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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3일 월요일

한반도 운명, 앞으로 열흘에 달렸다


이글은 시사인 2012-02-13일자 기사 '한반도 운명, 앞으로 열흘에 달렸다'를 퍼왔습니다.
도 한반도 운명, 앞으로 열흘에 달렸다 이명박 정부 4년 동안의 강경책은 중국의 대북 영향력만 키워주는 등 내용적으로 파탄 났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면 바로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 2월 이후에는 한·미 군사훈련과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해빙인가, 아니면 이대로 끝낼 것인가. 이명박 정부 4년간 밑바닥을 헤매온 남북관계 운명을 판가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임기 1년 역시 이 상태로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 다음 정부에 누를 끼치지 않을 정도라도 관계를 복원’할 것인지 늦어도 2월이 가기 전에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다. 

2월을 넘기면, 물리적으로 어렵다. 큰 산이 두 개나 버티고 있다. 그 하나가 2월27일~3월9일로 잡힌 키리졸브 훈련과 3월 말 예정된 한·미 양국 해병대의 쌍룡훈련이다. 연례행사처럼 열려온 키리졸브 훈련은 그렇다 쳐도, 1989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이후 23년 만에 부활한 한·미 해병대의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은 자칫 심각해질 수 있다. 북한은 벌써부터 북침전쟁 연습계획이라 맹비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Reuter=Newsis 1월12일 김정은 북한 최고사령관(맨 오른쪽)이 평양 민속공원을 방문했다. 북한은 4월부터 경제개발에 몰두할 계획이다.

4월로 넘어가면 총선이 기다린다. 올해 총선은 대선의 전초전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 사회의 세력관계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그 이전에 남북관계의 디딤돌을 놓는 데 실패하면 모든 게 이 정권의 손을 떠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북한 내 약 70%에 이르는 강경파들이 총선 결과를 보며 전략적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남북관계를 다음 정권으로 미룬다는 뜻이다.

남북의 강경파는 서로 닮았다. 한쪽의 강경정책이 다른 쪽의 강경 대응을 불러온다. 지난 4년의 ‘강(强) 대 강(强)’의 대립은 이제 내용이나 명분 측면에서 파탄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많다. 더 이상 이를 지속하는 것은 허세에 불과할 뿐,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정권 초부터 대북 정책을 주도해온 남쪽의 강경파들은 북한 비핵화를 명분으로 모든 대북 지원과 경협을 끊어왔다. 남북의 첫 충돌로 기록될 사건이 바로 2008년 3월20일로 예정됐던 안변조선단지 실사단 파견 문제였다. 지난 10·4 합의 당시 대표적인 남북경협 사업이기도 했던 대우조선해양의 안변 조선단지 건설 예정지를 실사하기 위해 분단 이후 최초로 50여 명의 실사단이 동해 직항로를 따라 북한을 방문해 안변 앞바다를 시추하고 기후·풍향·암반 등 입지 조건을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통일부 해체를 거론하는 분위기에서 입도 뻥긋하기 어려웠다. 

경협 중단이 북한 경제 자생력 키워

그러자 북한은 3월14일경 실사단을 안 보내면 남북관계가 파탄에 처할 것임을 경고했고, 3월26일 새벽개성공단의 남측 관리요원을 모두 추방해버렸다. 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기업인 출신에다 건설·토목 전문가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를 통 크게 할 것이라고 보고해온 북한 내 대화파 28명이 모두 숙청당해버려 초장부터 강 대 강 대결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대화의 실마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남북 간 대화 시도는 있어왔다. 2009년 10월 임태희 장관과 북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사이의 싱가포르 회동, 뒤이은 11월 개성에서 있었던 통일부·국정원과 북측의 비밀회동, 그리고 지난해 1월 김숙 국정원 차장의 평양 방문과 5월9일 중국에서의 남북 비밀 접촉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네 번의 비밀 접촉 모두 합의하고 돌아서면 강온파 다툼과 언론 플레이, 이명박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태도 등으로 불신의 골만 깊어졌다.  

현인택 장관 후임으로 임명된 류우익 장관이 유연한 자세로 북한과 채널을 열어가려 할 때도 정권 주변의 강경파들의 견제로 곤욕을 겪었고, 이 대통령에게 “전권을 주든지 아니면 그만두든지 하겠다”라고 최후통첩을 하고 난 뒤에야 겨우 남북관계는 통일부가 전담하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한다. 그러나 여전히 견제의 손길은 만만치 않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김정은이 권좌에 오르면서 국내외 실질적인 사업은 장성택을 비롯한 7인 집단지도체제의 협의하에 처리되는 구조이나, 김정은을 보좌하는 군과 보위부의 견제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대남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뉴시스 1월9일 류우익 통일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남북 경협기업 대표자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 4년간 지속돼온 양측의 강 대 강 대립이 이제 내용적으로 파탄 났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내 강경파들은 ‘대북 지원을 끊으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판단해왔는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우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측에 호의적이었던 북한 민심이 적대적으로 돌아선 마당에 통일 운운하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말로는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이 북한 주민에게 다가가는 것인지 정책적으로 전혀 입증된 바가 없다. 

북한에 대한 쌀·비료 지원이나 금강산 관광자금, 그리고 대북 경협을 중단했지만 약화된 것은 남쪽의 대북 영향력과 북한의 대남 의존성일 뿐이고, 오히려 중국의 대북 영향력만 키워주는 바보 같은 짓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이제 보편화돼 있다. 

또한 북한 체제의 자생성이 강화되고 있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요즘 강성국가 진입의 상징으로 연일 강조하는  ‘함남의 불길’ 핵심 사업이 흥남 비료공장의 현대화이다. 그 내용은 바로 남쪽에 그동안 의존해온 쌀, 비료를 대체하기 위해 흥남 비료공장의 비료 생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이 시작된 시점이 이명박 정부 들어 쌀 비료 지원이 중단되면서부터였다는 점에서 그 배경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앞으로 ‘더 이상 남쪽에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 식량 생산을 늘리는 것’이 결국 이 사업의 목표인 셈이다. 

30만kW에 이르는 희천 수력발전소 건설이나 평양의 화력발전소 개보수, 그리고 중국으로부터의 화력발전소 지원 등으로 이루어지는 전력 확충 사업과 평양의 10만 호 건설 계획 등도 우여곡절은 겪었으나 완공 단계에 진입하는 등 의식주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상당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강경파들 주장대로 압박을 통해 북한 경제가 악화되기는커녕, 자동차와 휴대전화 판매량 급증에서도 드러나듯 오히려 살아나고 있다는 징후는 많다. 결국 이들의 대북 인식이 순 엉터리였을 뿐 아니라 우리의 손발만 자해한 수준의 정책에 불과했다는 점이 입증됐다. 

이명박 정부와 상종하지 않겠다는 북한 강경파들의 태도 역시 감정적으로 후련할지 모르나 무모하긴 마찬가지다. 올해 아무것도 안 해버리면 내년 새 정권 들어 장관 임명하고 청문회 거치는 기간 등을 합쳐 최소한 1년6개월에서 2년간은 공백이 계속 이어진다는 소리다. 올해 4월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을 계기로 강성국가 진입을 선언한 직후부터 경제개발에 몰두하려는 북한의 내부 계획과 상충이 벌어진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살아 있을 때부터 올해 4월을 계기로 경제개발을 위한 지역 특화전략에 돌입할 계획을 추진해왔다고 한다. 나진·선봉·신의주는 주로 중국과 손을 잡고 물류 및 원유 정제 사업, 그리고 경공업 단지 등에 치중하고, 김책의 제철사업과 원산·청진의 조선사업, 그리고 남포의 전자단지 육성 등 주로 중화학공업 분야 발전에 치중한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남한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과거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에는 3년간 문을 닫아걸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경제 규모가 커져서 불가능하다. 중화학공업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해외파들이나 경제 담당자들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지금이라도 남북이 조금씩만 양보하면 당장에라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업은 얼마든지 있다. 자원 개발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으나 정권 끝날 때까지 사기만 당해왔지 제대로 된 실적은 하나도 거두지 못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6·15 선언에서 북한 자원을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해 이용한다고 명시해놓고 있어서 그 자체로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 사업인 셈이다. 더구나 지금 판로가 중국으로만 좁혀져 있다보니 중국이 이를  헐값으로 후려쳐도 달리 방법이 없다. 앞으로 자원 수출을 다각화하려면 도로와 항만 등의 개발이 필수적인데, 남쪽 협력 없이는 어렵다.  

사실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한 5·24 조치는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진실 규명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해도 천안함의 해법은 공론화만 안 되었지 그동안의 비밀 접촉에서 다 나왔다. 최소한 5·24 이전에 추진했던 경협 사업이라도 지금 당장 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류우익 장관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이 바로 인도적 지원만 하면서 관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인데,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경협 사업에 대한 해금 조치는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북한에 투자한 기업인들의 현지 실태 조사 방문은 하루빨리 재개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대화채널 구축 시급


ⓒ뉴시스 지난해 열린 키리졸브 훈련. 올해도 2월 말부터 두 차례 한·미 합동훈련이 예정돼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6·15 공동선언과 연관된 식량 및 비료 지원, 그리고 10·4 선언에서 언급된 대북 협력 사업에서도 일정한 성의 표시를 못할 이유가 없다. 북측은 쌀·비료 지원에 대해 당장 남측의 성의가 느껴지는 상징적 수준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4 합의에 대해서도 앞에서 언급된 안변 조선단지나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 대한 실사단 파견 등의 조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체제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것이 조문 문제이다. 과거 북한이 현충원을 참배하고,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에 조문했던 전례를 참고하면 어렵지 않은 문제이다. 

올해 안에 뭔가를 할 생각이라면 당장 서둘러야 한다. 이봉조 전 통일부 차관이 2월호 기고문에서 지적한 대로 늦어도 키리졸브 훈련이 열리는 2월 말 전에 남북 간 대화 채널이 구축되어야 한다. 3월 한·미 군사훈련으로 불필요하게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고, 관계 복원의 징검다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시간적으로는 김정일 위원장 생일인 2월16일에서 키리졸브가 시작되는 2월27일까지는 약 10일간이다. 그 기간에 이명박 정권의 마지막 명운이 달려 있다.

2012년 2월 9일 목요일

강정마을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2-09일자 기사 '강정마을의 평화가 한반도 평화다'를 퍼왔습니다.
[정상모의 흥망성쇠] 한·미·일-북·중·러 구도 속 ‘새우 등 터지는 꼴’

한국 정부는 왜 한국의 낙원, 제주도 서귀포 강정마을을 ‘죽음의 지대’로 만들려는가. 미국 헐리우드의 유명한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로버트 레드포드의 비판은 너무나도 통렬하다. 그는 미국 환경전문계간지 의 블로그 누리집에 올린 “제주도의 싸움: 군비경쟁이 한국의 낙원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문화적, 환경적 독특함을 지닌 원시의산호초 해안에 4층 건물 크기의 탄약고 57개가 들어서려 한다고 개탄했다. 그는 비옥한 농토를 블도저로 파헤친 ‘죽음의 지대’가 바다로 확대될 거라고 경고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문제가 왜 생기게 됐는가. 그는 이지스 탄도미사일 시스템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과 항공모함이나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따위가 드나들 대형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한국의 ‘야욕’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촛점은 중국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 해안선을 따라 미국의 봉쇄망을 강화하면서 다자간 군사협력체제를 꾀해왔다.
일본도 중국을 겨냥한 ‘동적 방위력’ 개념을 도입해 군사력을 대폭 늘리는 중이다. 지난 해 11~12월 연이어 실시한 미·일 해상연합훈련, 육상자위대 훈련, 육해공 자위대 통합훈련 등도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 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린 '2012년 제15회 제주정월대보름 들불축제'에서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우려되는 것은 한·미, 미·일 동맹으로 연결되는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를 한·미·일 ‘3국 안보 동맹체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지난 해 1월부터는 한일군사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미·일 군사훈련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 7월 한미합동 해상군사훈련에 일본 자위대 장교들이 참가하는가 하면, 10월 한국에서 실시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해상봉쇄훈련에는 일본 해상 자위대가 포함됐다.
한․미․일이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나서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는 가만히 있겠는가.  안보딜레마의 결과로 동북아에는 군비경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칠 게 뻔하다. 미국 등 동북아 6개국의 군사비가 이미 세계 군사비 지출의 55%에 이른다.
중국은 태평양 미 함대까지 도달할 미사일 개발을 포함해 군사력의 가속적인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께는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맞설 배타적 군사력을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군사력이 증강되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 현안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과거보다 단호해졌다. 천안함 사태 이후 한국과 미국의 서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중국은 황해가 자기들 핵심이익 지역이라며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맞섰다.
만약 중국이 강성해군기지를 한·미·일 집단안보체제의 전초기지로서 자기들에게 위협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중국은 아주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지난 1월 30과 31일 제주도에서 한·미·일 국방차관보가 회담을 갖고 3국 국방장관 회담을 해마다 열기로 한 것도 중국으로서는 결코 예사롭게 보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오래 전부터 미국의 군사지지로 거론돼왔다. 게다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해 주한미군이 지역과 세계방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게 미국 방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는 한마디로 주한미군의 군사적 역할 대상에 중국이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반도가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분쟁과 충돌에 자동적으로 휘말리게 된다는 얘기다. 자칫 두 나라의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이제 중국은 한국 최대의 투자국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관계에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안보인가 경제인가.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 아닌가.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미·일과 북·중·러 신냉전 대립구도나 미·중 간 갈등관계에서 우리 한민족의 앞길은 보이지 않는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 민족의 미래는 동북아의 신냉전이 아닌 평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처지다.
강정마을은 동북아 신냉전과 평화공동체 어느 쪽인지를 가늠하는 상징적 표지다. 환경보호론자, 평화활동가, 민주주의자들이라면 분노를 느끼고 제주도 구하기 캠페인에 행동으로 나서자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호소가 그래서 감동적이다.
그의 호소를 그냥 감동으로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실천을 통해 강정마을의 평화를 이룩해야 하지 않겠는가. 강정마을의 평화가 곧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이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25일 수요일

‘행동하는 시민’과 ‘민주주의 희망 창조’


이글은 대자보 2012-01-22일자 기사 '‘행동하는 시민’과 ‘민주주의 희망 창조’'를 퍼왔습니다.
[김주언의 뉴스레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대한민국 미래 결정할 것

“특권에 안주하며 사회적 부를 전취하는 토건성장주의에 빠져 한국 사회를 자기 파괴적인 양극화사회로 한반도 전체를 갈등과 대결로 몰고 갈 것인가? 아니면 시민이 주도하는 공정하고 소통하는 민주주의 사회,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 국가가 봉사하는 정의로운 복지국가, 생명, 공존, 평화를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국가, 평화체제로 나아갈 것인가?”

시민사회의 올해 화두는 ‘행동하는 시민’과 ‘민주주의 희망 창조’이다.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신년사를 통해 “민주주의와 복지, 한반도 평화와 생태 친화적 성장의 비전을 가진 새로운 정치 주체와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이라는 두차례의 정치행사를 앞두고 시민사회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정치혁신과 정치참여를 위한 유권자 운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정치구조를 정착시키고, 투표행위를 넘어서는 정치참여를 위해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시민단체들은 2월부터 총선에 대비해 의제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연대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총선을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민의 참여를 끌어낼 방안도 마련했다. 

올해는 신년사의 지적대로 ‘역사적 전환기’이자 ‘문명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아랍민주화 열풍과 월가점령 시위는 새로운 전환기의 전조라고 볼 수도 있다.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월가시위대의 구호 ‘1%의 탐욕과 99%의 분노’는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폐혜를 한마디로 대변해준다. 그래서 자본주의 위기를 거론하는 학자들도 많다. 유럽의 재정위기도 자본주의 위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대체할 바람직한 세계체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새로운 문명의 전환을 불러올 조짐임에는 틀림없다. 

올해는 또 세계 50여개 나라에서 정치 지도자를 선출하는 정치행사가 예정돼 있다. 올해 벽두의 타이완 총통선거를 시작으로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주요국의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세력이 교체될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선거과정에서 많은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시민여론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각성된 시민의 힘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랍에서 촉발된 시민혁명이 전세계를 뒤덮어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사적 전환기에 치러지는 국내의 중요한 정치행사도 세계사의 흐름에서 비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두 차례의 선거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올해는 6.10시민항쟁 25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쟁취해 민주적 제도를 정비한 ‘87년 체제’가 시작된 지 4반세기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의 퇴행으로 민주체제가 훼손됐지만, 과거체제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이제 ‘87년 체제’를 뛰어 넘어 민주적 복지국가의 실현을 목표로 한 ‘13년 체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2012년을 점령하라’는 고 김근태 선배의 경귀가 더욱 가슴 속에 다가오는 이유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른바 ‘쇄신’을 내걸고 돌아선 민심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공천혁명과 당명변경, 대통령 탈당요구 등 온갖 묘안을 짜내고 있다. 게다가 재벌개혁과 선택적 복지 등 한나라당의 정체성과는 상반되는 정책을 내걸고 민심을 구걸하고 있다. 그러나 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나 돈봉투 전당대회 등 온갖 비리로 점철돼 있는 한나라당이 제대로 쇄신할 지는 미지수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서민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는 데다 대통령의 측근비리마저 잇따라 불거지면서 민심이반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은 시민참여를 통한 정치개혁에 나섰다. 민주당과 시민사회의 결합을 통한 민주통합당의 결성을 시작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모바일 시민투표를 통해 지도부를 구성했다. 새로 결성된 지도부는 국회탈환과 정권교체를 다짐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보편적 복지 등 새로운 시대를 위한 야심찬 정책도 내놨다. 야권연대를 위해 통합진보당과의 정치협상도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공천혁명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시민사회의 일부 운동가들도 현실정치 참여를 선언했다. 이들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통해 시민사회의 꿈을 정치참여를 통해 실현해내겠다는 포부를 간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가 무너지고 독단적인 반 시민정책으로 민생이 피폐해진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대를 거스른 토건중심 패러다임으로 대한민국을 황폐화시킨 이명박 정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힘이 무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나라의 미래는 시민의 행동에 달려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든, 시민단체에 남아 있든 간에 시민운동가들은 목표와 비전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시민운동가의 책무는 역사적 소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사와 문명의 전환기를 맞아 시민사회가 어떻게 시민의 행동을 끌어내고 하나로 모아내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정치개혁을 넘어 민주적 복지국가, 지속가능한 생태국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행동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실현할 수 있다. 


언론광장 감사, (http://www.ingopress.com) 편집인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아무도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29일자 기사 '아무도 한반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를 퍼왔습니다.
[고승우 칼럼] 주변 4개국의 무관심, 지금이 '뼛속까지 친미'하고 있을 땐가

북한이 김정은 부위원장 체제로 출범하면서 주변 4개 국가의 한반도 정책이 관심을 모은다. 우선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비춰 한반도에서의 급격한 변화, 통일을 원치 않는다.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최선으로 여기면서 분단 고착 정책을 펴는데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꼴이다. 

중국은 북한의 안정이 군사적으로 동북 3성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점에서 북한의 체제 유지에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후 주변 국가에게 북한을 자극하지 말 것을 통보하기도 했다. 중국은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합 될 경우 불가피한 주한미군과 중국군이 대치하는 상황을 절대 원치 않는다. 

중국은 동북 3성의 지하자원이 고갈 상태여서 북한의 천연자원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북한의 지하자원은 약 7천 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양으로 남한의 24배에 달한다. 중국은 미국, 유럽의 금융위기와 경제난으로 자국의 경제가 향후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주산업에 적극 투자하면서 미국과 러시아를 제친 우주 강국을 꿈꾸고 있다. 이래저래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강력히 희망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데 주한미군이 안성맞춤으로 여긴다. 주한미군은 중국의 목을 겨눈 비수로 비유된다. 여차 하면 주한미군이 중국을 군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적 위치다. 주한미군을 절대 철수시키지 않는 이유다.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할 명분의 하나는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에 대한 ‘관리’다. 국제 사회에 주한미군이 남북간 무력 충돌을 막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남북이 천안함, 연평도 문제로 갈등하는 것은 미국에게는 최상의 호재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9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전한 가운데 20일 서울역 대기실에서 시민들이 김정일 사망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주한미군 주둔비도 한국이 대부분을 부담하니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큰 득이 된다. 주한미군을 세계 분쟁지역에 투입할 수 있게 한국과 합의했으니 이 또한 미국에게는 엄청난 전략적 이득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도 지연시킨다. 정전협정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도 절대 불가다.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내심 원치 않는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 강력한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을 두려워한다. 현재 남한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추월하는 것이 못마땅한데 통일 한반도가 풍부한 지하자원과 첨단 과학 기술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일본을 앞설 강대국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수십 년 간을 ‘투쟁’하는 것을 보고 그런 노하우가 통일 한반도에 계승될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최대한 저지하려 한다. 

일본은 납치문제에서, 북한이 보내온 일본인 유골의 DNA 검사를 소홀히 한 채 문제의 유골을 폐기 처분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만든 뒤 ‘북이 속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속내도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속셈의 결과로 읽힌다. 

러시아는 옛 소련의 전통 탓인지 대소 국제 문제에 미국에 대한 반감이 대단하다. 아직은 세계의 2대 강국이라는 향수에 젖어 매사에 미국과 각을 세운다. 한반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반도가 통일돼 러시아와 미군이 총부리를 맞겨눈다는 것도 피하고 싶은 항목 가운데 맨 앞에 속한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뒤 북한에 대한 지원을 크게 줄이면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이 쇠퇴했지만 최근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북한을 경유한 가스관 건설을 수단으로 남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한다. 남북을 분단 상태에서 관리하겠다는 속셈으로 읽힌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한반도 주변 4개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최선으로 여긴다. 통일에 대해서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역행하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런 점을 살핀다면 한반도 통일이나 평화, 안전 등은 결국 당사국인 남북이 챙길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처럼 ‘뼈 속까지 친미’와 같은 방식은 미국 등 4개국이 한 통속이 된 남북 분단 고착화 정책에 동조하는 것과 같다.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자 기사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를 퍼왔습니다.
[백낙청 편집인 신년칼럼] "김정일 급서, 남녘의 봄은 준비되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반도 전체로서도 큰 사건이다. 평소에 한반도에 관심이 적은 서방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일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논평을 쏟아냈다. 후속 김정은시대가 어떤 양상일지 누구나 궁금해할 법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있다. 북녘의 지도자 교체와 남녘에서의 2013년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큰 변수가 될까. 북녘 동포들로서야 영도자의 급서(急逝)가 당연히 최대의 사건이겠지만, 한반도 전체의 장기적 전망에서는 2013년체제의 성패, 곧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한번 크게 바뀌었듯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한층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013년체제'에 관해서는 2011년 여름호에 수록된 졸고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참조).

최고지도자의 급서와 '급변사태'를 구별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도자의 급서가 곧 나라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북측이 마련해놓았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민주적이냐 또는 사회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왕조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나온다는데, 북조선 체제가 형식과 내용 모두 태국과 거리가 멀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교체가 연로한 국왕의 승하(昇遐)를 대비하여 책봉해두었던 왕세자의 등극과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대비에 주목했더라면 너무 쉽게 '급변사태'를 예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 체제의 '왕조적 성격'에 유의한다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후계연습기간이 아버지 때보다 짧았다는 사실도 당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첫번째 세습의 경우는 국조(國祖)에 해당하는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워낙 크고 그의 죽음이 워낙 갑작스러운데다 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하고 건설된 국가의 '왕조적' 변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어쩌면 더 큰 진통이 따랐을지 모른다. 반면에 3대세습은 김일성 가문(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이 통념화된 사회에서 2대세습으로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같은 유일체제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이 달랐듯이 김정은 체제도 많든 적든 변용을 거쳐 형성되리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선대와는 달리 그는 '수령'도 '주석'도 아닌 지위에서 '선군정치'라는 군부와의 일정한 타협을 전제로 권력을 행사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왕년의 일본 천황을 방불케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옹립되더라도 그의 실질적인 통치는 당과 군 엘리트집단과의 또다른 관계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하며 '대장 동지' 자신이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김정은시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호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체제 건설이 핵심 변수인 이유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곧 북측 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동일시하던 시나리오가 퇴색하면서 한반도정세의 '불확실성'이 도리어 감소한 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남한 민중이 2013년체제를 건설하느냐 못하느냐는 변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비중은 남북한의 국력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은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남쪽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큰 무게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원론적 고려를 떠나서도,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한반도정세를 꼬이게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 2011.12.1 강의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2.0' 참조)

물론 북에서 급변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먼 장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심지어 이명박정부도, 특유의 무정견(無定見)과 무교양(無敎養)을 드러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유지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남한 바깥의 변수로 말하면 오히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걱정거리다. 후보지명전에 나선 인사들 중에 심지어 온건파라는 롬니 매사추세츠주 지사조차 극우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로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2013년체제가 아주 불가능해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W. 부시가 당선된 2000년대 초와 달리, 현재 미국은 국가경제가 거의 거덜나고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며, 이런 판국에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아예 포기한 듯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부시와 같은 완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국민이 2012년에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훼방을 놓고 애를 먹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좌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여기저기서 논의와 공부가 진행되고 있듯이 2013년체제는 한국사회의 일대 전환을 기약하고 있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가 새로운 단계로 약진하면서 그간의 극심한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고 국가모델을 생명친화적인 복지사회로 바꾸며 정의・연대・신뢰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재생하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때 핵심적 의제의 하나이자 어떤 의미로는 여타 의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다.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지 완전한 '해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래 굳어져온 분단체제의 온전한 극복은 아직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2013년체제 성공의 한가지 전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그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87년체제의 민주개혁작업을 발목잡던 세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북측의 동의와 주변국 특히 미국의 동조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핵문제 해결에 최소한 상당한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간 및 미북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유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북측도 김정은시대의 안착을 위해 마땅히 추구할 일들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2013년체제의 더 큰 목표는 좀 다른 차원이다. 이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6・15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고 실제로 10・4선언을 통해 그 준비에 시동이 걸렸지만, 정작 남북연합을 수용하려면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인데, 주변여건이 개선되고 특히 남쪽 국민이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확실히 선택하여 지혜롭게 추진할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내 실현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명박정부의 남은 기간에라도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고위급 접촉을 진행하여 '북한 변수'를 대한민국의 이익과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불명예가 그나마 덜어지고 87년체제 극복이 그만큼 순조로워질 것이다. 반면에 그것조차 못한다고 하면 정권교체를 통해 새 체제를 출범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2013년체제는 오고 있다

2013년체제가 다가오는 징후는 2011년 한국의 도처에서 나타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현상'이 그랬고, 한진중공업에서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해낸 김진숙 씨가 희망버스를 비롯한 범사회적 지원을 업고 생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징후의 일환일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SNS라는 새 매체를 통해 전에 없이 긴밀히 연결되고 소통하는 대중이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는데, 이들 대중이 여차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여기에 김정일시대의 종언은 어쨌든 변화가 불가피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북에서도 '재스민혁명'이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가 아니라, 남한의 수구세력이 북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현실을 슬기롭게 관리할 능력이 태무함을 재확인해줌으로써 시대전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으로 때이르게 전면에 나선 것도 2013년체제를 예감케 하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이명박 계승'을 내걸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였고, 따라서 박위원장이 언젠가 나서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좀더 오래도록 신비의 베일 속에 머물다가 총선이 임박해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애초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급변하는 세상은 그런 우아한 이미지 정치를 더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못해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상처만 입었고, 비대위 위원장으로서의 '조기등판'조차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에이스의 구원등판으로 접전의 양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박근혜 체제가 실제로 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선 전망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 반면에 그러지 못할 경우 대선승리를 위한 여당의 최대 카드가 일찌감치 무력화되기 쉽다.

야권이 분열로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엄연히 남아 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으로 각기 부분적인 통합을 이루었고 최소한 연합 대상정당의 '개체 수'를 줄이는 성과를 확실히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두 당의 추가통합 내지 선거연대는 여전히 장담 못할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당끼리 연합한다는 것은 공동정부를 전제로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보다 몇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위력을 상징하는 '안철수현상'이 추가 변수로 남아 있는데, 연대조차 못하는 야권이 그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 터이다.

관건은 역시 2013년체제다. 얼굴을 바꾸고 'MB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구 집권세력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에서뿐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획기적인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룩할 것인가. 어렵지만 가슴 벅찬 모험의 길을 향해 다수 국민들이 열성과 지혜를 모으기만 한다면 총선이라는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의 타성과 작은 이익 챙기기가 한결 발붙이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분단체제 속에 살면서 너무 완벽하고 상큼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또다른 타성임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2013년체제 도래의 징후에 마음을 열고 신심에 찬 노력을 지속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고 영국의 시인 셸리가 노래한 바 있는데( 1819), 우리는 표현을 약간 바꾸어, "봄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고 읊어봄직하다.

* 12월 29일 발행된  전문입니다.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


이글은 레디앙 2011-12-22일자 기사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을 퍼왔습니다'
[기고] "미중 한반도 이해관계 드러나…북미대화는 유훈"

‘문제적 인물’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죽음과 죽음 이후에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적’이라 함은 특정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킨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의 삶 자체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과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뉴스로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4년 7월 故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 학생회관 앞에 붙었던 모 학생정치조직 명의의 ‘경축 독재자의 죽음’이라는 대자보, 격렬했던 조문파동, 대학가 분향소 설치 논란,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파동과 공안사건들로 이어지던 어두운 기억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논란의 소용돌이에는 빠지지 않은 점은 1990년대 초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온 남북 화해, 교류협력 흐름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역사화’된 인물이다(그가 살아 있었을 때조차도).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북한 체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또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에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라는 표현이 부족해 ‘수령제’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 북한 체제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왔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분석하고 전망하며 대응하는 시야는 조의, 조문과 같은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 또한, 생전의 김정일이라는 인물과 그가 구축하고 이끌어온 체제에 대한 호불호와도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 시나리오보다는 실사구시를
예컨대, 조의, 조문의 문제는 이미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하면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정지해 있었는지 달리고 있었는지가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정보당국들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여론을 의식해 (우리는 이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서로 경쟁하며 정보를 흘리는 것이라면, 볼썽사납지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정보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염두에 둔 발언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토록 핵심적인 정보를 정보위 국회의원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국정원 측의 정보와 군 정보당국의 정보가 서로 엇갈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원세훈 국정원장의 12월 20일 국회 정보위 발언과 김관진 국방장관의 12월20일 국회 국방위 발언).
북한 급변사태론(혹은 붕괴론)은 특히,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와병을 즈음해서 다시 힘을 얻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개념계획으로 존재해오던 한미연합 ‘작계5029’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참고로 ‘작계5029(정확하게 얘기하면 개념계획5029, CP-5029)’는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북한 지역에 대한 개입과 안정화 작전에 대한 계획이다. 이중 일부는 올해 2월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 시 시험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표되었을 때, 워치콘 단계를 격상시키는 등의 조치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상정한 군사훈련이나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북한을 자극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어떤 근거 하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인가도 문제이다. 북한의 리더십과 체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불안정과 동요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는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와 참배 모습, 중국의 반응 등을 종합해 볼 때 그동안 준비해왔던 ‘권력승계 프로세스(succession process)’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오히려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제의 운명은 이후 전개되는 내외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에 기반 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칫 현실을 희망적 사고로 재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을 둘러싼 국제정치
우리는 북한의 내적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설사, 무리한 개입을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세계사가 확인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북한과 북한 리더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를 위한 신뢰 조성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염두 해 두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북한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고위급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차 북미 고위급 대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를 맞이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12월21일자). 북한의 입장에서는 애도 기간과 ‘국상’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미국만큼 적극적일 수는 없을지라도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해 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미 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과 같은 사업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한 북미 대화를 시작한 배경이 남북 관계의 단절과 6자회담의 교착국면 속에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6자회담 재개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또한,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의 진전이 가능한가는 더 미지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북미 대화의 성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에 이미 공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1974년 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의 후계자 공인만을 고려해보더라도 20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나름의 ‘정치적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후계자 김정은의 경우는 이제 갓 후계자라로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이 ‘정치적 결단’에 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가능성의 공간은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그것이 당장 한반도 문제의 ‘일대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동안의 경색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관계’라는 것이 서로 상대가 존재하고 복수의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중국과 미국,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중 접근, 대중 의존에 대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들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위기’를 맞은 북한이 이 같은 경향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근거 없는 시나리오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한다든지, 혹은 ‘종속’될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한미 관계의 프리즘을 통해 북중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혹은 북중 관계를 너무 단순화해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북한이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촉구하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대중 접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축소, 단절, 그리고 사실상의 남북관계의 단절이 계속되었고,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경제적 측면에서나,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은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게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그런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북한의 권력승계 국면을 맞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오래간만에 일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이해관계에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이 발표한 성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안정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현상변경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북한의 핵무장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등장도 현상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양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절반 정도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또한, 전쟁의 부재도 중요하지만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문제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장기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남북의 경제공동체 건설과 통일 같은 목표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다. 설사 급격하고 격렬한 체제변동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체제변동이 바람직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정치적, 경제적 비용 뿐만아니라 인간적 비용(human cost)까지를 포함해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목적의식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평화는 포기할 수없는 목표이다. 또한, 평화가 전면 전쟁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운신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의 재개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와 군사훈련 등의 자제만으로도 신뢰회복의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이것이 어쩌면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게 남겨주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다양한 민간부문의 사려깊은 대응이 동반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 정부의 정책전환을 촉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비판하고 심판하는 몫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 16:15:50 이준규 /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연구소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외교안보라인, 김정일 사망 낌새도 못챘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19일자 기사 '외교안보라인, 김정일 사망 낌새도 못챘다'를 퍼왔습니다.
[뉴스분석] ‘김정일 사망’ 직후 MB는 일본 방문, 대북 정보망 심각한 허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이라는 한반도의 중요사건이 발생한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를 비운 채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한반도 정국에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최고 책임자의 사망 소식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김정일 위원장 사망소식을 전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것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로서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한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 시간은 12월 17일 오전 8시30분이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30분 현지 지도의 길에서 극병으로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한지 몇 시간 지나 일본 방문을 위해 한국을 떠났으며 1박2일간 일정을 마무리 한 뒤 서울로 돌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오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과 관련, 청와대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 김관진 국방부장관, 원세훈 국정원장 등과 NSC를 주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헤럴드경제는 19일 이라는 기사에서 “이 대통령은 17일 낮 12시 30분에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1박 2일의 셔틀외교를 펼친 뒤 18일 오후 3시 한국에 도착했다. 결국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음에도 국가 원수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1박 2일 동안 비우고 있었던 셈”이라고 보도했다.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보다 충격적인 것은 '정말 청와대가 사흘간 몰랐는가'라는 것"이라며 "유사시 대통령의 존재를 감안할 때 사망을 알았다면 (일본 방문) 일정이 당연히 조정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선택 자유선진당 최고위원은 “보도에 의하면 사망한지 50시간 이틀이 지나서 발표되었다. 이틀 동안 우리 정부가 이 사실을 낌새도 못 챘다고 한다면 우리 대북 정보망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 안보망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핫라인’이 끊겼다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심각한 ‘정보 부재’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북한이 12월 19일 특별방송을 할 것으로 알려진 뒤에도 정부쪽에서는 ‘북·미 회담’과 관련한 내용이 될 것으로 예측하다 화들짝 놀랐다.
이명박 정부의 위기대응 체계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는 게 다시 한 번 확인된 장면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국민들에게 아무 동요 없이 경제활동에 전념해 달라”고 말했다고 안광찬 국가위기관리실장이 전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9일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7월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5월11일공장'을 시찰 모습.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사건은 한반도 정세에 있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불안과 걱정을 잠재우는 ‘정치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남북관계 급변과 같은 상황 변화가 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국민 불안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유정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긴급최고위원회의 결과 브리핑을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서에 조의를 표한다. 북한 지도부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가 악화되지 않고 평화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다. 미국과 중국 등 국제사회에도 북한사회의 안정과 한반도 평화 조성 노력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정부는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국가안보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에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이 조성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대처해야할 것”이라며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태로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정신과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초당적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공동선언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 소식에 애도를 표명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남과 북 주변당사국들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진보신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면서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해 한반도 긴장이 강화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이번 계기를 통해 기본적 안보 태세를 갖추는 것을 넘어 국민의 과도한 불안감을 유발해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회는 이날부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보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두아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은 “여야 원내대표가 전화통화로 통외통위, 국방위, 정보위, 행안위 등 관련 상임위를 오늘부터 개최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했다. 다만 형식이 상임위 인지 간담회인지, 장소, 시기, 정부 관계자 참석 여부(장관, 차관, 실무자) 등을 각 상임위 별로 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사망, MB는 김영삼 반면교사 삼아야


이글은 대자보 2011-12-19일자 기사 '김정일 사망, MB는 김영삼 반면교사 삼아야'를 퍼왔습니다.
[공희준의 일망타진]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과 북한 급변사태 대비해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내부적인 정치적 화두들에만 자폐적으로 몰두해왔음을 통렬하게 일깨워주었다. 특히 이른바 ‘생활정치 제일주의’에 광신적으로 매몰된 ‘축소지향형 정치집단’의 득세는 대한민국이 마치 북유럽 여러 나라들과 같은 안온하고 안전한 국제정치적 환경을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착시현상을 불러온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 등장 이래로 남북관계는 심각한 퇴행을 거듭하였다. 김영삼 정권이 집권할 당시에 벌어졌던 상황과 놀라울 만큼 대단히 흡사하다. 더군다나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북한 핵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김영삼 정부 당시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였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숨졌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한국 정부는 대책 없고 비이성적인 북한 붕괴론에만 매달리다가 한반도의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김영삼 정권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크다.

다행히도 그때는 김대중이라는 불세출의 거인이 한반도 정세가 전면적 파국으로 빠지지 않도록 튼튼한 안전판 역할을 훌륭하게 맡아주었다. 허나 현재는 무능하고 식견 짧은 김영삼의 후예들이 집권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들마저 장악하고 말았다. 문재인과 유시민의 대북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것에 가까울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그것에 가까울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권 수뇌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정책은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었다. 역대 수구냉전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정권의 이익을 위해 남북관계를 거리낌 없이 희생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사상 최초의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키고, 남북관계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역사적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정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들마저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과 북한의 급변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하면서 당장의 인기와 지지율에 급급해 친노세력 식의 얄팍한 ‘내수용 정치’에만 몰입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외면하는 정치인과, 통일이 필요 없다고 믿는 무리가 진보진영의 미래와 개혁세력의 운명을 주도하는 엽기적인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민주당 재건의 길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길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당이 해체되었다고 평화롭고 정상적인 남북관계까지 덩달아 아예 완전히 해체당해야만 하겠는가? 
글쓴이는 정권탈환의 본진 누리집(http://soobok.or.kr/) 운영자입니다.

[권태선 칼럼] 비상한 시기, 한민족의 성숙함을 보여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9일자 기사 '[권태선 칼럼] 비상한 시기, 한민족의 성숙함을 보여야'를 퍼왔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돌연한 사망으로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한반도 남과 북의 위정자들과 주민들이 이 시기를 얼마나 지헤롭게 넘기느냐에 한민족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가져올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가져왔던 불안정성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공산권 몰락의 여파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지만, 그래도 74년부터 후계수업을 해온 김정일이란 후계자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김정은도 후계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그 기간이 일천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나이는 김일성 주석을 승계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 나이의 절반을 조금 넘는 29살에 불과합니다. 통상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만한 경험이나 경륜을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입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에는 94년에는 없었던 핵무기가 존재합니다. 자칫 잘못 대응했다간 한반도와 동북아를 격랑 속으로 빠뜨릴 위험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느냐는 일차적으로 북한의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한 북한 방송은 말미에 “김정은 동지의 영도에 따라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특별방송과 동시에 장의위원 명단과 장의절차 등이 질서정연하게 발표됐습니다. 이는 북한 권력 내부가 당장은 큰 동요 없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김정은 체제가 이미 안착되었음을 알리는 징표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 군부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은 북한이 오래전부터 타이의 입헌군주제를 검토해왔다는 점입니다. 노태우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여러 차례 만났던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북쪽 인사들이 타이의 입헌군주제를 높이 평가해 상당한 정도로 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인 김정은에겐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절대권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과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 등이 집단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의회와 내각 대신 당과 군이 권력을 행사하는 변형된 입헌군주제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김정일 사후 북한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급변사태를 초래하리란 분석은 북한을 자멸시켜 흡수통일하자고 해온 이들의 희망적 관측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합니다. 모험적인 흡수통일론자들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이 기회를 대북관계 개선의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조문파동을 일으켜 이후 남북관계를 크게 경색시켰던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상황이 재연돼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권은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또 당장 이틀 전에 일어난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우리 정부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우리의 대북 정보력은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얄팍한단기적 이익을 위해 경거망동하다간 민족과 국가를 전대미문의 위난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최우선”이라고 말해 현 상황이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해 이 대통령이 할 가장 시급한 일은 김 위원장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고,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예의를 다함으로써 꽉 막혀 있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새 지도부와 신뢰관계를 형성한다면 북한을 개방사회로 유도해 한반도를 안정화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정부의 진지한 대응을 기대합니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사설] 한반도 안정이 최우선이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9일자 사설 '[사설] 한반도 안정이 최우선이다'를 퍼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중병설이 나돌았지만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던 그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충격적이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및 주변 정세 전반에도 심대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발표와 동시에 후계 김정은 체제로의 권력승계를 강조함으로써 체제 안정에 대한 의구심에 쐐기를 박았다. 북한이 이후 사태 전개를 제대로 통제하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순 없지만 권력 공백에 따른 급변사태가 바로 뒤따를 정도로 체제가 허약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수록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의 사망과 그것이 불러일으킬 한반도 및 주변 정세 변동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에 비견될 만하다. 당시 북한은 현실 사회주의체제 붕괴 뒤 극도의 어려움에 봉착했고, 핵위기로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이후 17년간 북을 통치해온 김 위원장은 경제위기와 자연재해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북한 체제를 재건하고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건설도 받아들였다.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체제 존립을 위협한 미국 조지 부시 정권에 맞서 핵무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해서 그가 약속한 강성대국은 인민을 먹여살리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가 됐다.
정세변동의 정략적 이용 경계해야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상황은 어떤 면에선 김 주석 사망 때보다 더 열악하다. 지난해 공식화한 김정은 후계체제는 긴 세월 동안 권력승계 수업을 받은 김 위원장 때와는 달리 아직 굳어지지 못했고, 경제상황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대량 탈북 사태에서 보듯 체제 이완의 징후마저 뚜렷해졌다. 남북관계는 더 경색돼 있고, 주변 정세도 17년 전 못지않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 북 체제의 불안정성은 그만큼 더 커졌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남북관계가 17년 전보다 더 경색돼 있다는 건 치명적이다. 현 정권 등장 이후 남북관계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거둔 성과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지난해의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엔 거의 전면적인 단절 속에서 긴장만 높아졌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까지 남쪽이 어떠한 이상징후도 포착하지 못한 현실이 이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남쪽이 북의 정세 변동과 관련해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이것이야말로 이런 긴박한 시기에 최대 위험요소일 수 있다. 북을 압박해서 굴복시키거나 체제 붕괴를 통한 흡수통합까지 염두에 둔 남쪽 강경론자들이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사실상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하며 위험한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준다.
우리는 당연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그들과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극도로 제한돼 있는 이상, 상황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고 끌려가기 십상이다. 이 또한 매우 걱정스러운 일이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까지 앞둔 우리의 유동적인 정치상황도 불안 재료다. 정권 차원에서 이런 상황을 이용하려는 욕심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랬다가는 자신들뿐 아니라 민족 전체에 치명적 손실을 가하는 심각한 사태를 부를 수도 있다. 게다가 중국의 급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속에 동아시아 정세가 근본적인 구조변동을 겪고 있고, 특히 내년은 이들 주요국의 정치 상황이 동시에 바뀔 수도 있는 권력교체기다. 이런 이행기에 안팎의 정치세력이 김 위원장 사망이 촉발할 정세 변동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장난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