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일 금요일

내성천, 은어에게 길을 터주자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1.09.02자 '내성천, 은어에게 길을 터주자'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다큐멘터리사진가. 진보신당 정책부의장, 프레시안 기획위원을 맡고 있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 들지만, 기실 홀로 오지를 떠도는 일을 좋아한다. <흐르는 강물 처럼>, <레닌이 있는 풍경>,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사진가로 사는 법> 등을 쓰고 <중국 1997~2006>, <이상한 숲, DMZ> 등을 전시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inpho 를 운영한다

내성천이 발원하는 오전천이다.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옥돌봉 샘물에서 흘러나와 계곡을 이룬다. 어떤 이는 선달산 생달천을 발원이라 하지만 두 천이 물야 저수지로 모여들어 내성천을 이루니 발원지가 어디인가는 내성천에게 물어봐야 겠다. 작년 4대강을 돌아다니다 지금은 내성천을 주로 기록하고 있다. 몇차례 답사팀과 어울려 영주에서 예천까지 중하류를 다녔는데, 사진가의 호기심인지 강의 최상류를 보고 싶었다. 뭔가 태고의 신비라도 느껴볼 심산이었을까?

옥돌봉 남쪽 지봉인 1152봉에서 발원한 오전천 계곡이다. 이 곳에 그 유명한 오전 약수탕이 있다. 오전 약수는 혀끝을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 탄산수다. 조선시대에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되었다 전해지며,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이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약수가 솟는 샘터 바위에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는 뜻의 주세붕의 휘호가 남아 있다. 

깊은 산을 흐르는 내성천은 좁고 가파르고 맑다. 계곡 주변에는 낙엽송과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다. 내가 기대한 내성천의 상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름다운 물과 숲이다.

물야 저수지의 풍경이다. 오전천과 선달산 생달천이 만난다. 2000년 초반에 완공된 사력댐으로 봉화지역 식수와 홍수예방을 위해 만들어졌다. 여기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내성천이니 인간이 만든 발원지라 할만 하다.

물야 저수지 바로 밑 첫 마을인 오전리 장터마을의 내성천 모습이다. 뜨거운 여름날 무궁화가 활짝 폈다. 이번 답사는 혼자다. 봉화읍에서 새벽 6시반 버스를 타고 오전 약수탕에 도착해 걸어서 다시 봉화읍까지 가볼 생각이다. GPS로 보건데 15km가 조금 넘을 듯 하다. 사진 취재하며 천천히 걸으면 5시간이 될 듯 한데, 이 뙤약볕이 문제다.

저수지 부터 물야면을 흐르는 내성천은 완만하다. 양쪽으로 논과 사과밭이 늘어서 있고 천변은 여름 잡풀로 무성하다. 그런데 계속 걷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보’다. 어림잡아도 200m에 하나 꼴로 있다. 이 보들은 농업용수를 끌어오거나 수위 조절을 위해 만든 것들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들이 요즘도 사용되나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저 위에 어마어마하게 물야 저수지를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봉화군에서 사용하는 생활용수는 지난 세기에 비해 600% 늘어지만 농업용수는 30%로 줄었다. 농촌인구가 늘어난 것이 아니니 물소비는 엄청 늘었고 농사는 오히려 줄어 든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 만들어 놓았던 이러저러한 보들은 그대로 있다. 깨지고 방치되고 무너졌다. 게다가 저렇게 천변 바로 가까이 지어지는 펜션은 또 뭔가?

보 아래는 이렇게 물이 썩어간다. 폐기된 보들이 철거 되지 않고 하천에 방치되어 하천 생태통로의 단절, 수질 악화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야기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8,000개의 보가 있고 매년 용도폐기 되는 보가 100기가 넘는다. 이러한 보들은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보에 비해 오래전 선조들이 만들었을 법한 이 보는 어떤가. 생태적으로도 수질면에서도 좋고, 운치도 있

내성천에 살고 있는 어종은 미유기, 수수미꾸리, 다묵장어, 흰수마자 등 8과 23속 29종이며, 한국 고유종은 11종이다. 내성천은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흰수마자 서식지다. 물론 제일 흔한 것이 피래미들이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놈들이 많아 민물 매운탕으로 그만이다. 봉화에서는 피래미를 갈아 매운탕을 만드는데 그 맛이 추어탕 같다. 보호종은 않되겠지만 내성천이 물고기로 가득해 싼 값에 매운탕을 즐긴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나.

걷는 것에 이력이 난 뚜벅이 사진가도 뜨거운 태양에 견디다 못해 간이 정류장으로 피해 들어갔다. 건물 뒷편으로 내성천이 흐르고 벌레 소리 개구리 울음소리가 적막한 농촌을 흐른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조류는 100종이 넘는다. 오리와 백로가 한가하게 피래미를 잡고 있다. 작아서 보이지 않겠지만 노란 물새도 함께 사냥을 하고 있다.

사람도 내성천에 기대어 산다. 맑은 물에서 찰지게 자라는 다슬기다. 이곳 사람들은 고동 또는 고디라고 한다. 요즘 ‘올갱이국’이 서울서도 유행인데 이말은 충청도 말이다.

봉화 읍내 내성천 변에 세워진 은어의 상이다. 은어는 은어과 은어속의 한종뿐인 물고기로 동북아시아가 원산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태어났던 은어 새끼들은 바다로 갔다가 다시 낙동강을 거슬러 이곳까지 돌아왔을 것이다. 봉화에서는 매년 내성천 은어 축제가 열린다.

내성천 변에서 은어 플라이 낚시 하는 사내다. <흐르는 강물처럼>의 브래드 피트 처럼은 못 찍었다. 아무래도 비연출은 한계가 있나 보다. 전에는 은어가 올라왔지만 지금은 이렇게 내륙까지 올리 없다. 이미 하구뚝, 댐, 4대강 보(댐)가 있는데 무슨 재주로 이곳까지 오겠는가. 그런데도 은어를 잡는다.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은어잡기 축제 때 타지에서 공수되어 온 은어들이 도망을 가 한해동안 주변에서 살아간다. 수명이 일년이니 내년에는 또 다른 놈들이 이곳에서 플라이 낚시꾼들을 기다릴 것이다. 내성천의 은어 플라이 낚시는 그래서 슬펐다. 오전 약수탕에서 봉화읍까지 도보 답사는 10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앞으로 영주를 지나 예천 삼강까지 모두 도보로 답사 해볼 생각인데, 만만찮은 길이 될 듯 하다. 그것을 또 계절 별로 해야 한다. 하지만 내성천의 풍광은 이제 두해 남짓 남았다. 2012년 말이면 영주댐이 완성되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 질 것이다. 상류의 봉화도 하류의 예천도 옛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볼 수 없어 내성천을 살리기 위한 순례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다. 먼 훗날 댐을 폭파하고 보를 걷어내 다시 강을 살리자고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은어에게도 고향으로 돌아갈 길이 필요하지 않겠나?

예수가 목사 안반가워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휴심정 2011. 08. 31자글 '예수가 목사 안반가워한다'를 퍼왔습니다.

서울신학대 유석성 총장


“요즘은 천국에 목사들이 들어가도 예수님이 반기지않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서울신학대 유석성(61) 총장이 31일 개교100돌을 맞아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목사들이 예수님의 자리까지 뺏으려들까봐 예수님이 일어나지않는다”는 세간의 유머를 전하며 목사들의 교권욕을 비판하고 나섰다.

신학대들이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입김이 절대적인 교단에 예속돼 있어 신학자들이 목회자들과 교단의 눈치를 보며 학문적 소신 발언을 거의 하지 못하는 한국 개신교 풍토에서 이날 유 총장의 발언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유 총장은 “신앙인들이 분열과 불행의 주체가 되는 것은 교권에 대한 욕심을 갖기 때문”이라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섬김을 본받아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하지만 한국교회는 배타적이고, 심지어 교회를 향한 교회 밖의 비판에 전투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 정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사회적으로 지탄 받는 일부 인사들이 자기의 잘못을 지켜줄 안전판이나 도피처로 삼고자 하고, 예수 이름을 팔아서 이기심을 채우려 정치를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질타했다.

독일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사형당한 천재신학자 ‘본회퍼’를 근현대 신학계의 거봉인 볼트만 교수의 지도로 7년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는 유 총장은 “기독교인이 90% 이상인 독일에서 어떻게 600만명 이상을 살육하는데 기독교인들이 동참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성찰한 결과. 사회 윤리나 정치의식이 결여된 채 영혼구원만 받으면 된다는 내적 망명 상태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난 다음부터 신앙을 사적인 것으로 만들지않고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신학이 등장했다”면서 “한국교회는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만 주장하지, 천당을 가기까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치지않아 사회 윤리와 도덕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신앙심이 좋다는 사람들일수록 자기 중심적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을 무수히 봐왔다”면서 “예수는 자기만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존재였기에 자기 희생과 봉사의 십자가정신이야말로 한국 교회를 살릴 본질”이라고 말했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 도가적 치성을 드리듯 자식 대학교 합격시켜주고, 돈 많이 벌게해달라는 게 기도가 아니라, 기도란 자기를 바라보는, 즉 자기 성찰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유 총장은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맹신적 반지성주의를 질타했다. 그는 “한국교회 선교 초기 주로 3류 선교사들이 왔고, 일제 식민지에 편승해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과 역활을 거세시키는 반지성적이고, 신앙적 우민화를 시도한 영향으로 잘못된 풍토가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불신을 낳고 있는 목회자의 문제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의 문제이기도 하다”면서 “서울신대에서는 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기술과 방법론을 전수하는 편협한 교육을 봉사하고 실천하는 목회자 양성 교육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이 갖춰야할 교양을 갖추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미 지난해 2학기부터 매주 금요일 인문학 강좌를 개설해 전교생이 필수 수강케 했다”면서 “실천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기에 대학생 한명이 한가지 봉사를 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유 총장은 “신학교육이 이론과 실제의 분리에서 문제가 파생되고 있어, 현장 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해 기독교농촌봉사단, 여성인권위원회, 외국인노동자단체 등 엔지오에서 경험도 하도록 하고, 신학대학 커리큘럼을 지성중심에서 인격 형성 중심으로 대폭 수정 중”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부천에 자리잡은 서울신학대는 1911년 서울 무교동에 성서학원으로 개교해 1959년 대학으로 인가를 받은 성결교단 소속 신학교로 4천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독일 전문가, “4대강 사업은 ‘미친 짓’”


이글은 시사인 2011.09.02자 기사 독일 전문가, “4대강 사업은 ‘미친 짓’”에서 퍼왔습니다.
독일의 하천 전문가 베른하르트 교수(사진)는 4대강 사업에 대해 ‘끔찍’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는 4대강 사업은 독일의 라인-다뉴브 운하보다 더 잘못된 일이다.

펜이 두 개라 다행이었다.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 교수(70·독일 카를스루에 대학 토목공학과)는 번번이 기자의 취재 노트와 펜을 끌어가 그림을 그렸다. 보가 어떻게 물을 썩게 하는지, 원리와 구조를 수식까지 동원해 단번에 그려냈다. 2시간 인터뷰를 마치니 11개 스케치가 남았다.

지난 8월13일, 경북 문경시 낙동강 35공구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사 현장에서 급류를 목격한 그가 급한 마음에 나뭇가지로 모랫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준설 때문에 유속이 빨라지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베른하르트 교수가 8월11~20일 민주당 등 4개 야당 의원들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일정 중 나흘은 남한강과 낙동강 공사 현장 20여 군데를 둘러보는 강행군이었다. 40여 년간 하천 전문가로 활동하며, 파나마 운하에 정책 조언을 하는 등 홍수·운하와 관련한 국제 컨설팅을 주로 해온 그에게 4대강 사업은 비용만 많이 들고(cost), 끔찍하며(terrible), 미친 짓(crazy)이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는 이들 단어를 세 번 이상 입에 올렸다.




ⓒ시사IN 조우혜 독일의 하천 전문가 베른하르트 교수
지난 5월, 4대강 사업을 칭찬한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비판했다. 계기가 뭔가?
한국이 녹색 뉴딜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추진한다는 말에 관심을 가졌다. 하천 복원사업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다뉴브 강 국제 심포지엄에서 구체 정보를 접하고 의문이 들더라. 어떻게 봐도 하천 복원이 아닐뿐더러 하천 정비로도 분류할 수 없었다. 탄소 의존도와 생태계 파괴를 줄이려는 UNEP 글로벌녹색 뉴딜 목표와도 어긋났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 ‘Unbelievable(못 믿겠다)’을 연발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모든 게 완벽한데 뭘 정비한다는 건지 모르겠더라. 한국 강의 경관과 사람들은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정부 프로젝트는 끔찍했다. 아름답고다양성이 풍부한 강이 준설 때문에 파헤쳐져 있었다. 완만하던 경사면이 급격해지고 자연제방 등이 사라졌다. 호수는 다시 만들 수 있지만, 강은 다시 복원할 수 없다. 건설이 끝나면 생태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물 확보, 수질 개선, 홍수 해결을 공사 이유로 들던데 전문가로서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운하 건설과 다르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런데 당신은 4대강 사업을 계속 운하(canal) 사업으로 표현한다.
독일의 마인-다뉴브 운하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연쇄적인 보 건설이 운하의 핵심이다. 4대강도 다르지 않다. 강바닥의 형태도 운하처럼 깊고 가파르다. 독일 운하는 완전한 인공 수로다.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구간이 없고 인공 펌프로 움직인다. 운하 건설은 독일 역사에서 가장 비경제적이고 어리석은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영장’이라고 조롱받는다. 생태계도 엉망이 됐지만 운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끝도 없이 들어간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사업으로 배를 불린 건설업자의 돈이 아니라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것이다.
독일의 운하사업보다 한국의 4대강 공사가 더 최악이라고 평가했던데.
크고 살아 있는 강을 파괴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마인-다뉴브 강 운하는 이미 파괴된 작은 강을 깎고 파내 키운 거다. 본류의 살아 있는 강과 비교할 순 없다. 무엇보다 공사 계획기간이 짧은 게 걱정스럽다. 건설을 제대로 하려면 계획에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과거에 하천 정비사업을 해본 일이 있어서 안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그 길을 접었다(독일은 운하 171㎞를 건설하는 데 32년이 걸렸다. 634㎞ 구간의 4대강 사업은 2년 내 완공을 목표로 한다).

독일에서 운하 건설 당시 문제점이 예상됐다면 왜 막지 않았나?
당연히 주민들이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바이에른 주 수상의 의지가 강했다. 소속 정당이 다수당이었고 안건이 통과됐다. 정치 프로젝트였다. 수상과 건설업자들의 커넥션을 두고 말이 많았다.
보 건설을 막아낸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
프랑스와 협약까지 맺었던 보 건설사업을 1976년 독일 시민의 힘으로 중지시켰다(프랑스는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에 수력발전 등으로 이익을 꾀하기 위해 운하 건설을 제안했다). 내가 사는 카를스루에에서 10㎞ 정도 떨어진 나우/노이부르크 지역에 보가 건설될 예정이었다. 바로 전에 건설됐던 이페츠하임 보 때문에 자연 저류지가 없어져 홍수 피해가 심각했다. 전문가 자격으로 공청회에 참석해 보 설치 이듬해부터 홍수가 잦아졌다는 걸 수치로 보여줬다. 무엇보다 주민의 반대가 심하고 강렬해 정부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는 강 개발을 제한하는 기준이 있나?
유럽연합의 물관리지침(Water Framework Directive)이 있다. 강의 현재 조건과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계획도 실행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그 지침 아래 각국이 보 설치를 지양하거나 없애는 추세다. 1990년대 말, 프랑스 루아르 강 유역에서는 보 2개가 제거됐다. 오스트리아 하인스부르크도 보 건설을 중지했다. 환경부가 연방정부 산하에 환경위원회를 만들어 전문가·주민 간 토론회를 마련하는 등 중재자 구실을 적극 했다. 환경부는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환경부가 4대강 사업에서 오히려 조력자 노릇을 한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4대강시민조사단 제공 베른하르트 교수(오른쪽 세 번째)가 남한강 금당천의 ‘준설로 인한 역행침식’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독일에서는 하천을 다시 자연 상태로 되돌리려는 재자연화 작업이 활발하다고 들었다. 지난 100여 년간 하천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가 방향이 잘못된 걸 깨닫고 앞으로 100년은 강 복원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최근 복원된 뮌헨 이자르 강이 대표적이다. 다뉴브 강 인근에도 인공 벽을 없애고 수변 국립공원을 만들었다.

라인 강을 4대강의 미래라 일컫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뭔가?
공사가 90% 진행됐다고 들었다. 이미 늦었다. 하지만 라인 강처럼 전 구간이 인공적인 건 아니다. 아직 강의 흐름이 남아 있다. 일단 보의 수문을 열어두고 충분히 토론을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4대강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하려 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독일에 돌아가면 이번 현장 답사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다. 그거라도 참고해주길 바란다.

‘라인 강의 비극’은 4대강의 미래


이글은 시사인 2011.09.02자 기사 "‘라인 강의 비극’은 4대강의 미래"을 퍼왔습니다.
하천 전문가와 시민단체 활동가 21명이 ‘재자연화’ 작업 중인 라인 강을 다녀왔다. 이들은 ‘인공 보 설치→생태계 파괴 및 홍수 피해→재자연화 공사’로 이어진 라인 강의 전철을 4대강이 밟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라인 강의 기적. 그 라인 강이었다. 지난 7월2일, 한국인 21명이 라인 강 이페츠하임 보 앞에 섰다. 수면은 고요했지만 모래와 자갈을 실은 배가 강 한복판에 모래를 붓고 있었다. 1970년대 라인 강 상류에 세워진 마지막 갑문이다. 운하를 만들 목적으로 설치되었지만 이페츠하임을 끝으로 더 이상 보가 세워지지 않았다. 홍수 피해가 잦았기 때문이다. 보 일대 주민들에게는 라인 강의 기적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지난 6월28일~7월5일 환경·생태·사회과학 분야 교수들과 환경운동가, 종교지도자 등 21인이 라인 강 일대와 탈핵 생태마을 등을 다녀왔다. 수십 년간 하천사업이 활발했던 독일이, 인공 수로가 된 강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보기 위함이었다.

라인 강 상류에서는 하천 전문가인 베른하르트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 토목공학과 교수가 이들을 직접 안내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는 라인 강 추가 보 건설을 막은 주인공이기도 하다(58~59쪽 딸린 기사 참조). 


ⓒ시사IN 조우혜 8월16일 ‘독일 환경정책 탐방 결과 보고대회’에서 시민활동가 김영태씨(왼쪽)가 답사 기록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이 라인 강을 찾은 날. 보 일대에는 토사를 실은 배가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었다. 자연 모래가 부족해서였다. 양기석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는 “건강한 강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모래와 자갈을 뿌리고 있다고 들었다. 물고기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생태계에 모래를 되돌려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보 주변에는 홍수 시 인공으로 물을 저장하는 범람원도 만들어져 있었다. 범람원은 홍수 때마다 넘친 물을 머금었다가 강물이 줄 때 다시 강으로 물을 되돌려주는 구실을 한다. 더 큰 침수를 막는 것이다. 라인 강 근처에도 부러 작은 물길을 내 범람원을 만들었다.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보 때문에 강수위가 높아진 지역은 지하수가 넘치게 되기 때문에 강변의 농경지를 범람원으로 지정해 홍수가 오면 그곳으로 물을 빼도록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재자연화 핵심은 범람원·저류지 건설

“일반 사업가였는데 4대강 사업이 나를 독일까지 불러들였다”라고 소회를 전한 김영태 상주지역 시민활동가도 이번 기회에 강의 복원에 대해 배웠다. 강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재자연화’의 핵심이 보 일대에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범람원이나 저류지를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대강 공사 완공을 눈앞에 둔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라인 강을 둘러본 최서연 원불교 환경연대 교무는 독일이 강을 복원하면서 세대 간 형평성을 든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현 세대가 누리는 이익이 후대에도 보장되어야 공평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더라는 것이다. 

최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이른바 ‘4대강 사업중단 특별법’을 발의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4대강 사업 검증·복원위원회를 설치한 다음 위원회가 세운 계획에 따라 4대강 사업을 중단하고 인공 구조물 등을 해체하자는 내용이다. 독일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21명은 지난 8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보고회에서 “라인 강에서 4대강의 미래를 보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말마따나 4대강이 인공 보 설치→홍수 피해 증대 및 생태계 파괴→재자연화 공사로 이어진 라인 강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공사 중단의 적실성을 따지는 것이 세대 간 형평성에 부합하는 일일지 모른다.

‘콘크리트 코르셋’ 벗어던진 독일 강들


이글은 시사인 2011.09.02자 기사 "‘콘크리트 코르셋’ 벗어던진 독일 강들"을 퍼왔습니다.
130여 년간 콘크리트와 석벽에 갇혀 있던 이자르 강 뮌헨 시 8km 구간이 ‘자연’을 되찾았다. 11년에 걸친 자연화 복원공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후라! ‘콘크리트 코르셋’으로부터 강이 해방됐다!” “빼앗겼던 이자르 강의 옛 모습이 되살아났다.” “강이 노래하는 생명의 여울물 소리가 들린다.” “‘물의 아우토반’에서 자연 하천으로 되돌아왔다.”

지난 130여 년 동안 콘크리트와 석벽에 갇혀 있던 이자르(Isar) 강의 뮌헨 시 8㎞ 구간 수로가 11년 동안의 긴 자연화 복원공사를 마치고 자연 하천으로 되돌아온 8월6일, 강변에 모인 뮌헨 시민 6만여 명이 쏟아낸 탄성이다.

이날 이자르 강변에서는 자연화 복원공사를 자축하는 성대한 축하행사가 열렸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직선화되어 운하나 다름없던 강의 물줄기가 구불구불 흐르는 자연 하천의 옛 모습을 되찾은 기쁨에 젖었다. 이들은 밤늦도록 강변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강이 들려주는 생명의 노래인 여울물 소리에 흥겨워했다.


복원공사로 다시 살아난 이자르 강의 자연스러운 물줄기와 넓어진 둔치.
강 되살리기 공사의 모범 사례

‘이자르-재자연화’(Isar-Renaturierung)라 불리는 이자르 강 복원공사 계획에 따라 뮌헨 시내를 흐르는 강 구간 공사가 완료된 뒤 이자르 강은 옛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물이 흐르는 강 중앙에 모래섬과 자갈섬이 새로 생기고 강변의 석조 계단과 산책길, 잔디밭과 모래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긴 세월 인공 구조물인 돌과 콘크리트로 조성된 강둑에 둘러싸여 직선화됐던 강이 ‘콘크리트 코르셋’에서 완전히 풀려나게 된 셈이다. 최종 구간 공사가 마무리된 강은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강물이 마치 시골 들판과 산골을 흐르는 물길 같았다.

이자르 강 재자연화 공사 모습.

마티아스 융게 뮌헨 수자원관리국 대변인은 “130여 년 동안 홍수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강바닥을 준설하고 강을 직선화한 뒤 강변을 콘크리트로 발라놓았던 이자르 강이 이전으로 복원된 것이 바로 이 모습이다”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는 또 “(강을 복원함으로써) 환경보호는 물론 홍수도 막고 수질도 개선하며 시민들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도 제공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자르 강 재자연화 공사는 강을 되살리는 복원공사의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뮌헨 시내를 관류하는 강 길이가 총 8㎞에 이르는데, 이 중 6㎞는 일찍이 복원공사를 완료했고 나머지 2㎞에 대한 공사가 올여름 최종 마무리된 것이다. 이곳은 뮌헨 시 중간 지대인 그로스헤세로헤어 철교와 도이체스 박물관 사이 구간에 해당한다. 휴식을 즐기기에 최적지라는 평가를 듣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자르 강 뮌헨 구간 재자연화 공사는 올해 들어 속도를 내 지난 7월 말 공사가 거의 마무리됐다. 8㎞ 구간에 든 공사비는 총 3500만 유로(약 525억원)로 주 정부가 55%, 뮌헨 시가 45%를 부담했다. 1988년 뮌헨 시의회 결의로 공사 계획이 확정된 뒤 긴 조사와 준비 기간을 거쳐 1995년에 최종 성안됐다. 공사가 본격 시작된 것은 2000년이다.


‘물의 아우토반’ 없애는 데 11년 걸린 까닭

‘이자르 플랜’이라고도 불린 강 복원공사는 우선 홍수의 원인이던 직선화된 물줄기를 개선하는 데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그동안 빈번한 준설로 강바닥이 깊이 파인 곳을 자갈과 흙으로 메우고, 강 기슭을 강화한 콘크리트와 돌벽을 허문 다음 평평한 돌과 자갈, 모래를 깔아 강변 침식을 방지했다. 

도나우·엘베·베저 강 등도 복원 공사 중이다.
  도나우·엘베·베저 강 등도 복원 공사 중이다. 강 가운데 곳곳에 돌을 깔아 빠른 물살을 여울물로 순화하고 강변과 강 중간에 모래톱과 자갈섬을 만들어 물의 흐름을 지그재그로 변형해 물살을 감속시켰다. 종전에 수로 형태였던 ‘물의 아우토반’을 물줄기가 굽이도는 자연 하천으로 되살린 것이다. 강변 잔디밭은 낮게 다듬고 강폭을 늘려 홍수 예방도 꾀했다. 강변에 돌계단과 모래사장을 만들어 시민들이 여가에 활용할 생활 공간도 확대했다. 이 때문에 8㎞라는 짧은 구간 공사를 하는 데 무려 11년이나 걸렸다. 그만큼 철저하게 작업했다.

다니엘라 샤우푸스 프로젝트 담당 책임자는 이자르 강 플랜의 효과를 “홍수 예방과 자연 복원 및 보호,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공사 기간에 생태계 복원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바이에른 낚시연맹 회장인 세바스찬 하우프란드 박사는 “현재 총 26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어 이자르 강은 낚시꾼들의 낙원이 됐다”라며 즐거워했다. 또한 철새가 강에 되돌아오면서 생명과 활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자르 강 복원공사 효과에 신바람이 난 뮌헨 시는 강변에 새로운 카페와 맥주가든, 생물관·전시장·공연장, 낚시터와 수영장, 물놀이장 등 각종 편의 시설을 만들어 시민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시 당국은 내친김에 이자르 강이 흐르는 뮌헨 구간의 북부 구역에 대해서도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재자연화 공사를 계속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이자르 강은 오스트리아 ‘티롤 알프스’의 카르벤델에서 발원해 독일의 레겐스부르크에서 도나우 강으로 합류하는 295㎞ 길이의 강으로, 이 중 263㎞가 독일 땅을 흐른다. 물살이 빠르고 계절에 따라 수량 증감이 심해 장마 때 홍수가 잦자 1888년부터 강둑 공사를 시작했다. 1910~1920년에는 콘크리트 보를 설치하고 강바닥을 파는 공사를 해 강을 직선화 수로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유속이 빨라지면서 강바닥의 흙과 모래가 쓸려 내려가고 지하수 유속이 덩달아 세져 강변의 식물·농산물이 고사하는 등 피해가 늘고 홍수가 잦아졌다. 늦게서야 그 원인이 강을 직선화한 데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130여 년이 지난 2000년부터 뮌헨을 통과하는 구간의 강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재자연화 공사를 시작했다. 뮌헨 수자원관리국의 클라우스 아르체트 국장은 ‘130여 년 동안 강에 채워졌던 코르셋을 풀어준 공사’라고 비유한다.

이자르 강처럼 현재 독일에서 자연 복원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강은 도나우·엘베·베저 강 등 여러 곳에 이른다. 유럽연합(EU)이 2000년부터 ‘수자원 관리지침’을 회원 국가에 내려 모든 강의 자연화 복원 및 개량공사를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준설로 강바닥이 깊어지면서 강의 유속이 빨라지고 지하수 유속 또한 덩달아 세져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강의 직선화 공사로 인해 홍수를 막기는커녕 조장했던 경험을 통해 ‘강물은 자연스레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뮌헨 시는 이자르 강변(위)에 각종 편의 시설을 만들어 시민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이처럼 뼈저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복원공사이기 때문에 이자르 강의 재자연화는 외국에서 강 복원공사를 배우러 오는 모범 사례가 됐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강 관리국이 이자르 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8월6일 공사 완료 축제에 로스앤젤레스 강 관리국이 축하객을 파견했다. 세계 각지의 강 공사 전문가들이 뮌헨을 찾는 것은 이처럼 이자르 강의 역사를 ‘강 살리기’의 반면교사로 삼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강 죽이는 ‘거꾸로 공사’

한국의 4대강 사업 책임자들 또한 뮌헨을 찾는다. 하지만 4대강 사업과 이자르 강 복원공사는 접근 방식에 근본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벌이는 4대강 사업은 강바닥을 파헤치고 강을 직선화하며, 보를 만들고 강변을 시멘트와 석축으로 쌓아 강둑을 높임으로써 수질을 개선하고 물을 저장해 홍수를 막겠다는 취지의 공사다. 이자르 강에서는 8㎞에 불과한 구간을 원상으로 되돌려놓는 데 무려 11년이 걸렸다. 634㎞에 이르는 4대강 공사는 2년 안에 공사를 마무리 짓겠다며 속도전을 펴는 중이다.

이자르 강 재자연화 공사는 130여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강바닥의 과도한 준설은 강에 치명적인 후유증을 안겨주며 콘크리트나 석벽은 홍수를 방지한다는 ‘치장’에 불과하고 오히려 홍수를 더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인공 구조물의 굴레로부터 강을 ‘해방’시켜 원상으로 되돌려준 사업이다. 하지만 4대강 공사는 이자르 강과는 반대로 자연을 파헤쳐 인위적으로 강에 구조물을 덧씌우는 ‘거꾸로 공사’이다.

강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두어야 수질도 좋아지고 홍수도 방지할 수 있다. 그래야 생명이 살아난다는 사실을 이자르 강은 보여준다. 이자르 강변에 서면 강을 살리는 길이 어느 방향인지 보인다.

2011년 9월 1일 목요일

베른하르트 교수 향한 참담한 반박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의  2011.09.01자 기사를 퍼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독일로 이주해 36년째 살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아 문화재 실측조사를 했다. 독일어로 건축사 전공책을, 한국어로 에세이(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썼다.

4대강사업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독일 문서를 번역하는 비영리 인터넷 소모임 “번역연대” 회원이 쓴 글입니다.
진정 <독일 베른하르트 교수의 4대강 발언은 사실 왜곡>인가?
지난 8월 19일 대한민국 국정홍보 사이트인 ‘공감 코리아’에 독일의 베른하르트 교수를 반박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은 국가의 공식기관이 사용하는 용어치고는 참으로 진중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물씬 풍기는 ‘..4대강 발언 ..사실왜곡’.
제목보다 더 참담한 것은 본문 내용이다. 그 반박 논리가 참으로 허술하고도 빈약하여 급조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독일 베른하르트 교수의 4대강 발언은 사실 왜곡
국토해양부 4대강추진본부는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 독일 칼스루헤대학 교수가 4대강사업과 관련해 발표한 성명에 대해 사실 왜곡이라며 19일 해명자료를 냈다.
4대강추진본부는 베른하르트 교수가 독일에서는 보를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라인강 상류 165km(바젤~이훼츠하임)에는 이미 치수용 보가 10개나 설치돼 있다며 4대강 사업은 2000km 본류 구간에 16개의 보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독일 수로청과 수자원기술연구소에 따르면 보가 완성된 1977년부터 홍수예방 효과를 보고 있으며 보 철거사례나 계획도 없다고 추진본부는 주장했다.
추진본부는 독일은 최근에 보가 설치되지 않은 하류 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빈발하자 보 상류지역 추가 준설과 하천 폭을 넓히는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다며 더구나 환경영향평가 후 수자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보 설치를 권장하고 있으며 4대강과 같이 어도설치 등의 생태보전 대책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진본부는 국가마다 기후나 하천 특성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에서 정책을 수립할 때 국내외 사례를 참고하되 나라에 맞는 고유한 정책을 채택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독일과 유럽에서는 이러니 한국도 그래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수긍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우가 연중 일정한 독일과 집중폭우가 일상화된 우리나라의 기후상황은 상이라며, 하천 특성도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라인강은 전 구간의 수심·경사·하천폭이 일정하고 유속이 빨라 하천 유량의 연중 변동 폭을 나타내는 하상계수가 1:18에 불과하지만 4대강은 연중 유량 변동이 심하고 하상계수가 한강 1:90, 낙동강 1:260이며 유속도 느려 퇴적물이 계속 쌓이고 있어 준설의 필요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강 주변 제방을 획일적으로 콘크리트로 조성하는 건 학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베른하르트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은 전체 구간의 6%만 콘크리트를 사용했고 나머지 94%는 나무나 풀 등 자연형으로 조성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225곳의 수변생태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문화여가공간을 크게 확충하고 삶의 질을 제고하고자 했다며, 이러한 사실은 올 하반기에 사업이 마무리되면 모든 국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추진본부는 또 준설로 물의 흐름이 빨라져 강이 직선화된다는 주장과 관련, 보 건설과 준설로 유속이 다소 느려져 수질이 악화된다고 주장이 있으나, 4대강 사업을 통해 하천변에 방치돼 있던 경작지를 철거하는 등 오염원 유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환경기초시설 확충 및 수질 기준을 강화함에 따라 사업이 완료되면 수질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우렵에서는 준설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2003년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간 준설토에 관한 협의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준설작업에 의해 연간 수천만㎥의 토사가 준설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뿐만 아니라 4대강 반대측에서 생태하천 복원의 모범으로 주장하는 독일 ‘이자르 강’도 복원 과정에서 준설작업을 실시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준설보다 제방을 뒤로 물려 강에 더 많은 공간을 주는 방식으로 홍수를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자연스런 범람을 유도하기 위해 하천 주변 토지를 홍수터로 매입 관리해야 하지만 막대한 재원과 토지 이용의 제한 등을 감안하면 모든 지역에 적용할 수는 없는 방식이며, 특히 우리나라는 4대강 주변에 지가가 비싼 대도시가 인접하고 있어 하천 주변 토지를 일괄적으로 국가가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추진본부는 오랜 기간 자국 하천을 연구하더라도 결과 발표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게 전문가의 자세라며, 베른하르트 교수는 자국과는사정이 크게 다른 우리나라 하천을 며칠간 둘러보고 ‘자연에 대한 강간’ 등의 극단적 단언을 한 것은 우리나라에 대한 결례라고 지적했다.
또한, 4대강 사업에 대해 큰 관심과 기대를 나타내는 해외 전문가도 많이 있는 만큼,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적인 개인의 견해가 마치 독일·유럽의 정론인 것처럼 소개되는 것은 문제라며, 작년에 반대단체에서 초청한 독일의 하천 전문가 헨리히 프레이제가 보와 준설로 홍수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4대강 준설로 6~7월 장마철 홍수위가 낮아져 주변 침수 피해가 크게 저감됐고 지역 주민들도 이를 피부로 느끼고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부는 앞으로 사업 현장을 철저히 모니터링해 혹시나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철저히 보완해 나갈 계획이라며, 본류 사업이 올해 말 마무리되면, 갈수기 물 확보, 수질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수변공간은 지역 주민의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 국토해양부 4대강추진본부 정책총괄팀 02-2110-6081
이 기사를 보고 헛웃음이 나다 못해 한심스럽기까지 한 것은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첫문장에서부터 보이는 오류다.
*1) 4대강추진본부는, 베른하르트 교수가 독일에서는 보를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라인강 상류 165km(바젤~이훼츠하임)에는 이미 치수용 보가 10개나 설치되어 있다며, 4대강 사업은 2,000km 본류 구간에 16개의 보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우선 라인강 본류의 길이는 165km가 아니라 **1,233km**이다. 반면 4대강 본류의 길이는 한강 494km, 낙동강 510km, 금강 398km, 영산강 137km를 합하여 **1,539km**.(*1) 반올림을 해도 2,000km에 못미친다. 이 중 보가 건설되는 사업구간은 한강 69.7km, 낙동강 302.8km, 금강62km, 영산강 50km이다.
따라서 비교를 하려면 비교대상을 같은 기준에 두어야 한다.
라인강 상류 165 : 남한강 70km 또는 라인강 1,233km : 4대강 본류 1,539km 하는 식으로
사기꾼이 아닌 이상, 어떻게 한쪽은 보가 건설된 구간만을 그리고 다른 쪽은 물이 흐르는 전 구간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우기 독일에서 온 독일학자가 현재 독일이 보를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30년 전에 지어진 보를 근거로 삼아 독일이 현재 보를 짓고 있다고 주장하니, 옆에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할 말을 잃게 된다. 내 개인적인 경험 때문일까? 내가 독일에 처음 와 여러 나라 사람들과 섞여 독일어를 배울 때 수업 중 우연히 삼성 핸드폰을 보며 내가 한국제품이라고 하니까 많은 학생들이 삼성이 일본회사라고 우기며 내 말을 안 믿어 주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구 불쾌한 기분이 더해지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두번째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2) 또 독일 수로청과 수자원기술연구소에 따르면 보가 완성된 1977년부터 홍수예방 효과를 보고 있으며 보 철거사례나 계획도 없다고 추진본부는 주장했다.*
베른하르트 교수가 성명서에서도 언급한 아우-노이부르크(Au/Neuburg) 보는 건설이 취소된 보로, 최소된 이유는 라인강 연속보가 완성된 이듬해인 1978년 마지막 보의 바로 아랫지방에 큰 홍수가 났기 때문이다.(*2) 여기에서 마지막 보란 라인강 상류에서 문제를 가장 많이 안고 있는 이페츠하임(Iffezheim)보다.
그런데 이어지는 셋째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앞의 둘째 문장과는 정반대로, 이제 홍수피해가 빈발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3) 추진본부는 독일은 최근에 보가 설치되지 않은 하류 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빈발하자 보 상류지역 추가 준설과 하천 폭을 넓히는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있다며 더구나 환경영향평가 후 수자원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보 설치를 권장하고 있으며 4대강과 같이 어도설치 등의 생태보전 대책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문장이 한심스러운 이유는,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천의 폭을 넓히는 프로젝트가 바로 **라인강 통합프로그램**으로 라인강 주변에 있는 주정부가 주관하는 재자연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3)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는 보 설치로 인한 부작용으로 피해가 속출했기 때문이고 현재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고 있는 돈 먹는 하마이다. 이 프로젝트로 강에서 걷어내는 흙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보로 막혀 더 이상 흘러내려가지 못해 보 상류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진흙과 인체에 치명적인 중금속이 섞인 진창이다. 아래 그림에 진한 흙색으로 표시된 것이 바로 그런 퇴적물이다. 4대강에서와 같은 준설이 아니다.
보가 설치된 후 생기는 하천지형의 변화

다음은 이어지는 문장이다.
*4) 강우가 연중 일정한 독일과 집중폭우가 일상화 된 우리나라의 기후상황은 상이하고 하천 특성도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라인강은 전 구간의 수심·경사·하천폭이 일정하고 유속이 빨라 하천 유량의 연중 변동폭을 나타내는 하상계수가 1:18에 불과하지만, 4대강은 연중 유량 변동이 심하고 하상계수가 한강 1:90, 낙동강 1:260이고 유속도 느려 퇴적물이 계속 쌓이고 있어 준설의 필요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4번째 문장을 작성하신 분이 하천지형이나 수리수문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비전문가라고 확신을 한다. 강의 유량과 유속의 관계는 하천수리학을 배우는 기초과정에서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홍수로 강물이 불면 물의 흐름이 빨라지듯, 유량과 유속은 비례관계에 있다. 강폭이 작은 상류는 유량이 적고 유속도 떨어지는 반면 유량이 많은 하류는 유속도 빠르다.(*4) 라인강의 길이는 한강의 길이보다 3배 가까이 길기 때문에 라인강 하구는 한강 하구보다 물이 많고 빨리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강이건 수심, 경사, 하천폭이, 그리고 유속까지 전구간에서 일정한 강은 없다. 연속보가 있는 라인강 상류도 현재와 같이 직강화되기 전에는 다양한 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인강 상류의 망사상으로 발달한 물길 (자연상태 1828년)


라인강의 수심, 경사, 하천폭이 일정해진 것은 19-20세기에 걸쳐 진행된 하천사업의 결과였다. 그 결과 침식과 홍수라는 피해가 현저해졌고 그래서 이를 경험한 독일의 학자가 우리나라까지 와서 하천사업의 참담한 말로를 전하며 경고하는 것이 아닌가?
라인강 같은 장소에서 직강화된 모습 (1963년)

뿐만 아니라 추진본부는 하상계수와 유속 및 퇴적의 관계에 대해 아주 요상한 설명을 하고 계신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하상계수가 높은 하천은 강바닥에 퇴적물이 쌓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겨울 갈수기 때 유량이 줄어들고 유속이 약할 때 강바닥에 쌓인 퇴적물이 여름 홍수기의 불어난 급류에 의해 다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에 떠 다니는 사진들 중에 강바닥이 허옇게 드러난 강의 사진들을 공개하며 그 흙이 퇴적토이고 때문에 준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강바닥이 들어나는 이유는 수백년간 강바닥에 퇴적물이 쌓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 강물의 이용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강물을 많이 끓어다 쓰면 수위가 낮아지고 특히 갈수기인 겨울철에는 수위가 훨씬 더 떨어져서 수심이 얕은 여울에서는 강바닥이 밖으로 허옇게 들어나게 된다. 이런 강물의 과도한 이용으로 인한 유량의 감소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 도도한 흐름으로 유명한 중국의 황하조차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5)
*5) 강 주변 제방을 획일적으로 콘크리트로 조성하는 것은 학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베른하르트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4대강 사업은 전체 구간의 6%만 콘크리트를 사용했고 나머지 94%는 나무나 풀 등 자연형으로 조성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225곳의 수변생태공원을 조성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문화여가공간을 크게 확충하고 삶의 질을 제고하고자 했다며, 이러한 사실은 올 하반기에 사업이 마무리되면 모든 국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다음의 두 사진은 여주로 흘러드는 남한강 지류인 간매천으로, 같은 장소에서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찍은 것이다.
경기도 여주군 간매천(2010년 10월)

경기도 여주군 간매천(2011년 7월)

이렇게 강변과 강바닥까지 콘크리트로 완전히 피복된 곳은 비단 간매천 만이 아니다. 4대강 본류 강변과 많은 지류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정말 4대강 강변의 94%가 나무와 풀로 조성되었는지 여부는 우리 국민이 지금 당장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모두 장님인 줄 아는지 아니면 글 쓰신 분이 장님이신건지 구분하기가 정말 어렵다.
*6) 추진본부는 또 준설로 물의 흐름이 빨라져 강이 직선화된다는 주장과 관련, 보 건설과 준설로 유속이 다소 느려져 수질이 악화된다고 주장이 있으나, 4대강 사업을 통해 하천변에 방치되어 있던 경작지를 철거하는 등 오염원 유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문장에 이르면 나는 추진본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요점을 파악하는 것도 어렵게 된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머리 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가 건설되면 물흐름이 막혀서 흐름이 늦어진다.
둘째, 보를 지어 물을 가득 모아두면 강이라는 커다란 물그릇 안에 있는 물의 총량은 보로 막기 전보다 더 많아진다. (더우기 준설이 더해지면 물그릇은 더 커진다)
이렇게 변한 강 환경에서 비가 안 오는 계절에는 보로 막힌 부분에 물이 고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큰 비가 와서 강물이 불어나면 강물은 가득 차 오르고 물이 흐르는 속도는 예전보다 훨씬 더 빨라질 것이다. 홍수가 나면 보는 물을 더 이상 가두어 두지 못하고 죄다 흘러보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속은 유량에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에 거센 물살이 강바닥과 강변을 때리며 흐를 것이다. 침식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보로 물이 오염되는 것은 보 바닥에 고인물에서 가라앉는 중금속이 집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왜 뜬금없이 강가의 농지에 책임을 전가하는가? 농지를 없애고 들어서는 유원지에서는 전혀 폐수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 생각하는 것인가?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두물머리와 같은 유기농 농지를 없애고 대신 놀이공원를 세우려는 것이 정말 오염원을 차단하기 위함인가? 경작지 때문에 하천이 오염되는 것이라면 수천 년 동안 농사를 짓고 살아온 우리나라는 이미 옛날에 전국이 오염되었을 것이다.
추진본부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7) 이와 함께 유럽에서는 준설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2003년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간 준설토에 관한 협의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준설작업에 의해 연간 수천 만㎥의 토사가 준설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독일 라인강 상류의 보 상류 바닥에서 독성물질이 축적된 진창이 형성되어 있음이 이미 오래 전에 밝혀져 큰 문제를 일으켰다.(*6) 독일은 강 바닥에 깔린 유독성 토양을 흘려보냄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지만, 강물을 따라 떠 내려온 토양은 결국 라인강 하구에 위치한 네덜란드 항구에 쌓인다는 이유로 네덜란드의 반발이 극심했다. 결국 독일은 유해한 진창을 파내어 차에 실어 운반하는 방법으로 걷어내기로 했다. 대신 네덜란드는 그 토양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수거비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현재 독일과 네덜란드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진상이다.
깊게 준설해 둔 강을 보며 전혀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독일하천 전문가. 누구의 말이 옳은 지는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아무리 눈 가리고 아웅거려도 자연의 법칙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정부라면 정말 좋겠다.
< 참 조 >
*1 국토해양부, 2009년 7월, 4대강살리기 마스터플랜, 13쪽
*2 http://naturfreunde-rastatt.de/rheinauen/rhein/wasserkraftwerke/index.php
*3 라인강 통합 프로그램 (Integriertes Rheinprogramm)
http://www.rp.baden-wuerttemberg.de/servlet/PB/menu/1188090/index.html
*4 권혁재, 1990년, 지형학, 법문사, 88-90쪽
*5 http://schools-wikipedia.org/wp/y/Yellow_River.htm
*6 Badische Zeitung 2005년 1월 5일, (번역http://www.hanamana.de/dul/de/node/238)

[사설] 교육자치 훼손하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 안 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8-31자 사설을 퍼왔습니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론이 정치권과 교육계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는 교육감 및 교육위원 직선제를 폐지하고 광역자치단체장이 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도록 하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도 엊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시장 후보가 교육감 후보를 지명하는 공동등록제(러닝메이트제)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육감 직선제 폐지나 러닝메이트제 도입은 교육자치의 정신을 훼손하고 교육을 정치의 부속물로 전락시킬 위험이 높은 매우 부적절한 발상이다. 교육감 선거를 포함한 모든 직선제 선거는 속성상 다소 잡음이 뒤따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기도 하다. 직선제 폐지 논의를 촉발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정확한 실체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데다, 직선제의 부작용이 드러났다고 해도 적절히 보완해 나가면 될 일이다. 하나의 사건을 침소봉대해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것은 쇠뿔을 바로잡는다고 소를 죽이는 꼴이다.
정부여당이 직선제 폐지의 근거로 내세우는 고비용 문제부터 그렇다. 후보자의 재정부담을 줄여줄 방안을 연구할 필요는 있지만 비용 문제가 직선제 폐지의 이유는 될 수 없다. 선거공영제를 더욱 확대하고, 선거비용 보전에 필요한 유효투표 득표율 기준을 다소 완화한다든가 하는 등의 제도 개선 여지는 많다. 한나라당이 선거법을 개정해 후보 단일화를 규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한다는 소식은 더욱 어이없다. 결선투표제 도입 등 제도적 개선책이 있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정치적 저의가 의심스럽다.
지금의 지방자치교육법은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랜 기간 토론과 연구 끝에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교육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은 ‘교육의 일반행정으로부터 분리’라는 교육자치의 기본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러닝메이트제 역시 교육감 후보가 당적을 갖고 선거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배치된다. 지금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 갓 피어나기 시작한 민선 교육감 시대가 좀더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낼 때다.

[사설] ‘성희롱 의원’ 싸고도는 한심한 국회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08-31자 사설을 퍼왔습니다.
국회가 어제 강용석 의원(무소속) 제명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재적 3분의 2의 찬성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23표나 더 많았다. 강 의원이 저지른 성희롱 행위가 의원직을 박탈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원이 우리 국회에 더 많다는 뜻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강 의원은 여대생들을 앞에 두고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남자는 다 똑같다. 그날 대통령도 너만 쳐다보더라.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 따갔을 것이다”라는 등 차마 의원으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래 놓고도 이를 부인하면서 언론에 책임을 돌리다 1심 법원에서 모욕과 무고 혐의가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도 제명안을 부결한 것은 우리 의원들의 윤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는 동시에 국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했음을 드러내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일부에선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최연희 의원(무소속)과 비교해 죄질이 이보다는 가볍다는 주장을 하는 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 의원을 애초 제명하지 않은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이를 이유로 강 의원의 구명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얼굴 덜 예쁜 여자들이 서비스가 좋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 시절 ‘마사지걸 발언’을 비롯해 강재섭 대표의 ‘낙지’ 발언, 안상수 대표의 ‘자연산’ 발언 등 유독 한나라당에서 성 관련 추문이 계속 터져나오는 것은 당내 인사들의 성 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표결 분포로 보아 이번에 강 의원 제명안을 부결하는 데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가 만들어준 과반 의석을 악용한 오만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강 의원도 더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스스로 용퇴하기 바란다.

2011년 8월 31일 수요일

[사설]가처분 결정을 빌미로 제주기지 강행 마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1-08-30자 '[사설]가처분 결정을 빌미로 제주기지 강행 마라'를 퍼왔습니다.
정부와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강동균 강정마을회장 등을 상대로 낸 공사방해금지 등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제주지방법원은 그제 “강씨 등 37명과 강정마을회 등 5개 단체는 신청인의 토지와 공유수면에 대한 사용 및 점유, 항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며 “이 명령을 위반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위반행위 1회당 200만원씩을 신청인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정부와 해군 측은 당장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 현장에 차단막을 설치할 태세여서 공사장 주변이 초긴장 상태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유감스러운 결정이다. 법원의 결정은 해군이 토지를 수용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공사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만, 공사장 앞 시위와 공사장 출입 저지는 마을 주민들의 최후의 의사표현 수단이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잘못된 절차에 의해 시작된 공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주민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있다. 법원이 해군기지 공사를 강행하려는 공안대책 회의를 도운 셈이다. 더구나 경찰은 같은 날 강정마을회와 시민에게 경찰서 앞과 강정마을 일대에 신고한 집회에 대해 9월15일까지 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한다고 통고했다. 집단 폭행·협박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폭력시위를 한 적이 없는 주민들의 집회를 갑자기 폭력집회로 규정해 집회금지를 통보한 것은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결국 법원의 결정과 뒤이은 경찰의 집회 불허로 주민들의 손발이 모두 묶이게 됐다. 국가 안보와 주민의 생업이 걸린 중대 사안에 대해 비폭력적인 의사 표현조차 할 수 없게 한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다. 

법원의 결정으로 해군이 공사를 강행할 법적 권리를 얻은 것은 맞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서둘러 공사를 강행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사태를 더 키우게 될 게 틀림없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공사 강행에 저항을 선언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법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법에 앞서 주민과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풀어야 한다. 지난해 12월에도 법원이 주민들이 제기한 절대보전구역 변경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각하해 기지 공사가 시작됐지만 주민에 의해 저지당했다. 경찰의 집회 불허 조치도 철회돼야 한다. 주민의 손발을 다 묶어놓고 강행한 사업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없다.

[경향논단]강정마을서 제2의 4·3을 원하는가


이글은 경향신문 경향논단 2011-08-30자 논단에서 퍼왔습니다.
지금 제주 강정마을에 국가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수백년간 대대손손 삶의 터전을 이루어 온 삶의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이 괴물 앞에서 산산이 깨지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온통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해안가 농로에는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은 아주머니들이 드러누워 있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도전하는 제주, 그곳에서도 가장 빼어난 곳이 올레 제7코스가 있는 강정마을이다. 그런 마을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이제 강정마을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화, 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면 이미 대한민국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다. 국가가 수백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비우라고 할 때는 그곳 주민은 물론 국가공동체 전체 구성원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반대를 억누른다면 그 명분이 어떤 것이라 해도 용서될 수 없다. 만일 그것이 허용된다면 이 나라는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리바이어던이 통치하는 전제군주국가와 같다. 

정부가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남방 해역 안전과 해저 자원 및 해양수송로를 보호하는데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주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이용되어 오히려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 요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반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만 미국의 지식인들마저 이를 걱정하지 않는가. 얼마 전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제주 해군기지에 미국이 이지스함을 동반한 채 기항한다면 중국으로부터 오는 군사적 위협으로 인해 동북아의 안보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을 경고했다. 평화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지난 6일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한국은 미국 펜타곤 강아지가 흔드는 꼬리가 아닌지 걱정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안보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주변국을 자극하는 군사기지 건설은 국가안보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군기지는 제주의 상징성에도 맞지 않는다. 4·3 사건으로 얼룩진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반성으로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해군기지를 만든다니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제주는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다. 강정마을 일대 해안은 유네스코에서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한 이래 중앙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모두 생물권보전지역 및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특히 기지 건설 예정지는 특별자치도법에 의한 절대보전지역이다. 이런 곳에 해군기지를 만든다면 누가 제주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할까. 세계 7대 자연경관 운운하며 기지를 만든다는 것은 세계가 웃을 일이다.

해군기지 강행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지역 주민 전체의 생존권이 걸려 있고, 전 국민적 쉼터인 곳을 빼앗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민주적 절차가 요구된다. 이 정도의 사안이라면 국회가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여 결론을 내야 한다. 제주에서도 이러한 시설을 받아들일지에 대하여 제주도민 전체의 의사를 묻는 주민투표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 만들기 전에 밟아야 할 최소한의 절차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 모든 절차를 뭉개버리고 불도저부터 들이민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심각한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정부가 현지 주민과 야당 그리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육지 경찰을 동원, 반대를 잠재운 다음 공사를 강행한다면 제2의 용산참사, 아니 악몽의 4·3 트라우마가 재연될 수 있다. 그러니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반대의 목소리를 지금이라도 경청하는 것이다. 전 국민 그리고 제주도민의 의사를 묻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이슈로 내걸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금 당장 대치하고 있는 경찰 병력을 철수하고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

오피니언 [사설]대출 억제 핑계로 금리 올려 배불리는 은행들


이글은 경향 오피니언사설을 퍼온 것입니다.
시중은행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계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일부 은행이 며칠 전부터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많은 시중은행이 다음달 1일부터 가계대출 금리를 0.1~0.2%포인트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신용대출 금리를 무려 0.5%포인트나 올린 은행도 있고, 금리인상 계획은 없다면서도 우대금리 적용 중단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금리를 올린 곳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이후 한국은행 기준금리도 동결된 상태이고 은행의 대표적인 자금조달 수단인 예금금리는 오히려 내리는 상황이다.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금리를 올려야 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가계대출 수요 억제를 핑계로 금리를 올려 잇속을 챙기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이달 중순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억제 방침을 전달하자 무책임하게도 대출을 전면 중단해 고객들의 원성을 샀다. 이들은 이번에 대출을 재개하면서 가계대출 총액이 줄어들 경우 이자수익도 따라 감소하는 것을 보전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선 것으로 짐작된다. 

늘기만 하는 가계대출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은행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신규 대출 억제나 기존 대출 상환 독려는 대출 심사를 꼼꼼하게 진행해 불요불급한 대출 수요를 가려내는 방식으로 해야지 느닷없이 대출을 중단해 고객을 골탕먹이거나 일제히 금리를 올려 제 배만 불리는 기회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대출이 꼭 필요한 고객이라면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라도 대출을 받으려 할 것이므로 결국 사정이 급한 고객의 부담만 키우는 꼴이 된다. 올 상반기에만 10조원의 이익을 내 사상 최대 실적을 예상하고 있는 은행들이 이래서는 안된다.

은행들의 얌체 상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대출금리 조정주기는 짧게 잡고 예금금리 조정주기는 길게 잡는 식으로 이자를 챙기는 관행이다.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에 예대마진이 0.1%포인트만 커져도 1조원의 이자부담이 가계에 추가되는데 은행 예대마진은 계속 커지는 추세다. 은행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천문학적 규모의 배당잔치를 벌이는 배경이다. 은행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과도하게 이자를 챙기는 관행이나 고객을 우습게 아는 태도부터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 은행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 수준을 넘어 ‘약탈적 영업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 소비자는 물론이고 은행 자신을 위해서도 빨리 정신차려야 한다.

‘새로운’ 세계화는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35호] 2011년 08월 04일 (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새로운’ 세계화는 없다'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국채라는 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서구 경제가 위기를 헤쳐나가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다. 이제 한 나라, 한 대륙의 명운이 걸린 ‘특별’ 회의나 정상회담은 정치인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 3년간 정치권은 낙오한 금융계의  뒤치다꺼리를 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고, 벌써부터 이를 둘러싼 공포와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체 그 누가 탈세계화를 두려하는가?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단순명료했다. 알랭 맹크 같은 지식인들이 주축이 된 모임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성’ 아니면 ‘광기’만 존재했다. 이성을 지닌 이들은 세계화가 행복을 실현하는 길이라 주장했고, 이를 믿을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세상과 격리해야 할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성’은 내부적 모순에 부딪혔다. 이성은 진실과 논리정연함을 토대로 가장 이상적인 토론을 구현한다고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지난 20년간 모든 대화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한 뒤에야 비로소 대화의 문을 열려 한다.
는 곧바로 “대대적인 탈세계화 논의가 시작됐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아마 ‘환영’의 뜻이었겠지만) 이 소식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탈세계화는 어불성설”이라는 내용의 사설 한 편을 서둘러 게재했다. 좀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할 요량으로, “탈세계화는 반동적”이라는 논지의 대담 기사도 함께 실었다.(1) 분명 탈세계화가 ‘어불성설’이라는 것과 ‘반동적’이라는 것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므로, 둘 다 다뤄볼 만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위기에 빠지자 비로소 대화 나선 세계화주의자들
거시경제 흐름상 2012년 상반기부터 프랑스도 유럽연합(EU) 차원의 초긴축정책의 여파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한창인 지금도 고삐 풀린 금융계의 방종과 시장지상주의적 경제정책, 해외이전 등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세계화는 앞으로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등장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결국 진짜 참다운 문제들이 대선 토론의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진짜 참다운 문제, 그러니까 실업, 고용 불안, 양극화, 국민주권 약화 등은 하나같이 세계화라는 문제로 귀결한다. 그렇기에 대안 없는 정권 교체의 종식을 우리는 간단히 ‘탈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이름은 간단하지만 탈세계화를 둘러싼 논의는 복잡하다. 오늘날 탈세계화에 관한 지적 논쟁은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뒤바꾸고 있다. 뜻밖의 인물이 기존 주장을 뒤엎고 세계화 논의에서 이탈하는가 하면, 뭔가 진정성이 의심되는 부류가 탈세계화 바람에 편승하기도 한다. ‘세계화의 진정한 수혜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때면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던 이들 말이다. 그들은 과거에는 세계화 논의가 일어나지 않게끔 투쟁을 벌이더니, 이제는 ‘또 그 얘기’라는 담론이 세계화 논의의 중심이 되도록 투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 논리를 토대로 다시 새로운 세계화 담론을 구상하는 일은 흡사 역사학자의 작업과 비슷하다. 가장 어리석은 주장(이를테면 어리석다는 특징만으로도 이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행복한 세계화’ 같은 주장)에서 알맹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주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를 옹호하던 기존 논리가 전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최대한으로 살리려면 일단 가지고 있는 실탄은 모두 장전하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대표적인 예가 1998년 폴 크루그먼의 ‘세계화는 죄가 없다’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다.(2) 실제로 그는 ‘세계화의 적들’을 비난하며 크루그먼을 대놓고 흉내냈다. 그런 그는 오늘날 여전히 세계화 영역에서 금융화만 쏙 빼놓는 용의주도한 태도를 잊지 않는다. 사실 금융화를 옹호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2007년 이후로는 금융화를 비호하기가 한층 더 난처해졌다. 그러니 세계화 논의에서 조심스레 금융화 주제만 빼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기서 일명 ‘징징 짜는 좌파’가 흔히 사용하는 전형적 수법과 마주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노동자와 연대하는 데 목매고(어쨌든 그들도 좌파이므로), 양극화·고용불안 등의 불행에 뜨거운 눈물로 개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불행을 일으킨 진정한 구조적 원인은 지적하지 않는 수법 말이다.
이를테면 금융 자유화와 주주권력, 자발적으로 금융시장의 요구에 따라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현 EU 통합 체제, ‘왜곡되지 않은’ 자유로운 경쟁 등의 문제에는 침묵한다. 요컨대 신성불가침한 영역으로 인식돼온 이 주제들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이성학파, 좀더 정확히 말해 ‘이성학파에 속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결코 넘어서서는 안 될 ‘테두리’를 형성해왔다. 이는 곧 장관과 계속 손을 맞잡고 일하려면, TV에 게스트로 초대받으려면, (좌·우파를 막론한) 여러 정당의 자문관 노릇을 하려면, 한마디로 제도권의 사랑을 받으려면 (절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금기어들에 반해) 꼭 해야 하는 말들의 ‘테두리’를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는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세간의 조롱뿐이다. 이제 지옥은 타자가 아니라, 과거의 기록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두들 저마다 과거 행적을 지우고 다니느라 아우성이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핵심은 결코 희생하지 않을 터이니.) 이를테면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생시몽재단’, ‘아이디어 공화국’, ‘테라노바’ 등 각종 세계화 옹호 단체들이 대표적이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옛날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갈 방도를 강구할 수 없다. 기존에 사용하던 논쟁 방식을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 ‘그것’에 대해 교묘히 침묵하는 것은 세계화가 끔찍한 악몽으로 변하기 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세계화 옹호 단체들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그저 ‘기본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불행한 자의 운명을 개선하려 한다. 이를테면 조세 개혁이나 특히 교육으로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
크루그먼씨! 세계화는 정말 무죄인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른바 ‘상향 평준화된 경쟁력’을 갖추도록 ‘패자’를 교육하는 것이다. 아, 유럽집행위원회가 그리도 좋아하는 교육,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지식 기반 경제’라니! 고용의 책임은 온전히 바보들에게 떠넘기고, 일자리를 파괴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해 더는 논하지 않아도 되는 얼마나 완벽한 핑곗거리인가. 교육이 제시하는 장밋빛 전망은 또 어떤가? 자고로 밝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당연히 바보들을 교육하는 과정은 더딜 수밖에 없으므로). 다시 말해 당장은 두 손 두 발 다 놓고 있어도 전혀 문제될 게 없음을 뜻한다. 하지만 오늘날 상황은 달라졌다. 더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구조적 문제’에 침묵할 수 없다. 세계화로 인한 피해에 세상이 잠잠할 때는 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돌연 세계화 병폐를 놓고 세계가 시끄러워진 마당에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기란 불가능하다.
세계화 옹호론자들은 일부 주장을 계속 견지하려 들 것이다. 이를테면 국민이 불행한 것은 세계화가 아닌, 컴퓨터 때문이라며 이른바 ‘기술’ 이론을 들고 나올 것이다. 파스칼 라미도 “과거의 기술 상태로 되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라고 묻지 않았던가.(3) 다니엘 코엔은 (지식경제 이론에 딱 들어맞는) 이 이론을 부분적으로 계속 견지하며 일자리 파괴, 양극화 등은 세계화가 아닌 기술 진보에 의한 생산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4) 그는 “오로지 우수한 교육을 받은 자만이 컴퓨터 기술을 무기로 굳게 닫힌 취업문을 뚫고 나와, 능력 있는 사람들 몫의 일자리까지 모두 쓸어갈 수 있다. 그러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애석할 따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의아한 사실은 여기서 모두들 세계화와 ‘생산성’이 서로 상치(세계화와 생산성 가운데 택일해야 하고, 대개는 세계화보다는 생산성을 선택한다)되는 개념이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두 사이에 상호보완적 관계, 심지어 인과관계가 존재할 가능성은 무시해버린다. 대체 생산성 증대를 위한 과열 경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바로 ‘왜곡되지 않은 경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압박감(월 100유로짜리 중국 노동자 정도로는 불공정 경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적어도 15유로짜리 아프리카 노동자가 게임에 끼어야 진정한 불공정한 경쟁을 논할 수 있다), 그리고 금융수익 증대에 대한 끊임없는 요구가 아니던가? 더욱이 수익 증대는 ‘주주금융 제국’의 모토이자,(5) 세계화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침묵할 수 없다면 이젠 교묘해져라
2008년 경제학자 파트리크 아르튀스는 세계화에 대해 “아직 최악의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다”(6)고 예견했다. 하지만 그도 생각을 바꾸었다. 이제 그는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은 미친 짓”(7)이라고 말한다. 별다른 논리적 개연성 없이 그저 희망만 가득한 말로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물론 지금까지 ‘그것’은 힘겨운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더 견디면 곧 ‘그것’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낡을 대로 낡았지만 새삼 우습게도 오늘날 다시 유행하 는 이 신자유주의 주장에 대해, 어쩌면 지난 15년간 장기간의 예산 축소를 기반으로 한 경쟁적 인플레이션 억제책을 묵묵히 견뎌온 사람들은 크게 감동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신세가 아니던가? 물론 중국이 언젠가 내수시장을 책임질 만한 성숙한 임금제도를 갖추고, 수출대국에서 우리 고객으로 변모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대체 언제란 말인가? 10년 뒤? 아니면 15년 뒤? 더욱이 그때까지 버틸 재간은 있는가? 아니면 무작정 곧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식의 막연한 인내심만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가? 노동자 임금 150유로짜리 중국이 75유로짜리 베트남에 해외 이전지 자리를 빼앗기듯, 앞으로 세계화가 돌연 아프리카 대륙 쪽으로 기수를 튼다면 그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척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완전한 불모지나 다름없는 아프리카는 앞으로 모든 임금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 분명하다. 그때 가서 또다시 우리는 15년 동안 아프리카가 성장하기를 기다리며 마지막 인내심 경연이라도 펼쳐야 하는가?
분명 현 위기로 세계화의 오랜 동맹들은 동요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화의 적’이라고까지 선언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과거에 세계화를 전혀 비판하지 않았다는 인상만큼은 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던 양 연기하며 궤도를 수정하거나(결코 명백한 모순이나 오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진짜 입장을 바꾼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며 저마다 앞다퉈 세계화를 비난할 거리를 하나둘 찾아내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그들은 늘 최소한의 노력에 그칠 뿐이다. 현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적법한 담론’ 주위만 빙빙 돌며(이를테면 현 상황에서는 금융계에 좀더 엄격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거기에만 머무르려 한다. 코너에 몰린 다니엘 코엔은 부랴부랴 오랫동안 주주권력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사실을 인정했다. 아르튀스도 살릴 수 있는 주장이나마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세계화’(Mondialisation)를 ‘글로벌화’(Globalisation)와 억지춘양으로 구분짓는 중에도, 어쨌든 일부 비난은 수용하고 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의 전 경제자문이자 빌 클린턴 정부(1993~2000)에서 적극적으로 탈규제를 옹호한 로런스 서머스마저 “미국 노동자들은 글로벌 경제에 좋은 것이 반드시 그들에게도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8)
시스템이 삐거덕거리고, 현실의 통렬한 일격이 반복되면서 마침내 세계화 논의에도 돌파구가 열렸다. 그러자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주장이 하나둘 터져나왔다. 이제 옹호론자들이 “대체적으로 긍정적”(9)이란 수사학 말고는 비호할 수 없던 세계화 시스템이 영예로운 역사가 아닌 내다버려야 할 역사에 가까워졌다. 경제학자 엘리 코엔은 난처해하며 “오늘날 행복한 세계화라는 담론을 고수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10) 필리핀의 경제학자 월든 벨로(11)가 원조인 ‘탈세계화’라는 용어는 세계화가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모든 사회적 분노를 잠재우기에 논리적으로 바람직한 정치적 비전을 의미하는 기표가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은 간단하다. 자본주의의 현 상황을 ‘세계화’라 부르기로 쉽게 의견을 모았듯, 현 자본주의 질서와의 단절도 아주 쉽게 ‘탈세계화’라고 부르기로 의견 일치를 보면 된다.


<재건축과 파괴>, 2010-제리 월든
교육으로 양극화 해결하겠다니
그럼에도 현 자본주의 질서와 ‘단절’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먼저 아르노 몽트부르(12) 사회당 의원은 유럽통합주의를 기반으로 한 단절 방법을 지향한다(그저 앞으로 독일을 상대로 시장의 요구에 순응하는 현 EU 경제정책 수립 방식이나 유럽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 등을 설득해야 할 그에게 행운을 빌 따름이다). 2005년 ‘파비우스 효과’(파비우스는 유럽헌법조약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부결을 주장한 인물이다)와 유사하게, ‘훌륭한’ 정당의 훌륭한 경선 후보자인 몽트부르 의원이 나서면서 세계화 논쟁은 부쩍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결과 그동안 아무도 관심이 없던 담론에 비로소 사람들이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그동안 경제학자 자크 사피르의 주장은 아무도 경청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도저도 모두 실패한다면 그때는 (유로화 탈퇴를 통한) ‘개별 유럽국 주권 회복’이란 카드를 사용하는 것도 결코 주저해선 안 된다고 했다.(13)
좌파 사이에 탈세계화 논의가 위축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 소속 경제위원회 위원들이 탈세계화 논의가 확대되는 것을 이토록 경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더욱이 개별 유럽국으로 회귀하는 것을 비난하는 말까지 하리라고는 더욱 몰랐다. 이런 비난은 이상하리만치 신자유주의 성향의 언설들이 평상시에 쏟아내던 분노와 닮아 있다. 게다가 이는 “각종 모습으로 위장하고 길을 터가는 극우주의 정책” 발전에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14)
변죽만 울리는 반성…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는 일부 좌파가 의도와는 상관없이 탈세계화 비난에 동참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그들은 가장 왜곡된 형태의 탈세계화를 비난하고 있으며, 사방이 온통 적으로 둘러싸였다는 환상 아래,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른바 ‘피포위(被包圍) 신드롬’을 왜곡해 견지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북한과 그 ‘은둔의 왕국’ 체제를 세계화와 변증법적으로 완전히 상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의 논객 알렉상드르 아들레르에게서나 발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ATTAC 경제위원회 위원들도 담화문에서 피포위 환상에 사로잡힌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최근의 경제사만 조금 훑어봐도 잘 드러난다.
오늘날의 규범(특이하고 심지어 부적절하기까지 하다)에 비춰볼 때, 전후 포드주의 자본주의는 거의 모든 탈세계화의 특징을 지녔지만, 거기에서 철조망이나 감시탑, 굳게 닫힌 폐쇄적 경제, 자급자족 정책 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포위 이미지는 세상에는 오로지 ‘세계화된 세계’ 아니면 ‘여러 국가로 이뤄진 지옥’만 존재할 뿐, 그 중간은 없다는 이른바 제3자 특유의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들에게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의 가능성을 환기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바, 그러니까 국가가 존재하는 동시에 각 국가 사이에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잘 설명하려면, ‘인터-내셔널’(나라-사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1945~85년에는 국외 교역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보다 무역이 덜 발전했다고 그것이 흠이 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또 요즘 자유무역에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는 나라가 나타날 때마다 파스칼 라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분명 ‘보호주의’라고 불릴 만한 교역으로 전쟁이 일어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일부 대안세계화 지지자들은 라미 사무총장과 똑같은 수사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라미 사무총장의 말을 맹목적으로 해석하며 “관세가 외국인 혐오주의와 국수주의를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15)
‘끔찍한 국수주의적 보호주의가 활개를 친 포드주의 시대’는 어쨌든 완전고용과 성장,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선진국들이 평화롭게 지낸 시대였다는 점을 환기하려 한다. 더욱이 우리가 아는 한 이른바 ‘세계화된 세상’에서조차 국가라는 원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와 대안세계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 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가는 존재한다. 중국이 있고, 또 미국이 있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나라들을 두고 국수주의나 주권 행사 등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두 나라에 누군가 확대 통합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일제히 박장대소할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구제불능의 두 나라가 서로, 혹은 각각 우리와 전쟁을 벌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탈세계화, 방법론 놓고 의견 분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아는 한 국가 간의 관계는 단순히 상품 교역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컨테이너나 자본의 이동을 제한하더라도 예술작품, 학생, 예술가, 학자, 여행객 등의 대대적인 교류까지 저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신자유주의표 세제’가 사람들의 분별력을 깨끗이 씻어버린 현실에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다. 마치 상품 교역이 한 국가의 개방 정도를 측정하는 유일한 척도가 되어버린 듯하다.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탈세계화가 ‘사악한’ 교역과 함께 ‘바람직한’ 교역까지 모두 쓸어버리려 한다는 비난이 생겨나는 이 현상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혹자는 ATTAC가 이미 ‘반세계화’(Antimondialisation)라는 초기 이름표를 서둘러 떼어내고 ‘대안세계화’(Altermondialisation)라는 좀더 명확한 명칭으로 조직의 정체성을 재규정했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 이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이론 사이에 그들의 이론을 구별짓는 기준이 될지 모른다. 이를테면 ATTAC 경제위원회 위원들은 담화문에서 끊임없이 “계급투쟁이 국가 간 투쟁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16)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살펴보면 이 주장은 무의미하다. 비록 이것이 국가 차원의 사안,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국가 차원의 사안이 존재한다는 사실, 거기서 필연적으로 대립관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무시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서도- 늘 그렇듯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데서 기인하는 비극적 결과이지만- 그들은 ‘대립’을 곧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특히 협력관계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다.
ATTAC, 반세계화에서 대안세계화로 급선회
인류가 완전하게 화합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넓은 의미에서 인간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대립관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이런 대립관계가 국가라는 경계를 기준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 모든 대립관계가 국가 문법에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계급 간 대립처럼 수평적 문법을 기준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저마다 수많은 문법 사이에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문법만 수용하려 든다는 점이다. ‘어떤 문법이 우위에 있느냐’라는 질문은 일반적 규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매번 자본주의 구조의 특징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국 노동자와 프랑스 노동자는 모두 똑같이 ‘자기’ 자본과 대립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세계화 경제의 구조상 중국 노동자와 프랑스 노동자는 대립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와 중국의 노동자 계급이 함께 연대하도록 요구하려면, 각자의 구체적인 구조적 현실, 객관적 갈등을 일으키는 힘의 관계 등이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보편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카를 마르크스가 ‘신진 헤겔주의 좌파세력’에 대해 비난했던 점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본질들’이 혼자 알아서 불가능한 효과를 불러오기를 기대하는 대신, 여러 사회집단 간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결정짓는 구조를 개혁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탈세계화와 국수주의를 구분 못하다
한 예로, 일부 나라에서는 주식금융과 자본화 방식을 토대로 한 퇴직연금제도(Capitalized Pension) 등의 자본주의 구조가 동일한 노동자 계층을 다양한 분파로 분열시키고 대립하도록 만든다. 이를테면 (금융 수익성에서 이익이 비롯되는) 연금수급자와 (이를 갈취당하는) 임금노동자, (주식시장에 상장된) 동일한 기업의 주주사원과 생산직 해고자 등이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구조상 한쪽은 피해를 보고 다른 쪽은 이익을 얻으며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이들에게 아무리 계급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들이대고 함께 연대하자고 호소해봐야 소용없다. 오히려 반대로 (주식금융을 없애거나, 기여식 연금(Contributory Pension)을 장려하는 등) 자본주의 구조를 개혁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이는 분열된 집단이 서로 통합할 수 있는 실질적 환경을 조성하고, 기존과는 다른 문법에 의한 대립관계를 유도할 수 있다.
자유무역과 직접투자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현 자본주의 구조는 프랑스 노동자와 중국 노동자 사이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바로 여기에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계화 지지자들’의 역설이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협의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보호주의’는 신흥국 노동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대신, 오히려 수출 위주의 정책이 그들에게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일찍이 깨닫고 서둘러 내수 위주의 성장 체제(전문 용어로 ‘임금수익의 확대 및 안정’이라 부르는)로 발전하도록 유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각국의 노동자가 불공정한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한 대립관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국가라는 문법보다 계급이라는 문법이 앞서는 수평적(초국적) 차원의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요컨대 ‘국가 차원의 사안’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라는 ‘계급 차원의 사안’에 (국제적인) 가능성을 부여하는 최고의 방법인 것이다. ‘왜곡되지 않은 경쟁’은 실상 가면을 쓴 보호주의(혹은 가장 최악의 보호주의)(17)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 협의 과정을 바탕으로 한 투명한 보호주의는 일반적으로 대안세계화를 지지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협력적인 특징을 지닐 수 있다. 즉 각국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독자적으로 발전하도록 돕거나, 일정 계급이 국적을 초월해 연대하는 실질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국가’보다는 ‘계급’에 주목해야
하지만 탈세계화를 둘러싼 논의가 오로지 (세계화 옹호론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보호주의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일부 주장만 가지고 완전하게 탈세계화를 논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탈세계화를 논할 때 단순히 경제적 차원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탈세계화가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 즉 주권 및 그 한계(18)를 비롯해 정치적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 세계화 옹호론자들은 민중의 삶에 기반이 되는 주권은 등한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정 중요한 것은 소홀히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이다. 다니엘 코엔은 틈만 나면 “중요한 문제는 글로벌 거버넌스다”라고 외친다.(19) 아니, 천만의 말씀! 정말 중요한 문제는 유일하게 자본권력에 대항할 능력을 갖춘, 진정한 주권을 지닌 정치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는 “강력한 국제기구”(20)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주권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다니엘 코엔은 이 완벽한 모순어법에 기대어 “강력한 국제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이렇게 다시 쓰고 싶다. “지금 이대로도 우리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세계화 논쟁을 펼칠 때 유일하게 일반적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게 있다면, 바로 주권 약화를 해결해줄 대안이 없는 상태로 국민을 너무 오래 방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본에 맞설 진정한 주권 필요
탈세계화 논쟁은 탈세계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도록 합의하느냐라는 문제로 귀결한다. 탈세계화 개념을 정의하는 일은 현 경제 상황을 살펴볼 때 그리 어렵지 않다. 오늘날 소득 격차가 엄청난 경제국들이 왜곡되지 않은 자유경쟁을 펼치고 있다. 해외이전이라는 만성적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주식금융 시스템이 한도 끝도 없이 수익성 증대를 요구하며 노동자의 임금을 위협하고 만성적인 가계 부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투기 거래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금융권은 경제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위기같이 가계 부채를 대상으로 투기판을 벌이기도 한다. 금융계의 볼모가 된 정부는 반복되는 위기로 공황상태에 빠진 금융계를 돕도록 종용받는다. 한편 거시경제에 발생한 모든 위기의 대가는 고스란히 실직자에게 돌아간다. 위기로 인해 발생한 공공재정 부담은 전부 납세자, 공공서비스 이용자, 공무원, 연금수급자 등이 짊어진다. 시민은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데 아무런 힘이 없다. 사회 구성원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가는지와 상관없이 국제 채권자가 경제정책을 결정한다. 정치적 통제권이 없는 독립기구가 통화정책을 결정한다. 결국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일컬어 간단히 ‘세계화’라고 부르기로 합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탈세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간단히 ‘더 이상 세계화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글•프레데리크 로르동 Frédéric Lordon
경제학자. 최근 저서로 (쇠유 출판사·파리·2011)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 2011년 7월 1일자 사설. 자키 라이디, ‘탈세계화는 어불성설’, 2011년 6월 29일. 파스칼 라미, ‘탈세계화는 반동적인 개념이다’, 2011년 7월 1일. 
(2) 다니엘 코엔, , 그라세 출판사, 파리, 2004.
(3) 파스칼 라미, 앞의 기사.
(4) ‘세계화의 책임일까?, 다니엘 코엔 vs 자크 사피르 대담 기사, , 제303호, 파리, 2011년 6월.
(5) 이자벨 피베르, ‘5%라는 종교’, , 2009년 3월.
(6) 파트리크 아르튀스·마리 폴 비라르, , 라데쿠베르트 출판사, 파리, 2008.
(7) 파트리크 아르튀스, ‘세계화를 거부할 때가 아니다’, , 나티식스, 제472호, 2011년 6월 21일.
(8) 로런스 서머스, ‘A strategy to promote healthy globalisation’, , 런던, 2008년 5월 5일.
(9) 다니엘 코엔, ‘위기 탈출’, , 파리, 2009년 9월 7일.
(10) 엘리 코엔, ‘다보스 이데올로기 위기에 봉착하다’, Nouvelobs.com, 2010년 1월 26일.
(11) 월든 벨로, <deglobalization: ideas="" for="" a="" new="" world="" economy="">, 제드북스 출판사, 런던-뉴욕, 2002. 1996년 베르나르 카상이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 탈세계화에서 국제화로’, , 제32호, 1996년 11월.</deglobalization:>
(12) 아르노 몽트부르, , 플라마리옹 출판사, 파리, 2011.
(13) 자크 사피르, , 쇠유 출판사, 파리, 2011. 그가 저술한 CEMI-EHESS 연구자료 ‘유로화에서 탈퇴한다면…’(파리·2011년 4월)도 참조. 
(14) ‘탈세계화, 피상적이면서도 단순한 개념’, ATTAC 경제위원회 위원 9인, , 2011년 6월 20일.
(15) 피에르 칼파, ‘탈세계화라는 딜레마: 일부 반론에 대한 답변’, , 2011년 6월 20일.
(16) 앞의 기사. 장마리 아리베, ‘행복한 세계화라고?’, 블로그, 파리, 2011년 6월 16일.
(17) ‘보호주의 위협, 무의미한 개념’, , 파야르 출판사, 파리, 2009.
(18) ‘누가 탈세계화를 두려워하는가?’, 블로그 ‘la pompe àphynance’. 
(19) ‘세계화 책임일까’, 앞의 기사.
(20) 앞의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