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6일 토요일

소총 들고 싸운 대통령, 누구랑 참 비교되네

소총 들고 싸운 대통령, 누구랑 참 비교되네
[연금술사를 찾아나선 중남미여행 ③] 아옌데, 체 게바라, 오르테가의 같으면서 다른 점
김성호(김성호)
중남미는 고독과 혁명의 땅이다. 그 땅은 코엘료와 네루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언어의 연금술사만 낳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낯설지만 수많은 혁명의 연금술사도 탄생시켰다.
스페인 침략자에 맞서 인디오 문명을 지키려했던 투팍 아마루 같은 원주민 혁명가도 있었고, 스페인 종주국에 대항해 중남미 독립을 쟁취한 시몬 볼리바르 같은 해방자도 있었고, 독재정권에 맞서 사회주의를 실천하려던 체 게바라 같은 사회주의 혁명가도 있었다.
유독 중남미 대륙에 이처럼 많은 혁명가들이 탄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중남미 여행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던 오랜 궁금증의 하나였다. 1980년대 대학가를 풍미했던 종속이론이나 해방신학, 해방교육 등은 모두 중남미의 이런 혁명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인물은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와 쿠바의 체 게바라, 니카라과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모두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투사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였지만, 혁명에도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물들이다. 이상은 같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혁명의 방법은 제각기 달랐기 때문이다.
▲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아옌데 박물관
ⓒ 정현진(지니락)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꽤나 걱정했다. 혹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리지는 않을까' 해서다. 우산이 없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된 38년 전의 끔찍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백해야겠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니 사랑고백은 아닐 테고, 하나님께 잘못했다는 원죄나 고해성사의 고백은 애당초 종교와는 거리가 머니 '해당사항 없음'이고, 도둑질은 어릴적 시골에서 수박서리나 닭서리 이후로는 특별한 것이 없으니 범죄고백도 아닐테고. 역사와 관련된 하나의 트라우마가 있다는 고백이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말만 들으면, 멀쩡했던 나는 순식간에 간질병 환자처럼 온몸을 뒤틀며 까무러친다.
오래전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던 어느 화창한 아침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고 뚱딴지 같은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정말 총알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렸고, 산티아고 시내는 피가 장마처럼 도로를 흠뻑 적셨다. 자다 봉창 두드려도, 현실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정말 끔찍한 현장이었다. 갑자기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다행히 이번에 산티아고를 찾았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고, 칠레 라디오 방송에서도 더 이상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허접한 방송을 하지 않았다. 오래 전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잠재되어 있다, 마치 현실처럼 눈의 흰자위 공막을 스크린 삼아 파노라마가 잠시 펼쳐졌다.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의 장면들이 죽음의 관에서 다시 살아난 좀비처럼 내 눈앞에 어른거렸던 것이다.
전두환이 5공 청문회에 끌려나오기 하루 전인 1989년 12월 30일 늦은 밤, KBS는 '토요명화'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방영했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린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를 그린 이 영화는, 1980년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광주보다 7년 앞서, 저 남미 대륙 칠레에 박정희와 전두환을 닮은 피노체트가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제목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바로 73년 9월 11일 산티아고를 인간 도살장으로 으로 만들었던 피노체트 군사쿠데타의 암호였다. 칠레 방송에서 이 암호가 방송되는 것을 시작으로, 쿠데타 세력은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렸다. 역사상 선거에 의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비오는 날 울적한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 방송 진행자가 할 듯한 말인,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가 잔혹한 학살의 신호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전두환의 광주 학살 작전명도 이 못지않은 '화려한 휴가'였다. 스페인 침략자 피사로가 페루의 잉카제국을 점령하면서 인디오를 학살할 때의 군사암호는, 스페인의 유명한 순례길 이름을 딴 '산티아고!'였다. 내가 지어낸 얘기라고.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의 99페이지를 읽어봐라.
이 정도면 정말 언어에 대한 희롱을 넘어, 언어에 대한 집단 폭력이다. 역대의 침략자들과 독재자들은 자신의 권력쟁취를 위해 국민을 넘어 언어까지 학살하고 강간했다.
▲ 모네다 대통령궁 앞 헌법광장에 있는 아옌데 동상
ⓒ 위키피디아

내가 산티아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인 모네다 궁을 찾았을 때는, 피노체트의 쿠데타 암호인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비웃기라도 하듯,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모든 꽃들을 다 꺾어버릴 수는 있겠지만,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네루다 말처럼 산티아고 시내에도, 칠레 민중에도, 칠레의 안데스 산맥에도 자유의 봄이 넘쳐흘렀다.

쿠데타 세력에 맞서 모네다 궁 입구에서 소총을 들고 맞섰던 아옌데는, 이제는 모네다 궁 앞의 헌법광장에 동상으로 당당히 서 있었다. "칠레가 가야 할 길, 나는 그 길을 확신한다"는 글귀와 함께 아옌데의 동상은 민주주의 수호신이 되어 있었다.
쿠데타 세력의 폭력과 죽음 앞에서도 결코 비굴하지 않았던 아옌데, 자신의 목숨보다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직접 소총을 들고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아옌데, 게릴라전이 아닌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하려 했던 의회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였던 아옌데.
나에게 아옌데에 대한 설명은, 쿠데타 세력에 맞서 소총을 들고 대통령궁을 지키고 있는 한 장의 사진으로 충분하다. 소총은 바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했던 AK47이었다. 체 게바라가 검은 베레모를 쓴 사진이라면, 아옌데는 소총을 든 사진이다. 역사에 어떤 대통령이 쿠데타 세력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운 적이 있던가.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의 총소리에 놀라, 야반도주하듯 수도원으로 도망치는 대한민국 총리 장면의 비겁한 뒷모습을 보라. 아옌데는 칠레 민중과 역사가 영원히 기억하지만, 장면은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역사는 죽음 앞에 선 지도자의 모습을 기록한다.
나는 아옌데 동상을 뒤로 하고, 피노체트 독재정권에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인권기념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광주 학살의 사진전을 보는 듯한 장면들과 실종자 얼굴, 그리고 유골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칠레 쿠데타와 인권유린을 그린 영화 <칠레전투>와 <미싱>의 장면을 보는 듯 했다. 인권기념관에 이어 내가 찾은 곳은 아옌데 박물관이었다.
▲ 쿠데타군에 맞서 모네다 궁에서 소총을 들고 싸우고 있는 아옌데 대통령(가운데 안경쓴 이)
ⓒ 살바로드 아옌데 재단

검은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 소총을 든 대통령 아옌데
아옌데 박물관에는 많은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국제적 연대를 위해 전 세계 미술가들이 보낸 아옌데의 소장품들이었다. 스페인 화가 후앙 미로와, 가수 존 레논 부인이었던 오노 요코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오노 요코는 설치미술가였다. 괜히 존 레논 때문에 졸지에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리고, 존 레논의 부인이라고 불리다니, 억울하다 오노 요코. 사실 나도 오노 요코가 설치미술가라는 것을 몰랐다. 미안하다 오노 요코. 유명한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항상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녹슨 녹음기에서 나오는 장엄한 목소리에 이끌려 나는 작은 전시실로 갔다. 쿠데타 세력과 싸우던 아옌데가, 칠레 민중들에게 호소한 마지막 방송 내용이 녹음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내 생명으로 보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옌데 대통령의 친척인 칠레 여성작가 이사벨 아옌데는 소설 <영혼의 집>에서 "대통령은 먼 나라로 망명을 떠나, 야밤 도주하듯 쫓겨난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노닥거리며 여생을 마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 잘못 봤소, 배신자들. 민중이 나를 이 자리에 앉힌 이상 나는 죽어서나 이곳을 나갈 것이오"라고, 쿠데타 세력에 결사항전한 아옌데 대통령의 최후를 <영혼의 집>은 이렇게 전한다.
중남미 여행 중에 아옌데를 만나는 방법은 많다. 그의 친구였던 네루다의 박물관에는 아옌데와 네루다가 함께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쿠바 수도 아바나에 있는 헤밍웨이의 단골술집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는 1961년 상원의원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아옌데의 사인이 걸려 있었다.
체 게바라는 아옌데에 대해 "다른 방법을 통해 같은 결과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동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둘은 모두 의사 출신이다. 아마도 1967년 10월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체 게바라가 총살당하지 않았다면, 1973년 9월 피노체트 군사쿠데타로부터 아옌데를 구하기 위해 총을 들고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 쿠바 아바나 혁명광장에 있는 내무부 건물에 걸린 체 게바라 조형물
ⓒ 김성호

여행과 혁명, 체 게바라를 만든 길
내가 걸어간 남미 종단여행 길은 대부분, 게바라가 60여 년 전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했던 길과 겹친다. 게바라는 여행을 통해 혁명가가 되었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도 여행을 통해 변해가는 게바라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여행기 <라틴여행 일기>에서 "적어도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참다운 아메리카 대륙을 헤매며 겪었던 모든 것들은 나를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여행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았던 남미 현실에 대한 분노가, 게바라를 열정적인 혁명가로 이끌었다는 고백이다.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이나, <체 게바라 자서전>에는 체 게바라가 편안한 의사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온다. 그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의사의 길을 가는 것은) 내 속에서 싸우는 두 명의 나, 사회개혁가와 여행자 모두를 배신하는 끔찍한 일"이라고 썼다. 게바라는 이미 혁명가와 여행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체 게바라가 숨진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그를 만나려던 애초 나의 계획은 어긋났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우기였기 때문에, 그가 숨진 바예그란데로 가는 버스가 수크레라는 도시에서부터 끊어져버렸다. 나는 칠레 산티아고를 거쳐,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을 여행한 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인 포토시를 거쳐 수크레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했다.
내가 수크레에 도착한 날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빗속에 갇힌 외로운 여행자의 신세가 되었다. 인디오의 아픔이 구름이 되었다가 내리듯, 굵은 비는 붉은 색을 띤 채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몹시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체 게바라와의 만남을 뒤로 물러야 했다.
▲ 쿠바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 위의 동상
ⓒ 김성호


상품이 된 체 게바라, 순수한 체 게바라
체 게바라를 만난 것은 남미 여행의 끝인 베네수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자메이카를 거쳐 쿠바 아바나에 도착해서다.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돌아서야 했던 날로부터 한 달이 흐른 뒤다.
쿠바는 어디서나 게바라를 만날 수 있었다. 수도 아바나의 혁명박물관에서도, 혁명광장에서도, 길거리 곳곳에 새긴 그림에서도, 쿠바의 화폐에서도, 심지어 티셔츠 등 관광상품에서도. 쿠바 최고의 관광상품은 낮에는 체 게바라요, 밤에는 음악과 춤이었다.
아바나보다 게바라를 더 잘 만날 수 있는 곳은, 오히려 지방도시인 트리니다드와 산타클라라였다. 웬일인지 아바나에서 만나는 게바라는, 카스트로 체제의 정권유지를 위해 너무 정치화·선전화되어 있고 관광상품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바나의 체 게바라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체제의 마네킹 같았다.
내가 '진짜' 체 게바라를 만난 것은 살사의 고향인 트리니다드의 한 카페에서였다. 5인조 남녀혼성 밴드가 카페에서 부르는 <영원하라, 체 게바라여>라는 노래는, 아바나에서 봤던 그 어떤 조형물이나 사진보다 나의 가슴을 흠뻑 적셨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찾고자 했던 순수한 게바라가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봄의 태양과 함께 바람을 불사르러 오셨지요. 당신의 빛나는 미소로 혁명의 깃발을 땅에 꽂았지요"라는 구슬프면서도 웅장한 노래에는, 때 묻지 않은 게바라가 있었다.
체 게바라를 찾는 나의 여정은 산타클라라로 가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쿠바 혁명과정에서 체 게바라가 사령관으로 혁명의 결정적 승기를 잡는 전투를 이끌었던 산타클라라에는, 그의 기념관과 무덤이 있다. 체 게바라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산타클라라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체 게바라 기념관에 다가갔다. 검은 베레모에 총을 든 체 게바라의 동상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기념비에는 그가 볼리비아로 게릴라전을 떠나면서 카스트로에게 남긴 편지에 나오는,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희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기념관 아래 무덤에,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함께 숨진 게릴라들과 함께 영원히 잠들어 있었다.
쿠바의 중앙은행 총재와 산업부장관의 권력을 버리고, 볼리비아 산악지대로 달려갔던 그는 이제 한 줌의 재로 돌아와, 동상으로 솟아올랐다. 진정한 혁명가가 원하는 것은 사회 변혁이지, 권력 그 자체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온 몸으로 실천했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무덤 안의 '꺼지지 않는 불'처럼, 역사와 민중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는 말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의 이 말은 쿠바를 뛰어넘어 중남미 전역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 니카라과에서 온두라스로 가는 국경에 있는 오르테가 사진 간판
ⓒ 김성호



오뚝이 혁명가 다니엘 오르테가를 아시나요
한번 잡은 권력을 놓기는 쉽지 않다. 게릴라 혁명을 통해 잡은 권력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중남미에는 그런 혁명가도 있다. 니카라과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다. 그는 체 게바라처럼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으나, 아옌데처럼 민주적 절차를 통한 사회주의혁명을 추구한 인물이다.
나는 쿠바를 떠나 파나마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멕시코로 가는 중미 종단의 길에 나섰다. 도중에 니카라과 수도 마나과에서 하루를 묵었다. 니카라과는 이제 내전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치안은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재 니카라과 대통령인 오르테가는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SNL)'를 이끌며 게릴라전을 통해 친미독재정권인 소모사 정권을 붕괴시킨 뒤, 지난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그러나 1990년 선거에서 패배하자 깨끗이 물러났고, 1996년과 2001년에도 연거푸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그는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결코 총을 들지 않았다.
무려 16년이 흐른 지난 2006년에서야,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아마도 오르테가는 사회주의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뒤 선거에서 패배하자, 깨끗이 권력을 놓은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게릴라전으로 권력은 잡은 사회주의혁명가가, 어디 제대로 된 선거를 치룬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니카라과를 떠나 온두라스로 넘어가는 국경에는, 오르테가 대통령 사진과 함께 "기독교, 사회주의, 연대"라는 구호가 쓰인 간판이 보였다.
아옌데, 체 게바라, 오르테가는 모두 독재정권과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도 싸웠다. 중남미 우익 독재정권의 뒤에는 늘 제국주의 얼굴을 한 미국이 있었다. 500여 년 전 스페인 제국주의의 침략 이후, 중남미에 혁명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땅에 유독 역사의 반동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은 역사의 반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 침략자들은 중남미 대륙에서 인디오 원주민을 탄압하고, 미국은 중남미를 탄압하고, 독재정권은 인민을 탄압했다. 중남미의 역사는 마치 '개가 제 꼬리를 무는 듯한' 치밀한 구조를 자랑하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 소설처럼, '반동과 혁명'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절망과 희망의 연속이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2011.08.06 14:18ⓒ 2011 OhmyNews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90여일에 걸쳐 중남미의 혁명가, 여성운동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소설무대와 생태마을 등을 둘러봤다.

`우면산만 아니었으면 곤지암천은...`

이글은 오마이 뉴스기사를 퍼왔습니다.
"우면산만 아니었으면 곤지암천은..."
수중보, 교량이 홍수 피해 키워... 4대강 사업으로 홍수 피해 막지 못해
이철재(ecocinema)


▲ 위태위태 자전거 도로 광주시 실촌읍 삼리 곤지암교 하류 50m 지점에서 확인된 붕괴된 자전거도로. 한 시민이 위태롭게 붕괴된 자전거 도로를 지나고 있다. 지역 주민에 따르면 이 지역은 발목정도의 다른 곳과 다르게 평상시에도 깊은 웅덩이가 형성됐다고 한다. 침식작용이 심한 곳으로 자전거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시멘트를 발랐지만 물살에 침식되면서 유실됐다. 지난 5월 봄비에도 자전거 도로가 유실돼 복구 공사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 MB씨 4대강 비리수첩 제작단 이철재
지난 7월 27일 6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천은 물 흐름을 방해하는 수중보, 교량 등이 홍수 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곤지암천 곳곳에서 자전거 도로와 제방 도로가 끊겨 통행이 불가한 상황에서도 광주시는 홍수 피해가 있은 지 수일이 지나도록 통행 제한 등 안전조치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MB씨 4대강 비리수첩 제작단'은 3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와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MB씨 4대강 비리수첩 제작단은 지난 8월 1일 곤지암도시공원부터 학동천 합류지점까지 곤지암천 수해 현장을 조사했다.
제작단 관계자는 "곤지암천 홍수 피해는 지류 및 지천에서 물의 흐름을 막는 구조물 주변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는 것"이라면서 "이는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하면 지류 홍수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증명하는 사례"라고 밝혔다.

▲ 쓰러진 곤지암천 표지판 본류를 정비하면 지류 홍수를 막을 수 있다는 정권의 거짓말을 쓰러진 곤지암천 표지판이 말해 주는 듯하다. ⓒ MB씨 4대강 비리 수첩 제작단 이철재
광주시 실촌읍 삼리 곤지암 청소년 수련원 인근의 수중보(하천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 하류 90미터 지점(축구장 앞)에서는 시멘트 블록이 설치된 제방 약 50m 가량이 붕괴됐다. 가로등과 하천 안내판 등이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고, 둔치와 하천이 만나는 지점에 침식 방치를 위해 설치한 시멘트 구조물도 심각할 정도로 침식됐다.
자전거 도로용 아스콘이 하천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으며, 커다란 아스콘은 인근 하수차집관로에 부딪혀 멈춰 있는 등 처참한 상황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축구장 앞 제방 도로는 현재도 차량이 통행하고 있는데 이곳의 안전조치는 대여섯 개의 삼각기둥을 세워 두는 것뿐이었다.

▲ 곤지암천 축구장 앞 제방 붕괴 현장 약 50m 가량 붕괴돼 가로등과 하천안내판이 뿌리 채 뽑혀 쓰려져 있으며, 자전거 도로용 아스콘과 시멘트 블록 등이 널브러져 있다. ⓒ MB씨 4대강 비리 수첩 제작단 이철재
광주시 초월읍 용수3리에 위치한 쌍용교 인근 지역은 지난 27일 홍수가 우측 제방을 월류해 인근 지역이 침수 피해를 입은 곳이다. 쌍용교 하류 좌안은 1~2Km 사이 곳곳에는 시멘트 블록 및 제방이 유실됐다.
현재 이곳은 흙을 담은 포대자루를 동원해 임시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역 주민들은 이번 홍수는 쌍용교와 인근 하천 내에 건설되고 있는 성남~여주간 복선 전철 교량 기둥이 물의 흐름을 막아 피해가 커졌다고 지목했다.

▲ 마대자루 제방 공법 광주시 초월읍 쌍동리 인근 붕괴된 제방. 시멘트 블록이 유실되면서 제방이 붕괴돼, 이를 막기 위해 흙을 담은 마대자루로 임시 공사를 하고 있다. ⓒ MB씨 4대강 비리 수첩 제작단 이철재
쌍용교 부근에서 20년째 살고 있다고 밝힌 50대의 정재능씨는 "이번 홍수에 불어난 물이 집을 관통해 피해를 봤다"면서 "쌍용교가 물의 흐름을 막아 월류했지만, 복선 전철 교량 기둥이 없었을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피해를 입은 집집마다 30만~40만 원씩 지원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면서 "또다시 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물을 담을 수 있는 근본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하류쪽에서 바라본 쌍용교 지역 주민에 따르면 27일 홍수 시 쌍용교에 물이 막혀 좌측으로 월류해 침수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쌍용교는 지은 지 20 년이 됐다고 한다. ⓒ MB씨 4대강 비리 수첩 제작단 이철재
광주시 초월읍 쌍동리에 위치한 수중보 아래 지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좌안 제방 도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연석 석축이 홍수에 유실되면서 곳곳에서 제방 도로가 붕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 통행 제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아, 현장 상황을 모르고 진입한 차량이 후진으로 돌아 나가는 상황이 계속됐다.
제방 도로는 아랫부분이 심각하게 쇄굴돼 있어 자칫 중량이 나가는 중장비 또는 대형 차량 통행 시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 끊어진 제방 도로 광주시 초월읍 쌍동리 수중보 아래 성남~장호원간 도로 교각 부근 제방 도로는 여기저기서 자연석 제방이 침식돼 끊어져 있다. 차량 통행이 제한되지 않아 후진으로 나가는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 MB씨 4대강 비리 수첩 제작단 이철재
박창근 교수가 이끄는 4대강 시민조사단은 지난 7월 30일 광주시 도평리 선린교부터 경안천 합류지점까지 현장 조사를 벌였다. 여기서도 자전거 도로 붕괴 및 교량 난간 유실과 광주하수처리장 및 곤지암하수처리장의 침수 피해를 확인했다.
제작단이 광주시로 문의한 결과 정상 가동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 관계자는 "현장 조사가 이제 시작돼 언제 복구될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면서 "1~2달 정도는 걸릴 것"이라 말했다. 심각한 것은 하수처리장이 가동이 되지 않으면 처리 안 된 생활 하수가 수도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 상수원으로 그대로 유입된다는 점이다.

▲ 콘크리트라고 안전할까? 광주시 곤지암읍 삼리 새터교 하류 30미터 지점에서 확인된 콘크리트 제방 뒤 침식 현상. 콘크리트 제방을 만들 정도로 홍수기 물살이 빠른 지역으로 보인다. 정작 콘크리트 제방과 자전거 도로 사이에 자갈과 흙으로 채워진 부분이 약 60Cm 깊이로 침식됐다. ⓒ MB씨 4대강 비리 수첩 제작단 이철재
현장 조사에 참여한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1일 자신의 블로그에 이와 같은 내용을 올리면서 "우면산 산사태가 아니었으면 곤지암천 범람은 큰 뉴스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돈 교수는 "우리가 돌아본 도로 반대편 곤지암 천변에는 변변하게 제방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제방 축조계획이 서있기는 하나 예산 때문에 몇 년째 지연되어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지천은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두고 멀쩡한 본류를 파헤치느라고 수십조 원을 퍼붓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가"라며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광주시는 이번 홍수 피해를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이라 말하고 있다. 시간당 100mm와 누적강우량 400mm가 왔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홍수는 곤지암천과 경안천을 준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경기도에 162억 원을 신청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이번 홍수 피해는 상당 부분 하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 크다. 박창근 교수와 이상돈 교수의 지적처럼 홍수 피해가 잦은 지류 지천을 우선하지 않은 현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며, 자지단체장의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자전거 도로를 건설하는 등이 피해를 가중 시킨 면이 크다.
제작단은 "이번 조사를 통해 정부가 4대강 공사를 통해 지류의 홍수 피해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4대강 사업 초기부터 운하반대교수모임 등 전문가들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홍수는 지류지천에서 발생하고 있다면서 본류가 아닌 지류지천을 먼저 정비할 것을 주장했다.
제작단은 "지금 필요한 것은 유역 홍수 할당제, 상습 침수 지역 매입을 통한 홍수터 복원 등 비구조물적 홍수 방어 대책"이라면서 "준설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올립니다. 
2011.08.03 13:45 ⓒ 2011 OhmyNews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올립니다.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05730

2011년 8월 5일 금요일

그 괴물이, 재첩 씨를 말려버렸다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지인 대구경북과 울산을 만나 보세요. <편집자말>
  
▲ 금모래밭을 수놓는 재첩 재첩이 천의무봉의 솜씨로 금모래밭을 수놓으며 기어갑니다.
ⓒ 정수근
 재첩

  
▲ 천천히 이동하는 재첩 회천의 재첩이 한 걸음 한 걸음 기어가고 있습니다. 신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0년 7월 24일 회천에서 촬영했습니다.
ⓒ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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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맑은 강물 속 금빛 모래밭을 수놓고 있는 녀석은 누구일까요느릿느릿 제 갈 길을 가며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솜씨를 뽐내는 것은 바로 재첩이란 놈입니다민물조개인 재첩이 바로 저 금모래밭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최근 저 금모래밭의 주인인 재첩이 모두 사라졌습니다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그 많던 재첩을 누가 한입에 다 먹어버리기라도 했을까요

  
▲ 금모래밭의 참 주인 재첩이 맑은 강 회천에서 '강수욕'이라도 즐기고 있나 봅니다.
ⓒ 정수근
 재첩
  
▲ 폐각만이 남은 회천의 재첩 4대강사업으로 재첩의 씨가 말라버린 회천에서 겨우 발견한 재첩의 폐각이 이곳에 재첩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 정수근
 재첩

예, 바로 '4대강 삽질'이라는 괴물이 그 탐욕의 주인공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재첩의 터전인 금모래밭이 통째로 사라져버리면서 재첩까지 모두 자취를 감춘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지금부터 이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하나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회천의 금모래밭을 수놓던 재첩이 모두 사라지다

금빛 모래가 많아 내성천을 닮은 강 회천경북 고령과 경남 합천을 이어주는 회천은 모래가 많고 물이 얕아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게다가 물고기와 재첩이 많아 천렵 등을 하면서 생태교육을 하기에도 그만이라 매년 여름 두 아이와 함께 이곳을 찾았습니다.

  
▲ 살아있고, 안전한 강 회천의 아이들 회천에서 아이들은 맘놓고 물놀이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강을 원합니다. 4대강 사업으로 깊이가 평균 10미터가 넘는 위험한 강이 되어버린 낙동강. 이런 강으로 다시 되돌려야 합니다.
ⓒ 정수근
 회천
그런데 최근 이 아름다운 곳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모래톱에 쌀알만 한 숨구멍을 내고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게 들어앉아 있던그 많던 재첩이 올해는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작년 여름만 해도 모래톱에 수도 없이 나 있던 숨구멍을 파보면 여지없이 오십원짜리 동전만한 재첩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재첩을 잡아 모아 재첩들이 곧추서서 기어가는 광경을 보면서 말 그대로 생명의 신비를 자연스럽게 습득했습니다. 

  
▲ 숨구멍 속에 들어앉아 있는 재첩을 찾아라 저 빽빽한 숨구멍에 모두 재첩이 들어있습니다. 얼마나 많았던지요.
ⓒ 정수근
 재첩
  
▲ 금모래밭의 주인인 재첩 숨구멍 아래 재첩이 저렇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 정수근
 재첩
 
경북 고령군 우곡면 포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올여름 '낙동강 생태학교'를 준비 중인 규리 아빠는 "지난 5월 내린 100의 봄비에 이미 회천의 많은 모래가 낙동강으로 흘러가버렸다재첩은 모래 밑 평균 3~4cm 깊이로 들어앉아 있는데, 회천의 모래가 강한 물살에 쓸려가면서 재첩까지 모두 사라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 역행침식의 원리 본류를 깊이 준설하면 본류와 지천의 단차로 인해 본류로 유입되는 지천에서 이와 같이 역행침식 현상이 발생합니다.
ⓒ 방송화면
 역행침식
이것이 대체 무슨 말인가요? 4대강 사업이 부른 이른바 '역행침식 현상' 탓에 모래가 낙동강으로 엄청 쓸려갔다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재첩과 서식처가 모두 함께 사라졌다고 합니다.

역행침식 현상으로 장마 후 다시 무너진 회천

재첩의 씨를 말려버릴 정도로 충격적인 '역행침식 현상'은 독일의 하천전문가 헨리히 프라이제 박사에 의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낙동강과 연결되는 하천의 역행침식은 낙동강의 과도한 준설로 하천의 평형이 깨지면서 발생했습니다. 낙동강에서 6m의 과도한 준설을 하면서 지천과의 평형상태가 완전히 깨진 겁니다.

  
▲ 역행침식 현상으로 깎여나가는 둔치 제방 지난 5월 21일 낙동강과 만나는 지점의 둔치가 침식되어 심하게 깎인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 정수근
 역행침식
결국 지천의 물이 하상이 낮아진 낙동강으로 마치 폭포수처럼 떨어져 제방을 무너뜨리고 상류로 침식이 일어나는 역행침식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한 시간만 모래를 파면 한 망태기 가량의 재첩을 잡았던 이 강에서 올해는 단 한 마리의 재첩도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 재첩이 살았다는 흔적은 어렵게 찾은그것도 한쪽만 남은 재첩의 폐각뿐이었습니다. 

  
▲ 폐각으로만 남은 재첩 지난 6월 2일 찾은 회천에선 폐각만 보일 뿐 살아있는 재첩은 구경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 정수근
 회천
"매년 봄부터 재첩을 잡는 이들로 북적였고그렇게 채취한 재첩이 대구 등지로 공급됐다"는 규리 아빠의 말로도 회천에 살았던 재첩의 양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회천은 섬진강의 그것처럼 대구·경북 일대 재첩 주공급원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4대강 삽질은 회천의 그 많던 재첩을 모두 집어삼켰습니다.  

멸종위기종1급인 귀이빨대칭이도 삼켜버리는 4대강사업

4대강 삽질이 삼켜버린 것은 회천의 재첩만이 아닙니다. 4대강 사업이라는 괴물은 환경부가 멸종위기 1급종으로 분류한 '귀이빨대칭이'라는 이름도 범상치 않은 조개도 삼켰습니다. 

  
▲ 멸종위기1급종 귀이빨대칭이 지난 4월 18일 낙동강에서 발견한 귀이빨대칭이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4월 24일 다시 찾은 현장에선 충격적인 현장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귀이빨대칭이 집단 폐사 현장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멸종위기1급종이 집단 폐사한 것입니다.
ⓒ 정수근
 귀이빨대칭이
지난봄 이곳 회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류부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낙동강에서(합천댐 바로 위멸종위기 1급 '귀이빨대칭이'가 집단 폐사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그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던 귀이빨대칭이 수천 개체가 4대강 삽질의 속도전이 극에 달하던 지난 봄 이곳 낙동강에서 집단 죽임을 당한 겁니다. 4대강 사업의 과도한 준설에 따른 수질악화와 수위저하로 이들의 서식처가 물 위로 드러난 탓이지요.

우리는 이 충격적인 사실만으로도 4대강 삽질이 어떤 '살육'을 벌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 살을 깎아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강

올해 장마 후 다시 찾은 회천은 지난봄과는 또 달라져 있었습니다강물의 흐름은 더 빨라졌고낙동강과 만나는 합류부엔 여지없이 침식현상이 일어나 지난 봄비에 무너진 둔치가 또다시 무너져 내렸습니다그런데 그 양상이 훨씬 더 심각합니다

  
▲ 역행침식으로 무너져내리는 둔치 제방 낙동강과 회천 합류부의 지난 7월 19일 광경입니다. 역행침식 현상으로 둔치 제방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위태롭습니다.
ⓒ 정수근
 역행침식
침식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깔아놓은 하상유지공의 일부도 거센 강물에 뜯겨 흉물스럽게 변했고, 합수부의 물길은 또다시 바뀌어 있었습니다. 결국 붕괴하면 복구하고붕괴하면 또 복구하는 악순환을 지난봄부터 계속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공사비는 도대체 얼마일까요? 또한 회천의 모래가 낙동강으로 쓸려가 그동안의 준설을 '헛준설'로 만들고, 또다시 준설을 하면서 낭비되는 혈세는 또 얼마일까요?

  
▲ 하상유지공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4월 21일 회천 낙동강 합류부에 역행침식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상유지공을 깔고 있습니다. 그러나 5월 초 봄비에 이것의 상당 부분은 날아가고, 둔치도 심하게 깎여나갔습니다.
ⓒ 정수근
 하상유지공
  
▲ 사석을 깔다 모래망태기가 맥없이 흘러가버리자 이번에는 사석을 깔아놓았습니다. 한달 뒤인 5월 21일에 확인한 모습입니다.
ⓒ 정수근
 역행침식
  
▲ 역행침식으로 붕괴 후 복구하고 또 붕괴되고 7월 24일 확인한 재복구 현장입니다. 붕괴되고 복구하고 붕괴되고 복구하고를 반복하고 있는 혈세 탕진의 현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광경이 계속 재현된다는 사실입니다. 혈세탕진의 악순환 말입니다.
ⓒ 정수근
 역행침식
강은 이렇게 인간을 조롱하면서한편으로는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다시 평형을 찾아갑니다. 누군가 말했듯 "강이 제 살을 깎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 겁니다. 강의 평형상태가 깨지면 이렇게 심각한 폐해를 낳습니다. 회천에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하천의 변화는 4대강 사업이 얼마나 '반생태적'인지 알려줍니다.

  
▲ 재첩 형제들 금모래의 강 회천에서 5살 꼬맹이가 찾은 재첩들입니다. 올망졸망 이 예쁜 녀석들이 역행침식 현상으로 모두 쓸려가버렸습니다.
ⓒ 정수근
 회천
모래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게 바로 4대강 사업입니다. 우리는 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회천의 재첩을 통해서 지금 강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4대강에서 일어나는 역행침식 현상은 연쇄적으로 지천에서 지천으로 이어져 결국 전국의 모든 강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모래천연정수기이기도 하고 골재이기도

그런데 이렇게 쓸려가는 모래는 또 어떤가요?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에서만 44000(경부고속도로를 6~7미터 높이로 쌓을 수 있는 양)의 모래가 사라졌습니다이 모래는 귀한 골재 자원이기도 합니다. 4대강에서 이 귀한 모래를 그동안 생태계가 허용하는 선에서 채취해 삶을 영위하던 골재노동자 1000여 명, 낙동강에서만 700여 명의 골재노동자가4대강 사업 탓에 일자리를 잃고 쫓겨났습니다

  
▲ 골재노동자들의 삼보일배 4대강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빼앗긴 낙동강 골재노동자들이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삼보일보로 그들의 뜻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도 이들의 생존권을 외면하고 있다.
ⓒ 정수근
 골재노동자
4대강 사업만 아니었다면 낙동강은 그들에게 평생의 생계를 보장해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는 쫓겨난 골재노동자들의 생계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아직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수십만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면서 벌이는 이 사업으로 낙동강에서만 700여 명의 생계가 막막해진 것입니다

골재노동자들에게 생계를 보장해주었던 모래는 또한 회천에서 확인한 것처럼 재첩과 같은 조개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명의 서식처이기도 합니다모래는 재첩이 숨을 쉬고 알을 낳고모래무지를 비롯한 많은 물고기가 숨을 쉬고 생명을 이어가는 공간입니다.  

  
▲ 모래톱을 거쳐오면서 정화되는 강물 모래의 강 회천은 하류로 올수록 강물이 깨끗해 집니다. 모래가 강물을 정화하기 때문입니다.
ⓒ 정수근
 모래
정부가 준설해서 마구 방치한 모래(이렇게 방치한 모래가 농경지의 배수로를 막아 경북 성주에서는 참외하우스 450동이 장맛비에 침수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는 이처럼 수많은 생명을 품어주기도 하지만무엇보다도 수질을 정화하는 놀라운 기능이 있습니다. MB가 퍼낸 낙동강의 모래는 사실 수질 정화를 위한 귀중한 천연필터였습니다.

자연정수기 역할을 하는 이 귀한 모래를 다 파내버린 채 정부는 수질 개선을 외치고 있습니다게다가 강물마저 가두면서 말입니다흐르는 강물을 막고천연정수기인 모래를 다 파내어버리고서 수질을 개선하겠다니, 이 정부는 정말 국민을 바보로 여기고 있습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4대강 삽질 정부

그렇습니다. 4대강 사업 추진본부에서 하는 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거짓 홍보로 끝까지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삽질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정부는 막대한 홍보예산을 들여서 거짓홍보에 올인하고 있습니다지금 전국을 돌면서 벌이고 있는 '4대강 사진전'과 상금440만 원을 걸어놓고 벌이는 '4대강 국민 공모전'이 바로 그 일단입니다.

  
▲ 국민을 우롱하는 '4대강 사진전' 4대강 추진본부는 전국을 돌면서 국민을 우롱하는 4대강 사진전을 열고 있다. 마지막 홍보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의 일단이다.
ⓒ 4대강추진본부 누리집 캡처
 4대강사업

"생명과 희망을 돌아오게 한다"느니 "환경을 생각한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구호로 치장한 이 사업으로 인해 지금 전국의 하천이 붕괴하고물고기와 조개가 죽고모래가 사라지면서 그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습니다도대체 이것은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요?

당장 우리 아이들이 올여름 회천에서 재첩을 구경할 수 없다는 이 사실지금 낙동강을 비롯한 전국의 강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너무나 두렵습니다.

  
▲ 낙동강과 회천 합류부에 깔아둔 하상유지공 때문에 모래밭이 뻘밭으로 변했습니다. 4대강사업으로 변해가는 하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5월 21일 확인한 모습입니다.
ⓒ 정수근
 낙동강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며,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