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8일 토요일

한국 정부, 미국에 FTA 로비자금 74억 퍼부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0-07일자 기사 '한국 정부, 미국에 FTA 로비자금 74억 퍼부었다'를 퍼왔습니다.
美 의회 전문지 "FTA는 로비스트들의 캐시 카우"


미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준토록 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지출한 로비 비용이 지난 5년간 약 630만 달러(74억40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 차원에서의 로비 비용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여서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 전문지 은 6일(현지시간) 백악관 인근미국의 로비업체가 밀집한 'K 스트리트'에 FTA가 고수익 사업(cash cow)이었다며 한국과 콜롬비아, 파나마가 미 의회의 FTA 비준을 위해 로비 업체에 쏟아부은 자금이 총 1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은 미 법무부의 기록에서 세 나라가 2006년부터 올해까지 미국의 컨설팅·로비 업체와 맺은 계약 현황을 분석해 이같이 전하면서 한국 정부는 약 630만 달러로 돈을 가장 많이 썼다고 전했다.

이 로비 자금은 워싱턴에 주재하는 세 나라의 대사관이나 본국 외교부, 무역대표부 등이 로비업체와 공식적으로 맺은 계약만 산출한 것이다. 따라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같은 준공기업이나 FTA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공기업, 민간기업 등의 계약은 포함되지 않았다.

▲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한·미 FTA 국회비준 저지 전국 농어민 결의대회'에 참가한 한 시위자. ⓒ프레시안(최형락)

세 국가는 30개가 넘는 로비업체 및 법률사무소와 로비 계약을 맺었으며 한국은 이중 '애킨 검프 스트라우스 하우어 앤 펠트', '피어스 이사코비츠 앤 블라록' 등 유명 로비업체 및 세계 최대 컨설팅 업체 에델만 등과 계약했다.

은 2006년부터 한국 등과 계약한 로비스트와 홍보 전문가들이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각종 시도를 해 왔으며, 에델만의 경우 주미 한국 대사관을 대신해 FTA를 지지하는 문구가 새겨진 펜과 배지를 제작해 지지자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은 로비스트들의 계획이 매우 꼼꼼했으며, 일례로 애킴 검프는 매월 FTA 비준을 위한 전략을 주미 한국 대사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이 계획에는 대사관에서의 친목모임이나 FTA에 회의적이었던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과의 만남, 싱크탱크 '미국 진보센터' 등에 있는 안보전문가와의 접촉, 한덕수 주미대사의 캘리포니아주, 일리노이주, 워싱턴주 방문 계획 등이 포함됐다.

에 따르면 한덕수 주미대사는 지난달 2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주미 한국 대사관 국정감사에서 로비회사의 역할에 대해 "워싱턴 D.C.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로비 자문회사들은 상·하원에 전문화된 네트워크를 갖고 있으며 대의회 접촉 과정에서 절대적 역할을 했다"며 "상·하원 전체 535명 모든 의원을 전문화해 접촉하면서 정보와 동향을 보고해왔다"고 말했다.

한 대사는 로비 자금에 대해 "한국이 세계 15위 경제 대국으로서 해야 하는 일과 비교할 때 미 의회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으로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결코 많은 액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관련 예산을 확보해 더욱 강화되고 튼튼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상원, 한미 정상회담 전 FTA 표결 합의

한편, 미국 상원은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날인 12일(현시시간) 본회의에서 한미 FTA 이행법안을 표결에 붙이기로 했다.

상원 다수당인 해리 리드 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현지시간) 본회의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를 위해 토론 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콜롬비아, 파나마 등 총 3개 FTA 법안은 표결을 위해 각각 20시간씩 총 60시간의 토론시간을 보장해야 하지만 상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총 12시간 안에 3개 법안에 대한 토론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하원 역시 같은 날인 12일 본회의를 열어 표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봉규 기자

[사설]역사교과서의 이념 덧칠에 분노한 역사학계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7일자 사설 '역사교과서의 이념 덧칠에 분노한 역사학계'를 퍼왔습니다.
역사학계가 뿔났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학회 등 한국사 전공자를 망라한 대표적 학회들이 어제 “역사교과서를 정치와 이념 공세로부터 지켜내 객관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형식은 학술토론회였지만 실상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역사학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역사교육의 방향을 틀어버리려는 몰역사적(沒歷史的) 행태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터무니없는 교육과정 개정 속도전을 밀어붙이며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대폭 축소한 것도 모자라 ‘민주주의’를 정체불명의 ‘자유민주주의’로 무단 변경한 것이 화근이다. 역사학계는 ‘민주주의’의 삭제가 단순한 용어의 문제를 떠나 역사 왜곡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역사학계는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고 개념도 불명확한 자유민주주의 용어로 어떻게 제대로 역사교육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교과부는 자유민주주의가 왜 잘못이냐고 우기지만, 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여야 하는지에 대해선 우물쭈물하고 있다. 우리 헌법을 다루는 고교 ‘법과 정치’ 과목 교과과정에서도 다루지 않는 이 용어를 굳이 현대사에 써야 하는 학문적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계는 그 저의를 의심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현실 정치에선 반공·반평등·반복지의 이념적 도구로 동원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념 덧칠이 가해진다면 한국현대사의 왜곡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교육과정 개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무교양주의’다. 공식 절차를 거친 개정안에 뒷문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밀어넣은 ‘한국현대사학회’는 간판만 학회이지 한국현대사 전공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정파와 다름없다. 물론 현대사가 역사가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현대사에 대해 아무런 학문적 업적도 내놓지 못하면서 역사교과서에 빨간펜을 들고 나서는 것은 역사에 대한 염치도 학자적 양심도 없는 일이다. 이런 정파의 말을 좇은 교과부의 행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역사학계는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고 이념적 편향성을 지닌 용어는 역사교과서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역사학계의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과서는 학계의 공인을 거친 학문적 성과를 토대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쓰여져야 옳다. 더구나 역사교과서라면 헌법정신에 부합하고 제도권 교육에서 오랫동안 합의된 개념을 채용함이 마땅하다. ‘민주공화국’을 천명한 헌법정신을 곡해하면서까지 역사교과서에 정치색을 덧칠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문제인 것이다. 교과부는 당장이라도 고시를 철회해야 한다.

[사설]무분별한 민자 유치에 경종 울린 ‘경전철 재앙’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7일자 사설 '[사설]무분별한 민자 유치에 경종 울린 ‘경전철 재앙'’하나'를 퍼왔습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경전철 사업이 속속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상공회의소 산하 국제중재법원은 엊그제 1차로 용인시가 경전철 사업 시행사인 용인경전철(주)에 공사비 5159억원을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용인시 올해 예산의 39%에 해당하는 돈이다. 금융비용과 손해배상금 등으로 2600억원을 추가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용인 경전철은 지난해 6월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됐으나 지방선거 후 용인시가 소음 민원과 일부 부실 공사를 이유로 준공 허가를 거부하자 시행사가 7700억원을 물어달라는 중재를 신청했다.

용인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인 만큼 협약이 파기된 민간 시행사에 사업 재개를 애걸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시행사가 사업을 재개하더라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협약상 개통 후 30년간 용인시가 최소 운임수입의 90%를 보전해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착공 당시 하루 이용객을 14만명으로 보고 사업 협약을 했으나 최근 조사에서는 1만~3만명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용인시가 시민 혈세로 시행사에 줘야 할 돈은 매년 최대 850억원, 30년간이면 총 2조5000억원이나 된다.

이처럼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는 곳은 용인만이 아니다. 지난달 운행을 시작한 김해~부산 간 경전철은 이용객이 예상보다 훨씬 적어 20년간 매년 1020억~1312억원을 민간 업체에 줘야 한다.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김해시로서는 휘청거리지 않을 수 없다. 내년 6월 개통 예정인 의정부 경전철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4년 하루 이용객을 7만9000여명으로 예상하고 협약을 맺었으나 최근 조사에서는 이용객이 5만6000여명에 불과했다. 의정부시에서는 이런 상태로 경전철을 개통했다가는 재정 적자가 누적돼 5년 안에 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고 한다.

경전철 사업으로 재정 위기가 초래된 것은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가 경전철 사업을 치밀한 타당성 조사도 없이 선심성·과시성 사업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경전철 사업을 시범 사업으로 지정하거나 국비를 지원한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전철 이용객을 엉터리로 추정한 연구용역기관의 무책임한 자세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시민은 속이 터질 노릇이다. 궁극적인 책임은 자치단체가 질 수밖에 없다. ‘경전철 사업 재앙’은 앞으로 자치단체가 무분별하게 민자 유치 사업을 벌이는 데 경종이 돼야 할 것이다.

[사설]한나라당은 장애인용 옥매트도 ‘차떼기’하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7일자 사설 '한나라당은 장애인용 옥매트도 ‘차떼기’하나'를 퍼왔습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인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이 체육회 후원 가구업체로부터 기부받은 7억원 상당의 장애인용 옥매트를 지역구 주민에게 살포하고 같은 당 의원들과도 나눠 가졌다고 한다. 장애인체육단체의 수장으로 있는 여당 국회의원이 장애인들이 사용해야 할 매트를 빼돌려 횡령한 상식 이하의 파렴치 행위 앞에서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옥매트 차떼기’ 의혹은 한나라당의 원죄처럼 인식되고 있는 2002년 대선 당시의 ‘선거자금 차떼기 사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윤 의원의 옥매트 횡령 의혹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장병완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드러났다. 장 의원 등은 어제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 윤 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장애인체육회가 후원업체로부터 옥매트를 기부받았으나 이를 자신의 지역구인 강동구 주민들과 한나라당 동료 의원들에게 돌렸다”고 말했다. 장 의원 등에 따르면 윤 의원은 1개에 80만원 하는 옥매트 900개 가운데 체육회에는 100개만 건네주고 500개는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복지관에 전달했으며 동료 의원 5명과 50개씩의 매트를 나눠 가졌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로서는 각각 4000만원 상당의 물품을 빼돌린 셈이다. 장애인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소중한 물품을 횡령한 윤 의원과, 아무 죄책감도 없이 ‘장물’을 받아 챙긴 한나라당 의원들은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의식조차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윤 의원을 포함한 ‘옥매트 차떼기’ 의원들은 즉각 진상을 고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자신의 사무실이나 집에서 깔고 있는 옥매트도 원래의 주인들에게 되돌려줘야 마땅하다. 이와 함께 윤 의원 등에 대한 수사도 즉각 개시돼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대로 윤 의원이 옥매트를 횡령해 지역구 주민에게 살포한 행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동료 의원들에게 나눠준 행위는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는 만큼 검찰은 엄정한 수사를 벌인 뒤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더욱 매섭게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선거 범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변호사가 재벌그룹으로부터 기부받은 것 자체만을 놓고도 소리 높여 비난해왔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사용해야 할 기부 물품을 가로챘다니 이런 언어도단이 없다. 이번에는 “재벌기업이 아니라 중소 가구업체에서 받은 것이라 문제가 없다”고 할 것인가.

[사설] ‘68혁명’을 닮아가는 ‘1 대 99’ 반대 시위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07일자 사설 '‘68혁명’을 닮아가는 ‘1 대 99’ 반대 시위'를 퍼왔습니다.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낭테르대학에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났다. 그 대학 사회학도들이 이끈 ‘3월22일 운동’은 “우리는 자본의 파수견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해 5월 학생들이 들고일어섰다. 역사적인 ‘68혁명’의 시작이다. 운동은 삽시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전세계로 확산됐다. 이 반체제운동은 결국 드골 체제를 무너뜨렸으며, 사람들의 의식세계와 유럽의 문화지형도를 바꾸고 세계를 뒤흔들었다.
‘1 대 99’가 상징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만연한 실업에 항의하는 미국 청년들이 9월 중순 뉴욕에서 시작한 거리시위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그들의 구호는 자본을 지키는 파수견이 되지 않겠다던 68혁명의 구호와 닮았다. 지난 5일의 뉴욕 2만명 시위에 이어 6일에는 워싱턴 등 미국 전역의 20여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세계 주요국 도시들도 동조 시위를 벌였거나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15일 세계 동시 시위까지 예정돼 있다. 예사롭지 않다.
청년들이 시작한 시위는 이제 노동조합과 시민운동세력이 가세하고 정치권까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확산·심화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는, 아직 그 끝을 알 수 없는 시위의 위력과 파급효과를 누구든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부자 증세를 거부하는 공화당과 가진 자들에 대한 시위대의 거부감은 결과적으로 오바마 정부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정치권 판세가 미국과 닮은 우리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시위는 여전히 정당과는 무관한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중심을 이루고 있고 지도부가 따로 없다. 8월 초순 영국 런던 시위의 영향을 받은 이번 시위 참가자들은 ‘아랍의 봄’과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가 된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시위를 모델로 거론했다. 비폭력과 자발성, 탈중심적인 이 모델이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다. 2008년 들불처럼 번진 서울의 ‘촛불시위’가 사실상 그 전형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한 것도 닮았다.
런던, 뉴욕, 이집트, 그리고 서울의 시위는 모두 극심한 빈부격차와 억압, 소통 부재 등에 대한 거부이자 저항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비슷한 상황이 촉발한 68혁명처럼 이번 시위도 기성체제를 뒤바꿔놓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호석칼럼]79년만에 부활한 도둑정치 반대투쟁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0-07일자 기사 '79년만에 부활한 도둑정치 반대투쟁'을 퍼왔습니다.
월스트리트 규탄 시위의 배경과 전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위키미디어 30년대 대공황 시기 뉴욕 유니언은행 앞에서 예금을 찾기 위해 줄을 선 미국인들. 달러 폭락이 각국의 정책수단들을 무력화시키면 공황은 가속화한다
‘특별보상원정군’의 애너코스티아강변 점거투쟁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는 포토맥강과 애너코스티아강이 만나는 아우라지에 자리잡고 있다. 두 물줄기는 워싱턴 남쪽 끝자락에서 만나 대서양으로 빠져나간다. 79년 전인 1932년 6월 워싱턴 연방의사당 남쪽에 있는 애너코스티아강변으로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애너코스티아공원이 조성되기 전이라서 당시 그곳은 물웅덩이와 잡초언덕밖에 없는 벌판이었다. 군중들은 각종 폐기물을 가져가 그 벌판에 올망졸망한 판잣집을 짓고 무기한 점거투쟁을 시작하였다. 점거투쟁에 참가한 군중은 날로 불어나 4만3천여명에 이르렀고, 점거지역은 드넓은 빈민촌으로 변했다. 

미국 수도에서 무기한 점거투쟁을 벌인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종전과 더불어 퇴역한 참전군인 1만7천여명과 그 가족 및 지지자들 2만6천여명이었다. 그들이 무기한 점거투쟁을 벌인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 연방정부가 참전군인 특별보상금(bonus) 지급을 거부한 것이었는데,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파탄이 몰고온 극심한 궁핍과 빈곤이었다.
1929년 9월 4일에 일어난 주가폭락이 10월 29일 뉴욕 주식시장을 무너뜨렸고, 그로써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자본주의나라들은 미증유의 경제파탄에 빠졌으니 이를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 한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미국의 산업생산은 -46% 포인트, 대외무역은 -70% 포인트 곤두박질쳤고, 실업은 607% 포인트 치솟았다. 
하루아침에 일자리와 집을 잃고 거리로 쫓겨난 극빈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절망과 고통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공황기 1930년대에 미국 각지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빈민촌이 생겨났는데, 미국인들은 그 빈민촌들을 후버촌(Hooverville)이라 불렀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제31대 대통령으로 재직한 헐벗 후버(Herbert C. Hoover)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참전군인들에게 특별보상금 지급증서까지 발행한 미국 연방정부는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나자 지급을 거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일자리와 집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난 참전군인들은 특별보상금마저 떼어먹히게 되자 워싱턴으로 몰려가 점거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1932년 애너코스티아강변 점거투쟁에 참가한 군중은, 미국사에 특별보상원정군(Bonus Expeditionary Force)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참전군인들이었기에 그렇게 불린 것이다. 
1932년 6월 17일 미국 연방상원에서 참전군인 특별수당 지급안이 부결되자, 애너코스타강변에서 점거투쟁을 벌이던 특별보상원정군은 격분하여 의사당으로 진출하는 시위투쟁에 나섰으나, 미국 연방정부는 그들의 절박한 요구에 총칼로 대답하였다. 1932년 7월 28일 전차 6대를 앞세운 2개 보병연대병력 4천여명이 점거투쟁현장에 출동하였다. 잔인한 진압이었다. 

진압군을 이끌고 현장에 출동한 지휘관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cArthur)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반도를 분할점령하였고, 6.25전쟁 때는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도 성차지 않아 핵폭탄 대량투하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보다 몇 십배 더 참혹한 핵참화를 한반도에 들씌우려 날뛰었던 극악한 반공광신자 맥아더는 이미 1932년에 애너코스티아강변에서 생존권을 부르짖는 미국인들을 총칼로 짓밟은 민중의 적이었다. 
전차를 앞세우고 쳐들어온 진압군에게 무참히 짓밟힌 특별보상원정군과 그 가족 및 지지자들 4만3천명의 운명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진압군의 강제해산 이후 그들의 행적은 미국사에 나오지 않는다. 다른 후버촌으로 뿔뿔이 흩어져 절망과 고통을 안고 한많은 생을 살았을 것이다. 

79년만에 또 다시 일어난 대공황

전차를 앞세운 진압군이 애너코스티아강변 점거투쟁을 짓밟은 때로부터 79년이 지난 2011년 9월 17일 “월 스트릿을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는 외침이 뉴욕 맨해튼에서 들려왔다. 주목하는 것은, 1932년 애너코스티아강변 점거투쟁과 2011년 월 스트릿 점거투쟁의 발생원인이 같다는 사실이다. 79년 시간격차를 두고 일어난 그 두 점거투쟁의 공통적인 발생원인은 대공황이다. 
158년 역사를 가진, 자산규모 6천억 달러의 거대한 투자회사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가 2008년 9월 15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을 당했는데, 그 파산은 1929년 10월 29일 뉴욕 주식시장이 주가폭락으로 무너진 ‘검은 화요일(Black Tuesday)’로부터 79년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 붕괴로 대공황이 일어난 것처럼, 2008년 한 해 동안 리먼 브라더스를 비롯한 대형 투자회사들은 물론 대형 보험회사들과 대형 저당회사들의 연쇄파산으로 사실상(de facto) 대공황이 일어났다. 


다음은 누구인가?....리먼 브러더스?, 시티은행?, 메릴린치?, UBS?...당신이 다음 차례인가?.
금융권 연쇄파산으로 사실상 대공황이 일어나자, 미국 연방정부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금융권을 회생시키려 긴급구제금융을 투입했다. 하지만 구제금융투입은 미봉책이었다. 경제지표를 보면, 사실상 대공황이 이미 2008년 9월에 일어났는데도, 미국 연방정부는 대공황을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둘러대었다.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도 그들은 일시적인 경기후퇴라고 둘러대었다. 대공황을 대침체라고 둘러대며 지내온 지난 3년 동안 미국인들은 극심한 궁핍과 빈곤으로 내몰렸다. 
2011년 10월 현재 미국에서 구직단념자를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16%에 이르렀는데, 특히 20-24세 이르는 미국 청년층 가운데 28%가 대학에도 다니지 못하고 직업도 없는 절망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 인구 3억명 가운데 4천9백만명이 굶주리거나 영양실조에 걸려있고, 전국에 분산배치된 노숙자 수용소들에서 20만 가구가 연명하고, 정부가 발행하는 식품지원금(Food Stamp)에 의존하는 극빈층은 2011년 3월 현재 4천458만7천명이다. 이제 국제구호단체들은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미국인들을 위해 긴급구호물자를 보내야 할 형편이다. 

한국에서 지금 그런 것과 똑같이,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미국인들은 쉽게 정신질환에 걸리거나 각종 범죄에 빠지거나 자살로 생을 마친다. 사실상 대공황이 2008년 9월에 시작된 이후 3년 동안 미국의 정신질환 발병률, 범죄율, 자살률이 급증하였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극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 당시 최상위 부유층 1%의 소득은 전체 소득 가운데 22.35%이었는데, 2007년 최상위 부유층 1%의 소득은 23.05%였다. 지금 미국 부유층 10%가 미국 전체 자산의 69.5%를 거머쥐고 있다. 미국의 경제활동인구 1,523만4,000명 가운데 최상위 부유층은 1.0%(152만4,000명)이고, 중산층은 8.9%(1,360만명)이고, 하위 서민층은 90.1%(1억3,720만명)다. 
1%의 최상위 부유층과 90%의 서민대중으로 갈라진 양극화, 바로 이것이 오늘 미국 사회를 절망에 빠뜨린 끔찍스러운 사회현실이다. 2011년 5월을 기준으로 미국의 소득불평등 지수는 아이보리코스트, 파키스탄, 이디오피아, 카자흐스탄보다 높고 우간다와 거의 같아졌다. 미국은 세계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심한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863년 11월 19일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게티스벅 연설에서 “민주정치는 모든 인민의, 모든 인민을 위한, 모든 인민에 의한 직접적인 자기통치(Democracy is direct self-government, over all the people, for all the people, by all the people)”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오늘 미국의 정치현실은 정반대다. 미국의 정치는 부유층의, 부유층을 위한, 부유층에 의한 금권정치(plutocracy)다. 미국 연방상원의원의 58%, 연방하원의원의 44%가 부유층에 속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도둑정치 반대투쟁,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2008년 5월부터 6월까지 서울 중심가에서 계속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지금 뉴욕에서 계속되는 월 스트릿 점거투쟁도 자연발생적이다. 2011년 9월 17일부터 군중들이 월 스트릿 인근에 있는 주코티 공원에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즉석 정치토론회도 열고, 시위행진에 나서기도 한다. 어느 단체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2011년 10월 1일 이후에는 워싱턴 디씨, 보스톤, 로스앤젤레스, 샌프랜시스코를 비롯한 미국 대도시들에서도 크고 작은 점거투쟁과 군중시위가 벌어졌다. 10월 2일 뉴욕의 시위군중은 10,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부르클린 다리를 건너 월 스트릿으로 향하던 시위군중 700여 명이 진압경찰에 연행되었다. 10월 5일에는 뉴욕 시내 각급 노동조합 소속 노동자들이 가세하여 시위군중은 15,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월 스트릿 점거투쟁에 참가한 미국인들이 외치는 구호는 각양각색이지만, 그들의 점거투쟁이 공동목표를 향해 수렴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그들은 자기들을 불행과 궁핍으로 몰아넣은 경제적 불평등을 반대하고 월 스트릿 금융권의 막대한 이윤수탈에 분노한다. “월 스트릿을 점거하라”는 공동구호를 외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몰고간 주범은, 각종 금융파생상품을 조작해내어 천문학적 부를 긁어모은 월 스트릿 금융권이다. 그런 행위는 미국 인구 90%에 이르는 서민대중에게 돌아가야 할 사회적 부를 구조적으로 수탈한 것이다. 더욱이 워싱턴 정치권은 월 스트릿 금융권과 결탁하여 금융자본의 구조적 이윤수탈을 묵인하였다. 그러므로 1%를 위한 금권정치의 감춰진 뒷모습은, 정치권과 금융권이 결탁한 동맹이 90%에게 돌아가야 할 사회적 부를 구조적으로 수탈하는 도둑정치(kleptocracy)다. 


ⓒAP/뉴시스 뉴욕에서 월스트리트 반대 시위가 펼쳐지고 있다.
79년 전 애너코스티아강변 점거투쟁이 특별보상을 떼어먹은 도둑정치에 맞서싸운 민중저항운동이었던 것처럼, 오늘 월 스트릿 점거투쟁도 사회적 부를 수탈한 도둑정치에 맞서싸우는 민중저항운동이다. 특히 월 스트릿 점거투쟁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전자통신수단을 이용하여 파급력을 미국 전역과 세계 각국으로 널리 퍼뜨리는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월 스트릿 점거투쟁에 참가한 미국인들은 79년 전에 있었던 애너코스티아강변의 쓰라린 패배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79년 전이나 오늘이나 대공황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도둑정치 반대투쟁은, 자연발생적 저항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오랜 민중저항운동사가 말해주는 것처럼, 진보적 정권교체와 동떨어진 자연발생적 민중저항운동은 실패와 좌절을 피하지 못한다. 2008년 5월과 6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투쟁으로 폭발하여 반MB투쟁으로 상승발전하던 자연발생적 저항운동도 경찰진압과 보수언론공세를 돌파하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였다. 오늘 미국에서 벌어진 도둑정치 반대투쟁도 그렇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한국증시, '글로벌 호구' 될 날이 임박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911-10-07 기사 '"한국증시, '글로벌 호구' 될 날이 임박했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한·미FTA에 반대해야만 하는 아홉가지 이유
근 6년을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행법안이 미의회에 상정되었다. 나는 그동안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를 드물지 않게 밝혀왔다. 하지만 이행법안이 상정된 이 시점에서 그것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나는 다음을 들겠다.

심각하게 잘못된 협상

첫째, 한·미FTA는 심각하게 '잘못된 협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협상에 참여한 관료들은 이를 두고 '이익의 균형' 운운하고 또 '잘 된' 협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개시직후 정부측이 국회에 제출한 협상목표와 일년 뒤의 협상결과를 비교해서 전수조사해 본 결과로는 심각한 '이익의 불균형' 협상이었다. 백개가 훨씬 넘는 쟁점 가운데 우리측 협상목표가 관철된 비율은 약 7%, 미국측은 약 82%다. 나머지는 대략 나눠가졌다. 여기에다 작년 12월의 재협상 결과까지를 감안하면 이익 불균형은 훨씬 심각해 진다. 게다가 최근 폭로된 문건을 살펴볼 때, 우리측 협상대표들이 과연 이른바 '국익'을 위해 협상했는지조차 의문이다. 이들 중 '경제 저격수(hitman)'가 없는지 따져 볼 일이다.

둘째, 한·미FTA는 불평등협정이기 때문이다. 국회통외통위 수석전문위원이 펴낸 한·미FTA 비준동의안 검토보고서를 참조해 보면, 협정문내 한미간 일방의무조항의 개수가 나온다. 일방의무라 함은 말그대로 체약국(상호 조약을 맺은 나라)의 어느 일방만 준수해야할 법적 의무를 말한다. 한미간 비율은 8:1이다. 우리와 함께 이행법안이 미의회에 같이 제출된 파나마의 경우 1.5:1, 콜롬비아의 경우 3.5:1 이다. 이미 발효중인 호주의 경우는 오히려 미국이 더 많은 0.8:1이다.

한·미FTA는 미국이 지금까지 체결한 모든 FTA를 통틀어 미국에 가장 유리한 협정이다. 더군다나 미 행정부가 이번에 의회에 제출한 '한·미FTA 이행법안'을 보면, 제102조 c항에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FTA를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한다. 미국 정부의 조처에 대해 한-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미국 투자자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투자자-정부제소제(ISD)에 따라 마음껏 제소할 수 있다.

협정의 국내법적 지위도 우리의 경우 기존 법에 우선하지만, 미국 이행법안 제102조 a항에서 "미국 연방법과 충돌하는 한-미 협정의 규정이나 적용은 효력이 없다", "협정과 어긋난다고 주법의 규정이나 적용을 무효로 선언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법을 포함 미국내법이 우선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 23개의 법률이 개폐되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지방조례가 여기에 해당되는지 알 수도 없다.



▲한미FTA 비준안 상정을 놓고 여야가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 주간지에 난 한미FTA 관련 기사를 보고 있다. 이날 여야는 협의를 통해 한미FTA 비준안 상정을 연기했다. ⓒ뉴시스
경제효과 없다

셋째, 한·미FTA의 경제효과는 없거나 있다 해도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정부측은 한·미FTA 경제효과가 최대 국내총생산(GDP)의 5.66%에 달하고, 일자리가 35만 개 증가하고,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며, 우리 무역수지 흑자가 증가할 거라고 했다. 지난 수년간 이를 놓고 정부측과 셀 수 없는 논쟁을 한 바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부측의 이 추정치가 조작에 가까울 정도로 심하게 과장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측과 동일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우리측이 추정해 보았을 때, 한·미FTA 경제효과는 연 GDP의 0.008%~0.013%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경제 규모에서 볼 때 거의 무시할 수준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연동된 고용효과는 마찬가지로 없거나 무시할 만한 양이며, 외국인 투자증대 효과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무역수지가 끊임없는 논란거리였다. 분명한 한 가지는 대미무역수지 흑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측과 우리측이 같이 사용하는 연산가능일반균형(CGE)모형으로 추정했을 때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를 감추기 위해 정부측은 무역수지를 추정하기 위해 CGE 모형을 사용하는 데도, 대신 '산업별 합산'이라는 '꼼수'를 사용해 무역수지흑자 증가를 억지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만들어 내었다.

넷째, 2010년 12월의 한·미FTA 재협상으로 인해 한·미FTA는 더욱 더 잘못된 협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수년동안 정부측은 "재협상은 없다", "점 하나도 못바꾼다"고 말해왔다. 결과적으로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한 셈이다. 이 재협상조차도 처음에는 '잘 된 협상'이라고 말하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말을 바꾸었다.

재협상의 핵심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4년의 시간을 유예해 주고, 미국의 자동차 비관세장벽을 대폭 강화한 데 있다. 그 대가로 받아 온 것은 있으나 없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거나 눈가리고 아웅하기 위한 것들 뿐이다. 미국 자동차관세 2.5% 즉시 철폐 댓가로, 완벽하게 털어내 주었던 우리의 비관세 장벽해제는 전혀 보상 받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재협상을 통해 한국 자동차 비관세장벽의 해체는 더욱 완벽해 졌을 뿐이다.

다섯째, 한·미FTA는 대미 경상수지 흑자기조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는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미 상품수지 흑자가 감소하고 서비스수지 적자가 현재의 속도대로 악화된다면, 대미 경상수지는 낙관할 수 없게 된다. 2010년 기준 대미 경상수지는 약 64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상품수지가 126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고, 서비스수지는 123억 달러 적자인데 대미 투자배당금을 의미하는 본원소득수지가 약 70억 달러 흑자를 나타낸 결과다.

여기서 상품수지흑자는 10년전인 2001년 약100억 달러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서비스수지 적자는 2001년 -25억 달러와 비교해 약 5배 증가해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한·미FTA의 최대 피해산업 중 하나가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서비스산업이라고 볼 때, 이는 미래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그런데 경상수지 적자는 금융위기와 불가분의 관계다. 지난 미신용등급 하락 이후 증시폭락 당시 금융위 관계자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면 외국 투자자들은 곧바로 우리나라의 외채 상환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결국 은행 부문의 외환건전성을 문제 삼아 외화유동성 부족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며 "1997년, 2003년, 2008년 모두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던 때"였다. (, 2011년 8월 7일)

재벌을 위한 협정

▲6일 농어민단체가 서울 여의도에서 '한·미 FTA 국회비준 저지 전국 농어민 결의대회'를 열어 한미FTA에 반대하는 행진대회를 가졌다. ⓒ프레시안(최형락)
여섯째, 한·미FTA는 수출의존도를 더욱 심화시키고, 과도한 금융시장 개방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을 '외국계투기자본의 현금인출기(ATM Korea)'라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이 30% 이상을 차지해 아시아에서도 가장 높다는 데에 있다. 금융시장이 과도하게 개방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미FTA는 이 경향을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든다. 단적으로 투자자-정부 제소제나 역진방지 메커니즘(래칫조항) 등으로 인해 ATM Korea는 항구화될 위험에 처하게 되고, 한국의 주식시장은 '글로벌 호구'가 될 뿐이다.

일곱째, 한·미FTA는 양극화를 심화시켜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불안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미FTA가 없이도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3%에서 2009년 32%로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이다. 또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100만 달러 미만 수출업체 비중(금액기준)도 2000년 2.8%에서 2009년 1.5%로 낮아졌다고 분석된다. 한·미FTA는 수출기업 대 내수 기업, 대기업 대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현저하게 심화시킬 것이다. 이 때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하청계열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소위 '동반성장'은 구호로만 그칠 것이다.

한·미FTA를 통해 독점재벌이 가장 큰 이익을 보게 됨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실 한·미FTA의 거의 모든 것은 자동차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는 우'를 범한 셈이다. 이는 고도성장기의 정경유착과는 다른, 세계화시대 재벌과 국가사이의 새로운 유형의 정경유착에 다름 아니다. 이로써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공고하게 구조화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여덟째, 한·미FTA는 정의롭지 못한 협정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을 위해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수의 중소 제조업체, 대부분의 서비스업, 지적 재산권, 의약품산업 등이 FTA의 희생양이 되었다. 보상은 어음으로 주어졌고, 결제일은 아무도 모른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동차를 위해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발상이다. 그리고 그 자동차산업의 기대이익도 한국차의 미국 현지생산비율이 이미 절반에 달하는 조건에서 그저 불확실하거나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일자리의 해외유출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미FTA는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전혀 정의롭지 않은 협정이다.

아홉째, 한·미FTA 협정문에 내장된 독소조항 때문이다. 한·미FTA 협정문은 한마디로 독소조항의 보고다. 그 수많은 독소, 문제조항 중 으뜸은 투자자-정부 제소제다. 물론 여기에 역진방지조항(래칫), 네거티브 리스트, 허가-특허연계조항, 미래의 최혜국대우(MFN), 자동차부문의 스냅백 조항, 인터넷 사이트 폐쇄, 금융세이프가드 조항, 개성공단 조항, 투자부문 입증책임 조항 등도 그 중요도에 있어 뒤지지 않는다. 이 모두가 궁극적으로 우리 정부의 이른바 '정책공간(policy space)'을 제약, 위축시켜 공공성의 구현에 장애를 발생시킬 것이다.

재검토 필요

결국 애초 절차정당성조차도 충족하지 못한 채 출발한 한·미FTA는 '국익'을 어떻게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그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 핵심에 있어 전형적인 '이익의 불균형' 협상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FTA는 디폴트 상태에서 재검토하거나, 재재협상을 요구하는 게 가장 소망스러운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우선 통상절차법을 제정하고, 통상이 가지는 그 막대한 비중에 비추어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통합적이고 복지친화적인 통상정책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통상교섭본부 등과 같은 통상정책결정 과정도 재검토해야 하며, 이에 대한 제도적 대안도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사설]종편의 직접 광고영업을 단호히 반대하는 이유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6일자 사설 '‘부자감세’[사설]종편의 직접 광고영업을 단호히 반대하는 이유'를 퍼왔습니다.
미디어·언론 생태계 파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계기는 지난해 말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신문 등 네 곳이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로 선정되면서다. 많은 전문가들이 사실상의 지상파로 볼 수 있는 종편을 2개 이상 허가하는 것은 한국 미디어 시장 규모로는 무리라고 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극심한 광고유치 경쟁으로 인한 광고시장 질서 파괴다. 미디어렙(방송광고대행사)법 입법이 늦어져 이대로는 승자독식의 무법지대화가 우려된다. 헌재가 2008년 11월 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음에도 대체입법이 지지부진한 까닭이다. 최대 쟁점인 종편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놓고 여야 입장이 부딪치고 있다. 정부·여당은 종편의 독자적 광고영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민주당은 종편도 당연히 미디어렙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국회에서 미디어렙법안이 표류하는 사이 12월 개국을 앞둔 종편들은 대기업 광고주들을 상대로 잇따라 매체 설명회를 여는 등 사실상 직접 광고영업에 나섰다. 동아일보의 종편인 ‘채널A’가 엊그제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연 설명회에는 대기업 홍보·광고담당자 500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설명회 참석자들 가운데는 “기업들로선 기사와 광고를 연계시킬 경우 난감할 것”이라거나 “종편광고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종편들이 독자적 광고영업에 시동을 걸자 지상파인 MBC와 SBS도 자체 미디어렙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KBS처럼 수신료를 받지 않는 양사는 지상파 광고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종편의 독자영업을 방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경우 MBC와 SBS가 독자영업에 나선다면 막을 근거도 찾기 어렵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대체입법 시한인 2009년 12월도 넘겨 현재 지상파 광고 역시 무법상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의 근본 원인은 종편 자체가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라서가 아니라 정치적 논리에서 시작됐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신문에 종편을 허가하고 여러 특혜까지 안기겠다는 정권의 꼼수는 한나라당이 미디어렙법에 대한 당론조차 정하지 않고 세월을 보내는 철저한 직무유기의 원천이 됐다. 우리는 이런 종편에서 특혜와 반칙만 볼 뿐 공정성의 가치를 찾을 수 없다.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예의 보수의 이념에도 어긋난다. 한나라당은 종편에 직접광고를 허용하는 명분을 신생 매체의 시장 안착에서 찾는 듯하나 이 또한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 종편은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숱한 부정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들어 경쟁자들을 제치고 선정됐다. 이를 정부가 개입해 키워준다는 것은 경쟁원리에 반한다. 이런 진실을 끝내 외면하다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사설]‘부자감세’ 철회하면서 부자세금 깎아주다니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6일자 사설 '‘부자감세’ 철회하면서 부자세금 깎아주다니'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소득세 추가감세를 철회하면서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 축소안도 함께 없애 고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 9월 여론에 등떠밀려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 인하를 포기한 데 따른 고소득자의 세부담 증가분을 사실상 보전해준 셈이어서 추가감세 철회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적용해 고액 연봉 근로소득자의 세금을 분석한 결과 소득세 최고구간(과표 8800만원 초과)이 최초로 적용되는 연봉 1억3000만원 근로자의 실질 세부담은 1516만원으로 추가감세와 공제(공제율 및 공제 한도) 축소가 이뤄진 경우보다 104만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 최고 세율을 현행 35%에서 33%로 낮추고(추가감세) 공제를 축소하는 경우보다 현행 세율을 그대로 두고(추가감세 철회) 공제를 줄이지 않는 경우의 감세 효과가 더 컸다는 얘기다. 

연봉 1억5000만원인 경우는 추가감세에다 공제축소를 적용했을 때보다 92만원, 2억원인 경우는 63만원의 세금이 더 적은 것으로 계산됐다. 2009년 세법 개정 때 소득 1억원 초과자의 경우 세액공제(한도 50만원)를 없애고 공제율도 5%에서 1%로 낮추기로 했던 것을 개정안에서 삭제한 결과다.

정부는 최고세율 인하를 백지화함에 따라 공제 축소도 폐기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둘을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최고세율 인하 백지화에 따른 고소득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공제율과 공제한도를 그대로 유지시킨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고소득자의 세금이 줄게 된 것은 추가감세를 철회한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고소득자의 실질 세부담이 늘거나 최소한 감소하지는 않도록 공제 제도를 손질했어야 마땅하다.

겉으로는 ‘부자감세’를 철회한다고 해놓고 억대 연봉자들의 세금을 오히려 깎아주겠다면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공제는 최고세율 인하 여부와 상관없이 ‘비과세 감면 축소’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이 의원의 지적은 백번 옳다. 8000만원 소득자의 경우 이미 14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게 돼 있는 실정이다. 국회는 부자감세를 철회한다면서 실제로는 부자감세를 더 확대하는 세법 개정안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설]청부폭력까지 행사한 피죤 회장의 엽기적 경영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6일자 사설 '청부폭력까지 행사한 피죤 회장의 엽기적 경영'을 퍼왔습니다.
재벌들이나 정부 일각에서는 걸핏하면 ‘반(反)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국가경제의 기둥인 기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다만 대중들은 탈세, 비자금 조성, 편법적 세습 등을 일삼는 기업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반기업정서’라는 용어는 법질서를 유린하는 일부 기업인들에게 법적 도의적 면죄부를 건네주려는 저의를 담고 있는 셈이다.

(주)피죤의 이윤재 회장이 부당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한 전직 전문경영인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국내의 대표적인 섬유유연제 업체인 피죤의 소유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이 회장은 자신이 해고한 이은욱 전 사장이 소송을 내자 인사담당 김모 이사를 통해 폭력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이 전 사장은 실제로 자택 앞에서 조직폭력배 3명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고, 이들과 김 이사는 모두 경찰에 구속됐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이 회장의 범행 개입은 사실로 여겨지며, 그에 대한 사법처리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 회장의 엽기적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너 일가 비자금 조성은 물론 전문경영인의 평균 임기가 123일에 불과할 정도로 그야말로 ‘제멋대로’ 임직원들을 해고했다. 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을 직접 칼로 찌르는 등 실로 믿기 어려운 상식 이하의 행태를 벌였다고 한다. 이 같은 ‘엽기경영’이 어떻게 30년 동안 버젓이 이뤄져 왔는지 놀라울 뿐이다. 

문제는 이 회장의 경우처럼 사적(私的) 폭력을 행사하고, 기업을 자신의 사유물로 여기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해고직원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거나, 가족을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러한 실례라고 하겠다. 이 회장 사건을 계기로 기업인들은 자신의 그릇된 행태가 기업 전체에 대한 불신과 반감으로 이어지며, 사회 공동체의 기강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경찰도 ‘유전무죄’ ‘솜방망이 봐주기 수사’ 등의 뒷말과 억측이 나오지 않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0-06일자 기사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을 퍼왔습니다.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한 마애불
전용호(yong35)


▲ 선운사 가는 길은 도솔천 따라 가는 길 ⓒ 전용호

선운사 마당은 넓다
10월로 들어서면서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하늘이 파랗다. 전북 고창으로 향한다. 선운사에 꽃무릇 필 때 가본다고 했는데, 결국 올해도 늦었다. 축제도 끝나고, 꽃도 져버렸다. 단풍철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길다. 선운사 나들목을 나와 한적한 도로를 따라간다. 길 양 옆은 풍천장어를 요리하는 식당들로 즐비하다.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은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천연기념물 송악이 벼랑을 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도솔천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다. 신작로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면 가지런한 선운사 경내 담장 옆을 걸어간다. 산속에 있는 절집이지만 마치 평지에 있는 절집 분위기다.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2층 구조로 된 천왕문이다. 천왕문 치고는 특이하다. 경내는 넓다. 마당 한가운데 강당인 만세루가 있다. 보통 만세루는 절집 마당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데 선운사 마당은 너무나 넓었나 보다. 만세루와 대웅보전 사이에는 연등이 걸리고, 오층석탑이 뾰족하게 섰다.


▲ 선운사 절집 마당 한가운데 있는 만세루 ⓒ 전용호
▲ 선운사 팔상전에서 내려다본 선운사 풍경. 바로 앞 맏배지붕이 대웅보전이다. ⓒ 전용호

선운사가 전쟁 중에 보전되었던 사연은도솔산 선운사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수차례 중창을 거쳐 오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다고 한다. 지금의 절집은 광해군 때 다시 중건되었다.대웅보전은 옛날 건물 그대로다. 웅장하다. 부처를 세 분이나 모셨다. 건물 형태도 맞배지붕으로 깔끔한 느낌이다. 부처 뒤에 있는 후불벽화가 아름답다. 연한 녹색기운이 퍼지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영산전과 팔상전도 옛 모습 그대로다.
어! 한국전쟁 중에 용케도 살아남았네? 나중에 절집을 나오다가 발견한 비석에서 그 답을 알았다. 한국전쟁 중에 북으로 가지 못한 인민군들이 선운사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은 당시 고창경찰서 반암출장소 소장 김재한 경사에게 선운사를 불태울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 후불벽화가 아름답다. ⓒ 전용호

당시 김재환 경사는 "공비들의 토벌은 시간문제이나 선운사 소각은 역사와 문화유산 모두를 잃는 것이니 소각작전만은 철회해 달라.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역사 앞에 죄를 짓는 명령에는 응할 수 없다. 지역 치안의 책임은 경찰에 있으니 내 관할은 내가 책임지고 지키겠다"고 완강히 거절하여 국군의 소각작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선운사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들이 노랗게 익어간다.사람 가는 길과 차 가는 길이 분리되어 있는 도솔암 가는 길선운사를 나와 도솔암으로 길을 잡는다. 도솔암 가는 길은 아직 푸릇푸릇 싱그럽다. 나무에는 '질마재길'이라는 리본이 걸렸다.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도솔천 주변으로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나무는 뿌리 밑이 들린 것도 있다. 그러면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도솔천 물은 검다. 도솔천 물이 검은 이유를 설명한 안내판들이 있다. 아마 산속 물이 왜 이리 오염됐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안내문 설명에 의하면 참나무과의 낙엽 등에 함유된 '타닌' 성분으로 인해 검게 보인다고 한다.


▲ 도솔암 가는 길. 아직은 싱그런 숲길이다. ⓒ 전용호
▲ 도솔천 물빛이 검다. 천 옆으로 자라는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내 놓고 있다. ⓒ 전용호
▲ 도솔암 가는 길.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 전용호

도솔암 가는 길은 사람이 가는 길과 차가 가는 길로 나뉘어 있다. 도솔천을 사이에 두고 사람길과 찻길을 만들었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싶다면 사람길로, 차를 피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편안하게 걷고 싶다면 찻길을 걸어가면 된다.도솔암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3.2㎞나 된다. 길은 편안하지만 걷는 거리가 길다 보니 조금 힘도 든다. 가는 길에 하늘로 부채를 펼친 모양의 웅장한 소나무인 '장사송'과 진흥왕이 말년을 보냈다는 '진흥굴'도 지난다.붉은 빛 신비로운 도솔암 마애불
평탄한 길이 끝나고 가파르게 오르더니 도솔암이 나온다. 도솔암은 건물이 세 채가 있다. 극락보전을 가운데 두고 동암과 서암이 날개를 펼치듯 자리잡고 있다. 절집 마루에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맑다.


▲ 도솔암 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 전용호

도솔암 바로 뒤로 마애불이 있다. 불상의 높이가 15.6m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이 마애불에는 화순 운주사의 와불만큼이나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 마애불 가슴에는 감실이 있는데, 감실 안에는 비결이 있다고 전해져 왔다.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비결을 얻고자 감실을 열었는데 그 안에 있는 책에는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고 쓰여 있어 놀라서 다시 넣어놓았다고 한다.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감실을 열고 비결을 가져갔다고도 전해온다. 마애불은 붉은 빛이 돈다. 그래서 더욱 신비스럽게 보이기도 한다.신선이 거처했을 것 같은 도솔천 내원궁
마애불 주위로 단풍나무가 아직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나한전이 있고 그 앞에 부서진 삼층석탑을 다시 세워 놓았다. 이곳에 삼층석탑을 세웠을 정도면 예전에 상당한 규모의 절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나한전 옆으로 도솔천내원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가파르게 빙 돌아서 마애불 뒤로 오른다.


▲ 도솔암 나한전 앞 삼층석탑 ⓒ 전용호
▲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도솔천 내원궁 ⓒ 전용호

하늘나라에는 도솔천이라는 천상의 세계가 있는데 그 곳에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다고 한다. 외원궁에는 하늘나라의 일반 중생들이 살고, 내원궁는 미륵보살이 있는 곳이다. 그럼 이곳은 미륵세상인 셈이다. 내원궁으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가파르다. 한참을 올라 계단에 다 오를 즈음 펼쳐진 풍경에 너무나 놀란다. 높은 바위 틈에 작은 절집이 있다. 아! 이런 곳에 절집을 만들어 놓다니.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을 모셔 놓았다. 작은 마당에서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내원궁 난간에 서니 선운산 기암 풍경들이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풍경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옛날 이곳이 거처하는 스님들은 신선이 아니었을까? 2011.10.06 10:27 ⓒ 2011 OhmyNews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6268

[사설] 종편의 ‘광고 직거래’, 민주당이 당운 걸고 막아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07일자 사설 '종편의 ‘광고 직거래’, 민주당이 당운 걸고 막아라'를 퍼왔습니다.
여야의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법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최근 미디어렙은 1공영 1민영으로 하되, 종편사는 자율영업을 허용하고 3년 뒤 미디어렙 편입 여부를 판단하자는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에 민주당은 종편의 자율영업을 허용하되 2년 뒤엔 미디어렙에 강제위탁한다는 양보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타협이 중요하다지만 여야안 모두 언론시장을 교란시킬 말도 안 되는 발상들이다. 종편사의 광고 직거래가 가져올 폐해를 무시한 무책임한 처사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통한 미디어렙 체제도 물론 문제는 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방송사의 보도·제작과 광고영업을 분리해 자본으로부터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내고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 취약매체를 지원하는 구실도 해왔다.
그런데 종편사가 미디어렙을 통하지 않고 직접 광고주를 만나 거래를 하게 되면 지상파까지 ‘광고전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디어렙 체제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그 파장은 지역방송과 중소방송뿐 아니라 신문산업에까지 미치게 된다. 언론계 전체가 돈에 휘둘리는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력이 방송의 공공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며 “종편이 광고 직거래에 나서면 자본권력까지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의 입을 막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이 무너지고, 나아가 건강한 공론의 장에서만 존립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현 정권이 종편사를 보수언론들에 4개나 무더기 허용한 것 자체가 정치적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정부·여당이 광고 특혜를 무기로 종편사들과 유착하고 거래하기 시작하면 내년 양대 선거조차 공정하게 치러진다는 보장이 없다. 이들의 이런 시도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이자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판에 민주당이 강제위탁의 단서를 달긴 했지만 종편의 광고 직거래를 허용하는 안을 내놓았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지역방송 지원책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쉽게 양보할 일이 아니다. 미디어렙 문제는 야당이 그 어떤 일보다 최우선 순위의 과제로 삼아 당운을 건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사안이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사설] 미국과 중국간 환율전쟁 본격화되나

이글은 서울경제 2011-10-05일자 사설 '미국과 중국간 환율전쟁 본격화되나'를 퍼왔습니다.
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본격적인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상원이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미국 정부가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하자 중국이 즉각 무역전쟁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미중 간의 이 같은 갈등이 전면적인 환율 및 무역전쟁으로 확대될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의 마찰은 세계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일 미국 상원이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법안'은 위안화 절상에 소극적인 중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저평가된 환율을 부당한 보조금으로 간주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기업과 노조가 상무부를 상대로 외국 정부의 환율조작 의혹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지난해 9월 미 하원에서 통과된 이 법안을 이번에 상원이 압도적인 표차로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함으로써 상하 양원의 통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미국 의회가 이 법안을 다시 꺼내든 것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턱없이 저평가되고 있는 위안화의 절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역조가 사상최대 규모로 늘어난 가운데 경기회복 지연, 실업률 증가 등 경제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미국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위안화 절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이 같은 경제난을 풀기 어렵다는 판단인 것이다. 미국은 위안화 가치가 현재보다 28.5% 절상되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1,900억달러 정도 감소하고 일자리는 225만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환율법안의 입법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즉각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위반이라며 공세에 나섰고 인민은행은 미국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만약 G2 간의 통상마찰이 격화될 경우 국제무역질서를 비롯한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고조되고 있는 미중 간 환율전쟁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관심이 요구된다.

[사설/10월 6일] 민주당, 자신을 깨는 쇄신에 나서길

이글은 한국일보 2011-10-06일자 사설 '민주당, 자신을 깨는 쇄신에 나서길'을 퍼왔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5일 사의를 접었다. 전날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데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사퇴의사를 번복한 것이다. 모양새는 썩 좋지 않다. 하지만 사의 표명과 철회가 정략적 계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물러나면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으로 민주당이 더욱 지리멸렬해지고,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변의 설득이 먹혔다고 본다.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사퇴 철회를 결의한 데다 박원순 후보도 적극 만류하는 상황에서 사퇴를 고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 대표로서 체면은 구겼지만, 손 대표는 선제적으로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당내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었던 책임론을 잠재우는 효과를 결과적으로 거둔 셈이 됐다. 사실 손 대표가 당내 경선이 준비되기도 전에 박 후보에 입당 구애를 하고, 천정배 최고위원 등의 출마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번 사퇴 번복 파동을 거치면서 그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손 대표나 민주당이 처한 상황이 변한 것은 전혀 아니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하게 된 현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비난을 받아도 당 지지도가 20%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처지는 달라진 게 없다. 안철수 교수가 거명되자마자 지지도가 50%를 넘고, 당초 5%선에 머물던 박원순 변호사가 안 교수의 출마 포기 이후 곧바로 40~50% 선으로 치솟는 현상에서 민주당의 자리는 없었다.

손 대표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근본적 혁신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고 밝힌 대로 민주당은 본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에는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재야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새 인물들을 충원, 체질 개선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지도자도 없고, 부분적 수혈은 한계를 맞고 있다. 민주당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을 깨는 자세를 취해야 할 때가 왔다. 그 과정에서 인적 쇄신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과 지향점에 대한 토론도 치열하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계룡산의 '웰컴투 동막골' 상신마을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 기자 블로그 물바람숲의 글 '계룡산의 '웰컴투 동막골' 상신마을'을 퍼왔습니다.
통일신라 구룡사터 있는 산골 마을, 전형적인 충청도 민가 정원 고즈넉
최근 국립공원에서 빠져, 옛 정취 어떻게 지킬까 걱정

국립공원 보전운동을 하는 나는 전국 곳곳에 산재한 국립공원을 다녀야 한다.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힘들겠다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맞다. 좋고도 힘들다. 내가 사는 지리산국립공원이 아닌 다른 국립공원 출장이 잡히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이다. 해야 할 일보다 가는 길이 겁날 때가 많다.

계룡산 국립공원 북쪽 끝에 자리한 상신마을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한다. 그런 내가 상신마을까지 가려면 기차, 전철, 버스, 택시 등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내게 상신마을은 깊은 산골이다.

상신마을은 충남 공주시 반포면에 속한다. 상신마을에 가려면 32번 국도를 타고 공주 쪽으로 가다가 박정자 삼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희망교를 지나 상신계곡을 따라 마을길을 걸으면 하신마을이 나오고, 하신마을에서 3km쯤 더 들어가면 상신마을이 있다.

상신마을은 남으로 길고, 북으로 갈수록 양쪽에서 좁혀져 삼각형을 이루는 분지형 마을로 버스 정류장과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버스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다. 갖가지 모양의 색 바랜 의자에 앉아 인근 대학 학생들이 그린 벽화를 보고 있노라면 버스가 온다.

집집마다 차가 있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버스는 상신마을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상신마을 버스정류장은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버스정류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초라하고, 촌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으나 하루 4번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리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상신마을이 절터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는 이제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었다. 당간지주 옆엔 말하는 어르신과 듣는 어르신, 마냥 하늘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함께 앉아 계셨다. 어르신께 마을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70년밖에 안 살았어.’로 시작된 말씀에 의하면 상신마을은 500년쯤 되었단다. 마을이 있기 전에는 구룡사(九龍寺)란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망했다고도 하고, 절이 안 되어 갑사로 옮겼다는 말도 있단다. 절이 사라진 후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렇게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빈대’가 많아 절이 망했다니 무슨 의미일까? 절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걸까, 아님 절 안에서 생긴 작은 다툼이 산문을 닫게 할 큰 싸움으로 번졌다는 걸까? 어떤 의미인지 묻는 나에게 어르신은 ‘으음, 글쎄’라고만 하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구룡사는 이제 폐사지로 존재한다.

구룡사는 약 3cm 크기의 글씨로 구룡사라 찍힌 기와편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상신마을에는 백제와 통일신라 때의 각종 부도대석(浮屠臺石), 탑재(塔材), 기와조각 등이 있다. 구룡사의 규모는 상신마을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 조각들로 미루어 꽤 컸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상신마을은 계룡산국립공원 인근 마을답게 마을 입구에 하늘과 자연에 예를 표하는 지하여장군과 천하대장군, 솟대가 서 있다. 상신마을 솟대의 특이한 점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 있는 것이든 모두 계룡산국립공원 상봉인 천황봉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신마을은 일제 때는 120호가 있었고, 지금도 130여 호가 산다고 한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들고남이 많았을 텐데, 마을 인구가 줄지 않았다는 건 살기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1933년 상신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대전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와 직장 생활은 외지에서 하고, 정년퇴임과 동시 마을로 돌아온 석지영 노인회장은 상신마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신마을은 빈촌입니다. 들은 없고, 산에 화전을 해서 고구마, 배추를 길러 먹었어요. 지금은 지하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하늘에서 내린 물로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참 팍팍했습니다. 봄에는 나물 캐고, 가을에는 버섯과 머루, 다래 따서 먹고 살았답니다.’

어르신들은 마을 이야기에 1856년 한양에서 태어나 한일합방 전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합방의 비보를 듣고 관직을 버린 후 상신마을에 은거했던 취음 권중면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1916년 회갑 되던 해에 상신마을로 들어와 서당을 차리고 제자를 양성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상신계곡에 구곡(九谷)을 선정하여 바위에 새겨 용산구곡이라 했다. 그의 장남이 소설 ‘단(丹)’의 저자이자 우리나라 단학의 대가인 봉우 권태훈이다. 평범해 보이는 상신마을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상신마을은 입구만 막으면 호수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옴팍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그런 마을을 연상하면 된다. 전쟁이 나자 도회지 사람들은 첩첩산중 상신마을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고 피난을 왔다.

그러나 상신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 머물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빚었다. 유엔군이 상신마을을 폭격하면서 산중 마을은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상신마을은 숨기 좋은 곳이었으나 일단 들어오면 나가기도 힘든 곳이었다.

상신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행주형(行舟形)으로, 샘을 많이 파면 배 밑창이 뚫려 침몰하므로 재앙을 막기 위해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얼마 전까지 마을사람들의 유일한 식수였던 큰 샘이 나온다. 뚜껑이 덮인 샘을 통해 흘러 나오는 물이 맑고 투명했다. 맛도 좋았다.


상신마을길을 걸으면 전형적인 충청도 민가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충청도 민가 정원엔 큰 나무보다는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분꽃, 봉숭아, 금송화, 채송화, 맨드라미, 다알리아, 풍접초 등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꽃들은 잎이나 열매, 뿌리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점하는 자리가 아깝지 않았다. 정원은 따스한 햇살 아래 붉고 노란 빛을 냈다. 한 두 잎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마을길을 걸었다. 돌담엔 호박덩굴이 널려 있고, 감과 대추는 붉은 색으로 익어가고, 장독대로 호두나무 잎이 떨어졌다.


상신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1시간쯤 걸린다. 낮고 포근한 시골집과 높은 담장에 말끔한 잔디밭을 갖춘 고급 전원주택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곳이 상신마을이다. 대도시 대전에 인접한 산세 좋고 공기 맑은 곳이니 고급 전원주택이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 싶었지만 원주민의 자리를 밀어내고 들어오는 대형 건물이 괜히 언짢았다. 10년 후 상신마을은 옛 모습은 어느 곳에도 없고 널찍하게 자리 잡은 도시형 주택들만 남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어르신들은 상신마을엔 20여 년 전 터를 잡은 도예촌 때문에 사람들이 오간다며 큰 장사가 되는 것도 없는 마을이라 했다. 공기도 다르고, 풍경도 멋진 상신마을을 지키고 싶다 하셨다. 그러나 고급 전원주택이 많아지는 걸 보며, 지켜봐야 돈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돈 없는 원주민들은 먹고 살기 힘드니 집도 땅도 팔고 도회지로 나가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일제 때 산 위로 길을 뚫으려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막았는데 도시사람들이 들어오고, 차가 많아지니 그 길을 뚫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변하는 세상은 영산, 명산이라 불리며 길을 내고, 지형을 변화시키는 일이 금기시되던 계룡산을 변화시키려나 보다. 그래도 될까.


이제 가는 겨, 우리 마을 뭐 볼 건 없잖어, 익숙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며 상신마을을 떠났다. 상신마을은 지난 해 말에 있었던 국립공원구역조정으로 계룡산 국립공원 밖에 있는 마을이 되었다. 국립공원 안에 사는 주민들의 최대 소원이 국립공원에서 빠지는 거라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뭔 큰 차이가 있겠냐고 했다. 국립공원 안팎 마을이 국립공원이란 경계선 하나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국립공원 안에 사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을과 주민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일, 이건 정부의 몫인 것 같다.

글·사진/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 이 글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계간지 '초록 숨소리' 2011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