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일 화요일

무법상태를 고집하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글은 미디어스 2012-01-02일자 기사 '무법상태를 고집하는 배경은 무엇인가?'를 퍼왔습니다.
미디어렙 법안의 연내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글자가 가진 의미대로 하자면 맞는 말이다. 분명 미디어렙 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연내 처리 의지를 보인 여야의 입장 정리다. 연내 처리라는 단어는 시한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지난 200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지금까지 3년 동안 미디어렙 법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은 여야가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 문방위에 제출된 법안만 해도 7건에 이르렀고, 청원도 1건 있었다. 그 법안을 토대로 숱한 공청회와 토론회 등이 있었지만,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던 경쟁 유형 때문에 여야는 의견 접근을 도출하지 못했다. 기억을 되돌려보면, 지금 논란을 빚고 있는 종편에 대한 것이 미디어렙 논의의 핵심이 아니었다. 당시는 공영 미디어렙 체제로 갈 것인지에 대한 거친 싸움이 있었다. 미디어법의 통과로 종편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미디어렙 법 논의는 당초 핵심 쟁점이었던 공영 미디어렙 체제 도입 여부는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오직 종편 문제로만 귀속되는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다시 정리해보자. 미디어렙 법안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고, 그 핵심은 코바코의 방송광고 독점을 해소하라는 것이었다. 1공영 1민영을 비롯해 1공영 다민영 등 여러 가지 경쟁유형에 대한 논의는 코바코 독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논의가 시작되었음을 반증한다. 미디어렙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공영 미디어렙 체제의 유지가 핵심이었다. 지금 일각에서 민주당이 1공영 1민영의 원칙을 버렸다는 점을 두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는 그동안의 미디어렙 관련 논의를 제대로 알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미디어렙 법안의 논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이 종교방송을 비롯한 중소방송에 대한 지원책 마련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종교계의 압력과 로비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들이대면서 논리의 비약을 일삼고 있다. 그것이 공영방송의 메인 뉴스에서 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쉽게 인정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이 사회에서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이 땅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기의 종교를 갖고 있다. 종교의 본질은 관용이고 남에 대한 포용이며, 아픈 이웃을 향한 자비심이다. 종교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바로 종교방송이다. 종교방송은 비영리 법인으로서 각 종단에서 출연해 재단법인 형태로 이뤄져있다. 종교방송사 직원들의 연봉은 주요 지상파 방송사와 비교할 때 3분의 1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종교방송사 직원들은 종교적 신념과 봉사 정신으로 어려운 현실을 버티고 있다. 그런 종교방송사에 자사 이기주의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종교방송사의 현실을 너무도 모르는 처사다. 값싼 동정을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종교방송사는 포교나 선교 등 설립 목적에 따라 60% 이상을 전문 편성을 해야 한다. 종교방송사에 대한 조금의 이해 폭만 있어도 알만한 사항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주요 지상파 방송사의 종교계에 대한 폄하는 자신의 거대한 매체 영향력을 잘못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후회할 일을 스스로 만들지 않기를 간곡히 바란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정치권이 미디어렙 법안을 연내에 처리하기로 여러 차례 합의한 것은 누구의 압력이나 로비 때문이 아니라 입법 공백을 막기 위한 국회의원의 기본 책무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방기했던 책임을 18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마무리 지으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는 4월이면 총선이 치러진다. 여야는 어쩌면 입법 공백을 막기 위한 정치인의 기본 책무를 지키기보다 당장 총선의 표계산에 휘둘려 책무를 저버릴 수도 있었다. 미디어렙 법안의 연내 처리를 반대하는 측에서 주장했던 것이 총선의 지형을 바꾸고 난 뒤 야권 세력에 유리하게 법을 제정하라는 논리였다. 그 논리대로라면 지금 무법 상태를 해소하고 총선에서 지형이 바뀐 뒤에 법을 개정하면 된다. 자신의 논리에 스스로 모순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논의의 초점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법을 만들지 않으면, 무법 상태가 지속된다. 즉 종합편성채널은 지금도 직접 영업이 가능하다. 무법 상태가 지속되는 한 직접 영업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렙 법안의 입법으로 종편은 유예기간을 거치지만 미디어렙 체제에 묶이게 된다. 종편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무법 상태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종편을 편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내년 총선 이후에 즉각적인 법 제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현실 정치를 모르는 이들의 순진한 발상이다. 현실적인 정치 상황을 아는 이들이라면 최소한 1년 6개월 이상 무법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도 논의의 시작이 그 때 부터라는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미디어렙 법안의 무법 상태를 주장하는 배경이 과연 무엇인지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은 종교의 본질이다. 종교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이기도 하다.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고, 자신의 주장만이 만고의 진리라는 아집에서 제발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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