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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8일 목요일

빼앗긴 자들이여, 광장을 점거하자


이글은 레디앙 2012-03-07일자 기사 '빼앗긴 자들이여, 광장을 점거하자'를 퍼왔습니다.
[기고] 3월 10일, '희망의 광장'을 위해…99%를 위한 새 시대

송전탑에도 숱하게 올라봤다도심의 CC카메라탑은 셀 수도 없다한강 난간에 올라가도 봤고매달려 있다 강물로 뛰어내려보기도 했다크레인에도 올라봤고포크레인 위에도 올라봤다건물 옥상에도 올라봤고지붕 위에도 올라봤다
손수 지어 오른 망루도 셀 수 없다망루에서 불타 죽고도1년 동안 장례도 못 지내고 냉동고에 갇혀보기도 했다 목 매단 이뛰어내린 이화염에 휩싸인 이곤봉에 방패에 맞아 죽은 이말할 수 없다
도대체 이 땅의 빈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 이 땅의 농민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 이 땅의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도대체이 땅의 평범한 이들은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공장 문도 닫히고은행 문도 닫히고법원 문도 닫히고국회 문도 닫히고언론사 문도 닫히고주인집 문도 닫히고민주주의도 닫히니모두의 미래가 닫히고모두의 꿈이 닫혔다
도대체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빼앗긴 자들이여다시 민주주의의 거리를 열어라쫒겨난 자들이여저 너른 광장을 점거하라생을 반납하지 말고저들을 제압하라좌절은 1%의 몫보라. 99%를 위한 새로운 세기가 저기 다가오고 있다
                                                 * * *
[덧말]
아직 내려놓지 못한 각자 크레인 위의 삶


▲행사 포스터.
‘희망의 버스’ 건으로 구속되어 3개월여를 차디찬 마루바닥의 0.9평 독방에서 지내다 얼마 전 보석으로 나왔다. 이것도 운명인지, 출소 인사를 해야 할 절친한 이들이 모두 영하 10도의 혹한에 ‘희망뚜벅이’들이 되어 서울에서 평택 쌍용자동차까지 걷기 행진을 하고 있었다. 가서 인사를 하는데도 모두 바빠 말 건네기도 계면쩍었다.
주변 걱정도 많아 바로 발 수술을 받으려 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소선 어머니 묘소 참배는 하고 들어오고 싶었다. 작년 10월 어머니의 소천 때 ‘이소선 어머니의 희망버스’를 제안하고, 모시며 했던 약속이었다.
85호 크레인 위 사람들이 무사히 내려오고, 나와 정진우 씨도 수배가 풀리면 다함께 어머니 묘소로 찾아뵙고 좋아하시던 소주 한 잔, 담배 한 개비 올리겠다는 약속이었다. 다시 내가 병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언제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터라, 급하게 일정을 맞춰 어머니 묘소를 다녀왔다.
모란공원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제서야 우리는 편하게 몇 마디씩 그간 소회를 얘기하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검찰은 우리를 공동공모정범이라 해서 무슨 일을 사전에 협의하고 공모한 이들이라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날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 가 있던 김진숙과 정홍영과 박성호 씨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서러운 눈물을 보아야 했다. 나도 벅차올라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2차 희망버스가 계획된 후 연일 85호 크레인에 대한 사측과 용역깡패들의 침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던가. 박성호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던 이야기. 만약에라도 진짜 강제 침탈이 벌어지면 여기에서 생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각오들을 했다는 얘기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 건물 지붕으로 쫓겨 올라갔다 내려온 이들이 아직도 에서 심리상담 치료를 받고 있듯, 당시의 아픔들이 아직도 모두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오지 못하고 있음을 서럽게, 아프게 느껴야만 했다.
무엇을 이기고, 무엇이 끝났나?
그렇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못했고, 아직도 하고 싶은 말들이 많다.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은 집행유예 등의 형벌을 받아야 했고, 나와 정진우 씨는 이 사회에 작은 희망의 씨앗 하나 심는 일에 함께 했다는 까닭으로, 아픈 이웃을 사랑하고 도우려 했다는 죄로 구속이 되어야 했다. 또 수많은 이들이 약식 기소되어 수백만원 씩의 벌금 폭탄과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기소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측과 어용노조 집행부는 곧바로 지친 조합원들을 협박 회유해 복수노조를 만들었다. 1년 이내 복직이라는 약속을 어떻게라도 파기해보고 싶은 불손한 시도들이 현장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이기고, 무엇이 끝났다는 말인가.
재능교육 특수고용 비정규직들은 1500일을 결국 넘어야 했고, 얼마전 콜트-콜텍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은 5년만의 대법 판결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반드시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는 지난 판례의 적용을 받기도 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로만도 그간 수백만명의 정리해고가 가능했는데, 이젠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까지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한다. 그 사이 유성기업과 구미 KEC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잘려 나갔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이 시대 모든 평범한 이들의 공통 운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이 3월 10일 토요일 시청광장에 다시 모여 이번에는 ‘희망의 광장’을 열어보자고 했다 한다. 우리의 연대로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를 막아냈던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살려, 이제는 한 공장의 울타리 안에서가 아니라, 이 사회라는 울타리 전체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우리 시대 최악의 악성종양을 도려내는 간절한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사탕발림 공약이나마 다행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 사회적으로 연대해 보자는 것이다. 마침 희망의 버스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공간을 맞아 모든 정치권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법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또 다시 사탕발림의 빈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것을 이루려면 작년 희망버스 때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여 광장에서 민중의 법을 먼저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총대선이 어떤 당의, 어떤 인물들의 당선과 집권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의제를 분명히 하고,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환을 꾀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들이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모두가 여야를 불문하고 구시대적인 정치인들의 권력 놀음의 거수기나 주변이 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이 막중한 정치의 시기에 분명한 주인 행세를 해보자는 것이다.
이제 수술을 마치고 거동이 아직 불편해 나는 나가지 못하지만, 이 광장에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날 전국에서 모이는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이 다시 김진숙처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군요."라는 감격의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진짜 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슨 보살행을 바라는 것도, 무슨 동정이나 연민을 구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나온 콜트-콜텍과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법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싸움은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평범하고 가난한 90%의 운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투쟁들이다. 이 싸움을 이제 더 이상 소수의 노동자들이 외롭게, 신경쇠약에 걸려가며, 가정이 파탄나며, 관계들이 모두 어긋나며 과도하게 짊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가슴 아픈 일들이지만, 보석으로 출소 이후, 몇몇 기자들과 사람들로부터 쌍차 희망텐트와 재능교육 특수고용직 1500일 투쟁, 인천 부평공장의 콜트-콜텍 농성 등을 얘기하며 "그곳엔 크레인이 없지 않느냐?", "그곳엔 96일을 굶던 김소연이, 김진숙이 없지 않느냐?" 거기다 어떤 때는 눈앞이 아득하게도, "송경동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내 가슴이 미어진 이유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니 그곳에 있는 한 명 한 명이 모두 김진숙이며, 김소연인 것이 보이지 않냐고, 느껴지지 않냐고 울고 싶었다. 그런 전형적 상황이, 그런 야만적인 상황이, 그런 가슴 아픈 사연들이 다시 와야만 또 한번 잠깐 움직일만큼 사람들이 나약하게 보이느냐고, 바보스럽게 보이느냐고, 영악하게 보이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또 한 명의 김소연이, 유명자가 굶으러 들어가고, 또 한 명의 김진숙이 죽음의 계단 한 칸씩을 오르고, 또 누군가 매달리려 내려가고, 또 누군가 내가 희생해서라도라는 위험한 생각의 귀퉁이로 몰린다는 것을 잊었냐고 묻고 싶었다. 다시는 그 누구도 혼자 죽음을 결심하지 않아도 되게 이 평지에서, 이 거리에서, 이 광장에서 먼저 연대하면 좋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꿈꿔지는 모든 것은 실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상상되어진다. 하지만, 그 꿈이 모두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반의 조건들이 맞아야 하는 한계가 있음을 안다. 삶은, 사회는 그런 것이라고 뻗쳐오르던 기대를 접는 때가 더 많기도 하다.
또 어떤 한 사람이 계획되어있지 않았던 한 손만을 내밀 때도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결의가 필요한지도 어렴풋이 알기에 함부로 사람들에게 원칙주의적으로, 교조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건 오히려 선의로 치장된 폭력이 되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꿈꿔본다. 그런 광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이들이 많을 거라고. 모두가 그런 열린 광장의 시대를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라고, 법도 국회도 은행도 공장도 주택도 사랑도 우정도 그 어떤 것도 모두 닫혀 있는 이 시대의 척박한 공기 속에서 곧 질식할 것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광장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법과 윤리를 새롭게 주체적으로 제정하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한 이유
사실, 희망버스의 법정에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내가 다 한 것으로 하고 더 이상 피해자들을 만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오만일 수 있었다. 희망의 버스는 실제 누가 주고 누가 부이고, 누군가 지시를 내리는 소수의 갑이 있고, 이에 무작정 따르는 을이 있었던 수동적인 운동이 아니었다. 참여한 모든 이들이 그 현장의 주인이었으며, 기획자였고, 주동자였다.
그러지 않고서는 나도 희망의 버스 운동이 모두 설명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영광임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희망버스 승객 한 사람에 불과했음을 확인하고, 전근대적인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반박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한 나의 주장대로 희망의 버스 승객들은 나와 보니 그간에도 많은 변화와 변이를 거듭하고 있다. 쌍용의 ‘희망텐트촌’으로, 연대와 ‘희망의 뚜벅이’들로, 강원도와 김해로 향하는 ‘생명의 버스’로, 강정으로 향하는 ‘희망의 비행기’로 수없이 진화해가는 희망의 씨앗들이, 산소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새로운 ‘기획자’들이, ‘주동자’들이 이 광장에 함께 해주기를 꿈꿔 본다. 그들의 연대로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희망의 광장’이 풍성해지기를, ‘웃으며 끝까지 즐겁게, 투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빨리 나아 나도 그 문화의 광장에, 기쁨의 광장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11년 6월 11일, 1차 희망의 버스 당시 비가 내리는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어울려 밤새 노래하고 춤추던 그 날처럼 눈물겨우면서도, 아름다운 광장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재작년 기륭 투쟁 과정에서 이 병원에 들어와 웅크리고 누워 겨울을 보내고 있을 때 김진숙 씨가 85호 크레인 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곤 가슴이 무너졌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행이다. 그가 잘 내려와 이번 희망의 광장 때는 팔순을 맞은 백기완 선생과 토크쇼도 연다고 한다. 허클베리핀·와이낫·무키무키만만수·윈디시티 등 밴드들이 함께하는 희망 콘서트의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다시 새 봄이 오고 있고, 이 봄은 이제 더 이상 눈물만 흘리고 있는 봄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쭈뼛쭈뼛 새순들 마냥 솟는다. 이런 생동하는 기분이, 기운들이 너무 좋다.
* 추신 : 부산구치소 시절 지켜주고 찾아봐 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간절함이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열심히, 잘 사는 일로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희망의 버스 당시 정말 많은 분들이 각양각색으로, 적재적소에서 수많은 일들과, 아름다운 마음들을 내어주신 것으로 압니다. 그분들의 수고가 잊혀지지 않고 기억될 수 있도록 찬찬히 제가 아는 일들을 이 역사 속에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2012년 03월 07일 (수) 12:07:27 송경동 / 시인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희망뚜벅이’ 걸어서 죽음의 공장까지 간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1-30일자 기사 '‘희망뚜벅이’ 걸어서 죽음의 공장까지 간다'를 퍼왔습니다.

ⓒ양지웅 기자 30일 오전 서울 혜화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열린 희망뚜벅이 발대식에서 열린 희망뚜벅이 발대식에서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장과 참가자들이 광화문 KT를 향해 행진하던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13일간 이어지는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 발걸음’이 시작됐다. 30일 오전 10시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 발걸음(희망뚜벅이)’이 시작됐다. 이날 오전, 영하의 날씨에도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 모인 120여명의 ‘희망 발걸음’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강한 자신감이 묻어났다. 이날 행사에는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 배우 맹봉학 등 120여명의 참가자들 함께했다.

먼저 발언대에 오른 김혜진 희망버스 기획단 실장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문제는 결국 한 사업장을 넘어서는 모든 노동자의 문제이기 때문에 16개 사업장 동지들이 함께 나서 이 길을 열게 되었다”며 “아직 우리들의 선택은 시작일 뿐이다, 이 길을 통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투쟁을 함께 만들겠다”고 말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쏘아버린 화살은 과녁을 맞추기 전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희망 뚜벅이’들의 힘찬 발걸음을 독려했다.

출발과 동시에 공권력에 막힌 ‘뚜벅이들’

오전 11시께 광화문 케이티(KT) 본사를 향해 출발할 예정이던 ‘희망 뚜벅이’들은 경찰의 봉쇄로 처음부터 차질을 빚었다. 주최 쪽은 인도를 통한 평화적 행진을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경찰관계자는 “해당 집회와 관련 어떠한 신고도 진행되지 않았다”라며 “불법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펼침막을 내리고 확성기를 쓰지 않기로 절충한 뒤에야 참가자들은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30분 가량 창덕궁 돌담길까지 인도를 따라 평화롭게 이어지던 행진은 이화사거리에 이르자 경찰이 다시 제재하기 시작했다. 경찰관계자는 “몸자보를 두르고 신고되지 않은 행진을 시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후 참가자들은 경찰의 제지선을 피해 대학로로 되돌아와 마로니에 공원 앞을 가로지르다 이화사거리에서 에워싼 경찰에 의해 고립됐다. 

시작부터 경찰과의 실랑이로 행진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지만 참가자들은 희망버스처럼 이번 행사가 또다른 ‘결실’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희망 뚜벅이’들은 이날부터 다음달 11일까지 13일 동안 시그네틱스, 코오롱, 콜트-콜텍, 유성기업 등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으로 장기투쟁을 벌이고 있는 수도권의 대부분 사업장들에 희망의 목소리를 전할 계획이다.

행사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언제나 공권력들은 약자를 괴롭히기에 앞장서왔다”라며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지웅 기자 30일 오전 서울 혜화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열린 희망뚜벅이 발대식에서 열린 희망뚜벅이 발대식에서 배우 맹봉학 씨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경찰들 사이로 행진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30일 오전 서울 혜화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열린 희망뚜벅이 발대식에서 열린 희망뚜벅이 발대식에서 백기완 민족문제연구소장과 참가자들이 광화문 KT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조한일 기자jhi@vop.co.kr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자 기사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를 퍼왔습니다.
[백낙청 편집인 신년칼럼] "김정일 급서, 남녘의 봄은 준비되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반도 전체로서도 큰 사건이다. 평소에 한반도에 관심이 적은 서방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일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논평을 쏟아냈다. 후속 김정은시대가 어떤 양상일지 누구나 궁금해할 법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있다. 북녘의 지도자 교체와 남녘에서의 2013년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큰 변수가 될까. 북녘 동포들로서야 영도자의 급서(急逝)가 당연히 최대의 사건이겠지만, 한반도 전체의 장기적 전망에서는 2013년체제의 성패, 곧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한번 크게 바뀌었듯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한층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013년체제'에 관해서는 2011년 여름호에 수록된 졸고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참조).

최고지도자의 급서와 '급변사태'를 구별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도자의 급서가 곧 나라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북측이 마련해놓았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민주적이냐 또는 사회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왕조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나온다는데, 북조선 체제가 형식과 내용 모두 태국과 거리가 멀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교체가 연로한 국왕의 승하(昇遐)를 대비하여 책봉해두었던 왕세자의 등극과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대비에 주목했더라면 너무 쉽게 '급변사태'를 예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 체제의 '왕조적 성격'에 유의한다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후계연습기간이 아버지 때보다 짧았다는 사실도 당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첫번째 세습의 경우는 국조(國祖)에 해당하는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워낙 크고 그의 죽음이 워낙 갑작스러운데다 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하고 건설된 국가의 '왕조적' 변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어쩌면 더 큰 진통이 따랐을지 모른다. 반면에 3대세습은 김일성 가문(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이 통념화된 사회에서 2대세습으로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같은 유일체제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이 달랐듯이 김정은 체제도 많든 적든 변용을 거쳐 형성되리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선대와는 달리 그는 '수령'도 '주석'도 아닌 지위에서 '선군정치'라는 군부와의 일정한 타협을 전제로 권력을 행사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왕년의 일본 천황을 방불케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옹립되더라도 그의 실질적인 통치는 당과 군 엘리트집단과의 또다른 관계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하며 '대장 동지' 자신이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김정은시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호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체제 건설이 핵심 변수인 이유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곧 북측 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동일시하던 시나리오가 퇴색하면서 한반도정세의 '불확실성'이 도리어 감소한 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남한 민중이 2013년체제를 건설하느냐 못하느냐는 변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비중은 남북한의 국력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은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남쪽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큰 무게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원론적 고려를 떠나서도,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한반도정세를 꼬이게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 2011.12.1 강의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2.0' 참조)

물론 북에서 급변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먼 장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심지어 이명박정부도, 특유의 무정견(無定見)과 무교양(無敎養)을 드러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유지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남한 바깥의 변수로 말하면 오히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걱정거리다. 후보지명전에 나선 인사들 중에 심지어 온건파라는 롬니 매사추세츠주 지사조차 극우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로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2013년체제가 아주 불가능해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W. 부시가 당선된 2000년대 초와 달리, 현재 미국은 국가경제가 거의 거덜나고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며, 이런 판국에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아예 포기한 듯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부시와 같은 완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국민이 2012년에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훼방을 놓고 애를 먹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좌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여기저기서 논의와 공부가 진행되고 있듯이 2013년체제는 한국사회의 일대 전환을 기약하고 있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가 새로운 단계로 약진하면서 그간의 극심한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고 국가모델을 생명친화적인 복지사회로 바꾸며 정의・연대・신뢰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재생하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때 핵심적 의제의 하나이자 어떤 의미로는 여타 의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다.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지 완전한 '해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래 굳어져온 분단체제의 온전한 극복은 아직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2013년체제 성공의 한가지 전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그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87년체제의 민주개혁작업을 발목잡던 세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북측의 동의와 주변국 특히 미국의 동조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핵문제 해결에 최소한 상당한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간 및 미북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유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북측도 김정은시대의 안착을 위해 마땅히 추구할 일들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2013년체제의 더 큰 목표는 좀 다른 차원이다. 이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6・15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고 실제로 10・4선언을 통해 그 준비에 시동이 걸렸지만, 정작 남북연합을 수용하려면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인데, 주변여건이 개선되고 특히 남쪽 국민이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확실히 선택하여 지혜롭게 추진할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내 실현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명박정부의 남은 기간에라도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고위급 접촉을 진행하여 '북한 변수'를 대한민국의 이익과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불명예가 그나마 덜어지고 87년체제 극복이 그만큼 순조로워질 것이다. 반면에 그것조차 못한다고 하면 정권교체를 통해 새 체제를 출범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2013년체제는 오고 있다

2013년체제가 다가오는 징후는 2011년 한국의 도처에서 나타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현상'이 그랬고, 한진중공업에서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해낸 김진숙 씨가 희망버스를 비롯한 범사회적 지원을 업고 생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징후의 일환일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SNS라는 새 매체를 통해 전에 없이 긴밀히 연결되고 소통하는 대중이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는데, 이들 대중이 여차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여기에 김정일시대의 종언은 어쨌든 변화가 불가피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북에서도 '재스민혁명'이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가 아니라, 남한의 수구세력이 북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현실을 슬기롭게 관리할 능력이 태무함을 재확인해줌으로써 시대전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으로 때이르게 전면에 나선 것도 2013년체제를 예감케 하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이명박 계승'을 내걸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였고, 따라서 박위원장이 언젠가 나서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좀더 오래도록 신비의 베일 속에 머물다가 총선이 임박해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애초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급변하는 세상은 그런 우아한 이미지 정치를 더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못해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상처만 입었고, 비대위 위원장으로서의 '조기등판'조차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에이스의 구원등판으로 접전의 양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박근혜 체제가 실제로 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선 전망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 반면에 그러지 못할 경우 대선승리를 위한 여당의 최대 카드가 일찌감치 무력화되기 쉽다.

야권이 분열로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엄연히 남아 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으로 각기 부분적인 통합을 이루었고 최소한 연합 대상정당의 '개체 수'를 줄이는 성과를 확실히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두 당의 추가통합 내지 선거연대는 여전히 장담 못할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당끼리 연합한다는 것은 공동정부를 전제로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보다 몇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위력을 상징하는 '안철수현상'이 추가 변수로 남아 있는데, 연대조차 못하는 야권이 그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 터이다.

관건은 역시 2013년체제다. 얼굴을 바꾸고 'MB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구 집권세력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에서뿐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획기적인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룩할 것인가. 어렵지만 가슴 벅찬 모험의 길을 향해 다수 국민들이 열성과 지혜를 모으기만 한다면 총선이라는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의 타성과 작은 이익 챙기기가 한결 발붙이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분단체제 속에 살면서 너무 완벽하고 상큼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또다른 타성임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2013년체제 도래의 징후에 마음을 열고 신심에 찬 노력을 지속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고 영국의 시인 셸리가 노래한 바 있는데( 1819), 우리는 표현을 약간 바꾸어, "봄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고 읊어봄직하다.

* 12월 29일 발행된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