이 불거지는 핵심적 이유는 “민주”와 “진보”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구체적인 쟁점을 눈앞에 두고 과연 집단적 의사를 창출해 낼 수 있을지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만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일 뿐, 전체 국면과 관련된 이해득실을 고려하는 균형 감각이 제대로 발휘되는 모습을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 이 집단이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할 때, 집단 구성원들에게 이러한 균형감각은 더더욱 필수적인 요건으로 대두할 것이다. 정권을 차지한 집단 내부에서 사사건건 통일된 의사를 형성하지 못하고 만인에 대해 만인이 투쟁하는 상태를 지속하는 한, 정권 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의 공세가 없더라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는 당장 한미 FTA 문제를 비롯해 수많은 정책 분야에서 균열요인이 잠복해 있다. 이명박에게 반대하는 야당의 입장에서야 그저 비판하고 마냥 반대하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할 일을 하는 셈이 된다. 야당의 처지에서는 압제적인 정권에 대해 강경론을 늘어놓을수록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권을 담당한 처지에서는, 정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과제와 함께, 동시에 지난 정권보다 어떻게든 나은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과제까지를 짊어져야 한다. 말로만 떠드는 강경론이나 감정적인 선동에 의존했다가는 정권 자체의 권위를 스스로 팽개치는 데 더해서 민족의 운명에 심각한 상해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짧게는 4월 선거까지, 길게는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까지, 한 달 또는 아홉 달 남은 기간을 소중하게 활용해서 내부적 협력의 습관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차이를 양보하고 큰 가치를 도모한다는 원리는 다른 말로 하면 개인적 이득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각자가 “공익”이라고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은 개인적 이득에 가깝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절체절명의 관건이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옳은 노선이라고 할지라도 집단 내부의 구심력을 와해시킨다면 개인적 이득에 불과하다는 이치를 정치인이라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 주관과 객관 사이의 균형, 그리고 감정과 이치 사이의 균형이 그래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민주진보 진영이 선거를 앞두고 연대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연대는 종잇조각에 서명하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한 실천으로 뒷받침될 때에만 성사되는 일이다. 더구나 연대는 4월 선거를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고, 12월 선거를 위해서도, 나아가 공동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점점 더 필요해진다.
“민주”와 “진보”를 꿈꾸며 지금까지 인생을 투자해 온 사람들이라면 집권가능성이 커지는 지금, 과거의 희생에 대해 개인적 보상을 은근히 기대하더라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이 가장 위험한 지점이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일차적 동기가 개인적 출세로 환원되고 만다면 민주진보 세력이 소위 “수구꼴통” 세력과 다를 것이 없어져 버리지 않겠는가!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연대에 합의했다는 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대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감정과 이치 사이에서, 균형 감각이 발휘되어야 연대가 발전할 수 있다. 한국 정치의 구조적 향상이라는 목표와 개인적 보상이라는 욕심 사이에서도 균형을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집단 내부에 구심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런 균형 감각을 짧게는 앞으로 한 달, 길게는 아홉 달 사이에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수권능력에 대한 의심과 불신도 대부분 걷힐 수 있을 것이다. 절망과 좌절에 사로잡혀 정치를 포기했던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와 희망에 대거 투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와 “진보”를 내거는 세력에게 정치적으로 다행스러운 결과일 뿐만 아니라, 오천만 국민에게, 나아가 민족적으로도 행운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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