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0일 토요일

종교 달라도 우리는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2011. 09. 10자 글 '종교 달라도 우리는 같은 산을 오르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2006년 예루살렘 순례중 겟세마네동산에서 함께 노래하는 다종교 여성수도자 삼소회 회원들 사진 조현
종교가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기 종교의 진리 주장을 하는 신자들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 다수 종교들이 일천년 이상이나 된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종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배타주의적 진리 주장을 제외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종교란 근본적으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 같은 것으로서 어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내포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식의 견해이다. 마치 입맛이 사람마다 다르고 옷 입는 취향이나 미적 감각이 각자 다르듯이, 종교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에 대해서도 그러한 입장을 취하는 이론이 있다. 선악의 판단이나 가치 판단은 개인의 느낌이나 경험 정도이지 결코 객관적 지식의 문제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emotive theory"라고 부른다). 도덕 판단이나 가치 판단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판단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의 범주에 들기 어렵고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다. 도덕이나 가치의 문제는 사실의 세계와는 무관하고 단지 주관적 느낌이나 태도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일 수 있는 윤리, 도덕, 가치관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주장을 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나 초월적 실재에 관여하는 종교의 경우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는 더욱 쉬울 것이다. 종교는 워낙 일반적 상식이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며, 때로는 "믿음"이라는 것을 강요하면서 이성에 폭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진리 주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거나 필요없다거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문제에 대한 안이한 태도나 회피일 뿐, 진지한 문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종교가 상식적 진리나 과학적 지식 같은 비교적 확실하고 객관성을 띤 진리를 주장한다거나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또 종교에서 진리의 문제가 전부라거나 가장 결정적이라는 말도 아니다. 사실 종교에서 초월적 경험이나 신비적 체험을 뺀다면 종교는 교리나 형이상학은 될지언정 생명력이 사라질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매료하고 사로잡은 힘 같은 것도 사라질 것이다. 종교는 단지 윤리만도 아니고 지식만도 아니며 철학만도 아니다. 종교는 그런 것들로 환원할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루돌프 옷토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는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두렵고 매혹적인 신비"(mysterium tremendum et fascinans)의 감정 같은 것을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를 순전히 개인적 느낌, 혹은 여럿이 공유하는 경험, 심지어 종교사회학자 에밀 뒤르깽의 이론대로 어떤 집단적 흥분 같은데서 유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견해들은 모두 자칫하면 종교를 하나의 주관적 환상, 자신의 욕망이나 바람을 투사한 희망사항(wishful thinking) 정도로 만들기 쉽다. 종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런 견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는 진리를 주장하되 초월적 진리를 주장하지 상식적 진리나 이성적 진리 정도만을 주장하지는 않으며, 종교적 진리나 사상을 순전히 우리의 느낌이나 정서, 순간적 직관이나 개인적 체험뿐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신의 계시든, 깊은 명상이든, 그 밖의 어떤 탈아적/몰아적 경험이나 신비 체험이든, 종교는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에 근거해서 초월적 진리를 주장한다. 


적어도 그러한 경험을 통해 주어진 것, 얻어진 것, 접한 실재나 세계가 아무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지라 해도, 그것이 단지 심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을 수용할 종교인이나 신비주의자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강한 종교 경험을 한 사람들 가운데는 경험을 통해 접한 세계가 일상적인 현실 세계보다도 더 리얼한 참된 실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신비경험을 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경험한 초월적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할 때는 -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 홀로 끝까지 침묵을 지키면 종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 진리 주장 내지 인식적 주장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종교들은 초월적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이런 자각이 깊으면 깊은 수록 종교는 문자주의의 유혹을 벗어나며, 자기 종교의 진리 주장에 대해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동서양 신비주의 문헌들은 예외 없이 이런 경향을 보인다. 다만, 인간의 종교적 경험보다는 하느님의 계시를 주장하는 이른바 "계시 종교들"에는 이런 겸손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초월적 신의 계시라 해도, 그것이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경험을 매개로 해서이며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해석되고 표현되고 전달된다. 아무도 신의 뜻 그대로를 전달할 수는 없다. 계시도 특정한 역사적, 문화적 제약 속에 사는 특정 인간의 경험과 언어를 매개로 하여 주어지는 한, 계시종교도 한계를 인정하면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계시된 진리의 문자적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우상숭배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하튼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한 진리 주장은 불가피하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떤 진술을 하든, 우리는 그와 동시에 자기 말이 참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거나 믿으면서 하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하는 사람은 없다. 종교적 언어, 교리적 언어가 아무리 초월적 진리를 전한다 해도, 그리고 상징이고 메타포라 해도, 모종의 진리 주장은 피할 길이 없다. 


문제는 종교들이 전하는 진리가 매우 다양하다는 데 있다. 이런 종교적 진리 주장들이 문자적 진리가 아니고 상징이라 해도, 그 상징이 가리키고 뜻하는 바를 말로 포현하는 한, 진리 주장은 피할 수 없으며, 진리주장의 차이에서 오는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 역시 피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종교적 진리가 신의 계시라든가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명상적 체험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진리주장은 더 초월적 권위를 띠면서 독단성과 절대성을 가지게 된다.


자기들만이 아는 진리가 일반적 지식에 적용되는 합리성의 기준을 초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처럼 유일신 신앙에 기초한 계시 종교들이 안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다양한 진리주장의 내용은 상이하지만, 그것들이 기초하고 있는 종교적 경험, 신비 경험 같은 것은 동일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신비주의 경험에서 종교의 진수를 보면서 종교들의 심층적 일치를 믿는 종교학자들이나 종교사상가들이 흔히 이런 입장을 취한다. "종교는 여럿이지만 신비주의는 하나다."라는 말은 이런 입장을 잘 대변해 준다. 여기서 신비주의는 물론 절대적 실재와 하나가 되는 신비적 일치(unio mystica)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지, 신비주의적 언어나 문헌 같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신비주의자들의 언어와 문자는 교리나 교설 못지않게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비주의자들의 신비적 합일의 체험에 관한 언사가 하나라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언사로 표출된, 혹은 표출되기 이전의, 순수한 신비적 경험 자체가 하나라는 주장이다. 진리 주장을 하는 종교들의 다양한 교리와 교설을 넘어서 불가언적 신비경험 그 자체에서 종교들의 일치를 보려는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한 가지 커다란 전제가 깔려 있다. 즉 신비적 합일의 체험이란 언어와 문자를 초월하는 경험이며, 언어를 전해 매개로 하지 않는 직접적 경험, "순수" 경험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순수 경험이 과연 가능한가가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종교학자들이나 신비주의 이론가들이나 종교철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언어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순수경험의 가능성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다. 인간의 종교적 경험이 아무리 순수하고 초월적이라 해도, 인간이 인간인 한 위대한 신비주의자들도 자기들이 딛고 사는 땅과 몸담고 사는 세상, 그들의 시대와 역사, 문화와 종교 전통의 언어를 완전히 초월하지 못한다고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비주의자들의 경험 역시 동일한 순수경험이기보다는 상이한 경험들일 것이며, 거기서도 종교들의 궁극적 일치는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신비주의자들의 경험 자체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신비 경험 이후에 회상되고 반성된 언어들뿐이기 때문이다. 이 언어는 물론 신비주의자들이 몸담고 있는 특정한 종교 전통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기에 신비경험 역시 상이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언어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 경험, 언어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난 순수한 경험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다.


설령 언어에 의해 해석되지 않는 경험이 가능하다 해도, 그것을 경험이라 할 수 있을까? 가령 언어를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에게도 경험이라는 말이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을까? 특정한 시간과 공간, 문화와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정한 종교 전통의 지배적 영향 아래 살 수밖에 없는 신비주의자들의 경험이 이런 모든 역사의 우연적 요소들을 초월할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신비경험을 유발하는 각종 명상법이나 수행법 자체가 특정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인간의 영혼 깊이에 숨어 있는 신성과 영성의 순수성과 보편성을 믿지만, 그것을 자각하고 실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제약들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신비주의자들도 역사적 조건 속에 살고 있는 구체적 인간이며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종교 간의 궁극적 일치를 교리나 사상도 아니고 종교적 경험이나 신비적 경험도 아닌 종교가 추구하는 대상, 즉 신 혹은 실재 자체에서 찾고자 한다. 우리가 종교경험을 통해 접하게 되는 실재, 신비적 경험을 통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실재, 우리의 종교 경험을 유발하는 실재 자체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 실재는 어느 종교, 어느 신비주의자에게도 완벽하게 주어지거나 경험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 실재, 초월적 실재는 종교마다 달리 개념화되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유일신 종교들의 하느님, 힌두교의 브라흐만, 도가의 도나 원기, 유교의 태극이나 천(하늘) 등이 예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개념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그런 상징어들이 가리키고 지향하는 궁극적 실재 자체는 동일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개념들의 배후에 있는 종교적 경험이 차이와 다양성을 면치 못한다면, 그런 경험들을 유발하는 궁극적 실재 자체는 혹시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것은 결코 입증된 이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다. 단적으로 말해, 모든 종교가 하나의 궁극적 실재, 동일한 실재에서 왔고 그것을 지향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교리도 상징도 종교적 경험도 모두 동일한 실재에 대한 다양한 접촉과 경험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지향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입증될 수 있는 성질의 가설은 아니지만, 그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상황과 그 개연성을 높여줄만한 현상들을 우리는 인류 종교사를 통해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가장 일반적으로, 우리는 적어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래 모든 인간의 인간성 - 지성, 감성, 도덕성, 영성 등 - 은 거의 같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종이나 민족들이 처한 지리적 환경이나 삶의 조건이 달라서 상이한 문화를 건설하고 상이한 종교들을 낳았지만, 영적 존재,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homo religiosus)의 인간성과 종교성, 그의 영성과 종교적 감성과 감각 - 나는 이것이 "종교적 인간"에 선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 은 대체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특히 구약 성서의 대 예언자들, 인도 우파니샤드의 현자들과 석가모니 붓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중국의 노자, 공자, 묵자가 출현한 이른바 "기축 시대"라고 명명된 (철학자 야스퍼스가 사용한 용어) 시기에 이르러서 인류의 도덕적, 영적 수준은 일제히 비약적으로 고양되는데, 종교를 비롯한 인류의 정신문명은 그 때 이미 기본적 패턴과 방향이 잡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다신론이나 다령 숭배가 극복된 이후의 대다수 "고등" 종교들은 기본적으로 단 하나의 궁극적, 근원적 실재로써 우주만물과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고 파악한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그리고 쉬바나 비슈누 신앙의 대중적 힌두교에서처럼, 궁극적 실재를 우주를 창조하고 주관하는 인격신으로 보는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이름과 형태를 지닌 우주만물과 현상계가 이름도 형태도 없는 원초적/원천적 실재로부터 전개되어 나온 것으로 파악하는 형이상학적 일원론(metaphysical monism)의 전통이다. 서양의 신풀라톤주의, 인도 우파니샤드의 사상, 도가의 도 사상이나 신유가의 태극/무극 사상이 그러하며, 불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형이상학적 일원론은 아니지만 다양한 현상계를 하나의 원리로 파악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일원론적 사상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중요한 점은 이들 사상이 인류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가 단 하나의 궁극적 실재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보는 일원적 사고를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고 둘이 아니며,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실재 내지 원리 또한 하나이지 여럿이 아니다. 만물은 이 궁극적 실재에서 하나로 통하고 통일된다. 인류 종교사와 문명을 지배해 온 유일신 신앙과 형이상학적 일원론은 우리의 가설, 즉 온 인류의 종교사가 결국 동일한 실재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동일한 실재를 지향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설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비록 궁극적 실재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것들은 아마도 동일한 실재를 여러 시각에서 달리 보고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사실 말고도, 우리는 비교종교학이 밝혀주고 있는 대로 보다 구체적인 종교들 사이의 유사점이나 공통점들을 열거할 수도 있다. 세계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교리나 사상, 유사한 종교 경험이나 현상들, 공통된 문제의식이나 구조나 역사적 패턴들 같은 것들이다. 자세한 논의는 이 글에서 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상이한 종교 전통과 다양한 상징체계를 통해 여러 가지 이름의 궁극적 실재와 다채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지상의 제약을 훌훌 털어버리는 날 다 같이 산 정상에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 같다. 산에 오르는 길은 비록 다르지만 우리는 도중에 자기 식으로 가끔씩 정상의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정상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사람은 가까운 길로, 어떤 사람은 먼 길로, 어떤 종교는 힘들고 험준한 길로, 어떤 종교는 평탄하고 쉬운 길로 산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산을 오르고 있으며, 마침내 모두가 한 정상에서 만나 기쁨을 나눌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 때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볼 것이며(visio dei) 궁극적 실재 자체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경지에 푹 잠겨 무한한 행복을 맛 볼 것이다. 우리 산행의 종착점, 우리 인생의 최종 운명(destiny, destination)은 죽음이 가져다주는 단멸의 허무가 아니라 절대적 생명에 동참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런 희망으로 세계 종교사를 공부하고 있으며, 이런 희망 가운데 심도학사에서 도반들과 함께 영적 등산을 계속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는 언론과 검찰의 합작품

이글은 한겨레신문2011.09.08 자 hook의 '피의사실공표는 언론과 검찰의 합작품'을 퍼왔습니다.

법원공무원으로, 2005년부터 인터넷신문과 블로그 등에 법조 관련 글을 써오고 있다. 언론에서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판결에 대한 분석, 판사 인터뷰, 사법 개혁과 관련된 글을 주로 발표했다. 어렵고 딱딱한 법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글쓰기 능력으로 네티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2010년 1월 <생활법률상식사전>(위즈덤하우스), 2011년 5월 <생활법률해법사전> 을 펴냈다. [페이스북, 트위터, 전자우편(야후)은 jundorapa]


[눈치코치법치]
유력 정치인 한 명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치자. 어떻게 될까. 검찰은 공식, 비공식 창구를 통해 그 정치인의 흠을 잡을 만한 정보를 흘린다. 언론은 검찰(이나 그 언저리)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받아쓰기’를 한다.
헌법과 법률에서 ‘피고인(또는 피의자)은 무죄로 추정된다’지만 적어도 언론보도에서는 유죄로 추정된다. 어디 정치인뿐이겠는가. 살인 사건이나 대형 사건에서도 일단 터뜨리기식 보도가 적지 않다. 주로 소스를 제공하는 곳은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언론 보도에서 피고인의 말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을 수 밖에 없다. 만일 피고인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하고, 재판도 아직 열리지 않은 상황이라면 폐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법은 피의사실공표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피의사실 공표죄는 수사기관이 범죄자를 기소하기 전에 피의사실을 언론 등을 통해 알렸을 때 성립한다. 이 죄는 수사상 기밀 유지, 피의자의 인권보호 등을 위한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는 재판을 열기도 전에 피의자가 사실상 유죄로 단죄된다는 점에서 피해는 막심하다. 더구나 은연중에 법원으로 하여금 유죄의 심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재판 끝에 무죄 판결이 나와도 당사자는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명예에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죄로 처벌받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문순 전 의원이 법무부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이 죄로 기소되거나 징계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후로도 기소된 사례는 찾기 힘들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거의 사문화한 상태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자기 식구를 기소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대신, 민사 재판에서 언론 보도를 통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나 언론사의 책임을 물을 때 법원은 수사기관의 행위가 피의사실 공표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를 간접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간첩사건은 피의사실 공표의 단골 사례이다. 2002년 대법원(2001다49692)은 이른바 ‘부산동아대 자주대오 사건’의 피고인들이 낸 손해배상 사건에서 피의사실 공표에 관한 기준을 제시한다.
(참고로 ‘부산동아대 자주대오 사건’은 1997년 수사기관이 만들어낸 공안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언론에 넘긴 간첩수사발표문을 통해 “학생운동권 출신 간첩 2명이 조총련에 포섭되어 국내에 잠입한 뒤, 경남지역 학생운동권을 포섭하고 학생운동 동향 등 정보를 수집해 조총련에 보고하고 운동권을 배후조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의 간첩죄 부분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피고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일부승소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이 판결에서 “국민들은 범죄에 관한 알권리를 가지고 있고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에 관해 발표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이러한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라며 필요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행위는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해 피의자 등에 대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피의사실 공표는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발표에 한정되어야 하고 ▲정당한 목적 하에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하여 공식절차에 따라 해야 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여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등은 피해야만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간첩 사건 발표가 자백만을 유력 증거로 삼았다가 무죄가 된 점, 당사자의 반박 의견이 없었고 표현이 단정적이었던 점, 당사자들이 간첩이라는 낙인이 찍혀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을 들어 수사기관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피의사실 공표는 개인의 명예훼손과 직결된다. 하지만 개인의 명예는 다시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하여 복잡한 양상을 띤다. 그동안 법원의 판례는 언론보도가 공익을 위한 것이고, 내용이 진실하거나 진실이라고 믿는 데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언론의 자유를 중시하더라도 수사기관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이 별 생각없이 받아쓰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최근 곽노현 교육감의 공직선거법 위반 보도들도 이같은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이 개인을 깎아내리는 기사도 등장하고 있다.
형사사건에 대한 사법절차는 통상 이렇게 이루어진다.
고소 고발 (또는 수사기관의 인지)→수사→기소→재판→판결→형 집행
한국의 형사사건 보도는 대부분 수사단계 전후에 집중된다.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아무래도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국민의 알 권리는 존중해야 하고 취재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 문제는 범죄 사건 보도에서 수사기관에 의존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데 있다. 수사기관은 특정 사건에 대해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언론을 이용하고, 언론은 특종을 잡기 위해 이를 진실인 것처럼(혹은 진실이라 생각하고) 별다른 검증없이 보도하는 관행이 너무 굳어져 가는 것 같다.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의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생긴 합작품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이 합작품은 불량품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고,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 전체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차, 유홍준 교수 집을 그냥 지나쳤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08자 기사 '아차, 유홍준 교수 집을 그냥 지나쳤네'를 퍼왔습니다.
그냥 타박타박 걷기만 해도 좋은 반교마을 돌담길
무량사에서 나와 부여로 돌아오던 중 낯익은 마을 이름을 보게 되었다. 반교마을이었다. 이곳은 돌담길이 등록문화재 제280호로 등록된 마을이어서 예전부터 한 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부여에 와서 며칠을 머물면서도 이 마을을 잊고 지내다 그날 우연히 반교마을에 들르게 되었다.

▲ 반교마을 돌담길 ⓒ 김종길

작은 다리를 건너니 '반교마을 돌담길' 표석이 있었다. 어느 시골집 흙벽 아래에 놓인 반듯한 화강암이 부자연스러운 듯 묘하게 어울린다. 2006년 12월 4일에 문화재로 등록되었다고 적혀 있다.

마을길은 아스팔트로 반듯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길 양옆에 열 지어 있는 집들 앞으로 돌담을 쌓아 경계를 만들었다. 돌담 아래는 울긋불긋한 봉숭아가 화사한 기운을 내뿜고 노란 꽃을 피운 호박넝쿨이 돌담을 넘나들었다.
▲ 돌담에 핀 봉숭아 ⓒ 김종길
▲ 반교마을 돌담길 ⓒ 김종길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은 끝이 없었다. 비가 간간이 내려서인지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타박타박 걸었다. 길 중간쯤에 전나무 한 그루가 있고 그 아래에 공중변소로 썼을 법한 건물이 나왔다. 지금은 이것저것 모아두는 창고로 보이지만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어 그것마저 풍경이 된다.
▲ 풍경 ⓒ 김종길

문패 대신 대문 쇠말뚝에 이름을 써 놓은 어느 농부의 집은 바지런하다. 처마 끝에 양파며, 마늘 등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헛기침으로 주인을 불렀으나 인기척이 없다. 다시 타박타박 걸었다.
▲ 바지런한 어느 농부의 집 ⓒ 김종길

이곳 돌담길은 마을의 밭이나 개울가에 있는 강돌을 그대로 쌓았다. 우리네 조상들은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집을 짓고 담을 쌓곤 했다. 바깥과 경계를 지으면서도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 우리네 옛집이었다. 그만큼 서정이 깊은 집들이다.

이곳 반교리 돌담길은 마을주민들이 돌담길보존회를 만들어 옛 방식 그대로 돌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돌만을 쌓는 이런 방식을 '메쌓기' 혹은 '건성쌓기'라 하고 그런 돌담을 '강담'이라 한다.
▲ 어느 문패와 문짝 ⓒ 김종길

옛 담장이 등록문화재인 곳은 경남에는 거창 황산마을, 산청 단계마을, 산청 남사마을, 경북에는 성주 한개마을, 대구에는 옻골마을, 전남에는 강진 병영마을, 담양 창평 삼지천마을, 완도군 청산도 상서마을, 흑산도 사리마을, 신안 비금도, 영암 죽정마을, 전북에는 무주 지전마을, 익산 함라마을, 충남에는 부여 반교마을 등이 있다. 등록된 돌담길의 대부분이 전라도와 경상도에 있고 충청도에는 이곳이 유일하다.

마을을 돌다 어느 집 뜰에서 걸음이 멈췄다. 인사라도 건넬 요량이었으나 사람이 집을 비운 지 오래된 집이었다. 한껏 열린 부엌문 아래의 장작더미와 녹이 슨 풍로가, 예전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 줄 뿐이었다.
▲ 반교마을의 어느 농가 ⓒ 김종길

빈집은 늘 애잔하다. 발길을 돌려 마을 가운데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쉬었다. 돌담김을 복원하면서 만든 정자인 듯하다. 제법 번듯한 마을 회관에는 확성기가 사방으로 달려 있다. 마을의 집들은 대개 슬레이트지붕이어서 예스런 맛은 없다. 그럼에도 돌담이 있기에 풋풋한 정취가 있는 것이다.

장작을 잘 갈무리한 어느 농가를 보며 혼자 박수를 보냈다. 장작을 참 예쁘게도 쌓았다. 이런 시골에서는 장작더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는 걸 매번 느끼게 된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니 겨우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 잘 쌓은 장작이 인상적인 어느 농가 ⓒ 김종길
▲ 반교마을 돌담길 ⓒ 김종길

낡은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모두 편리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초가에 돌담을 둘러친 풍경이 예스러운 것이라며 그리워하겠지만, 돌담길에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들도 시간이 흘러 세월의 때가 묻으면 나름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다만 하늘로 솟은 전봇대와 시야를 어지럽히는 전선줄이 아쉬울 따름이다.
▲ 반교마을 돌담길 ⓒ 김종길

며칠 후, 집에 돌아온 나는 TV를 보다 놀랐다. 모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유홍준 교수가 나왔던 것이다. 그가 오락프로에 나와서 놀란 것이 아니라 며칠 전 여행자가 다녀온 부여 반교마을에 그가 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휴휴당'이라는 집을 지어 살고 있단다. 미리 알았다면 그의 집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가 지은 삼 칸 집을 보고 오지 못한 게 내내 아쉬웠다. 남다른 그의 안목이 집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 울긋불긋 봉숭아가 핀 돌담길 ⓒ 김종길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고창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나무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09자 '고창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나무'를 퍼왔습니다.
천연기념물 제494호 팽나무... "멀리서 봐도 장관"

▲ 팽나무 우산을 편 것과 같은 모습을 한 고창 수동리 팽나무 ⓒ 하주성

답사를 하면서 만나는 많은 나무들. 그중에는 천연기념물도 있고, 지방에서 지정한 기념물도 있다. 그런가하면 보호수도 있고, 아예 아무런 지정도 받지 못한 나무도 있다. 아직 나도 그 지정의 가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왜 천연기념물과 기념물로 나누이는지, 수령이 꽤 됐는데도 왜 지정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 등은 늘 궁금하다.

천연기념물이란 자연 가운데 학술, 자연사, 지리학적으로 중요하거나, 그것이 가진 희귀성, 고유성, 심미성 때문에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여 법률로 규정한 개체 창조물이나 특이 현상, 또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정한 구역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천연기념물 중에는 식물을 주체로 하는 것이 가장 많으며, 노거수가 124건으로 1그루씩 지정된 것이 대부분이다. 
▲ 줄기 오랜 역사를 말하는 듯, 가지들이 서로 엉크러져 있다 ⓒ 하주성
▲ 밑동 마을에서는 수령이 천년은 되었다고 한다. 줄기가 마치 조각을 해 놓은 듯 묘하다 ⓒ 하주성
수많은 수종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종(樹種)으로는 은행나무가 가장 많은 19건이다. 이어 소나무 종류가 처진소나무와 반송을 합해 18건이지만, 곰솔까지 포함을 한다면 24건으로 가장 많다. 그만큼 다양한 소나무가 지정을 받았다. 다음으로 느티나무 종류가 12건 등이며, 백송과 이팝나무, 향나무가 각 8건 정도이다.

귀한 몸으로 지정을 받은 나무의 종류는 다양하다. 회화나무와 털왕버들을 포함한 왕버들류, 비자나무, 푸조나무, 후박나무, 옴나무, 탱자나무, 팽나무, 망개나무, 측백, 갈참나무, 회향목, 올벗나무 등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 외에도 특별한 것으로는 송악, 소태나무, 등나무, 배롱나무, 감탕나무, 생달나무 등의 조금은 생소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 팽나무 뒤편으로는 야산을 향하고 있다. 아마 옛날에는 이곳에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 하주성
▲ 들판 너른 들판을 보라보는 둔덕에 서 있는 팽나무. 에전에는 이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 하주성

고창 수동리 팽나무를 보는 순간 얼어붙었다

9월 4일, 전북 고창군 지역을 답사하는 날은 이상하게 나무들만 만났다. 답사를 며칠 나가야 거목 한 그루를 보는 것이 보통인데, 이날은 열 그루에 가까운 나무들을 만난 것이다. 그 중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 446번지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멀리서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나는 그냥 얼어붙고 말았다.

천연기념물 제494호, 고창 수동리 팽나무. 멀리서 보이는 이 나무는 마치 우산을 쓴 모습이다. 나무의 생김새가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다. 폭나무, 포구나무라고도 부른다는 팽나무 한 그루. 어딜 찾아보아도 이 나무가 도대체 몇 년이나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아주 오래 묵었다는 것 밖에는.
▲ 밑동 괴이하게 생긴 밑동. 나무가 마치 쭈그러 내려 앉은 듯하다 ⓒ 하주성
▲ 줄기 줄기는 여러가지 모양을 조각해 놓은 듯 하다 ⓒ 하주성

한걸음에 달려가 본다.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다. 팽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넘어질 뻔했다. 염소를 매어 놓은 줄에 걸린 것이다. 그 염소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에 푹 빠져버렸다. 나무 가까이 기서 본다. 외과수술을 한 흔적도 보이지 않을 만큼 생육이 좋은 나무이다. 어떻게 이런 나무가 있을 수가 있나. 그저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팽나무라 쓰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 읽는다.

수동리는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전에는 이곳이 바닷가였다고 한다. 간척지로 매립을 했다는 것이다. 이 나무에 배를 묶어두기도 했다니, 변해버린 주변 경관이 아쉽다.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이었을까? 앞으로는 들판이 펼쳐지고, 높지 않은 둔덕위에 팽나무가 자리를 하고 있다. 지금도 그림 같은 모습인데, 예전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 버섯 나무 밑 한편이 움푹 들어간 곳에는 버섯이 자라고 있다 ⓒ 하주성
수동리의 팽나무는 8월 보름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당산제와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벌였다고 한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이 나무 아래 모여 기원하던 당산나무라는 것이다. 오래도록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온 수동리 팽나무.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들 중에서, 가슴높이의 둘레가 가장 크며 수형이 아름답다고 한다. 수세 역시 좋은 편이어서 팽나무 종을 대표할 만하다.

나무 주변을 돌아본다. 보면 볼수록 이 나무에 빠져든다. 한편으로는 멀리 산줄기를 바라보고, 예전 바닷물이 들던 곳은 가슴이 시원하게 터질 수 있는 들판이다. 나무는 얼마나 오래 묵은 것인지. 줄기 여기저기 이상한 형상으로 옹이가 뒤틀어져 있다. 그리고 그 밑동 움푹한 곳에는 나무 스스로가 이름 모를 버섯을 키우고 있다.
▲ 팽나무 둔덕 위로 올라가 본 팽나무. 나무 밑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키 180cm의 건장한 남자이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 하주성

그동안 수많은 나무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수동리 팽나무를 보는 순간, 몇 날을 이야기를 해도 다 하지 못할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난 이 나무를 그렇게 불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설] 알맹이 없고 실효성 미흡한 비정규직 대책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09자 사설 ' 알맹이 없고 실효성 미흡한 비정규직 대책'을 퍼왔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어제 영세사업장 저소득 노동자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 일부를 지원해주는 것을 뼈대로 한 ‘비정규직 보호대책’을 내놨다. 전체 1700만 노동자 가운데 8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인 낮은 임금과 고용차별을 해소하는 데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알맹이가 없고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번 대책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 개선에 도움 되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저임금 120% 이하의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의 3분의 1을 정부한테서 지원받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업주 역시 동일한 지원을 받게 되니, 60만~70만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이 좀더 촘촘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불법파견에 대해 사용 기간에 관계없이 직접 고용을 의무화한 것 등도 진일보한 노동조건 보호 조처다.
하지만 이번 대책에선 정규직의 50%에 불과한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사내 하도급이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 임금의 경우 ‘정규직의 80%로 늘려 간다’는 명시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추진한다는 발표에 그쳤다. 이 정도로는 실효성이 담보되기 어렵다. 또 사내 하도급의 남용을 막기 위해 비정규직보호법을 손질한다거나,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 등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 대책은 눈앞의 추석 민심 등을 우려해 급조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게다가 이 정부가 추구하는 고용정책의 핵심인 노동시장 유연화, 파견직 확대 등은 비정규직 해소와 충돌하는 방향이어서 진정성마저 의심된다. 당장 현대자동차에선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이 시정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그저 모른 체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여당은 비정규직보호법 개정 등 더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정규직 차별의 상징인 현대자동차에 단호한 시정조처를 내려 비정규직 보호 의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사설] 이 대통령의 아전인수식 ‘안철수 현상’ 해석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09자 사설 ' 이 대통령의 아전인수식 ‘안철수 현상’ 해석'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며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젯밤 ‘추석맞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한 발언이다. 매사를 자기 편리할 대로 해석하고 엉뚱하게 갖다 붙이는 게 이 대통령의 특기라지만 이번은 정도가 더욱 심하다.
우선 이 대통령이 정치권을 탓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안철수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사생결단식 대결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환멸이라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바로 이 대통령이다. 오기와 독선의 정치, 일방통행식 정치, 좌우 편가르기야말로 우리 정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안 교수가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한 결정적 계기가 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문제만 해도 이 대통령은 입이 열 개라도 말할 형편이 못 된다. ‘청와대 배후설’은 그만두고라도 기회 있을 때마다 ‘보편적 복지 망국론’을 펼치며 여론몰이를 한 게 이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탓’을 하니 듣는 사람이 오히려 당혹스럽다.
이 대통령은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하기에 앞서 현 정권에 대한 안 교수의 통렬한 지적부터 귀담아들어야 한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며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이런 뼈아픈 지적은 외면한 채 이날 대담에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바빴다. 보편적 복지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표를 얻기 위해서 하는 소리”라고 폄하했고, 차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서도 “행정이나 일을 해본 사람이 (서울시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로 선거 개입 의도를 내비쳤다. 모두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행위다.
안철수 돌풍의 원인을 놓고 많은 사람이 안 교수의 소통하는 자세, 헌신성, 진정성 등을 말한다. 이런 진실한 삶의 향기가 있기에 똑같은 이야기라도 안 교수가 하는 말에는 국민이 환호한다고 해석한다. 이 대통령이 아무리 ‘친서민’이니 ‘공생발전’이니 하는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해도 국민이 시큰둥한 것은 이 대통령에게는 그런 미덕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추석맞이 대담은 안철수 현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가장 생생히 보여주었다.

‘마음의 눈’, 보이지 않는 것을 찍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사진마을 2011.09.09 자 '‘마음의 눈’, 보이지 않는 것을 찍었다'기사를 퍼왔습니다.
척추장애 사진작가 이상봉 사진에세이 ‘안녕, 하세요’
사진 가르치는 시각장애 학생들 작품들도 섞어넣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진 비교 호기심, 낯 뜨거워라


이상봉은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장애인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운동선수였다. 크면서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인지하게 되었고 꿈도 바뀌었다. 평생 장애인과 함께하는 삶이 그의 꿈이 되었다. 그는 지금 그 꿈을 현실로 실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상봉은 인천혜광(시각장애)학교에서 25년째 교사로 일하면서 제자들의 부모, 삼촌, 이웃집 형이 되었다.
이상봉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과 소통시키고자 제자들의 사진을 수 년 동안 발표해오고 있다. 그들의 사진과 꿈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와 제자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다큐영화 ‘안녕, 하세요’가 만들어졌다. 임태형 감독의 이 영화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책 서문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사진작가 이상봉의 에세이집 ‘안녕, 하세요’가 나왔다. 책에는 이상봉 작가가 학생들과 나눈 일상의 대화, 학생들에게 사진에 대해 ‘눈’을 뜨게 해준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 사이사이에 이상봉 작가가 찍은 사진, 시각장애 학생들이 찍은 사진, 그리고 작가가 찍은 학생, 학생이 찍은 작가의 얼굴사진도 들어있다. 글과 사진이 맞물려서 이어진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학생들이 찍은 사진이 가장 궁금했다. 과연 시각장애인의 사진은 어떤 것일까? 학생들의 사진은 별도의 구분 없이 불쑥불쑥 이상봉작가의 사진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물론 책 후반부엔 학생들의 사진들만 따로 모아둔 곳이 있다. 지난 4월에 열렸던 인천혜광학교 시각장애인 사진 동아리 ‘잠상’ 사진전의 지상전시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이내 혼란스러워졌다. 시각장애 학생들의 사진과 비장애인의 사진에서 수준차이를 발견하려고 덤빈 내가 부끄러워졌다. 뭐가 다를 것인가. 시력이 멀쩡한 사람들의 사진이라고 해봤자 기껏 수평을 조금 더 잘 맞추고 프레임이 조금 더 깔끔하다는 외형적인 면이 있을 뿐이다. 뭘 찍었고 어떤 마음으로 찍었는지가 가장 중요한데 시각장애 학생들의 사진에서도 뭘, 왜 찍었는지가 잘 나타나 있었다.
 책을 한번 더 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또 한 번의 어리석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각장애인들은 크게 저시력과 전맹으로 구분된다. 정확한 장애등급까지 따질 일은 아니고 저시력의 경우 어느 정도 편차가 있긴 하지만 아주 가까운 물체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빛만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전맹은 희미한 빛 한 가닥도 못 본다. 날 때부터 시신경 자체가 없는 경우다. 저시력 학생의 사진과 전맹학생의 사진이 어떻게 다른지 따져보고 싶었다.
 또 한 번 부끄러웠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달리는 차 안에서 찍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흔들린’ 사례가 많고 수평을 맞추지 못한 사례가 조금 더 많을 뿐 역시 내용 면에선 다를 것이 없다. 사실 시력이 멀쩡한 사람들도 수평을 곧잘 놓치니 뭐 따질 수도 없다.
박카스는 안마다. (책 본문 14쪽~15쪽)



현재 혜광학교의 사진동아리 ‘잠상’엔 17명의 중고등학생이 회원으로 가입해있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맹인 학생은 6명 정도. 동아리 형태 이전엔 특별활동부서로 사진부가 있었다. 십여 년 전 초기엔 전맹학생들의 경우 지속적인 사진활동에 거부감이 있었다고 한다. 한두 번은 재미로 셔터를 눌러봤지만 더 이상의 동기부여가 되질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맹학생들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봉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저시력 학생들이 일대 일로 전맹 학생과 짝을 지어 멘토 역할을 한다. 전맹의 경우엔 반드시 제 3의 눈이 필요한데 특히 사진찍기에서도 중요하다. 카메라 조작법은 여러 번 반복하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러나 촬영할 땐 멘토가 촬영분위기를 자세히 설명해 준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모니터 앞에 같이 앉아 사진의 내용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해준다.”
그래도 궁금했다. 본인이 찍은 사진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이 맘에 걸렸다. 이 대목에서 이상봉작가는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우선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지는데 충실하는 것이 목적인 학생도 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사진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멘토나 교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 작품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연상한다. 그게 반복되고 연결성을 가지게 되면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또 어떤 학생은 자신의 사진을 잘 간직했다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보여주겠다고도 했다”

(비시각장애인인)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찍는가?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있지 않는가? 
사진을 보면서 뭔가를 떠올릴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가?
각자의 사진 여러 장에 연결성이나 있는가?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안녕, 하세요’는 시각장애인용 바코드로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겨레 사진마을엔 그런 장치가 없다. 물론 바코드가 있다고 해도 사진까지 소리로 들을 순 없다. 다만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면 마음으로 느낄 순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임희원 학생이 찍은 작품. 희원이는 이 사진으로 2011년 제 24회 전국장애인 종합예술제 사진부문 대상을 받았다.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희원이가 찍은 사진. 아버지는 도망가고 희원이는 쫓아가서 촬영한 사진이다. 둘은 꼭 친구같다.
전맹인 지은이의 멘토인 태경이가 촬영할 부분에 대해 설명하고 만지게 하여 인지시키고 있다. 전맹 학생에겐 눈을 대신하는 또 다른 눈이 필요하다.
사진부원인 다솔이는 다른 친구들이 가까이 하지 못하는 개에게도 거침없이 다가간다. 인천 만수동 괭이부리 마을 촬영때 집 앞에 매여있는 백구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덥석 안고 장난질이다. 결국 백구가 다솔이를 피한다.
이영진
김수빈
노을을 보러 간 땅 끝 전망대에서 온 몸으로 빛을 안고 있는 승원이.
사진부는 6월 정기 촬영으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에 갔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2011년 9월 9일 금요일

[사설]여야, 이래서야 ‘안철수 충격’ 극복하겠나

이글은 경향신문 오피니언 사설 '여야, 이래서야 ‘안철수 충격’ 극복하겠나'를 퍼왔습니다.
정치권이 ‘안철수 충격’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하다. 안철수·박원순씨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지켜본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김황식 총리의 차출을 모색하고, 민주당은 한명숙 전 총리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보도다. 집권당과 제1야당이 자신들의 존립 근거마저 위협할 만한 무서운 민심의 실체를 목도하고도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한 ‘꼼수’만 궁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총리 차출설은 김 총리가 호남 출신이고, 행정가라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서울시장이 정치적 자리라는 점은 한나라당이 더 잘 안다. 그럼에도 현직 총리 차출이라는 비상식적 발상이 나오는 것은 김 총리를 내세워 ‘복지 전쟁’ 2라운드를 피하고, 호남 표도 얻어보겠다는 의도인 모양이다. 여권에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나경원 최고위원이 오세훈 전 시장의 주민투표를 지지한 만큼 다시 무상급식 논란을 부를 수 있어 위험부담이 크다는 셈법인 것 같다. 김 총리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으나 소장파가 주도하고 홍준표 대표가 거드는 것으로 알려진 차출론은 쉽게 수그러들 태세가 아니다. 그런 홍 대표는 얼마 전 지명직 최고위원의 지역 안배에 대해 ‘표 안되는 호남은 버리고, 표 되는 충청에 몰아주자’며 호남배제론을 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민주당에서는 중진들이 떼지어 한 전 총리의 출마를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인사 중에서는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이유다. 정작 한 전 총리는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으로선 안·박 후보 단일화에 국민들의 눈을 빼앗기는 바람에 ‘기호 2번’, 즉 민주당 후보를 못 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터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야의 행태는 오로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안·박 단일화의 충격을 교훈 삼아 어떻게 하면 쇄신과 변화의 모습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할지에 대한 고민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이성적, 합리적 논전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안·박 후보 단일화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상식과 순리의 정치가 주는 감동이었다. 현 정치권은 감동은 고사하고 정략적 계산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정당정치가 위기를 맞았다며 자성과 변화를 외치면서도 실제는 여전히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는 ‘구 정치’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당은 선거 승리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다. 하지만 감동과 상식이 없는 정치는 마치 뜬구름과 같다. 그것이 ‘안철수 충격’의 교훈이다.

[사설]곽노현 수사, 불구속으로도 충분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09-08 21자 사설 '곽노현 수사, 불구속으로도 충분하다'를 퍼왔습니다.
검찰이 그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곽 교육감이 지난해 5월 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 측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해 사퇴시키고 그 대가로 2~4월에 걸쳐 2억원을 건넨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건네진 돈의 액수가 크고 선거사범 중에서도 후보 매수의 죄질이 중하다는 점, 돈을 받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가 구속돼 있다는 점, 증거인멸 우려 등을 들어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곽 교육감이 2억원을 건넸다고 밝힌 만큼 그 돈에 대가성이 있는지 여부다. 곽 교육감 측이 사전에 박 교수에게 경제적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곽 교육감 측은 한결같이 선의로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교수 측도 대가성을 부인했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둘러싼 주장이 첨예하게 갈릴 경우 불구속 수사를 통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해주는 게 형사소송법의 취지에 맞다. 또 곽 교육감은 검찰 조사에 충실히 응해온 데다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 불구속하면 구속돼 있는 박 교수와의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지만 형평성이 불구속 수사 원칙에 우선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사는 이례적으로 영장을 청구한 배경을 설명하며 “(곽 교육감이) 선출직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진작 징계위에 회부돼 직위에서 해제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백한 피의사실 공표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부적절한 언사다. 또 “곽 교육감을 구속시키지 못하면 앞으로 금권선거와 관련해 어떤 사람도 구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 것도 법원을 압박하는 여론몰이성 발언이다. 

이제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제대로 터잡을 때가 됐다. 수사와 기소권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검찰이 인신 구속으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한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 더구나 검찰 측은 곽 교육감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한 듯 “재판을 지켜보면 알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구속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검찰은 지난 2009년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때 불구속 기소를 한 것처럼 이번에도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게 마땅하다. 구속수사를 고집한다면 그야말로 이중잣대라는 비난을 들어도 싸다. 오늘 오후 시작되는 곽 교육감에 대한 영장실질 심사가 불구속 수사 원칙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사설] 실망스러운 등록금 부담 완화 대책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908자 사설 '실망스러운 등록금 부담 완화 대책'을 퍼왔습니다.
정부·여당이 어제 1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소득이 낮을수록 장학금을 더 많이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대학 등록금 대책을 내놨다. 2006년 ‘반값 등록금’ 공약 이후 5년 만에 나온 방안치고는 기대에 크게 못미친다. 전체적으로 ‘반값’은커녕 12~13% 정도 인하 효과에 불과하다. 내년 총선을 의식해 마지못해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학에 7500억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유도해 등록금 부담을 더 줄이겠다고 했지만, 지속가능한 방안일 수 없다. 이것까지 포함해도 중간층인 소득 4~7분위 학생이 지원받게 될 액수는 연간 평균 100만여원이다. 이것으로 가계 부담이 얼마나 줄어들지, 학생의 과외 노동이 얼마나 줄어들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르바이트로 등록금 1000만원을 마련하려면 커피숍에서 1500여시간, 편의점에서 1600여시간 일해야 한다는데, 등록금 100만원 지원으로 아르바이트 시간이 고작 150시간 준다고 달라질 건 없다.

대학 등록금이 사회적 문제가 된 이유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무책임성 때문이다. 실질구매력 기준으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 최고다. 칠레가 비싸다지만 국가 보조금이 우리의 갑절이니, 한국의 등록금 부담은 실질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다. 그런 등록금을 고교 졸업생 가운데 80%, 즉 거의 모든 가계가 짊어져야 하는 게 우리 구조다. 대학 진학을 불가피하게 만들어놓고, 그 부담을 가계가 전적으로 지게 했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가정 형편에 관계없이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든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취직, 임금, 인사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이제야 비로소 의미있는 고등교육비 지원을 시작했다는 것까지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시작은 비록 미약하지만, 일단 공적 지원을 늘릴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6월 ‘2014년까지 30%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약속한 바 있다. 이번 대책에서 빠지긴 했지만, 이를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자본과 자연자원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밑천은 사람이다. 고등교육 투자는 개인의 입신영달이 아니라 국가 장래를 위한 결정적 투자로 간주해야 한다. 독일의 경제적 안정과 성장이 국가의 고등교육 투자에 의존하는 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설] ‘안철수 민심’ 아전인수식 해석 경계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의  20110908자 사설 ' ‘안철수 민심’ 아전인수식 해석 경계해야'를 퍼왔습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대선 가상대결에서 박 의원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왔다. 또 안철수-박원순 단일화 이후 안 교수 지지층의 움직임이 궁금했는데 어제 새로운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박 변호사로 옮겨가는 효과가 꽤 나타나고 있다. ‘안철수 바람’에 깃든 시민들의 여망이 무엇인지를 정치권이 제대로 살피는 게 더욱 긴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이 안철수 바람을 통해 정치권의 철저한 각성과 변화를 주문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특히 안 교수가 보여준 공익에 대한 헌신적 자세와 희생정신, 겸손함 등을 시민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음도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런 터에 대변인 등 한나라당 일부에선 안철수-박원순 단일화를 강남좌파의 야합쇼라고 깎아내리고 나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인정하고 자숙해도 부족한 마당에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야3당과 시민단체들은 어제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2단계 경선을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야권 각 주체는 후속 논의 과정에서 기득권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시민단체나 작은 정당 쪽도 능력 범위를 넘는 지나친 요구를 해선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 가뜩이나 깊게 자리잡은 정치불신 정서가 차제에 더욱 증폭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도 있다. 기성 정당들이 제구실에 미흡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정과 시정 난맥상의 원인 제공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이 바로 ‘탈정치의 정치’와 ‘탈여의도 지도력’ ‘기업가형 지도력’을 자처했음도 잊어선 안 된다. 정책 개발과 실천을 담보하는 사회적 약속의 틀을 무시하고 인물 위주로만 흘러서는 정치를 제대로 바꾸기 어렵다. 가령 야권의 경우 통합이나 연대의 틀을 세워나가는 노력은 오히려 더욱 필요해졌다.
안철수 바람을 진보-보수의 세력대결 정치에 식상한 결과라거나, 심지어 정당들이 진보 선회(좌클릭)에 열중하다 닭 쫓던 개가 되었다는 일부 보수언론의 해석도 근거 없는 제 논에 물 대기 주장일 뿐이다. 민주당보다도 진보성향이 강한 박 변호사한테 안철수 바람의 상당 부분이 옮겨가는 것만 봐도 이 점은 분명하다. 만약 정치권이 보수언론의 주문처럼 복지 담론 등을 후퇴시킨다면 그것은 대표적으로 ‘안철수 민심’을 거꾸로 읽는 결과가 될 것이다.

사라질 우리강 내성천 영주댐 완공으로 수몰 위기


이글은 당당뉴스 2011년 09월 07일 (수) 기사 '사라질 우리강 내성천'를 퍼왔습니다.
9월 첫 째 주말을 낙동강의 제 1 지류인 내성천과 함께하였습니다. 사대강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얼마 안 있으면 사대강사업으로 만든 댐과 열여섯 개 보 수문을 닫고 물을 곧 가둔다고 합니다. 이미 사대강은 준설작업을 통해 본래 그 강이 가지고 있던 모습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물을 가두게 되면 그나마 훼손되지 않은 강변의 둔치도 본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낙동강이 준설되기 전 모습이 어땠는지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저의 이런 무지가 개발이라는 탐욕으로 강을 이렇게 심하게 헤집어 놓아도 군소리 한 번 하지 못했나 봅니다. 아마 저의 이런 생각이 대다수 국민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렇게 무관심했던 강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이미 파손된 낙동강 본류의 모습을 찾아보지는 못할지라도 지류 하천을 통해 낙동강 본래의 모습이 어땠을까 회상해보고 수문을 닫아 강이 변하기 전에 이 강들을 내 몸과 마음에 담아 두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이 저와 함께하였던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었을까요? 콘크리트 둑방안에 갇혀있는 한강만 보아 왔던 아이들이 강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구나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번 답사는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해 봅니다. 

내성천은 탄산 약수로 유명한 봉화군 물야면의 오전약수에서 발원하여 봉화, 영주, 예천을 가로지른 후 삼강에서 낙동강과 합류한다고 합니다. 이번 답사에는 환경단체 회원들과 디딤돌 대안학교 학생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내성천의 중류인 이산리에 위치한 내성천교에서부터 하류로 약 4킬로미터를 강물을 따라 걸었습니다. 내성천의 모래와 물은 가까워 모래가 품고 있던 빛과 물비늘이 퉁겨내는 빛의 파편들이 음악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성천의 모래와 물은 하나가 되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아래로 흘러 내렸습니다.


▲ 모래가 흐르는 강
영천댐에 물이 채워지고 여기에도 물이 남실거리면 물을 따라 흐르던 모래도 그 흐름을 멈추겠지요. 모래와 물은 멀어지고 그 간격은 두터워져 더 이상 모래가 품었던 따뜻한 빛도 물과 함께 뒹굴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겠지요. 

강 둔치에는 스스로 자라기도 하고 사람에 의해 심겨지기도 한 버들들이 잔바람에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있었습니다. 버들은 잔뿌리가 많아 둔치의 토사를 그 뿌리 사이사이에 단단히 붙잡아 세찬 강물에도 빼앗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 강둔치의 산버들
강 둔치와 모래 밭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는 물억새는 갈수기에는 강의 경계가 되기도 하고 홍수에는 급히 내려가는 물을 붙들어 쉬엄쉬엄 내려가도록 잡아 준답니다. 세찬 홍수에 둑방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물억새 군락
이렇게 버들과 물 억새가 우거진 둔치는 고라니의 서식처가 되기도 하고 수달의 활동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수달이 다녀간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발자국이 모래위에 선명했습니다.

▲ 수달 발자국
사대강 사업을 하면 강이 살아나고 그 강에는 백로가 날아온다고 홍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깊은 한강에 백로가 헤엄치는 것 보셨나요? 백로는 깊은 물에는 오지 않습니다. 물이 얕은 곳에서 모래와 자갈 속에 숨어있는 물고기를 찾는 것입니다.

▲ 백로가 머물고 간 자리
모래가 흐르는 강은 경사가 완만합니다. 물살이 빠르면 모래도 더 많이 흘러 빈곳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4킬로미터를 걸어 내려가도 기껏해야 무릎 위 허벅지 정도가 가장 깊은 곳이었습니다.  

▲ 경사가 완만한 내성천
우리는 여름이면 바닷가만 찾았습니다. 백사장은 바닷가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강이 길고 넓은 백사장을 품고 있는데도 우리는 찾지 않았습니다. 사대강 사업이 우리에게서 이런 백사장과 강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 주어야 할 강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백사장과 강을 빼앗아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골재 채취를 하고 있는 포크레인
이제 영주댐 가물막이 뒤에는 본댐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내성천은 이 댐에 물을 가두면 점점 사라질 것입니다. 

본댐의 수문이 닫히면 이제 수 백년 동안 내려왔던 무섬마을도 잠긴다고 합니다. 이미 아름다운 고가도 주인은 떠나고 속살을 드러낸 채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 영주댐 가물막이와 뒷편 본댐 공사 현장
운포구곡의 빼어난 절경도 이제는 걸으며 강의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물비린내가 우리를 밀어내는 곳이 되어 버린답니다. 

▲ 주인 잃은 고택/ 수몰 예정지인 금강마을은 보상을 받고 상당 수 이사를 가 썰렁하였습니다.
과연 우리 후손들에게서 이렇게 넉넉하게 우리를 품고 담아줄 강을 누가 빼앗을 권한을 주었을까요? 

▲ 운포구곡의 절경. 구름이 놀다 간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제 우리는 항상 우리를 위해 오라고 손 짓하던 그 강을 떠나 보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떠나 보낸 그 강은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손자들에게도 만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 우리를 품고 있는 강. 강폭이 넓고 완만하여 우리를 안전하고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는 강이었습니다.

2011년 9월 8일 목요일

베른하르트 교수 "4대강사업, 자연에 대한 강간 맞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09.08자 기사 '베른하르트 교수 "4대강사업, 자연에 대한 강간 맞다"'를 퍼왔습니다.
국토부 해명자료에 반박... "한국 국토부,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실 왜곡"

▲ 지난 8월 방한한 베른하르트 교수는 4대강 현장을 둘러보면서 "독일에서는 수십 년 전에 포기한 4대강 공사 같은 사업을 한국은 왜 여전히 하고 있나"라면서 즉각적인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 김기철
독일 출신 국제적 하천 전문가인 베른하르트(Hans Bernhart. 칼스루헤 대학·71) 교수가 지난 8월 19일 국토해양부(국토부)가 낸 '독일 베른하르트의 발언은 사실 왜곡임'이란 해명자료에 대한 입장을 지난달 25일 밝혔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정부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음에도 자신을 만나지 않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국토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A4 5쪽 분량의 장문의 글에서 "한국의 국토부가 부분적으로 불충분한 정보를 갖고, 4대강 사업이 가져올 결과들을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았다"며, 4대강 사업에 대해 한국정부가 객관적 평가보다는 의도에 의한 왜곡된 평가를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의 국토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실을 왜곡했다"면서 "'4대강 사업은 자연에 대한 강간'이란 표현은 극단적일 수 있지만 전문가로서 평가를 했기에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라고 꼬집었다.

독일 운하 설계에도 참여했던 베른하르트 교수는 지난 8월 민주당 등 야 4당 초청으로 방한해 4대강 공사 현장을 조사하고 '4대강 사업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독일에서 수십 년 전에 포기한 4대강 사업과 같은 미친 짓을 왜 한국은 계속하는가"라며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국토부, 전문가로서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베른하르트 교수가 출국하기 직전인 8월 19일 해명자료를 통해 "베른 교수의 발언은 사실 왜곡"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국토부는 베른하르트 교수의 발언 중 ▲ 독일 보 건설 중단 관련 ▲ 준설에 의한 유속 증가 ▲ 유럽에서의 준설 중지 등은 사실이 아니라 주장했다.

국토부는 "4대강 사업에 대해 큰 관심과 기대를 나타내는 해외 전문가도 많다"면서 "베른하르트 교수가 한국을 며칠 방문하고 (4대강 사업에 대해) '자연에 대한 강간', '미친 짓', '재앙 초래' 등이라 발언하는 것은 결례"라고 반발했다. 이를 받아 몇몇 인터넷 보수 언론은 '베른하르트 교수, 그 입 다물라'는 등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보도를 했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국토부 해명자료에 대해 여러 차례 신중히 검토해본 결과 "전문가로서 '(국토부 보도해명자료) 작성자들이 부분적으로 불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으며, 기술과 환경의 복합적인 관계와 4대강 사업이 가져올 결과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을 방문하기 전부터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을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접했다"며 "'자연에 대한 강간'과 같은 표현이 극단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기술적인 평가를 통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해명보도자료에서 베른하르트 교수가 '독일에서는 보를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에 대해 "라인강 상류 165Km(바젤~이훼츠하임)에는 이미 치수용 보가 10개나 설치돼 있고, 1977년부터 홍수예방 효과를 보고 있으며, 보 철거 사례 및 계획도 없다"고 반박했다. 또 "최근에 보가 설치되지 않은 하류 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빈발하자, 보 상류지역 추가 준설과 하천폭을 넓히는 프로젝트가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 교수는 자신이 독일 상황을 설명한 것을 국토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면서 "독일에서는 강을 운하로 만드는 사업을 중단한 지 오래됐고, 한국의 4대강 공사와 같은 사업은 관철될 수도, 실현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운하와 별개로 물을 막는 보와 댐을 만들 수 있으나 '유럽연합의 물관리기본지침(Water Framework Directive)'이 담고 있는 법률적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관리기본지침에는 '계획단계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고 폭넓게 검토하고 생태적 손실을 보정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함으로써, 강 생태계를 건설 이전 상태보다 악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사실상 보와 댐 건설이 불가능하다.

"라인강 하류지역 홍수 피해, 운하건설 결과다"


▲ 베른하르트 교수 비난 국토부 해명자료 국토해양부는 지난 8월 19일 독일 베른하르트의 발언은 사실 왜곡이라며 해명자료를 냈다. ⓒ 국토부
베른하르트 교수는 "라인강에 치수용 보 10개가 있다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왜곡"이라면서 "라인강 상류에 설치된 10개의 보는 홍수조절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력발전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라 지적했다. '1977년부터 홍수예방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중대한 해석상의 오류라며 "1977년 라인강 상류의 하천공사가 마무리(이훼츠하임 보 가동 개시)된 이래, 홍수는 매우 잦아졌고 첨두홍수위는 훨씬 높아졌으며 유속도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는 등 (국토부 주장과 달리)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보가 설치되지 않은 하류 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빈발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 실제로는 라인강 상류에 운하를 건설해서 나타난 결과란 것이 베른하르트 교수의 지적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보 상류지역 추가 준설과 하천 폭을 넓히는 프로젝트도 시행 중이다'라는 국토부의 주장도 옳지 않은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훼츠하임 보를 설치하자 퇴적토가 급격히 늘어나 강물의 배수능력이 감소해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퇴적토를 걷어 내는 것뿐이라고 했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보로 가둔 물가를 따라 홍수방지용 직선 제방을 조성했기 때문에 강폭을 넓히는 일은 불가능하다"면서 "라인강 상류지역에 하천공사를 하기 이전 상태의 홍수방어 등급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천공사로 강과 단절되었던 홍수터와 범람원 숲을 복원하고 있는데, 이 공사를 하천 폭을 넓힌다고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보 철거사례 및 계획도 없음"이라는 국토부 주장에 대해서는 라인강 상류지역에 대해서는 이 말이 맞지만, 프랑스 리용 부근의 프랑스 리용 부근의 쌩 에티엔느 비강댐과  메종후즈댐은 강과 연어 복원을 위해 폭파됐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준설로 물의 흐름이 빨라져 강이 직선화된다"는 베른하르트 교수의 주장에 대해 "4대강 반대 단체의 일관된 주장처럼 보 건설과 준설로 유속이 다소 느려진다"면서 "4대강 사업을 통해 경작지 철거, 오염원 차단, 수량 증가 등으로 수질이 개선이 크게 될 것으로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 교수는 "4대강 사업에서 진행한 준설은 유량이 갈수량일 때와 평수량일 때는 강물의 유속을 감소시키는 반면 홍수량일 때는 유속을 증가 시킨다"고 지적했다. 준설은 강물의 흐름에 제동을 거는 강바닥의 저항을 감소시켜 물의 흐름을 빠르게 하고 홍수 시 첨두홍수량(최대 홍수량. 즉 홍수 시 가장 물이 많이 흐르는 양을 의미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훼츠하임 보 하류에서 나타나는 사례도 같다"면서 "유속이 증가하면, 홍수 발생 시 지류가 본류에 합류하는 곳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는데, 네카강이 라인강으로 흘러들어 만나는 만하임 지역을 예로 들 수 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에 딤긴 헛된 바람들, 현실과 거리가 멀다"

"수정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는 국토부의 주장에 대해 베른하르트 교수는 "학술적으로 틀렸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꼬집었다. 하상(강바닥)을 광범위하게 준설하면 평상시 유속이 느려지기 때문에 퇴적작용이 심해지는 결과를 낳는데, 특히 세립질의 유사(아주 가는 모래)와 진흙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또 유속이 느려지면 강물과 공기가 기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산소공급 기능도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수질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보로 물을 막으면, 필연적으로 물의 흐름은 이전보다 정체되고 수질은 악화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해명자료에서 "독일 등 유럽에서 준설을 금지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독일과 네덜란드 간의 협약 문서에 따라 연간 수천만㎥ 준설한다"고 주장했다. 또 "4대강 반대측에서 생태하천 복원의 모범으로 주장하는 '독일 이자르 강'도 복원 과정에서 준설작업을 실시했다"고 반론했다.

이에 대해 베른하르트 교수는 "국토부가 독일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며 "유럽에서 4대강 사업과 같은 준설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선박운행에 필요한 수심 확보 또는 홍수 시 배수용량 부족 방지를 위해 일부 준설을 하는 것이라는 게 베른하르트 교수의 설명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이런 경우에도 준설은 일부 구간에서만 해야지, 강의 전 구간에 걸쳐 해서는 안 된다"면서 "준설이 수서곤충 등 저서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며, (유럽에선) 침식과 퇴적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준설한 토사의 대부분은 강 안 다른 구역에 다시 쏟아 붓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독일과 네덜란드 협약에 대해서도 국토부가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독일과 네덜란드 협약은 생태적인 관점에서 하천의 토사를 관리하자는 취지이지, 한국처럼 무작위 준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독일 이자르 강 복원 과정에서도 준설을 했다'는 국토부 주장에 대해 "이자르 강 사업의 목적은 4대강 사업의 목적과 정반대"라면서 "이자르 강 준설은 준설사업이라 할 수 없으며 한국의 4대강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자르 강의 둔치를 파낸 것은, 예전에 그곳에 있던 운하 여러 곳에 침전물이 채워졌기 때문에 홍수 시 배수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공사를 벌인 거라는 게 베른하르트 교수의 설명이다.

베른하르트 교수는 "4대강 사업에 딤긴 헛된 바람들은 유감스럽게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며 "머지않아 실상이 드러날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강변을 따라 건물과 사회기반시설과 휴양지를 조성하는 것은 해당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긍적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천을 운하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는 베른하르트 교수의 국토해양부 주장에 대한 반박문 원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