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7일 토요일

코뚜레 뚫자 졸도한 송아지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2011. 09. 14자 기사 '코뚜레 뚫자 졸도한 송아지'를 퍼왔습니다.

코뚜레를 한 소를 끌고가는 농부의 모습 사진 <한겨레> 자료
농사에서 쟁기나 써레질, 또는 수레 끄는 소를 ‘일소’라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전통 농가의 소들은 모두 일소였다. 육식을 위한 육우 개념은 방목형 내지 공장형 전업축산이 나타난 이후다.

소는 쟁기질만 할 줄 알면 써레질이나 수레 끄는 일도 할 수 있다. 쟁기질을 위해서는 멍에를 지워야 한다. 멍에는 기역(ㄱ)자로 된 통나무를 소의 어깨 위에 얹어서 양쪽에 끈을 묶어 힘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때 멍에를 받쳐주는 어깨의 근육살을 등심이라고 한다.

소가 멍에를 지는 것은 주인을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멍에를 진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도 “수고하며 무거운 멍에를 지고 허덕이는 자여,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모든 소가 처음부터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소가 되려면 훈련을 받아야 한다. 가라, 서라, 돌아라, 천천히, 힘을 내서…… 말귀를 알아듣고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작물을 밟지 않고 고랑만 밟고 지나가면서 두덩을 헤치지 않고, 고랑 끝에 가면 스스로 서고, 농부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런 훈련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소에게 쟁기질 훈련을 시키려면 기본적으로 코뚜레를 해야 한다. 쟁기질 때문이 아니라도 전통적으로 소는 코뚜레를 해서 길렀다. 힘이 센 소를 다루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6~7개월쯤 되었을 때 코를 뚫어 동그란 코뚜레를 끼운다. 코뚜레에 묶는 줄을 고삐라고 한다.
유치원 아이들도 소를 잘 다룰 수 있는 것은 코뚜레 때문이다. 쟁기질을 마친 아버지가 아이에게 먼저 소를 몰고 집으로 가라고 하면, 아이는 고삐를 잡고만 있어도 소가 1킬로미터 이상 되는 자기 집 골목을 알아서 찾아간다. 소는 잘 가다도 밭 주변을 지날 때면 갑자기 콩이나 작물을 순식간에 한 입 훑어 먹어버리기도 한다. 이때 아이는 즉각 고삐를 잡고 때리는 시늉을 한다. 흉내만 내도 소는 눈치를 보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소나 돼지, 염소, 등 가축은 덩치가 작은 아이들을 무시하고 말을 잘 안들을 때도 있다. 그런 버릇을 바로 잡을 때에도 코뚜레가 힘을 발한다. 고삐를 잡고 야단을 치고 몇 번 때리고 하면 아이의 말도 잘 듣게 된다. 수정을 시키는 일에도 코뚜레가 있는 소는 붙잡고 있으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코뚜레 없는 소는 저항하고 여간해서 말을 안 듣는다.

코뚜레는 단단하면서도 잘 휘어지는 나무를 재료로 쓰는데 대나무가 많은 지역은 대의 뿌리로 하기도 한다. 단양읍내 철물점에서 코뚜레를 구입했는데 굵은 철사에 비닐을 피복한 제품이었다. 코뚜레도 현대화된 셈인데 모양과 기능은 전통적인 코뚜레 그대로다.


영화 <워낭소리>의 한 장면

요즘은 코를 뚫는 일도 기계를 이용해 간단하게 하고 동그랗게 한옥 문고리만 한 것을 코걸이로 달아놓은 것을 종종 본다. 소는 코걸이를 덜렁거리며 살게 되는데 수정을 시키거나 이동시켜야 할 일이 있을 때에 코걸이를 잡아 다룬다. 코뚜레나 코걸이나 소에게는 마찬가지겠지만 코걸이는 어쩐지 노예시장에 끌려나온 모습을 보는 듯해서 몹시 흉하게 느껴진다. 소도 자존심이 있을진대 대접이 아닌 것 같다.

농가에서도 더 이상 소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코뚜레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요즘 소들은 풀을 뜯으러 갈 일도 없고 쟁기질을 하거나 수레를 끌 일도 없다. 그저 주는 사료 잘 먹고 새끼를 잘 낳거나 살만 잘 찌면 제 할 일이 끝난다.

코뚜레가 없는 소를 이동시키거나 수정시킬 때는 그 힘센 소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다룰까 궁금했는데 비결이 있었다. 줄로 홀침을 만들어 소의 뿔에 거는 것이었다. 뿔은 양쪽 방향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소뿔 두 개를 동시에 걸어 묶으면 코뚜레만큼의 기능은 아니지만 제압이 가능했다.

뿔이 뇌에 연결되어 있어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직 뿔이 나지 않은 어린 송아지나 중송아지들은 줄로 홀침을 해서 주둥이에 끼우고 목 뒤쪽으로 줄을 돌려 다시 홀침 줄에 묶는다. 그렇게 하면 줄을 당겨 머리 방향을 조종할 수 있다.

말해놓고 보니 영세 축산 6년 경험으로 60년 장인처럼 말한 것 같아 쑥스럽다. 우리 소는 세 마리가 코뚜레를 하고 있는데 모두 김 노인이 뚫어준 것이다. 준비물로 무엇이 필요한가 여쭈었다.

“그야, 소를 붙잡아 줄 장정 몇 명 있으야 되지. 철물점 가거덩 코뚜레 두 개 정도 사와야 되지. 고삐는 그냥 있는 줄 쓰면 되고. 그래고 거…… 소주 한 병 있으믄 되지! 김치하고…….”

약속시간에 모시러 가려고 했는데 경운기를 타고 올라오셨다. 가지고 온 나뭇가지를 낫으로 깎아 송곳을 만드는데, 날카로운 부분과 손잡이 부분을 정교하게 깎는다.

“요만하믄 되았지?” 하시더니 소주를 머그컵에 따라서 한 잔 쭈욱 드셨다. 안주는 깜박 잊으셨기에, 안주 한 점 드시라고 하니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신다. 축산 담당하는 길산이와 장정 네 명이 붙어서 소를 우사 코너에 꼼짝 못하게 묶어 밀어붙였다. 6개월 중송아지다.

김 노인은 손에 침을 탁탁 뱉더니 왼손으로 송아지 코를 잡고, 오른손에 나무 송곳을 쥐어들고는 “읍!” 소리와 함께 송곳을 쑤셔 박았다. 피가 터지고 송아지가 몸부림치더니 졸도하여 넘어졌다. 송아지가 쓰러지니 김 노인도 약간 당황해했다. “

조금만 기둘려라잉!” 하시더니 두어 번 더 “으읍!” 소리와 함께 송곳을 완전히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이내 코뚜레를 끼우고 고삐를 묶어 채워준 다음 풀어주었는데, 송아지는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서서 코에서 흐르는 피를 연신 혀로 닦아 먹는다. 소코뚜레 뚫기 작업 완료다.

허리도 굽은 노인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힘쓸 줄 모르는 젊은 초보 농부들은 혀를 내두른다. 송아지는 코뚜레를 끼워준 즉시 앳된 송아지 얼굴이 사라지고 유난히 작은 어른 소가 되어버렸다. 소에게 코뚜레는 성인식이었던가 보다. 그래도 마치 고등학생이 아버지 신사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것처럼 어색하기 그지없다. 사람이나 소나…… 그렇지 뭐!

소코뚜레는 언제부터 했고, 어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소의 아킬레스건이 코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참 신묘한 일이다.

고대인들은 삶의 지혜를 과학에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학이 따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 능력은 영적 차원에서 크신 존재로부터 얻은 것이고, 그렇게 필요한 것만 얻어서 살아가는 것이 고대인의 생존양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삶은 신비의 차원이 된다!

두세 달 지나면 쟁기질을 가르칠 것이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할 텐데……. 쟁기질 연습을 두 마리나 시도했지만 두 번 다 실패했다. 쟁기질 연습이란 무게가 나가는 통나무나 자동차 타이어를 줄로 묶어 멍에에 달고 소를 끌면서 매일 적당 시간 오가는 훈련을 말한다.
그런데 설명 들은 대로 했는데도 매번 실패다. 소가 우리 가족들을 ‘척! 보아하니’ 농사꾼으로선 너무 어설픈 모습이라 그랬을까? 소도 자존심이 상했는지도 모른다. 인정한다. 그래도 소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농사꾼 후계자를 자청하여 귀농한 사람들을 좋은 마음으로 따라야 복이 있고, 또 잃어버린 쟁기질을 다시 한다는 것은 소가 진짜 소답게 사는 길이라는 점이다.

 사람이나 소나 유유상종이다. 우리가 도시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사람다운 삶을 찾아왔듯이, 우리를 만난 소도 냄새나는 우사에서 주는 사료나 먹고 살만 찌는 소가 아니라 소다운 삶을 찾아야 할 것이다.

“소야! 노동을 두려워하는 인간들 모습 봤지? 일소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냐. 한우의 체면과 자존심을 생각해서 쟁기질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 넌, 소라고 생각하지 마. 농사꾼이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산위의 마을 농사꾼, 파이팅!”
사람 달래며 사는 것도 힘든데, 소까지 달래고 산다.

민들레집 마스코트는 다리 잘린 나비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2011. 09. 16자 기사 '민들레집 마스코트는 다리 잘린 나비'를 퍼왔습니다.

사진 <한겨레> 자료


요즘의 민들레국수집의 마스코트는 "나비"입니다. 나비는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아기 고양이입니다. 몇 달 전에 어느 손님이 앞발 하나를 차에 치인 고양이를 가져왔습니다. 밤새 고양이가 앓았습니다.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절단수술을 해야한답니다. 치료비가 이십만원이 넘을 것 같습니다. 고민하다가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참 많은 고마운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품과 간식 그리고 먹이도 보내주시고 또 치료비에 보태라고 도움도 주셨습니다. 우리 민들레 식구들이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습니다.
VIP손님들도 "나비"를 귀여워합니다. "나비"의 재롱에 손님들도 참 좋아하십니다. 예쁜짓을 하는 나비가 어느새 국수집의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참 덥습니다. 손님들의 옷들도 흠뻑 젖어있습니다. 늦더위에 손님들도 지쳤습니다. 밥이라도 맛있게 드시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반찬거리가 너무 올랐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고마운 분들이 걱정해주시면서 반찬거리를 보내주십니다. 덕분에 우리 손님들께 별식을 대접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참 힘들게 노숙을 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착하게 보였습니다. 조금만 도와드리면 자립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분도 방이라도 하나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로니카와 함께 몇 번을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느 날은 막노동을 다녀왔다면서 온 몸에 붙인 파스를 보여줍니다. 조금만 도와드리면 정말 사실 수 있는 분 같았습니다. 겨우 집을 마련해서 오시도록 했습니다. 고맙다면서 박카스 한 통도 사오셨습니다.

이삿짐이라곤 작은 가방이 하나뿐입니다. 최소한의 살림살이를 마련해드렸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합니다.그런데 짐을 풀더니 첫날부터 술을 마십니다. 지금도 계속 마십니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알콜 의존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던 민들레 식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동인천역 근처에서 엉망으로 술에 취해서 지내고 있습니다. 밥이라도 먹으러 오라고 해도 부끄러워서 못 오겠다고 합니다. 어린왕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어느 별의 부끄럼 많은 사람이 사는 별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알콜 의존증은 정신질환입니다. 의료차원에서의 접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알콜 의존증에 시달리는 일부 노숙하는 분들을 도울 길을 찾아낼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또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식사를 많이 하시는 것을 배가 고파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당뇨가 있는 분들도 엄청나게 식사를 많이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뇨에 걸린 분의 식사문제를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사설] 위기대응 총체적 부실 드러낸 ‘정전 사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16자 사설 '위기대응 총체적 부실 드러낸 ‘정전 사태’'를 퍼왔습니다.
한가위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시민들은 느닷없이 큰 재난을 맞았다. 엊그제 오후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대규모 정전은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태였다. 주요 산업단지의 공장이 갑자기 멈추고, 아파트나 고층건물에선 사람들이 깜깜한 승강기에 갇혀 공포에 떨어야 했으며, 도심 곳곳에서 교통신호등이 꺼져 큰 혼잡을 빚었다. 이번 정전 사태는 정부와 전력 유관기관들이 예고도 하지 않고 일으킨 명백한 ‘인재’다. 따라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물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지식경제부는 이번 정전 사태를 부른 배경을 늦더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상고온으로 전력수요가 예상치를 훨씬 웃돈 가운데 발전소 정비 기간이라 실시간 공급능력이 한계를 보여 어쩔 수 없이 ‘순환 정전’이라는 비상조처를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씨가 정전 사태를 불렀다는 얘기다. 지경부는 다만 수요예측 실패와 예고 없이 전기공급을 끊은 데 대해선 최중경 장관이 서면으로 사과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과 사과는 피해자들의 분통만 사고 있다. 전형적인 책임회피형 논리인 탓이다.
이번 사태에서 전력수요 예측의 실패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위기 관리 능력의 총체적 부실이다. 먼저 직접적으로 전력 수급을 책임지는 한국전력과 5개 발전 자회사들, 전력거래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제한송전이 불가피할 경우를 대비해 만든 전력시장운영규칙은 물론 자체 ‘비상대응 매뉴얼’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미리 정전 시간 등을 알려줬더라면 시민들의 불편과 경제적 피해는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정부 관련 부처의 대처 방식도 안이하긴 마찬가지였다. 현행 전기사업법상 전력 수급 안정의 최종 책임자인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정전 사태가 발생한 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최 장관은 어제 국회에 출석해 “전력 수급 상황이 급변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는데, 이는 스스로 무능과 안이한 대응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력거래소 자료를 보면, 예상치를 벗어난 전력수요 증가로 전력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지난 13일부터다. 주무부처 장관의 늑장 파악과 대응 때문에 행정안전부나 경찰, 재난 주관방송사인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체제도 전혀 가동하지 않았다. 위기관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청와대는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에 대한 논평도 없이 ‘나 몰라라’로 일관하고 있다.
전기와 같은 필수 공공재의 공급 차질은 국가비상사태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응분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전 사태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도 중장기 전력 수급의 안정을 꾀하고 이런 일의 재발을 막는 첫걸음이다.

국가정보원의 지메일 감청 충격적이다

이글은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포럼 “진실과 정의”, 한국진보연대] '의 성명서 입니다.
▲ 지난 3월 29일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개최한 기자회견 장면 ⓒ 추광규


[공동논평] 
국가정보원의 지메일 감청 충격적이다
- 헌법재판소는 위헌적 패킷감청 중단시켜야


지난 3월 29일 국가정보원이 행해온 '패킷감청'에 대하여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다. 패킷 감청은 인터넷 전용회선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청하는 기법이며 그 포괄성으로 인하여 특히 인권침해적이다. 우리 단체들은 패킷 감청을 반대하며 이번 헌법소원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 왔다.

그런데 얼마전 헌법소원 청구인측에 도달된 국정원의 답변서는 참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널리 사용되고 있는 외국계 이메일인 지메일(@gmail.com)에 대하여 국정원이 그동안 패킷감청 방식으로 감청해 왔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감청을 계속하기 위하여 패킷감청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위 답변서에서 "[감청 대상자들이] 우리나라의 수사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계 이메일(Gmail, Hotmail)이나 비밀 게시판 등을 사용하는 등 소위 '사이버 망명'을 조직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메신저나 블로그·미니홈피 등을 이용한 전기통신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포워딩 방식에 의한 감청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도 인터넷회선 감청은 불가피합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국정원은 헌법소원에 이르게 된 이번 패킷 감청에 대해서도 이러한 취지로 감청 영장을 청구하였고 법원 역시 같은 취지로 패킷 감청을 허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패킷감청에 대한 허가는 국정원에 '포괄적 백지 영장'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유비쿼터스의 시대에 누군가의 인터넷을 감청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패킷 감청은 다른 감청과 달리 피의자와 대상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회선을 여러 사람이나 여러 대의 컴퓨터가 공유하는 현재의 인터넷 환경 하에서, 밖에서 감청하는 입장에서는 현재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는 사람이 피의자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패킷감청을 통한 자료가 공개재판에서 피의자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나 수사자료로서 제출된 바도 거의 없다. 결국 정보수사기관이 패킷감청을 하는 것은 범죄수사를 위한 증거수집이 아니라 사찰과 감시를 위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정원의 감청 그 자체도 문제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식 집계에서도 국정원은 대한민국 전체 감청의 97%에 달하는 압도적 감청을 집행하고 있다. 국가정보원법상 국정원의 국내 범죄 수사가 제한받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보수사기관의 특성상 국정원의 무영장 감청이나 감청설비 등 많은 실태가 비밀에 쌓여 있다. 최소 2000년대 초반부터 실시되었다고 전해지는 국정원의 패킷감청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도 2009년이 되어서였다. 우리는 아직도 패킷 감청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다. 감청 기관의 감청이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는지 국회도, 법원도, 이 나라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무소불위의 비밀 권력이 또 있겠는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패킷감청을 금지함이 마땅하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권력이 함부로 개인의 통신의 비밀을 이토록 마구 침해하는 일은 근절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2011년 9월 16일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포럼 “진실과 정의”, 한국진보연대]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여러분의 '안구 정화' 시간... 자, 보세요!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16자 기사 '여러분의 '안구 정화' 시간... 자, 보세요!'를 퍼왔습니다.
[내성천 살리기-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⑪] 소리를 들려드리지 못하지만...
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경북 봉화와 예천을 거쳐 흐르는 총 길이 100km가 넘는 강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의 중상류가 수몰돼 사라집니다. 또 하류로 운반되는 물과 모래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그동안 낙동강의 정화를 담당했던 필터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거대한 삽질에 의해 베이는 버드나무 군락, 파헤쳐지는 흰 모래 사장, 멸종 위기의 수달, 사라져가는 흰수마자….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주댐의 건설로 운포구곡을 비롯한 비경과 문화재, 농경지도 수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6~7일 사이 약 20명의 작가들은 낙동강의 젖줄 내성천으로 향했고, 삽질에 의해 찢기고 파괴된 강바닥을 다시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흐르는 내성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지금 내성천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 스스로 강이 되어, 모래의 강 내성천을 마침내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 경북 봉화 물야면 내성천 원류 오전천 ⓒ 이상엽
▲ 경북 봉화 물야면 물야 저수지 ⓒ 이상엽
▲ 경북 봉화군 물야면 ⓒ 이상엽
▲ 경북 봉화군 물야면 ⓒ 이상엽
▲ 경북 봉화군 봉화읍 ⓒ 이상엽
▲ 경북 봉화군 봉화읍 ⓒ 이상엽
▲ 경북 영주시 평은 ⓒ 이상엽
▲ 경북 영주시 금광 ⓒ 이상엽
▲ 경북 영주시 수도리 ⓒ 이상엽
▲ 경북 예천군 회룡포 ⓒ 이상엽

사진은 소리를 들려 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졸졸졸…
돌돌돌…
콸콸콸…
철철철…

언어로 상상하지 마시고 눈으로 상상해 보세요. 내성천의 소리가 들릴 겁니다.
관련기사 - 선글라스 낀 아저씨의 손짓, 열불이... - 사라지는 마을...세상은 이 안타까... - [시] 강의 복수 - 삼강주막에서 - 제주도 덮을 죽은 모래... 여기서... - [시] 냇물이 흐르는 쪽 - 등 가르고 넣은 인공뼈...엄마는 ... - [시] 아름다운가 - 미역 감겠다고 왔는데... 어, 또... - [동시] 밥 짓는 지율스님 - 땅 파면 돈 나오는 곳, 여기였네

덧붙이는 글 | * 이상엽 : 다큐멘터리 사진가. 진보신당 정책부의장, 프레시안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 들지만, 기실 홀로 오지를 떠도는 일을 좋아한다. , , , 등을 쓰고 , 등을 전시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inpho를 운영한다. 
* 내성천 한 평 사기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공식 홈페이지 : http://www.ntrust.or.kr/nsc 
내성천 지킴이들 카페 : http://cafe.daum.net/naeseongcheon 
내성천 답사를 원하는 단체는 위 카페를 참조해주세요.

[사설]무죄판결 받고 인사위 회부된 MBC PD수첩

이글은 경향신문 2011-09-15자 사설 '무죄판결 받고 인사위 회부된 MBC PD수첩'을 퍼왔습니다.
역사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은 탁견이다. MBC 광우병편을 두고 벌어졌고 또 진행 중인 공방을 보면서 갖는 소회가 그것이다. 광우병편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정공방은 비극에 해당한다. 2008년 4월 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과 수입협상의 문제점을 보도하자 6월 정부가 제작진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수사는 무리로 점철됐다. 애당초 명예훼손 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PD를 긴급 체포하고 MBC에 대해 압수수색을 시도했고, 작가의 개인 메일까지 공개했다. 이 와중에 국제 언론단체의 한국 언론자유 순위는 계속 추락했다. 이달 초 대법원은 제작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로써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후 희극적 반복이 펼쳐진다. 무죄판결에도 불구하고 MBC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간과했다”며 사과방송을 했고 신문에 대국민 사과문을 실었다. 판결 결과를 잘 모르는 사람은 의 유죄가 확정된 것으로 오해할 만했다. 이어 제작진이 인사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소문은 곧 사실로 판명났다. 엊그제 MBC는 제작진 5명에게 인사위에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징계사유는 회사명예 실추라고 한다. 어이없는 사과문과 소문이 바로 사실이 되는 MBC의 기막힌 현실은 헛웃음이 나오게 할 정도로 코미디를 닮았다. 만약 제작진의 징계가 현실화한다면 그것이 이 희극의 클라이맥스일 것이다.

사측의 무리한 징계 움직임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그것이 공영방송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같은 일을 멈추는 길이다. MBC의 징계 움직임은 자기 입을 자신이 막아버리는 것으로, 언론사 스스로 재갈을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정권·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는 언론의 주요 임무이며 이를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MBC는 황당한 사과문을 낸 것도 모자라 40개월 동안이나 고초를 겪은 제작진을 징계하려는 것인가. 대체 누구를 위해서인가. 그것은 올바른 방송의 길이 아니라 권력에 굴종하는 모습일 뿐이다. 을 사갈시하는 세력은 이들을 내란선동죄로 처벌하고 싶어했을지 모르지만 대법원이 내린 최종 판단은 무죄였다. MBC는 억지 징계에 그만 매달리고 방송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성찰하기 바란다.

[한겨레 프리즘] 언제까지 ‘슈퍼갑’일 텐가 / 김은형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13자 칼럼 '[한겨레 프리즘] 언제까지 ‘슈퍼갑’일 텐가 / 김은형'을 퍼왔습니다.

» 김은형 경제부 기자
2주 전 루이비통코리아로부터 인천공항 면세점 개장 관련 기자간담회 연락을 받았을 때 담당 기자 대부분의 반응은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이었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원자력 발전소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달력의 빨간 날에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게다가 이날은 1년 중 50번 있는 그냥 빨간 날이 아니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휴일이었다.
주최 쪽인 루이비통코리아는 “10일이 개장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간담회는 보통 개장 전날 이뤄진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인천공항 면세점( 1월21일치 15면 참조)인지라 언론에 공개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프랑스에서 날아오는 루이비통 대표와 본사 스태프들이 한국에서 하루나 이틀 더 시간을 낼 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주최 쪽의 말하지 못한 속내였을 게다.
고향 가는 열차표까지 취소하게 만든 루이비통의 일방적인 간담회 일정을 받으면서 “초대받은 게 굴욕” “진정한 슈퍼갑의 태도다” 농반 진반으로 가시돋친 반응이 오갔지만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특혜 수준의 낮은 수수료 혜택을 주면서도 ‘입점만 해주신다면’ 하고 두 손 모으는 백화점들이 수두룩하고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사겠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서는데 한국 시장에서 뭐가 아쉬워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행사를 준비하겠는가 말이다.


» 지난 10일 문을 연 루이비통 인천공항 면세점. 사진 루이비통 코리아 제공
지난 7월 런던 출장을 갔을 때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로 꼽히는 해러즈백화점을 잠시 들렀다. 아동복 코너만 해도 베이비 디오르, 베이비 펜디, 베이비 구치 등 명품 브랜드가 빼곡한 이 백화점의 명품 매장을 가 보니 너무 소박해서 놀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명품 브랜드 입점의 기본에 속하는 대형 단독매장도 드물뿐더러 ‘명품 가방’을 일개 ‘가방’으로 다루는 종업원이나 손님들의 태도도 한국 매장과 달랐다. 누구나 쉽게 들어보거나 만져볼 수 있고 내키지 않으면 전시대에 살짝 던져놓더라도 도드라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명품 매장에 들어가 제품 하나 구경할라치면 흰 장갑을 낀 종업원이 신줏단지 모시듯 제품을 ‘모셔와’ 보여주면서 사실상 손님들의 접근을 은근히 차단한다. 그 앞에서 제품에 핀잔이라도 줬다가는 불경죄에 해당할 것만 같다. 해묵은 문제임에도 결코 해결되지 않는 애프터서비스는 또 어떤가. 얼마 전 한 친구는 명품 브랜드에서 산 구두의 밑창이 닳아 해당 매장에 가져갔더니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수선이 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었다. 어이없는 대답에 친구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다시 물었다.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그냥 버리세요. 저희 브랜드 신는 분들은 원래 그렇게 하세요.”
구두창 좀 갈아달라고 했다가 지지리 궁상맞은 소비자로 찍힌 내 친구는 그 브랜드에 발을 끊었지만 그 브랜드의 한국 매출은 해마다 승승장구하기만 한다. 못 만지게 하고 고쳐주지 않고, 이런 ‘무시’ 전략이 한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희소성 가치’ 전략으로 바뀌어 소비자들을 점점 더 열광시킨다.
명품 소비가 이제 차별화를 넘어서 동조화 시대에 이르렀다고 한다.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명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명품 소비의 대중화를 가속한다는 것이다. 명품이 일상화된다는 현상 자체는 우려할 것도 자랑할 것도 못 된다. 다만 명품 소비가 흔해진다면 명품의 권위도 ‘갑’에서 소비자가 우위인 ‘을’로 바뀌는 게 정상인데 한국의 명품 브랜드들은 점점 더 ‘슈퍼갑’이 되간다. 누구를 탓할까.

[사설]수요예측 잘못해 사상 초유 정전 사태 빚다니


이글은 경향신문 2011-09-15자 사설 '수요예측 잘못해 사상 초유 정전 사태 빚다니'를 퍼왔습니다.
어제 오후 전국 곳곳에서 전기가 끊기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정전이 전국적으로 발생한 데다 사전에 아무런 예고가 없었던 탓에 시민들이 놀라고 큰 혼란이 빚어졌다. 도심 건물에서는 예고없는 정전으로 승강기가 멈춰 서고 업무가 마비됐는가 하면 일부 지역에서는 가로등 작동도 중단돼 교통혼잡을 빚기도 했다. 소규모 공단지역에 전기공급이 중단된 사례도 있어 적지 않은 피해가 우려된다. 정부는 전력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순환단전을 단행했다고 밝혔지만 이처럼 느닷없이 전국적으로 정전이 발생한 데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렵다.

지식경제부는 “일부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정비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전력소비 급증으로 순환단전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예비전력이 안정 유지수준인 400만㎾ 미만으로 떨어짐에 따라 1차로 전압조정과 자율절전 조치를 시행했으나 전력수요가 계속 늘어 지역별로 30분 단위로 전력공급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전력예비율은 한 시간여 만에 6.6%를 회복했지만 이날 순환정전은 저녁까지 계속됐다. 

전력예비율이 위험 수위 아래로 떨어지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형태로든 제한송전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도 사전 계획에 따라 예고가 이뤄진 다음 단행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어제의 경우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 전력당국의 수요예측 잘못 때문이다. 이례적인 남부내륙 지방의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했다지만 폭염은 며칠 전부터 예고됐다. 폭염이 예고없이 단행된 순환정전에 대한 면책사유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발전기 2기가 고장났고, 23기가 점검 중이었다”는 지경부의 설명을 감안하면 전력당국은 폭염 등 비상상황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고 예년과 마찬가지로 발전소 정비에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전력수요 예측이 크게 빗나가면서 비상상황을 맞은 탓에 사전예고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전력소비가 너무 가파르게 늘어 30분~1시간 전 예고조차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순환단전이 이뤄진 직후에라도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배경을 설명했더라면 혼란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정전 직후 한전의 지역본부에서조차 정전지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허둥댈 정도였다. 지경부의 공식 브리핑은 정전 발생 한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 이뤄졌다. 전력당국의 능력과 자세가 이런 수준이라면 국민이 어떻게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는가.

4대강 사업, 더 이상은 차기 정권에 넘겨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1-09-16자 기사 '4대강 사업, 더 이상은 차기 정권에 넘겨야'를 퍼왔습니다.
설마 했던 '2차 4대강 삽질'이 기어이 시작될 모양이다. 그야말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되는 것 같다. 지난 7일 광주(光州)에서 열린 지역 발전주간 개막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밝혔다. "지천 사업은 '돈 들여서라도' 내년에 해야 한다"며 "이번 예산에 넣겠다"했다. 이미 20조 원 쯤 소요된다고 이야기가 나왔던 4대강 지천 정비사업 이야기다.

MB는 이날 먼저 '4대강의 성공'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다음 달이면 새롭게 탄생한 4대강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지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그 동안에도 MB는 기회 있을 때마다 4대강 사업을 '대단한 계획'으로 자신 있게 소개했다.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물의 날 기념 축사에서는 "홍수를 근원적으로 막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출전을 앞둔 운동선수 같은 결의를 보였다.

2009년 9월 29일 UN총회에서도 그는 "4대강 사업은 반복적 재해 복구 사업에서 탈피해, 이수 ㆍ 치수 ㆍ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미래 대비 물 관리 사업"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훌륭한' 4대강 사업이 이제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에서, 한두 푼도 아닌 20조 원 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왜 또 쏟아 부어 지천 정비사업을 벌여야 하는지, MB는 광주에서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 날 MB는 '홍수예방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기만 한' 지금의 4대강 상태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지천 정비사업은 꼭 필요한 것으로 강조했다. 사실 자기들끼리는 벌써 그 이유를 다 알고 있었다. 국토해양부장관은 이달 초 당정협의에서 4대강 지천 정비가 필요하다며 '사업이 완벽히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예산편성 등에서 당의 협조를 요청했다. 한나라당 소속의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도 지난 달 30일 "정기국회 예산작업을 시작할 때 '국가의 재난대책수립차원에서' 지천 지류에 대한 예산을 세워야한다"고 말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미 수십조 원(정확히 얼마인지도 모른다)이나 들였는데도, 4대강 사업은 아직도 '마무리가 안 되고' 따라서 '재난 대책을 추가로 수립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홍수 등 재난을 근원적으로 막고', '미래를 대비하는 물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20조 원을 더 들여서라도 지천을 정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4대강 사업은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사업'이라는 이야기다 '복지 포퓰리즘 망국론'을 외치면서까지 다른 데 쓸 돈 못 쓰게 하고, 국민들 허리띠 졸라매며 세금 '쏟아 부은 게 4대강 사업이고 MB정권이었다. 그 사업이 실패했다는 소리다.

결론적으로 4대강 사업은 국민들 혈세 쥐어짜다가 헛돈질 한 '강 파괴사업'이 되었다. 일부 부동산에서 덕 본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아무리 따져 봐도 자전거길 정도 빼 놓고는 그 사업 통해 이뤄낸 게 없다. 국가 경제적으로도 손실이라는 결론은 이미 나 있다. 오히려 강 철저히 할퀴면서, 다리 무너지고 둑 허물어지는 사고만 불렀다. 기약도 없이 계속해 수습비용만 들어가는, '안 했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그것을 이번에 MB가 사실상 자기 입으로 실토한 셈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래놓고도 MB는 광주에서 "서울에서 낙동강까지 푸른 강을 따라 달리는 1600km자전거길은 세계인이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물론 4대강 사업은 자전거길 내는관광사업이 아니었다. 자전거길 내기위해 그 많은 돈 퍼부은 사업이 아니었다. '빚내 굿판 벌였더니 맏며느리 춤춘다'는 속담이 있다. 빚 얻어 굿하는 안타까운 사정도 잊은 채 춤이나 추는 철없는 맏며느리를 탓하는 말이다. MB는 다음 달 '4대강 준공행사'에서 실제로 그렇게 '맏며느리처럼' 춤을 출 지도 모른다.

배를 띄우겠다는 일념으로 수심 6m 만들기 위해 보를 세우고, 계속해서 끝도 없이 강바닥 긁어내는 시스템이 구축된 게 지금의 4대강 사업이다. 때문에 MB측은 4대강 본류의 모래를 긁어낸 강바닥에 또 지천의 모래가 흘러와 쌓여, 물 깊이가 얕아지는 것을 원천봉쇄함으로써, 어떻게 해서든지 수심 6m의 뱃길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지천이 4대강 본류와 만나는 지점과, 지천의 중간 중간에 소규모 보를 건설해, 더 이상 본류로 모래가 흘러드는 것을 차단하는 게 MB정권이 구상하는 지천 정비사업의 주된 개념인 것으로 알려졌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당초 4대강 본류보다 지천의 정비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홍수는 4대강 본류보다 지천에서 주로 일어나고 있으므로, 지천의 홍수를다스리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 지천에 저류지와 습지 등을 만들어 물의 흐름을 조절 ㆍ 순화시키고, 제방보강 등을 통해 물난리를 막는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본류공사가 먼저라며 삽질을 강행했다. 지천에는 배를 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본류 공사만 하면 홍수 예방이니 뭐니 다 될 듯이 말하던 정부가 이제 지천 정비사업의 목적을 뭐라 둘러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짚어야 할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부가 추진코자 하는 지천 정비사업에는 물론 홍수예방의 목적도 있다. 허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4대강 사업의 실패'를 은폐해 보려는 속셈이다. 실패를 서둘러 뒷수습함으로써 뒤틀려 있는 사태를 합리화 해 보려는 미봉책이다.

"속셈이야 어찌 됐건 홍수예방도 목적이라면 지천정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 할 수도 있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나 할 건 해야 한다 치더라도 거기에는 방법이 있고 거쳐야 할 순서가 있다. 목적에 따라 사업내용과 추진기간과 결과물에서 엄청난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MB는 마음이 급하다. "내년에 해야 한다"고 했다. 임기 내에 예산을 들여 빨리 끝내겠다는 이야기다. 사태를 호도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결과물이다. MB가 아무리 사태가 급하다 해도 결과물 때문에라도 이번만큼은 참아줘야 한다. 급한 마음에 그렇게 사업을 졸속으로 계획하고 허겁지겁 추진한다면, 엉망이 된 부실 결과물이 또 우리 앞에 나타날 게 틀림없다. MB에게는 더구나, 어처구니없게도 예비 타당성 조사조차도 거치지 않은 채 서둘러 사업을 시작했다가, 이 모양 이 꼴의 4대강 사업을 만들어낸 '전과'까지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같은 '상습 일탈' 행위를 이번에도 국민들이 용납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선 4대강으로 흘러드는 수많은 지천마다에는 수원(水源)의 사정이 다르고 수량이 다르고 유역의 사정이 다른, 나름대로의 특성이 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 개개의 지천을 놓고 치밀한 현장조사와 다음 세대까지를 염두 에 두는 신중한 고민과 토론과 연구가 사전에 이어져야 한다. 주민과 생태학자와 건설관계자와 공무원 등이 모두 시간을 갖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적어도 그것은 자연에 손을 대고자 할 때 인간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그것을 MB는 1년 안에 끝내겠다는 '천만의 말씀'을 하고 있다. 공무원들과 '특별히 선발된' 몇몇 삽질 업자들이 모여서 군대 줄 세우 듯 단일 모델의 정비계획 만들고, 조립주택 짜 맞추듯이 뚝딱 해치울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될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큰 비가 내렸을 때, 경기도 파주에서는 특별 배정 예산을 들인 설마천의 정비사업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설마천은 범람했다.

엉뚱한 곳에서 그랬다. 범람 위험이 있다고 보고 정비 중이던 지역보다 훨씬 상류에서 하천물이 둑을 넘었다. 말하자면 거의 헛 군데에 헛 돈 쓴, 헛 삽질을 한 것이었다. 충분한 사전조사나 연구 ㆍ 고민 ㆍ 논의 없이 일을 벌인다면, MB의 지천정비도 헛 돈 들이는 헛 삽질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걸 1년 안에 해치우겠다는 '어림없는' 생각은 일찌감치 거둬들이는 게 도리다. 게다가 20조 원은 나라의 재정건전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요즘, 보통 큰 돈인가. 5000만 국민이 1인당 40만 원씩, 5인 가족이 200만 원씩 부담해야 하는 엄청난 액수다.

이런 게 다 4대강사업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연쇄적으로 잘못 빚어지는 사태다. 2중으로 떼돈만 쏟아 부어야 하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세계적인 하천학자인 독일의 베른하르트교수는 독일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에 손을 대는 일에는 "한 번 미친 짓 하면 계속 미친 짓 하게 된다"고 했다.

4대강을 놓고 볼 때 지금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배 띄울 생각 포기하고 강을 원상회복 시키는 것이다. MB가 그런 선택을 할 리도 없지만, 설사 그런 선택을 한다 치더라도, 그가 손을 대게 해서는 안 된다. 원상회복이건 지천정비건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게 순리다. MB가 서툰 삽질로 더 이상 이 나라 이 땅을 헤집게 해서는 안 된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초유의 '블랙 아웃', 진짜 공포는 겨울이다"


이글은 프레시안의  2011-09-16자 기사 '"초유의 '블랙 아웃', 진짜 공포는 겨울이다"'를 퍼왔습니다.
[우석훈 칼럼] 국가 경영을 '곗돈 모임'으로 아는 MB정부
15일, 한국은 블랙아웃 직전까지 갔다. 전기 용어인 블랙아웃(Blackout)은 보통 특정 지역이 모두 정전된 경우를 일컫는다. 지난 6월 기고(☞바로 가기)를 통해 블랙아웃의 위험을 지적했던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이 긴급 기고를 했다. 한국서부발전 사외이사를 지낸 경제학자인 그는 전력 가격 관리 실패로 인한 수요 급증, 급증한 재개발 사업을 통해 지어진 건물들이 자연환기가 아닌 강제환기를 하도록 설계돼 있는 점 등을 대규모 정전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런 이유들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은 블랙아웃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다.

지난해 8월 17일 오후 4시 8분, GS 칼텍스, 제일모직 등이 모여 있는 여수산업단지에 20분간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그날 오후가 전기 사용량이 피크로 가면서 뭔 일이 터져도 터질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여수공단으로 가는 송전로에서 사고가 벌어졌다. 물론 한전에서는 사고였다고 해명을 했는데, 마침 그날 저녁 한전이 전기를 꺼야 하면 어디를 끌까, 울산, 포항? 울산에는 정몽준이 있고, 포항은 형님이 계시는데, 같은 포스코 내에 있는 광양도 손대기 어려울 거고, 여수 정도 끄지 않겠나, 그런 얘기들을 주변 사람들하고 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 전기체계는 원거리 송전에 의한 통합 그리드(grid) 체계라는 걸로 움직인다. 전기 공급은 5개 발전사들이 각각 맡지만, 그걸 한전에서 하나의 망으로 송배전하고, 그때그때 생산된 전기를 전력거래소에서 구매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부산 고리 1호기라는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가 부산만 가는 게 아니라 압구정으로 갈 수도 있다. 이런 중앙형 그리드의 반대는 분산형 그리드이다. 통합하면 전국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어서 편하기는 한데, 시스템상 전력이 부족해지면 이론적으로는 전국이 동시에 정전이 될 수도 있다. 위험을 분산시킬 수가 없어서, 시스템 전체가 과부하라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게 이 시스템의 특징이다. 화력발전소 큰 곳 하나가 갑자기 사고가 생기면 그 부족분을 다른 발전소가 추가생산하기 위해서 가동률을 높이는데, 그러다 보면 노후 설비에 과부하가 걸리게 되기도 하는 등 위험요소가 급격히 증가해서 순차적으로 전국이 모두 정전이 될 수도 있다. LA 등 지역차원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고 그걸 '블랙아웃'이라고 부른다.

평상시에는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 시에는 인위적으로 시스템에 개입해서 어딘가로 가는 전기를 차단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는 정치와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것만큼 정치적인 영역도 없다. 만약 이번 보궐선거에서 손학규가 분당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이 유력한 집권세력으로 부각되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순환정전 대신, 광주나 전주의 어떤 지방 공단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전이 벌어지고, 대신 일반인들이 전기 공급이 제한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은 누군가의 전기 사용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는데, 어디를 먼저 끌 거냐? 이거야말로 지독하게 정치적인 결정 아닌가? 지난해에는 우연히도 사고가 나주었는데, 오늘은 사고 난 데가 없다. 그러니까 그럼 공평하게 지역별로 30분씩 끊자,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 아닌가?

블랙아웃은 원래는 전기 민영화와 함께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민간 발전회사는 진짜로 수익 논리에 따라 움직이니까 낙후 지역에 배전 관계에 대한 유지보수를 게을리하게 되고, 이럴 때 낙진이나 산불 같은 사고가 일어나면 통합 그리드 전체가 위험해지게 된다.

한전 민영화는 이번 정권에서 공약으로 가지고 있던 '선진화' 프로그램의 일부였지만, 한국의 전기체계는 전국이 통합망이라서 도저히 민간에서 관리할 수가 없다. 그럼 발전부문만이라도? 일년에 몇 번씩 위기관리 상황에서는 전국의 모든 발전소가 하나의 통합 시스템에서 최대치를 발휘해야 겨우겨우 넘어가는 건데, 민간 회사가 무슨 수로 통합 시스템에서 같이 연동되겠는가? 민영화 논리는 한국 시스템의 특수성 앞에서 나올 수가 없는 얘기인데, 그 사람들이 상황을 애초에 잘 몰랐다. 정권 잡자마자 민영화 얘기는 쏙 들어갔다.

민영화 방침 철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나는 다시 블랙아웃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공기업과 관련한 실패는, 시장의 실패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직의 실패라는 게 있는데, 1990년대 민영화 논의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된 이유 자체가 바로 조직의 실패이다. 바로 이 문제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해서, 블랙아웃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 정권이나 인사에 문제가 있기는 하고, 자기 측근들이나 신세진 사람들 그 자리에 앉히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전두환 때 등 군화, YS 때 등산화, DJ 때 지팡이, 다 이런 낙하산 인사들을 지칭하는 말들이었다.

그렇긴 한데, 이번 정권은 진짜 이게 국가냐 싶을 정도로 국가의 사유화 정도가 심했다. 현장에서 나오는 불평들은 걸러서 듣는다고 할지라도 최근에는 한나라당 일각에서 마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기관장 인사가 그렇게 비논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관리자에 해당하는 1급 처장들만이 아니라 2, 3급의 중간간부들까지도 줄 서기를 해야 한다. 요즘 한전은 엔지니어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라, 공천 직전 어떻게든 줄을 대야 하는 여의도 풍속도랑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여기에 에너지 특히 전기가 가지는 특수한 속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청와대에도 없고, 담당 장관은 최중경 아닌가? 도대체 외화 관리 실패로 수조 원을 날려먹은 이유로 필리핀대사관으로 쫓겨났던 사람이 무슨 수로 이 중차대한 시점에 한전 관리감독을 하겠는가? 공교롭게도 최중경이 승진할 때마다 우리는 IMF 경제위기를 맞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이제 지식경제부 장관? 전국적 정전 사태가 오게 된 거다.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지난 수년간 누적된 문제들이 있다. 통합 그리드로 운영을 하면, 그만큼 수요관리를 강화해서 수요 측 요소들을 관리해야 시스템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두 가지 문제에서 정부는 거꾸로 갔다.

첫 번째가, 가격 관리의 실패이다. 고유가 등 전기값 상승 요소는 많았는데, 이자율 대신 힘으로 인플레를 막는다는 이상한 정책을 하면서 전기값을 올리는 대신 손실금을 직접 보존해주었다. 전기값이 조금씩이라도 조정이 되어야 민간 부문에서 절전 등 기본적인 수요관리 메커니즘이 움직이는데, 이걸 힘으로 누르다 보니 오히려 산업부문에서조차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 에너지로 다른 에너지를 대체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당연하지, 상대적으로는 그게 더 싸니까. 이런 전력 수요의 증가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그래도 청와대 등 정부에서는 이걸 즐긴 게, 이렇게 수요 증가가 강하다고 해야 힘으로 원자력을 새로 증설할 수 있으니까, 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꽃놀이패라고 이 상황을 즐겼다.

두 번째는, 토건적 요소인데, 재개발과 관련되어 있다. 지난 정권부터 재개발을 강화시키면서 주상복합 등 고층 아파트로 민간 부문의 신규 공급분을 채우는 게 유행이 되었다. 이 건물들은 자연환기 대신 강제환기 즉 기본적으로는 전기로 실내 온도만이 아니라 공기질을 조절하는 방식들을 택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창문은 못 열게 하고, 그 안에서 에어컨디셔닝을 하는 거다. 40평 기준으로, 전기세 백만원 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해야 아파트 가격이 높아진다는 건데, 집집마다 100만원 이상씩 전기를 쓰는 현 상황을 무슨 수로 한전에서 감당할 수 있나? 이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건물들은 최근 여름과 겨울에 오는 피크 값이 없이 사철 내내 일정하게 높은 수준의 소비를 보여준다. 재건축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전의 위험성은 더 커진다. 친환경 아파트, 이런 건 그냥 하는 말이고, 한국의 고층 아파트는 생태적으로 과부하를 주는 아파트이다.

최근에 일반 업자들이 전기 대신에 도시 가스를 사용해서 에어컨을 돌리는 시설들을 새 아파트에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이건 전기 대책이 아니라 입주민들이 전기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서 그렇다. 작년부터 아파트 가격이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재건축이 활성화가 안되었다.

그래서 이 정도로 지금 버티는 거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재건축이 활발해지고, 지금의 아파트들이 모두 고층 아파트로 바뀌면 진짜 한국의 전력 공급은 답 없다. 매월 원전을 하나씩 건설하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을 못할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문제는 한전은 커녕 지경부가 직접 나서서 조율한다고 해도, 청와대의 토건쟁이들 앞에서는 하나마나한 얘기가 된다.

그나마 대체에너지로 분산형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보완적으로 추진한다면 상황이 최악은 피할 수 있는데, 말만 녹색성장이지, 이 분야에서 현 정부가 한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것 아닌가? 땅 생기면 아파트 지어야지, 거기에 무슨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게 들어가겠냐?

외부 에너지를 공급받지 않는 '패시브 하우스' 논의가 외국에는 있지만, 강제 공조를 기본적으로 하는 주상복합형 아파트에서 그런 건 아예 적용할 수가 없다. "손수건만 사용해도 지구를 지킨다"가 한나라당 환경 보호 수준이니, 고층 아파트의 건물 공조와 에너지의 문제, 그런 건 의제로도 올라와보지 못했다. 기후변화협약 대응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본질이 화석에너지 감축을 통한 에너지 정책인 것 같지만, 거기에서 얘기하는 배출권 거래제는 공무원 영역 다툼이 진짜 본질이다.

이렇게 몇 년을 오다 보니, 이제 한국의 전기 시스템은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지경이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수요관리 없이, 공급이 급진적으로 늘어날 요소만 잔뜩 있는 셈이다. '핵 마피아'는 이 상황을 즐겼는데, 이 정도면 원전으로도 감당 안 된다.


▲ ⓒ뉴시스
자, 기본은 이렇고. 여름철 피크는 지난 9월에 일이 터졌으니, 올 겨울은 어떻게 넘어갈까? 아마 그들도 올 겨울에 잘못하면 블랙아웃이 올 거고, 그 때 일 터지면 정권 위기가 될 테니, 절대로 그런 일 없어야 한다고 일제 점검을 철저하게 한다고 한 건데, 사고는 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오는 법. 위기관리 매뉴얼에 있는 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분산형 시스템의 강화, 대체 에너지 강화, 에너지 가격체계 전환, 민간 및 산업부문 수요관리 장기계획 수립, 이런 건 다음 정권에서 할 일이다. 현 정권은 워낙 토건이 강하고,건설사 영업만 알았지, 전기, 가스, 수도, 홍수예방 – 여기에 눈 치우기까지 – 이런 정부가 국민들에게 기본적으로 해야 할 공공 서비스에 대해서는 아예 마인드가 없는 사람들이라서 아파트 공급을 위한 획기적 대책, 이런 걸 할지 몰라도 진짜 국가의 인프라 관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당장 지식경제부 장관부터 발전회사 사장들까지, 국가를 자기 친구들 곗돈 모임으로 전락시켜 버린, 국가 기구의 사유화 현장을 좀 보시라. 여기에 에너지 수요관리를 맡고 있는 에너지관리공단의 지난 달의 이사장 선임까지. 전두환 시절에 그가 내려 보낸 장군들은 무능했을지는 몰라도 국가를 위해서 중책을 맡고 있는 사명감이라도 있었다.

산업 부문의 정전은 기계적으로 얘기하면 돈이 크더라도 보상은 가능하다. 그러나 민간 부문은 다르다. 예비발전 체계가 갖추어진 건물들이 많아서 미리 알려주기만 하면 문제를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는데, "누가 책임질 거냐?",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해서 무통보 단전을 감행한 것 아닌가? 병원에 응급환자가 있다고 하면, 이걸 살인행위에 준하는 짓을 한 거다. 단기적으로는 불랙아웃을 막기 위해서 제한 송전을 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게 그냥 아무 데나 자기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마구잡이 단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진짜 문제라고 보는 건, 수요예측의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에 따른 긴급 대응, 즉 경영행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어제 저녁에라도 다음 날 수요 급증이 예상되면, 9시 뉴스에 앵커에게 부탁해서 "끌 수 있는 에어컨은 내일 좀 끄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마디만 했어도 오늘 같은 일은 피해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 정도의 자발적 협조도 거부할 정도로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력거래소에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한전? 지금 사장도 공백상태이고, 있었어도 이런 긴급 사태에서 그들이 뭘 하기는 어렵다. 최대 주주이자 사실상 지배주주인 정부에서 넋 놓고 수년째 전력 정책을 방치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어떠한 경영행위도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전날 국민들에게 협조 요청하고, 당일 날, 예를 들면 한 시간 전이라도 정전 구역을 알려주면 최소한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갇히는 이런 난리는 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전, 단수, 가스공급 중단, 도시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어떤 정부도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안전 공급을 장담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정전 조치를 내리면서, 어디에서 언제, 그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차별적으로 당하는 이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가? 통보도 없이 그런 정책을 집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제 정신인가? 한전의 실실적 경영권자는 최정경 장관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통령 친구들과 보은 인사로 장수들의 자리를 채운 건, 청와대의 인사라인 아닌가?

나는 최중경 장관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이 상황은 올 겨울에도 또 겪게 될 일이고, 멀게 보면 내년 여름에도 다시 겪게 될 일이다. 그 기간 동안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발전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기술적 대안도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번 정권에서 전력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적 블랙아웃, 요즘 한전 표현대로 하면 '광역 정전'이 벌어지지 않게, 어렵지만 비상 관리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최중경 실력으로는 그 최대 악몽이 현실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고층 아파트에 안 살고, 어쩔 수 없이 살게 되었을 때에는 저층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에너지 밥' 먹은 게 이래저래 합치면 10년이 넘는다.앞으로 점점 더 한국도 블랙아웃의 현실화 쪽으로 가게 된다는 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장기 전망이다. 전기가 없다면! 이 공포가 점차적으로 일상의 현실이 될텐데, MB 정부와 함께 그게 너무 빨리 구현이 되었다. 어쩔 수 있는가? 그런 자들에게 국정을 우리가 맡겨놓았으니 말이다.

▲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뉴시스
내가 권고할 수 있는 건, 일단 최중경 장관이 물러나고, 엉망진창이 된 한전 그룹의 고위층 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청와대 인사라인을 경질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바로 시민 한 명 한 명의 삶이 걸린 전기공급 체계를 자기 친구들 복덕방처럼 만든 장본인이 아닌가?

민영화, 원전 추가 증설, 고층 아파트를 통한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 증대, 이렇게 한나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던 전력부문 대책을 고장난 축음기처럼 외치고 있어서는 올 겨울,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여름에 더운 거야 참으면 된다고 하지만, 겨울에는 무슨 수로 버틸 거냐? 그렇다고 작년 여름에 그랬던 것처럼 피크 타임에 운 좋게 여수 공단 같은 데서 갑자기 사고가 나는 요행수를 바라면서, 올 겨울을 그렇게 나기가 어렵다.

현 정부는 전력수급에서 장기대책, 단기대책, 다 틀렸다. 그렇게 만든 사람들은 일단 물러나고, 지금부터라도 고유가 시대, 에너지 고비용 시대에 적합한 장기계획으로 전환과 단기 대응체계를 같이 운용해야 한다. 최중경 솜씨로는, 그리고 현 발전사와 유관기관 체계로는 올 겨울 못 넘어간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 겨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언제든지 1주일씩 가는 장기 광역정전에 노출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최중경 장관에게 맡겨놓고 밤에 잠을 청하라는 말인가?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공급부족에 의한 정전 사태, 이건 인재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최소한 관리체계의 전환이라도 해야 한다. 한국에서 1주일 전기공급이 중단되면, 반도체 등 한국 경제를 버텨온 중추산업도 버틸 거라고 보장할 수 없다. 잠깐이 단전이었으니, 별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한전의 발표, 그 정도로 정책당국이 생각하고 있다는 게 더 무섭다.

자 물러날 사람들은 물러나고, 상황의 시급성에 비추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재점검하지 않으면, 올 겨울은 일상이 공포가 된다.

"일단 장관부터 물러나시고… "

내가 해줄 수 있는 한 마디는 그거다.

전기 공공성, MB 정부는 여기에서 실패한 거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물러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니 장관이라도 물러나고, 정책 기조에 전반적인 전환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안 그러면, 올 겨울에도 또 그냥 한전에서 아무 데나 차단 스위치 내리게 된다. 마지막 오퍼레이터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문제지.


/우석훈 2.1연구소 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MB는 뼛속까지 친미·친일"... 치욕스럽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14자 기사 ' "MB는 뼛속까지 친미·친일"... 치욕스럽다'를 퍼왔습니다.
[정운현의 역사 에세이14]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춘원과 그 아류들
근 한 주일째 제 머릿속에 뱅뱅 돌면서 좀체 사라지지 않는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던지고 있는 내부고발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건 가운데 하나인데요. 구체적으로는 지난 2008년 5월 29일치 주한 미국대사관의 외교 전문(電文)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지난 9월 7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당시 국회부의장)은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대화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원문은 Vice Speaker Lee said that President Lee was pro-U.S. and pro-Japan to the core so there should be no questioning President Lee's vision.)

이명박 대통령의 '친미·친일' 성향에 대해서는 그간 몇 차례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 대통령의 출생지(일본 오사카)와 에 실려 논란이 됐던 독도 관련 발언 등이 '친일' 관련이라면 '친미'는 이보다 한 단계 위인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미국 외교관들이 이 대통령을 두고 "우리(미국)와 함께 헌신적으로 일하는 강한 친미주의자"(2009년 9월24일치), "사실상 모든 주요 문제에 미국을 지원하는 성향"(2009년 11월 5일치)을 지녔다고 평가했겠습니까? 

며칠째 제 입안에서 뱅뱅 돌며 저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이상득 의원이 버시바우 대사에게 했다는 말 가운데 '뼛속까지'라고 한 단어였습니다. 천추에 사무친 원한도 아닌데 '뼛속까지'라니! 혹 번역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원문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to the core'로 나와 있더군요. 인터넷 사전에 이를 검색해보니 '속속들이' 혹은 '철저히'로 나와 있었는데, 이 정도라면 '뼛속까지'로 번역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8년 4월 21일 일왕을 만나 깍듯하게 인사하는 장면이 포착된 뉴스 화면 ⓒ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상득 의원은 '일개 한나라당 의원'이 아닙니다. 이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이자 발언 당시 그는 국회부의장이었으며, 대화 상대자는 주한 미국대사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 대통령의 성향이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 대통령과 관련한 이 의원의 발언은 누구보다도 신뢰할 만하며 또 주한미국 대사가 거짓말을 본국에 보고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말에서 '뼛속까지'라는 표현은 흔히 골수에 박힐 정도로 심신에 깊이 각인된 상태를 일컫습니다. 즉, 목숨을 걸고 갚아야 할 만큼 깊게 사무친 원한이나 혹은 특정 이념이나 사상으로 무장된 '주의자(主義者)'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제 경험으로 봐온 역사인물 가운데는 골수 친일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더러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고자 한 자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 몇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친일파 제1호' 김인승

'운양호 사건'이 발생한 지 6개월 뒤인 1876년 2월 4일. 강화도 초지진 앞 바다에 일본 군함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월 6일 일본 시나가와만을 출발해 부산을 거쳐 이곳에 도착한 이 군함에는 구로다 일행이 타고 있었습니다. 구로다는 운양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제로 수호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온 일본정부의 특사였습니다. 구로다 일행이 타고 온 군함에는 일본인 복장을 한 조선인이 한 명 끼여 있었는데 그는 김인승(金麟昇)으로 명분상으로는 구로다 일행의 '통역'이었습니다.

친일파연구가 임종국은 이 김인승을 '친일파 제1호'로 지목한 바 있는데, 그는 구한말 조선의 관리 출신이었습니다. 모종의 사건으로 조선을 떠나 러시아 니콜리스크로 건너간 그는 그곳에서 조선인 유민들의 자제를 가르치다가 일본인 첩자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일제의 앞잡이가 된 자였습니다.

김인승은 일본 외무성에 외국인 고문(顧問)으로 채용돼 '조선전도'를 그려 바치는 등 일제의 조선 염탐에 적극 협력하였는데, 그가 일본정부에 결정인 기여를 한 것은 구로다 일행을 도와 '강화도조약' 체결 과정에 협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약 체결을 위해 조선행을 앞두고 구로다가 김인승에게 동행을 요구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번 수행에서도 만약 머리를 깎지 않고 의복을 바꾸지 않으면 이는 제가 조선인을 자처하는 일이며, 일본인의 입장에서 처하는 것이 아니니 어찌 황국의 신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 끓는 물, 타는 불 속이라도 어찌 고사하겠습니까?"

김인승은 '일본인의 입장'에 처하기 위해, 즉 일본인이 되기 위해 '끓는 물, 타는 불 속'이라도 나서서 따르겠다고 구로다에게 맹세하였습니다. 그 무렵 김인승은 이미 골수 친일파가 돼 있었던 것입니다. 약속대로 김인승은 구로다의 통역 신분으로 동행하였고, 구로다가 조선측과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군함에 머물면서 배후에서 '강화도조약' 체결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 후 그는 용도폐기 돼 러시아로 되돌아가면서 편지 한 통을 남겼는데, 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거리에서 듣기 불편한 말들이 들리고 길을 걸으면 조심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역사 속에서 '친일파 제1호'라는 오명을 얻은 그가 배족(背族)의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것은 멸시와 증오뿐이었습니다.
  
'창씨개명' 앞장선 친일파 춘원 이광수

1931년 만주사변에 이어 일제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켜 본격적으로 대륙침략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제는 중일전쟁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조달 기지로 조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일제는 조선민족 말살정책을 펴기 시작했는데, 주도자는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였습니다.

중일전쟁 발발 다음달인 그해 8월부터 미나미는 '내선일체'라는 미명 하에 신사참배, 일장기 게양, 기미가요 봉창, 동방요배 등 소위 황국신민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후 10월에는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정했으며, 12월에는 각급 학교에 일황의 사진을 배포해 경배케 하였습니다. 이듬해 1월 육군특별지원령 공포를 시작으로 5월에는 조선 전역에 국가총동원법을 적용했으며, 6월에는 근로보국대 조직을, 7월에는 전국 규모의 전시동원단체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창립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그해 4월에는 조선어 사용금지를 골자로 한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였는데, 그간의  모든 작업은 결국 '창씨개명'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기초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씨개명 작업은 단순히 조선인들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차원을 넘어 종국적으로는 징병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총독부는 일본군 가운데 이아무개, 김아무개 등의 조선인 이름으로 불리는 병사가 섞여 있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 창씨개명 '나팔수' 춘원 이광수 이광수의 창씨개명 결의를 보도한 <경성일보> 기사(1939. 12. 12) ⓒ 자료사진
그러나 창씨개명에 대한 조선인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1940년 2월 11일부터 창씨개명을 시행하였는데, 3월까지는 1.07%, 5월20일에 이르러서도 7.6%에 그쳤습니다. 결국 총독부는 관변조직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밀어붙이는 한편 친일파들을 앞세워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습니다. 
이때 가장 전면에서 창씨개명을 홍보한 친일인사는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한 춘원 이광수(李光洙)였습니다. 그는 창씨개명 시행 그 다음날로 창씨계(屆)를 접수하고는 신문에 이를 권유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일본제국의 신민이다. 지나인(중국인)과 혼동될 성명을 가지는 것보다 일본인과 혼동될 씨명을 가지는 것이 보다 자연스런 것이라고 믿는다.( 1940.2.20) … 나는 지금에 와서 이런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연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 이 속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 ( 1940.9.4.)"

이광수는 창씨개명을 통해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며 일제가 바랐던 그 이상의 강도로 친일화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심지어 그는 "조선놈의 이마빡을 바늘로 찔러서 일본인 피가 나올 만큼 조선인은 일본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춘원을 두고 어떤 이는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친일을 했을 뿐 심저에는 독립정신이 살아 있었다"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꿈보다 해몽이 더 놀랍습니다.

'조선어 전폐론'을 주장한 친일파 현영섭

민족을 규정하는 3대 요인으로 흔히 말과 글, 역사를 듭니다. 즉 이 셋을 가진 민족이라야 제대로 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총독부는 일제말기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또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우리 역사를 왜곡했습니다. 일제는 조선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이를 추진했으며 이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총독부 관료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헌(玄櫶)의 아들로 나중에 친일파가 된 현영섭(玄永燮, 창씨명 天野道夫)이라는 자가 있었습니다. 젊어서 사회주의에 빠져 있던 그는 일본 체류 당시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잠시 옥살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로선 중대 시국사범인 그는 얼마 뒤 무죄로 풀려나서는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돌연 극렬 친일파로 변신했습니다. 그 무렵 그가 주장한 것은 놀랍게도 '조선어 전폐론'이었습니다. 그는 일어로 쓴 자신의 저서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조선어를 존속하도록 허용하는 한 조선인적인 사상경향도 존속한다. 우선 조선어를 폐지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어를 폐지하라. 일본어로 사물을 생각하도록 노력을 시키라. 조선인은 조선어를 망각해야 한다. 조선인이 일본어로 사물을 생각할 때야말로 조선인이 가장 행복해졌을 때이다.…  조선인이 정말로 일본인이 되려 한다면 우선 조선어부터 망각해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 현영섭의 저서 ⓒ 자료사진
총독부 관료나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이 주장하는 '조선어 전폐론'이라니. 그는 '조선적인' 것에 애착을 갖는 민족주의자들을 페스트에 비유하며 "자살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그는 조선총독부로 미나미 총독을 찾아가 조선어를 폐지해달라고 애걸복걸하기도 했습니다.

미나미로서는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었을 텐데 미나미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뜻밖에도 미나미는 '반대'였습니다. 현영섭의 요청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줄 알았으나 미나미는 뜻밖에도 '조선어 전폐 불가론'을 폈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일어 상용(常用)을 강요해 민심이 좋지 않았는데 여기에 만약 조선어 전폐까지 들고 나올 경우 그 뒷감당이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나미는 '담화'를 통해 조선어 전폐 불가론을 정식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부하러 갔던 현영섭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조차 현영섭을 두고 "눈을 가리고 싶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해방 후 신변에 위협을 느꼈던지 그는 가족을 데리고 일본으로 줄행랑치고 말았습니다.    

김인승은 일본인이 되기 위해 '끓는 물, 타는 불 속'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춘원은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버려야 한다고"고 역설하고는 그런 연후에 "진정으로 조선인의 영생의 길이 있다"고 예언하였습니다. 현영섭은 조선총독도 부담스러워 하는 '조선어 전폐론'을 외치며 온몸으로 골수 친일파의 진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정도라면 '뼛속까지 친일파'라고 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일'이라고 합니다. 실지로 이 대통령의 성향이 그러한지, 만약 그렇다면 그 정도는 또 어떠한지 저로선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이런 사안으로 입에 오르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가로도 큰 치욕을 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이제라도 과거의 언행에서 교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라지는 마을...세상은 이 안타까움 듣지 못한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11.09.13자 '사라지는 마을...세상은 이 안타까움 듣지 못한다 [내성천 살리기-우리가 강이 되어 주자⑨] 박용훈 사진작가'를 퍼왔습니다.
내성천은 낙동강의 제1지류로, 경북 봉화와 예천을 거쳐 흐르는 총 길이 100km가 넘는 강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추천될 만큼 보존 가치가 높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모래강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영주댐이 건설되고 있습니다. 댐이 완공되면 내성천의 중상류가 수몰돼 사라집니다. 또 하류로 운반되는 물과 모래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그동안 낙동강의 정화를 담당했던 필터 기능이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거대한 삽질에 의해 베이는 버드나무 군락, 파헤쳐지는 흰 모래 사장, 멸종 위기의 수달, 사라져가는 흰수마자….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주댐의 건설로 운포구곡을 비롯한 비경과 문화재, 농경지도 수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6~7일 사이 약 20명의 작가들은 낙동강의 젖줄 내성천으로 향했고, 삽질에 의해 찢기고 파괴된 강바닥을 다시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흐르는 내성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지금 내성천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여러분 스스로 강이 되어, 모래의 강 내성천을 마침내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 내성천 살리기 참여 작가 일동 


ⓒ 박용훈

생명이 주인인 강(예천 개포면)

내성천 하류, 새벽에 고라니가 다녀갔다. 조개는 아직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강물이 살짝 덮을 정도의 모래 위에 길게 선을 긋고 이동 중이다. 4대강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중장비들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지천에 투입될 전망이다. 지천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마침 내성천 땅 한 평 사기 트러스트 운동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내성천에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내성천은 한반도 모래강의 아름다운 본래 모습이면서 동시에 낙동강 복원의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는 강이기도 하다. 시간이 없다. 풍전등화의 순간 내성천을 지킬 많은 따뜻한 손들이 필요하다. 그 마음에 지역의 마음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다시 그 마음으로 내성천을 지킬 수 있다면 이는 내성천을 지키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 박용훈

아이들에게 자연의 강변을(예천 개포면)

이른 아침 하류 내성천을 한 무리가 걷는다. 절반은 어린이다. 아직 나이가 어린 한 아이는 아빠에게 업히거나 스스로 걷거나 하면서 강과 만나는 시간을 즐거워한다. 나도 저 아이와 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장소가 서울 한강이었던 것만 다르다. 아이들이 백사장이 있는 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한 가족이 강가에서 오붓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어느 먼 나라 휴양지에서의 꿈이 아니고 이전에는 늘 우리 주위에 있던 일이었다.

자연의 강이 선물한 푹신한 모래밭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유사 이래 최대라는 강에서의 국책토건사업보다 훨씬 중요하고 공익적인 것이 아닐까? 어디에서든 강을 쉽게 볼 수 있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 박용훈

모래강의 나라에서 모래를 다시 생각함(영주 문수면)

무섬마을은 연화부수,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다. 낙동강의 축소판 내성천에는 산태극 수태극의 자리가 많다. 금강마을, 무섬마을이 그렇고 도정서원 앞과 회룡포가 그렇다. 올 여름 출간된 에서 손현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의 강은 산이 물을 막고 물이 산을 깎는 형국으로 흐른다. 곡류의 S자, 즉 태극문양을 그리면서 산이 양이고 물이 음이라면 모래는 거기서 생겨난 자식이다. (줄임) 작은 입자들의 합인 모래의 형체 없음은 부드러움, 유연함, 변화무쌍함과 관계가 있다. 강과 함께 흐르는 모래는 강의 또 다른 얼굴이며 현신, 아바타이다. 

한때 산이었다가 강이 된 한반도 모래강의 모래는 모래를 둘러싼 일체 경관의 눈이고, 우리 정서의 뿌리이며, 이 땅의 많은 생명들에게 쉴 곳이고 어머니의 품이다. 

ⓒ 박용훈

강을 걷는다는 것(예천 개포면)

걷는다. 도시를 걷고 산을 걷고 바닷가를 걷는다. 시간 없는 사람은 머신(machine) 위라도 걷는다.

청년들은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국토순례의 길을 걸었고, 산내의 한 소년은 지리산 댐을 반대하는 선생님을 따라 봄이 오기 전 열하루의 상경 길을 걸었다. 2008년 2월 4대종단의 존경받는 성직자들이 4대강을 따라 100여 일 풍찬노숙의 길을 걸었고, 이어서 이듬해 6월까지 오체투지의 길을 걸었다.

길은 서로 다른 세상을 잇는 특별한 구역이다. 그곳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세상을 본다. 내가 나 아님을 보기도 한다. 돌아봄의 시간이고 참회, 메타노이아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사람들은 내성천을 걷는다. 물 흐름을 느끼고, 새소리를 듣고, 허리 굽은 농민의 땅을 보며 걷는다. 자연과의 하나 됨에 새로워하며 몸은 자연의 소리를 듣고 마음은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 박용훈

모래강을 건너다(영주 평은면)

건널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두려움이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움이다. 한 발 한 발 옮기며 여울과 소가 있는 강안에서 길을 본다. 강을 건너려면 직선으로 걸음을 옮겨서는 안 된다. 어제 건넜다고 오늘 건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가 아니면 건널 수 없고, 순하지 않으면 건널 수 없으며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약간의 용기는 있어야 하되 만용은 허락되지 않는다. 거창한 듯하지만 무궁무진 변화하는 모래강을 건너려면 이 정도는 새겨야 한다.

아름다운 모래강을 걷는 일, 국토의 70%가 산이며 강을 둘러싸고 노년기 화강암 지형이 발달한 한반도에서 가능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제 내성천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한번 내성천에 가볼 일이다. 갈수기의 모래강은 또 다른 세상이다. 억겁의 시간을 간직한 모래강을 고요히 만나고, 차안과 피안을 넘나들다 슬그머니 그 강물에 흘려보내는 것 있다면 또 다른 강을 건너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으리라.

ⓒ 박용훈

내성천 흰수마자(영주 문수면)

모녀가 강물에 모래성을 쌓는다. 사람의 방문에 놀랐는지 갑자기 손가락만 한 예쁜 물고기가 몸을 내밀고 모녀는 환호성을 지른다. 물고기는 두 손에 물과 함께 받쳐진 채 본의 아닌 기념촬영을 하고 다시 강으로 돌아간다. 그 물고기가 맑고 얕은 모래강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 흰수마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백사장이 펼쳐진 강 따라 풀밭과 농경지와 산이 이어진 내성천은 동물들의 강 접근이 쉬워 삵, 수달, 원앙 등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여러 생명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내성천이 위기에 처한 지금 널리 알려 함께 지켜야 한다는 마음 한편으로 너무 알려져서 관광지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박용훈

내성천 왕버드나무(영주 평은면)

왕버들은 내성천이라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다른 버드나무들이 꽃을 모두 피운 뒤 비로소 왕버들은 연둣빛 기지개를 켜고, 계곡의 산벚나무가 분홍빛으로 이에 화답한다. 물이 휘도는 강 언덕에 심어진 나무들은 힘껏 흙을 움켜쥐어 언덕의 유실을 막고, 강안으로 뻗은 뿌리에는 유충 등 작은 생명들이 깃들어 살며 물고기를 모은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면 새들과 물고기 그리고 농사짓던 농부들까지 모두 그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니 왕버들은 내성천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의 큰 버팀목이다.

안타깝게도 어쩌다 물이 넘치면 왕버들 언덕을 없애고 석축 따위를 높이 쌓으면서 고유의 모습은 조금씩 사라져간다. 그로 인해 다양한 어종과 팔뚝만 한 물고기, 그리고 방문을 열면 강이 내다 보였으며 농사짓다가 강물을 그냥 떠먹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아쉬운 추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은 그 찬란한 연둣빛을 쉽게 볼 수 있어 내성천의 봄을 다시 기다린다.

ⓒ 박용훈

금강마을 비단여울(영주 평은면)

금강에 살어리랏다 금강에 살어리랏다 운무 데리고 금강에 살어리랏다 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 체나 하리오….

소년 시절 곧잘 부르던 가곡이다. 그 인연인지 나는 금강마을 앞 비단여울에 서 있다.

깊은 계곡 따라 맑은 모래, 맑은 강이 흐르고, 흐르는 강 따라 하얀 구름이 둥실 떠다닌다. 그 구름 사이로 맑은 물고기 떼 넘나들고, 홀로 여울을 지키던 백로는 어느새 날아올라 훨훨 산을 넘어간다. 원시 비경을 간직한 운포구곡 제7경 '금탄'은 내성천이 불로산 밑 큰 계곡을 흘러 금강마을 앞에 이르는 아름다운 휘돌이다.

금강마을은 400년 된 장씨 집성촌이며 장씨고택 등 여러 문화유적이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영주댐 완공 후 담수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수몰되는 마을로, 댐 공사가 진행될수록 마을 할머니들의 시름은 깊어간다. 죽을 때까지 금강에 살고 싶을 뿐 다른 바람은 없다. 마을과 운명을 함께해야 하는 비단여울은 말이 없고, 세상은 이 안타까움을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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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박용훈 : 주로 여주 남한강에서 강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으며, 지금은 내성천을 중심으로 강의 기록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공동 강(江) 사진전을 두 차례 열었다. 인터넷 상에서는 주로 '서풍'이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 내성천 한 평 사기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공식 홈페이지 : http://www.ntrust.or.kr/nsc 
내성천 지킴이들 카페 : http://cafe.daum.net/naeseongcheon 
내성천 답사를 원하는 단체는 위 카페를 참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