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0일 토요일

고문경찰

이글은 한겨레신문 오피니언 hook에서 퍼왔습니다.

역사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임시학과장,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 독일 막스 플랑크역사연구소 초빙교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 게임>, <한국의 예언문화사>,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조선사회사 연구> 등의 저서와 <미시사와 거시사>, <미시사의 즐거움> 등의 번역서 등이 있다. 신문과 잡지에 연재한 글도 적지 않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백승종의 역설>, <갓 쓴 양반들의 성담론> 등이 있다.

그리스 사람 제논은 변증법까지 발견한 훌륭한 철학자였지만, 왕의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 고문 끝에 죽었다. 고문에는 성역도 없었고, 그 기술은 역사와 더불어 악랄함을 더해갔다. 일제 때 조봉암은 손가락이 부러지는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이런 강단은 너무나도 보기 드문 일이다. 웬만한 사람은 삼대처럼 꺾이기 마련이라, 권력자들은 정적을 고문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많았다. 조선시대 사화와 당쟁 때도 으레 고문이 등장했다.

고문금지가 사상 최초로 명시되기는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에 이르러서였다. 그 뒤 서양 각국은 경쟁적으로 고문을 금지했다. 실효는 별로 없었지만 일반의 인식은 점차 바뀌어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함으로써 고문폐지를 인류의 과제로 언명했다. 그래도 고문은 끝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해 각국의 독재자들은 고문을 무기삼아 영구집권을 노렸다. 인권모범국가로 자처하는 미국조차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갖은 못된 짓을 다했다.

이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쾌거도 있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법원은 독일정부에게 한 아동유괴범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03년 독일경찰은 은행가의 아이를 유괴한 이 범인이 체포되자 고문을 가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선의의 위법행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판사들은 “이 경우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경찰의 변명을 일축했다. 인간존엄의 원칙을 존중하는 판사들이 건재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민이 많은 독일이 부럽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면 조봉암이 퍽 옳았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없애고, 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중략)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자고 그는 주장했다. 이런 요구를 했다고 이승만은 권력의 셰퍼드 고문경찰을 앞세워 그를 형장으로 내몰았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또 어쩔 것인가. 자본의 고문은 아직 진행형이다.

자본주의 새판짜기와 한국의 희망버스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공동편집인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반작용 시계추가 어떤 새로운 판짜기에 이를지, 어느 지점에서 더 높은 균형에 도달하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과거의 관성이 짓누른다. 또 대립하는 여러 힘들이 서로 다툰다. 2008년 위기 이후 세계는 어찌 돌아가고,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전환점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움직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위기는 극단에 치달은, 고삐 풀린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어떤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생산적 기능의 죽음을 낳은 자본의 탐욕과 거대한 투기화, 대공황 이래 최악의 부채 거품, 그리고 노동권 및 분배·복지의 실종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미국은 토지주택, 화폐금융 그리고 인간노동의 과잉시장화가 몰고 온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안전, 즉 이중의 의미에서 ‘폴라니적 모순’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7월9일 밤 전국 각지에서 제2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로 가기 전 부산역 광장에 모여 비를 맞으며 문화제를 열고 있다.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안정, 이중의 모순
반면 떠오르는 아시아의 새로운 용(龍), 중국 경제는 시장의 고삐를 잡아 관리하면 얼마나 거대한 규모로 폭발적·압축적으로 생산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의 고삐를 풀어 저물게 된 미국과 고삐를 잡아 새롭게 떠오른 중국, 두 나라 운명의 갈림은 2008년에 갑자기 나타난 일은 아니다. 공교롭게 21세기를 시작하는 2001년은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리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상징적 해였다. 미국의 고삐 풀린 금융주도 자본주의에서는 1990년대 ‘신경제’ 성장의 끝자락에서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됐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동산 거품을 띄워 2008년 금융위기로 가는 자기 무덤을 팠다. 반면에 신흥 제조업 강국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여세를 더욱 몰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제2의 개방을 단행해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하는 새 모멘텀을 구축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기울고 중국이 떠오른다고 해서, 미국식 발전 패러다임인 ‘워싱턴 컨센서스’가 파탄나고 중국식 발전 패러다임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뜨게 되었다고 해서 중국이 2008년 위기 이후 글로벌 대안 모델이 됐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국은 여전히 못사는 나라이고 추격 모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TO 가입 이래 본격화된 고환율·수출지향 모델은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계층·지역 간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 통계의 신뢰성에는 문제가 많지만, 지표상으로는 한국보다 더 심하게 나타난다. 밖으로는 대미 무역 흑자, 과잉 보유 달러의 미국 환류에 기초한 아시아와 미국 간 불균형한 의존 구조가 파괴돼 ‘글로벌 리밸런싱’이 진행 중이다. 이는 수출 독주와 수출·내수 양극화로 치달은 성장 체제의 경로 수정을 강제하고 있다.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뒤덮는 황사에서 보듯, 환경문제가 극심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정치적 낙후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어떻게 선진 민주복지 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을 저물고 있는 미국과 ‘차이메리카’(Chimerical)의 공생관계를 도모할 공산이 크다.

한국판 ‘물극필반’ 운동
그러나 정작 어두운 곳은 등잔 밑이다. 진짜 걱정거리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런대로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이 누군지조차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정치적 민주화 이후,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추구하는 발전 모델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 부분에서 한국이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의 한국 경제는 그간 이명박표 신자유주의 ‘역주행’ 전략, 또는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으로 인해 민주복지 국가로 가는 데 쏟아야 할 아까운 시간을 까먹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폴라니의 말대로 고삐 풀린 시장만능주의의 역주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광범한 사회적 대항운동, 즉 한국판 ‘물극필반’ 운동이 일어나게 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공로는 적지 않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자유주의적 민주정부 때는 현재와 같은 광범한 노동·시민 연대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이는 역설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보수의 국정 무능력을 여실히 폭로한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세 차례나 기회를 잃었다. 출범 때 과거 민주정부 시기에 대한 평가, 촛불시위에 대한 대응 방식,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대책이 그것이다. 모든 문제는 정부 출범 때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비롯됐다. 이 정부는 이전 자유주의 민주정부 10년이 초래한 한국 경제의 문제를 ‘좌파 정책’ 또는 ‘좌클릭’ 때문이라고 진단한 뒤, ‘우클릭’이 해답이라고 봤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씨는 일찍이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난점을 다음과 같이 짚은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자신을 출범하게 한 그 정치적 포장에 갇히게 되어 국민 지지 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이게 됐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성장률 저하에도 기인하지만 소득과 부의 양극화, 개방과 경쟁 심화에 따른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양극화 심화는 좌파 정책 때문이 아니라, 경쟁과 개방을 강화하는 보수적 정책에 의한 것이다. 바로 그런 데서 기인한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극도로 우파적인 경제정책 기조로 살리겠다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다. 진단이 잘못됐으므로 처방도 잘못된 것이다.”
이처럼 애당초 자기 함정을 팠던 이 정부는 촛불시위와 마주해 신(新)공안정치로 대처하더니, 2008년 위기 때는 미국의 부시를 본뜬 ‘두 개의 대한민국’과 허망한 ‘낙수효과’(떡고물 효과) 전략을 밀고 감으로써 그 함정을 더 깊이 팠다. 고환율-부자감세-규제완화 정책를 통해 ‘재벌 주도의 수출경제’와 ‘부동산-토건 경제’를 두 축으로 해서 돌아가는 이명박 모델의 귀결에 대해서는 굳히 긴 말이 필요 없게 됐다. 이 대통령이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불통’ 보수파는 여전히 민주복지 국가의 새 시대정신에 역주행하고 있으나, 이미 한나라당조차 변화에 착수해 민주당과 다툴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왜 실패한 걸까? 흔히 이 정부의 정책 기조를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라고 말한다. 여기서 개발주의란 주로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 개발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명박식 개발주의와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중요한 차이에 대해 몇 마디 말하고 싶다.

85호 크레인과 민주화의 역설
이명박식 개발주의는 국가가 재벌과 지배연합을 구축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발언을 짓누르고 재벌에 온갖 퍼주기를 했다는 점, 그렇게 ‘계급구조적 이윤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박정희식 개발주의와 거의 같다. 그러나 박정희 방식이 재벌에 대해 성과규율의 고삐를 쥐고 있었던 반면, 이명박 방식은 규율의 고삐를 완전히 놓았다는 점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이는 보수든 진보든 잘 안 보는 지점이다. 금융의 고삐도 놓아버렸다. 노동시장도 마음껏 유연화했다. 물론 개방의 고삐도 놓았는데, 고삐 풀린 전면 개방은 대니 로드릭이 말했듯이, 민중의 민주적 자기 통치권에 족쇄를 채울 뿐 아니라 자본에도 자유로운 탈출구를 열어줘 국가의 대외적 자율성과 자본권력에 대한 자율성을 빈껍데기로 만든다. 그러니 ‘삼성공화국’ 총수 이건희 회장이 정부 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면하는 수준이다”라고 겁없이 말해도 길들일 도리가 없다. 그동안 열과 성을 다해 고환율, 부자 감세, 각종 규제완화 정책으로 재벌에 일방적으로 퍼주고 서민과 노동자,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목을 졸라주었는데도 말이다. 
정부, 국민경제, 서민대중 모두 재벌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또 한 가지, 이명박 대통령과 박정희는 둘 다 재벌 주도의 수출지향 정책을 추구한 점은 같지만, 그 효과는 다르다. 대외개방과 재벌권력에 대해 나름대로 고삐를 쥐고 있던 박정희 방식은 국민적 파급효과를 낳은 반면, 이명박 방식은 떡고물 효과도 낳지 못한 채 양극화만 심화했다. 그리고 고용불안과 고용 없는 성장, 무분별한 개방이 낳는 다수 대중의 불안정한 삶에 대해 복지를 확충하기는커녕, 겨우 시작한 국가복지마저 후퇴시켰다. 요컨대 이명박표 ‘강부자’ 정권의 실패는, 아무리 보수 정부라고 해도 국가가 특정 기득권 세력의 포로가 되지 않게 최소한의 규율 고삐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결코 발가벗은 사익 권력으로 타락해서는 안 되고 최소한의 공공성 체신은 갖춰야 보수도 산다는 교훈을 망각한 데 있다. 
그런데 이명박표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이 실패했다면, 노무현 시대를 이어받는 것으로 족할까. 잘 알다시피, ‘대통령 이후 대통령의 성찰’을 수행하며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키웠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기에 노동시장의 과잉 유연화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복지의 지체에 대해 자기비판을 한 바 있다. 친노 세력과 지식인 중 누가 이만한 성찰력을 보여주었나? 그러나 그런 노 전 대통령조차 삼성공화국 상황까지 낳은 재벌 체제 개혁 실패, 그리고 돌진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나아간 무분별한 개방의 반민주적·반국민경제적 효과에는 끝까지 침묵했다. 또 그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고환율에 기반한 ‘재벌 독식의 수출 독주-내수 빈혈’의 양극화 축적 체제를 밀고 갔다. 부동산 문제도, 금융은 거의 다 풀어놓고 가격 규제도 미약한 상태로 부동산 보유세에만 매달리는 답답한 처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김진숙이 싸우고 있는 85호 크레인 자리에서 김주익이 목매 하늘나라로 간 것도 슬프게도 참여정부 때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정부 시기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나고 지지 기반이 허물어진 것은 좌파 정책 때문이 아니라,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 정책, 즉 ‘민주주의에 역행한 자유화’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두 갈래로 찢어진 민주주의의 역풍 효과였던 것이다. 
밖으로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겪은 뒤, 안으로는 자유주의적 민주화 역설과 뒤이은 MB식 시장만능주의 실패를 체험한 뒤 한국의 대중은 다시 깨어나고 있다. 과잉시장화의 폴라니적 모순에 대항해 사회적 보호와 연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새판은 어떻게 짜일까. 보수의 ‘선진화’ 기획을 뒤엎을 수 있는 복지국가 깃발이 새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명박 이후의 보수’도 복지국가를 내세운다.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은 까먹은 시간을 만회하는 운동으로 그칠까, 아니면 지난 민주정부와 여전히 미약한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판 보편복지 국가를 착근시킬 새 동력을 만들어낼까. 시대정신의 빛은 밝은데 이를 구현할 시대의 몸은 정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보편복지의 문, 좁지만 넓은
노동세력이 주도하지 않는 복지국가 운동이라니? 민주화 시대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국가와 재벌 지배연합이 주도한 1961년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의 덫이기도 하다. 더 위로는 1953년, 1948년 체제로 소급되는 약한 진보의 아픔이 서려 있다. 문제는 단지 노동의 힘이 약한 데만 있지 않다. 복지국가 건설이란 곧 국가를 경유하는 공적 연대를 구축하는 일인데 그 사회적 신뢰 기반이 얕다. 각자도생과 불신의 벽을 넘어 보편적 동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공적 주체력 부족이 문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편복지 정치는 약한 노동, 약한 신뢰라는 한국적 조건에서 계급을 가로질러 보편적 동의와 연대를 구성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바로 그 점에서 진보 헤게모니 깃발에 값한다. 한국에서 보편복지의 문은 좁지만 넓다! 최루탄, 물대포, 경찰곤봉, 천민자본의 탐욕을 넘어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희망 버스’의 연대력은 어떤가. 노동·시민의 연대 역량, 배제된 하위 주체와 다중 주체의 광범한 열린 연대를 통해 복지와 노동, 평등한 자유와 사회공공성이 상생하는 모두의 나라를 열려는 창의와 열정이 한 줄기 푸른 희망이다.  
lbch@kangwon.ac.kr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미국, 제3차 ‘양적완화’ 손 벌릴까?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에서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Ⅱ]지속되는 달러 위기 ②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중앙은행이 총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기준금리 인하다. 그러나 미국처럼 기준금리가 0%까지 내려가면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다. 장롱 속에 현금을 보관하는 편이 낫지, 오히려 이자를 주면서까지 돈을 빌려주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 이 시점에서 명목금리는 제로하한(Zero Bound)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물론 유사 이래 한국 경제는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이런 상황에 부딪혔고, 일본 경제는 이미 1999년 초반 제로하한에 도달했다. 이때 붕괴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무엇일까?

2차 양적완화, 중앙은행 자산만 비약적 증가
유동성 공급 확대다. 즉, ‘가격’ 변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양’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크게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기준으로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유동성 부족 문제로 간주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7년 12월부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시장이 총체적으로 붕괴하자, 정책수단에 변화를 가져왔다. 부동산 파생상품의 증권화 과정과 관련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단기신용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통상 민간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금공급, 이에 따른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상 자산구성의 변화를 초래하는 프로그램을 ‘신용완화’(Credit Easing)라 부른다. 즉, 민간 금융회사에 예외적인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민간 금융자산을 중앙은행이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에 비해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란 중앙은행의 장기국채 매입과 이에 따라 대차대조표의 규모 확대를 가져오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따라서 2008년 12월~2010년 3월 1725조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과 국채를 매입한 프로그램을 1차 양적완화(QE1)라 부른다.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MBS와 장기국채를 대량 매입해 침체된 주택시장을 부양하고 장기금리를 내려서 실물경제를 회복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FRB의 양적완화 효과가 끝난 직후, 미국 경제는 다시 침체로 빠져들었고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시장에 팽배했다. 이런 시장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버냉키는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2차 양적완화(QE2)를 시사했다. 11월부터 6천억달러에 달하는 장기국채를 추가로 매입했다. 그러나 요란하게 시작한 2차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지난 6월 말 소리 없이 종료됐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될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 FRB의 총자산 규모는 대략 9천억달러에 달했다.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직후 실시한 신용완화 프로그램에서는 총자산 규모에 큰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자산의 구성상 단기국채가 감소하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대한 단기대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1차 양적완화가 시행된 뒤 대차대조표상 총자산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된 지난해 3월 말 2.3조달러로 증가했고, 2차 양적완화가 끝난 6월 말에는 2.9조달러까지 증가했다. 
부채 측면을 보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금융위기 이전 평균 400억달러에 달하던 지급준비금은 현재 1.65조달러로 증가했다. 이 중 95%는 법정 지급준비금을 초과한 초과 지급준비금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지급준비금이 6천억달러 정도 늘어났는데, 이 중 98%는 초과 지급준비금이었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한 대가로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압도적인 비중은 다시 중앙은행에 예치된 시중은행 지급준비금 계좌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사이에 자산의 구성상 국채와 지급준비금 간 교환만 일어났을 뿐, 가계와 기업에 대한 대출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08년 말에 비해 5700억달러 이상 줄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신규 일자리 창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소기업 대출 잔액의 경우, 1분기 기준 609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8.6% 줄어들었다. 
그러면 천문학적인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미국 경제에 어떤 성과를 남겼을까? 각종 실물 및 금융시장 지표를 통해 양적완화의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실업률은 여전히 9.2%로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전 5% 수준이던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1%까지 치솟았다. 2009년 중반부터 경기가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2년 동안 불과 0.9%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고용률은 상황이 더욱 안 좋다. 금융위기 이전 63%에 달하던 고용률은 현재 58.2%로 5%포인트 떨어진 상태다. 특히 2차 양적완화 조치 이후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는 거의 변함없었다. 오히려 지난 3월 이후 두 지표는 동시에 악화되고 있다. 실업률은 3월 8.8%에서 6월 9.2%로 상승했고, 고용률은 58.5%에서 58.2%로 하락했다.
소비자물가는 2차 양적완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2%에서 지난 5월에는 3.6%로 크게 올랐다. FRB가 중시하는 근원물가 또한 같은 기간 0.6%에서 1.5%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과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도한 것이다. 즉,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FRB가 공식적으로 의도한 소비와 투자 지출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달러가치 하락과 투기적 상품 가격 상승에 따른 것으로, 양적완화의 부정적 효과가 초래한 간접적인 결과다. 
다음으로 경기 동향을 대표하는 제조업 구매력 지수를 살펴보면, 2차 양적완화 시행 전인 지난해 10월 56.9에서 지난 5월에는 53.5로 오히려 악화됐다. 주택시장의 신규주택 착공 건수는 56만 건으로 심각한 침체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택 가격을 대표하는 케이스실러 지수 또한 고점보다 33% 정도 하락해 2002년 중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지난해 4분기 3.6%, 올해 1분기 4.2% 떨어져 주택시장의 더블딥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실물경제 회복에 기여하지 못해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브로커가, 중국 당국의 은행대출 축소 발언으로 하락하는 주가를 지켜보고 있다(왼쪽). 금융위기 초기인 2007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주택이 차압돼 매물로 나와 있다.

한마디로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실물경제는 거의 회복되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을 앞두고 다시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한 지난해 상반기와 모든 실물경제 지표의 추세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해 실물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나 1·2차 양적완화 기간에 실제 장기금리는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에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다. 
통상 중앙은행이 장기국채를 매입하면 국채의 시장가격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수익률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히려 양적완화가 시행되기 전에 수익률이 하락하고 실제 시행될 때는 수익률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는 양적완화가 시작되기 전, 시장에 이미 양적완화에 대한 ‘투기적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금융회사는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실제 양적완화 시행 시점을 전후로 국채를 내다팔고 주식이나 원자재 등 투기적 시장으로 자금을 이동했다.
최근 장기금리는 지난 2월 3.77%까지 오른 뒤, 최근 다시 3%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또다시 양적완화가 시행될 것이라는 투기적 수요, 안전자산인 국채에 대한 수요, 그리고 실물경제 침체 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기금리가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데 비해, 투기등급 회사채 수익률은 급격히 하락했다. 예를 들어 무디스 Baa 채권의 수익률은 금융위기 직후 9%까지 치솟았으나 최근 5%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정크본드에 투자한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막대한 투자수익을 올렸다. 
FRB는 공개적으로는 표명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자산 가격 부양을 의도했다. 이는 이론적으로 버냉키가 강조하는 ‘포트폴리오 밸런스’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FRB가 안전한 국채를 높은 가격에 매입하면, 금융회사는 보유한 국채를 매도한 금액으로 주식과 회사채, 그리고 원자재 상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은 대차대조표를 회복시킬 뿐 아니라, 담보가치 상승에 따른 차입 한도 증가로 자산시장의 추가적 부양을 가져올 수 있다. 주식시장 또한 양적완화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시장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을 기준으로 금융위기 직후 저점보다 거의 90%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8월 말 잭슨홀 연설 이후 지난 4월까지 단기간에 30% 정도 주가가 상승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유럽의 부채 문제도 있지만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에 대한 월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양적완화의 최대 수혜자 투기적 자산시장 
미국의 양적완화는 기축통화인 달러가치 하락과 환율전쟁을 초래했다. 달러는 2009년 3월의 저점에 비해 17% 정도 가치가 하락했다. 달러가치 하락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고금리와 환차익을 노린 캐리트레이드 증가를 가져왔다. FRB의 대규모 국채 매입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와 달러를 매각하고 신흥국 통화를 포함한 고수익 위험자산으로 자산의 재분배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상승했고, 이는 2차 양적완화 시행을 전후로 일어난 이른바 ‘환율전쟁’을 촉발했다. 즉 양적완화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달러가치 하락을 가져왔고, 이것이 환율전쟁을 일으킨 배후라고 할 수 있다. 
달러가치 하락은 원유를 비롯한 상품시장의 거품도 추동했다. 금융위기 직후 40달러 밑으로 떨어진 원유 가격은 최근 100달러를 넘어섰다. 상품 가격을 대표하는 로이터스CRB지수는 같은 기간 68% 상승했다. 원유가격 상승은 달러가치 하락과 거의 추세를 같이하는데, 대부분의 원자재는 기축통화인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상품가격 상승의 기대는 선물시장에서 투기적 수요를 부추겨 상품가격의 추가적 상승을 가져왔다. 즉, 채권·주식·달러·원자재 등 거의 모든 금융시장을 추동하는 배후에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움직이는 양적완화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양적완화 정책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지 않는 집단, 즉 월가에 가장 많은 수혜를 안겨다주었다. 반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즉 미국의 노동자와 가계는 가장 적은 수혜와 가장 많은 손실을 얻었다. FRB가 양적완화의 수도꼭지를 틀었으나 월가만 단맛을 빨아들였고 아래로 물이 흐르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린스펀의 ‘이지 머니’(Easy Money) 혹은 ‘그린스펀 풋’으로 대표되는 저금리 정책이나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은 이름만 달리할 뿐, 의도한 목적은 동일하다. 이른바 ‘자산시장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노린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3일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차 양적완화를 결정한 다음날, 버냉키는 기고를 통해 2차 양적완화가 추구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금융 상태를 더욱 완화하면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택대출금리가 낮아지면 주택 구입과 재대출이 더욱 용이하게 될 것이다. 회사채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가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주가가 상승하면 소비자의 재산 가치와 신뢰 증진에 도움이 되고, 이는 소비지출을 자극할 것이다. 지출 증가는 소득과 이윤을 제고해, 선순환 과정에 따라 경제성장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그러나 실업률과 주택시장 침체에서 보듯 2차 양적완화는 실물경제 회복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버냉키가 내린 정의에 따르더라도 양적완화는 명백히 실패한 정책이다. 월가가 요구하는 투기적 자산시장 부양 효과는 달성했지만, 높은 실업률과 가계부채 부담으로 경제 전체적으로 ‘대출’과 ‘투기’가 확산되는 것을 자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득 및 자산 양극화, 가계부채에 의존하는 수요 창출, 경제의 금융화, 취약한 제조업 경쟁력 등 구조적 문제의 치유를 지연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하고 있다.

월가의 ‘활약’에 따라 QE3 시행
1차 양적완화가 최악의 경제침체는 막았다는 데서 조금이나마 점수를 줄 수 있지만, 2차 양적완화는 각종 경제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명백히 실패했다. 따라서 FRB는 3차 양적완화를 쉽게 거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FRB가 움직이지 않으면 월가에서 먼저 3차 양적완화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지난해에도 골드만삭스는 최대 1조달러의 2차 양적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시장의 기대치를 잔뜩 끌어올린 적이 있었다. 월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산시장 부양과 실물경제 회복이라는 FRB의 의도는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FRB는 월가의 분위기 조성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만 2차 양적완화가 명확한 실패로 판명이 났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FRB 입장에서 3차 양적완화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년 재선 승리를 위해 버락 오바마의 처지에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경기회복이 필요하고, 재정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3차 양적완화는 버릴 수 없는 카드가 될 것이다. 따라서 FRB는 적잖은 부담을 이겨내고, 월가와 오바마의 지원에 힘입어 3차 양적완화의 시기를 조율할 것이다. 그 시기는 미국의 실물경제 침체의 속도와 강도, 시장과 FRB를 움직이는 월가의 ‘활약’ 정도에 달려 있다. 
noreco@korea.ac.kr

2011년 8월 18일 목요일

신용평가사에는 신용이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문학 전반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애쓰고 있다. 급진적 정치기획에 관심이 많으며 20대 생활학습연대조직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http://blog.aladin.co.kr/jobonzwa

 현대 자본주의가 운영되는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장치 중 하나는 ‘신용’이다. 자본주의에서 교환은 화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화폐만으로는 대규모 거래나 자본의 축적과 성장이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신용이다. 자연인 혹은 법인들은(채권을 발행하는 국가도) 상대방이 일정기간 후 상환 또는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인정함으로써 물건이나 돈을 빌려주거나 지불을 연기하는데, 이것을 신용이라 한다. 이러한 신용을 통해 자연인이나 법인들은 지금은 돈이 없어도 자금을 빌려 사업에 투자하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상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 시대 이 신용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라 부를 수 있는 지금도 이 신용은 막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신용을 기반으로 엄청난 파생상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수천 조의 돈이 시장에서 움직인다.
그렇다면 어떤 자연인이나 법인, 더 나아가 국가의 신용은 누가 평가하고 결정하는가? 많은 기관들이 신용 평가 혹은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주목해야 할 이들은 신용평가사이다. 많은 신용평가사들 중 특히 세계 3대신용평가사라 불리는 S&P(Standard & Poors), 무디스, 피치가 세계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과 국가의 신용등급을 발표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저승사자’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행사해왔다. 이들이 매번 발표하는 신용등급이란 한마디로 돈을 빌리려는 국가나 기업에 대한 ‘재무 성적표’이다. 즉 채무를 이행할 수 있는지 여부와 상환 지연 혹은 부분 상환에 따라 손실 규모가 얼마나 될지 측정해 등급별로 표시하는 예측 지표이다. 채권을 사는 투자자들은 투자의 안전성을 가늠하는 정보로 이를 활용한다.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러한 등급 설정을 통해, 안전한 투자처에는 자금 유입을 장려해 사업을 확장시키고 부실한 곳에는 자금 유입을 막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한다).
이 저승사자 중 한 명이 최근 파격적인(?) 신용등급 강등을 발표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S&P가 70년 동안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 A(AAA)를 유지해온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강등하고(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의 하락을 뜻한다) 2년 내 AA로 추가 하향할 수도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사실 S&P는 몇 차례 미국에게 신용등급 강등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발단은 미국의 부채한도액이다. 모든 국가에게는 자국 내의 기준에 따른 ‘부채한도액’이 있다. 미국의 부채한도액은 14조 3000억 달러이다. 미국의 부채가 이 한도액을 넘어서면 미국은 공식적으로 디폴트(국가 부도) 상태에 빠지게 된다.(8월 2일이 그 시한이었다.) 따라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 부채한도액을 인상하려고 노력해왔는데, 공화당과 오바마가 내세운 한도액이 서로 달라 갈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S&P는 부채한도 인상을 가지고 계속 정치권이 분열한다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공화당과 오바마가 부채한도액 인상에 합의했음에도 신용등급 강등을 발표했다. 미국이 내세운 부채한도액과 장기 재정적자 감축 계획(부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함에 따라 상징적이고, 그리고 실제적인 ‘충격’이 있었다. 몇 몇 언론들은 미국의 위기니 몰락이니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신용등급 강등을 위기로 판단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미국은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한 대가로 국채를 마음껏 발행하여 재정 적자를 극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미국 국채’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매입하니 재정이 적자 상태여도 금방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국채의 이자율이 낮아도 많은 이들이 미국의 신용도 때문에 미국 국채를 구입했다. 하지만 신용 등급이 강등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위험성이 높다고 판정받은 미국 국채를 덜 사려 할 것이고, 재정 적자에 처한 미국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채 발행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국채를 팔기 위해서는 국채의 이자율을 높여야한다. 이 경우 국채와 연동되어 있는 주택 대부 금리, 자동차 융자 금리 등이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는데, 이러한 금리인상은 자연스레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더욱이 이미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등급이 떨어진 미국 국채를 팔아버린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신용등급 강등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
그러나 나에게 이 사건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세상에, 아직도 S&P 같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이 객관적인 지표로 작용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실제로 영향을 받다니! 나에겐 다름 아닌 이것이 충격이었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평가는 얼마나 객관적이고, 또 정확한 것일까? 과연 신용평가사들에게 엄청나게 역동적인 변수들을 통해 결정되는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상태를 평가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일까? 바꾸어 말하자면, 남들의 신용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신용평가사는 과연 ‘신용’할만한 이들일까? 폴 크루그먼이 최근 칼럼에서 언급한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신용할 수 없는 자들인지가 드러난다. S&P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바로 그 달에도 리먼 브라더스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다. 시장성이 없고 투자가치가 없는 기업이, 즉 신용이 없는 기업이 시장에서 바로 퇴출당하듯이, S&P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 때 회사 문을 닫았어야 했다. S&P의 신용등급은 아무 객관성이 없는 지표로 전락했어야 했다.
리먼 브라더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S&P를 비롯한 신용평가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엉터리 신용평가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그들은 검찰 수사와 청문회에 불려 다녀야했다. 신용 평가사들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 참여 했을 때 공개된 신용평가사 회사 직원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그 거래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등급을 매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부자가 돼서 은퇴할 때까지 이것이 무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06년과 2007년 신용평가사들이 최고 등급 판정을 내린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상품 가운데 90% 이상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크본드(쓰레기 채권. 투자 위험성이 지나치게 높은 채권)로 판명되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1년 분식회계(회계장부 조작)가 밝혀져 거대 에너지기업 엔론이 파산한 사건이 있었다. 무디스와 S&P는 엔론이 파산하기 나흘 전 그들에게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다. 채무불이행까지 이르렀던 캘리포니아의 전기. 가스. 수도기업인 캘리포니아 유틸리티스는 채무불이행 2주 전까지 A-등급을 받았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1997년 11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국가부도에 다다르기 직전까지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에게 ‘투자 적격’에 해당하는 A등급을 안겨주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이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자 한 번에 6~12등급까지 강등시키면서 한국이 더욱 빚을 갚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엉터리 신용평가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졌듯이, 국가와 기업들은 높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해 신용평가사에 엄청난 로비를 한다. 신용평가사들이 어떻게 신용등급을 매기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경제에 엄청난 득이 될 수도, 엄청난 타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표가 나올 리가 없다.
즉 신용평가사들은 별로 정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지표를 내세워 권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많은 투자자들과 기업,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이 권력을 이용해 국가와 기업을 협박하기까지 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신용평가사들이다. 2008년 잘못된 신용평가로 금융위기가 터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놓고. 염치가 없는 건지 낯짝이 두꺼운 건지 이제 와서 미국의 신용등급이 어쩌구 떠들어댄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 없는 국가와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자본주의의 수호자 행세를 해왔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해서, 신용 없는 신용평가사들도 전부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자본가들과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가 시장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합리적인 체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자본주의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돈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신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힘과 권력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신용평가사라는 권력에 의해서 말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보여준 충격은 바로 이것이다.
각주 
1) 이러한 예측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오히려 미국 국채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양지선, ““S&P, 네가 틀렸어”… 신용등급 강등 이후 美 국채 가격·인기 되레 올라“, 국민일보, 2011.8.17.) 어쩌면 폴 크루그먼이 뉴욕 타임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s&p의 신용등급 평가는 객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이제는) 실제 경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권웅, “신용평가사에 끌려 다니는 오바마”, 시사인 제 202호, 2011.8.4.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30)
박형숙, “신용평가사 ‘빅3’ 너희를 평가해주마”, 시사인 제60호, 2008.11.5.(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3204)
이승선, “미국이 처한 위기는 디폴트가 아니라 신뢰 상실”, 프레시안, 2011.07.28.(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728153642&section=05)
이승선, “美 신용등급 초유의 강등 사태…’트리플 A’에서 ‘AA+’로”, 프레시안, 2011.08.06.(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806140447)
H, “미국의 정부부채와 신용등급”(http://socialandmaterial.net/?p=1181)
Paul Krugman, “Credibility, Chutzpah and Debt”, The New York Times, 2011.8.7.(http://www.nytimes.com/2011/08/08/opinion/credibility-chutzpah-and-debt.html?_r=3&src=ISMR_HP_LO_MST_FB)

저비용 욕망’ 자본이 만든 땀의 사슬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Cover Story]월드 티셔츠, 1900년대 미국과 30년대 일본, 70년대 한국 소녀들의 고된 노동에서 탄생
김명철  번역자·바른번역(주) 대표

티셔츠는 가장 간단하고 기초적인 상품이면서도 발달된 국제 분업하에 생산·소비되는 상품이다. 일반인들의 예상에서 벗어나 국제화·분업화된 이 상품이 국경을 넘나들며 생산·소비된 건 언제, 그리고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월드 티셔츠 탄생의 기원, 산업혁명
근대의 문을 연 산업혁명은 섬유산업에서 시작됐다. 18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평균수명이나 기술력 등 여러 지표에서 중국에 뒤처진 영국이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세계 1등 공업국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인 1700년대에 이르러 섬유 생산이 어느 정도 전문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대부분 나라들에서는 실을 뽑고 옷감을 만들어 입는 일이 주로 가정 내에서 소규모 단위로 이루어졌다. 농가마다 베틀을 갖추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목화를 빗질하고 물레질해 옷감을 짜고, 옷을 만들어 자급자족했다. 반면 영국에서는 각 가정에서 뽑은 실을 작은 기업들이 수거해 천을 짜게 되었다. 분업이 발달된 것이다.



중국의 한 자치주에서 주민이 직접 재배한 목화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중국의 한 자치주에서 주민이 직접 재배한 목화가 바구니에 담겨 있다. 그런데 목화를 재배해 실 뽑는 일은 천 짜는 일보다 훨씬 노동집약적이어서, 천을 짜는 기업들이 충분한 양의 실을 구하는 데 애먹는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1760년대에 성능이 개선된 베틀 덕분에 천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실은 더 부족하게 되었다. 하지만 때로 병목현상은 미래의 모습을 바꿔놓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면서 혁신과 개선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국은 이를 해결하면서 근대를 가장 먼저 열게 되었다.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인들은 필사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결국 1770년 제임스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첫 번째 제니 방적기에는 스핀이 8개 달려 있어서 노동자 한 사람이 뽑아낼 수 있는 실의 양이 8배로 늘어났다. 1784년에는 스핀이 80개, 18세기 말에는 100여 개로 늘어났다. 뒤이어 면직물 생산을 급격히 늘릴 수 있는 수많은 발명품이 출현했다. 수력 방적기인 워터 프레임, 뮬 방적기, 증기기관 등이 연달아 발명됐다.
제니 방적기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질서를 탄생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일을 그만두고 공장에서 일하러 도시로 몰려들었고, 새로 등장한 기업들을 위해 금융·보험·수송·통신 등 산업 기반이 갖추어졌다.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소매업도 발달했다. 섬유산업의 혁신이 근대 경제의 점화 스위치가 된 것이다.

미국 목화산업의 발전
실 부족이라는 병목현상을 해결하고 나자 새로운 병목현상이 나타났다. 면방직 공장에서 면직물이 쏟아져나오면서 심각한 원면 부족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대량생산으로 면직물 가격이 떨어지자, 영국인들은  피부에 닿으면 간지럽고 갑갑한데다 세탁하기도 불편한 모직물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면은 싸고 가벼웠으며 물세탁이 가능하고, 색상과 무늬가 다양한데다 감촉까지 부드러웠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영국의 모직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 의회는 주검에게 입히는 수의는 반드시 양모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을 만들 정도였다.
영국의 원면 부족이 심각해지면서 미국의 목화농장이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1700년대 후반까지 다른 국가에 비해 목화 생산이 미미하던 미국은 1800년대 전반에 이르러 생산량이 수십 배 늘어났고, 생산된 목화의 70%는 영국으로 수출됐다.
미국이 인도 같은 값싼 노동력 국가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목화 수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노예제도에 힘입은 바 크다. 목화 재배에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노동시장에만 의존하기에는 어려운 특성이 많았다. 목화를 재배하는 데는 힘든 육체적 노동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날그날의 날씨에 즉각 대응해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 목화는 축축하게 젖어 있을 때는 딸 수 없기 때문에 비가 오면 일꾼들은 일손을 멈출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일단 목화가 벌어져 건조되면 솜이 땅에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아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따야 한다. 비 맞은 목화 솜은 얼룩지기 때문에 비구름이 몰려오면 허겁지겁 노동자들을 투입해야 한다. 노동 수요 예측이 일기예보만큼이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노동력을 시장에 의존하는 건 불리했다. 노동 수요량이 불규칙한데다, 흔히 농장들은 인구밀도가 낮은 한적한 곳에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될 수 없었다. 하지만 노예제도는 이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덕분에 한정된 가족 노동력에 주로 의존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목화 재배 농장의 규모가 커질 수 있었고,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됐다.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는 흑인 노예들. 미국의 목화산업은 노예노동에 의해 유지됐다
싼 노동력 찾아 세계를 도는 글로벌 산업
영국의 면방직 산업이 수출 위주로 성장하면서 1880년대에 이르러 아시아와 유럽, 아메리카로 면직물을 실어 날랐다. 그 결과 면직물 공업은 부차적인 산업들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영국 경제를 광범위하게 발전시켰고, 수출 주도형 성장을 이끌었다. 그 발전의 밑바탕에는 고아나 생계가 절박한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이 있었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면 제품의 절반을 생산하던 영국의 방직산업은 미국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보스턴 귀족 가문 출신인 프랜시스 로웰은 영국 동력 직조기 기술을 빼내어 미국에 가져갔고, 대부분의 보조 기술 역시 가까스로 이주 제한을 피한 영국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출했다(오늘날 특허보호에 주력하는 미국도 산업화 초기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미국의 면방직 공장 역시 가난한 여성과 아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했다. 1900년대 초 미국 남부의 소녀들은 7살 정도 되면 공장에 들어갔고, 면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의 60% 이상이 13살 이하 어린아이였다. 식사 시간에 잠깐 쉬는 것을 제외하고는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 일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했다. 미국 남부 공장들은 처음부터 강력한 수출 지향 노선을 택해 경쟁자인 영국을 밀어냈다. 특히 영국 면직물보다 낮은 가격의 면직물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는 전세가 역전돼 중국에서 미국으로 저가 면직물이 밀려들고 있지만, 1800년대 말만 하더라도 미국이 수출하는 직물의 절반 이상은 중국에 수출됐다.
이윽고 미국 역시 싼 노동력 경쟁에서 밀려 일본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1930년대 중반 일본은 세계 면제품 시장의 약 40%를 점유했다. 역시 낮은 노동비용과 열악한 노동조건, 특히 ‘야간작업’ 때문이었다. 다시 1970년대에는 홍콩·한국·대만이 그 자리를 잇게 되었다. 농촌에서 이른바 ‘노동력 착취공장’으로 쏟아져 들어온 여성 노동력 덕분이었다. 당시 한국·홍콩·대만의 직물 노동자 임금수준은 미국의 약 7%, 일본의 15% 정도였다. 그 자리는 오늘날 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노동력이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저가 의류와 티셔츠의 세계화 과정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됐다. 어린이와 여성 등 나약한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많은 나라들이 산업화의 기반을 이뤘고, 다른 나라들은 물가 안정을 기반으로 경제성장을 일구는 데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값싼 노동력을 찾아 티셔츠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저임금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티셔츠는 가격이 너무 싼 나머지 마구 소비됐고,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티셔츠 중고시장이 형성되기 어려울 정도다. 단지 싫증이 났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버려지는 헌 옷들을 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에 판매하는 글로벌 산업도 생겨났다. 구세군 등 자선단체에 의해 수거되고 배포되는 양은 미미하고 대부분 전문 바이어들의 손에 넘어가 국제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부유한 나라 사람들에게는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옷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옷으로 취급된다. 일할 때, 심지어 결혼할 때도 입고, 여러 아이들이 물려가며 입기도 한다. 흔히 중고의류 무역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세계 최빈국이 미국의 넝마를 폐기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옷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걸레로 판다. 걸레용 헝겊들은 카펫, 매트리스, 쿠션, 절연재 생산에 이용되기 위해 세계 각국으로 이동한다. 그야말로 티셔츠는 목화 생산 단계에서부터 소비, 재소비되기까지 전세계를 부단히 여행한다. 

티셔츠 생산을 둘러싼 정치게임
티셔츠 시장은 품질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경쟁한다. 방직산업이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목화 생산만은 미국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노예제를 통해 대형화할 수 있던 미국의 목화농장들은 노예제가 폐지된 뒤 기계화를 통해 노동력 비중을 미미한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반면 의류 생산에서는 아직도 인건비가 총가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미국의 원사 제품을 이용하는 국가의 의류 상품에 관세 특혜를 주는 등 정치적 보호책들도 남아 있다.
미국의 티셔츠 수입쿼터는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치열한 정치적 로비 대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수출의 60% 이상이 섬유 및 의류 품목인 파키스탄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을 돕는 대가로 미국의 파키스탄 티셔츠 수입쿼터를 늘려주도록 요청했고, 자국 내 섬유업계 표를 의식하는 미국 국회의원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goodmorris@naver.com

50년 인고의 세월 끝에 싹트는 가시연꽃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오기자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217종 희귀식물 중 보전 우선 1순위
잎 쫙 펴면 지름 2m, 번식전략 특이




보고 싶은 대상이 있어 항상 곁에 있거나, 곁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거리에 있거나, 멀리 있더라도 나의 수고로 움직여 가면 항상 그 곳에 있기에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행복입니다. 

그러니 곁이나 가까이나 멀리라도 틀림없이 있었던 그 대상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없다면 그것은 정말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지구촌에서는 매일 136종의 생명체들이 사라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당연히 예외일 수는 없어서 매일 1종의 생명체가 우리를 영영 떠나는 멸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고 또 알아도 눈앞의 일이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서 그렇지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체들은 모두 피하거나 끊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종의 멸종은 필연적으로 다른 종의 멸종으로 이어지며, 그 순서의 끝이 아닌 어디쯤에 결국 인간도 줄을 서고 있다 믿고 있습니다. 

멸종의 문턱에 위태롭게 서 있다 이제 간신히 그 고비를 넘긴 식물 중에 가시연꽃이 있습니다. 산림청은 우리 땅에서 자라는 소중한 식물자원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하여 217종의 식물을 희귀식물로 지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시연꽃은 보전 우선순위 1순위로 정해진 종입니다.



가시연꽃은 수련과(Nymphaeaceae)에 속하는 일년생 수생식물로서 잎이 무척 크고 넓으며 가시가 많이 달려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시연꽃의 잎은 완전히 폈을 때 지름이 1m 정도가 되는 것은 보통이고 때로 2m에 이르기도 하며, 줄기는 물론 잎의 윗면과 아랫면 모두에 손을 댈 수도 없게 사나운 가시가 돋아 있습니다. 심지어 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마저 온통 가시로 뒤덮여 있으니 식물 전체에서 가시가 없는 곳은 오직 보랏빛 꽃잎뿐입니다. 

꽃이 피는 시기는 수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으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8말에서 9월초에 주로 피어나며, 꽃 하나하나의 수명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서로 피고 지기를 달리하기에 한 달 정도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시연꽃은 잎이 상당히 넓은 편이라 분포지의 수면을 완전히 덮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꽃대는 이미 펼쳐져 있는 잎을 뚫고 한 뼘 정도 올라와 꽃을 피워야 하기에 잎보다 훨씬 강한 가시로 뒤덮여 있습니다. 

꽃은 밝은 보라색으로 5㎝ 정도의 크기이며 아침 일찍 벌어지기 시작하여 오전에 활짝 피어나지만 활짝 피어 있어도 수줍은 모습으로 있다가 해가 질 무렵이면 대부분의 꽃들은 다시 오므라듭니다.


꽃이 지고 나면 꽃이 피어 있던 자리 아래에 있는 타원형의 씨방이 익어 터지면서 재미있는 모양의 열매가 쏟아집니다. 딸기를 닮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대추를 닮기도 한 작은 밤톨 크기의 열매는 미색 바탕에 붉고 짧은 선분 모양의 점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다시 터지면 마치 개구리의 알처럼 젤리 같은 투명한 우무질이 감싸고 있는 씨앗이 나옵니다. 이 구조는 씨앗이 맺혀진 자리로 바로 떨어지지 않고 작은 배가 되어 이틀 정도 수면을 둥둥 떠다니다가 자리 잡기 좋은 곳으로 찾아가게 하는 것은 물론 씨앗이 물길을 따라 한참을 더 넓게 퍼지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자신을 퍼뜨리기 위한 좋은 장치를 갖추고 있음에도 가시연꽃이 사라지고 있는 종이 된 데는 생육조건이 조금 까다롭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간섭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살고 있는 남원에서 순창 방향으로 이동을 하다 깜짝 놀라 뒤도 살피지 않고 차를 멈추었습니다. 이 길은 15년 동안이나 지나는 길이고, 분명 가시연꽃이 없던 저수지였는데 한 눈에도 알 수 있는 가시연꽃이 수심이 깊은 가운데를 빼놓고는 저수지 가득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립형의 작은 저수지이기에 물길을 따라 올라가 보아도 다른 곳에서 씨앗이 스스로 옮겨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적어도 15년 동안을 씨앗들이 다 알 수 없는 지금의 환경조건이 올 때까지 기다려 준 것입니다. 

가시연꽃의 씨앗은 껍질이 상당히 단단하며 발아까지 휴면기간을 가지는데 그 기간이 50년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또 하나는 누군가가 씨앗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인지 무척 궁금했지만 궁금증은 접기로 했습니다. 이 순간 바로 나의 눈앞에 예전에는 없었던 가시연꽃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아무런 실질적인 노력도 없이 그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만 가졌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두 가지의 다짐을 하였습니다. 이 곳 가시연꽃의 작은 지킴이가 되는 것과 씨앗이 맺히면 싹을 틔워줄 만한 적당한 곳을 찾아 씨앗을 옮겨주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에 대한 가슴 설레는 소망과 기대의 길이니 최소한 내년 초여름까지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 되는 일을 찾은 것입니다. 

환경부가 공모를 통해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 중 열 번째가 가시연꽃밭에 쏟아지는 폭우소리입니다. 가능한 많은 이들이 주변에서 쉽게 이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그 날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또 원합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2011년 8월 17일 수요일

강은 죽고 아이들은 우울해졌다


이글은 레디앙의 기사를 퍼온겁니다.
[옴니버스 영화 연속 리뷰③] 그들의 ‘부름’ 우리의 ‘대답’
지난해, 본격적으로 4대강 공사가 시작되면서 강으로 떠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환경운동가들이 아니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다. 저마다 내면의 부름에 따라 각처로 카메라를 들고 떠났다. 떠난 시기는 모두 다르다. 도시로 돌아온 날도 다르다. 어느 순간 영상 일꾼들이 모일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4대강 삽질 반대 영상 프로젝트 다.
정부의 언론 통제로 영상 기록물 제작이 어려운 현실에서 는 게릴라식 생산과 소통 방식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허위와 기만을 고발하고, 때론 살육의 슬픈 풍경을 말없이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었다.
엔 4대강 공사 현장 노동자의 삶이 있고, 사라지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있고, 팔당 두물머리, 영주댐 금강마을 등 고통받고 투쟁하는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가 있다. 두 편의 ‘색깔 있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영상 작가들은 뷰파인더 속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을 담아 왔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12편의 단편 영화가 묶인 4대강 옴니버스 영화 다. 이 연재는 열 두 편의 강 이야기를 4명의 작가들과 함께 만나는 릴레이 리뷰다. 시인, 르포작가, 방송작가, 평론가 4명이 글짐을 떠맡았다.
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해 맨 처음 도착한 여강의 공사 현장에서 본 풍경이 악몽처럼 떠오르곤 한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모습은 그 후 보게 될 것들에 비하면 미미한 것이었다. 그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강.이.아.니.라.공.동.묘.지.잖.아.
파헤친 모래와 나무들이 쌓여 있는 공동묘지. 4대강 공사현장을 기록하겠다고 길을 나선 첫날, 나는 개발주의자들이 강 살리기의 이름으로, 녹색성장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 강의 묘역 조성 사업이란 걸 깨달았다.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도착하는 강변마다 강은 수술대 위에 놓여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수술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강의 숨통을 끊기 위한 것이었다.


▲<땅>의 한 장면.
황폐하고 황량했다. 지난 달 후속 답사를 떠났을 때도 그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러한 풍경을 보고 온 후면 한동안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했다. 실감으로 다가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나는 4대강을 답사한 후 르포집 『흐르는 강물처럼-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레디앙)을 펴냈고, 4대강 공사는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전국의 강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 헤아리기 전에 ‘친수구역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지류 지천 정비 사업이 발표되었다. 이 무서운 속도의 질주는 급기야 오는 10월에 열릴 4대강 살리기 준공 기념 축제 준비 단계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듣고 나는 4대강 옴니버스 영화 를 다시 감상했다. 프로젝트의 미디어 활동가들은 나와 달리 영상의 기록자로 4대강으로 떠났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몇 명의 영상 작가들이 강에 상주하고 있었고, 믿기 힘든 거대한 개발 사업의 참상과 실체를 확인하고 고발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지난해 강가에서 나는 그들을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땅』을 만든 강세진 감독과 만난 곳은 영주댐 건설로 수몰예정지가 된 금강마을이었다. 그는 2010년 4월부터 마을 빈집을 빌려 상주하고 있었다.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그는 1년을 작업했고, 마침내 『땅』이라는 영화를 완성했다.
땅과 부동산

『땅』의 주인공은 장진수(영주댐 대책위원회 총무) 씨다. 그의 고향인 금강 마을은 37가구가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가 가꾼 생강밭에서 일손을 보태며 얘기를 나누었다.
나와 동년배인 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엔 별도의 개인 사업을 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서울의 집을 두고 금강마을에 내려온 것은 순전히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영주댐 건설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땅을 잃는 것보다, 마을 어른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금강마을의 수몰민들은 어떤 운명에 놓여 있는 것일까? 평생 농사를 일구며 살아온 일흔 여든 살의 노인들은 고향 땅에서 쫓겨나야 한다. 그리고 물 설은 도시로 이주해 자식의 눈치를 보고 허드렛일을 하며 지낼 것이다.
영화를 본 후 안부를 물었을 때 진수 씨는 지금도 마을 어른들이 이주 후의 삶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전해주었다.
“저보다도 어른들이 어려우시죠. 갑자기 수몰민 신세가 되는 게 이분들에게는 굉장한 정신적인 충격이었어요.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고 싶어하시죠. 어른들이 이주한 곳에서 적응하는 데 일이 년 걸리는 게 아니에요. 수년, 수십 년 걸리는 일이고, 고향 떠난 분들은 얼마 못 사시거든요.”

▲<땅>의 한 장면.
지난해 진수 씨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가 수자원공사를 상대로 한 고된 싸움이 있는 금강마을에서 얼마나 더 머물지 알 수 없었다. 그후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진수 씨네 논은 내성천 옆 영주댐 공사 부지 안에 있다. 수자원공사는 금강마을 내성천변 땅과 함께 진수씨네 논 천오백 평가량에 대한 수용 절차에 들어갔다. 영주댐 공사장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진수 씨가 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보리 씨를 파종하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 해 11월 보리씨를 뿌렸다. 외지의 일로 일주일 동안 그가 마을을 떠나 있을 때 수자원공사는 그의 논을 모두 포클레인으로 파헤치고 씨앗을 흙으로 메워버렸다. 씨앗을 없앤 것이다. 이날 밤 술에 취한 진수 씨는 말했다.
“이제 정말 못 참겠다. 농민? 정말 우스운 거야. 나 진짜 멍해. 이건 우리 삶이 아니야. 모든 걸 송두리째 없애고 있어. 우리 삶이 완전히 뒤바뀌고 있어. 전쟁이 나고 폭격을 맞아 잿더미가 된 것 같아. 정말 아파. 씨발, 좆 같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정말 황당했죠.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구나. 제가 생각하는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는 일이니까요. 너무 일방적이고, 아무런 합리성도 없고.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비정한 모습을 많이 보고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거든요. 힘없는 시골사람들이니까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이 영화는 ‘땅’에 가하는 개발의 폭력과 그 앞에 놓인 한 인간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다. 고통은 포클레인에 의해 파종한 보리 씨앗이 메워지면서 정점에 이른다.
이 작품에서 보다시피 개발의 목적 앞에서 농민들의 땅은 언제든 강제로 빼앗을 수 있다. 금강마을뿐 아니라 4대강 전역에서 많은 농민들이 오랜 세월 일궈온 땅을 빼앗겼다. 심지어 수확을 앞둔 논을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후 빼앗은 곳도 있었다.
강의 양안 2킬로미터를 개발할 수 있게 만든 친수구역특별법을 통해 드러나듯 4대강 사업의 목적 중 하나는 땅을, 자연을 부동산화하는 것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부동산이란 말처럼 우리들에게 친숙해진 단어도 드물 것이다. 농민들에게 땅은 삶의 터전이지만 도시인들에게 땅은 부동산이다.
농민들에게 땅이 생명의 먹거리를 키우는 ‘생명의 자궁’이라면, 개발주의자들에겐 재산 증식의 수단인 ‘부동산’일 따름이다.
왠지 답답하고, 슬프고, 기분이 되게 안 좋고, 우울한 것
4대강 사업이 남긴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예술작품은 -그 사진들을 ‘아름답다’고, ‘작품’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는 4대강 공사의 실체를, 이 땅의 강 전역에서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공사 ‘이전’과 ‘이후’의 사진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고발이라기보다 어떤 ‘부름’을 담은 사진이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예술작품을 만났을 때 느낀 감동-이것을 ‘감동’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많은 이들이 그 부름에 답할 줄 알았다.
옴니버스 영화 의 작품 중 『강에서』(이동렬 감독)는 의 구성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강은수 어린이의 목소리와 나래이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여강의 풍경과 공사 후 황폐해진 남한강변이 한 장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 흐른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은수는 여주에서 여강과 함께 자란 아이다. 아빠가 출퇴근하는 길도, 은수의 등하굣길도 여강을 가로질러간다. 은수는 억새꽃이 핀 여강변의 자갈길을 걸었고, 여울소리를 들었고, 뗏목을 타고 강에서 놀며 자랐다. 은수가 본 여강은 내가 본 여강과 다르지 않다.

▲여강에서 자란 은수.
“모래가 아주 아주 부드러운 애들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뛰어놀 수도 있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물억새가 있는 너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자갈길에요.”
그러나 지난해 여강길의 물억새는 사라졌고, 버드나무도 사라졌다. 등하굣길에서 공사장이 된 이포보를 본 은수는 이렇게 말한다.
“망가진 데를 가봤어요. 매일 보는데 너무 잔인하다고 할까? 강을 달리는 트럭과 포클레인으로 쌓인 모래를 보면 왠지 답답하고, 슬프고, 기분이 되게 안 좋아요. 우울해요.”

‘왠지 답답하고, 슬프고, 기분이 되게 안 좋고, 우울한 것’.
그렇다. 이것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4대강 사업이다. 『강에서』를 보면서 나는 한 편의 시를 떠올렸다. 내성천과 낙동강을 답사한 오정민 어린이가 쓴 「대답」이란 제목의 시다.

내성천에서 강을 불러본다.
“강아, 안녕?”
그러자 강이 ‘졸졸’ ‘쪼르르’ 대답한다.

낙동강 중류에서 강을 불러본다.
“강아, 안녕?”
그런데 이번에는 대답 대신
‘드드드’ 공사 소리만 난다.

강이 많이 아픈가 보다.
“강아, 많이 아프니?”
나는 강이 다 낫고 안 아프다고 할 때까지
꼭 기다려 볼 것이다.
를 한 편의 시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이다. 곧 공사가 완료되는 낙동강이 after이고, 머잖아 공사가 시작될 내성천이 before이다.
오정민 어린이의 시도, 『강에서』의 영상도 어떤 ‘부름’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아이가 지은 시의 제목이 왜 ‘대답’일까? 강에 빚지고 사는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드드드 공사소리”를 미래에까지 들려주는 것이 우리들의 ‘대답’은 아닐 것이다.
공동체 상영 신청하세요!

4대강 옴니버스 영화 '강, 원래‘를 관람하고 싶나요? 
‘강 원래’는 4대강의 실체를 알고 싶은 어른은 물론, 학생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강 원래’는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음 까페(http://cafe.daum.net/free4river)의 ‘공동체 상영신청란’에 연락처와 함께 글을 남겨 주세요. 상영료는 받지 않지만, 적극적인 후원은 환영합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09701-04-308799 이하연(강 원래)

2011년 8월 16일 화요일

[편집장의 눈] 검찰과의 전쟁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8-15자 기사를 퍼왔습니다.
디지털뉴스 박래용 편집장입니다.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의 섬뜩한 ‘공포 취임사’가 화제입니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병역면제와 위장전입, 탈세, 부동산투기 등 이른바 MB정부 공직자들의 4대 필수과목에 모두 해당한다고 해서 야당으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의혹들에 아랑곳없이 검찰총장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한 총장은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돌아오자마자 취임식을 열고 “종북좌익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밝혔습니다. 취임사는 ‘전쟁’ ‘응징’ ‘제거’ ‘싸움’이란 전투 용어로 가득했습니다. 한 총장은 취임사를 직접 썼다고 합니다.

형법은 ‘범죄와 형벌을 미리 법률로 규정하여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는 이 원칙은 근대 이후 문명국가의 형벌제도를 지배해 왔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법률은 제정법만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 할지라도 법률이 범죄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으며, 법률이 규정한 형벌 이외의 처벌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형법정주의의 근본적 의의는 국민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권력의 자기 제한에 있습니다. 권력자가 범죄와 형벌을 마음대로 전단하는 죄형전단주의(罪刑專斷主義)와는 대립되는 원칙입니다.

종북좌익세력이란 우리 형법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념적, 정치적 용어입니다. 공처가 세력, 강심장 세력, 불평불만 세력, 결벽증 세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의와 범위는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종북좌익세력이고, 친미우익세력인지 알 수 없습니다. 법률에 없는 죄를 처단하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이죠.



지난 12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함께 걸어가고 있는 한상대 검찰총장(왼쪽)과 권재진 법무장관(오른쪽)
이를테면, 누군가 이 정부의 4대강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북한에서도 같은 취지로 MB 정부를 비난했다고 치면, 그는 종북세력입니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습니다. 반 총장은 종북좌익세력인가요, 아닌가요. 노동, 경제, 반(反)복지 정책 등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면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종북세력입니까. 그 기준은 무엇이고, 판단은 누가 내리는 것입니까.

우리나라는 냉전시대를 거치며 국가보안법, 형법상 간첩죄, 명예훼손죄 등 갖가지 법률과 조항이 입법과잉이라 할만치 즐비한 상태입니다. 유엔 인권이사회 등 국제사회에서는 줄기차게 이러한 악법과 독소조항에 대해 개정과 폐지를 권고해오고 있지만 그 얘기는 여기서 논외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현행법을 위반했다면 법이 정해놓은 바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입니다. 따로 무슨 전쟁을 선언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불량식품과의 전쟁, 부실공사와의 전쟁, 반금융사범과의 전쟁, 성폭행범과의 전쟁은 왜 선포하지 않나요. 이런 범죄는 중요하지 않은 겁니까.

검찰이 언론에 노상 당부하는게 있습니다. 제발 앞서가지 말고, 몰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소환조사도 하지 않고, 특정되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 언론에서는 이미 유죄로 규정하고, 선고까지 다 내린 것 처럼 보도하고 있다는 푸념입니다. “우리는 법률가”라며 국민의 분노는 잘 알겠지만 법리에 없는 처벌은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얘기도 곧잘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엔 6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는 모양”이라며 ‘법률’과 ‘현실’속에 처한 검찰의 고뇌를 토로하곤 합니다. 한 총장의 취임사는 정치인의 말로도 부적절했을테지만, 하물며 법률가 집단인 검찰 조직의 총수가 할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12일 열린 취임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전입니다. 지난 2월 한상대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하며 내놓은 취임사는 검찰의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 검찰은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사람들이 검찰이 무능해진 것 아니냐, 검찰을 믿을 수 있냐, 검찰이 청렴하냐는 의심을 품고 있다”고 했습니다. 취임사 셋째 줄은 아예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로 시작해 “이런 현실에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했고, “실천으로 보여주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또 “원칙과 정도를 지키자”면서 “원칙은 법과 규정대로 하는 것이요, 정도는 올바로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법률가로서 형사소송법에 맞게 일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검찰을 향한 불신은 더 했으면 했지, 조금도 나아진 바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 달라진게 있다면 반성문을 썼던 한상대 고검장이 난데없이 서슬퍼런 선전포고문을 들고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며 검찰 위기를 진단했던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사와 국민들에게 과거 유신정권과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간듯한 악몽과 공포를 선사한 검찰총장 취임사가 같은 사람이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검찰총장을 목전에 둔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때의 반성문은 가식이었던가요.

다수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응징하고 제거하고 처벌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반민주적인 인권침해로 손가락질받고 있습니다. ‘황우석 교수’ 사기 사건의 진실을 밝힌 쪽은 검찰도 아니요, 정부도 아니요, 학계도 아닙니다. MBC 이 의혹을 제기했고, 네티즌들이 꼬리를 물고 의문을 보탰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총장 취임사의 죄악은 법률가로서의 일탈 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주의·주장을 펼치려는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취임사 중인 한상대 검찰총장
지금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통절한 자기 반성입니다. 이 정부에 공정과 정의와 진실을 요구하며 정책실패에 비판적인 야당과 시민사회를 ‘종북세력’ ‘좌익세력’으로 매도하며 전쟁 운운할 때가 아닙니다. 일방적인 전쟁은 없습니다. 검찰총장은 개전을 선포했습니다. 곧 검찰을 향한 전쟁이기도 합니다. 한상대 총장은 스스로 검찰과의 전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