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일 토요일

나경원 후보님, 이것도 모르십니까


이글은 서프라이즈 2011-09-30일자 기사 '나경원 후보님, 이것도 모르십니까'를 퍼왔습니다.
[한강 복원 1] 신곡-잠실 수중보 철거 없이는 강 못 살립니다
                                                                                              (오마이뉴스 / 최병성 / 2011-09-30)

▲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5400억 원을 퍼부어 만든 누더기 한강르네상스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최병성
아이들에게 밥 못 주겠다고 눈물까지 흘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방을 뺐습니다. 오 시장이 물러나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크게 관심을 끕니다.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이 서로 상반된 공약을 조금씩 내놓고 있습니다.
박원순 예비후보는 한강 르네상스를 재검토하고 한강의 신곡수중보와 잠실수중보를 헐어 원래의 한강으로 회복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반해 한나라당 나경원 예비후보는 한강보를 철거하면 취수가 어려워지고 수조 원의 공사비가 소요된다며 반대했습니다.

▲ 한강 수중보 철거에 대해 서로 상반된 견해를 발표한 두 후보 ⓒMBC 뉴스
과연 한강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아이들 밥 한 끼 먹이는 게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던 오세훈 전 시장은 한강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54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한강에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한강 르네상스는 매년 침수되는 강변에 과도한 시설을 설치해 그야말로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유지 관리를 위해 매년 국민 세금을 한강에 퍼부어야 하는 밑 빠진 독이요, 혈세 먹는 하마입니다.
세계적인 여행 잡지인 은 지난 2010년 1월 서울을 세계 최악의 도시 9곳 중 3위로 선정했습니다. 만약 한강의 옛 모습을 잘 보존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서울은 세계 최악의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도시, 세계인들이 찾고 싶은 최고의 도시가 되었을 겁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한강 살리기는 1000만 서울시민의 쉼터를 복원하는 일이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세계 속의 행복 서울’로 발돋움하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혈세를 낭비하는 한강 르네상스가 아니라 진짜 생명의 강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행복한 강 살리기 모델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한강, 행복한 서울’을 위해 한강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올바른 개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선진국의 강 살리기 현장을 통해 한강 복원의 올바른 방향을 살펴보겠습니다.
운하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 중 하나가 독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라인강 운하와 마인-도나우(MD운하)를 보고 와서 4대강 사업을 강행하였으니 독일의 강 살리기 추세를 제일 먼저 살펴보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 수많은 시민이 강수욕을 즐기는 독일 이자르강 복원 현장. 원래 자연으로 돌아간 독일 이자르강은 ‘콘크리트 놀이터를 만든 한강 르네상스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보여줍니다.ⓒ독일 뮌헨시청
위 사진은 독일 뮌헨 시내를 흐르는 이자르강입니다. 도심을 가로지른다는 점에서 서울의 한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자르강은 독일 시민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쉼터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손잡고 맑은 강에서 강수욕을 즐깁니다. 강변 자갈밭에는 일광욕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여울에서는 견지낚시를 하고, 강가에 우거진 숲을 따라 드리워진 나무 그늘길에는 조깅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강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자르강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맞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준공식 때 현장에 전시한 옛날 한강 사진과 너무 흡사합니다. 옛날 한강에서도 많은 시민이 강수욕을 즐겼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은 1980년대 이명박 전 현대건설 사장의 한강개발 덕에 우리가 잃어버린 한강, 지금 독일 이자르강에서 볼 수 있는 행복한 강의 풍경입니다.

▲ 행복했던 진짜 한강의 모습입니다. 부산 해운대가 아닙니다. 한강입니다. 그러나 이 행복한 한강이 ‘한강개발’ 이름으로 썩은 물만 가득한 죽음의 수로가 되었습니다. ⓒ서울시 한강 사진전
은빛 모래밭에서 많은 시민이 강수욕을 즐기던 모습은 한강 복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자르강에는 100여 년 전에 운하가 건설됐습니다. 그러나 운하 탓에 수질이 악화되고 홍수가 빈발했습니다. 이에 뮌헨시는 이자르강의 제방을 헐어 모래가 반짝이고 여울이 있는 자연의 강으로 되돌리는 복원 공사를 했습니다. 바이에른주와 뮌헨시는 1989년부터 이자르강 복원 논의를 시작해, 약 10년 동안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쳐 2000년 복원 사업에 착수해 올해까지 진행 중입니다. 
운하가 자연의 강으로 복원되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빈번히 일어나던 홍수 발생이 줄었습니다. 수질이 맑아졌습니다. 백조라 불리는 고니들이 찾아와 사람들과 어울리는 철새 낙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방을 헐고 여울과 모래·자갈이 있는 자연의 강으로 돌아가자 시민이 제일 행복해 했습니다. 운하에서 생명의 강으로 복원하자 자연과 사람이 모두 행복해졌습니다.

▲ 사람과 철새가 함께 행복한 이자르강입니다. ⓒ임혜지 박사
이자르강 살리기와 한강 르네상스의 차이
이자르강 살리기와 한강 르네상스 모두 복원이라는 이름하에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이자르강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강에 들어가 강수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강이 살아나자 사람뿐 아니라 철새도 함께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는 침수되는 강변에 ‘콘크리트 인테리어 공사’를 한 것에 불과합니다. 무려 5400억 원을 퍼부었지만, 한강 르네상스 현장엔 ‘접근금지, 익사 위험’이라며 한강물에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무시무시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람만 강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철새들도 찾아오지 않는 콘크리트 수로에 불과합니다.

▲ 오세훈 전 시장이 5400억 원을 퍼부었지만 한강은 여전히 위험한 운하입니다. ⓒ최병성
이자르강에서는 강물에 들어가 견지낚시 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강엔 무너져가는 콘크리트 둑 위에서 낚시하는 위험한 모습의 강태공들만 만나게 됩니다. 54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한강에 퍼부었건만 이자르강과 한강은 너무 다릅니다.
이자르강변은 아이들 천국입니다. 강변에서 수업을 하는 학생들에서, 물놀이하는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강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자르강 살리기로 안전한 강이 됐다는 걸 증명합니다.
다시 살아난 이자르강은 우리에게 유람선이나 떠다니는 ‘위험한 운하’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손과 발을 담글 수 있는 ‘안전한 강’이 진짜 강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자르강은 운하에 가둔 썩은 ‘많은 물’이 아니라 금빛 모래 반짝이고 여울이 있는 ‘맑은 물’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 한강의 이 몹쓸 콘크리트, 철거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강가에 나와 수업하는 행복한 이자르강과 물에 빠질까 걱정해야 하는 위험한 한강입니다. 당신은 어떤 강을 원하시나요? ⓒ양쿠라, 최병성
▲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어른 아이 행복한 이자르강과 한시라도 감시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는 한강입니다. 당신은 어떤 강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양쿠라, 최병성
한강도 이자르강처럼 될 수 있습니다. 옛날 한강은 지금의 이자르강처럼 사람과 자연이 행복한 강이었습니다. 행복했던 한강은 아주 오랜 옛날 일이 아닙니다. 겨우 3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현대건설이 주도한 1983년 제2차 한강종합개발로 한강변에 가득했던 금빛 모래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모래를 준설하고 김포와 잠실에 보를 세워 물을 가득 채워 놓은 게 지금의 한강입니다.
한강이 이자르강처럼 행복한 강으로 가는 비결은 아주 간단합니다. 한강의 물길을 막고 있는 보를 허물면 됩니다. 보를 허물면 강물 속에 잠들어 있는 모래가 얼굴을 내밀고 한강의 수질도 더 맑아집니다. 우선 하류에 있는 김포 수중보를 헐고, 그 후에 한강의 변화를 점검하며 순차적으로 잠실 수중보를 철거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의 자랑이요, 4대강 사업 모델인 한강보. 청와대에서 만든 4대강 홍보책에 두 개의 한강보가 4대강 사업의 모델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곡수중보 먼저 철거하고 잠실보는 한강의 상황을 점검하며 차차 철거해야 한강이 진짜 행복한 강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청와대
한강의 희망을 한 번 보시겠습니까?
한강보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설사 보를 철거해도 팔당댐 탓에 한강에 모래가 쌓이지 않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래 사진은 은빛 모래가 반짝이는 여의도 앞의 한강변입니다. 오래전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한강변 모래를 준설하고 콘크리트 제방을 쌓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은빛 모래가 쌓여 완만한 경사를 지닌 한강이 되었습니다. 운하가 된 한강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풍경입니다.

▲ 이게 바로 진짜 한강입니다. 한강 철교 밑에 다시 쌓이기 시작한 모래밭에서 스킴보드를 타는 여대생입니다. 불과 2008년 4월의 일입니다. ⓒ최병성한강이 은빛 모래 반짝이는 ‘안전한 강’이 되자, 이곳에서 홀로 스킴보드를 타는 여대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보를 헐면 한강 전체가 이렇게 안전하고 행복한 강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곳에서 오래전 잃어 버린 옛날 한강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저는 바로 이곳에서 한강도 독일 이자르강처럼 다시 ‘안전하고 행복한 강’으로 살아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 ‘5세 훈’ 시장의 철없는 한강 파괴 현장입니다. 2년이 지난 2010년 4월 한강철교 부근 모습. 스킴보드 타던 한강의 은빛 모래 파버리고 석축을 쌓아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죽음의 수로를 만들었습니다. ⓒ최병성
그런데 오세훈 전 시장이 한강 르네상스를 한다며 이곳의 모래를 다 파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석축을 쌓아 그 누구도 강에 들어갈 수 없는 깊은 수로로 만들었습니다. 되살아나던 한강의 희망을 파괴한 것입니다. ‘5세 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가 왜 철없는 짓이요, 한강 파괴인지 증명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한강이 아닙니다. 오 전 시장이 모래를 파 없앤 바로 그 자리에 단 2년 만에 또다시 모래섬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섬이 한강을 찾아오는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한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는 많습니다. 한강을 지나다 보면 한강에 바지선을 띄워놓고 모래를 준설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서울시가 한강의 수로를 유지하기 위해 모래를 퍼내는 예산만 일 년에 무려 45억 원입니다. 보를 허물면 연간 45억 원이라는 혈세를 낭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한강은 은빛 모래 가득한 원래의 한강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보를 철거하면 혈세낭비 막고, 은빛 한강 살아나고. 이게 바로 일석이조입니다.
나경원 후보님, 모르는 게 너무 많군요
나경원 서울시장 한나라당 후보는 한강의 보를 허물면 서울의 취수가 불가능하고, 콘크리트 제방을 허물기 위해 수조 원의 공사비가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애석하게도, 나 후보는 모르는 게 너무 많습니다. 나 후보는 2004년 서울에서 열린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던 걸 두고 초선의원으로서 자위대 행사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젠 재선의원이면서도 모르는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나 후보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혹시 한강에 몇 번이나 나가보셨습니까? 출렁이는 한강 물결이 보기엔 좋아 보이시죠? 그러나 물이 썩어 잠실부터 김포 수중보 사이엔 취수장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최근 나 후보님이 해병대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셨던 여의도 앞 한강의 그 많은 물, 악취만 진동하는 쓸모없는 물에 불과하다는 사실 모르셨죠?

▲ 물은 많으나 썩고, 죽은 물고기가 떠다니는 한강입니다. 여의도 앞 한강에 많은 물, 취수장이 단 하나도 없는 썩은 물입니다. 물고기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죽음의 수로가 바로 한강입니다. ⓒ최병성
나 후보님, 보를 헐면 취수원이 걱정이라고요? 쓸데없는 걱정을 하셨군요. 잠실 수중보 위의 있던 구의 취수장과 자양 취수장은 서울시가 무려 1800억 원을 들여 팔당대교 아래로 이전 공사했습니다. 잠실 수중보에 물은 많지만 더러워 서울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취수원을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시가 3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바로 얼마 전인 9월 5일 개통식까지 했답니다.
나 후보님은 한강의 보를 헐어내면 한강 바닥이 들어나 취수가 어려워진다며 반대하였습니다. 이 역시 뭘 모르는 말씀입니다. 나 후보님, 이명박 전 현대건설 사장이 한강에 보를 건설하기 전 한강은 어땠는지 옛날 사진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모래밭에 가득한 시민뿐만 아니라, 보트 놀이하는 시민도 가득합니다. 보가 없어도 배를 탔을 만큼 한강에는 물이 풍부했음을 보여줍니다.

▲ 한강보를 세우기 전에도 한강에 물이 많았습니다. 지금의 천호동 워커힐 호텔 앞입니다. 광나루 나루터 근처지요. ⓒ서울시
▲ 나 후보님의 부족한 이해를 도와주기 위해 한강 사진 한 장 더 보여 드립니다. 한강철교와 한강교 근처입니다. 한강 보를 세우기 이전입니다. 보가 없어도 이 정도의 한강이라면 보를 철거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서울시
나경원 후보는 한강보 철거 반대 이유 중 하나로 콘크리트 제방 철거에 소요되는 수조 원의 토목공사비를 들었습니다. 역시 뭘 모르는 말씀입니다. 한강변 콘크리트를 철거하는 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습니다. 수조 원의 국민 혈세가 낭비되는 것을 염려하실 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나 후보님, ‘4대강 파괴사업’으로 22조 원이 넘게 들어가는 일에 단 한 번이라도 반대해 보셨습니까? 혹시 지난해 날치기로 통과된 4대강 사업 예산의 주역은 아니셨나요?
나경원 후보님, 혹시 한강의 보 철거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지금의 한강 운하를 만든 장본인이 이명박 대통령이기 때문은 아닌가요? 청와대에서 만든 4대강 사업 홍보책에는 김포 수중보와 잠실 수중보를 4대강 사업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후보로서 감히 이명박 대통령의 평생 소신인 운하에 반대할 수 없어 ‘취수’ 운운하신 것은 아닌지요.
나 후보님이 이제라도 한강의 진실과 선진국의 강 살리기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쓸모없는 보를 헐어 한강을 살리겠다는 정책을 내놓길 희망합니다.
누가 시장이 되든 새로운 서울시장이 먼저 해야 할 사업은 행복한 한강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강변 콘크리트 제방을 헐어 은빛 모래 반짝이고 맑은 물 흐르는 한강으로 복원해야 합니다. 한강 복원이 소중한 것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파괴된 4대강 복원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 참된 한강 복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는 이자르강. 양쿠라라는 작가가 이자르강을 찾아가 ‘한강 복원’을 기원하며 강물 속 자갈로 ‘re’자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글자 곁에 백조와 청둥오리들이 찾아와 놀고 있습니다. 한강의 보를 철거하면, 우리 아이들이 손과 발을 담글 수 있는 안전한 강, 철새들이 찾아오는 행복한 강이 될 것입니다. ⓒ양쿠라

최병성 / 목사
덧불이는 글
올바른 한강 복원을 위해 한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4대강 죽이기의 실체를 밝힌 책 (오월의 봄)가 최근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 4부에 한강 복원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들의 필독서로 권합니다.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2393&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6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71870 

    http://www.seoprise.com/etc/u2/356992 

나경원 의원을 위한 한 장의 그림-아이를 씻기는 시간


이글은 김홍기의 패션의 제국 2011-09-30일자 블로그글에서 퍼왔습니다.
패션 큐레이터/그림으로 읽는 신문기사 2011/09/30 23:05 패션 큐레이터

매리 커셋 <아이를 씻기는 시간> 캔버스에 유채 1893년,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우리 아이를 씻기는 시간

영화 가 한국사회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영화에 올올히 담긴 진정성 때문이겠지요. 힘없는 자들의 절규는 공고한 침묵의 카르텔 앞에 무릎 꿇어야 하는 '정의실종사회'에 대한 집단적 분노입니다. 가뜩이나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낮은 나라에서, 주변부에 머문 장애인들의 짓밟힌 인권 앞에서 공분합니다. 정치권은 여론을 의식해 마뜩 일명 '도가니법'을 만든다며 헛헛한 행색만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27일 중증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 아동을 씻겼습니다.

문제는 갖은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촬영을 하셨다는 점입니다. 아동학대 및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연일 각 언론사들은 이 사안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에게 보여주고 싶은 한 장의 그림이 있습니다. 미국 인상주의 화가 메리 스티븐슨 커셋이 그린 입니다. 저는 그녀의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삶을 파리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당시 인상주의 화가였던 에드가 드가와 친구가 되었고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지요. 아이와 엄마 사이에 벌어지는 마술같은 감정의 연금술, 모성이 보여주는 친밀의 순간을 그녀보다 잘 표현한 화가가 없습니다.

자료화면: 오마이티비 화면 갈무리
나는 엄마다......

저는 커셋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아이를 껴안고 앙징맞은 발을 따스한 물에 씻기는 엄마의 모습에서, 유년시절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겨울이면 부엌 아궁이에 물을 한소끔 끓여다 식혀 발이며 얼굴이며 오목오목 씻겨주시던, 정작 본인의 손은 부르터서 콜드크림 구석구석 바르는 것으로 끝내던 엄마를 생각했습니다. 시공간을 넘어, 배냇과 배외,그 어디에서도 엄마의 사랑은 이렇게 따스한 추억의 힘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시인 함민복의 말처럼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손가락과 엄마의 손가락이 하나로 겹쳐지지요. 그 순간이 바로 아이를 씻기는 시간이니까요. 메리 커셋이 그린 엄마와 아이의 풍경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을 연상시킵니다. 아기 예수를 든 마리아의 모습을 녹여낸 듯한 거룩함과 따스함이 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따스함의 근원은 어디에서 올까요?

모성, 고요함의 공간을 어루만지는 체온

그림을 보면, 딸이 추울세라, 신체부위를 비롯해 따스한 타월로 몸을 감추었습니다. 붉은 톤이 감도는 카펫 위에, 엄마는 목욕용 주전자에 따스한 물을 담아 아이의 발가락부터 씻겨나갑니다. 꼼지락거릴만도 할텐데, 아이는 엄마의 체온과 따스한 물의 기운이 좋은지 엄마의 무릎 한쪽에 팔을 지탱한채, 친밀한 순간을 보내고 있지요. 나경원 의원이 아이를 씻기는 모습에선 그림 속 따스함을 찾기가 어렵더군요. 사건이 터진 후 본인은 “조명시설은 중증장애인시설에서 부른 자원봉사 사진작가가 설치한 것”이라며 “반사판과 조명장치는 기관 홍보 및 작품 활동을 위해 나 후보의 사전논의 없이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비서실장인 강승규 의원의 설명은 본인의 해명과 다릅니다. 사진작가에게 중증장애인 시설 '가브리엘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어려운 환경의 장애아의 실태를 알리기 위한 목표로 촬영을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목적과 대의는 존중합니다. 실제로 사진작가 조세현 선생님의 경우, 국내 입양아동 비율을 높이기 위해 연예인들과 지속적으로 입양프로젝트를 하고 계시죠. 이외에도 사회적인 논평과 목소리를 내기 위한 사진작업은 많습니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장성을 너무 강조하고 싶으셨던지, 무리수를 두셨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이런 사진작업에는 철저하게 보호자 동행 및 아이들의 정서관리가 사전에 기획되어야 합니다. 많은 작가분이 이런 사실을 숙지하고 계시지요.
나경원 후보님, 우리는 속지 않을 겁니다
영화 의 몇 몇 장면이 현행 아동보호법 17조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와 '공중의 오락 또는 흥행을 목적으로 아동의 건강 또는 안전에 유해한 곡예를 시키는 행위'에 반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영화의 흥행을 넘어 유년 배우의 심리적 안정성에 대한 고려를 되묻기도 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릴 가능성을 지적한 것 좋습니다. 이 관점을 나경원 의원의 주장에 대입시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인의 정치적 흥행을 위해 장애 아동을 씻기신 것은 아닌지요? 대의를 위한 촬영이었다면 철저하게 메리 커셋의 그림처럼 은밀하고 따스한 순간으로 포착되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신체도 가려야 했고요.

언론에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지만 방송 5개사를 포함한 3개 이상 매체 중 어디에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들은 곳이 없다는 것이지요. 벌거벗은 장애인 아동을 씻기는 장면을 여과 없이 내 보낸점, 분명 공분을 살 일입니다. 나경원 의원님께서 실제로 장애인딸을 둔 정치인임을 알고 있습니다. 제3자가 아닌, 장애인의 삶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들을 정서적으로 배려하고 한 발 나아가 현실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이야기를 하셨어야 했습니다. 저 많은 카메라와 조명 앞에서 과연 아이와의 따스한 교감이 가능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나경원 의원의 이번 행동에 대해 메리 커셋의 그림을 보며 느낀 소감입니다. 인권침해를 넘어 정치적 수사를 위해 아이와의 관계를 이용하지 마십시요.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열 손가락을 지어준 그 거룩한 진화에 대한 모욕입니다. 진심어린 사과를 보여주길 바랍니다.

[사설]선 부장판사 ‘무죄’ 납득하기 어렵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09-30일자 사설 '선 부장판사 ‘무죄’ 납득하기 어렵다'를 퍼왔습니다.
자신이 법정관리하고 있는 기업에 고교 동창인 강동욱 변호사를 사건 대리인으로 소개한 혐의(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선재성 전 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휴직 중)에게 그제 1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이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김태업)는 선 부장판사의 변호사법 위반은 물론 직권남용, 그리고 부인이 강 변호사로부터 얻은 비상장 주식 투자정보를 이용해 1억원의 투자이익을 봤다는 뇌물수수 혐의까지 전부 죄 없음으로 판단했다. 일반 시민의 정서와 너무나 동떨어진 재판부의 판단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재판부의 판단 근거를 보면 피고인 측 주장을 어쩌면 그렇게 시종일관 선의로만 해석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 우선 법정관리 기업에 강 변호사를 소개한 것이 특혜가 아닌 법정관리 업무의 연장으로 판단했다. “변호사를 소개·알선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위한 조언이나 권고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런 논리를 연장하면 선 부장판사가 법정관리를 맡은 회사에 자신의 친형과 운전기사를 법정관리인으로 앉힌 것도 문제삼을 수 없게 된다. 주식투자에 대한 판단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재판부는 당시 선 부장판사 부부의 사이가 매우 나빠 그가 부인의 투자 사실을 알지 못했을 수 있다고 했다. 또 투자한 회사의 자금난 등을 고려할 때 이 투자정보를 ‘투기적 사업에 참여할 기회’로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5000만원을 투자한 목적을 무엇으로 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실체적 진실을 따지기보다는 회피하려는 듯한 태도다. 더구나 이번 판결은 법원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와도 충돌한다. 광주고법은 선 부장판사가 파산부 재판장으로서 공정성·청렴성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행동을 했다며 징계를 청구했다. 

법원은 다른 어떤 기관보다 법과 원칙을 엄정하게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번 재판장은 선 부장판사를 ‘피고인’이 아니라 ‘선 부장판사’라고 불렀다. 서울대 법대 후배이자 사법시험 9년 후배로 광주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관계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는가. 최근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지만 법원에 대한 불신 역시 만만치 않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취임사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법원이 되자고 했다. 이번 판결은 국민정서를 떠나 일반적인 법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검찰이 변호사법 위반에 대해 항소하겠다고 했다. 2심 법원은 팔을 안으로 굽히지 말고 엄정하게 사실 관계를 따져야 한다.

[사설]듣기 민망한 조현오 청장의 ‘법질서 확립’ 강연


이글은 겅향신문 2011-09-30일자 사설 '듣기 민망한 조현오 청장의 ‘법질서 확립’ 강연'을 퍼왔습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그제 대한상의가 마련한 CEO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참으로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다. 조 청장은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선 분들이 직업적 혁명가나 운동가로 나서면서 온갖 사회적 이슈에 개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런 반정부·반사회 성향에 동조하는 세력이 한때 13만명에 이르렀다 촛불시위 때 8만명으로 줄고 지금은 2만5000명 수준”이라면서 “이런 세력을 줄여 가야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과거 군사 독재정권이 공안몰이를 할 때나 쓰던 어법을 닮았다. 환경, 무상급식 등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나서는 것이 ‘반정부·반사회적’이라 매도하니 어이가 없다.

치안총수인 조 청장이 반정부·반사회 세력의 숫자 추이까지 밝힌 것은 경찰이 그동안 계속 추적해 왔다는 방증인 만큼 섬뜩하기조차 하다. 경찰이 반정부·반사회 세력으로 규정하고 파악해 온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특히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적단체 회원들도 있다”고도 했다. 조 청장 말을 들으면 우리가 마치 1980년대 5공 시절에 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명백한 ‘반사회 세력’이나 ‘이적단체 회원’이 이렇게 많은데도 방치해 왔다면 직무유기다. 그러나 과거 공안정권이 그랬듯이 정권 비판세력까지 포함해 ‘반정부·반사회 세력’이라고 통칭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구시대적 색깔공세의 전형이다. 

그의 발언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조 청장은 엄정한 법 집행을 거론하면서 판사들에게는 “제대로 판결하라”고 하는가 하면, 정치인에겐 “경찰에 시비를 걸지 말라”고 했다. 평소 판사와 정치인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싸잡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조 청장이 과연 ‘엄정한 법 집행’ 같은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범죄 행위의 전모가 사실상 드러난 민주당 대표실 도청 사건만 해도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다”는 군색한 변명을 대며 수사를 유야무야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조 청장 자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유가족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처지다.

조 청장은 자신이 규정한 ‘반정부·반사회적 성향’이 뭔지, 그런 세력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법원도 공개적으로 사법 불신을 표출한 조 청장 발언을 좌시해서는 안된다. 조 청장 발언도 문제이지만, 대한상의가 경제 관련 법질서 수준이 낮다면서 치안총수를 불러 기업인들에게 특강을 하게 한 ‘저의’도 의심스럽다.

증세로 경제 살리고 사회통합 이뤄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 기사 '증세로 경제 살리고 사회통합 이뤄야'를 퍼왔습니다.
[Cover Story]한국의 경제 현실과 부유세 신설 필요성;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와 고층 아파트의 야경.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자 증세에 반대하는 논리에 대해 “타워팰리스의 시각에 갇혀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왼쪽).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9월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오른쪽).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부자 증세’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전세계 3위 갑부이자 미국의 두 번째 부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8월14일 기고문을 통해 ‘부자증세론’을 주창한 이후, 프랑스의 ‘슈퍼 부자’들도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낼 수 있도록 특별기부세를 신설해달라”고 정부에 청원하면서 부자 증세 열풍은 유럽 전역은 물론 이웃나라 일본에까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말뿐만이 아닌 실제 국가 정책과 법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일자리 만들기 법안’의 재원 대부분을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의 신임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각료들에게 증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정도다.
이제 부자 증세는 거스를 수 없는 전세계적 화두이자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다. 이는 과도한 국가 채무와 낮은 경제성장률로 정부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복지 확대와 재정 적자 완화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적 대세가 된 ‘부자 증세’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내가 부자 증세를 외치며 ‘부유세’를 대안으로 주창한 지 1년 만에 이처럼 전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는 걸 보면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때는 “너무 나간 것 아니냐”는 비판, 더 나아가 비아냥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부자 증세 없는 보편적 복지는 허구이자 말장난에 불과하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장기적으론 국가에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지우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또다시 복지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집을 짓기 전에 토대부터 굳건히 다져놔야 한다는 소신은 지금도 한 치 변함이 없다.

부끄러운 ‘대한민국 슈퍼 부자’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자. 그리고 우리 안의 닫힌 현실을 돌아보자. 선진국 부자들은 정부에 대고 “나에게 세금을 더 걷으라”고 난리인데, 우리나라의 부자와 재벌들은 “나부터 세금 깎아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서민과 아이들 밥그릇을 뺏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것을 이명박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철저히 지원·보호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부자와 기득권 세력은 입만 열면 선진국처럼 하자면서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것은 선진국의 흐름과 정반대로 말한다. 역사에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우리 스스로 부끄러운 자화상을,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증세 없이 보편적 복지가 가능했다면,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다 했다.
증세 얘기만 꺼내면 아직도 ‘세금폭탄’ 운운하며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은 정확히 ‘강남 타워팰리스’ 주민을 대변하거나 그들의 논리에 포획된 사람들이다. 부자 증세를 해봐야 세금 더 내는 부자들은 고작 국민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95%는 증세에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다.
부유세나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의 ‘사회복지 목적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 같은 부자 증세 제안이 이 시점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지닌 세입 증대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부자 증세야말로 보편적 복지의 주춧돌이자, 세금폭탄이 아닌 사회통합세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안한 부유세는 순자산 30억원 이상 개인과 1조원 이상 법인에 순자산액의 1~2%를 부유세로 부과해 연간 7조8천억원의 복지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가 제안한 사회복지세는 부자 할증세와 누진적 직접세로 400만원 이상 소득세 납부 개인과 5억원 이상 법인세 납부 대기업, 상속증여세 납부자, 종합부동산세 납부자에게 납부 세금의 15~30%를 추가로 부과해 연간 15조원을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은 소득세 과세표준 1억2천만원 초과 구간과 법인세 과표 1천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각각 40%와 30%의 세율을 적용해 연간 8조3천억원(소득세 2조원+법인세 6.3조원)을 복지 재원으로 확보하자는 방안이다.
다만, 부유세는 단순히 세금을 더 걷는다는 의미보다 도입 과정에서 조세체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탈세 등 지하경제를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부유세 도입을 기본으로 하되 사회복지세와 소득세·법인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 같은 누진적 직접세 강화를 병행해 실시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부자 증세 하면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자’는 게 바로 부자 증세이고 부유세다. 탈세가 많다고, 그것만 제대로 걷어도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탈세를 획기적으로 방지하자는 대책이 부유세다. 그래서 조세정의와 부유세는 동의어다. 부유세가 좋은 점은 요즘처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갈수록 불안이 증폭되는 사회를 통합하고 안전하게 이끌며, 그게 오히려 부자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사회통합세’라는 점이다. 부자와 재벌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거꾸로 가는 MB 정부

지난 8월25일 낮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빛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한국의 복지예산 확충이 절실한 상황에서 부자 증세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연간 100조원 이상의 추가적인 재정지출이 요구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3%로 OECD 평균보다 7.3% 정도 낮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를 그대로 시행하면 이는 더 벌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재정 수준이 전세계적으로 최하위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의 공공복지 지출은 7.48%로, OECD 평균 20.6%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OECD 30개국 중 멕시코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특히 이 정부 들어 겉으로 내세우는 복지 확대 주장과는 달리 해가 갈수록 복지예산 증가율이 떨어지고 있다. 매년 10%를 상회하던 전년 대비 복지예산 증가율은 지난해 8.8%, 올해 6.3%로 급감했다. 이런 경향은 중·장기 재정계획상으로도 마찬가지여서 2007~2011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상 연평균 9.7%에 달하던 복지예산 증가율이 2008~2012년 계획에는 8.7%, 2009~2013년 계획에는 6.8%, 급기야 올해 제출된 2010~2014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에는 5.9%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GDP 대비 공공복지 지출 비중은 향후 더욱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우리의 복지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더군다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미명 아래 펼쳐온 MB식 자유경쟁 시장주의와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의 결과는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저성장-고실업-양극화 심화-저출산·고령화-저성장’이라는 최악의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용기 있는 야당’만이 정권을 얻는다
어린이·청소년의 행복지수 3년 연속 OECD 최하위, 출산율 세계 최하위, 일자리의 양과 질 세계 최하위이고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세계 1위, 한국인 전체 자살률 세계 1위인데 사회복지 지출은 세계 최하위…. 최악의 지표들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계 1위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 사회의 우울하고 불안한 현주소다. 제아무리 재벌 대기업의 주가가 오르고 수출이 늘어도, 서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부자 증세를 두려워해서는 이 정권의 오류를 극복하고 보편적 복지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다. 덮어놓고 부자 증세만 하자는 것도 아니다. 4대강 등 토건 예산을 삭감하고, 부자 감세를 철회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부분은 부자 증세로 하자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장롱 속의 금을 꺼내 국가 부채를 갚는 데 쓰라고 내놓은 국민이다. 그런 국민을 안 믿고, 잘못된 관념에 빠져서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건 야당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듣기에 불편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이라면 솔직히 국민에게 고하는 게 상책이다. 부자 증세를 말하면 표 떨어진다? 그건 우리 국민을 바보로 보는 것이다. 국민의 대다수는 정치인들이 모두 ‘복지, 복지’ 하는 데 대해 “그거 무슨 돈으로 할 건데?”라고 바로 되묻는다. 구체적이고 과감한 재원 마련 계획 없이, ‘증세 없이도 보편적 복지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또 한 가지 복지 비용과 관련해 중요한 대목은 복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건강과 교육수준 및 직업훈련의 향상 등 인적자본의 질을 높여서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삶이 안정됨에 따라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가 완화되고 구조조정도 원만히 이뤄질 수 있으며, 내수를 진작해 경기 부양 효과도 있다. 복지가 성장을 저해하는 좌파 포퓰리즘이 결코 아니란 소리다.
지금 우리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배려와 협동, 돌봄과 나눔을 통해 ‘더불어 잘사는’ 경제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기본적 바탕이 되는 게 바로 ‘보편적 복지’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신념과 철학에 기반한 용기와 실천이다. 누구나 보편적 복지를 말할 수 있지만, 누구나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설] 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정치성’ 발언, 저의가 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30자 사설 '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정치성’ 발언, 저의가 뭔가'를 퍼왔습니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엊그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한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전반적으로 부적절하고 동기가 의심스러운 발언이 적지 않다.
그는 1980년대 말 민주화 투쟁기에 활동한 진보세력이 직업운동가로 노동계에 침투해 정치를 이념화하고 있다는 등 진보인사들을 겨냥한 비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한때 13만명까지 올라간 반정부 반사회 성향에 동조하는 세력이 2008년 촛불시위에는 8만명까지 줄었다”며 “이런 세력을 점차 줄여가야 안정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최근의 사회갈등은 양극화 심화에도 친기업 반노동 정책을 고집해온 현 정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조 청장의 발언은 이를 도외시한 채 본말을 뒤바꿔 엉뚱한 데 책임을 돌리는 황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반정부 반사회 성향 세력이란 표현도 그렇거니와 무슨 기준으로 13만명, 8만명 운운하는지도 알 수 없다. 정부의 쇠고기 수입 협상 실패 책임을 묻는 촛불시위에 나선 것이 왜 반사회 세력인지도 그렇고, 이들을 줄여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진단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사회갈등의 책임을 ‘직업적 혁명가’ ‘직업운동가’에게 돌리면서 굳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까지 거명해 비판한 대목에 이르면 “정치판에 기웃댄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을 떠올리게 된다. 법원의 불구속 결정에 대해 “제대로 판결해야 한다”며 판사들을 꾸짖은 것은 형사소송법의 ‘불구속 원칙’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면 오만의 소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인, 언론인에게까지 “엄격한 법집행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일갈할 정도이니 그 오만의 끝은 어디인가.
서울 양천경찰서 가혹행위 논란이 최근 재발하고, 어용화하다시피 한 현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올해 들어서만 71건의 인권침해 시정 권고 결정을 내릴 만큼 경찰의 인권의식은 후진적이다. 함바 비리 사건으로 직전 경찰청장이 징역 6년의 중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도덕 수준도 낮다. 조 청장 역시 경찰청 경비국장 시절 억대의 조의금을 받아 물의를 빚었다.
경찰청장으로서 그런 지적을 하려면 민중의 지팡이로서 제 할 일을 하고 조직을 제대로 추스르는 일부터 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경찰에 수사개시권이 주어졌는데도 한국방송 도청의혹 사건 수사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이런 것부터 제대로 처리하는 게 먼저다.

[사설] 작전계획도 분실한 얼빠진 공군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30자 사설 '작전계획도 분실한 얼빠진 공군'을 퍼왔습니다.
공군이 군사비밀 문서들을 분실하는 사고를 냈다. 전면전 때 공군의 작전계획을 담은 ‘작계 3600’(2급 비밀)과 평시 비행훈련 계획을 담은 ‘작명 2500’(3급 비밀)을 지난 8월 분실한 것이다. 그 뒤 한달이 넘도록 경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군이 제구실을 하고 있느냐를 의심하게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다.
분실한 작전계획에는 전쟁 상황에서 ‘공중 우세’와 ‘정보 우세’를 확보하고, 지상군과 해군의 작전을 지원하며 적의 군사력과 전쟁 잠재력을 파괴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서가 만일 외부로 유출된다면 군의 전력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상대방한테 노출된 작전계획은 작전계획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된다. 작전계획을 엄중하게 관리하는 것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에 속하는 일이다. 이번 사고를 보고 군인들의 정신 태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얼빠진 군대에 안보를 맡겨도 되는지 정말 한심할 뿐이다.
공군 작전사령부에서 사고를 낸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작전사령부는 공군의 모든 작전을 지휘 통제하는 최상급 부대이다. 작전계획 문서를 작성하고 예하 부대에 전파하며 그 문서를 제대로 관리하도록 감독하는 책임도 이곳에서 맡고 있다. 그런 사령부가 되레 큰 사고를 냈으니 예하 부대 장병들이 사령부를 어떻게 보겠는가. 작전 지휘부의 신뢰성을 이만저만 좀먹는 일이 아니다.
공군의 후속 조처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문서를 잃어버린 게 8월인데 아직 경위 파악도 못하고 문서를 회수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작전계획 문서는 지휘소의 한정된 장소에 보관하고 문서를 열람하는 장병도 인가된 소수에 불과할 터이다. 경위 파악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쉬쉬하면서 문제를 덮으려고 하다가 그 지경에 이른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군 사고가 늘고 있다. 육군 전차 전복 사고와 해병대 생활반 총기사고, 초병들의 민항기 오인 사격에다 해군 고속정 충돌 사고, 공군 정찰기 추락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사고가 잇따랐다. 그러던 끝에 이제는 전시 작전계획마저 분실했다. 군 수뇌부가 관료형 부대를 탈피해 전투형 부대로 개조해 보겠다고 공언한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군 수뇌부의 지휘 역량에도 문제가 없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수세력이 친일파 되살리는 까닭은?


이글은 시사인 2011-09-30자 기사 '보수세력이 친일파 되살리는 까닭은?'을 퍼왔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서울 여의도 KBS 앞 도로에 앉아 있다. 8월2일부터 릴레이 단식도 하고 있다. 8월4일 새벽에는 영등포구청에서 들이닥쳐 이들이 머무르던 천막을 걷어갔다. 하지만 팔순이 넘은 노인들은 길바닥에 앉아 꿈쩍도 않는다.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한다. KBS가 8·15를 맞아 기획한 이승만 특집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항일 독립운동단체 등 총 97개 단체로 구성된 ‘친일·독재 찬양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에서 “악질 친일파를 단죄는커녕 비호했고, 친일 경찰을 시켜 백주대낮에 반민특위를 습격해 친일파 청산을 정면으로 거부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닌 친일파의 실질적 비호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탄압하다 결국 4·19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정동익 전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친일 행위를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려고만 한다”라고 말했다.

KBS, 친일 행적 백선엽 다큐 방영

이 같은 논란은 지난 6월에도 벌어졌다. KBS는 지난 6월 (백선엽 다큐멘터리)을 방영한 바 있다. 방송은 시종 백선엽의 기억과 발언에 의존해 그의 전쟁 활약상을 집중 조명했다.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에 등재됐다”라는 한마디로 넘어갔다. 가장 문제가 되는 이력, 곧 항일 세력을 무력 탄압한 조선인 특수부대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이 KBS가 친일 행적이 있는 백선엽을 전쟁 영웅으로 미화해 방송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어겼다고 민원을 제기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나라당 추천 몫의 한 심의위원은 “백선엽 장군을 좀 미화한들 뭐가 문제 되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강조한 것이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를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아니라 1948년 이승만 정부 수립에서 찾은 것이다. 뉴라이트 학자들의 핵심 이론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2008년 5월 국무총리 산하에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발족했다. 한나라당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기관 홈페이지와 정부 청사 간행물에서 ‘광복절’은 ‘건국절’로 바뀌었다. 

정부는 2008년 8월15일을 광복절 행사가 아니라 ‘건국절’ 행사로 치르고자 했다. 결국 보수는 ‘건국절’로, 진보는 ‘광복절’로 각각 행사를 치러야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홍보 책자를 발간해 전국 중·고등학교와 공공기관에 배포했다.

2008년 3월 보수 우익 학자들은 를 출간했다. 보수 진영은 그동안 국사 교과서를 ‘좌파 편향적’이라고 비판해왔다(34~36쪽 딸린 기사 참조). 뉴라이트 계열 역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지 시대를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축적되는 시기였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항일 테러 활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보수 우익의 움직임에 대해 광복회 회원과 민족운동가 진영에서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맞서면서 건국절 논란과 역사 교과서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 보였다.

보수 언론 “4·19와 5·16 정신은 하나다”

이후에는 KBS와 보수 언론이 앞장섰다. 2010년에는 한국전쟁이 화제로 떠올랐다. 전쟁 영화와 전쟁 드라마가 쏟아졌다. MBC 20부작 ,  KBS 20부작 가 텔레비전 전파를 탔다. 또 따위 전쟁 영화가 10여 편 제작되었다. 

특히 영화 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청와대에서 이 영화에 출연한 탑(그룹 빅뱅 소속)과 함께 보기도 해서 화제를 모았다. 이후 공무원들의 단체 관람이 줄을 이었다. 한 영화감독은 “전쟁 영화만 만들면 제작비는 정부에서 책임진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ㄱ감독은 정부 측에 줄을 서서 한몫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라고 말했다.

잠잠하던 보수 우익의 역사 왜곡 논란은 올해 들어 다시 점화됐다. 지난 4월 4·19혁명 51돌을 앞두고 보수 신문들이 일제히 이승만 띄우기에 나서면서부터다. 

는 양아들 이인수씨의 증언을 들어 “아버지 이승만, 불의에 항거한 학생들 장하다 했다”라고 보도했다. 는 ‘이승만-4·19 역사적 화해 모색’이라는 기사를 1면 머리로 다뤘다.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라는 말도 남겼다”라는 이인수씨의 주장을 실었다. ‘내일 4·19 51주년-활발해진 이승만 재평가’라는 기사에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한강의 기적은 이승만 시대의 유산을 활용한 덕분이다. 4·19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훼손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승만과 4·19는 같은 세력이다”라고 주장했다.

5월에는 와 가 5·16 군사쿠데타 50주년 특집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두 신문은 5·16 군사쿠데타 핵심 인물인 김종필 전 공화당 의장 인터뷰를 크게 실었다. 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는 특히 칼럼에서 박 전 대통령과 5·16 세력은 산업화와 자주국방을 내걸고 한국 사회의 변혁을 주도했다며, 4·19와 5·16 정신은 결국 하나이고 특히 5·16은 우국충정의 순수한 거사였다고 기술했다.

“내년 선거 앞두고 역사의식 왜곡”

지난 5월 가 주도한 현대사학회가 출범했고, 6월에는 백선엽 KBS 다큐멘터리 방영, 8월에는 이승만 KBS 다큐멘터리 방영, 9월에는 박정희 기념관 개관, 12월에는 대한민국 역사기념관 개관 등 역사의 나침반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으려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 우익의 움직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사학과)는 “이승만 치하에서 횡행했던 반공 테러 집단을 활용한 마녀사냥이 이제는 방송의 세몰이 여론화를 통한 극우 세력의 색깔 공세로 재현되고 있다. 내년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역사의식을 왜곡하여 국민을 상대로 야바위 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학계의 원로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분단 노선을 합리화하는 보수 우익은 친일파 덕분에 경제발전을 이뤘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 백선엽과 이승만을 띄우지만 국민과 역사의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2011년 9월 30일 금요일

[사설]‘도가니 충격’ 장애인 인권 신장 획기적 계기 돼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1-09-29자 사설 '‘도가니 충격’ 장애인 인권 신장 획기적 계기 돼야'를 퍼왔습니다.
청각장애 아동시설인 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의 상습 성폭행 사건을 담은 영화 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성폭행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형사처벌을 받고 학교 재단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 데 대한 국민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경찰은 인화학교 전면 수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교육 당국은 전국 41개 장애아 특수학교 특별점검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도 한목소리로 관련법 개정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 같은 ‘도가니 현상’을 계기로 복지시설 장애 아동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물론 장애인에 대한 인권 유린을 막을 근원적 해결책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2005년 세상에 드러난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처리 결과 때문이다. 교장 등 가해자 10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명뿐이었다. 법원 측은 친고죄인 아동 성폭력 범죄, 피해자와 합의, 공소시효 소멸 등 당시 법과 양형 기준을 따지면 불가피했다고 한다지만, 국민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더 큰 분노를 사는 것은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포함해 가해자 5명이 버젓이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용기를 내 성폭력 실태를 고발한 교사만 해임됐을 뿐이다. 재단 이사진이 친인척과 지인으로 구성된 족벌 경영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건 재수사와 인화학교 폐쇄,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등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정치권도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미성년자 성폭력 범죄 공소시효 폐지, 형 감경 금지 등을 담은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회복지재단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진에 공익이사 선임을 의무화하고 위법 행위자는 강제 퇴출시키도록 하는 ‘도가니법’(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법안이 처음 추진되는 것은 아니다. 인화학교 사건이 폭로된 뒤 2007년 정부가 복지사업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한나라당과 종교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성폭력 범죄 처벌 특별법 개정안은 2009년 발의됐으나 논의 부족을 이유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관련 당국과 정치권은 뼈저린 반성과 함께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복지시설 장애 아동을 성폭력으로부터 지키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감독기관이 평소 철저한 관리와 감시로 문제의 소지를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가니 충격’은 장애인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에 크나큰 경종을 울렸다. 우리 사회가 모든 장애인의 보호자로서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껴안게 되는 전기가 되길 바란다. 결코 반짝 관심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 많던 모래, 어디로 갔을까?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1-09-30자 기사 '그 많던 모래, 어디로 갔을까?'를 퍼왔습니다.

다큐멘터리사진가. 이미지프레시안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 들지만, 기실 홀로 오지를 떠도는 일을 좋아한다. <흐르는 강물 처럼>, <레닌이 있는 풍경>,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사진가로 사는 법> 등을 쓰고 <중국 1997~2006>, <이상한 숲, DMZ> 등을 전시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inpho 를 운영한다


모래도 증발할까? 섬전암이라는 것이 있다. 낙뢰가 모래에 떨어지면 고압의 전기가 엄청난 열로 전화해 모래를 녹여 만든 유리 암석이다. 수집가들에게 꽤 고가에 판매된다고 하니 흔한 것은 아니다. 결국 모래는 증발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모래가 증발한다. 김진애 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국토부의 ‘농경지 리모델링 준설토 부족 반입에 대한 조치계획’이라는 문건에서는 금강 3개 지구와 낙동강 19개 지구에서 농경지 리모델링에 사용할 준설토 반출량과 반입량이 280만1000㎥의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은 “이는 준설토 10㎥를 실을 수 있는 15t 덤프트럭 28만대 분량”이라며 “수사를 의뢰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모래가 증발한 것이다. (사진 경북 상주 낙동강)

전부터 4대강 공사 지역을 다니면서 한국사회 대형프로젝트 후유증 중 하나인 빼돌리기가 있다면 ‘모래’일 것이라 생각했다. 건축업하시는 분 다 이시겠지만 모래 중에서도 ‘강사’가 가장 귀하다. 건축자재로 으뜸이라는 것이다. 그런 모래가 흙과 뻘이 혼합된 준설토에 함부로 섞일 수 있는가? 준설 때부터 모래는 따로 적치했다. 농지 매립에 사용되는 것은 준설 된 흙과 뻘이고 건축용 모래는 애초부터 돈이 되는 물건이었다. 모래는 증발한 것인가? 빼돌린 것인가? 권도엽 장관은 “골재 반입량 차이는 반입된 뒤 다지는 과정에서 물빠짐 등 변형 때문”이라 했다. 그 말대로라면 28만대 분량의 물이 빠져나간 것이다. 과학적 근거 있나? (사진 위 충남 공주 금강, 아래 경북 창녕 낙동강변)

영산강에서 퍼 올린 모래는 나주시가 멋대로 관변단체에게 기증하고, 상주는 시가의 1/10정도인 ㎥ 당 1300원에 팔았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의 인심은 참으로 후해 3000원을 넘어가는 지자체가 없었다. 경상북도 관계자는 “낙동강사업 초창기부터 준설토 선별처리를 정부에 요청했으나, 4대강추진본부가 공기 등을 이유로 선별처리 없이 매각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세척시설을 갖추고 공간을 확보하려면 시간, 공간, 예산 등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공사의 빠른 진척을 위해 정부가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말뜻은 준설토가 모래와 흙이 섞여있는데 선별할 시간이 없어 헐값에 넘겼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헐값에 받은 놈은 노난 것이다. 아니면 함께 노났던지. (사진 위 충남 부여 금강, 아래 경북 상주 낙동강변)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07년 골재 8억㎥을 준설해 판매한 8조 원으로 “국민 세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토해양부도 2009년 6월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준설토 판매 수익으로 전체 사업비의 20~30%가량을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준설토 판매 수익금이 3171억 원이며, 그 중 909억 원을 국고로 환수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의 준설 공정이 대부분 마무리된 현재까지 지자체의 준설토 판매 대금은 1892억 원에 불과하다. 특히 생산 비용을 제외한 수익금이 100억 원 이상 발생한 지자체는 단 한 곳도 없어, 국고로 환수된 수익금도 0원이다. 김진애 의원은 “경남 창녕군에서 두 명의 전직 군수가 골재채취업자들에게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등 골재사업은 이미 비리와 특혜의 복마전이 되었다”며 “대구·경북지역 지자체들이 준설토를 헐값에 매각하는 것은 또 다른 ‘준설토 게이트’로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위 충남 연기 금강, 아래 경북 상주 낙동강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모래강은 내성천이다. 내성천의 물줄기 보다 몇 배 큰 유역이 모래로 덮여 있다. 금모래 은모래라 이름 되는 그 내성천 모래다. 수만년 동안 물을 정화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노릇을 해왔지만 영주댐으로 수몰된다. 아마도 영주댐이 물을 가두기 시작하면 이 모래들을 모조리 퍼낼 것이다. 그리고는 소리 소문 없이 누구네 건물을 짓는 특급 건축자재가 될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숙한 나라인가? 이 얼마나 멍청한 국민인가? 내 땅 누대로 물려줘야 할 국토가 이렇게 유린 당하고 전유 당하는데도 분노하는 이 없다. 모래는 증발하지 않는다. 강에서 퍼 올린 모래를 몰래 팔아먹고 사들여 제집 짓는데 사용한 죄과는 끝까지 물어야 한다. (사진 경북 영주 금광리 내성천 지류)

[사설] 외교부가 외교문서 존재조차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29자 사설 '외교부가 외교문서 존재조차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를 퍼왔습니다.
미국의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해 한·미 정부 대표가 교환한 외교서한을 놓고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자중지란에 빠졌다.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2007년 6월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때 미국 국무부 고위관계자와 교환한 2건의 외교서한을 엊그제 행정소송 재판에서 공개했다. 미국이 한국에 전문직 비자 쿼터가 따로 배정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중요한 외교서한이 공개됐는데도 통상교섭본부는 서한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주장한다. 협정문 한글 번역 오류 사태에 이어 통상교섭본부의 무책임한 자세와 무능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다.
미국의 전문직 비자 쿼터 배정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나라에 주는 일종의 혜택이다. 우리 정부가 2007년 6월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따라 추가협상을 하면서 겨우 얻어낸 성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협상 타결 뒤 김현종 본부장은 물론이고, 당시 협상 수석대표였던 김종훈 현 통상교섭본부장도 쿼터 확보 가능성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정부의 약속이 이행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통상교섭본부는 “전문직 비자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어떤 공식적 약속도 받은 바 없다”고 다른 말을 해왔다. 하지만 김현종 전 본부장이 지난해 12월 펴낸 에서 외교서한이 교환된 사실을 거듭 밝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이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내 결국 법정에서 드러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제 통상교섭본부는 “김현종 당시 본부장이 외교서한을 미국 쪽에서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부는 지난 4년간 그 존재를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중대 외교문서를 김 전 본부장이 본부에 공식 접수시키지 않고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니면 통상교섭본부가 이를 알고도 몰랐다고 발뺌하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서로 요구 사항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주고받기를 하면서 타결된다. 그런데 전문직 비자 쿼터와 관련한 통상교섭본부의 해명은 서로 주고받은 중요한 약속 가운데 하나를 빠뜨린 채 협정문에 정부 대표가 서명을 하고,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밀어붙였다는 얘기다. 비준동의안 심의에 들어간 국회가 경위를 철저하게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다.

[사설] 미군 범죄 부추기는 불평등조약 개정 서둘러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29자 사설 '미군 범죄 부추기는 불평등조약 개정 서둘러야'를 퍼왔습니다.
1995년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병사들이 현지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오키나와가 발칵 뒤집히고 일본 여론이 들끓었다.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죄했지만 이후 오키나와 정서는 미군기지 반대로 완전히 돌아섰다. 후텐마 미 해병대 기지 이전문제 갈등의 뿌리도 그 사건과 닿아 있다. 세계가 주목한 그런 미군 강력범죄가 이 땅에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법당국은 미군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기는커녕 수사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부당한 현실은 지난 24일 동두천 미군 10대 소녀 성폭행 사건을 통해서도 재확인됐다. 경찰은 범행 사실과 범인을 확인했음에도 당사자의 자진 출석을 미군 당국을 통해 요청했다. 출두한 미군은 범행 사실을 시인하고도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고,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불구속 의견을 냈다.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당장 구속 수감됐을 사건이다.
주한미군 범죄자는 현행범으로 체포당하지 않는 한 우리 경찰이 마음대로 구속 수사할 수 없다. 강력범죄에 한정해서 현행범이 아니어도 미군을 구속할 수 있지만 미군 쪽이 동의해야 한다. 미군은 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일 뿐이다. 거꾸로 미군 당국이 피의자를 자체 구금하겠다고 주장하면 우리 당국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001년에 개정된 현행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22조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이번 성폭행 사건 담당 경찰이 검찰에 불구속 의견을 낸 것도 바로 이런 현실 때문이다. 해보나 마나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 본 것이다.
유사 사건들, 심지어 60대 성폭행 같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흉포한 사건들이 이 어이없는 협정 때문에 왜곡 처리되고 있다. 그것이 다시 범죄를 부추긴다. 최근 주한미군 수는 3만8000여명에서 2009년 2만6000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미군 범죄는 2004년 298건 324명에서 2010년 316건 380명으로 늘었다. 병력 감소를 고려하면 75%나 는 셈이다.
미국은 재빨리 진화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유감’ ‘사과’와 ‘협조’ 약속으로 이런 고질병이 치유될 리 없다. 숱한 전례들이 그걸 말해준다. 또다시 적당히 얼버무릴 작정이 아니라면 하루빨리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

[사설] 인천공항 편법 매각 안 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29자 사설 '인천공항 편법 매각 안 된다'를 퍼왔습니다.
인천공항공사가 신주 발행 형태의 편법 매각 방안을 추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장제원 의원이 공개한 인천공항공사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작당 모의하듯 이런 계획을 세우고 매각 주간사들과 함께 지분매각 협의체 운영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어제 국회의 인천공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나서서 집중 성토를 한 것은 당연하다.
이채욱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정례적으로 하는 실무적인 회의 중 하나여서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알았다면 법을 무시하고 월권을 한 데 대해 책임져야 하고, 몰랐다면 사장 자격이 있는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분매각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 관련법의 개정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편법으로 이런 수를 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정부가 100% 지분을 갖고 있어 자체적으로 지분매각을 추진할 권한이 없다. 그렇다면 정부가 뒤에서 편법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정황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국부 유출과 특혜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인천공항 지분 매각에 열을 올리는 속셈은 뻔하다. 관련법이 상임위에 계류중인데도 기획재정부는 새해 예산안에 인천공항 매각 대금으로 무려 4000억원을 잡아놓았다. 국토해양부는 앞서 인천공항 지분 15%에 해당하는 매각 대금 수천억원을 도로 포장 예산에 미리 배정했다. 4대강 등에 재정을 쏟아붓고는 알짜 공기업 지분을 팔아서 주머닛돈 쌈짓돈으로 벌충하려고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인천공항 확장공사 투자 재원이 필요하다는데 인천공항의 이익금과 차입금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어 설득력이 약하다. 공항 서비스가 세계적 수준이지만 효율성이 떨어지고 취항사와 환승률은 세계 주요 공항에 비해 여전히 미흡해, 지분매각을 통해 시장의 감시와 견제 기능을 도입해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논리 또한 궁색하다.
인천공항은 해마다 수천억원의 흑자를 내는 알짜 공기업으로 6년 연속 세계 최우수 공항으로 선정될 정도로 경영실적과 서비스가 좋다. 민영화하면 공공성은 뒷전이고 수익성이 우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분 매각을 둘러싼 여러 의혹과 정치적 논란을 무릅쓰고 굳이 지금 시점에서 우량 공기업 매각을 추진할 이유는 없다.

뉴라이트, '자유 민주주의' 용어 집착 왜?


이글은 미디어 오늘 2011-09-28 기사 ' 뉴라이트, '자유 민주주의' 용어 집착 왜?'를 퍼왔습니다.
[기고]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결성한 한국현대사학회의 활약이 눈부시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09 개정 역사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것도 모자라 '식민지 근대화론'도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 학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이 유엔의 도움으로 세워졌다는 내용을 반영하자고 했다고 한다.

기실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현대사학회 전에 식민지 근대화론에 터잡고, 5.16군사정변을 혁명이라 칭했던 교과서포럼이 있었다. 교과서포럼은 역사투쟁의 일환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들었는데, 교과서의 이름이 대안교과서였다. 교과서 포럼과 한국현대사학회는 사상적 배경이나 주요 구성인물, 주장 등이 거의 동일해 샴쌍둥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뉴라이트 진영의 이론적 교사라 할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박효종 서울대 교수, 이인호 서울대 교수, 강규형 명지대 교수 등이 교과서 포럼과 한국현대사학회에 모두 포진하고 있는 걸 봐도 두 단체의 사상적 근친성이 확인된다.

경제성장과 반공이라는 관점으로 본 조화로운 대한민국 역사

한국현대사학회의 교과서 개정 운동은 몇 개의 코드로 포착할 수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열광적인 애호는 근대성 및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반공(反共)이라는 가치의 절대성을,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48년 건국을 강조하는 행위는 이승만 체제의 규정력과 우월성을 각각 의미한다.


조선일보 9월21일자 8면.
한국현대사학회의 해석에 따르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계기적 사태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건국이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근대적 제도와 인프라를 조선에 이식, 착근함으로써 야만과 전근대에 머물던 조선에 탈아입구(脫亞入歐)와 근대화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이는 곧 본격적인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시발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승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기초한 건국은 반공과 친미, 세계시장과의 결합을 국가지도이념으로 채택한 까닭이다.
한국현대사학회를 위시한 뉴라이트 진영의 눈을 빌어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면 한국현대사는 근대화 및 산업화로 상징되는 경제성장과 반공을 중핵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두 축으로 해서 쉼없이 발전해 온 역사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나 이승만의 제왕적 통치, 박정희가 저지른 2번의 쿠데타(5.16군사정변과 10월 유신)와 유사파시즘적 통치 등은 흠이 없지는 않았지만,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부단히 신장하고 확산시킨 탓에 강한 긍정의 대상이 된다.
일제의 조선반도 강제병탄 및 일제하 식민통치의 혹독함도, 이승만이 저지른 성급한 단독정부 수립 및 그 결정에 상당부분 기인한 분단과 전쟁,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숱한 인권유린과 민간인 학살, 독재와 민주주의 유린도, 박정희가 자행한 헌정중단행위와 극단적인 인권억압 및 민주주의 말살도 경제성장과 반공이라는 이름의 뉴라이트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불가피했거나 대의(?)에 수반(隨伴)되는 현상일 따름이다.
한국현대사학회를 포함한 뉴라이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답고 일관되다. 일제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과 역할에 충실했으며, 암(暗)보다는 명(明)이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들이다. 반공을 핵심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돌진적 경제성장을 동시에 추구한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이며, 정신의 적장자이기도 한 박근혜는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해 당당히 대한민국 역사의 한복판으로 진입하게 된다. 박정희가 뉴라이트 역사관에 의해 완벽히 복권됨에 따라 역사적 정당성은 박근혜에게 부채가 아닌 자산으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에?
뉴라이트 학자들이 구성한 한국현대사학회의 한국현대사 인식이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인간의 존엄성 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폄훼(貶毁)도 이들이 저지르는 대표적 오류 가운데 하나다.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우리 힘으로는 근대화도, 경제성장도, 자유민주주의도 불가능했다, 일제가, 미국이, 이승만이, 박정희가 경제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가능케했다'고 굳게 믿으며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주체성을 불신한다.
또한 우승열패의 신화가 이들의 신앙이며, 물질적 풍요만이 이들이 사는 이유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심화시키기 위해서 경제성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은 언제라도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생각이다.
진실로 우려되는 것은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한국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승열패의 원리와 물질적 풍요를 종교로 삼고 살아간다. 반공이라는 악성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도 제법 된다. 공동체의 장기지속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인 정의, 공정, 박애, 연대, 평화 같은 가치들은 교과서 안에서 화석이 된 지 오래다. 공동체의 통합과 지속을 위해서 필요한 덕목들은 개인 삶의 고양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바로 지금 국민들의 눈과 마음을 어지럽히는 뉴라이트 역사관과의 결연한 이론투쟁이 절실히 요청된다. 역사를 보는 눈이 현재와 미래를 규정짓기 때문이다. 우승열패의 신화와 물신숭배를 사상적 배면에 깔고 반공을 핵심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제일주의를 역사의 동력으로 삼는 뉴라이트 역사관은 이미 파산선고를 맞았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따라 걸어온 대한민국의 현실이 가장 강력한 증거다. 

정의, 공정, 박애, 연대, 평화라는 가치가 결핍된 대한민국은 박정희식 경제발전이 남긴 후유증에 신음하고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의 실증적 귀결은 공동체의 해체와 개인 삶의 피폐일 따름이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관철된 역사 속에는 인간적 존엄도, 주체성도, 지속가능한 경제발전도 없다.

2011년 9월 29일 목요일

대숲 바람... 혼을 쏙 빼놓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28일자 기사 '대숲 바람... 혼을 쏙 빼놓네'를 퍼왔습니다.
[여행] 거제 제일브랜드를 꿈꾸는 하청 '거제맹종죽테마파크'


▲ 담쟁이넝쿨 담쟁이넝쿨이 가을에 물들었다. 대나무를 칭칭 올라가며 공존하는 모습이다. ⓒ 정도길대나무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 하나가 사군자 중 하나라는 것. 또 하나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하는 시의 한 구절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하나는 왜 속을 비우고도 그렇게 잘 자랄까 하는 것.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이런 의문은 줄을 잇는다. 뜬금없이 왜 대나무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대숲길 거제맹종죽테마파크에 있는 대숲 길. 아늑하고 걷기에 아주 편하다. ⓒ 정도길
우리나라에서 대나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데가 죽제품으로 유명한 담양이 아닐까? 그런데 경남 거제에도 대나무 숲을 조성하여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해서 25일 이곳을 찾았다. 거가대교를 건너 장목 IC에서 5.7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하청면 '숨소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이곳 하청은 거제에서도 대나무 숲으로도 유명한 곳.

진한 푸른색이 가득한 울창한 대숲에 다다르자 푹신한 길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때맞춰 부는 바람에 잎사귀가 춤을 춘다. 대숲 바람에 춤추는 잎사귀는 여행자의 혼을 빼 놓는다. 맑은 날씨인데도 저 깊은 대숲은 어두침침할 정도다. 그만큼 대나무가 빽빽이 서 있다는 것. 평평한 길을 지나 약간 언덕길로 접어들자 중간 중간 쉼터도 있다. 분위기에 맞게 대나무로 만든 의자다.

▲ 대나무 거제 대나무 숲 공원 ⓒ 정도길

잠시 쉬는 동안 대숲을 바라보니,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하는 시, 가 생각난다. 고산 윤선도가 56세 때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의 한 소절. 이 시는 자연 중에서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그리고 달(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자신의 자연애를 표현한 시조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키며 속은 어이 비어있는고
저렇고도 사철에 푸르니 나는 그를 좋아하노라

원문을 찾아보니 이렇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햐 하노라

▲ 대숲 길 대숲 길 ⓒ 정도길발길을 옮겨 대숲을 따라 걷는다. 쭉쭉 뻗은 대나무와 달리 어떤 대나무는 허리가 굽어 있다. 마디도 여느 대나무와는 달리 간격이 좁다. 품종이 다른 것일까. 담쟁이 넝쿨이 대나무 허리를 감은 채 끝까지 오를 기세다. 생장을 멈추고 결실의 계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노랗게 물이 들었다. 들국화의 한 종류로 보이는 야생화가 곱게 펴 있다. 대나무와 국화, 4군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가을에 잘 어울려 보인다.

▲ 야생화 거제맹종죽테마파크에 핀 야생화. 가을을 한층 느끼게 해 준다. ⓒ 정도길

대나무는 왜 속을 비우고 자랄까? 대나무는 성장 속도가 빠르다. 때문에 줄기의 벽을 이루는 조직은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지만, 속을 이루는 조직은 세포분열이 느리게 일어난다.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성장 속도로 속이 비게 된다는 것.

속을 비우면 그 만큼 힘도 강해지는 법.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휘어질지언정, 결코 부러지는 법이 없다. 공사장에 비계용으로 쓰는 쇠 파이프도 대나무 속이 빈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 사람도 대나무에서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걷다보니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높은 곳 대나무 숲에도 가을바람에 대숲이 소리 내며 울음을 울어댄다. 대 잎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청만은 호수와 닮은 그림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다. 여기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 하청만 거제 맹종죽테마파크에서 바라본 하청만. 호수와도 같은 바다다. ⓒ 정도길

이곳 대숲 길은 여유로움을 가지고 뭔가 생각을 하게끔 해 준다. 인간은 자연에서 배우는 것도 많지만,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는 예부터 선비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사계절 그 어느 때를 보더라도 그렇다.

봄철 죽순은 새로운 힘을 상징하고, 여름철 푸름은 더위를 잊게 하는 시원함 그 자체. 가을바람에 잎사귀 끼리 부딪치는 대숲바람은 꿈과 낭만을 노래하고, 푸른 잎사귀에 내린 겨울눈은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한다. 유난히 대나무를 좋아하는 나, 그래서 나를 상징하는 닉네임도 오죽하면 죽풍(竹風)이라 지었을까.

▲ 댓잎 가을하늘을 덮은 댓잎 ⓒ 정도길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여행. 먹고, 마시고, 즐기며 노는 것도 좋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라는 생각이다. 여행지에서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휴식하러 왔는지, 고민하러 왔는지 해서는 아니 되겠지.

하지만, 이런 대숲 길에서 천천히 걸으며 사색에 잠기는 여행이야말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아닐까. 더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우는 뜻 깊은 여행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물질만능주의 사고를 쫓아가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의 가족여행은 커다란 깨우침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이다.

▲ 거제맹종죽테마파크 거제맹종죽테마파크 입구 ⓒ 정도길

앞으로 이 공원은 여행자들을 위해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총 면적 10만 2154㎡의 우거진 대나무 숲을 조성하고, 걷기 편한 숲길을 조성한다는 것. 천연의 맹종죽을 활용한 캐릭터와 이미 개발한 댓잎차, 댓잎환을 비롯하여, 장아찌, 일품메뉴, 즉석메뉴 등 식가공품도 개발 중이란다. 통합브랜드는 '숨소슬'로 지었으며, 품질확립을 위한 지리적 표시제 등록도 마친 상태.

▲ 대숲 길 걷기에 아주 편한 거제맹종죽테마파크 대숲 길 ⓒ 정도길

명품이나 브랜드는 하루아침이나, 일이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공요인에는 반드시 특별한 그 무엇이 있기 마련. 거제에 하청 맹종죽이 들어온 것은 소남 신용우 선생이 1927년 일본에 갔다 오면서 3그루의 맹종죽을 가져와 심었던 것이 최초.

1980년대까지 높은 가격으로 일본으로 수출돼 효자노릇을 했으나, 이후 중국산에 밀리면서 한 때 주춤했던 것. 다시 재도약을 꿈꾸는 죽순의 본고장, 이곳 하청 '거제맹종죽테마파크' 공원. 거제 제일의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의 여행자를 불러들일지 관심 있게 지켜 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으며, 거제지역신문인 거제타임즈, 뉴스앤거제, 거제in에도 싣습니다.

낙화암에 삼천궁녀는 없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28일자 기사 '낙화암에 삼천궁녀는 없었다'를 퍼왔습니다.
[여행] 1500년 전 백제의 시간을 걷다, 부소산성

햇살이 뜨거웠던 지난 8월 20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부소산으로 갔습니다. 백마강을 옆구리에 끼고 부여 시내를 부드럽게 내려다보는 산이 부소산입니다. 그곳에는 옛 가락에 늘 빠지지 않는 삼천궁녀의 낙화암도 있습니다. 학창시절 경주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수학여행 코스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예전의 기억은 간 데 없고 다만 주차장만 낯에 익었습니다.

▲ 부소산성 ⓒ 김종길

매표소를 지나니 숲길이 이어집니다. 돌로 바닥을 깔았는데 걷기가 영 불편합니다. 그래서 숲으로 난 길을 걸었습니다. 안내판이 나왔습니다. 길은 두 갈래, 어떤 길로 가도 낙화암과 고란사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행자는 오른쪽 비탈길을 택했습니다. 낙화암만 곧장 다녀올 거면 왼쪽 길이 빠르지만 그냥 느긋하게 걷기로 마음을 먹은 바에야 그 옛날 백제의 흔적을 구석구석 느끼고 싶었습니다. 삼충사에서 옛 성의 흔적을 따라 반월루와 사자루를 거쳐 낙화암과 고란사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전체 4km정도로 2시간 남짓 걸리더군요.

▲ 삼충사 ⓒ 김종길

삼충사에 제일 먼저 들렀습니다.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 홍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입니다. 1400년 전 그들의 충심이 사당 옆 붉은 배롱꽃에 서려 있는 듯합니다. 숲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사당은 그 단정함으로 엄숙하기 그지없습니다.

삼충사 옆을 돌아 숲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길은 옛 부소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토성의 흔적이지요. 울창한 솔숲에 토성의 흔적이 가려질 법도 하지만 옛 흔적은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해설사가 아니었다면 이 호젓한 길을 모르고 누구나 가는 무미한 길로 갔을 것입니다.

▲ 부소산성 토성 ⓒ 김종길

햇살도 숲에 가려 잠시 번득이는가 싶더니 이내 자취를 감춥니다. 숲의 기운과 옛 역사의 뭉텅한 흔적만을 쫓아 얼마간 걸으니 구름에 비켜선 누각 한 채가 나타났습니다. 반월루입니다.

부소산의 누각 이름에는 해와 달이 있습니다. 해를 맞이하는 영일루가 동쪽에 있고, 달을 구경했던 송월대가 서쪽에 있습니다. 반월루는 딱 그 중간쯤에 있습니다. 높이 106m에 불과한 언덕 같은 부소산이지만 평지에 우뚝 솟은 산이라 해와 달을 보기에 이처럼 좋은 장소도 없을 듯합니다. 그 옛날 밤이면 화려했던 사비궁과 유유히 흘러가는 백강을 보며 후원 부소산에서 달구경을 했다면 이보다 기막힌 경치가 어디 있었을까요.

▲ 반월루 ⓒ 김종길

땀 한 번 훔치고 반월루에 올랐습니다. 누각의 층계를 한 층 한 층 오를 때마다 풍경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침내 시원한 바람 한 자락을 몰고 왔습니다. 그 바람의 끝에 드넓은 부여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탁 트이는 전경이었습니다. 부여 시내를 천천히 에둘러 흐르는 백마강은 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한참이나 넋을 빼고 보았습니다. 아예 난간에 걸터앉아 멍하니 내려다보았습니다. 굳이 저기가 어디라고 말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아득한 풍경은 백마강을 거슬러 그 옛날 사비로 가고 있었습니다.

▲ 반월루에서 내려다본 부여 시내와 백마강 ⓒ 김종길

다시 숲길이 이어집니다. 옛 백제 왕자들이 산책했다는 태자골 숲길이 나옵니다. 길이 여러 갈래니 굳이 욕심내지 않고 그 숲길은 왕자들에게 내어주고 사자루로 향했습니다.

얼핏얼핏 숲 사이로 보이는 길이 너무 곰살맞습니다. 쭉쭉 뻗은 소나무와 짙은 풀 사이로 허연 속살을 드러낸 야릇한 길입니다. 백제의 여인과 남몰래 단둘이 걷고 싶은 그런 길입니다. 꼭꼭 숨겨 놓고 싶은 길입니다. 가끔 길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해 다시 길 위에 서곤 합니다. 어느새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듯합니다.

▲ 남몰래 걷고 싶은 길 ⓒ 김종길
▲ 남몰래 걷고 싶은 길 ⓒ 김종길

길은 사자루에서 더 이상 오르지 못합니다. 사자루는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원래 달구경을 했다는 송월대가 있었던 자리로, 1919년 임천면의 문루였던 개산루를 이곳으로 옮겨 지으면서 사자루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건물을 세울 때 정지원이라고 적힌 백제시대 금동석가여래입상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사자루 현판은 의친왕 이강이 썼습니다.

사자루에서는 금강이 백마강으로 들어오는 장대함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인위적으로 모래를 파냄으로 인해 백제에 대한 회상마저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낙화암으로 곧장 가지 않고 고란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자루에서 고란사까지는 제법 경사가 있는 내리막입니다.

▲ 사자루 ⓒ 김종길

강변 언덕에 있는 고란사는 아주 작은 절입니다. 황톳물 백마강이 바로 앞에 흐르고 강을 오르내리는 선착장이 코앞입니다. 고란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백제 아신왕 때 창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낙화암에서 목숨을 던진 궁녀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고려 초기에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법당 건물은 조선 정조 21년(1797)에 은산의 숭각사에서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고란사하면 누구나 고란초와 낙화암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 흔했다는 고란초는 이야기일 뿐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물을 먹고 아이가 되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란약수는 지금도 콸콸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 고란사 현판, 해강 김규진이 썼다. ⓒ 김종길

고란사라고 적힌 법당 현판이 너무 예뻐 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해강 김규진의 글씨였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낙화암으로 돌아갔습니다. 낙화암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었습니다. 낯섦이 없으면 편안해야 되는데, 애잔하고 가슴 한 구석이 퀭한 듯합니다. 백화정에 잠시 올랐다가 벼랑 끝에 서서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강 아래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구슬픈 음악을 실고 배 한 척이 다가옵니다.

▲ 낙화암 백화정 ⓒ 김종길

낙화암에 오면 누구나 삼천궁녀를 떠올립니다. 그에 대한 말도 무성하지요. 에는 사비도성이 함락될 때 궁인들이 투신했다고 하여 '타사암'이라 불렸다고 적고 있습니다. '낙화암'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문인들의 글에 자주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궁녀의 수를 삼천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 노을 지는 백마강 ⓒ 김종길

15세기 후반의 문인 김흔이 에서 '삼천가무위사진三千歌舞委沙塵 삼천 궁녀들이 모래에 몸을 맡겨'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백제 멸망의 역사를 극적으로 묘사한 시적 표현으로 여겨집니다. 낙화암에 서 보니 이조차도 허망하게 여겨집니다.

지는 해를 남겨두고 내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둘러 내려가 버린 빈 숲길을 혼자 걸었습니다. 숲에 새겨진 길처럼, 희미한 백제의 역사도 이제 조금은 또렷이 다가온 듯합니다.

▲ 관북리 왕궁 터 ⓒ 김종길

터만 남은 서복사지에는 어둠이 내렸습니다.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왕궁 터 너머로 햇빛이 아주 잠깐 비추었습니다. 그러곤 사라졌습니다.

백제,
천오백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 가서 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
  
신동엽의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