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8일 토요일

곤충의 세계는 우주보다 더 복잡하다

이기사는 시사인에서 퍼온 기사 입니다.

수년째 ‘정부희 곤충기’를 쓰고 있는 정부희 박사(곤충학)와 함께 갖가지 곤충으로 떠들썩한 숲으로 갔다. 그리고 우주보다 더 복잡하고 매력적인 세상을 만났다.
암수 서로 정다운 건 훨훨 나는 꾀꼬리만이 아니었다. ‘황조가’를 읊으며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던 유리왕이 봤다면 필시 눈꼴시어 했을 낯 뜨거운 풍경이 숲속에서 왕왕 목격되었다. 식물 잎사귀마다 숨어 사랑을 꽃피우는 자그마한 곤충들의 더운 숨이 그렇게 본격적인 여름을 불러오고 있었다.

5월30일 이른 아침 경기도 양평 화야산을 찾았다. <곤충의 밥상> <곤충의 유토피아>에 이어 세 번째 ‘정부희 곤충기’를 준비 중인 정부희 박사(49)의 곤충 답사길에 동행을 청했다. 사계절 365일을 틈만 나면 짐을 꾸려 산으로, 들로, 섬으로 어디든 곤충을 만나러 떠나는 정 박사이지만, 그중 요즘이 숲에 사는 곤충을 만나기에 가장 ‘적기’라는 말을 듣고 냉큼 따라나섰다.


  
ⓒ시사IN 백승기
사계절, 365일 정부희 박사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산으로 들로 곤충을 만나러 쏘다닌다(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정 박사는 ‘미혹됨이 없다’는 불혹의 나이에 곤충과 ‘접신’했다. 대학 졸업 후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중, 두 아들의 엄마가 됐고, 취미 삼아 아이들과 문화유적 답사를 다니다가 곤충과 사랑에 빠졌다. 애초 정 박사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식물, 특히 야생화였다. 그러다 어느 날 ‘다리가 후들거리는 감동’을 경험했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식물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현란한 색의 노랑가슴녹색잎벌레 때문이었다. “대학 시절 전공 시간에 탐독했던 셰익스피어의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은유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구 또한 곤충의 세계로 빠져들도록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라 정신없이 몰아쳤다. 박사 과정 내내 노트북 위에 손을 얹은 채, 앉아서 자는 날이 수두룩했다. 그런 엄마가 못 미더웠던 사춘기 둘째 아들의 방황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것도 잠시. 올해 대학에 진학한 둘째 아들은 엄마의 연구를 돕겠다며 생물학과에 진학했다. 남편(공무원)도, 군대에 있는 큰아들도 그의 큰 조력자이다.

그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버섯살이 곤충(거저리과)을 연구한다. 물론 버섯살이 곤충만이 그의 관심사는 아니다. 숲을 헤집고, 물에 이마를 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말벌에 쏘여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이름 모를 벌레에 물려 피를 본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위기도, 배고픔도, 피곤함도 정 박사는 괘념치 않는다. “우리나라만의 곤충 이야기도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개발 탓에 흔한 ‘애들’조차 자꾸 사라져가요. 본 건 또 보고, 새로운 건 발견하면서, 기록을 자꾸 해둬야 해요.” 그렇게 정 박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둘러메고 곤충이 있는 곳에 성큼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구멍 숭숭 뚫린 잎사귀 주목 또 주목

호랑나비 애벌레가 좋아한다는 향긋한 산초나무 이파리에 손을 살짝 비빈 뒤 코끝에 대니 싱싱한 숲 기운에 마음이 왈랑 일었다. 그러나 화야산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동행은 ‘난항’이었다. 빨리빨리에 익숙한 기자의 몸은 산 정상을 향해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 박사는 풀 한 포기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특히나 보통은 흉하다 하고 지나칠 게 분명한 구멍 숭숭 뚫린 잎사귀들이 그의 관심사였다. “이 식물을 이렇게 갉아먹은 애는 누구일까, 궁금하지 않아요?”


  
ⓒ시사IN 백승기
세줄나비가 번데기를 탈피해 ‘우화’하고 있다


곤충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먹이식물(숙주식물)이 정해져 있어서 구멍 난 식물이 곤충의 ‘밥상’일 가능성이 높다. 뽕뽕 구멍 난 식물을 잘 살펴야 곤충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송편 혹은 만두처럼 잎이 둥글게 말려 있다면 이건 100% 곤충 집이다. 그런 잎사귀는 벌레들의 ‘전용 복합 시설’이나 마찬가지다. 집도 되고, 식당도 되고, 산부인과도 되고…. 잎사귀 하나에 곤충의 복잡하고도 사소한 사생활이 깃들어 있다.

청미래덩굴 풀잎을 한참 조심스레 앞뒤로 요리조리 뒤집더니 “와아, 귀엽죠?”라고 정 박사가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성큼 손으로 까만 애벌레 하나를 집어 정성스레 살폈다. “곤충 종은 워낙 다양해서 저도 다 몰라요. 그래서 매번 새롭고, 매번 신기하고, 저한테 늘 새로운 ‘숙제’를 줘요. 아마 이 녀석은 청미래덩굴 잎사귀를 먹고 사는 청띠신선나비 애벌레가 아닐까 싶어요.” 꼬물거리는 여덟 개 다리 사이로 복슬대는 털이 수북수북, 그 사이에 손끝을 대보니 애벌레가 잽싸게 움츠린다. ‘미안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언뜻 징그러워 보이지만 애벌레의 털은 ‘처절한 무기’이다. 온도 및 습도를 감지하고, 바람은 물론 냄새와 빛도 털을 통해 감지한다. 털은 천적을 겁먹게 하는 데도 한몫을 한다. 애벌레가 어른 곤충이 될 가능성은 고작해야 10%. 외부 환경은 그만큼 늘 위협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쪽동백나무의 돌돌 말린 이파리를 수색하던 중 ‘기생당한’ 애벌레를 발견했다. 정 박사 말마따나 ‘옆구리 터진 김밥에서 밥알이 흘러나오듯’ 애벌레 피부를 뚫고 누군가 애벌레 몸에 알을 낳았다. “이 애벌레는 어른 곤충이 되지 못하고 숙주가 돼 점점 죽어가요. 아이고, 얼마나 아플까.” 정 박사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그렇게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건만, 가지를 잘라 잘 벗기면 국수 같은 하얀 줄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국수나무에서는 곤충들의 반상회가 한창이었다. 애기꽃벌·범하늘소·아무르하늘소붙이를 비롯해 각종 곤충들이 국수나무 꽃을 중심으로 바글바글 모였다. 동물처럼 짝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하는 식물들은 좋은 시기를 택해 곤충을 유인하는 꽃을 피운다. 꽃가루는 곤충들의 ‘종합 영양밥’이다. 탄수화물·단백질·비타민, 없는 게 없다. “요 녀석들, 잘 먹었으니 제 밥값 해야죠. 배부르게 먹고 나면 국수나무 중매쟁이 노릇을 할 거예요.” 식물과 곤충은 그렇게 ‘상생’한다.


  
ⓒ시사IN 백승기
여름 숲은 사랑이 꽃피는 공간이다. 화려한 몸빛깔을 자랑하는 길앞잡이(위 오른쪽)도, ‘체위’가 난해한 밑들이도 한창 짝짓기에 열중하고 있다(위 맨 오른쪽).


흙길에 가만히 쭈그린 채 몸을 한껏 낮춰 앉아 있던 정 박사가 조심스레 손가락질을 했다. “오늘 우리가 운이 좋네요. 이거 목격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닌데.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이거든요.” 물푸레나무 잎사귀 그늘 아래, 밑들이 커플의 은밀한 짝짓기가 한창이었다. 밑들이 암컷은 ‘혼수’가 준비되지 않으면 절대 짝짓기를 하지 않는 실속파다. 혼수는 죽은 곤충이나 잘 익은 열매이다. 짝짓기를 하고 싶은 수컷은 이를 먹이로 준비해야 한다. 크기는 크면 클수록 좋다. 먹이가 작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암컷이 퇴짜를 놓기 때문이다. 밑들이 암컷은 준비된 혼수를 받아먹는 중에만 짝짓기를 허락한다. 이날도 가만히 들여다보니 힘들게 암컷 위에 올라탄 수컷은 나 몰라라, 암컷은 죽은 애벌레를 쪽쪽 빨아 먹느라 여념이 없다. “밑들이는 짝짓기 체위가 난해해요. 알파벳 대문자 ‘L’ 모양이죠? 이건 저한테 특종입니다.(웃음)” 정 박사의 카메라 플래시가 연방 터졌건만, 밑들이 커플은 카메라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듯 집중 또 집중이었다.

사랑하고 먹고 노니는 곤충들의 사생활

밑들이만이 아니었다. 숲속 먹이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여름을 맞이해 곤충 커플들의 ‘닭살 행각’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걸음을 조금 옮기니 이번엔 풀잎에 ‘브로치’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남생이 커플의 짝짓기가 한창이었다. 숲길을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가까이 다가가면 저만치 앞서 달아난다 하여 이름 붙은 길앞잡이도 어쩐지 꼼짝 않는다 하여 들여다보니 짝짓기 중이다. 흙길에 몸을 대고 누워 숨도 멈춘 채 녀석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너무 사생활을 침범하는 건 아닌가 싶어 무안해졌다.

그런가 하면 세줄나비와 쇠측범잠자리가 번데기에서 막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되는 것)’하는 모습도 운 좋게 목격했다. 정 박사가 “와, 우화하고 있다”라고 감탄하며 나무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세줄나비를 가리켜 보게 된 그 장면은, 정말이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개를 말리는 세줄나비 탄생의 목격자가 된 기분은 제법 으쓱했다.

사랑하고 먹고 노니는 곤충들 틈바구니, 나무 그늘 한편에 주저앉아 준비해간 GPS를 확인하니 화야산에서 보낸 시간은 모두 263분(4시간23분). 평균 속도 0.4㎞로 느릿느릿 걸은 거리는 1.98㎞에 불과했고, 실제 걸은 시간은 69분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194분은 곤충과 눈 맞추며 가만히 정지한 시간이었다. 참고로 750m 높이의 화야산은 등반을 목적으로 오르면 3시간 남짓 걸리는 비교적 ‘쉬운 산’이다.


  
ⓒ시사IN 백승기
정 박사는 연구용으로 채집한 곤충 표본을 꽤 많이 갖고 있다


화야산에서 내려와 차를 내달려 도착한 서울 광장동 오피스텔에 마련한 연구실에서 정 박사는 수백 장의 사진 정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버섯 곤충 연구도 33㎡ 남짓한 작은 연구실에서 이루어진다. 수납공간마다 정 박사가 연구 목적으로 기르는 버섯과 버섯 곤충이 그득했다. 그는 확신했다. 더 이상 이들을 해치지 않는 게 인간도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숲길을, 들길을 걸을 때 뜀박질하면 나만 보여요. 그런데 뛰다가 걸으면 나무와 숲이 보이거든요? 그리고 걷다가 서면 자연의 합창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다시 그 자리에 앉으면, 그래서 버젓이 자라나고 있는 풀 한 포기를 살살 들여다보면 거기 ‘작은 우주’가 있어요. 거친 세상에 적응하며 사는 건 우리나 곤충이나 마찬가지죠. 이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더 이상 개발하지 않는 것이 우리도 사는 방법입니다. 약하고 작은 곤충이 사라지고 생태계 공존이 깨지면, 사람과 대결할 해충만 남게 돼요. 그때, 과연 인간이 이길 수 있을까요?”

2011년 6월 17일 금요일

변신의 달인들’, 자연 속 숨은 그림 찾기

이기사는 한겨례신문 조홍섭 기자의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바꾸고, 흉내내고…, 이끼 낀 바위인지 개구리인지
오징어는 몽환적 색‘뱅뱅’, 꽃게 최면 걸어 덥석





무당개구리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다가서기로 다짐한 삶이기에, 미끄러운 길을 간신히 기어 올라보니 자연 속에 숨은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제 몸에 이끼와 바위의 색깔을 덜함도 더함도 없이 두둘두둘 적절히 두른 무당개구리가 폭염을 피해 폭포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보호색이라면 이 동네 뱀도 새도 오늘은 배를 좀 곯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쉼없이 일어나는 세계입니다. 강자는 이미 강자이고 약자는 어쩔 수 없는 약자입니다. 그렇지만 강자라 하여 영원히 강자일 수 없으며, 약자라 하여 언제나 약자가 아닌 것이 또한 동물의 세계입니다. 결국 누가 승자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동물 세계에서의 승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규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중 위장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위장술이 뛰어난 친구들은 살아 남았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밝은 색과 어두운 색 얼룩나방. 매연이 심할 때는 어두운 나방이, 공해가 사라지면 밝은 나방이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동물이 선택하는 위장의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보호색을 들 수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 속에서 보호색이 생존과 어떻게 직결되는지는 영국에 서식하는 얼룩나방(peppered moth)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무에 지의류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지의류는 균류(菌類)와 조류(藻類)의 공생체로 깨끗한 환경에서 서식하며 나무나 바위에 달라붙어 희끗희끗하게 보입니다. 얼룩나방은 두 가지 품종이 있는데 하나는 희끗희끗한 색을 띄고 또 하나는 어두운 색을 띄고 있습니다. 지의류가 많이 핀 나무에 앉아 있을 때 새를 비롯한 포식자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희끗희끗한 색의 얼룩나방입니다. 이것이 산업혁명 이전에는 어두운 색 얼룩나방의 수가 극히 적었고 밝은 색의 얼룩나방이 대세를 이루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공장이 속속 들어서고 화석연료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기오염이 심각해져 나무에 붙어있던 지의류는 죽고 그 자리에 검댕이 앉아 나무들이 검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밝은 색의 얼룩나방은 보기 힘들어지고 어두운 색의 얼룩나방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또한, 1960년대부터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점차 수습되고 자연환경보호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어두운 색의 얼룩나방보다 밝은 색 얼룩나방의 개체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에 따른 넙치의 보호색 변화
이처럼 동물의 생과 사를 갈라놓을 수 있는 보호색의 유형은 무척 다양합니다. 주로 잡아 먹히는 입장에 있는 동물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몸 색깔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보호색입니다. 예를 들어 사막에 사는 동물들은 대부분 모래의 색깔을 닮은 갈색에 가깝습니다. 또한 북극에 사는 동물들은 극지의 하얀 주위 환경을 따라 순백색의 깃털이나 털가죽으로 덮여 있습니다. 

물속의 동물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면에 가깝게 사는 물고기들의 은빛 비늘은 물빛과 비슷해 새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줍니다. 산호초 사이의 물고기들은 산호의 화려한 색깔과 몸 색깔을 맞추고, 바다 밑바닥에 사는 가자미와 넙치는 모래바닥이나 펄의 색과 같으며, 더 깊은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몸 색깔이 대체로 어둡습니다. 고등어와 꽁치처럼 계절마다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들의 경우 등 쪽은 바다의 물색을 닮은 짙은 푸른색이고, 배 쪽은 바다 밑에서 올려다 본 반짝이는 수면과 같이 은백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보호색이 생태학적 지위가 주로 먹히는 위치에 있는 친구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포식자 또한 피식자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먹잇감의 획득에 유리하므로 역시 보호색을 갖춥니다. 포유류 가운데는 얼룩무늬나 줄무늬의 가죽으로 덮여 있는 종류가 많습니다. 얼룩무늬나 줄무늬의 경우 밝은 색 부분이 강렬하게 대상의 시선을 끌어당겨 몸 전체의 형태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호색은 일종의 교란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포식자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을 띠어 자신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 경계하여 피해가도록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보호색은 경계색에 해당합니다. 칠성무당벌레는 등 쪽 날개가 빨갛고, 위협을 느끼면 몸에서 노란 진물을 내기 때문에 천적들이 쉽게 단념합니다. 화려한 색의 동물들은 대부분 지독한 냄새를 풍기거나 독을 뿜는 종류여서 맛이 고약하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이런 동물을 먹어 본 포식자들은 웬만해서는 또 다시 이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카멜레온
정해진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주위 환경에 따라 그 색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보호색을 통한 위장술의 대가는 카멜레온입니다. 카멜레온은 사는 장소에 따라 몸의 색깔을 그때그때 바꿀 수 있습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녹색을 띠며 나뭇가지에 천연덕스럽게 매달려 있습니다. 천적인 새들이 옆에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모래 배경과 아주 잘 섞인 갈색으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문어 또한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통할 만큼 보호색의 달인입니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몸 표면에 분포한 색소 세포가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보호색이 언제나 방어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공격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꽃게는 오징어가 무척 좋아하는 먹잇감이지만 꽃게의 강력한 집게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자신의 다리를 순식간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오징어는 보호색을 이용합니다. 몸의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꽃게의 눈앞에서 몽환적인 색을 이리저리 비추면 꽃게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 완전히 넋이 나가버리고 맙니다. 꽃게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징어의 두 다리에 꼼짝없이 잡혀버린 다음이 됩니다.


곤충들의 다양한 의태.
동물이 취하는 위장술에는 보호색 말고도 의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태란 동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위의 물체나 다른 동물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꼭 닮은 대벌레, 작은 돌과 비슷한 메뚜기, 해조류의 모습과 흡사한 해마 등이 그 예로 유명한 것들입니다. 

실제로 자신은 그렇지 않지만 독침, 악취, 특별한 무기 등을 갖춘 다른 동물과 흡사한 모양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새의 배설물 모양을 닮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태를 통한 위장술의 진수는 가짜 눈을 이용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먹잇감을 잡을 때 머리 쪽을 공격합니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먹잇감이 도망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단번에 공격해서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피하고자 곤충 중에는 큰 눈동자 모양을 꼬리에 새겨 꼬리를 머리처럼 보이게 할 때가 많습니다. 공격을 당해 꼬리가 좀 뜯겨나가더라도 목숨은 건지겠다는 전략입니다. 애벌레들은 작은 새를 잡아먹는 매와 부엉이를 비롯한 맹금류의 눈을 연상시키는 무늬를 떡하니 등 쪽에 그려 넣기도 합니다.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펼치는 전략은 동물의 종수 만큼 다양하다 해도 틀린 말을 아닐 것입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떠올려본 것이지만 생각은 바로 나 자신으로 돌아와 멈춥니다. 나 역시 살아남아야 하겠는데, 어떠한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무늘보의 방법을 따르기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까를 고민하는 세상이니 어떻게 하면 더 느려질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것도 길이겠다 싶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2011년 6월 16일 목요일

지뢰밭이 지킨 '평화의 숲'…생태계 신비 고스란히

숲 로고.jpg   ③철원 소이산
논밭과 집터는 숲과 습지로…출입통제 덕에 평지 숲 원형 간직
연료림 심은 아까시나무 우세, 조사 전무해 "뭐가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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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 부근 지뢰지대 안의 숲 모습. 평지여서 과거 논이거나 집터였을 것이다.

텃밭이 딸린 집터를 60년쯤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흙먼지 날리던 학교 운동장은 그 기간 동안 어떻게 바뀔까.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에 가면 그 해답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으로 황폐화한 뒤 군사목적으로 매설한 지뢰가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사요리 산 1번지가 주소인 소이산(해발 362m)을 찾았다. 북한이 1946년 지은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사 건너편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산을 희게 물들이고 있는 아까시나무 꽃을 따라 온 양봉가의 벌통이 널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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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 전경. 해발 362m의 낮은 산이지만 철원평야의 조망점이다.

labor.jpg북한이 1946년 건설한 노동당사.

소이산은 민통선 밖에 있지만 주요한 군사시설이 많아 출입이 통제돼 왔다. 읍내 야산이 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스스로 변화해 온 모습이 간직돼 있다.

일제 때 사방림과 연료림으로 많이 심은 아까시나무가 아직도 숲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길가에 무리지어 돋아난 외래종이자 생태교란종인 단풍잎돼지풀은 이곳에 오랫동안 군사기지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동행한 마상규 박사(한국산림기술인협회 회장)는 “이곳은 외래종인 아까시나무가 향토수종에 앞서 황폐한 땅을 선점한 이후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나갈지를 생태사회학적으로 연구할 최적지”라고 말했다.

산 중턱 이후부터는 아까시나무가 줄고 생강나무, 갈참나무, 때죽나무 등 토종 나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대로 놔두면 아까시나무가 산을 점령할 것이란 우려는 근거가 없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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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에서 바라본 철원평야의 전경. 멀리 앞에 보이는 녹지가 비무장지대이고 그 너머 산지는 북한이다.

oldtown.jpg1930년대 소이산 정상에서 본 철원읍 전경. 크고 작은 건물이 밀집해 있는 모습이 현재와 대조된다. 건물이 들어선 곳은 현재 지뢰지대이다. 출처 <철원군지>.

소이산 정상에 오르자 눈앞이 확 틔었다. 주변과 표고차가 200여m밖에 안 되지만 1000m급 고산에 오른 느낌이 들었다. 널찍한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그리고 그 건너 북한의 평강고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산이 없었다면 전쟁 때 철원평야를 지킬 수 없었을 것”이라는 김준락 육군 제6보병사단 공보참모의 설명이 실감났다.

소이산은 철원평야 논의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이다. 철원평야를 한 눈에 굽어보는 가치 때문에 이곳엔 고려 때부터 봉수대가 설치돼 함경도 경흥에서 서울로 연결되던 경흥선 봉수로에 속해 있었다.

사요리는 옛 철원읍의 중심지로 농축산물이 모이고 경원선과 금강산 전철이 다녀 관광객이 북적이던 곳이었다. <철원군지>에 실린 1930년 소이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산밑에까지 크고 작은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철암 철원문화원 사무국장은 “해방 때 철원읍 인구는 8만이었고 은행 2개와 여고, 도립병원도 있었는데 현재 철원읍 인구는 그 절반 가까운 4만 7000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산물검사소 등 과거의 주요 건물은 근대문화유적으로 남았지만 농가와 논밭의 상당수는 습지와 숲으로 바뀌었다. 마상규 박사는 “통일이 돼 철원에 평화도시가 조성된다면 소이산은 그 조망점으로서 서울의 남산과 같은 구실을 할 것”이라며 “평화의 숲이자 도시의 산림공원으로서 보전하고 개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생명의 숲’이 2006년 소이산을 ‘천년의 숲’ 수상지로 선정한 것도 ‘평화의 숲’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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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농가 주변임을 보여주는 지뢰지대 안의 대형 뽕나무.
 
소이산의 북쪽 산자락은 모두 지뢰지대이다. 노동당사에서 국도 87호선을 따라 대마리로 향하는 길 양쪽은 옛 철원의 시가지였지만 지난 60여년 동안 지뢰 통제구역으로 묶였다. 
그 동안 묵논은 습지로, 묵밭과 집터는 숲으로 바뀌었다. 소이산 자락에서 출입영농을 하는 현응기(71)씨는 “지뢰지대 안에 고사리와 고라니가 많지만 폭발사고가 나 사람들이 들어가길 꺼린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곳에 대한 생태조사도 이뤄진 적이 없다.
 
전문가들은 소이산의 생태적 가치는 훼손이 심한 산 위보다 산자락의 지뢰지대가 높을 것으로 본다. 도로를 따라 지뢰지대를 보면 아까시나무, 버드나무, 신나무와 함께 마을에서 심어 기르던 호두나무, 뽕나무 등도 눈에 띈다. 마 박사는 “지금은 모두 사라진 서울의 평지 숲의 원형이 여기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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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찍은 철원공립보통학교 전경. 출처 <철원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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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과 습지로 변한 철원공립보통학교 터(정면 초원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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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 날리던 학교 운동장, 60년 뒤의 모습.

소이산 건너편의 지뢰지대는 넓은 초지를 키 큰 포플러와 아까시나무가 둘러싼 모습이 독특하다. 해방 때 2600여 명의 졸업생을 냈던 철원공립보통학교 터이다. 운동장은 초원이 됐고 귀퉁이는 고랭이, 부들 등이 자라는 습지가 됐다.
 
온대지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의 간섭이 중단된 채 생태계의 천이와 복원이 이뤄진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그러나 이곳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소규모 지뢰지대여서 인접한 도로와 군부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란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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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읍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뢰지대. 과거 평지였던 곳이 60여년 동안 식생천이를 거친 곳이어서 주목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쟁의 유물인 지뢰밭이 지킨 숲의 가치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김명진 국립환경과학원 자연평가연구팀장은 “최근 민통선 지역인 백암산에서 희귀한 사향노루 서식지가 발견된 것처럼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민통선 인근 지역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생태적 가치가 발견될 잠재력을 지닌다”고 말했다.
철원/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천안함 사태 뒤 DMZ 생태조사 ‘올 스톱’
 
분단 뒤 첫 생태조사로 기대를 모았던 환경부의 비무장지대 생태조사는 지난해 천안함 침몰 이후 전면중단된 상태이다.
 
해부터 서해까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약 2㎞ 지역을 가리키는 비무장지대(DMZ)는 군사활동과 산불로 인한 교란이 계속되기는 했어도 반세기 이상 사람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곳이어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이제까지 철책선 밖에서 망원경 등으로 관찰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2008년 11월 환경부와 각 분야 전문가 20여명은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 비무장지대 안에서의 생태조사를 처음 시작했다.
 
2008년 11~12월엔 경기도 파주, 연천 등 비무장지대 서부지역의 조사가 이뤄져 독특한 습지생태계를 발견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듬해 11~12월엔 강원도 철원 지역의 조사를 마쳤다.
 
그러나 스라소니, 표범 등 대형 포유류의 서식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강원도 화천, 양구, 고성 등 동부지역 조사는 천안함 사태 이후 악화한 남북관계로 이뤄지지 못했다.
 
생태조사뿐 아니라 6·25 60돌을 맞아 15개 언론사가 국방부의 협조로 추진하던 비무장지대 취재계획도 북한이 비무장지대를 대북 심리전장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인명피해’를 위협하는 바람에 취소됐다.
 
유제철 환경부 자연정책과장은 “여건만 풀리면 비무장지대 언제든지 생태조사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아까시나무의 쇠퇴…황무지 녹화 큰 구실, 조림 중단에 노화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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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산 지뢰지대의 아까시나무. 꼭대기가 말라죽는 쇠퇴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여름에 아까시나무의 잎이 노랗게 물들어 낙엽이 지는 현상이 2000년대 중반에 전국에 나타났다. 이 ‘아까시나무 쇠퇴현상’의 주요 원인은 1970년대 이후 아까시나무 조림이 중단되면서 나타난 노화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했다.
 
그러나 요즘 이런 황화 현상은 보이지 않는다. 아까시나무의 쇠퇴는 멈춘 걸까.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 박사는 “황화가 심하지 않다 뿐이지 쇠퇴가 중단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큰 아까시나무의 꼭대기 부분이 말라죽는 현상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그 증거다.
 
신 박사는 “아까시나무는 토양이 황폐한 곳에 먼저 들어오는 선구 수종이어서 다른 나무와 경쟁을 하거나 그늘진 환경에서는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했다. 뒤집어 얘기하면 전후 황폐했던 국토를 녹화하는데 아까시나무는 큰 구실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북미 원산인 아까시나무는 19세기 말 들여와 1970년대까지 심은 대표적 조림수종이다. 특히 어릴 때 베어내면 이듬해 또 그만큼 자랄 만큼 생장력이 왕성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연료림과 사방림으로 널리 심었다. 절정기는 1970년대로 전국의 아까시나무 면적은 지금보다 5배 이상 많은 32만㏊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꿀 공급 식물이자 산림녹화에 기여했지만, 아까시나무는 생활력이 너무 강해 퇴치가 곤란한 나무라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까시나무는 뿌리가 얕고 목재의 비중이 커 바람 피해를 잘 받아 대개 50년을 넘기지 못한다. 무엇보다 산림이 건강해지면서 아까시나무의 설 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2011년 6월 15일 수요일

[항공사진] 낙동강은 지금 황톳물... 비 오면 '헐'

이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퍼왔습니다.
[항공사진] 낙동강은 지금 황톳물... 비 오면 '헐'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4대강 불법 준설현장 공개
윤성효(cjnews)
▲ 상주 강창교 부근.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는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3일에 걸쳐 낙동강 항공촬영을 실시해, 15일 관련 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했다. 이 단체는 "하늘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모습은 핏빛 그 자체였다"고 밝혔다.
시민운동본부는 "상류에서부터 하류에 이르기까지 포클레인에 의한 불법 준설이 끊이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오탁방지막이 설치된 공사장도 없었다"며 "이로인해 심각한 오탁수가 발생하여 낙동강 전 구간은 핏빛을 머금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 상주 경천교 상류지역 준설현장. 강 한복판에 포크레인이 들어가 직접준설을 하고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포크레인이 전복되면 작업자는 사망할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는 이미 경남 함안보 인근 준설현장에서 발생한적이 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이들은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은 그동안 공사장 환경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으며 탁도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항공사진 촬영 결과 이러한 말은 허구임이 입증되었으며 공사장에 대한 관리감독 역시 이루어지지 않고있음이 입증되었다"고 지적했다.
시민운동본부는 "이러한 무차별적 불법준설은 강의 생명들에 대한 학살 행위다. 이렇게 높은 탁도가 지속되는 강물에서 생존할수있는 생명체가 얼마나 될까"라고 밝혔다.
불법준설이 이루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장마기 전에 공사를 마치려는 무리한 속도전의 결과"이거나 "준설비용의 절감다. 준설선에 의한 준설보다 포클레인에 의한 직접준설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불법공사로 인한 공사비는 환수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낙동강지키기 부산·경남·대구경북본부는 16일 낙동강유역환경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 경천대 상류. 포크레인에 의한 직접준설은 이처럼 심각한 탁도를 유발하기에 환경영향평가에서도 금지하고 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낙단보 하류. 강 가운데로 길을 내어 준설을 하고있다. 앞의 두 대가 준설을 해 뒤쪽으로 옮기면 뒤쪽의 포크레인이 덤프트럭에 바로 싣고 있다. 준설후 물기가 제거된 모래가 덤프트럭에 실려야함에도 이렇게 실려 반출되고있다. 이로인해 인근 도로에 침출수가 떨어져 비산먼지가 다량 발생하고 있다. 불법공사에 불법 반출이 이루어지고 있는것이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남강 합류지. 남강합류지 하류지역의 준설현장. 준설선과 함께 포크레인이 직접 준설을 시행하고 있다. 오탁방지막도 없어 높은 탁도의 강물이 그대로 하류로 흘러가고 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경천대 상류지역으로 강 가운데로 길을 내고 포크레인에 의한 직접준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오탁방지막도 설치되어있지 않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경천대 상류. 포크레인에 의한 직접준설은 이처럼 심각한 탁도를 유발하기에 환경영향평가에서도 금지하고 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구미 도개면. 이곳도 강 한가운데로 길을 내어 포크레인 직접준설을 시행하고있다. 역시 오탁방지막을 찾을수없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 영강합류지. 청강부대가 준설을 담당하던 지역으로 현재 청강부대는 철수한 상태이다. 포크레인에 의한 무차별적인 불법준설이 시행되고있다.
ⓒ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2011.06.15 10:49ⓒ 2011 OhmyNews
4대강사업을 덩장 멈추고 원상복구하라!!! 낙동강지키기부산시민운동본부, 4대강 불법 준설현장 공개

FTA 12 개 독소조항

김흥순님께서 페이스북에 올리신글입니다. 2011년 6월 15일 오후 2:33
이종훈 교수의 글을 읽고, FTA 12 개 독소조항

1) 래칫(톱니바퀴의 역진방지장치)
한번 개방된 수준은 되돌릴 수 없음
2)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명시된 非개방 분야 외 나머지를 모두 개방
3) 미래의 최혜국 대우
다른 나라에 미국보다 더 많이 개방할 경우에 자동으로 미국에 적용
4) 투자자 국가 제소권
다국적기업이 제멋대로 제3의 민간기구에 제소
5) 非위반 제소
사업자가 기대 이익을 얻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국가에 제소
6) 정부의 입증 책임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무조건 개방
7)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미국인에게는 한국 法보다 한미FTA가 우선 적용
8)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사업장을 우리나라에 설립하지 않아도 영업가능
9) 공기업의 완전 민영화 &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미국 자본에게 한국은 100% 먹힘
10)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한국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단속권을 미국이 직접 행사
11)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
한국은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
12) 재협상불가
FTA가 국회에서 비준되면 영원히 재협상 불가능

다른 거 다 제쳐두고 12번 조항, 한번 비준되면 영원히 재협상 불가능이 어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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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3일 월요일

시멘트벽 위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꽃

이기사는 오마이뉴스에서 퍼왔습니다.
  
▲ 좋은 세상 만들기 정수 대표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드넓은 나주평야 모내기로 바쁜 이앙기 엔진소리가 진종일 들녘을 울리는 농촌 들녘, 하늘로 줄기를 곧추세우고 연잎을 푸르게 펼쳐 올리는 너른 저수지를 휘돌아 올라가는 전라남도 나주시 산포면 화지리 홍련마을 길가 무표정한 회색의 시멘트벽에 예쁘고 건장한 젊은 남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벽화를 그린다. 회색의 담 벽에 푸른 연잎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붉은 꽃잎을 활짝 펼쳐 올린다. 거기 연한 연향이 가득 풍겨 나오는 것만 같다.


  
▲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모내기 하러 간 고향 길에서 만난 풍경이다. 누가 저토록 삭막한 시멘트벽 위에 화사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안고 며칠 새 지켜보며 바쁜 발걸음으로 그냥 지나쳤건만 그들과의 인연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벽화 그리기로 이미 세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좋은 세상 만들기'의 대표 정수(36)씨가 회원들과 함께 며칠 새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수씨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화가다. 그런 정수씨가 왜 이 벽화를 그리는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단체를 꾸리고 운영하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정수씨가 미술대학에 다니던 2002년으로 돌아간다. 정수씨의 아버지는 당시 뇌졸중으로 앓아누워 식물인간 상태로 2년을 살다가 그만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정수씨는 화장하여 담양의 영락공원에 안치한 아버지를 거의 주말마다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길 위에 놓인 담양의 어느 시골 허름한 시외버스 정류장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버려진 듯 있는 낡은 소파 두어 개,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쓰레기들, 무표정한 회색의 시멘트 벽, 그것은 아버지를 여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자신의 초상화임을 발견하게 된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정수씨는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결심 하게 된다. 거기에다 아름다운 벽화를 그려 생명을 불어 넣어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작한 벽화 그리기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나가신 아버지가 저에게 준 선물이지요. 너는 캔버스나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지 말고 이 세상에다 그림을 그려 보아라하고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정수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정이 아버지가 계시는  담양 시골 정류장 벽화그리기로 표출되었던 것 아닌가 싶다. 그 후로 정수씨는 뜻있는 학생들과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순전히 사비를 털어 여기저기 시멘트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답답한 회색의 시멘트벽이 휘황찬란한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자 모두들 환영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정류장 80여 곳, 나주 삼한지 테마파크 등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도 40여 곳이나 된다고 한다. 또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추모 벽화를 그리기도 했으니 그 활동 영역이 어느덧 전국을 무대로 확대된 것이다. 

  
▲ 벽화를 그리고 있는 모습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현재 '좋은 세상 만들기'는 1800여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대학생이라고 한다. 스펙 쌓기나 취직 시험에만 골몰할 것만 같은 이기적인 대학생의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은 일면이고 실재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공공문화 가꾸기 같은 일에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봉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대학생들의 참 모습이라고 정수씨는 말한다. 아직 우리 사회가 그들의 봉사 욕구나 참여 욕구를 효과적으로 분출할 수 있는 장치가 미비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지금 여기 와서 봉사하고 있는 대학생들도 일일 5000원씩의 회비를 내고 참여하고 있어요. 여기에서는 오직 재료만 대주고 있지요."

정수씨의 말처럼 화지리 홍련마을 벽화그리기에 필요한 타일(색색의 타일을 잘게 부수어 접착제를 발라 벽에 붙여 그림을 그린다. 페인트는 2년 정도의 수명인 데 반해 타일은 10년 이상 간다고 한다)만을 요청자로부터 제공받은 상태였고, 정수씨를 비롯한 회원들은 교통비와 식비 등에 필요한 회비를 각자 내고 참여하여 순전히 자발적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정수씨는 그것은 우리 대학생들이 술 마시고 노는 소비적인 문화에 탐닉하기보다는 세상을 향한 나눔의 공감대를 가지고 창조적인 것에 자신을 헌신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더구나 벽화그리기는 대중적 공감대가 크고 오래도록 자신이 그 작품에 참여하여 그렸다는 성취감이 남아 있어 매우 선호하는 봉사활동 중 하나라고 한다.

벽화 작업 도중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한참 동안이나 서서 그것을 지켜보고 가거나 또 수고한다고 물이나 음료수 등을 건네기도 한다. 또 시골 할머니가 고생 한다며 고구마를 쪄오고 타일 조각에 손가락이 벤 대학생을 보고 집에 있는 대일밴드를 가져와 붙여 주는 등 우리가 잃어버렸던 훈훈한 정을 체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이 매우 크다.

언젠가는 더운 여름날 갈증은 나고 더운데 물은 사러 갈 수 없고 하여, 그냥 회원 하나가 '물 좀 사 주세요'라고 등에 크게 써서 붙여놓고 작업을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물과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와서 건네주며 좋은 일 한다고 칭찬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좋은 세상 만들기' 회원들은 힘든 벽화 그리기 작업을 통해 함께 하는 회원 간의 협동심을 배우고 또 사람 사는 인간미를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배우면서 더 큰 세상을 깨닫는 것이다.

  
▲ 벽화를 그리는 봉사원들(단체사진)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좋은 세상 만들기'의 벽화 그리기는 이러한 점에서 벌써부터 인기 봉사단체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SKT썬' '잎새주 대학생 홍보단' '광주은행 대학생 홍보단' 등의 기업들이 문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고, 미술 교육, 비엔날레 전시 참여, 잠 안자기 대회 등을 개최 하는 등 영역을 확대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 하고 있다.

벽화 그림의 소재도 초기의 태권도, 농악 등의 한정적 소재를 벗어나 주변 환경이나 의뢰자의 의도를 고려해 참신한 소재를 선택한다. 어느 정류장 벽화에 노랑머리에 총을 든 서부 사나이를 그리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다가와 '왜 여기에 저런 무서운 그림을 그리느냐?'는 말을 듣고 정수씨는 그때 벽화의 그림 소재도 감상자와 서로 소통을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그에 맞는 것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러한 정수씨의 벽화 그리기는 그야말로 화가와 관객이 따로 없는 함께하는 참여의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좋은 세상 만들기'에 참여하는 봉사자들도 대부분 미술 전공과는 전혀 다른 대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평소 그림은 그리고 싶었으나 마땅한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벽화 그리기 봉사단체가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저도 어릴 때는 엄마 말도 안 듣는 불량학생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림을 그려서 엄마에게 보여주니 매일 꾸지람만 하던 엄마가 칭찬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매일 그림을 그려 엄마에게 보여주었지요. 그게 취미가 되고 특기가 되어 미술대학을 진학하게 되었고 이렇게 삶의 일부가 되는 벽화를 그리게 되었지요."

정수씨는 그림을 왜 그리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리고 한국화를 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는 먹의 번짐이 좋아서 선택했다고 답한다. 아마 정수씨의 이러한 대답은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부모에게 칭찬받고 싶고 먹물처럼 사람들 마음에 자연스럽게 퍼져 하나로 동화되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본연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벽화 그리기는 매우 보람이 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들과 함께 감상할 수 있고 그 감상을 통해 칭찬 등의 비평을 즉각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타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의미한다. 즉 소통은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이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번져가는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에게로 자꾸 동화해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동화는 궁극적으로는 평화요 환희요 행복일 것이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껴요. 무엇보다도 서로 함께 일을 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큰 보람이지요.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말하면 정말 기뻐요."

조선대학교 체육학과 4학년에 다니는 서진수(25)씨의 말이다. 20여 작품의 봉사 활동에 참여했다는 서진수씨는 '미술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도 쭉 봉사 활동을 하고 싶은데 취직 문제가 걸려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여기 와서 봉사 활동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고 서로 다른 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워요. 또 먼 훗날 여기 와서 내 손으로 만든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정말 감회가 새롭겠지요. 그런 점에서 계속 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전남대학교 임학과에 다닌다는 조아라(22)씨는 전남대학교 홈페이지에서 벽화 그리기 봉사원을 모집하는 광고를 2011년 2월에 보고 왔다면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 요양원 벽화에 참여했는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 조선대학교 서진수(좌)씨와 전남대학교 조아라(우)씨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2-3학년 대학생들이 열심히 봉사활동에 참여하다가 4학년이 되면 취직 문제로 싹 빠져나가버려요. 그리고 시험기간에도 참여율이 아주 저조하지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지만 이처럼 이 세상에 봉사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직접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금방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겠어요."

정수씨는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회원들의 현실적 상황에 대하여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매일 '장가는 언제 갈 거냐?'고 자꾸 성화를 내는 데도 정수씨는 개인적인 일보다는 항상 세상일에 더 바쁘다.

"우리나라 8도를 지나는 간이역 벽마다 그 지역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그 지역의 명사를 초청하여 회원들과 함께 강연을 듣는 일을 추진하고 싶어요. 뜻있는 기업이나 철도공사 같은 곳에서 지원도 해주고 함께 하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겠지요."

정수씨는 그러한 체험들을 정리하여 '철길 위에서 길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에세이집을 간행하고 싶다고 말한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다. 어디 등 기댈 데라고는 없는 삭막하기만한 세상에서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도 이렇게 아름다운 꿈을 꾸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세상으로 따뜻한 손을 내밀며 모두가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이상을 실현하는 길을 조금씩이라도 앞서가는 사람은 위대한 것이다.

생각해보라. 암울한 성장제일주의 시대에 오직 거대 자본과 개인의 영달과 출세만을 위해 미친 듯 질주하는 무표정한 죽음 같은 삭막한 시대의 상징인 저 견고하고 딱딱한 시멘트벽을, 너와 나를 그리고 안과 밖을 완전히 단절시켜 버린 저 시멘트벽 위에 푸른 잎과 향기로운 꽃이 피어나리라고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해보았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오늘 거기 누군가의 작고 여린 순수한 열정들이 모여 마침내 푸른 잎이 돋고 향기로운 꽃이 피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 완성된 벽화
ⓒ 강형구
 좋은 세상 만들기

덧붙이는 글 | 좋은 세상 만들기 많은 관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