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7일 토요일

민주주의의 적, 검찰공화국


이글은 한겨레신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지난 6월 내내 검찰은 분주했다. 또 어수선했다. 평검사 회의를 열고 대검의 검사장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총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조직을 위해 직을 건다는 건 조폭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경찰을 비난하던 그들이었다. 검찰총장은 서울에서 세계검찰총장회의가 열리는 중이라 당장 그만두지 못한다며 아쉬워했다. 검찰총장 임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진정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보통 일은 아니다.
검사들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섹검’이니 ‘떡검’이니 하며 조롱당할 때도 이렇지 않았다. 직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험한 수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검사들의 반발은 경찰과의 이른바 ‘수사권 조정’ 때문이다. 이쯤에서 설명을 멈추면 보통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해묵은 숙제가 떠오를 것이다. 검찰이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고 경찰 수사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니 일정한 범위 안에서 수사권을 나눠달라는 게 경찰의 이를테면 숙원사업이었다. 그렇지만 6월 국회의 쟁점은 수사권 ‘조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검사의 권한은 강화됐다. 검사의 지휘 범위를 ‘모든 수사’로 명문화해 검사의 지휘를 오히려 강화했다. 다만 검사의 지휘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한 게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골자다. 검찰은 법무부령을 고집했다. 어떻든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법무부령으로 하면 검찰의 입맛대로 정할 수 있지만, 대통령령으로 하면 경찰청이 소속된 행정안전부와 협의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싫다는 거다. 협의하려면 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경찰관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검사 지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협의해야 하는데, 그 자체를 상상하기 싫다는 거다. 명령-복종 관계가 어떻게 마주 앉을 수 있느냐는 거다.
수사권 조정 반발은 할리우드 액션
검찰은 엉뚱하게도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원칙을 들먹이며 국회가 형사소송법에 손대면 안 된다고도 했다. 이미 행정부에서 법무부령으로 합의했는데, 국회가 행정부의 합의를 훼손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삼권분립의 원칙은 입법권과 사법권을 통해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자는 원칙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횡포와 전횡을 오랫동안 경험한 인류가 고안해낸 안전장치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이 맘대로 정하고 고칠 수도 있는 법무부령으로 정해야 행정부의 부당한 관여를 막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야 권력으로부터 사법을 분리하는 삼권분립 원칙을 실현할 수 있다는 거다. 방금 쓴 이 문장을 이해할  시민이 있을까? 법무부 장관은 엄연히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고, 검찰청 소속 검사도 모두 행정부 소속 공무원인데?
행정부 소속 공무원인 검사가 삼권분립 운운하는 것은 자신들이 사법부와 동일한 위상을 지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검사는 국민의 인권을 다루는 중요한 책무- 사실상 사법 업무- 를 다루고 있기에 사법부 같은 고도의 독립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검사는 검찰청을 사법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래도 검찰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스스로 ‘준사법기관’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예 사법기관으로 격상시켰다. 그래서 사법기관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어떻게 입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느냐고 흥분하는 것이다.


▲ <대검찰청>, 2011-이종근
검찰이 사법기관이고 검사는 사법관(판사)과 동일하다는 인식은 헌법과 법률 어디를 봐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검사들만의 오만불손한 주장일 뿐이다. 이 주장에 근거가 있다면, 검사가 판사와 똑같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그들과 똑같은 ‘사법’연수원을 나왔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검사는 “어떻게 국회의원 몇 명이 앉아서 법률을 고칠 수 있느냐”고 호기 있게 말한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지만, 막상 검찰 개혁은 조금의 진전도 없다. 경찰과의 수사권이 조정되지도 않았고, 검찰권을 견제하는 어떤 진전도 없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1년4개월 동안 활동했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국회 사개특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불거진 검찰 개혁에 대한 시민적 여망을 제도적 개혁으로 연결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노력이었다. 모처럼 개혁 대상이나 이해당사자가 아닌, 의회 차원의 논의여서 주목해볼 만했다. 애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한때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 중수부) 폐지, 특별수사청 신설 등을 여야 합의로 추진했다. 하지만 검찰의 반발은 강력했다. 검찰은 국회를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검찰이 사개특위 위원장의 계좌를 뒤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도 검찰 편을 들었다. 결국 검찰은 모든 논의를 백지화해버렸다. 검찰의 완승이었다. 여야 합의를 좌초시킬 만큼 검찰의 힘은 막강했다. 그런데도 검찰총장과 검사장들은 사표를 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대단한 힘이고 배짱이다.
무소불위가 된 행정부 공무원
검찰의 엄청난 힘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때 검찰권 행사의 정점에 서 있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육성이다.
“이 나라의 최대 암적 존재는 검찰이었다. 너무도 보복적이고 정치적이며, 지역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개탄스러웠다. 권력에 굴종하다가 약해지면 물어뜯었다. 나라가 검찰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1)
따가운 비난이지만, 결국은 검찰의 힘이 막강하다는 이야기다. 그랬다. 과거 경찰, 군대,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등 비밀정보기관에 밀려 뒤치다꺼리나 했던 검찰이 이제 나라를 ‘검찰공화국’으로 바꿔버릴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었다. 검찰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지금까지의 모든 검찰 개혁 움직임을 분쇄해버렸다. 검찰의 힘은 이미 사법부와 입법부를 능가하고 대통령과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커져버렸다. 힘은 크지만 적절한 견제나 통제는 없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다.
검찰은 수사와 기소에 대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검찰의 한자어(檢察)는 ‘잡도리하고 살핀다’는 뜻으로 검찰 수사를 강조하고 있고, 영어(Prosecution)는 ‘기소’라는 뜻을 담고 있다. 법의 지배가 실현되는, 어떤 갈등이 생기면 사회적·정치적 조정 과정보다는 곧바로 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 법만능사회에서 수사와 기소는 그야말로 막강한 권한이다.
검찰은 누군가에게 죄가 있어도 수사하지 않거나, 수사하고도 기소하지 않을 수 있다. 거꾸로 죄가 없는 게 뻔해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와 기소에 대한 배타적 권한 때문이다. 잘못된 수사나 기소를 해도 책임지는 일이 없다. 개인도 조직도 어떤 책임을 지지 않는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는 검찰권의 오남용 정도가 심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문화방송 <pd>, 한국방송 정연주 사장 등 숱한 사건이 쏟아졌다. 그동안 실제 적용 사례가 거의 없던 전기통신기본법의 조문을 활용해 미네르바를 수사하고 구속 기소한 검찰은 법원의 무죄 선고와 관련 법률의 위헌 결정으로 완패했다. 미네르바는 자유를 찾았고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는 비난받았다. 그러나 검찰의 완패, 곧 미네르바의 승리는 그저 허울뿐이었다. 실제로 승리한 것은 검찰이다. 이명박 정권의 필요에 따라 수사에 나선 검찰은 ‘인터넷 공간에 의견을 쓰는 것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교훈을 확실하게 남겼다. 미네르바는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몸무게가 40kg이 빠질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상처뿐인 영광’에도 미치지 못하는 완패였다. 미네르바 사건 담당 검사들은 모두 영전했다. 한 사람을 파괴한 것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pd>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도 마찬가지다. 법원의 조정에 응한 것이 배임이라고 수사와 기소를 단행한 검찰은 역시 법정에서는 패배했지만, 그를 한국방송 사장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정연주 사건을 맡은 검사들도 모두 승진했다.
없는 죄 만들고 있는 죄는 덮고
수사와 기소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잘못된 수사와 기소를 당하면 헤어날 길이 거의  없다. 개인은 피폐해지고 패가망신을 당한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도, 수사와 기소가 진행되는 동안 받은 피해를 되돌릴 수는 없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 국가에 형사보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때 보상액은 하루 ‘최저임금액’ 수준이다. 적게 받으면 올해 기준으로 3만3880원이고, 아무리 많이 받아도 하루 16만원이다. 억울한 옥살이가 이깟 금액으로 보상될 수는 없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은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만연해도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적어도 임기 말까지는. 혐의가 차고 넘치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피해자가 쏟아져나와도 모르쇠로 일관한다. 시민사회단체의 고발이 쏟아져도 마찬가지다. 수사하지 않는 것도, 수사해도 기소하지 않는 것도 오로지 검찰의 권한이기에, 피해자들이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
참여정부 때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고소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의 판단을 구해보는 재정신청 제도 범위가 모든 고소 사건으로 확대됐다.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법원의 개입이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통제하는 안전장치가 된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재정신청 사건의 경우에도 검찰이 공소 유지를 하기에, 막상 재판이 열리더라도 검찰이 구형하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법원의 결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
법원의 결정을 검찰이 무력화하는 것은 재정신청 사건만이 아니다. 수사와 기소라는 진입장벽을 넘어 재판이 열려도 검사가 공소 취소를 하면 당장이라도 재판이 중단된다.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공소를 유지해도 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피고인에게 중형이 선고돼도 검찰은 형집행정지를 통해 피고인을 석방시킬 수 있다. 재벌 회장 등이 이런 방법을 통해 죗값을 치르지 않고 석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형사사법은 실상 ‘검찰사법’이라 불리는 게 더 적당하다.
마지막 개혁 수단은 시민의 손에
애초 검찰제도는 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출현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전의 재판은 모두 원님 재판이었다. 고을 사또가 수사도 기소도 재판도 다 했다. 수사한 사람이 재판까지 하니,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곧바로 유죄판결로 이어졌다. 피해자가 속출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기껏해야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정도의 호통이나,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는 말밖엔 없었다. 그래서 만든 안전장치가 소추기관과 재판기관을 분리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부터 시작된 이 제도는 지금은 문명국가의 상식이 되었다. 분리와 견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대혁명의 선조 정신은 당연히 지금도 유효하다.
검찰은 견제를 위해 출현했지만, 한국 검찰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어떤 나라의 검찰도 갖지 못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 검찰 개혁의 핵심은 검찰이 가진 권한을 쪼개는 데 있다. 소추와 재판을 나눈 것처럼, 수사와 기소를 엄격히 다른 기관으로 분리하는 것에서 검찰 개혁은 시작된다. 검찰청은 기소와 공소유지라는 본연의 임무만 수행하고, 수사는 온전히 경찰이 맡으면 된다. 수사하고 싶은 검사가 있다면, 경찰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검찰 개혁은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정치권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히 확인됐다. 직전 대통령 서거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단 하나의 방법이 남았다.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시민이 정치인에게 검찰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검찰 개혁이 중요한 공약이 될 수 있도록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
글·오창익
인권운동가. 최근 검찰개혁운동의 시민적 확산을 위해 을 변호사, 법학교수와 함께 썼다.

놀라워라, 미국의 이중성이여! [Special Report] 위키리크스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위키리크스 인터넷 사이트의 한 화면. 위키리크스가 그동안 폭로한 사건들이 서가에 진열돼있다.
마른 체형의 머리가 흰 이 남자를 ‘자유의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책임한 배신자’로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정부에 이 남자는 ‘주적 1호’나 다름없다. 그는 위키리크스 설립자이자 인터넷 활동가인 39살의 줄리언 어산지다. 
 지난 수개월간 어산지를 둘러싼 외부 세계는 급변했다. 한쪽은 사람들 간의 실제 접촉이 일어나는 아날로그 세계였다. 성폭행 혐의로 영국 경찰에 체포된 뒤, 어산지는 기존 아날로그 세계에 무력하게 노출됐다. 그 반대편에는 어산지의 디지털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유혹적이고 경계를 넘나들며, 말 그대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열린 공간인 이 세계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어산지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처럼 보인다.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을 처음 공개한 2010년 11월28일부터 두 세계는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날로그 세계는 비록 케케묵었지만 상생의 원칙을 토대로 하는 민주적 세계이며, 반대편에 있는 디지털 세계는 경계선 따위는 무시하고 때론 통제 불능이기도 한 무법 세계다. 이 전쟁의 중심부에 어산지가 있다. ‘LOIC’(Low Orbit Ion Cannon)이라는 해킹 프로그램 등 ‘사이버 신무기’가 사상 처음 대규모로 투입된 최초의 전 지구적 규모의 충돌이다. 정보와 허위 정보 간 대립 양상을 띠는 이 사이버 전쟁은 서구의 국제 정치와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의 대충돌

 그리스가 트로이 성문 앞에 놓아둔 대형 목마 덕택에 트로이를 물리친 뒤, 기밀과 기밀 누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정부의 영원한 화두가 되었다. 현대의 ‘트로이 목마’는 인터넷에 숨어 있다. 그리고 인터넷상의 트로이 목마는 우리에게 수많은 의문을 남겨놓았다. 국가는 국민에게 어떤 기밀을 숨겨도 되는가? 국가기밀인 외교전문 폭로자는 어떤 의무를 지게 되는가? 민주주의 국가가 사이버 전쟁에서 기존 법망을 벗어난 새로운 제재를 고안할 수 있으며, 사이버 전쟁을 계기로 새로운 제재를 실행해도 되는가?
위키리크스가 ‘혁신적 매체’라고 확신하는 지지자들은 위키리크스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로는 불법일지라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불사할 태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양분된다. 한쪽은 장 자크 루소식의 철저한 투명성을 지지하는 이들로, 어떤 상황에서도 정보의 전적인 공개를 옹호한다. 다른 한쪽은 폭로된 기밀들은 저널리즘 측면에서 철저하게 평가해야 하며, 인간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보도는 막아야 한다고 믿는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큰 타격을 받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국무부의 외교문건은 열성적인 전세계 미국 외교관들의 정보력이 우수하다는 사실 외에, 실패한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파키스탄에조차 미국이 무기력하고 멍청하게 대처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랍 국가들이 겉으로는 이란의 핵무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로켓과 핵무기 개발 억제를 이란에 종용할 것을 미국에 재차 촉구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또한 중국과 혈맹관계인 북한과 관계를 끊고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남북통일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는 중국 공산당 간부가 있다는 사실도 전세계가 알게 되었다. 
 이 밖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인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혹평을 내리고 있음을 전세계가 알게 되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10년 11월 초 인도 방문 때 인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위키리크스 반대자들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기밀 누설은 악마적인 행위라고 규탄한다. 특히 워싱턴 정가는 이런 규탄 분위기 일색이다. 외교전문이 폭로되는 수치스러운 사고가 벌어진 뒤, 워싱턴은 굴욕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분노에 휩싸여 있다. 워싱턴 정가는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폐쇄하고 어산지를 법정에 세울 수만 있다면 법적 테두리에서는 물론이고,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별도의 법규정을 만들 태세다. 
  같은 극우 언론들은 위키리크스를 공격하는 선동적인 캠페인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이는 민주사회에서의 성숙한 논쟁보다는,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에 광적인 반응을 보인 중국 정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협박성 으름장을 연상시킨다. 이런 분위기에서 론 폴 텍사스주 공화당 의원의 “어산지는 철저한 탐문을 거치고 조사 작업을 하는 기자라면 응당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는  발언이나, “어산지에 대한 파렴치한 공격은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가 되는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위협할 뿐”이라고 보도한 의 냉정한 평가는 미 정계의 독설과 맹공에 파묻힌 채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어산지를 옹호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과격한 발언으로 도배돼 있다. 어산지의 행위를 정당한 시민 불복종으로 격상시키는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은 “사방에서 중상모략이니 군대를 소집하라!”고 외친다. 마치 인터넷 군대를 연상시키는, 위키리키스를 지지하는 해커들의 모임인 ‘어나니머스’(Anonymous·익명)는 데이터 봉기를 일으켜 위키리크스를 곤경에 빠뜨리는 대기업들에 역공을 퍼부었다. 어나니머스는 ‘안티 위키리크스’ 기업들의 수천 개에 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컴퓨터에 해커 공격을 감행해 해당 회사의 홈페이지를 장시간 마비시켰다. 
 어산지의 반대파들 역시 해커 공격을 감행했다. 위키리크스 홈페이지의 첫 화면이 며칠간 접속되지 않은 적도 있다. 위키리크스 홈페이지 해킹 공격은 상당히 조직적이어서, 적잖은 사람들이 미 정부기관이나 정보 당국을 배후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위키리크스가 실제로 위험에 처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는 “이런 방식으로 어산지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은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며 “미국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위키리크스에 맞대응하는 데 혈안이 된 나머지 자국의 법규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거나 위반해, 결과적으로 우방국과의 관계를 침해하고 미국의 신뢰를 스스로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처벌 근거 찾기 어려워 

 2010년 7월 위키리크스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밀문서를 폭로해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직후부터 미 정부의 법학자들은 어산지에 대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미 정부가 아무리 검토해봐도 어산지에 대한 소송을 벌일 만한, 그리고 그 소송에서 이길 만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를 설립한 줄리언 어산지.
미국 정부는 어산지에 대한 법정 소송이 단순한 수사적 위협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부의 법학자들조차 세미나에서나 나오는 공허한 논의만 반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자우편과 인터넷, 그리고 위키리크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1917년에 제정된 ‘스파이법’이다. 스파이법에 따르면, 미국의 안보를 해칠 수 있는 정보를 불법으로 소유한 자는 처벌받게 된다.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막 뛰어들었을 때 군복무를 반대하는 전단지를 배포한 한 사회주의자가 스파이법에 의해 처벌받은 적이 있다. 스파이법에 의하면, ‘미 군대의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방해하거나 적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전파하는 행위’에는 사형도 구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극성스러운 기자 정도로 이해하는 무정부주의자 어산지에게 이런 구시대적 법규정이 과연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스파이법은 이미 미국의 대표적 언론매체인 에도 적용된 적이 있다. 린든 존슨 당시 미 대통령이 베트남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국민에게 거짓말을 늘어놓던 즈음,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미국의 승리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1967년 맥나라마 장관의 지시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연루된 경위를 담은 미 국방부 1급 비밀문서가 작성됐다. 존슨 대통령조차 이 보고서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가운데, 전문가 36명이 머리를 맞대어 작성된 ‘펜타곤 페이퍼’의 분량은 무려 7천 쪽에 달했다. 
 이 보고서가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폭격을 가하는 등 암암리에 베트남전을 확전시켰다. 존슨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계속 베트남에 폭탄이 투하되자,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대니엘 엘스버그는 맥나라마 장관의 표리부동을 더 이상 참고 견딜 수 없었다. 과거 베트남에서 산 적이 있는 엘스버그는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가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엘스버그는 1969년 말부터 방대한 양의 1급 기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주로 밤에 복사를 했는데, 분량이 워낙 많아 복사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 외교전문의 누출자로 추정되는 브래들리 매닝 일등병이라면 아무리 방대한 분량의 기밀문서도 USB로 순식간에 빼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매닝은 현재 미 버지니아주의 콴티코 기지의 독방에 감금돼 있으며, 가족 면회조차 금지돼 있다. 매닝 일등병은 52년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79살의 엘스버그는 매닝과 어산지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엘스버그는 와 에 보고서 복사본을 몰래 전달했다. 두 신문의 편집부는 입수한 국방부 1급 기밀 보고서를 망설인 끝에 결국 보도했다. 존슨 대통령의 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두 일간지가 보도한 국방부 기밀 보고서 내용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은 정부의 기밀문서는 원칙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며 닉슨 대통령을 설득했다. 여론에 깊은 불신을 갖고 있던 키신저는 외교정책에 관한 한 여론은 순진무구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키신저는 엘스버그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었다. 닉슨 대통령의 하수인들은 국방부 기밀문서를 폭로한 엘스버그에게 불리한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엘스버그의 정신과 의사 클리닉에 몰래 침입하기도 했다. 

“문건 유출한 어닝, 52년형 예상”
 

 닉슨 정부는 스파이법을 근거로 엘스버그에 대해 법정 소송을 벌였다. 미 국방성의 기밀문서를 계속 보도할 경우 미국의 안보관계에 ‘치명적이며 회복할 수 없는’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게 소송의 이유였다. 이는 현재 오바마 정부의 위키리크스 폭로에 대한 시각과 당황스러울 정도로 비슷하다. 오바마 정부는 미 국무부 외교전문 폭로에 대해 “미 군인들과 정부기관 관계자들의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으며, 미국에 대한 우방국들의 신뢰가 깨질 것”이라고 강변한다. 
 당시 닉슨 정부는 엘스버그에 대한 1심에서 승소했다. 연재 3회 만에 시리즈를 중단해야 했던 는 워싱턴 대법원에 항소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앞서의 판결을 뒤집고 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시민들이 “정보를 입수할 수 있고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어야만 민주주의가 보장될 수 있으며, 기밀문서의 복사를 금지하기에는 ‘국가안보’라는 이유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밝혔다. 
 이 판결은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1조의 실효성을 입증한 증거로 간주됐다. 수정헌법 1조에는 “의회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은 절대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수백 년 동안의 미국 법정 판결에 따르면, 나치는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로 독일 나치즘의 상징)를 들고 시카고의 유대인 거주지를 돌아다닐 수 있으며,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공개적으로 불태울 수 있다. 모두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보호된다는 뜻이다. 엘스버그나 두 일간지 기자들 중에서 스파이법에 의해 고소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보를 (어산지처럼) 단지 소유하고 있어서 불이익을 당한 사람은 역사적으로 단 한 명도 없었다. 

 도 처벌하려 했던 미 정부
 

 위키리크스의 시대에는 기존 관행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다이앤 페인스타인 캘리포니아주 민주당 상원의원이자 안보위원장은 “스파이법을 적용해 어산지를 고소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어산지가 ‘미국에 해악을 끼칠 목적으로’ 정보를 활용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어산지는 이 문건을 폭로하기 전에 미국 정부와 접촉했지만, 미 정부는 어산지에게 어떤 형태의 협력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산지는 미 정부에 치명적인 내용은 외교전문에서 삭제해줄 것을 언론사에 요청했다. 또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위키리크스의 외교전문 폭로는 미국 외교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렇다면 미 정부는 위키리크스 폭로로 대체 어떤 피해를 입은 것일까?
 스파이법을 근거로 삼을 경우 어산지를 반란 혐의로 기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란 혐의로 어산지를 기소하려면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 입수 과정에서 어산지가 적극적으로 공조했음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외교전문을 입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조했다는 정황은 어디서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미국 법규정에 틈새가 있다면, 그 틈새를 메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틈새를 메우는 것에 위키리크스의 언론매체 파트너에 대한 제재도 포함될 수 있다. 조지프 리버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 보도 과정에서 의 역할을 집중 조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비록 언론의 자유는 미묘한 사안이지만, 이 신문의 편집자들은 ‘나쁜 국민’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리버먼 의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등 해외 언론매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하지만 위키리키스의 미 외교전문 폭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국 정부의 보안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실험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2001년 9·11 테러 이전만 해도 미국의 모든 정부기관 관계자는 동료 직원도 믿지 않을 정도로 기밀문서를 철저히 감시했다. 미 연방수사국(FBI) 국내 조사관들은 테러리스트들 중 한 명이 항공훈련을 받았다는 정보를 절실히 찾고 있던 중앙정보국(CIA) 해외 조사관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9·11 테러의 충격으로 정부기관 간의 활발한 정보 교류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그러나 민감한 내용을 담은 문서에 접근 가능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부작용이 뒤따랐다. 미 국무부의 외교전문이 누출된 데이터뱅크에 현재 약 250만 명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암호문서 수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1996∼2009년 암호문서의 분량은 무려 75%나 늘어났다. 미 대법원의 포터 스튜어트 대법관은 “모든 것이 비밀이면 아무것도 비밀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국가연금보험을 관장하는 연방사회보장국은 2010년 12월 첫쨋주에 전체 직원 6만2천 명에게 발송한 전자우편에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건을 읽지 말 것을 누차 강조했다. 컬럼비아대학의 한 단과대학은 후일 정부기관에서 일할 생각이라면 위키리크스에 대한 솔직한 견해 표명이나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서를 학술자료에 사용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당부했다. 해당 단과대학 사무실은 이어 12월 둘쨋주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대해 공개 토론을 금지하는 전자우편을 발송하기도 했다. 해당 전자우편에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전문에 대한 공개 토론은 학생 여러분의 기밀문서를 다루는 능력에 회의를 품게 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미국 정부가 위키리크스의 폭로에 대해 “일방적으로 겁만 잔뜩 줄 뿐 자아성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다. 나비 필라이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인터넷 플랫폼의 입을 막으려는 시도에 대해 “심히 우려스럽다”며, 이는 “위키리크스를 검열하고 견해의 자유를 침해하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제3세계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추앙받는 임기 말의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어산지가 절대 기소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외교전문 누출의 잘못은 그 작성자들에게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어산지를 박해하는 것은 “서구의 위선에 대한 증명”이라고 비난했고, 러시아 정부는 어산지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하도록 독려했다. 도 러시아 정부와 마찬가지로 어산지의 노벨상 후보 추천을 제안했다. 어산지의 모국이자 미국의 일편단심 우호국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케빈 러드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국 총리와는 달리 미국을 격앙된 목소리로 비판했다. 미 정부야말로 비밀문서를 “태만하게 관리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 지지자가 어산지를 체포한 것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어산지 성폭행 혐의는 CIA 음모?
 

 어산지의 수많은 지지자들은 그가 런던에서 체포된 것은 위키리크스의 폭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아직 없다. 실제로 어산지가 성폭행 혐의대로 개인적인 과오를 저질렀을 수 있다. 평소에는 투명성을 강조하는 어산지가 자신의 성폭행 혐의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한번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녹화장에서 사회자로부터 성폭행 혐의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스튜디어를 바로 나가버린 적도 있다.
 어산지 지지자들은 영국에서 체포된 그가 함정에 빠졌다고 믿고 있으며, 그 배후세력으로 미국 CIA를 지목했다. 실제로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 사건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산지를 고발한 두 여성의 진술에 따르면, 둘은 당시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이틀 연속 어산지와 상호 동의하에 섹스를 했다. 그런데 두 여성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산지가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두 여성의 진술에 따라 스웨덴 검찰은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두 여성은 각자의 경험을 공유한 뒤 어산지를 경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두 여성은 어산지가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여성에 대해 ‘삐딱한 가치관’을 가졌으며, 여성이 거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진술했다. 
 두 여성의 진술을 토대로 스웨덴 사법부는 전례 없는 형사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어산지 사건의 마리안네 니 스웨덴 담당검사는 성폭행 혐의로 어산지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구속영장 발부를 철회했다. 2010년 11월 그가 어산지에게 새 구속영장을 발부하기 전까지 인터폴은 어산지를 수배했다. 어산지는 런던에서 심문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는 철창행을 피하기 위해 계속 은신하던 끝에 영국에서 자진출두했다. 어산지의 보석 신청을 처음에는 기각했던 영국 런던지방법원은 결국 2010년 12월16일 어산지의 보석을 최종 허가했다.

 교도소에서도 인터넷 사용한 어산지

 어산지를 고발한 두 여성의 변호사 클라에스 보르그스트룀은 실제로 어산지를 상대로 성폭행 심리가 진행될 확률을 50%로 전망했다. 최악의 경우 어산지는 4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산지는 적어도 한 가지는 믿을 구석이 있다고 보르그스트룀은 지적했다. “스웨덴의 법체계는 세계에서 가장 공정합니다. 위키리크스 사건이 어산지 성폭행 혐의 사건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산지는 보석이 허가되기 직전에 교도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PC를 교도소에 반입하는 것은 금지됐다. 어산지는 2010년 12월10일부터 제한적인 조건 아래 구형의 PC로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의 변호사들이 전했다. 어산지는 모국의 일간지 에 한 선언문을 발송했다. 선언문에는 어산지의 과대망상 증상도 언뜻 비친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자 새로운 시대의 혁명가로 과대평가하는 어산지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선언문에는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위키리크스는 세상에 공개돼야 하는 사실을 발표했다. 언론의 진실 보도를 정치인들이 막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위키리크스는 ‘학술적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저널리즘을 선보였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위키리크스도 언론매체임을 분명히 한 어산지는 위키리크스의 폭로 내용에 대한 기존 언론매체들의 평가 작업을 폄하하지 않았다. “위키리크스가 언론매체들과 협력하는 것은 전세계인에게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위키리크스가 표방하는 학술적 저널리즘 덕택에 독자들은 스토리를 읽은 뒤 인터넷에서 해당 스토리의 토대가 되는 원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이 언론매체에서 읽은 스토리가 진실인지, 기자가 스토리를 정확하게 보도했는지 직접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어산지는 자신이 체포되면 어느 교도소에 수감되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해 2009년 겨울 네덜란드에 사는 친구인 롭 공그리지프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네덜란드 친구는 “관타나모 수용소가 겨울철이면 특히 지내기에 좋다”고 어산지에게 말했다. 하지만 무법천지인 관타나모 수용소는 자신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어산지는 친구에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산지는 자신이 ‘반미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어산지는 자신이 최초로 폭로한 내용이 소말리아의 이슬람주의자들 및 케냐의 부패와 불법 사형에 관한 것이었다고 강변했다. 그는 이 폭로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어산지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때조차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2010년 7월 말 그는 자신을 최후의 순간에 보호해줄 일종의 보험으로 한 암호파일을 인터넷에 올렸다. 전세계 어산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호기심 어린 네티즌과 비밀정보요원들이 자신의 PC에 ‘insurance.aes256’을 내려받았다. 암호파일의 용량은 소설책 1천 권 이상을 담을 수 있는 1.4GB나 되었다. 
 하지만 어산지가 인터넷에 올린 대용량의 암호파일을 연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 그가 대용량 파일을 어떤 방식으로 암호화했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해당 파일을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AES’(Advanced Encryption Standard) 프로세스로 256비트로 암호화했다는 어산지의 말이 맞다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도 이 파일의 암호를 푸는 데 40여 년이 걸린다.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등 비밀정보국이 극비문서에도 적합하다고 인정할 정도로 ‘AES256 Standard’는 실제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어산지는 마음만 먹으면 암호파일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언제든지 공개할 수 있다. 자신과 위키리크스에 안 좋은 일이 닥칠 경우, 자신이나 지지자들이 암호파일의 열쇠를 공개할 것이라고 그는 공언했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악인이 구사함직한 속임수를 떠올리는 작전이다. 
 베일에 싸인 암호파일의 내용을 둘러싸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암호파일은 일절 필터되거나 삭제되지 않은 미 국무부의 전체 외교전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관타나모 수용소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영업기밀 등 어산지가 폭로를 예고한 내용일 수도 있다.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금융기관에 관한 기밀을 유출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을 무렵, 은행 관련 주가지수는 하루 만에 3% 이상 떨어졌다. 어산지는 수감 중이거나 혹은 지금 당장 죽더라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셈이다. 

 외교전문 내용 왜곡까지
 

 어산지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법정소송은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 법적 절차 외에는 위키리크스와 위키리크스를 압박하는 기업인과 정치인 양쪽 모두 팽팽한 대립 전선에서 한 걸음씩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용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키리크스 폭로로 전세계가 시끄러운 틈을 타서 외교전문의 실제 내용이 교묘하게 위조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는 2010년 12월9일 목요일 인도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파키스탄의 여러 일간지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인도의 장군들과 인도 정부에 대한 미국 외교부의 평가를 일제히 주요 기사로 다루었다. 인도의 장군들과 인도 정부는 힌두교 극단주의자들과 암암리에 연합을 맺어 파키스탄에 저항하는 호전적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이 보도되자 파키스탄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국의 이 자체적으로 보관 중인 외교전문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런 내용의 기사는 해당 언론매체가 꾸며낸 것임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의 들끓던 민심이 인도를 규탄하는 유혈사태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파키스탄 사태는 외교전문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중요하며, 현 상황에서 미 정계의 최우선 순위는 폭로된 외교전문의 내용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미 국무부가 이런 후속 조처를 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정부 전체가 위키리크스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 Der Spiegel·번역 김태영 위원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조폭 형님’이 된 국가와 자본


이글은 한겨레신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경상자는 헤아릴 수도 없고, 중상자만 50명이고, 사경을 헤매는 사람도 3명 이상입니다. 11월 5, 6, 7, 8일 저들은 1천여 명의 불량배 양아치들을 고용해 동네를 광란의 유혈극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 폭력배들은 쇠파이프 쇠꼬챙이를 꽂고 각목에 칼을 꽂아들고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집집마다 뒤져 남자만 보면 무조건 난타했습니다. 또 삽으로 머리를 내리찍고 해머로 할머니의 어깨를 으깨버렸습니다. (중략) 이들은 허가받은 살인 청부업자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이러한 학살극을 오히려 두둔하고 있습니다.”
이 전단의 첫 문장은 ‘지금 사당동은 또 하나의 광주사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1986년께 서울 사당동 철거현장의 풍경이다. 80년 5월 며칠 동안 발생했던 광주사태가 87년 정치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20년이 훨씬 지난 2011년 오늘 이 시점까지 철거현장이나 노동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80년의 광주사태는 당시에는 은폐됐으나 몇 년 뒤부터 온 국민에게 알려지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명예 회복 작업도 진척됐다. 그러나 철거용역의 폭력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누가 가해자인지, 몇 사람이 어떻게 다쳤는지 도무지 알려진 것이 없다. 백주에 용역이 주권국가의 국민인 세입자들에게 식칼을 휘두르고 여성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거나 성폭력을 가해도 경찰이 비디오 게임 보듯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폭력은 우리 사회에서는 ‘비가시화’돼 있다.
이론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폭력이 아닌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교환,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과 사법기구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다. 폭력은 공권력만이 배타적으로 사용하고, 군과 경찰 등 억압기구는 전쟁이나 국가의 큰 위기 상황에서만 가동한다. 그런데 법이 정지되고 공권력이 무력화된 상황, 자본주의적 상품·노동·신용 거래가 사적 집단들 당사자 간에 해결해야 할 사안이 되는 ‘자유방임’ 상황에서 자본은 사적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서 이윤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 즉 물건을 팔았는데 상대방이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 내 상품과 돈을 폭력배들이 강제로 빼앗아가려고 할 경우, 노동자들이 파업이나 사보타주(태업)를 해서 공장을 정지시킬 경우, 소유권 없는 사람들이 토지를 ‘불법’ 점거할 경우가 그러하다.
법과 공권력을 대체하는 사설 폭력
그런데 시장경제 아래서도 깡패·파업파괴자 등 사설 폭력 집단이 법과 공권력을 보완하거나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공권력이 무력화해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때이다. 사설 보안요원의 폭력, 관료 부패, 범죄 등이 공존하는 자본주의는 공권력이 자본에 포획돼 있는 경우, 자본의 원시적 축적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대자본과 사설 폭력이 공권력을 완전히 압도하거나 사실상 법, 관료기구, 시장질서를 쥐고 흔든다.
폭력·청부업자들이 공권력과 합작하거나 공권력을 대신하는 자본주의는 ‘폭도 자본주의’(Mob Capitalism), ‘마피아 자본주의’(Mafia Capitalism) 혹은 ‘깡패 자본주의’(Gangster Capitalism)라 부를 수 있다. 과거 파시즘 아래의 여러 나라나 미국,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사설 폭력집단들은 유력 정치인과 심지어 국가의 최고권력층과 선을 대고 있는데, 이때 이들은 치외법권을 행사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폭도(Mob)들은 완전히 원자화된 개인들이 아무런 사회적 응집력 없이 권력에 순응하면서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았다. 이 경우 국가나 자본에 고용된 경호 보안요원들은 실제로 폭력조직에서 충원된다.
한국에서 용역회사가 등장한 시점은 1980년 후반, 정부의 재개발 정책이 합동 재개발, 즉 시공사-조합-주민 간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변화된 이후였다. 재개발의 공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힘없는 세입자들이 바로 거대 시공사와 조합이 고용한 철거용역의 폭력에 노출됐다. 돈을 가진 건설 시공사가 실질적 개발의 주체가 되면 조합 간부, 구청, 경찰, 지역 여당 국회의원까지 모두 이 먹이사슬에 연결돼 관청은 시공업체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
법적으로는 ‘행정대집행법 2조’에 의해 관청이 해야 하는 철거 업무를 제3자에게 맡길 수 있다. 그래서 경찰·검찰·법원은 행정관청과 조합 그리고 사기업이 용역을 동원해 철거하거나,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는 일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 서울 용산 참사 당시 철거용역의 불법을 눈감아주면서 검찰은 “행정법상 행정의 보조자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을 통제·관리하는 것은 시공사이며, 용산참사의 경우에도 형식적 계약은 조합과 정비용역회사들이 맺고 있지만 실질적 관리는 삼성·포스코 등 대형 건설사들이 맡았다. 용역회사의 업무는 행정대집행이라 볼 수 없으며, 법적으로 규정된 임무를 위반한다.
1989년 이후 유명했던 용역업체 (주)적준개발 등이나 이번 용산 참사와 유성기업·한진중공업의 노조 파괴에 동원된 용역회사 사장들은 군 출신이거나 유력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장들과 줄을 대고 있는 경우가 많다. 2009년 참사를 빚은 서울 용산 4지구의 재개발조합은 용산구청장과 친분 있는 이가 실소유주인 경비용역업체와 통상 가격의 갑절이 넘는 값에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서울 상도동의 철거 용역>, 2011-이종근
시공사에 고용된 구청·경찰·금배지
과거나 현재 현장에 투입되는 용역 직원들은 실제 조직폭력배 출신들로 충원되는 경우가 많다. 사설 폭력조직과 그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집단은 거의 유사한 출신 계층, 우리 사회의 바닥 출신이다. 1945년 이후 해방 정국에서 북에서 내려온 서북청년단원들은 실업청년들이었고, 그들의 폭력에 희생된 제주도 농민들과 서울의 노동자들은 사실상 같은 처지에 있었다. 이승만 정권 이후 군사정권 시절 선거 유세나 집회에 동원돼 야당 운동원들에게 린치나 테러를 가하고 협박한 정치깡패들 역시 거의 바닥 출신이었다. 오늘날 철거현장에 동원돼 세입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 직원들 역시 그런 일이라도 해서 일당을 챙겨야 먹고살 수 있는 사회의 주변층이나 가난한 일용직 청년들로 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빈민이나 노동자들에게 ‘차마 해서는 안 될 짓’을 해서 먹고사는 슬픈 존재들이다. 
경찰이 철거용역들의 폭력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합동 작전을 하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1980년대 사당동 철거에서 2009년 용산, 올해의 한진중공업 사태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경찰의 행동은 변함없었다. 나이든 여성이 건장한 남성들에게 머리채를 휘둘리며 죽도록 맞거나 성폭력을 당해도, 칠순 노인이 자식뻘 젊은이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두들겨 맞아도 때린 사람들은 전혀 처벌되지 않고, 맞은 사람들만 업무 방해에 공무집행 방해로 구속된다.

아무리 세입자 또는 파업농성자라 하더라도 일단 시민이 무자비한 폭행에 노출돼 있는데 법을 근거로 이를 묵인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즉 경찰의 ‘비관여’는 실은 가장 적극적인 개입이다. ‘경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은 실제로는 ‘경찰은 가장 적극적으로 사설 폭력의 편에 서 있다’는 말이 된다. 즉 경찰과 사설 폭력집단 간에는 ‘작전’, 일종의 역할 분담이나 묵계가 있다. 그것은 공공연한 일이지만, 용산 참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용역 집단이 경찰의 진압 도구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용역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 포착됐다.  

’바닥 출신’이 ‘바닥 인생’을 린치하다
장기농성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나 세입자들은 이 사회에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전자에게 해고는 곧 생존권 박탈이며, 후자에게 철거는 주거지와 직장 박탈과 같다. 따라서 이들은 생존을 위해 버틸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해고권과 조합과 건설업체의 배타적 소유권이 아무런 저항 없이 관철된다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주거권·생존권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말이다.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회사에 기여한 몫, 세입자들이 특정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수십 년 동안 자식을 키우며 살아온 주거자로서의 권리가 배타적 재산권의 논리 아래선 완전 무효화된다. 이들의 저항은 현행법과 절차에서 보면 불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생명과 존엄을 유지해야 할 인간이 자본과 국가의 개발 논리, 이윤 논리와 그들의 합동 작전으로 하루아침에 자신의 주거권과 생명권을 박탈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폭도 자본주의, 마피아 자본주의의 논리인 셈이다.
서울 상도동의 어떤 세입자가 증언했듯이, 철거용역들은 원래 건물을 철거하러 오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철거하러 온다. 이들에게 철거를 거부하는 세입자들은 자신의 일당을 앗아가는 성가신 존재이며, 무시해도 좋은 ‘잉여인간’들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폭력은 바로 이런 이중적 근거로 뒷받침된다. 철거용역의 처지에서 보면 신속한 철거와 진압만이 시공사에서 두둑한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더 잔인한 폭력과 더 험악한 말을 사용해서 세입자·노점상·노동자들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빨리 항복하도록 만든다. 용산 참사 당시 경찰은 시민의 불편을 이유로 진압을 서둘렀지만, 실제 다급한 쪽은 착공이 늦어질 경우 막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시공사와 그들의 관리하에 있는 용역회사였다. 용산 참사처럼 국가가 비호하고 사기업이 주도하는 일방적 개발정책은 세입자의 생명을 요구했다. 
팔짱 끼고 개입하는 공권력 
어떤 철거민이 말한 것처럼, 경찰이 ‘자본의 지팡이’가 되고 깡패집단을 당국이 고용하는 정도가 이처럼 노골화되면, 국민의 이름으로 법을 집행한다는 근대 자본주의 국민국가의 명분과 이상은 없어진다. 러시아의 마피아 자본주의와 한국 철거 노동현장의 폭도 자본주의의 본질적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 마피아는 은밀한 테러와 암살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지만, 한국에서는 백주에 공공연히 린치와 폭력이 가해진다.
한국의 철거·파업 현장의 용역 폭력을 보면, 한국은 약자에게 가난이 어떻게 죽을 죄가 되는지를 가장 처절한 방식으로 가르쳐주는 자본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공공성은 완전히 실종되고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곳에는 법도 공권력도 정지된다. 세입자들이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고 폭력 행사와 노조 파괴 업무를 전문으로 해서 돈을 버는 기업이 존재하는 자본주의,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타락한 형태의 자본주의다. 지난 두 민주 정부도 이 폭도들의 힘의 행사에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여기서 걸음을 멈추었다. 해방 뒤 우익 정치깡패에서 시작한 국가 후원 폭력은 1987년 이후에는 국가의 비호 아래 자본폭력으로 변했다. 후자의 경우 국가는 뒤로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개입하고 있다.
글•김동춘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2006년 개정판) 등을 저술했다.

희망 버스의 목적지는 ‘인간성 회복’ [노동과 삶]희망 버스와 소금꽃나무 김진숙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번호부터 부정기적으로 르포작가 이선옥씨의 ‘노동과 삶’ 이야기를 싣는다. ‘노동’은 자본과 더불어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더욱이 노동은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노동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약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체 나라 경제의 주요 구성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노동의 눈물’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필요가 있다. 그 눈물을 보듬을 때 건전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상황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문제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 문제는 세계경제 변화와 그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이선옥 르포작가가 처음으로 보듬는 눈물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00일 이상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씨를 찾아나선 185대의 희망 버스 이야기다.  _편집자
이선옥 르포작가

“하루하루 2차 희망 버스를 기다렸어요. 여러분에게는 왔다 가는 ‘하루’였지만, 저희는 이날만을, 정말 분초 단위로 여러분을 기다렸어요.”
지난 7월9일,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2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에 도착했다. 정말 올까, 설마 185대가 올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기다리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빗속에서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1만 명 넘는 사람들을 보고 그제야 웃었다. 피를 말리던 지난 한 달 동안의 시간을 그들은 “분초 단위의 기다림”으로 표현했다. 당사자의 절실한 언어를 뛰어넘을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시 절감한 한마디였다.

탈것과 이동수단 총동원


지난 7월9일 2차 희망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시민들이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다.

희망의 버스, 봉고, 자가용, 비행기, 자전거, 트럭, 휠체어, 천릿길 행군…, 2차 희망의 버스는 탈것과 이동수단이 총동원된 장관을 만들어냈다.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이들을 지키기 위해 6개월 넘도록 35m 상공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모여든 희망 버스.
185일째인 그녀의 농성 날수만큼 응원하자는 뜻에서 무모하게 185대를 제안한 이들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일까?
지난 6월11일, 1차 희망의 버스가 다녀간 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는 다른 국면을 맞았다. 6월27일, 채길용 노동조합 지회장이 회사와 총파업 철회, 업무 복귀를 전격 합의한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즉각 ‘한진중공업 노사 타결’이란 속보를 날렸고, 정리해고 사태가 정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장은 ‘상황 끝’이 아닌 새로운 상황의 시작으로 어지러웠다. 부산역에서 만난 한진중공업 조합원 모두 한목소리로 지회장의 합의를 직권조인이라 비난하며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바로 전날 조합원 200명과 간담회를 했을 때도, 집행부가 복귀 의사를 물었지만 상집 간부 일부와 지회장만 빼고 우리 모두 반대했어요. 복귀하게 되면 진숙이 누나와 농성 중인 조합원 모두 2년 넘게 싸웠는데 남는 게 없으니까요. 지회장 혼자 공권력이 들어오는 날 합의해버린 거예요. 공권력이 들어온다는 소리를 듣고 상집 간부 빼고 모두 85호로 달려가서 크레인을 지키려고 농성하는데, 회사랑 만세 부르는 지회장 사진을 본 거예요. 인터넷으로 타결 뉴스가 나왔는데 아무도 몰랐어요.” -김상욱(29·가명), 2008년 입사, 2011년 해고 
“저는 비해고자지만, 이게 해고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면 다음에 우리니까 내 문제잖아요. 그런데 지회장은 일하면서 투쟁하고, 해고자는 법적인 투쟁을 벌이자고 하는데, 우리는 생각이 달라요. 우리한테는 합의된 게 전혀 없다고, 합의 안 한다고 해놓고 속인 거예요. 우리를 지켜준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싸웠던 건 정리해고라는 문제와 85호 때문이었어요. 진숙이 누나는 그 목숨과 우리를 바꾸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회장은 합의 후에 투쟁 현장에 얼굴도 안 비치고, 85호에 밥 올리는 데도 협조하지 않고 있어요.” -이정환(35·가명), 2006년 입사, 비해고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을 향해 행진하는 길에는 ‘노사합의를 환영하며 조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합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협력업체, 시민단체(라 칭하는 관변단체), 부산 시민, 지역 주민의 이름으로 붙은 플래카드들은 한진중공업의 해고 사태가 끝났다고 못박고 있었다. 행진하던 중 조합원들이 이 플래카드를 주욱 찢었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란다. 노사합의가 아닌 직권조인이며 조합원들의 동의 없는 합의는 무효이다. 김진숙이 아직 그곳에 있고, 그녀를 지키러 간 사수대가 크레인에서 농성을 시작했으므로, 행정대집행으로 끌려나간 조합원들이 크레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시 모이고 있으므로,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정상화는 사실이 아니다.
채길용 지회장이 직권조인을 한 뒤 김진숙은 “처참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우릴 버렸다”고, “얻어맞고 끌려나가는 조합원들의 모습보다, 지회장이 회사와 만세 부르는 그 모습이 더 처참하다”고 했다. 노조마저 버린 싸움, 이제 끝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과, 사태가 해결됐다고 왜곡하는 언론에 고립돼, 마지막 남은 기운마저 다 소진한 조합원들이 기대한 건 희망 버스뿐이었다.

한진중 노동자의 마지막 희망 ‘희망 버스’
“옆에 있는 동료들 믿고, 진숙이 누나 믿고, 희망 버스 믿고, 경찰한테 끌려갈 때도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9일까지만 버티자, 서로 그랬어요. 희망퇴직 쓰려는 동료 있으면 제발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버티자…. 우리를 보러 온다, 사람들이 온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오늘 이 장면들이 꼭 꿈꾸는 것만 같아요. 사람들 보니까…, 진심으로 연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니까….” -김상욱
“1차 때도 우리 회산데 우리를 보러 손님들이 온 건데 꼭 우리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는 사다리 하나 달랑 준비했을 뿐인데…. 1차 때도 그랬지만 우리한테는 희망 버스가 엄청난 거예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부산 끄트머리의 회사까지 와주었잖아요.” -이정환
지회장과 사무장은 조합원들의 형사처벌과 노조 와해를 우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자본과 권력이라는 강자들의 공세에 둘러싸인 노동조합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직권조인이란 건 언제든 정당할 수 없다. 그 행위를 통해 보호하겠다는 조합원 당사자들이 반대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와해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직권조인으로 인해 오히려 노조가 무너지고 있는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묻고 싶다. 비록 차악의 선택일지라도, 혹은 처참한 실패가 보일지라도 조합원과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면 지금 같은 분노는 없었을 것이다. 조합원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없는 합의라면, 옳아도 옳지 않다. 그것이 노동조합 간부의 책임이자 숙명 같은 것이다. 조합원들이 버린 지회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년 전 쌍용자동차 노조가 77일간의 옥쇄파업 끝에 합의한 ‘노사 대타협’도 벼랑 끝에 몰린 집행부가 선택한 불가피한 차악이었다. 77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을 치른 조합원들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집행부는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다 느꼈다. 차라리 다 같이 죽자던 조합원들의 절규, 몸과 마음의 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는 조합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한, 그야말로 피눈물로 맺은 합의였다. 비록 그 합의가 차악이었어도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할 수 없었다. 위원장과 집행부가 끝까지 조합원들과 생사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체불 노동자, 스마트폰 구입해 트위터 시작

2차 희망 버스에 탑승해 부산 한진중공업에 들어가려던 한 시민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현장의 사정이 이럴진대, 언론은 노사합의 이후 일부 강성 노조원들과 외부 세력만이 투쟁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합원들은 있는 힘을 다해 현장의 진실을 알리고 있지만 여전히 벅차다. 몇 달째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이 없는 돈에 스마트폰을 장만해 트위터를 시작했다. 김진숙과 이어진 유일한 끈, 세상 밖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트위터가 지금 이들이 가진 최선의 무기다.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강성이어서 남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남은 거”라고, “소수가 아니라 조합원 대부분이 지회장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열심히 공장 안의 진실을 타전하고 있다. ‘외부 세력’이라 칭한 희망 버스 탑승자들은 이들의 진실을 부지런히 세상 밖으로 퍼뜨렸다. 1차, 2차 희망 버스는 당사자들과 외부 세력이 경계를 넘어 연대한 힘으로 조직됐다. 내부와 외부로 경계를 나눈 건 그들일 뿐, 지금 영도의 밤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우리다. 
2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한진중공업을 향해 걸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길 옆에 서서 “고맙습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연방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자식이 한진에 다니거나, 남편이 해고가 된 모양이다. 해고는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살인이므로, 함께 살인의 행렬을 막겠다고 찾아온 이들이 그저 고마운가 보다.

살인게임 즐기는 고양이 앞의 쥐
지난 2월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172명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연초에 400명 해고를 선언한 뒤 1월에 290명을 발표했다가, 다시 희망퇴직을 거부한 최종 명단 172명을 추린 것이다. 서너 달 사이 회사가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노동자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회사는 2010년에도 인원 30% 구조조정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해고자인 김진숙의 단식농성으로 현장의 반대가 일어나자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고 합의했다. 2007년에도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 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고, 2003년에는 김주익 지회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29일 동안 싸우다 목맨 뒤에야 정리해고를 철회했다. 누군가 죽거나 굶어야만, 누군가 크레인에 올라가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만 겨우 해고를 막을 수 있는 현실이다. 무엇을 더 따내기 위해 굶고, 죽는 것도 힘든데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이른바 ‘귀족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심심하면 한번씩 아가리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살인게임을 즐기는 고양이의 앞발에 잡힌 쥐처럼, 가엾다.
“저는 이가 아파서 5일 동안 치료받으러 점심시간에 외출을 했어요. 월차 내려고 했는데 상사가 일이 많으니 외출로 하라 해서 그렇게 했어요. 외출한 날도 저녁에 다 야근을 했어요. 그런데 그 외출 5번이 근태라고 해고 사유가 된 거예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저처럼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잘렸어요. 젊은이들을 뽑았으면 숙련된 기술자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한진을 봐왔어요. 조선 경기는 계속 호황이었고, 제가 해고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이 회사에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했는데…. 회사는 얼마 전에도 집집마다 등기우편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어요. 집회와 농성에 참여하면 경기가 좋아져서 재고용할 때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협박이에요.” -김상욱
“상욱이 경우처럼 해고 사유가 정말 어이없어요. 저는 해고되지 않았지만 미안해요. 옆에 있던 동생인데 두고 가는 게 미안하고, 6개월 동안 같이 먹고 자고 가족보다 더 친형제 같은 사람들인데. 해고로 관계들이 파괴되고 지회장은 얼마 전까지 우리랑 ‘10원짜리’ 욕하고 싸우던 용역들의 호위를 받고 나가니, 참 말할 수 없이 착잡해요.” 
“해고 발표가 났을 때 비해고자들 모두 ‘휴’ 하는 안도가 10%, ‘다음은 우리 차례다’가 90%였어요. 김주익 지회장 그리 되고 잠깐만 없었지, 몇 년 동안 계속이었어요. 저도 연초엔 해고자 명단에 포함돼 발표됐다가, 다시 냈을 때는 빠졌어요. 지금 비해고자여도 언제 잘릴지 몰라요.” -정기선(41·가명), 2003년 입사, 비해고
집단에 대한 폭력이 가장 너그럽게 용인되는 게 바로 노동현장의 ‘구조조정’이다. 그 건조한 단어 너머에는 구체적인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는 직접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안에서 노동자는 그저 비용일 뿐이다. 개별 인간의 인격과 존엄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다, 그저 비용으로 처리되는 노동자들의 하찮음이…, 그래서 제일 슬프다. 

자재는 비 오면 덮어주고, 기계 점검도…

한진중공업 노조원(오른쪽)이 희망 버스를 타고 내려온 한 시민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자재는 비 오면 덮어주고, 기계는 고장날까 점검해주건만, 오직 목숨이 있는 인간들만 경제의 이름으로, 산업의 이름으로 죽도록 부려먹다 가차 없이 버려진다. 
해고라는 것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너그러워도 되는 것일까? 170명을 자른다고 발표하면 주식값이 뛰는 비정한 자본주의를 그냥 용인해도 되는 것일까? 다른 생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해고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한 것일까?
희망 버스는 이 많은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모여 다시 인간의 복원을 외치는 장이었다. 한 사람의 절규에 응답하면서 시작됐지만, 노동자 수만 명의 비참한 현실 때문에 일어났고, 수십만 명의 공명으로 가능했다. 촛불은 광장의 담론을 만들었지만, 희망 버스는 담론을 넘어선 현장의 행동을 만들어냈다. 투쟁 현장조차 중심부가 아니면 외면받기 십상인 서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의지들의 총합의 장이었고, ‘결사투쟁’의 세대와 ‘연대 돋는’ 세대 교합의 장이었으며, 노동자계급과 시민계층이 화합하는 장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김진숙이라는 걸출한 여성노동자는 언제나 고립돼 시민권조차 얻지 못한 노동자에게 비로소 ‘시민권’을 안겨주었다. 마치 85호 크레인 위에서 대지를 관장하는 여신처럼, 해고당한 조합원들을 위로하며, 아직 인간의 온기가 남은 사람들을 독려하며, 고통 속에서도 이 모든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고 있었다.
“회사 사람이 다른 조선업종 직장을 소개해준다고 거기 가서 다시 일하라 했어요. 그런데 딴 데 가면 제가 행복할까요? 가족보다 더 끈끈한 이 사람들을 두고 도저히 갈 수 없어요. 우리는 조합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누나랑 희망 버스가 지켜주고 있어요. 공권력이 들어온다고 할 때 가장 먼저 85호 크레인으로 달려갔어요.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밧줄로 크레인 계단에 몸을 묶었어요. 수십 명이 달려갔는데, 저 위에서 진숙이 누나가 우리보고 그러는 거예요. ‘공권력 투입돼도 걱정하지 마. 내가 끝까지 너희들 꼭 지켜줄게.’(울음) 우리도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누나 꼭 지켜줄게요’라고 약속했어요. 진숙이 누나가 내려오지 않는 한, 누나가 안전하게 내려올 때까지 저는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김상욱
직권조인 이후 몇 차례 크레인을 진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녀는 강제 진압하면 뛰어내릴 수밖에 없음을 호소했다. 크레인에 오른 이후 하루도 내려가는 연습을 거른 날이 없었고, 꼭 승리해서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김주익의 원혼과 함께 제 발로 내려가겠다고 약속했던 그녀다. 희망 버스가 오기 전엔 설레서 잠을 못 잤고, 희망 버스가 다녀간 뒤에는 그리워서 눈감지 못했던 그녀다. 그러나 2차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끝내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는 곳 500m 전부터 차벽을 쌓아놓고 통째로 길을 막은 경찰들 때문이다. 그 절망과 고립의 차벽을 넘어, 조선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릴 조합원들과 크레인 위의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썼지만, 경찰은 평화로운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최루액 대포를 무차별로 쏘아댔다. 경찰 덕에 3차 희망 버스가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현장에 돌아가면 하고픈 건 ‘여행’
“희망 버스가 돌아가고 나면 당장엔 갑갑하겠지요. 하지만 지난번 1차 버스 이후에 2차가 있었잖아요. 2차 버스를 기다리는 힘으로 버텼으니 또 3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그날만 기다리는 거죠. 3차가 언제 잡히겠노 하다가 잡혔다니까, 우리는 또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우리 싸움 꼭 이기지 않을까요?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는데, 꼭 이길 거예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여행을 하고 싶어요. 형들하고 배낭 메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여행 한번 갔으면 좋겠어요.” -김상욱
일상에 치인 자가 꿈꾸는 여행과 일상이 파괴된 자가 꿈꾸는 여행은 다르다. 이들이 꿈꾸는 여행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파괴된 삶을 온전히 회복하고 싶은 몸부림이다. 이 참혹한 전쟁이 끝나 그녀가 안전하게 땅을 디딜 때까지, 김주익과 곽재규의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정리해고로 버림받고 용역 깡패들에게 내동댕이쳐진 조합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훌쩍 배낭 메고 여행을 떠나는 그 아무것 아닌 일상을 되찾을 때까지, 희망 버스는 인간의 세상을 향해 계속 달려야 한다. 아니 달릴 것이다. 
namufree@gmail.com

엄청난 순익 보장하는 값싼 티셔츠 [Cover Story]H&M 티셔츠의 세계여행 ④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볼프강 우하티우스 Wolfgang Uchatius 기자

말레이시아를 떠난 화물선은 수에즈운하와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독일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매장의 세계’다. ‘돈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는 고리타분한 옛말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돈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이 옛말은 더 이상 고리타분하지 않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돈을 가진 이들은 53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시자 빌 게이츠가 아니다. 470억달러를 가졌다고 추정되는 금융투자가 워런 버핏도 아니다. 세계에서 최고 부자라고 손꼽히는 사람들의 부는 런던이나 로스앤젤레스나 두바이에서 길을 걷다 쇼핑몰에 들어가는 수많은 이들이 가진 돈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전세계 인구 20%에 달하는 15억 명이 H&M에서 옷을 사입을 수 있을 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들을 ‘세계적 소비계층’이라고 부른다. 이 계층이 가진 재력은 1850억달러에 이른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화려한 H&M 매장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생산은 방글라데시가 했지만 이익은 독일이 챙겨
이 계층들이 있기에 광고업체와 톱모델과 이미지 캠페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계층이 바로 문제가 되는 싼 셔츠를 구입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이 소비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H&M은 왜 생산업체 운영자들에게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라고 했을까요? 왜 여공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을 지급하라고는 하지 않았을까요?” “H&M은 왜 생산업체에서 행동강령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를 자사만이 시찰할 수 있고, 다른 독립적인 감시 기관은 할 수 없도록 하는 거죠?”
사람들은 왜 커피 한 잔 값 정도로 낮은 가격의 티셔츠를 필요로 하는가? 티셔츠를 사기 위해 커피 두세 잔 값을 지급하는 일이 그토록 힘든가? 커피 두세 잔 값을 낼 만한 여력이 충분히 있지 않는가?
하지만 세계적인 소비계층은 이런 질문을 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물건을 구입할 뿐이다. 
티셔츠당 4유로16센트가 H&M에 돌아간다. 물건 생산과 운송에 들어간 1유로40센트를 제외하면 2유로76센트가 H&M에 남는다. 그다음 2유로 정도가 매장 임대료와 독일 내 운송비, 판매원이나 회계사의 임금, 광고 및 카탈로그 제작비로 빠질 것이다. 티셔츠 라벨에는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라고 쓰여 있지만, 4유로16센트의 많은 부분이 독일에 남게 된다.

최종적으로 티셔츠당 순익은 60센트가 된다. H&M이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벌을 판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싼 티셔츠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H&M은 이런 숫자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른 의류 전문가들, 예를 들어 롤란트 베르거 컨설팅에서 나온 사람들도 이런 계산이 옳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티셔츠는 이제 H&M 매장에 걸려 있다. 이 매장은 ‘슈피’라고 불린다. 함부르크 슈피탈러 거리 12번지에 있는 H&M 매장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슈피 매장은 독일에서 큰 매장 중 하나다.
점심시간이어서 고객으로 매장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산하지도 않다. H&M이 한산한 적은 없다. 보이지 않는 스피커에서는 팝음악이 흘러나온다. 10대 소녀들이 톱을 몸에 대보고 있다. 점원이 금색 칵테일 드레스를 똑바로 걸고 있다. 점원의 이름은 안네다. H&M에서 성은 필요 없다. 모두 그냥 이름만 부른다. 상사에게도 높임말을 쓰지 않는다. 이 기업은 직원을 가족같이 생각한다. H&M은 사실상 지구에서 가장 큰 가족이다.
안네는 6개월 전에 대입시험을 치렀다. 그 뒤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옷을 사기만 했던 곳에서 일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성은 슈미트였다.

한정 제품 구매 위해 새벽부터 줄 선 고객들
안네 슈미트는 H&M이 맘에 든다고 했다. 이 기업은 다양성이 있고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전 매장으로 프랑스 랑뱅의 수석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특별 컬렉션이 도착했다. 벨벳 정장과 어깨가 뾰족한 재킷 등 오트쿠튀르 의상을 몇십유로에 살 수 있었다. 당연히 수량은 한정됐고, 새벽 4시부터 사람들이 슈피 매장 앞에 줄을 섰다.
얼마 뒤 의류생산직 노동자인 나즈마가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공장 뒷마당에서 처음으로 새로 책정된 임금을 받아 세어보고 있다. 그녀는 5천타카 이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4천타카(약 42유로)를 조금 넘는 돈을 받았을 뿐이다. 
이 의류공장은 월급에서 나즈마가 공장에서 일한 지 3년이 된 해부터 받던 보너스를 없애버렸다. 캄보디아나 베트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두랄브러더스사는 생산비용을 낮춰야 한다. 티셔츠는 앞으로도 계속 싸게 생산될 것이다.
면화 가격 또한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하향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최고 정점을 지났다고 말한다. 과거에 가격이 정점에 있었던 때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면화 가격이 올라가면 세계 곳곳의 농부들은 이 작물을 점점 더 많이 심는다. 미국도 지난해보다 올해에 1.5배 많은 면화를 수출했다. 곧 지나치게 많은 면화가 세계시장에 나올 것이다.
H&M은 티셔츠 가격을 계속 낮게 유지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 기업은 대중이라는 막강한 힘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H&M은 세계에 220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모스크바나 이스탄불에서도, 상하이나 서울에서도 똑같은 티셔츠를 살 수 있다. 매장의 세계는 넓다. 매장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티셔츠가 팔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H&M이 두랄브러더스사에 티셔츠를 많이 주문할수록 할인율이 더 높아진다. 티셔츠 수량이 많기 때문에 그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싼 티셔츠에 숨겨진 마지막 비밀이다. 사람들이 티셔츠를 많이 사면 티셔츠 가격은 계속 싸게 유지될 것이다.
안네 슈미트가 티셔츠를 손에 들고 있다. 날씬한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고,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머리를 가졌다. 그녀는 H&M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지만, 단지 하나의 직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그녀는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게 될지 모른다.
안네 슈미트가 티셔츠의 재질을 만져보고 위를 쳐다보더니 조용히 웃는다. 자랑스러운 것도 즐거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안한 듯하다.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그녀에겐 단지 티셔츠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점이다. 
ⓒ Die Zeit·번역 이상익 위원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재정위기인가, 더블딥 위기인가 [기고]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이글은 미디어스의 2011.08.25 기사를 퍼왔습니다.

▲ ⓒ 연합뉴스
2011년 8월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주가폭락사태가 유럽과 미국에서 이어지는 재정위기와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좀처럼 진정세를 찾지 못하고 추락과 횡보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의신용등급 하락 우려와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다량 보유한 은행들의 부실우려까지 겹치면서 추가적인 상황 악화 위험성까지 내재하고 있다. 3년 만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현재의 국면이 실질적으로 위기국면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충격인가 하는 진단이 엇갈리고 있다. 초기에는 일시적 혼란이나 충격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가면서 실물지표들이 확인될수록 더블 딥 가능성을 더 크게 전망하게 되고, 이에 반비례하여 명확한 대응책이 부재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상황은 바뀐다. 오히려 급격한 거품 붕괴 같은 연속적인 충격은 보이지 않더라도 사태가 매우 장기화할 수 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미국과 유럽이 6~12개월 안에 더블 딥에 빠질 수 있다"(모건 스탠리), “리세션 위험이 명백히 높아졌다” (JP 모건), “새벽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메릴린치)는 등 미국 투자은행들의 전망도 빠르게 비관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만 경기 침체로 인정하고 있고 현재는 여전히 낮지만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경기하강 추세가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하반기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완화나 경기부양 정책이 대부분 종료되고 있어 민간 부분의 자생력만으로 경제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지 하는 점이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두 거대 경제권인 북미와 유로권이 서로 악영향을 주면서 경기침체를 부채질 할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핌코 설립자인 빌 그로스는 아예 “미국 경제는 경기회복을 위한 자생적인 능력을 잃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논쟁은 바로 현재 위기가 과연 ‘재정위기’이냐 하는 점이다. 처음에는 언론 매체에서 보도되는 재정위기라는 점을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듯 했지만 재정위기가 균형재정 추구로 이어지고 긴축으로 귀결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이에 대한 강한 비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 장관이나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마크 웨이스브롯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면 미국을 포함하여 실질적으로 재정위기에 접어든 나라들은 없다는 것이다. 웨이스브롯에 의하면 아직 미국의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비율은 GDP대비 1.4%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만약 미국 국가채무가 문제가 된다면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가 시장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유통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요점은 국가부채/ GDP의 비중이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100%를 전후를 오가고 있는데, 긴축을 통해 부채 규모(분자) 자체를 당장 줄일 수도 있지만 이는 동시에 성장률(분모)도 함께 떨어져 결국 부채 비율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긴축으로 부채규모를 줄이기보다는 실물경제를 살려서 성장률을 제고함으로써 부채의 상환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긴축이 아니라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사연의 여경훈 연구원 역시 1980년대와 비교하여 국가 부채 비율이 20% 정도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에 비해 지금은 국채 이자율이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부지출 대비 이자 지급 비중이 오히려 과거에 비해 절반 수준인 5.7%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자 상환 부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재정적자가 심각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현재 위기를 재정위기로 진단하는 것은, “재정위기의 지속 불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확산하여, 실제 재정위기가 초래되면 복지지출 삭감을 선택이 아닌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부활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이제 시작이다. 새롭게 찾아온 위기의 성격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진정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연구원은 실물 경제가 재 침체로 들어서는 국면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 상황을 과도하게 재정위기로 몰면서 긴축과 복지지출 감소로 연결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잘못된 원인 진단에 의한 잘못된 처방이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지금은 실물경기를 살리고 양극화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를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해 추가 감세가 아닌 적극적인 증세정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금융회사들과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은 지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몇 가지 외환시장 건전성 대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외적인 충격에 취약하다고 본다. 우리 연구원이 꾸준히 제기해온 자본 유출입 통제 장치들과 정책들을 더욱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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깰 수도 놔둘 수도 없는 유로 [Special ReportⅡ]유로 붕괴하나 ④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디.

토마스 다른슈타트 Thomas Darnstadt
만프레드 에르텔 Manfred Ertel
아르민 말러 Armin Mahler
페터 뮐러 Peter Müller
크리스토프 파울리 Christoph Pauly
크리스티안 라이어만 Christian Reiermann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안네 자이트 Anne Seith 기자
그리스와 같은 경제적 취약국이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부채 구조조정을 실행하고 대대적인 채권자들의 탕감 조치 없이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경제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7월12일 그리스 아테네 시내에 위치한 아테네 여신 동상과 그리스 국기 뒤로 달이 떠오르고 있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금은 이른바 ‘헤어컷’이라 칭해지는 부채 할인을 실행할 수 없다. 반대자들은 금융시장이 아직 불안정하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그리스에 대한 부채 할인이 이뤄지면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뒤처럼 새로운 경제위기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독일은 경제위기 극복에 채권자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의 집권 연립정당인 기민·기사연합과 자유민주당(FDP)이 독일연방의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회는 이후의 구제책 비준을 거부할 것이라고 한다. 기민·기사연합의 수석총무 노베르트 바르틀레는 “우리가 더 오래 기다린다면 민간 채권자들의 손에 쥐어진 채권이 다 없어진다”면서 “그렇게 되면 독일의 납세자들이 그리스 구제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중 강제로 포기하는 사례 없어야
유럽중앙은행은 어느 투자자도 강제로 채권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유로화 수호자’는 경고한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그리스가 채권자들의 완벽한 동의를 받지 않고 채무이행을 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면 그리스의 국가신용도를 가장 낮은 D로 낮춰야 한다. D는 ‘디폴트’(Default), 즉 채무불이행의 약자다. 만약 채무 상환 기간이 채권자들의 동의하에 연장되더라도 그리스의 신용평가는 ‘부분적 채무불이행’(SD·Selective Default) 단계로 낮춰지게 된다.
둘 중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국채를 더 이상 담보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리스 은행들은 유럽의 자금흐름에서 광범위하게 차단되고, 유동성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한다. 그리스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해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유럽중앙은행과 그 동료들에게 한 가지 협상안을 제안했다. 그리스 채권이 민간 투자자들이 부담에 참여함으로써 담보 가치를 잃게 되면 유럽중앙은행이 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10명으로 구성된 독일 재무부의 ‘그리스 담당팀’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전문가들은 유럽 국가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그리스에 두 번째 구제금융으로 주어지는 900억~1200억유로의 새 자본 외에, 추가적으로 유럽 구제금융기금 EFSF에서도 차관을 주자고 제안했다. 이 차관을 최고 신용도인 AAA로 평가된 유가증권으로 그리스 은행에 넘겨줘서 이들이 이 유가 증권을 유럽중앙은행에서 받는 대출의 담보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안을 실행하게 되면 새 구제금융에 지금 계획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이 이 조치를 위해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려면 실제로 창립에 필요하다고 산출된 4400억유로를 동원할 수 있도록 재정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회원국들은 보증 범위를 두 배로 올려야 한다. 독일의 부담은 이제 1230억유로 대신 2460억유로로 늘어난다.
‘유로화 지킴이’들은 부수적으로 이른바 ‘파이낸셜 스태빌리티 펀드’(Financial Stability Fund)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최초의 그리스 구제금융 때 만들어진 이 기금은 약 100억유로 규모다. 이 기금은 비상사태에 그리스 은행들의 자본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지금까지 이 기금은 사용되지 않았다.

더 많은 지원이 사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 없어
수많은 방해와 요구 조건이 있음에도 그리스에 결국 돈이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로써 유로존 국가의 부채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독일 정부 내에 한 명도 없다. 1년 이상 지속된 위기 상황 뒤 베를린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예측해보면서 그에 대비하려 한다.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산하에 있는 위기관리팀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보고 있다. 만일 한 국가가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거나 회원국 중 하나가 통화동맹에서 탈퇴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공통 통화 구역의 경제적 불균형을 방지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위기 국가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다른 국가들이 손을 떼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이보다 좀더 현실적인 방법은 그들을 지금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원하면서 상태가 호전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많은 자금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극단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이 실행될 것이다. 진척은 미미하고 경기 호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 유로 국가들은 그리스 지원을 포기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아테네로 많은 지원금을 보냈음에도 앞으로 계속 지원금을 쏟아붓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서 자금을 유입할 수 없게 된 그리스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채무불이행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스 신용기관들이 여전히 거대한 금액의 국가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 금융권이 초토화된다.
이런 결과는 다른 나라로 위기가 번져갈 위험이 있다. 그리스가 쓰러지면 투자자들은 다른 경제력이 약한 유로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연쇄반응이 일어나 더 많은 은행이 파산을 걱정하게 될지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 그리스는 통화동맹에서 탈퇴해 드라크마화를 다시 도입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그리스 정부는 이 방법을 논의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이 방법을 추천했다. “유로화 포기는 차악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뮌헨의 민간경제연구소 IFO 소장 한스베르너 진의 말이다.
미국 뉴욕대학 경제학 교수인 누리엘 루비니도 같은 의견이다. “한 국가는 자국의 통화를 가지고 있어야 환율을 조정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는 3년 전에 이미 경제위기를 예측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루비니 교수는 “지금까지 모든 경제위기에서 자국 통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조처가 위기를 겪는 국가의 경제에 활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명백한 원리가 역사적으로 처음 결성된 유럽의 통화동맹에서는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 통화동맹 탈퇴하면 더 심각한 문제 발생

자국의 재정위기로 어두운 표정이 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에반젤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

그리스가 통화동맹에서 탈퇴하더라도 그리스의 부채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부채는 여전히 유로화로 남게 되고 이 부채는 하룻밤 사이에 외환 부채가 된다. 드라크마를 평가절하하기 때문에 유로화 부채는 새로운 국가 통화 대비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그리스는 채무 상환 의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는 물론 다른 유로존 국가의 은행들도 다시 압박을 받게 된다. 금융권을 위해 또다시 수많은 돈이 드는 구제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은 최종적으로 통화동맹을 통화가치가 높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그룹과 통화가치가 낮은 자국 통화를 가진 나라들의 그룹으로 분열시킬 수밖에 없다. 유로화 비판가인 전 연방은행 총재 빌헬름 뇔링은 이 해결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과 함께 유로화 도입에 반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금은 구제금융에 반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통화동맹 붕괴가 아닌 다른 대안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통화동맹이 보증동맹으로 변화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구제책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보증동맹으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2013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계획된 상시 구제금융기금인 ESM으로 이 위험한 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결과는 대략 이런 식이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북부 국가들이 적자 국가들에 장기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 차관으로 계산되던 금액은 이자가 붙지도 않고 갚지 않아도 되는 순수한 재정 지원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채 국가는 지속적으로 보조금 수혜자가 된다. 수혜국들은 이탈리아의 메조지오르노 지역이나 벨기에의 왈롱 지역처럼 경제강국인 이웃들의 기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많은 경제·경영 전문 정치가들은 더 탄탄한 중앙정부를 가진 유럽 정치 연합을 빨리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유로존 국가들이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면 유럽 단위의 경제 시스템을 훨씬 더 잘 조정할 수 있고, 공통 통화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수혜국에서 개혁이 실행되고 이 국가들의 경쟁력이 상승할 것이다. 얼마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 장클로드 트리셰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조치 권한을 가진 유럽 재경부를 신설할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은 통합이 경제적 불균형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해서 그 어떤 나라보다 잘 아는 것이 독일이다. 독일은 약 20년 전 동독-서독 통화동맹을 통해 이미 이런 상황을 경험했다. 1990년 7월1일 D-마르크는 1 대 1의 환율로 과거 동독에서 사용되던 마르크와 교환됐고 석 달 뒤 옛 동독 지역들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새로운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독일은 통일됐다. 이는 정치공동체가 동반된 통화공동체의 전형적인 사례다.

유로가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할 점
하지만 빠른 통일이 동독-서독 통화동맹의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곧 인정해야 했다. 통일 독일의 경제적 불균형은 심화됐다. 옛 동독 지역에서는 생산성을 옛 서독 지역의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데 실패한 수천 개의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했다.
실업률이 급증하고 동독과 서독 지역 간의 자금 이송은 곧 1조마르크를 넘어섰다. 오늘날까지 옛 동독 지역은 경제력과 생산성과 수입에서 옛 서독 지역에 뒤처져 있다.
독일 통일도 이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독일 통일은 단지 통화공동체의 부정적 결과를 재정적으로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새롭게 연방에 가입한 주들(옛 동독)은 유리한 조건으로 서독의 경제력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지원받았고, 옛 동독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서독 사회보장 시스템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은 유럽의 수뇌들에게 모범 사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잘못 조직된 통화공동체가 얼마나 빠르게 장기적인 보증동맹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됐든 이런 방식은 현재의 유럽 협약에 위배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약이 만들어지고, 각국 의회에서 비준돼야 하고, 국민투표도 시행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유럽 국민과 그들의 대표는 그 전에 이미 아테네나 리스본에서 긴축재정 정책이 거리 시위대들의 저항에 막혀 실패하거나 베를린에서 수십억유로에 달하는 채무보증을 실제로 감당해야 함으로써 통화동맹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지 모른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2011년 8월 24일 수요일

[사설] ‘오세훈의 주민투표’, 들러리 설 이유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의  2011-08-23자 사설입니다.
아주 낯선 선택을 요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두 문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에 앞서 투표 거부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투표다. 주민투표에선 거부도 보장된 선택인 만큼, 어떤 결정도 민주시민의 권리다.
이번 투표는 특히 청구와 발의 과정에서 허다한 위법 부당성 탓에 투표의 정당성에 문제제기가 많았다. 무상급식 소관 기관인 교육청이 ‘안 해도 되는 투표’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투표’라고 주장하는 건 그런 까닭이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은 투표 거부가 민주시민의 의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이미 선관위에 의해서도 배척됐다. 현재로선 반론다운 반론이 없다.
교육청 지적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교육청 소관 사항을 서울시가 가로채 주민에게 판단을 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교육청에 대한 예산 지원에 관한 사항이라면 할 수 있지만, 예산 사항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은 시의회가 재의 끝에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였다. 오 시장은 그 적법성에 대해 대법원에 심판을 의뢰했다. 법원이 심사중인 사안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는 배후에서 주민투표를 조종했다. 결국 중간에 ‘지면 대권 불출마’, 막판엔 ‘지면 시장직 사퇴’ 등으로 배수진을 쳤다. 주민투표가 제 꼼수임을 자인했다.
게다가 이번 투표는 일단 기표소에 들어가면 오 시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구조다. 주민투표에서 발의를 지지하는 사람만 투표소에 가는 경향이 있다. 설사 반대표를 던지러 간다 해도, 투표율만 높여 33.3% 조건을 채우는 들러리 구실만 한다. 여기에 투표 문항 자체가 아전인수의 전형으로, 오 시장에게 절대로 유리하다. 여당 안에서도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오세훈의 투표’라는 지탄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투표에서 지면 복지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한다며 눈물을 쥐어짰다. 그러나 주민투표와 정부 정책은 크게 관련이 없다. 하다못해 이웃 지자체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보수성향의 인천시교육감은 엊그제 전면 무상급식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는 이미 교육청과 협력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서투른 몸개그일 뿐이다. 오 시장이 사유화해버린 주민투표, 거기에 들러리 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영리병원은 발암 물질이다


이글은 레디앙의 기사를 퍼온것입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칼럼] 예고된 재앙 나타나고 있는 중
또 다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 병원’인 영리병원의 설립 허용에 관한 이런저런 논의가 오간다. 청와대와 정부 및 친 재벌 정치세력들에 의해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반복적으로 시도되어 오던 논의가 다시 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피디수첩을 통해 발암물질을 사용한 어느 치과의 충격적인 일들이 폭로되었다.
어느 치과의 충격적인 일들
실상을 말하면 119개의 지점을 가진 어느 기업 형 사무장 치과에 관한 이야기다. 이 치과는 의료법의 맹점을 이용해 100개가 훨씬 넘는 명의대여 치과를 개설하여 운영한다. ‘병원경영 지원회사’(MSO) 형태의 회사를 만들어 네트워크 형 경영으로 위장하고, 소유주가 수백억 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
방송에서도 지적했듯이, 소유구조와 운영형태, 이면계약 등을 살펴보면 이 기업 형 치과는 이미 영리병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유사 영리병원’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래서 영리병원답게 이 치과는 국민건강보험 진료 비율이 5~6%에 불과하다. 35% 정도인 일반 치과와 비교해보면, 돈 벌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국민건강보험 진료를 사실상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의료진의 교체 비율은 매우 높다. 2년 동안 평균 3명 이상의 의료진이 교체되었고, 심한 경우에는 한 달에 원장이 3번 교체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 있는 진료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일차 진료는 책임성을 담보한 지속적 진료(continuity)가 핵심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 때문인지 문제의 이 치과는 H보험회사의 자료에 의하면 의료사고율이 일반치과의 2배에 달한다.
병원인력 중 의료인의 비중도 현저히 낮았다. 비의료인에 의한 치과의료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인데, 이로 인한 의료사고의 위험은 고스란히 환자가 지게 된다. 또, 이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맹렬히 홍보하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여 환자를 유인하였고, 방송의 지적처럼 2개의 임플란트 시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9개의 시술을 권유하는 등 엄청난 규모로 과잉진료를 행하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값비싼 병원 인테리어의 이면에서, 보철물을 하청 받은 치과기공사들은 말도 안 되게 낮은 기공단가를 맞추기 위해 하루 15~20시간씩의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발암물질까지 서슴없이 사용하고, 이 발암물질의 증기로 가득 찬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아무런 전문지식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마스크 하나 없이 죽음의 노동으로 내몰린다.
예고된 영리병원 시대의 재앙
이런 처절한 현실들을 이면에 두고 그들은 말한다. “새로운 경영기법의 도입과 병원 간 경쟁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고 말이다. 또, “의료가격의 거품을 빼고 의료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심지어는 시장개방을 대비해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경쟁력 있는 치과”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영리병원 설립 이후 초래될 재앙으로 이미 학계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에서 수 없이 예고하였던 걱정스러운 일들이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우리사회에서 이미 의료기관들의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상당 부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불법성을 인지하고도 웬일인지 이런저런 핑계로 손을 놓고 있다. 그 의도가 심히 의심되는 부분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여당은 여전히 영리병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 6월 9일 청와대가 영리병원 도입을 하반기의 국정 과제로 선정했고, 지난달 11일에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영리병원 설립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12일에는 보건복지부가 ‘영리병원 추진에 이견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또한, 지난 8일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후원으로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 주관의 영리병원 공청회가 국회에서 개최되었으며, 10일에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사회서비스 선진화 방안으로 영리병원 관련 법률의 우선 통과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영리병원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저런 법률들을 제출해왔다. 최근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이 한사람은 자신이 국회에 제출하였던 영리병원 관련 법률안을 철회하였는데, 같은 당의 다른 국회의원이 유사한 법률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하는 등, 정부여당은 영리병원에 대한 국민적 반대와 압도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긋지긋한 집착적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유사 영리병원 존재한다
2005년 외국인을 위한 경제특구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자는 내용의 말도 안 되는 법률 개정을 이루어낸 이들이 이제 와서 ‘아무런 성과도 없는’ 경제특구를 위한다며 또 다시 ‘국민건강’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그들의 부당한 시도에 맞서 ‘주식회사 영리병원 반대’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지난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돌아보자. 새로운 법률이 시도될 때 마다 그 법률이 가져올 참혹한 상황을 상상하며, 우리들의 분노한 눈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우리사회의 한쪽 구석에서, 그동안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곳에서 이미 영리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유사 영리병원’이라는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치과계의 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괴물이 되어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여당이 집요하게 추진하려는 ‘주식회사 영리병원’ 허용 관련 법률안의 처리와 상관없이 이미 이와 유사한 괴물은 현존한다. 그리고 번식해 가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에 시달리며 외국 영리병원 참상을 인지하고, 이미 영리추구에 혈안이 된 병원들에 분노하는 우리네 보통 국민들의 준엄한 시선이 영리병원 관련 법률의 통과 시도를 어쩌면 이번에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허울뿐인 승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유사 영리병원’들, 법률과 상관없이 버젓이 ‘선진 경영과 서비스 정신’으로 위장한 이 괴물을 제대로 인지하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리병원 관련 법률안을 저지하는 투쟁과 함께 국민건강권을 지켜내는 기본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또 하나의 싸움이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의료법의 근본정신을 지켜내는 싸움을 시작하자! 의료법을 훼손해온 각종 특별법들을 총체적으로 돌아보자. 경제특구라는 명목으로 확실한 성과도 없이 허용해 버린 특혜들을 거둬들이도록 해야 한다. 규제완화를 구실로 하나씩 완화되어 국민건강의 증진이 아니라 자본과 병원의 돈벌이에만 활용되는 ‘이미 철폐되었거나 완화된 의료규정들’을 회복시켜야 한다.
영리병원은 우리 국민을 사지로 내몬다. 경험적으로 영리병원은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확신을 하냐고? ‘식코의 나라’ 미국의 경험을 보라. 그리고 눈을 들어 TV를 다시 보고, 국내 최대의 치과그룹이라는 곳을 가보시라.
오늘도 버젓이 국민을 상대로, 보건노동자를 상대로 발암물질까지 사용하는 영리병원의 만행이 일어나고 있다. 영리병원의 비정한 미래가 우리 눈앞에 있다. 영리병원 그 자체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발암물질이다.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540여년 지켜온 ‘숲의 바다’…5710종 생물들 ‘넘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블로그 물바람숲의 글을 퍼왔습니다.

세조때 왕릉 부속림 지정, 천연·인공림 ‘두얼굴 조화’
면적당 생물종 국내 최고, 숲의 미래 밝힌 ‘임학 산실’ 


소리봉 천연활엽수림 전경.
지난 20일 찾은 경기도 광릉 숲의 핵심구역인 소리봉(536.8m) 일대에는 나무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까치박달나무, 층층나무 등의 넓은잎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햇빛에 반짝였다. 지난 540여년 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성숙한 천연림이다.

어둑한 숲 속에 들어서니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100년을 훌쩍 넘겼을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고목 사이로 수피가 사람의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서어나무들이 서 있다.

서어나무. 오래된 천연 활엽수림의 대표적인 수종으로 광릉의 소리봉과 죽엽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늘을 가린 숲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바닥엔 서어나무 고목 한 그루가 널브러져 있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어린 까치박달나무와 회목나무가 키 자람을 하고 있었다.

동행한 신재권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5~6년 전쯤 서어나무가 넘어지면서 숲 바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다른 나무들이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촘촘한 숲에 생긴 빈틈을 철저히 이용하는 이런 모습은 오랜 자연림에서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리봉 정상에 오르자 도봉산, 수락산, 천마산, 축령산이 남양주시 진접읍의 아파트 단지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광릉 숲은 서울에서 불과 39㎞ 떨어져 있다.

천연림과 인공림이 숲의 바다를 이룬 광릉숲 전경.
그러나 이 숲의 생물다양성은 웬만한 국립공원보다 높으며, 단위면적당 생물종을 따지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광릉 숲 2240㏊에는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단위면적당 식물종 수는 광릉 숲이 ㏊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8.9종을 크게 웃돈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것은 온대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숲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는 이 지역을 왕릉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현재까지 한 해도 멈추지 않고 임업 시험림 구실을 해 왔고, 이에 따라 개발과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림 보전과 생물다양성만 본다면 광릉 숲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광릉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임업 관련 기관이 들어서, 한반도에 적합한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를 연구해 온 우리나라 임학의 산실이다.

심은 지 90년 된 리기다 소나무 거목.
김석권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장은 “광릉 숲의 가치는 자연림 못지않게 인공림에 있다”며 “90여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가꿔온 광릉 숲에서 우리나라 숲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 숲에서 핵심구역은 소리봉과 죽엽산(600.6m)을 중심으로 한 천연 활엽수림 755㏊이다. 핵심구역을 둘러싸는 완충지역 1657㏊는 인공림이다.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기른 80년 생 상수리나무.
김석권 박사의 안내로 임도인 직동로를 따라가며 광릉 숲 인공림의 모습을 살펴봤다. 1914~1917년 심었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낙엽송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슴높이 둘레가 1m가량이고 높이는 20여m로 하늘로 쭉 뻗은 모습이 “쓸모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심은 지 80년이 지난 상수리나무도 마을 주변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상처 없이 미끈하게 자라나 있었다. 상수리나무 밑에 잣나무와 전나무가 자라는 복층 숲에서 인공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김 박사는 “조림한 지 약 3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인공림을 잘 가꾼다면 광릉 숲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숲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28년에 심은 전나무 숲. 어린 전나무가 돋아나 천연갱신림이 될 잠재력이 있다.
실제로 1928년 조림한 전나무 숲 바닥에는 어린 전나무가 빼곡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든 상층의 관목을 제거하면 전나무 숲이 형성될 수 있다. 독일의 가문비나무 숲처럼 전나무의 천연 갱신림이 형성될 답이 80여년 만에 나온 것이다.

그는 임업을 ‘3세대 산업’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심고 아버지가 가꿔 자식이 혜택을 보는 산업이다. 우리의 임업은 이제 2세대인데, 자식 세대가 누릴 혜택을 우리가 보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직동로 임도 근처의 90년 이상된 조림지. 천연림과 비슷한 모양이다.
90~100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임업의 유장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능내로 임도를 따라가면 1964년 식재한 잣나무림이 나온다. 나무를 얼마나 조밀하게 심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림이다. 2001년 ㏊당 3000그루를 심는 게 가장 낫다는 중간 결론이 나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47년째 지켜보고 있다.

광릉 숲은 ‘숲의 바다’이지만 그 바다엔 길이 나 있다. 광릉 숲은 65개의 임반으로 나뉘고 각 임반은 또 여러 개의 소반으로 나뉜다. 임반은 모두 13개 노선 45㎞의 임도를 통해 접근하도록 돼 있다. 광릉 숲의 관리 지도를 보면 마치 동네 부동산 소개업소의 지번도를 보는 것 같다.

수백년 동안 손대지 않은 천연 활엽수림과, 그것을 둘러싸고 전국 평균의 약 4배인 ㏊당 255㎥의 목재가 축적돼 있는 인공림은 광릉 숲의 두 얼굴이다.

포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국전쟁 이후 도벌 횡행 80년엔 일부 군시설 터로

광릉 숲의 수난사

세조는 1468년 자신의 능이 들어설 자리를 능림으로 정한 뒤 능 주변과 진입로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를 심고 능원과 산직을 두어 관리했다. 광릉에 당시의 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없다. 현재 가장 오래된 활엽수는 졸참나무로 수령 200년 지름 113㎝이다. 광릉 숲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 383호선 길가에 있는 전나무도 지름 70~90㎝의 거목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는 광릉 숲의 최대 시련기였다. 풀뿌리까지 캐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었고 도벌이 횡행했다.

임업연구원(현 산림과학원)이 2003년 펴낸 를 보면, 1965년 광릉출장소의 주 임무는 도벌꾼으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고, 초막을 짓거나 잠복 근무를 하면서 지켰는데도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도벌꾼과 폭력배가 임업시험장 안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엔 인근 군부대가 숲 115㏊를 군사시설 터로 빼앗아 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휴양지로 숲을 이용하고 개발하려는 욕구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1989년 시험림 일부가 산림욕장으로 개방됐고 수목원,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원이 개장됐다. 관람객이 몰리면서 광릉 숲 주변에 식당, 노래방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마침내 1997년 광릉 숲 보전 종합대책에 따라 산림욕장과 동물원이 폐쇄되고 수목원의 예약제와 관람 인원 제한 조처가 시행됐다. 국립수목원은 1999년 광릉 숲의 절반 면적을 관할하면서 독립했고, 나머지 숲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조홍섭 기자

광릉요강꽃·골무꽃…“우리 고향은 광릉”

광릉서 첫 발견된 식물 10종

광릉요강꽃
‘광릉’이란 접두어를 가진 식물과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식물이 10종에 이른다. ‘광릉’으로 시작하는 식물로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광릉골무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제비꽃, 광릉개고사리 등이 있다.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기 때문이다. 이 식물은 고향이 광릉이라고 할 수 있다.

광릉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지만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식물도 적지 않다. 노랑앉은부채, 개싹눈바꽃, 털음나무, 흰진달래, 털사시나무 등이 그런 예이다.

이들 식물은 나중에 광릉 이외의 장소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병천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이처럼 적지 않은 식물이 광릉에서 처음 학계에 알려진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식물의 약 30%를 기재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광릉 시험림에서 촉탁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조사를 하러 다닌 결과”라고 설명했다. 조홍섭 기자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