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경향신문 2011-11-09일자 사설 '[사설]한·미 FTA의 본질 외면한 민주당 내 협상론'을 퍼왔습니다.
민주당 일각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즉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존치 여부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다는 미국 측 약속을 받아오면 국회 비준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받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루 이틀 전 원내대표가 비슷한 주장을 내놨을 때만 해도 고민의 한 자락을 내비친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사실이라면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들 협상파의 태도는 한·미 FTA의 본질을 호도하는 자가당착적이며 정략적 접근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ISD가 한·미 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건 사실이다. 존치할 경우 국내 공공정책에 대한 시비가 국제중재위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법을 무력화할 여지가 크다. 국제중재위가 사적기관이라는 점에서 공권력의 무력화도 예상되는 부작용이다. 이러한 장치는 막장으로 가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공권력 회복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흐름과 배치된다. 이미 제기된 문제만으로도 ISD는 폐기돼야 마땅한 조항이다. ISD가 한·미 FTA의 병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건 사실이나 FTA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비하면 부분적 쟁점에 불과하다. 하물며 ISD 재협상 약속만으로 한·미 FTA를 비준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정치권이 ISD 논란에 매몰돼 한·미 FTA의 본질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는 경제대국 미국과 한국이라는 몸집이 현격하게 다른 두 나라가, 그것도 이익 불균형이 심하게 깨진 쌍무협정을 체결한다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미국식 경제의 틀 이식이나 다름없는 협정 체결로 초래될 수 있는 폐해를 보전할 만한 내부 정비도 크게 미흡하다. 이대로 FTA가 발효되면 한국사회가 회복불가능한 양극화의 늪에 빠질 공산이 크다. 더구나 한번 체결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협정이라는 점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검증과 토론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ISD 재협상을 내세워 FTA 반대를 철회하려는 움직임은 반대 대열에서 벗어나기 위한 퇴로를 열어달라는 요구나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앞서 말로는 결사 저지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한·미 FTA 원조당’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한 민주당의 무기력한 대처에 대해 맹성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당내 보수파 의원들이 주체로 거론되는 ‘ISD 재협상과 FTA 비준’ 카드는 비준을 방조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FTA 비준 반대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정략적 접근이 아닌 분명한 철학과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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