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5일 토요일

물에 잠긴 곳은 습지가 아니다? '4대강 환경부'의 궤변

이기사는 한겨레신문의 조홍섭기자의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온글입니다.

습지보전법, 람사르 협약은 '수역은 습지에 포함' 명시
환경부, 남한강 바위늪구비 160만를 10만로 축소 동의

남한강의 대표습지인 바위늪구비가 사라졌다는 5월 15일치 <한겨레> 남종영 기자의 기사에 대해 환경부가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 보도자료를 냈냈다. 요지는 기사에서 4대강 공사로 사라진 곳으로 언급된 지역은 바위늪구비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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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기 전의 바위늪구비 전경. 남한강교 위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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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바위늪구비 습지 전경, <한겨레> 사진.
사실관계는 이러하다. 4대강 사업 환경영향평가 당시 평가서에는 아래 그림처럼 녹색으로 표시한 전체를 바위늪구비 습지라고 불렀다. 환경부의 설명대로라면 8억원이 들어간 환경영향평가서는 엉터리가 된다. 바위늪구비 습지가 어디인지도 정확하게 표시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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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해양부 환경영향평가 보완평가서  453쪽.

그런데 이러한 바위늪구비 습지가 어딘가에 대한 사실관계를 따지는 일보다 더욱 심각한 사실은 따로 있다.  그것은 환경부가 습지보전법 상의 습지정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면서까지 4대강 사업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 주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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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5월17일치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째는 낙동강 2권역(상류) 환경영향평가 협의 당시 환경부는 습지훼손 면적이 54%에서 28%로 줄어들었음에도 협의를 완료해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습지 면적이 줄어든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는 이렇게 말했다. "기존 습지지역 내 하천수역은 준설 후에도 '수역'이므로 훼손면적 산정에서 제외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환경부의 해명이었다. "습지 개념에 수면적까지 포함할 경우 습지의 경계가 모호해져 하천 전체가 습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므로 수면적을 제외한 습지 개념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다."

환경보전 부서인 환경부와 개발 부서인 국토해양부가 같은 목소리로 육상부만 습지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습지보전법 제2조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현재의 습지보전법 제2조에는 습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습지라 함은 담수,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이라고 되어 있다.

즉, 물에 잠긴 일정 정도의 수면적도 습지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습지 보전을 위한 국제협약인 람사협약에서도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영구적이든 임시적이든, 물이 정체되어 있든 흐르고 있든, 담수이든 기수이든 염수이든 관계없이 소택지, 습원, 이탄지 또는 물로 된 지역을 말하며 여기에서 간조시에는 수심이 6미터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한다"고 되어 있다. 좀 거칠게 정부의 주장과 습지보전법을 비교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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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바위늪구비를 둘러싼 것이다. 4대강 한강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당시 환경부는 바위늪구비 습지가 163만 평방미터에서 10만 평방미터로 16분의 1로 축소된 보고서를 아무런 지적없이 평가협의를 해주었다. 

국정감사에서 이를 지적하자 환경부는 "바위늪구비 습지는 보완서 작성시 사업자와 전문가에 의한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바위늪구비 일원의 실제 습지현황을 보완 제시한 것" 이라고 해명을 했다. 당시 163만 평방미터에 대한 조사에는 단지 4일이 걸렸을 뿐이다(10.26일 환경부 보완의견 제시->10.30 국토해양부 보완서 제출).

그런데 환경부가 습지보전법에 따라 2000~2005년 동안 전국의 내륙습지 현황을 국가습지사업센터에 공개한 내용을 보면, 2003년 조사한 바위늪구비 습지는 "남한강 하류의 청미천 합류부 하류 일대 지역으로 하도내 습지, 범람형 배후습지, 하중도습지 등 9종류 이상의 하류 일대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과거의 환경부는 바위늪구비 습지를 수역을 포함해서 160만 평방미터로 조사했는데, 4대강 사업을 하는 이명박 정부의 환경부는 국토해양부가 '수역'을 뺀 육지부분만 조사해서 바위늪구비 습지의 크기는 10만 평방미터라고 하는 결론에 동의하는 환경부로 바뀐 것이다.

결론적으로 낙동강과 한강의 습지면적, 훼손면적 축소는 국토해양부가 법에 위배되는 기준으로 조사를 한 결과를 습지보전을 총괄하는 환경부가 맞장구를 치면서 통과되었다.

바위늪구비 습지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바위늪구비 습지는 사라졌다(환경부 표현대로 하면 다는 아니니 사라진건 아니다).

바위늪구민 사라진게 아니다. 습지보전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환경부도 사라졌다. 이런 환경부라면 차라리 간판을 내리는게 낫다.

곽현/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이미경 의원실 환경보좌관

[한국의 캠핑장]아홉 가지 보물을 숨긴 계곡, 괴산 화양동야영장

이기사는 한겨레신문의 기사를 퍼온것입니다.
각양각색 바위의 향연 위로 맑은 물이 은빛가루를 뿌려대는 화양구곡. 9가지 절경을 숨겼다는 속리산 자락에 텐트를 펼쳤습니다.

속리(俗離). ‘속세를 떠나는 산’이라더군요. 세상의 풍경이 아니라는 듯 신은 산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은빛으로 부서지는 물살 위로 솟았다 꺾였다 감았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바위. 마치 신이 떡 주무르듯 바위를 매만지기라도 한 걸까요. 산이 힘겨루기를 하다가 깊어진 계곡 위로 그림 같은 바위가 고개를 듭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이 계곡에 9가지 절경이 숨어있다며 일일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속리산 화양구곡으로 9가지 보물을 찾아 떠납니다.

속세를 떠난 산에 묻힌 9가지 절경들
자연이 살아숨쉬는 곳/ 화양동야영장에서는 먹이를 찾아 계곡을 거니는 왜가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윤정 기자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괴산군,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습니다. 신라시대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다다르자 밭 갈던 소들이 무릎을 꿇어 율사를 맞이했다는군요. 이를 본 농부들이 속세를 버리고 진표율사를 따르자 산은 ‘속세를 떠난다’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속리산국립공원에 다다르는 길목 괴산에는 유독 보물을 숨긴 곳이 많습니다. 9가지 절경을 숨기고 있다해 ‘구곡(九曲)’이라 불리는데요. 화양·선유·쌍곡·갈은·연하·고산·풍계 등은 모두 괴산의 ‘구곡’을 품은 계곡입니다.

그중 화양동은 야영장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온몸으로 계곡의 자연을 느끼고픈 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곳이죠.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 매표소에서 약 1.5km 아래쪽에 야영장이 이 있습니다. 계곡 둔덕부터 숲속까지 약 1만여평의 부지입니다. 이곳에 텐트를 내려놓고 화양계곡으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텐트를 내려놓고 보물을 찾아서…

금사담과 암서재/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 ‘금사담’. 화양구곡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뒤로 조선 숙종때 우암 송시열이 정계를 은퇴한 후 집을 짓고 학문을 연구한 ‘암서재’가 보인다. /이윤정 기자


화양동야영장을 찾는다면 화양구곡을 찾는 산행은 필수코스입니다. 매표소에서 산을 따라 올라가는 길옆으로 잔잔한 물결이 은가루처럼 반짝입니다. 우암이 중국의 무이구곡을 떠올리며 9곡을 일일이 정한 연유를 이 길에 서면 절로 알 수 있습니다. 화양 10리 계곡의 첫 절경은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바로 나타납니다. 우거진 숲 속에 길게 뻗고 높이 솟은 바위가 하늘을 떠받든 듯 보입니다. ‘경천벽’입니다.

1km정도를 더 걸어 올라가면 맑은 소가 눈에 띕니다. 맑은 물에 구름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운영담’이죠. 투명한 계곡에 몸을 담그는 사람이 많았는지 ‘수영금지’ 표지판이 크게 걸려있습니다. 물의 노래를 들으며 계곡을 따라가면 바위는 더욱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하늘로만 높이 솟던 바위가 마치 바닥을 흐르듯 평평해집니다. ‘읍궁암’입니다. 우암 송시열은 효종대왕(1619~1659)이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자 이 바위 위에서 새벽마다 한양을 향해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 합니다. 그래서 바위 이름을 ‘읍궁암’이라 부르죠.
화양서원 만동묘/ 화양서원은 송시열이 은거했던 장소에 세워진 서원. 조선시대 학자들의 모임 장소가 됐다. 만동묘는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이윤정 기자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화양구곡의 중심이라 불리는 ‘금사담’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름처럼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보이는 계곡 속의 못입니다. 금사담 바로 앞에는 송시열이 은퇴 후 학문을 닦았다는 ‘암서재’가 보입니다. 금사담과 암서재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계곡 맞은 편 숲에는 우암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화양서원’과 명나라 신종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만동묘’가 있습니다.

이 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코스입니다. 도명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서면 산 위에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듯한 ‘첨성대’가 눈에 띕니다. 채운사 길목에는 산 속에 늠름하게 우뚝 솟은 ‘능운대’가 보입니다. 도명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용이 누워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는 ‘와룡암’, 청학이 바위 위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학소대’, 계곡 전체에 흰 바위가 티 없이 넓게 펼쳐진 ‘파천’이 차례대로 몸을 드러냅니다. 파천 위를 흐르는 물길은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까지 9개의 보물을 찾는 여정이 캠핑의 하루를 꽉 채웁니다. 넉넉잡고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물의 노래 들을까, 바람의 춤 느낄까
화양동야영장 사이트 중 계곡을 내려다보는 곳에 텐트를 쳤다. /이윤정 기자

다시 야영장으로 내려오면 본격적으로 캠핑을 즐길 시간입니다. 화양구곡은 1975년 속리산국립공원에 포함됐고 야영장은 1990년대 초반 문을 열었습니다. 사이트 구획이 따로 나뉘어 있지 않아 텐트와 타프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습니다. 자동차도 텐트 옆에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대식 오토캠핑장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야영장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화장실 등 시설물에서 전기를 끌어 쓰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야영장은 강변 둔치부터 숲속까지 이어지는데 각 사이트마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계곡 쪽에 텐트를 치면 풍경은 아름답지만 바로 뒤 찻길에서 나는 소음을 감내해야 합니다. 계곡 쪽 사이트는 면적도 넓지 않아 넉넉하게 공간을 구성하기 힘듭니다. 숲쪽 사이트는 강이 바로 내려다보이지는 않지만 나무그늘이 풍부하고 공간도 넉넉합니다. 찻길과 점점 멀어질수록 소음에서도 멀어집니다. 야영장은 예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토요일 오전만 되면 사이트가 모두 꽉 찹니다. 요즘에는 주차장 옆 잔디밭에까지 텐트를 친다는군요. 야영장 옆 계곡은 수심이 낮아 발을 담그거나 그물낚시를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여름 캠핑 아웃도어 활동1. 카약 타기




여름 캠핑에서는 즐길거리가 풍성해집니다. 요즘에는 카약이나 카누를 타는 캠핑객도 크게 늘었습니다. 카약은 원래 에스키모가 바다에서 타던 게 시작인데요. 보통 조정석은 덮개로 덮여 있어 물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고, 양날 노를 이용해 추진동력을 얻습니다. 우선 카약을 즐기기 전에 구명조끼를 꼭 착용해야 합니다. 양날 노를 잡을 때는 노를 머리 위로 올렸을 때 팔꿈치와 90도 되는 지점에 잡아야 합니다. 동시에 오리발 부분이 손등과 90도를 이루게 잡습니다. 배에 타서 노를 저을 때는 노를 몸 쪽으로 끌어당기듯이 저으면 됩니다. 힘이 잘 전달되도록 엉덩이까지 길게 당깁니다. 거꾸로 가고 싶으면 노를 반대로 저으면 되는데요. 배의 방향을 돌리고 싶을 때는 오른쪽으로만 노를 저으면 왼쪽으로 움직입니다. 앞으로 갈 때는 노를 젓는 쪽의 반대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반대로 뒤로 갈 때는 노를 젓는 방향으로 방향이 틀어집니다. 단 물놀이 사고가 많은 만큼 카약을 탈 때도 지나치게 물살이 세거나 무리한 구간에서는 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안전장치를 한 뒤 충분한 준비운동을 하고 카약을 타야합니다.


가는길/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화양동야영장 입구 500m 앞까지 시외버스가 운행된다. 자동차로 올 경우 내비게이션에 ‘화양동야영장’ 또는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산496’을 입력하면 된다. 화양동 야영장 전화번호는 043-832-4347이다.


기타정보/
야영장이용료는 성수기 기준 어른 1인당 2000원이다. 주차료는 경차 2000원, 그 외의 차량은 1대당 5000원이다. 화양동야영장은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 매표소 가기 전 1.5km 아래 지점에 있다. 약 1만평 대지인데 실제로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을 그리 넓지 않다. 요즘에는 텐트와 타프 등 장비가 대형화돼 200~250동 정도 칠 수 있다.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선착순 입장이다. 토요일 오전이면 사이트가 모두 꽉 찬다. 강변쪽부터 숲속까지 사이트가 구성돼 있는데 강쪽은 바로 뒤가 찻길이라 소음이 심하다. 조용하게 캠핑을 하고 싶으면 숲쪽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야영장 안 매점이 평일에도 밤늦게까지 운영돼 편리하다. 장작도 판매한다. 화장실은 수세식과 재래식 등 종류별로 있다. 개수대는 2곳, 샤워실은 없다. 전기도 쓸 수 없다. 전기를 몰래 끌어다 쓰다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야영장 바로 옆 계곡에서 나들이객이 그물낚시를 하고 있다. /이윤정 기자
계곡 사이트/ 속리산국립공원 화양분소 매표소 가기 전 1.5km 지점에 있다. 야영장은 숲쪽과 계곡 사이트로 나뉜다. 사진은 계곡 사이트에 텐트를 친 모습. / 이윤정 기자
너른 사이트/ 계곡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숲속 사이트와 평지 사이트가 나타난다. 캠핑객이 몰릴 때는 주차장 옆 잔디밭까지 텐트를 치기도 한다. /이윤정 기자
경천벽/ 화양구곡 1경인 경천벽. 산이 길게 뻗고 높이 솟은 것이 하늘을 떠받든 거 같다해서 명명됐다. 바위에 송시열이 직접 쓴 화양동문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윤정 기자
운영담/ 경천벽에서 약 1.2km 떨어진 북쪽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룬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해 운영담이라 불린다. /이윤정 기자
읍궁암/ 우암 송시열(1607~1689)은 조선시대 효종대왕(1619~1659)이 41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한 것을 크게 슬퍼해 새벽마다 한양을 향해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 그 바위가 남아 ‘읍궁암’이라 불린다. /이윤정 기자
첨성대/ 도명산 등산로 입구에서 보인다. 큰 바위가 첩첩이 층을 이루고 있어 그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이윤정 기자
능운대/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해 능운대라 부른다. 채운사 가는 길 입구에 있다. /이윤정 기자
강아지와 캠핑을/ 속리산국립공원 안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입구에서 약 1.5km 아래쪽에 위치한 야영장에서는 애견과 함께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이윤정 기자
계곡을 안은 듯/ 해가 질 무렵 텐트 옆에서 계곡을 내려다본다. 저 멀리 왜가리가 거니는 모습이 보인다. /이윤정 기자
화양동야영장 매점/ 평일에도 야영장 매점은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바로 살 수도 있고 도움을 얻을 수 있어 편리하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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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4일 금요일

[최명애의 북위66.5도](24)북극을 동경한 사진가의 ‘바람같은 이야기’

이글은 주간경향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ㆍ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호시노 미치오란 일본인 사진작가가 있다. 어려서부터 북극을 동경했던 그는 1978년 알래스카로 건너와 평생을 여기서 보냈다. 이 여행기의 ‘시스마레프’ 편에도 잠깐 나온다. 까까머리 소년 시절에 시스마레프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내기도 했으니까. 15권에 이르는 그의 책은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에 차례로 번역됐는데, 그 중 <바람 같은 이야기>는 대한항공의 알래스카 취항 광고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의 ‘북극박물관’ 앞에서 본 풍경. 눈을 뒤집어쓴 산이 매킨리, 원주민 말로는 ‘데날리’라고 부르는 산이다.

그 책에 컬러 화보로 실려 있던 카리부떼의 사진을 잊을 수 없다. ‘여기에는 야생사진이라는 말로는 다 담지 못할 만큼의 삶과 죽음과 사랑이 가득 차 있다’라는 철학자스러운 멘트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은 유난히 초록색이 ‘쨍’하게 나오는 후지 벨비아 필름으로 찍은 것처럼, 어떻게 보면 좀 촌스러워도 보인다. 그러나 그 투박한 사진과 세련되지 못한 글에서 나는 말로는 어떻게 설명하지 못할 진정성을 느꼈다. 지금도 느낀다. 그는 1996년 러시아 캄차카에서 불곰을촬영하다 습격당해 목숨을 잃었다. 작정하고 연출하려 해도 쉽지 않았을 자연 다큐 작가다운 죽음이었다.

“호시노 미치오는 일본인들에게 신”
나는 알래스카 중부 페어뱅크스에 와 있었다. 정확히는 알래스카대학 페어뱅크스 분교(UAF)의 ‘북극 박물관(Museum of the North)’ 복도였다. 여기엔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는 80년대 초반 이 대학 야생동물학부의 학생이었다. 호시노 미치오가 사망한 뒤 부인 나오코는 그의 사진 150여점을 대학에 기증했다. 평생 극북의 마을들을 떠돌았지만 그의 ‘집’은 페어뱅크스였다. 해안의 에스키모와 내륙의 인디언들이 교역하던 알래스카의 오랜 옛 마을. 지도에서 알래스카를 잘라 들고 연필 위에 놓으면 무게중심은 페어뱅크스에 찍혀 있을 것이다.

그 페어뱅크스에 여름이면 일본인 관광객들이 전세기까지 대절해 날아온다. 호시노 미치오 ‘성지순례’를 오는 것이다. 우리 B&B의 소심한 주인 아저씨는 “일본인들에게 호시노 미치오는 신”이라고 삐쭉거리면서도 간판 밑에 일본어로 ‘방 있음’이라고 붙여 놓았다. 북극박물관도 ‘성지순례’ 코스여서, 아니나 다를까 호시노 미치오 사진집이 오로라 사진집과 패키지로 팔리고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맞춤 상품 되겠다. 호시노 미치오 못지않게 일본인 관광객이 사랑하는 것이 오로라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로라가 잘 보이는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관광객의 90%가 일본인이다. 신혼부부가 오로라를 보면 천재를 낳는다는, 관광업계 발 전설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에스키모 어린이들은 다 아인슈타인이 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

UAF가 자랑하는 북극박물관은 명성대로였다. 가히 알래스카의 ‘대영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알래스카에도 대학이 있느냐고 묻는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알래스카대학 본교가 앵커리지에 있고, 페어뱅크스에 분교가 있다. 특히 UAF는 북극 연구가 특화돼 ‘북극학과’ ‘알래스카 원주민어학과’ ‘고지대 농업’ 같은 과들이 있다. 나는 언젠가 북극곰(여행 동행자)을 UAF 북극학과 석사과정에 입학시키고 나는 ‘사커맘’이 되어 두 해쯤 페어뱅크스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우리는 북극박물관을 구경하러 가는 바쁜 길에 틈을 내 학교 행정실에 들러 혹시 석 달쯤 해볼 만한 어학연수 코스가 없느냐고 물어봤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가고,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서 빙하로 하이킹을 떠나고, 금요일 밤엔 ‘알래스칸 라이프스타일(Alaskan Lifestyle)’에서 곰 퇴치 스프레이며 방울 같은 것들을 사는 거다. 행정실 직원은 냉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뇨,어학연수하러 여기까지 몇 명이나 오겠어요?”



페어뱅크스 교외를 지나가는 알래스카 송유관의 모습.
다음날은 렌터카를 몰고 북쪽으로 달려갔다. 노랗게 물든 자작나무 잎과 참새의 혀처럼 뾰족 내민 침엽수의 새 잎들이 점점이 찍혀, 풍경은 점묘화가의 작품 같았다. 우리는 교외의 UAF 연구소에 잠깐 들러 사향소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향소는 둥글게 말린 뿔 두 개가 갈기와 함께 달려 있는 북극 소다. 사향소떼가 씩씩거리며 눈밭을 달려오는 사진을 보면, 매머드와 함께 마지막 빙하기를 보냈어야 할 것 같이 생겼다. 연구용 사향소 농장이 있다고 했는데, 정말 사향소 10여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갈기는 침이라도 발라 빗어놓은 것처럼 단정하게 앞가르마가 타져 있었다. 크지도 않았다. 송아지만 했다. 나는 사향소가 매머드만은 못해도 코끼리만은 할 줄 알았다. 눈발이 붙어 있는 갈기를 휘날리며 준엄하게 인류를 꾸짖을 줄만 알았다. 나의 실망한 마음따위는 아랑곳 않고, 사향소들은 ‘영구’ 같은 얼굴을 참으로 싹싹하게도, 자꾸만 들이댔다.

한 시간쯤 달리니 알래스카 송유관이 나왔다. 북극해에서 시추한 석유를 남부의 프린스 윌리엄 해협까지 옮기는 거대한 파이프다. ‘관제 설명’은 알래스카에 강림하신 과학기술의 경이를 칭송하고 있었는데, 영구동토층에 파이프를 세우기 위해 3년간 노력한 끝에 1977년 첫 석유가 송유관 속으로 들어갔다, 석유는 프루도 베이에서 장장 800마일을 달려 한 달 뒤에야 발데즈 해안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송유관 조사팀에서라도 나온 듯 면밀하게 다각도로 사진을 찍던 관광객 아저씨는 주머니에서 지구 모양의 조그만 공을 꺼내더니 송유관 이음새 틈에 끼우고 사진을 찍었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가을날 오후였다.

석유 배당금 대신 살 권리를 선택한 그위친족
그러나 알래스카 송유관은 원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연방정부는 석유가 발견되는 땅에 사는 부족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북극해에 면한 배로우는 같은 에스키모 마을이라도 부자 마을이다. 이 배당금 제도는 에스키모 ‘우민화 정책’이란 비판도 받았다. 일자리는 주지 않고, 돈만 줘서다. 정부의 ‘돈 폭탄’에도 넘어가지 않은 부족이 있었으니, 바로 알래스카 중부의 아크틱 빌리지(Arctic Village)에 사는 그위친족이다. 광활한 알래스카를 유목하며 살아온 그들은 석유 배당금 대신 살 권리를 선택했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세금도 내지 않는다. 아크틱 빌리지를 방문하려는 자는 부족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북극곰은 몇 년 전 아마도 한국 기자로는 최초로 아크틱 빌리지를 다녀왔다. 장작을 패서 불을 때고, 원주민과 친해 보고자 순록 고기를 집어먹다 온몸에두드러기가 나기도 했단다.

페어뱅크스 시내의 ‘걸리버 북스토어’에는 알래스카 섹션이 따로 있었다. 훌륭한 서점이었다. 새 관측 가이드만 책장 하나다. 개썰매를 몰고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24번 탐험했다는 크누트 라스문센이며, 알래스카 북부 국립야생동물보호지구에 사는 덫사냥꾼 하이모 코스며, 오지의 마을과 섬들을 연결하는 소규모 독립 항공의 부시 파일럿들 이야기도 책장 가득이었다. 알래스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을 하루하루 붙여놓은 365일 달력도 있었다. ‘1년 동안 꾸준히 보시면 다시는 찍지 않으실 겁니다’라는 광고 문구도 함께다. 우리는 홀리기라도 한 듯 10권의 책을 사고, 9장의 지도를 샀다. 주머니를 탈탈 터니 39 달러와 동전 한 줌이 나왔다.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

2011년 6월 23일 목요일

'복덩이' 흰 제비가 마을 화목 물어왔네

이기시는 한겨레신문의 조홍섭기자의 물바람숲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동해시 송정동서 태어난 흰 제비, 주민들 길조라며 막걸리 잔치  
동네 사람들 한 마음으로 돌봐, 성공적으로 둥지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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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제비.

삼월 삼짇날(음력 3월3일)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했다. 제비가 추녀 밑에 집을 짓거나 옛 집을 수리해 번식을 하는 무렵이면 날씨도 온화하고 산과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제비는 미끈하게 빠진 18cm 길이의 작지만 멋진 모습을 지닌다. 위는 푸른 빛이 도는 검정색이고 이마와 멱은 어두운 붉은 갈색, 아래는 크림색을 띤 흰색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신사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꼬리 깃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어린 새의 긴 꼬리는 어른 새보다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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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바깥 꼬리깃은 길이가 유독 길다.

70년대 무분별한 농약 살포와 4월의 논갈이 전통 농사기법이 5월로 늦춰지고, 건물의 구조가 처마가 없는 형태로 변하면서 흔한 여름철새였지만 최근 도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추억의 새가 됐다.

제비는 둥지를 지을 펄흙을 얻기 위해 땅에 내려앉는 것 말고는 거의 공중에세 생활해, 먹이도 날면서 곤충을 잡아먹는다. 새끼한데 먹이를 줄 때도 둥지 앞에서 날면서 준다, 

공중에서 높이 날다가 땅 표면을 스치듯이 날기도 하고 물위를 쏜살같이 날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물을 발로 힘껏 뒤로 차면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일컬어 '물 찬 제비'라 한다. 

급강하와 급선회를 반복하면서 원을 그리듯이 날아오를 때도 있다. 번식이 끝난 6월부터 10월 상순까지 평지 갈대밭에서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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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암컷. 수컷과 달리 바깥 꼬리깃이 짧다.

건물 처마 밑에 한 집에 1개의 둥지를 짓거나 매년 같은 둥지를 고쳐서 사용한다. 귀소성이 강해서 여러 해 동안 같은 지방에 돌아온다. 4월 하순~7월 하순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5일 동안 품고 부화한 지 20∼23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벌, 잠자리, 파리, 딱정벌레, 매미 등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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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제비 둥지가 있는 동해시 송정동 골목길. 오른쪽 감나무 옆 처마 밑에 제비 둥지가 있다.

지난 6월14일 SBS 동물농장 촬영제작자로부터 전화가 왔다.강원도 동해시 송정동 854-70번지 박희원씨 댁 제비가 새끼를 쳤는데 흰 제비 새끼가 1마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뷰 요청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흰 제비이기에 흔쾌히 승낙하고 6월17일 동해시로 향했다. 초행길이어선지 흰 제비를 어서 보고 싶어서인지 4시간의 여정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송정동에 오후1시30분 도착했다.

단독주택들이 정감 있게 다가왔다. 주변엔 동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었다. 1960년대 이곳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고 길이 3km의 북평 해수욕장이 있던 곳이지만 동해항 개발로 사라졌다. '소나무 정자'라는 동네 이름이 그때를 모습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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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제비를 보려고 몰려든 동네 주민들.

골목길로 접어들자 흰 제비가 있는 집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담 너머로 흰 제비를 구경하는 동네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설렌다. 고속도로를 달려온 피곤함이 확 사라진다.

작년 9월에 집만 짓고 떠났다가 올 4월에 다시 찾아와 5월15일 알을 낳고 5월31일 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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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꽉 메운 다섯 마리의 새끼들.

6월5일 태어 난 지 6일 만에 5마리 새끼 중에 1마리가 흰 색인 것을 집주인 박희원씨가 발견했다. 동물의 조직에 있는 검은색이나 흑갈색의 색소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피부나 머리카락, 망막의 색깔이 결정된다.

'백화 현상'(알비노)는 색소가 없거나 부족해서 생기는 돌연변이로, 과거 참새나 까치 등의 조류에서 간혹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자연 상태에서 생존율이 높지 않아 사람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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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보채는 제비새끼들. 합창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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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흰 제비가 둥지 밖이 궁금한지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도착한 날은 이들이 태어난 지 19일째 되는 날이다. 내일 아니면 모레 둥지 밖으로 날아갈 확률이 높다. 제비는 태어난 지 20~23일 정도 되면 둥지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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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깃을 다듬는 흰 제비. 흰 모습이 토끼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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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인 박희원씨 부부가 제비 새끼들을 어린 아이를 보살피듯 지키고 있다.

집 주인 박희원 씨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집에 들어서자 처마 밑에 검은 새끼 제비 속에 석인 흰 제비가 확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댔다.

5마리 중 1마리가 흰 제비였다. 행동도 다른 제비들보다 활발하고 호기심도 많아 사람의 행동을 주시하며 살피고 눈빛도 마주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름대로 애교도 부린다. 정말로 깜직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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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가지 사이로 먹이를 물고오는 어미 제비.

제비 둥지 앞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둥지를 감춰주고 있고, 남향으로 적당한 볕이 들어 새끼를 키우기에 좋은 조건이다. 박희원씨의 관심과 보살핌도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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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제비의 날갯짓, 둥지 밖으로 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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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새끼 제비의 날개 운동.

대체로 흰색으로 태어나면 눈이 붉은 색깔이지만 육안으로 봐서는 색소 부족이 아주 심하지 않아 검은 눈동자여서 귀여움을 더한다. 
새끼들은 둥지에 붙어 날갯짓을 자꾸만 반복하고 다시 둥지로 들어간다. 둥지를 떠날 사전연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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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집 주인 박희원씨, 동네 주민 김영상 ,최준천씨. 모두 흰 제비 팬이다.

동네 사람들이 아예 의자를 가져다 놓고 관찰을 한다. 생일을 맞아 고향에 다니러온 김영상씨는 큰 복을 받았다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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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제비 탄생을 막걸리로 축하하는 동네 주민들.

동네 분들이 또 모여든다. 잠시 후 축하하는 마음으로 김치 안주 하나에 막걸리 술자리가 벌어졌다. 모두들 즐거워한다. 우리 민족은 흰색과 흰 옷을 좋아해 백의민족이라 했던가. 예부터 흰 새는 길조라 여겨 복과 평안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좋은 일이 생긴 것은  틀림없다. 동네 사람들이 너도나도 찾아와 흰 제비 구경하느라 떠들썩하다. 이 동네에 이렇게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인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방송을 한다. "우리 동네 박희원씨 댁에 흰 제비가 태어났습니다. 복을 가져다 주는 길조이니 모두 축하합시다." 이어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지 마시고, 큰 소리도 내지 마시고, 근처에서 경적은 울리지 마십시오."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흰 제비가 태어나 동네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동네에 경사가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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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날면서 먹이를 주는 모습. 제비의 특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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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날 때가 되자 어미 제비는 정신없이 먹이를 주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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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새끼 제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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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받아먹는 어린 흰 제비.

6월18일 제비가 태어난지 20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 6시30분에 제비 둥지에서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어제보다 새끼들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활기차다. 금방이라도 둥지를 박차고 나올 기세다.

8시께 한 마리가 둥지를 박차고 나왔다. 어미가 안정된 자리로 유도하려 유난히 '지지배배 지지배배' 울어댄다. 9시가 되자 또 한마리가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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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둥지를 나와 어리둥절한 모습의 새끼제비.

둥지 안과 밖에서 새끼들의 소리가 요란하고 어미도 허둥거린다. 새끼 두 마리는 옆집 마당 빨랫줄에 앉아 어미를 불안하게 한다. 어미가 부르자 둥지 가까이로 날아온다. 다시 둥지로 들어간다. 둥지를 들락거린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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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모이주기는 신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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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제비가 받아먹다 바닥에 떨어뜨린 꿀벌.

이젠 둥지에서 새끼들의 활기찬 날갯짓이 계속된다. 어미가 열심히 먹이를 나른다. 먹이는 주로 벌과 파리이다. 잠자리와 매미류도 주요한 먹이이지만 계절이 일러 보이지 않는다.

흰 제비와 다른 새끼제비 한 마리는 둥지에서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하고 날갯짓 연습만 하루 종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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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속으로 숨어버린 새끼 제비들.

다른 종류의 새들이 나타나거나 소리가 들리면 새끼들은 무조건 둥지 속으로 숨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갑자기 어미가 신호를 보내자 떠들던 새끼들이 둥지 속으로 몸을 바짝 엎드려 숨죽이고 꼼짝하지 않는다. 황조롱이가 상공에서 날고 있었다. 한동안 긴장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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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너머에서 휴대폰으로 흰 제비새끼를 촬영하는 주민들.

80살을 훌쩍 넘긴 듯한 노인이 평생 흰 제비는 처음 본다며 담 밖에서 즐거워하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시며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신다.

할머니, 흰 제비 보니까 어떠세요?  물었다. "기분 좋지 흰 제비가 태아나면 옛날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어"라고 하신다. 나이를 여쭈어 보니 88세란다. 정말 보기 힘든 희귀조임이 틀림없다. 담 너머에서 휴대폰을 들고 너도 나도 촬영을 한다. 오후4시께 둥지 밖으로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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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흰 제비새끼.

오늘은 둥지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고 판단해 관찰을 마치고 이튿날 새벽 5시에 둥지로 돌아왔다. 5시15분께 새끼 제비가 갑자기 둥지 밖으로 날아 나온다. 왠지 둥지가 분주하고 요란스럽다. 5시20분께 두 번째 제비가 둥지 밖으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이젠 미련없이 둥지를 버리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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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5분께 관심의 주인공  흰 새끼제비의 날갯짓이 유난히 활발해졌다. 세 번째로 외출을 시작했다. 안절부절 뜸을 들이던 새끼 제비가 8시에 네 번째로, 9시에는 혼자 남은 다섯 번째 새끼가 둥지가 썰렁했는지 용기를 내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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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난 새끼제비. 모든 것이 낮설다.

4시간에 걸쳐 둥지 떠남이 마무리됐다. 미련없이 떠난 처마 밑엔 빈 둥지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새끼들은 뿔뿔이 흩어져 보이질 않는다. 어미는 이들을 다시 모아 생존의 지혜를 가르쳐, 머나먼 여정의 길을 안내할 것이다.

윤순영/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