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2일 토요일

지리산케이블카 예정지 현장 보고-지리산을 그대로 놔 두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의 블로그 물바람숲 2011-11-10일자 기사 '지리산케이블카 예정지 현장 보고-지리산을 그대로 놔 두라'를 퍼왔습니다.
4개 지자체 무한경쟁 돌입, 갈등과 반목 시작돼
건설비 1천억까지 드는데 "한 명이 와도 우리 지역에 지어야"

2010년 10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이 환경부가 주도한 자연공원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확정하여 공포하자 지리산국립공원에 접한 4개 지자체는 몹시 분주해졌다. 산청을 시작으로 구례, 남원은 곳곳에 현수막을 붙이며 케이블카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유용한 수단이라 하였다.

2011년 11월 6일 현재 환경부는 구례, 남원, 산청에서 신청한 '지리산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국립공원계획변경신청서'(이하 지리산케이블카신청서)를 접수한 상태이며, 함양이 제출한 지리산케이블카신청서는 아직 접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양이 제출한 지리산케이블카신청서는 차기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확정되는 '국립공원 케이블카 시범사업지 결정계획'에 따라 접수여부가 결정될 듯하다.

환경부가 어떤 의도로 국립공원 케이블카 촉진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날은 경제성을, 어떤 날은 장애인과 노약자를 이야기하니 그 말을 하는 곳이 환경부인지도 의심스럽고, 환경부가 저래도 되는 건지 심히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환경부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지리산국립공원에 접한 4개 지자체는 무한 경쟁에 돌입한 상태이며, 우리 지역이 지리산케이블카의 최적지이고 다른 지역은 우리 지역보다 못하니 반드시 우리 지역에 건설되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리산케이블카로 지리산권은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지리산케이블카 캠페인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대체 어디다 놓겠다고 합니까?'이다. 지리산케이블카, 대체 어디에 놓겠다는 걸까?
10월 중순, 하부 정류장을 중심으로 지리산케이블카 예정지를 돌아봤다. 

구례가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는 산동온천에서 출발하여 성삼재를 경유하여 노고단까지 올라간다. 구례군 공무원들은 지리산케이블카가 이미 훼손된 지역에 들어서니 추가 훼손이 없다고 말한다.

구례가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의 하부정류장은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산79번지이고, 중간 지주는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산70-2, 산71, 산70-1, 산110-1, 산20-1번지에 들어서며, 중계지는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산110-3, 산110-6, 산110-1번지이고, 상부정류장은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산20-1번지이다. 



↑ 구례군은 성삼재 아랫마을인 산동에서 출발하여

↑ 성삼재에서 쉬었다가
↑ 노고단 송전탑 아래까지 올라가는 약 4.5㎞ 지리산케이블카를 계획하고 있다.
↑ 구례군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 노선 (그림_ 구례군)

남원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는 반선에서 출발하여 와운마을을 경유하여 반야봉까지 올라간다. 남원시 공무원들은 지리산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이 반야봉이 아니라 반야봉 아래 중봉이니 괜찮지 않냐고 한다.

남원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의 하부정류장은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216-4번지이고 중간정류장은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산107번지이며, 상부정류장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산107번지이다.


↑ 남원시는 천연기념물인 와운 천년송 옆에 중간정류장을 세우겠다고 한다. 케이블카 길이는 6.7㎞이다.
↑ 남원시가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 노선 (그림_ 남원시)

산청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는 중산리에서 시작하여 제석봉까지 올라간다. 산청군 공무원들은 천왕봉은 피했고, 제석봉은 한번 훼손된 지역이니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산청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의 하부정류장은 산청군 중산리 544-1번지이고 상부정류장은 산청군 중산리 산208번지이다.

↑ 산청군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 하부정류장에서 바라본 구름 가득한 제석봉
↑ 산청군이 추진하는 지리산케이블카 노선 (그림_ 산청군)

함양이 추진하는 케이블카는 공식 자료가 나오지는 않았으나 들리는 말로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제석봉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어느 지자체는 건설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케이블카를 위해 도로를 뚫고, 모든 지자체가 케이블카 건설을 위한 팀을 만들고 용역과 추진을 위해 군민들이 낸 세금을 사용하고 있다.

케이블카 건설비가 적게는 450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까지 들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 명이 와도 케이블카는 우리 지역에 건설되어야 한다는 기초의원이 있다.

지리산이 갖는 가치와 상징성, 예산 집행의 원칙과 상식을 깨고 추진되는 지리산케이블카, 대체 누구로부터 시작된 일일까?

구례, 남원, 산청, 함양은 지리산국립공원에 최소 1개의 케이블카는 건설될 것이라고, 경상도와 전라도에 하나씩 건설되지 않겠냐고, 광역지자체가 다르니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에 각각 1개씩 3개가 건설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지리산케이블카 설치 계획도 (그림 한겨레)

지리산에 1개, 2개, 3개, 어쩌면 그 이상 건설될 케이블카가 지리산을 한나절 관광지로 만들고, 잠깐 왔다가는 차로 지리산이 들썩이게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소중한 아고산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지리산 자락의 소중한 삶과 문화, 정신이 있던 자리가 돈과 경쟁, 갈등으로 채워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리산케이블카를 원하니 케이블카에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마력이라도 있는 걸까.

지금 우리는, 케이블카가 2000년간 유지되어 온 지리산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며, 시작도 하기 전에 이곳저곳에서 심상치 않은 전조를 보이고 있으니 우리 삶과 지리산을 지키는 힘과 지혜는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매일 매일 외친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그대로 놔 두라!'  

글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처장, 사진 민종덕, 허명구, 윤주옥

내일 없는 우리, 오늘 뭐 해야 하나?

이글은 대자보 2011-11-12일자 기사 '내일 없는 우리, 오늘 뭐 해야 하나?'를 퍼왔습니다.
청년유니온 '21세기 전태일들의 삶' 토론…빚없는 게 행복인 청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이 오는 13일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를 기념하는 취지로 지난 10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청년노동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토론 주제는 ‘21세기 전태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였습니다.
우리들 책임도 있다?
사실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응답은 멀리 토론회까지 가서 찾을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냥 우리 주위의 젊은이들 사는 모습만 둘러봐도 답이 딱 나오거든요. 회사원이라면 신입사원들(대부분이 계약직이겠죠)을, 아버지라면 학교를 갓 졸업한 자녀들(대부분이 취업준비생이겠죠)을, 교수나 교사, 강사라면 졸업반 학생들(대부분이 취업준비생이 되겠죠)을,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라면 자기 자신과 친구들의 현실(대부분이 계약직이거나 취업준비생이겠죠)을 똑바로 보면 되는 겁니다.
자신의 욕망을 덧대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보기만 한다면, 그들이 어떤 근로형태로 일하고 있는지, 어떤 처우를 받고 있는지, 앞으로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렵지 않게 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사실 그대로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도, 좀 다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정부는 지금까지의 임기 내내 청년고용 문제에 대해 "눈높이를 낮춰라"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최근에는 지식경제부에서 청년백수를 해외 탄광으로 보내겠다는, 어이가 없어 말도 잘 안 나오는 대안(?)까지 내놓았는데요.
정부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우리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현실을 명확하게 진단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죠. 남들은 다 안 되지만 난 잘 될 거야, 다른 애들은 다 안 되지만 우리 아들은 잘 될 거야, 남들은 다 안 되지만 난 정규직 전환이 될 거야. 아, 그러니까 그거 다 못난 애들 얘기고 어쨌든 난 된다니깐? 왜냐하면 나니까! 내가 제일 잘 나가! 뭐, 이렇게…

▲21세기 전태일들 자신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사진=조영훈)

허위의식과 정부의 책임회피를 날려버리자
이날 토론회는 이 같은 우리의 허위의식과 저 같은 정부의 책임 회피를 동시에 날려버리기 위해 열렸습니다. 정확하게 명중시키기 위해선 대상을 똑바로 보고 조준해야겠지요. 오늘을 사는 비정규직 청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의 생생한 증언과 토론 내용에 귀기울여봅시다. 
먼저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은 고충들을 격의 없이 주고받는 장면을 영상으로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정규직이라고 회식도 안 데려가고, 수시로 야근시키고 그에 합당한 수당도 주지 않고, 명절 선물도 주지 않고… 도대체 자존감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보는 사람조차 화가 불끈 솟게 하는 (왜냐하면 겪어본 일이니까) 증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네가 사원이야? 넌 커피나 타는 애지."라는 호통에 자기가 생각해도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게 됐다며 울음을 터트린 어느 여성 조합원의 고백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비인격적으로 대우 받는 차원을 넘어, 자기 스스로를 무시하고 우습게 보게 만드는 이 기막힌 청년들의 노동현실을 영상을 통해 지켜보며 회의실에 모인 이들의 표정은 울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하나둘 일그러졌습니다. 자신의 현실인 듯 그렇지 않은 듯 그렇게 말이지요.
네가 사원이야? 넌 커피나 타는 애지
영상 상영이 끝나고 한국노동연구원의 은수미 박사님이 ‘주변부 노동 조직화 전략 및 청년유니온 활동에 대한 평가와 향우 방향 제안’이란 주제로 발제를 해주셨습니다. 은 박사님이 들고 나온 강연의 ‘출발점’은 지난달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사마귀 유치원'의 ‘대기업 입사 방법’ 편이었는데요.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대기업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이름만 들어도 아는 우리나라 세 개 대학 중 하나만 가면 돼요. 세 개나 되니까 폭이 엄청 넓죠? 이렇게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4년간 학비가 적게는 5,000만원에서 많게는 2억이 드는데 (..) 부모님께 미안하다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 돼요.
시급 4,320원을 받고 10시간씩 1년을 숨만 쉬고 일만 해서 꼬박 모으면 1년 학비가 생기죠. 그렇게 1년 알바하고 1년 공부하고 반복하면 8년 만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어요. 쉽죠? (..) 이렇게 대기업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꼬박 일만 하고 숨만 쉬고 돈을 모으면 본전을 뽑을 수 있습니다. 참, 쉽죠?”
네, 저어엉~말 쉽군요. 은 박사님은 강연 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주로 파견근로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셨습니다.
강의 후반부에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천명한 필라델피아 선언의 내용을 소개하며, 오늘날 상품처럼 버려지거나 대체되는 기간제근로자 및 파견근로자들의 현실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재차 강조하셨습니다.
시민단체에서 당하다
은 박사님의 강연 이후,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이 자신이 노동현장에서 겪었던 고충들, 말하자면 계약직 혹은 파견근로자로서 상품처럼 버려지거나 대체된 기억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뤄졌으면 좋겠는 희망 정책들에 대해 때론 솔직하게 때론 거침없이 털어놓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토크쇼의 포문을 연 건 카페명 ‘구 드릴러’(31, 남)였습니다. ‘구 드릴러’는 자신의 진보적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 시민단체에 입사했지만, 폭언과 비하적인 말을 숱하게 듣다가 6개월 만에 해고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다른 곳에서 역시 비슷한 일을 겪고, 1년 가량을 구직 포기자로 살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건 존중받으며 일하는 건데 회사란 곳, 상사란 자들은 전혀 인간으로 대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년 가량의 공백 기간을 거치고 핸드폰 컬러링 만드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와 계약직 생활을 1년 여간 하다가 최근에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답니다. 아르바이트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점심 식사 자리에도 끼워주지 않는 등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임금체계가 포괄임금산정제로 정해져 있어 야근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을 전혀 못 받는 점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월 최대 근로가능 시간도 무려 275시간으로 계약되어 있다고 하네요. 대충 4로 나눠도 주당 근로시간이 끔찍할 정도로 많은 것이지요. 물론 그렇게 하루 표준노동시간인 8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해도 포괄임금산정제로 임금이 이미 결정되어 있기에 당연히 가산임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가 받는 월급은 125만 원 정도라고 하네요.
20대에 몸이 망가지다
다음으로 말문을 연 건 ‘차씨’(32, 남)였습니다. ‘차씨’는 IMF 때문에 집안 사정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스무 살 때부터 바로 노동현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죠. 그가 발을 들인 첫 직장은 공장이었습니다. 공장에서 주야간 맞교대로 근무하고, 무거운 물건을 나르다 그의 몸은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허리디스크 판정까지 받은 것이지요. 결국 5년 만에 건강이 악화돼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까지 일했던 곳은 IT업체였습니다. IT의 파견근로자였던 것이죠. 하지만 주야간 맞교대는 여기서도 계속됐습니다. 3주 주간, 6주 야간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해서 그가 받은 월급은 150만 원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상 오후 10시 이후의 야간근로에 대해서는 150%의 가산임금을 지급하게 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액수가 굉장히 적은 편인 것이지요.
▲ 청년노동자 토크쇼 장면. (사진=청년유니온)
세 번째 주자는 ‘소요’(30, 여)였습니다. ‘소요’는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이후 계약직을 전전하며 월 100~150만 원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다니지 않고 노동을 하며 자기 시간을 갖는 삶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고 친구들이 하나둘 시집을 가면서부터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게다가 자취를 하다 보니 월세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100여만 원을 벌어서는 월세 내고 핸드폰 요금 내고 나면 도저히 돈을 모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야말로 ‘한달살이’ 인생이었습니다. 안 되겠다고 결심한 ‘소요’. 회사 퇴근하고 커피전문점에서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을 하는 생활은 6개월간 지속됩니다.
이러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어린이 노동자처럼 하루 16시간씩 일을 하며(주당 16시간도 아니고!) ‘이러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 ‘왜 이러고 사나’,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했다는군요. 그런데 더 절망적인 건 그렇게 신산하게 살아봤자 크게 돈이 모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요’는 “10년 뒤의 내 모습을 생각해봐도 지금과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다. 그게 가장 힘든 점이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인 송씨’(31, 여). 그녀는 모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겪은, 정말 깨알 같은 차별들에 대해 들려줬습니다. 일단 사원증 자체가 달랐고 노트북도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명절 선물을 못 받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자신은 투명인간 그 자체였다고 하네요. 생리휴가의 경우도 원래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무급이 맞지만 회사 내의 노동조합의 힘으로 정규직들은 유급으로 휴가를 받았는데요. 비정규직 여성근로자들은 모두 무급으로 적용되었답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남자 상사의 성희롱적 언사를 회사에 신고한 뒤에 발생했는데요. 그 일 이후 정규직 여직원들이 ‘한국인 송씨’ 생각에는 자신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화장실에서 자기들끼리 “쟤는 잃을 게 없어 저렇게 막 지르나봐”라면서 쑥덕거리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됐다네요. 같은 여직원 사이에서도 자신이 무시와 냉소의 대상이 된다는 데 상처를 받았답니다.
다음은 ‘포커페이스’(28, 여). 포커페이스는 학자금대출금 2,800만 원과의 사투로 20대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달도 일을 멈춰선 안 된다는 압박 때문에 제대로 취업을 준비해보지도 못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물류센터 박스 나르기, 네일아트 손 모델, 시청 행정인턴, 초등학교 컴퓨터 보조강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일을 멈추면 바로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네요.
학자금대출금 2,800만 원과의 사투
지금은 공기업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계약기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군요. 받는 급여는 세전 130만 원. 그마저도 6개월 뒤에는 받을 수 없어서 다시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장균’(30, 남). 대장균도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현재까지 척추수술만 세 번을 했다고 합니다. 허리가 워낙 안 좋아 요즘은 최대한 몸을 안 쓰는 일인 웹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대장균’ 역시 포괄임금산정제로 임금을 지급받아 야근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는 걸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여섯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들 28~32세 청년들의 공통점은 대충 100~150만 원 사이의 월급을 받는다, 임금을 전체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면 시간당 최저임금 4,320원 수준이 된다, 포괄임금산정제로 임금체계가 측정되어 있어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받을 수 없다, 야간근로나 육체노동을 하다가 건강을 해쳤다, 직장이나 일에 대한 소속감이나 책임의식을 갖기가 어렵다,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그래서 미래도 설계할 수가 없다 등이었습니다.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다
그리고 이들이 희망하는 대안적 정책은 자발적 이직에 대해서도 실업급여를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4대 보험료를 회사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포괄임금 방식으로 급여를 지급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그동안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투쟁이나 피자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 등에서 승리하며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갔지만, 정작 조합원 당사자들의 노동현실을 어떻게 개선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포괄임금산정제에 대해서는 한번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조 팀장 자신의 사례를 들며 “돈이 없어서 카드빚을 막지 못할 때는 정말로 제2금융권의 광고가 눈에 들어오더라”며 “청년들이 실제로 이직이 많은데, 이건 청년들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상 충분한 직업탐색 기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자발적 이직자 등에게도 실업급여 지원 폭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어준은 에서 “쫄지 않는 애티튜드가 위로가 되는 시대”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제가 볼 때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 힘이 약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말은 본인이 가르치는 제자들에게는 위로가 될지 모르나 저와 제 주변의 청년들에게는 위로보다 모욕으로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넌 그래도 빚은 없잖아”란 말이 위로가 되는 시대
제 생각에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실질적이고도 강력하게 건네질 수 있는 위로는 “넌 그래도 빚은 없잖아” 같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몇 천만 원짜리 통장이 있고, 자가 주택이 있는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너무 비현실적이라서), 빚이 없는 게 자기 위안이 되는 시대. 그런 시대에 대부분의 청년들이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는 과장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100여만 원을 벌어서 월세와 공과금 40~50여만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돈으로 꿀 수 있는 꿈은 없습니다. 각하의 말씀처럼 이 상태에서 눈높이를 더 낮출 수도 없는 것이고요.
청년백수들을 해외 탄광으로 취업시키겠다는 정부(무려 지식경제부), 50~60대 저임금 취업자 수가 증가해 전체 실업률이 조금 떨어졌다고 ‘고용대박’이라 자축하는 정부(무려 기획재정부)에게 부족한 이 글을 바칩니다.

2011년 11월 12일 (토) 13:30:26 조영훈 / 현장기자

'미드'만으로 방송 80% 채울수도… 문화 종속 우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1-11일자 기사 ''미드'만으로 방송 80% 채울수도… 문화 종속 우려'를 퍼왔습니다.
방통위 한미FTA 시행령 강행 처리, 중소 PP들 타격 클 듯

국회가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논의 중인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한미FTA 발효 시 미국 프로그램의 편성을 확대할 수 있게 하는 안을 강행 처리했다. 야당측은 국내 중소 사업자의 타격을 우려하며 향후 국회 처리 과정을 보고 신중하게 결정하자고 했지만 결국 수용되지 앉아, 반발해 퇴장했다.
방통위는 11일 회의에서 “방송사업자의 편성 자율성 제고”라는 취지로 한미 FTA 처리 시 외국 제작물의 편성비율을 완화하는 내용 등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과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 개정안은 한미 FTA 발효일부터 시행된다. 이 개정안 등의 처리에는 민주당 추천 김충식·양문석 상임위원은 반대 입장을 밝히고 퇴장에 표결하지 않았고,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한 홍성규 부위원장, 신용섭 상임위원이 찬성 표결했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외국제작물 1개 국가의 편성 비율을 현행 100분의 60에서 100분의 80으로 완화’하는 안을 담고 있다. 고시 개정안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내용과 함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위성방송사업자,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국내 제작 영화 편성비율을 현행 100분의 25에서 100분의 20으로 완화’, ‘SO, PP, 위성방송 사업자의 애니메이션 편성비율을 현행 100분 35에서 100분의 30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미국 프로그램의 편성이 확대될 수 있는 안이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치열 기자 truth710@mediatoday.co.kr

이 같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미국 프로그램이 차지할 수 있는 ‘쿼터’가 커질 수 있어, 국내 중소 PP 업계의1차적 ‘타격’이 우려된다. 특히, FTA 비준안이 통과되면 협정 발효시점부터 3년 이후에 외국 방송사업자들이 보도·종합편성·홈쇼핑 채널을 제외한 일반 채널에 대해 간접 투자(한국법인 설립)가 100% 허용돼 파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김충식 상임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그동안 문화산업 보호를 위해 금과옥조로 여겨온 스크린쿼터도 절반으로 축소됐다. 최소한의 국내 영화 보호와 콘텐츠 보호 측면에서 제시해놓은 틀을 다시 한번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다”며 “자동차를 팔기 위해 문을 연 것”이라고 표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양문석 상임위원은 ‘외국제작물 편성 완화’에 대해 “스크린쿼터를 반쪽으로 만든 것과 동일하다”며 “문화 다양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이외의) 다른 대륙의 제작물을 넣는 게 어려울 것”이라며“(미국에 대한)문화적 종속성이 더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 위원은 또 ‘영화, 에니메이션 편성 완화’에 대해 “영화는 이미 스크린쿼터에서 반이 깨졌다. 애니메이션 대미 종속이 이미 심한 상태”라며 “의무적으로 애니메이션에 투자하고 풀어내고 자사의 채널에 편성하는 이러한 선순환 구조에 치명상 입히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문화적 다양성과 국내 문화산업 활성화에 해악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라는 것과 미국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승복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한미 FTA가 어떻게 결론이 나는지를 보고 최종적으로 의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은 퇴장 이후 본인의 페이스북에 해당 조항을 두고 "한미 FTA의 영상 관련 독소 조항"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신용섭 위원은 “정부는 국회 결정에 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며 “부칙에다가 비준이 돼야 발효된다는 안전장치를 걸어놓았다”고 표결을 주장했다. 홍성규 부위원장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흔쾌히 찬성하지 않을 부분이 이해된다”면서도 “토론을 너무 오래 하는 게 소모적이다. 표결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김충식, 양문석 위원이 반발해 퇴장하자, 최시중 위원장은 “한미 FTA법이 국회에서 논의가 아니라 논쟁을 떠나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며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행정부 각 부처별로 다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여야의 의견이 나눠져 있는 곳은 방통위 뿐”이라며 “저도 농민의 아들이다.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절차는 절차”라고 말한 뒤 표결을 강행했다.

"반역하지 않으면 언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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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0주년 맞은 녹색평론 "낡은 성장 이데올로기 버리고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해야"

원래 언론‧출판 행위란 반역을 위해 시작된 활동이다. 반역이란 물론 주류의 가치, 즉 지배적인 제도와 관습과 문화를 전면적으로 뿌리에서부터 의심한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출판을 가리키는 말(edition)과 반역행위를 가르키는 말(sedition)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언론이 광고주와 언론 소비자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언제라도 어용언론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이 20주년을 맞았다. 발행인 김종철씨는 머리말에서 “언론은 본래의 사명을 스스로 배반하도록 강요당할 위기상황에 항상적으로 처해있는 존재”라면서 “이러한 운명을회피할 수 있는 건 소규모 매체밖에 없는지도 모른다”고 적고 있다. “소규모일수록 외부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김씨는 “녹색평론이 비판적인 물음을 계속 던질 수 있는 것도 작은 매체 특유의 독립성 덕분”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씨는 “처음부터 녹색평론이 의도한 것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한국 사회와 세계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 맞서서 이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면서 “올바른 질문을 통해서만 올바른 방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우리는 전통적인 좌우의 이념과 논리로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정당하게 설명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판단으로 작업해 왔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비판은 냉정하고 준엄하다.
“전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해 있는 현재의 산업, 금융, 교역, 에너지, 식량 시스템은 물론이고 이와 같은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정치, 문화, 교육 등 중앙집권적 시스템 전부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더 유지될 수 없는 날이 조만간 닥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진보적 사상화 개혁적 담론은 예외없이 근시안적 현실 진단과 피상적인 처방에 머물러 있다.”
김씨는 복지국가 논쟁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평가를 내렸다. “기본적으로 경제성장과 생산주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는 이상 그것이 빈곤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는 방책으로서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복지국가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고용안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면서 “현실적으로 복지국가 논리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반문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석도 돋보인다.
“오늘날 기업쪽에서 볼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자의 존재지 더 많은 노동자의 존재는 분명 아니다. 이미 시장은 과잉 생산물로 넘쳐나고 자동화‧기계화의 급속한 발달로 생산현장에서의 인간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1970년대 전태일의 시대에 노동자는 ‘착취’를 당했으나 지금 김진숙의 시대에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것은 노동으로부터의 ‘배제’다.”
김씨는 “더 많은 성장을 통해 극복한다는 방법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주류였던 방법, 대규모 산업 시스템 속에서 일자리와 생계를 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소규모 지역 중심, 자립적 생산‧생활협동체들을 광범위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 틀 속에서 태양에너지에 기반을 둔 순환경제를 구축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순환적 생활 패턴을 선택한다는 건 단순히 물자와 에너지 조달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결국 정치적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문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과 확산을 가로막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다”면서 “결국은 민주주의의 확립, 즉 보편적 이성이 존중 받고 합리적 상식이 통하는 정치 시스템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녹색평론 창간 기념호.

김씨는 “지금 필요한 것은, 이미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경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새로운 상식이 되도록 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한다. 김씨는 “시급한 것은 경제 성장과 생산력 증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한 발전 혹은 진보의 추구라는 낡은 공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우리의 생활방식을 자연의 본성과 리듬에 순응하는 순환적 패턴으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1991년 11월 창간한 녹색평론의 발행부수는 1만부 가량. 문예 분야 잡지 부동의 1위 창작과비평에 맞먹는 규모다. 김씨는 영남대 영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해 왔다. 녹색평론은 농업공동체와 생태건축, 생명공학 등의 이슈를 다뤄 왔다.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 일본 원전 사태가 주요 이슈다. 이반 일리치, 반다나 시바, 아룬다티 로이, 제임스 러브룩 등 생태‧대안 자본주의 이론들이 이 잡지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박원순, '월가 시위 정신'이 배출한 세계 첫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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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각] "박원순의 승리 2012년 한국을 변화시킬 것"

외교·안보 분야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네트워크인 포린폴리시인포커스(FPIF) 존 페퍼 공동소장이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정신으로 당선된 첫 번째 정치인"이라고 규정했다.

존 페퍼 소장은 9일 FPIP 홈페이지에 올린 '서울 구원'(Seoul Salvation)이란 글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의 승리가 보여준 잠재력이 2012년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원문 바로가기)

평화운동가이기도 한 페퍼 소장은 지난 2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평화군축을 위한 국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서울 구원

지난 주 서울에 가서 보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지명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진보 세력을 조직화했던 감시견이었던 그는 지난 달 말 새로운 서울시장이 됐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라. 박원순은 아마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정신]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첫 번째 정치인일 것이다.

참여연대를 만든 박원순은 한국의 활기 있는 시민사회의 핵심 지도자였다. 20여년간 정치적으로 '성가신 사람'(gadfly)이었던 그는 이제 상당한 권한을 가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복지 이슈에 집중하는 무당파 후보였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의 승리가 보여준 잠재력이 2012년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transform)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나는 10년도 더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참여연대가 아닌 다른 것에 관해 막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한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쉼 없이 일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질 때에나 쉴 수 있다는 농담을 가끔 한다. 게다가 박원순의 매우 침착한 태도는 나를 언제나 놀라게 했다.

참여연대를 나온 후 그가 만든 조직은 기부 문화를 조성하는 아름다운 재단,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였다. 그러한 단체의 이름은 그의 낙관주의적 기질, 그리고 한국의 정치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을 설득해내는데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한국 최고의 철강회사 포스코를 설득해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프로그램에 돈을 대도록 하기도 했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와 시민운동 네트워크 무브온이 그와 유사한 관계를 맺었다고 상상해 보라.

과거 감시견 역할을 했던 그는 이제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를 경영하게 됐다. 서울은도쿄나 멕시코시티, 미국의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크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서울은 거의 50%를 차지한다. (뉴욕은 미국 GDP의 8%, 베이징은 중국 GDP의 3%를 차지한다) 외교 및 국방 정책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박원순은 중간급 크기의 국가 하나를 책임지게 된 셈이다. 한국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불균형적인 비중으로 볼 때 서울시장은 정치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자리다. 서울시장을 했던 이명박이 현재 이 나라의 보수적인 대통령이 된 것을 보라.

그러나 박원순은 정치권 경력이 전무하다. 그는 공공서비스, 특히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the less advantage)에 대한 서비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당선 후 그는 "서울 하늘 아래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출근 첫날 박원순은 모든초등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시행하도록 했다. 계급과 상관없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라는 핵심 공약 사항이었다. 서울시립대 등록금 인하는 그의 선거 운동을 도왔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기쁨(thank-you)을 주었다. 그는 수많은 전시성(high-profile) 시설 공사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고, 대신 공공주택을 더 많이 짓는 것을 선호했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불평등 심화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커지고 전세계로 확산되도록 한 이유로, 한국에서도 엄청난 문제가 되어왔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국민소득과 교육 수준, 평균 수명, 유아 사망률 등을 종합 평가해 매년 내놓는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한국은 올해 세계 15위를 차지했지만, 소득 불평등 지수를 적용한 순위는 32위이다. 두 순위의 격차가 한국보다 큰 나라는 미국과 콜롬비아밖에 없다. 박원순은 이러한 불평등을 비판하고, 상대 후보는 상위 1%에 속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당선됐다. 그는 월스트리트 시위 시대에 권력을 쥐게 된 첫 번째 정치인일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박원순의 당선은 일반적인 예상을 뒤집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권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격파했다. 나경원에게는 힘 있는 지지자들이 있었다.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도 그를 도왔다. 그러한 나경원이 큰 차이로 패한 것은 지지율 약 32%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조롱하는 팟캐스트 방송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다. 야당 민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밀어붙이며 내년을 벼르고 있다. 그러나 박원순의 승리가 곧 민주당의 승리로 해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야권 단일후보가 되기 전 무소속으로 선거에 뛰어들었다. 안철수의 지지는 5%에 불과하던 박원순 지지율을 50% 가까이 끌어 올렸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당들의 뻔한 정책을 거부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박원순은 국가 차원의 정책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대신 서울의 문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는 한미 FTA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고, 현 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을 비판해왔다. 또한 '평화를 바라는 시장 모임'(Mayors for Peace)에 이름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다른 정치인들도 그를 따를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의 대외정책을 거부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다 독립적인 정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오전 관악구 서원동에서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쓰레기 청소를 하고 있다. ⓒ서울시

사회적 위계질서가 깊게 뿌리박혀 있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박원순의 가장 급진적인 정책은 바로 그 직접 실천하고 밑에서 위로 접근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는 시청 직원들에게도 존대를 하고, 하급 직원들의 방에 들어갈 때도 일어서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아침 6시에 환경미화원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청소를 하러 나가기도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는 '모든' 서울시민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민운동가 중에서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박원순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개혁적 기반과 사회적 가치에 있어서의 혁명을 결합하는 첫 번째 정치인이 될 수 있다.



/황준호 기자(번역)

[사설]살아 돌아온 김진숙을 다시 감옥으로 보내지 말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11일자 사설 '[사설]살아 돌아온 김진숙을 다시 감옥으로 보내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309일 고공에서 비바람을 맞은 김진숙은 엊그제 크레인을 내려온 뒤 “여러분이 저를 살렸습니다”라고 했다. 김진숙의 환한 웃음은 보는 이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정리해고는 불가피하고, 해고자의 불행은 개인 탓이며, 노사 문제에 외부세력인 시민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뻔뻔한 주장들이 횡행하는 척박한 연대의 토양에서 그의 웃음은 실로 귀하고도 값진 것이었다. 김진숙의 귀환은 정리해고의 비극을 연대로 극복한 희망의 결말이자, 더 큰 희망을 위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정리해고에 대한 시민 배심원단의 평결로 갈음할 수 있다. 법이 정한 ‘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해고’를 지금처럼 사용자가 ‘정리해고의 자유’로 남용하는 관행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한진중 사태의 타결은 함부로 해고할 수 없도록 제도적 보완을 서두를 때라는 사회적 합의를 상징한다. 해고의 자유와 비정규직 남발로 심화된 노동의 위기가 시민을 일깨우고, 시민은 노사문제의 ‘외부세력’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며 함께 저항했다. 한진중 사태가 정리해고 노동자와 김진숙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시민의 각성과 연대의 자각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동의 위기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에 관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불행을 사회적 비극으로 인정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토대가 바로 연대의 정신이다. 한진중 정리해고 노동자의 고통을 역지사지(易地思之)한 시민의 자발적 희망버스에 색깔론을 들이대고 공권력으로 막으려 한 행태는 연대와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한진중 노사합의의 핵심은 정리해고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잘못이 인정돼 원인이 소멸한 상황에서 잘못을 잘못이라고 했대서 처벌한다는 것은 사회상규에 어긋난다. 김진숙과 희망버스 참가자에 대한 사법처리가 당장 철회되어야 하는 이유다. 김진숙에 대한 영장 신청은 경찰이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뿐이다
이 땅에는 희망버스를 기다리는 곳이 아직도 많다.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이 잇달아 세상을 뜨고,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길거리 농성은 무려 1400일을 훌쩍 넘었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도 해를 바꿔가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웃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삶을 덜 위험하게 하는 것임을 한진중 사태가 증거했다. 한진중과 김진숙, 희망버스가 일궈낸 희망과 연대를 우리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장하는 일이야말로 새로운 희망의 출발일 터이다.

[사설] 진정성 없는 이 대통령의 ‘국회 깜짝방문’ 계획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11일자 사설 '[사설] 진정성 없는 이 대통령의 ‘국회 깜짝방문’ 계획'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방문 문제가 갑자기 정치권의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협조 요청을 위해 국회를 방문하겠다고 밝혔으나 민주당 등 야당이 거절하면서 옥신각신이 벌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둘러싼 소동은 그 자체가 한국 정치의 낙후된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대통령을 굳이 만나지 않겠다는 야당의 태도도 썩 칭찬할 바는 못 된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은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계획이 진정성이 결여된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는 데 있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이 대통령의 거부감은 유명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에 국회 시정연설을 한 이후 단 한 차례도 국회를 방문하지 않았다. 매년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도 국무총리에게 대독시켜왔다. 그런 이 대통령이 갑자기 국회 방문 카드를 꺼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대화와 설득 노력을 부각시켜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여야에 비준안 처리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다. 또 한나라당이 비준안 강행처리에 나설 경우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력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청와대가 “좀더 낮은 자세” 운운하며 국회 방문 계획에 낯간지러운 의미부여를 하고 나선 데서도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애초부터 ‘정치쇼’의 성격이 짙은 만큼 야당 대표들과의 만남이 성사된다고 해도 현 정국의 막힌 물꼬를 트는 데 효험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할 새로운 제안이나 비장의 카드를 준비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되풀이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대통령이 ‘추가협상 불가’ 등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 오히려 여야 간에 진행중인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국회 깜짝방문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다. 에프티에이에 대한 국민의 비판과 우려를 경청하고 우리 주권과 국익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연구하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현시점에서 고민해야 할 일은 야당 대표들과의 만남이 아니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야당 대표들에 대한 설득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뒤 해도 늦지 않다.

2011년 11월 11일 금요일

부처님이 내 자식만 합격시켜달라는 기도 들어줄까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휴심정 2011-11-10일자 기사 '부처님이 내 자식만 합격시켜달라는 기도 들어줄까'를 퍼왔습니다.

이도흠 정의평화불교연대 사무총장

“어느 부처님이 옆집 자식은 대학에 떨어뜨리고 내 자식만 합격시켜달라는 기도를 들어주겠습니까.”

 정의평화불교연대 초대 사무총장을 맡은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53)를  8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인근에서 만났다. 회장들이 있는데 자신이 나서기가 마땅치않다며 인터뷰를 사양하던 그는 정작 입을 열자 거침 없이 말을 쏟아냈다.
먼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코 앞에 두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입시기도객으로 제철 만난 사찰들의 아픈데를 찌르고 나섰다.

그는 지난달 29일 출범한 정의평화불교연대(불교연대) 준비위원장을 맡아 출진을 채비했다. 불교연대 창립 발기인엔 공동회장을 맡은 우희종 서울대 교수와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최연 불교사회연구원장을 비롯 박경준 동국대 교수와 조준호 고려대교수, 유정길 에코붓다 대표 등 재가자 뿐 아니라 금강·미산·본각·법인·지관·진화 스님 등 40~50대 주요 스님들도 함께 했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이기도 한 이 총장은 늦깎이 불자다. 향가를 전공한 그는 향가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불교 세계를 접했을 뿐이다. 10년 전 그의 란 책에 관심을 기울여 그를 의상과 만해연구원의 연구원으로 부른 만해사상실천선양가인 오현 스님(설악산 신흥사 조실)과의 만남이 불교계에 인연이 닿은 계기가 되었다.

대학 때까지 마르크스에 경도됐던 그가 원효에 심취하고 불교의 깊은 매력에 빠져든 것은 사실이지만, ‘맹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교계의 구태의연한 문제점을 질타하며 불교를 새롭게 할 ‘불교유신론’을 제창한 만해 한용운처럼 그는 ‘불교계 현실’에 많은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교리는 중생구제와 대승을 말하면서 소승불교만큼도 중생 구제엔 관심이 없는게 한국불교였지요.“

그는 “1700년 역사를 가진 불교가 100여년 된 기독교에 밀린 것은 중생 구제를 소홀히 한 탓”이라고 본다.
“중생구제 대신 호국불교를 한다는데, 정확히 말하면 나라를 위하는 호국불교가 아니라 소수 권력승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권을 지원하는 호권불교였지요”

그는 “아이러니하게 불교가 권력을 좇을수록 권력이 불교를 우습게 여기기에 권력과 종교는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한국 불교’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기독교는 현대과학과 자본주의를 현실적으로 수용한 지 오래인데, 불교는 아직도 중세의 주술적 사고에 빠져있다. 무지한 중생은 혹세무민할 수 있지만, 깨어있는 지성들은 수용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그는 “문수 스님이 자기 몸을 불살러 불교계를 깨우고, 구제역 발생 이래 천만이 넘는 생명을 포크레인으로 구덩이에 넣어 죽이기만 하는데도, 포크레인 앞에 눕는 불자도 한명 없었고, 그렇다고 그게 문제라고 불교적 논리로 설명하고 대안을 내놓는 불자 한 분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한탄한다. 그는 이를 “불자들이 시대의 문제와 중생의 고통에 대해 고뇌하지 않고 있다는 징표”라고 꼬집었다.

원효 사상에 귀의한 그는 “화해를 설정하되,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이것과 맞서러 싸우면서 화해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최치원이 함양의 태수로 갔을 때 상습침수를 막기 위해 첫해는 일단 둑을 쌓아 막았지만, 상림숲을 조성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지요. 일단 둑을 막은게 쟁(爭)이라면 상림 조성은 화(和)인 셈이지요.”

그처럼 단기적 처방은 물론 불교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 능히 출가자이고 불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10일 수능이 끝나면 불교연대 회원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가난한 불자들을 위한 논술교실’을 열고, 앞으로 불교의 진리를 사회적 실천과 대안 마련으로 이어가기 위한 씽크 탱크도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조선팔경의 하나,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1-11-09일자 기사 '조선팔경의 하나,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를 퍼왔습니다.

여행, 맛집, 문화를 사랑하는 송쓰의 명랑한 하루

거대한 봉우리와 우거진 단풍나무를 자랑하다.


서울에서 4시간이나 차를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백양사의 원래의 이름은 백암사, 정토사였다고 합니다. 16세기에 이르러 이 절을 다시 세운 환양스님이 절에서 매일 ≪법화경≫을 읽고 외우자 하얀 양(백양 : 白羊)들이 불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절에 몰려오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의 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백양사는 절 안에 극락전, 대웅전, 사천왕문 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1,400여년이 넘는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절입니다. 하지만 절 뒤로 백암산의 학봉· 상왕봉 · 사자봉 · 가인봉 등의 가을 단풍의 절경과 겨울 설경 등이 유명해, 백양사 일대는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같이 간 사진사분도 백양사 촬영을 10번 이상 와 보았다고 말하니, 우리들은 멋진 가을단풍을 볼 기대에 가득 차 절에 도착했습니다.


백양사의 들어가는 입구를 조금 걸어가다 보면 한옥으로 만든 전시관이 하나 나옵니다. 감나무 가 빨갛게 익어가는 전시관의 한옥 담장에서 바라본 백학봉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대하기만 합니다. 조금 더 길을 가다보면 백양사를 거쳐간 스님들의 사리와 탑비가 모셔져 있는 담장 안 대문 바깥의 모습만 보아도 벌써 전라도에 많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는 걸 한눈에 알았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의 큰 연못은 어찌나 절경이던지요. 사방으로 나무가 우거진 넓은 연못 위로 단풍 나무가 그늘져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노란 은행잎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런 장관이 펼쳐집니다. 과연 조선팔경 중의 하나요, 가을과 겨울 많은 사진가들과 여행가들의 인기를 받는 절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연못 위 기다랗게 놓인 다리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저리도 정답게 나누는지… 손녀의 재롱을 받아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인자하기만 하네요. 연못을 지나 20여분 걸어가는 길은 수십 수백년도 더 될듯한 고목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한창 가을 단풍물이 들어가는 백양사 가로수길을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에서 살짝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드디어 저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백양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은 얼른 백양사 앞 속세와 절의 경계를 가르는 냇가의 돌다리 위에 서서, 아름다운 백양사의 모습을 담아가기 시작합니다. 올해 단풍은 수분이 적어 많이 타버려 아쉽기는 하지만, 저 멀리 백학봉을 뒤로 하고 단풍의 옷을 입고 있는 백양사 누각의 모습은 어찌나 장관이던지요. 냇가에 은은하게 떨어진 아기단풍들 사이로 빼꼼이 고개를 내민 백양사의 물그림자는 적절하게 조화와 대비를 이루며 멋진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금요일 오후였던 이 날도 백양사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냇가 의자 위에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네요.


절 안으로 들어가니 바위산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더욱 그림같이 보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안에서 공부를 하는 스님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네요. 구석구석 백양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잠깐 물을 마시며 다리를 쉬기도 하고, 대웅전 안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합니다.백양사를 돌아 나오는 길에도 좀 더 단풍이 많이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기에 그리고 이제 겨울에도 멋진 경치인 걸 알았으니 다음의 더 즐거운 여행을 약속하며 못내 섭섭한 발걸음을 따라 돌아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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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경의 하나,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1-11-09일자 기사 '조선팔경의 하나, 단풍이 아름다운 백양사'를 퍼왔습니다.

여행, 맛집, 문화를 사랑하는 송쓰의 명랑한 하루

거대한 봉우리와 우거진 단풍나무를 자랑하다.


서울에서 4시간이나 차를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장성 백양사. 백양사의 원래의 이름은 백암사, 정토사였다고 합니다. 16세기에 이르러 이 절을 다시 세운 환양스님이 절에서 매일 ≪법화경≫을 읽고 외우자 하얀 양(백양 : 白羊)들이 불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절에 몰려오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의 이름을 ‘백양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


백양사는 절 안에 극락전, 대웅전, 사천왕문 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1,400여년이 넘는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절입니다. 하지만 절 뒤로 백암산의 학봉· 상왕봉 · 사자봉 · 가인봉 등의 가을 단풍의 절경과 겨울 설경 등이 유명해, 백양사 일대는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같이 간 사진사분도 백양사 촬영을 10번 이상 와 보았다고 말하니, 우리들은 멋진 가을단풍을 볼 기대에 가득 차 절에 도착했습니다.


백양사의 들어가는 입구를 조금 걸어가다 보면 한옥으로 만든 전시관이 하나 나옵니다. 감나무 가 빨갛게 익어가는 전시관의 한옥 담장에서 바라본 백학봉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대하기만 합니다. 조금 더 길을 가다보면 백양사를 거쳐간 스님들의 사리와 탑비가 모셔져 있는 담장 안 대문 바깥의 모습만 보아도 벌써 전라도에 많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는 걸 한눈에 알았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의 큰 연못은 어찌나 절경이던지요. 사방으로 나무가 우거진 넓은 연못 위로 단풍 나무가 그늘져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노란 은행잎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런 장관이 펼쳐집니다. 과연 조선팔경 중의 하나요, 가을과 겨울 많은 사진가들과 여행가들의 인기를 받는 절로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연못 위 기다랗게 놓인 다리에서 할아버지와 손녀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저리도 정답게 나누는지… 손녀의 재롱을 받아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인자하기만 하네요. 연못을 지나 20여분 걸어가는 길은 수십 수백년도 더 될듯한 고목들이 우거져 있습니다. 한창 가을 단풍물이 들어가는 백양사 가로수길을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에서 살짝 질투를 느끼기도 합니다.


드디어 저 멀리 단풍나무 사이로 백양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은 얼른 백양사 앞 속세와 절의 경계를 가르는 냇가의 돌다리 위에 서서, 아름다운 백양사의 모습을 담아가기 시작합니다. 올해 단풍은 수분이 적어 많이 타버려 아쉽기는 하지만, 저 멀리 백학봉을 뒤로 하고 단풍의 옷을 입고 있는 백양사 누각의 모습은 어찌나 장관이던지요. 냇가에 은은하게 떨어진 아기단풍들 사이로 빼꼼이 고개를 내민 백양사의 물그림자는 적절하게 조화와 대비를 이루며 멋진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금요일 오후였던 이 날도 백양사의 아름다운 단풍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냇가 의자 위에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네요.


절 안으로 들어가니 바위산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더욱 그림같이 보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안에서 공부를 하는 스님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네요. 구석구석 백양사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잠깐 물을 마시며 다리를 쉬기도 하고, 대웅전 안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합니다.백양사를 돌아 나오는 길에도 좀 더 단풍이 많이 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기에 그리고 이제 겨울에도 멋진 경치인 걸 알았으니 다음의 더 즐거운 여행을 약속하며 못내 섭섭한 발걸음을 따라 돌아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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