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머리털은 자란다, 언론 공공성은 어찌할까"

이글은 미디어 오늘 2011-11-09일자 기사 '"머리털은 자란다, 언론 공공성은 어찌할까"'를 퍼왔습니다.
[기고]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전방송 이영만 지부장

지난 1일 지역민방 노조위원장 9명이 SBS 목동 사옥 앞에서 삭발을 했다. SBS 미디어홀딩스가 만든 광고판매회사(이를 미디어렙이라 부르지 말자) ‘미디어 크리에이트’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이 정체불명의 회사가 무엇을 크리에이트(create-창조)할지 모른다. 아마 미디어 업계에서 상위 1%라 할 수 있는 사주의 이익 정도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나 이 회사가 디스트로이(destroy-파괴)할 것들, 나머지 99%가 희생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다. 앞으로 파괴될 가치에 대한 두려움과 절박함, 분노의 발로가 바로 삭발이었다.
머리카락은 자란다. 그러니 삭발 전사 10명(공공미디어연구소 조준상 소장의 연대 삭발 포함)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동정은 잠시 접어 두셔라. 정작 안타까움의 대상은 따로 있다. 지금 미디어시장에서 머리털 말고 더 음흉하고 공포스러운 것들이 싹 텄고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있다. 바로 탐욕이라는 놈인데 본명과 진면목을 감춘 채 경쟁력, 합리화, 공정성, 시장확대, 신성장동력, 초일류 따위의 그럴싸한 별명으로 포장되고 있다.
탐욕이 방송에 진출한 내막은 이렇다. 정권 연장의 꿈을 목적으로 정부는 돈 냄새에 환장한 자본과 족벌 언론들에게 방송이라는 선물을 내줬다.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를 선정하면서 겨우 5명이 타고 있던 마티즈에 4명을 더 태웠다. 차가 좁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는 자동차가 커질 거라는 뻥으로 응수했다. 광고시장이 확대되기는커녕 좁아터진 차 안에서 벌어지는 저질경쟁과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실로 가관이다. 드디어 방송계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도 찍어야 할 것 같은 출혈경쟁 시장(bloody ocean)이 됐다. 

▲ 서울 목동 SBS 앞에서 삭발한 지역민방 노조위원장들 모습.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미디어렙 논란은 정원 초과의 경차 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잔혹사의 백미다. 국회가 차 안에서의 질서 유지를 위한 법을 못 만들고 있는 가운데 단속경찰이라 할 수 있는 방통위는 팔짱만 끼고 있다. 질서유지법이 없으니 그 안에서 서로 쥐어 패든, 잡아 먹든 관여할 바 아니라는 식이다. 새로 올라탄 조중동매 종편들이 칼을 들자, SBS 미디어홀딩스가 총을 든 격이다. 서울MBC도 뒷주머니에 넣어둔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바야흐로 미디어 업계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정글의 법칙(이걸 법칙이라고 해야 하나?)이 접수 중에 있다.
그날 10명의 머리털과 함께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종편사들이 불을 당기고 거대 방송사들이 부채질하면서 광고거래의 저질평준화는 완성되어 간다. 광고가 방송사와 광고주 사이에서 직접 거래되면 어떤 재앙이 펼쳐지는 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조중동이 망쳐놓은 신문시장을 살펴보면 방송계에서도 ‘엿 바꿔먹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뻔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먹잇감을 조금 더 차지하려는 노력들이 모여서 야만 평준화를 이룬다. ‘돈 맛’을 본 방송사업자들은 ‘룰 없는 링’에 오르면서도 거침이 없다.
이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지역방송, 종교방송, 중소신문 등 ‘작은 언론들’이다. ‘이들이 얼마나 잘했는냐’는 나중에 따지자. 죽어가는 환자한테 ‘그동안 얼마나 착하게 살았냐’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 작은 언론들은 (의도하지 않았어도) 언론의 다양성에 존재적 기여를 해왔다.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 숨통을 틔워야 한다. 탐욕의 링에 오르는 거대방송사들의 시혜 차원이어서는 안 된다. 정책적, 제도적 배려의 형식이어야 한다. 이같은 광고취약매체 보호를 포함하여 방송광고 거래시장의 질서유지법이라고 할 수 있는 미디어렙법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미디어 생태계에 속한 모든 생물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국민의 알권리와 여론다양성을 보장하는 길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머리털은 자란다. 그러나 미디어의 공적 가치를 지키는 타이밍은 한번 놓치면 걷잡을 수 없다. SBS를 탐욕에서 구하는 일, 그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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