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2-03-21일자 사설 '[사설]경선 조작 의혹과 진보정치의 미래'를 퍼왔습니다.
4·11 총선 서울 관악을의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 측이 경선 여론조사에서 ‘연령대를 바꿔 응답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당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공동대표는 “이유와 경위를 불문하고 사과한다”면서 경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김희철 의원 측에 재경선을 제의했다. 김 의원은 그러나 이를 거부하고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이 공동대표는 어제 트위터를 통해 “책임진다는 것, 고심했다. 사퇴가 가장 편한 길이지만 상처 입더라도 일어서려 한다”며 후보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김 의원 측에서도 유사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다른 지역구까지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확산되면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는 기로에 섰다.
이 공동대표는 재경선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수준에서 봉합될 사안이 아닌 듯하다. 이 공동대표 측이 보낸 문자메시지는 “ARS(자동응답) 60대는 끝났습니다. 전화 오면 50대로…” “지금 ARS 60대로 응답하면 전부 버려짐. 다른 나이대로 답변해야 함”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특정 연령대에 대한 ARS 조사가 종료된 것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물론 이 공동대표도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구체적 사실관계는 조사를 통해 규명되겠지만, 문제의 문자메시지가 경선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 분명치 않다. 승자로서 재경선을 제의했으니, 사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성의있는 대안을 내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더욱이 김 의원 측에서도 문자메시지와 관련된 의혹에 휘말린 상황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재경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단견이다. 이 공동대표가 누구인가. 탁월한 의정활동을 인정받아 정당 사상 최초의 40대 여성 대표를 지낸 ‘진보정치의 아이콘’ 아닌가. 최근에는 총선 사상 처음으로 전국적·포괄적 야권연대를 성사시키면서 리더십과 협상력도 인정받은 터다. 시민들은 그를 통해 기존의 낡은 정치와 결별한, 새롭고 유연한 진보정치 구현을 꿈꿔왔다. 이번 사건에 실망감이 큰 것은 그를 향한 기대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이 공동대표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총선에서의 야권연대 문제, 장기적으로는 진보정치의 미래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회의원 이정희’나 ‘변호사 이정희’가 아닌 ‘정치지도자 이정희’의 관점에서 더 넓게, 멀리 보고 결단할 필요가 있다. 김희철 의원도 문자메시지 발송과 관련해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똑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 통합진보당 후보와의 경선에서 진 다른 민주당 후보들도 무분별한 의혹 제기를 자제해야 한다. 어떻게 이뤄낸 야권연대인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정권 심판을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과 염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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