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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일 월요일

권력기관안 ‘영포라인’ 지원관실서 별도 관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02일자 기사 '권력기관안 ‘영포라인’ 지원관실서 별도 관리'를 퍼왔습니다.

13개 기관 73명의 근무부서와 직급, 휴대전화 번호,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문건. 비고란에 포항이나 인근 지역 연고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USB서 13곳 소속 73명 명단 적힌 문건 발견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국세청, 검찰 등 정부 핵심기관에 포진한 영일·포항 출신 인사(영포라인)들의 명단을 별도로 작성해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른바 정부내 ‘영포라인’을 정보 수집과 공직자 감찰 등에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경찰 출신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근무한 김기현 경정의 외장메모리장치(USB)에 저장된 기록을 살펴보면, ‘공직윤리지원관-일반-014’라는 파일에 대통령실과 국가정보원, 방송통신위원회, 국세청, 검찰청, 감사원, 법무부, 총리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관세청, 통계청, 포항시청 등 13개 기관 73명의 근무 부서와 직급, 휴대전화 번호, 사무실 전화번호가 적힌 문건이 들어 있다. 이 문건의 비고란에는 포항이나 인근 지역 연고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예컨대 자신이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의 몸통이라고 주장했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의 경우, 연락처와 함께 ‘구룡포’라고 출신지가 적혀 있다.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칠곡’이라고 적혀 있다. 민정수석실의 김○○ 행정관의 경우 ‘동21’, 국정기획수석실의 윤○○ 행정관은 ‘포35’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각각 동지상고 21회, 포항고 35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꼭 포항 출신은 아니어도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도 두명 기록돼 있다.
이 파일에는 청와대의 경우 경제·민정·정무·사회정책수석실, 대변인실, 경호처 등에 걸쳐 24명의 연락처가, 국정원은 포항지부와 감사실 등 관계자 8명, 방송통신위는 최시중 전 위원장을 포함해 5명, 국세청은 최○○ 팀장 등 7명, 검찰청은 동부지검 최○○ 검사 등 7명이 기록돼 있다. 김기현 경정 유에스비에는 이와 별도로 포항 출신 경찰관 33명의 연락처가 ‘포경’이라는 이름의 별도 시트에 저장돼 있다.
이들 연락처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차원에서 만들어져 팀원들이 공유한 것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1일 “자기들끼리 믿을 수 있는 인맥을 통해 감찰 및 불법사찰 활동에 수시로 업무 협조를 얻기 위한 용도로 작성하지 않았을까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비롯해 불법사찰에 개입한 청와대 및 공직윤리지원관실 관계자들이 대부분 ‘영포라인’이다. 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등은 그동안 “불법사찰은 영포라인이라는 특정 지역 인맥이 사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권력을 전횡한 사건”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지원관실 창설 멤버였던 김화기 경감은 이 명단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경감은 “김기현 경정이 내 후임이었고 김 경정의 컴퓨터를 복원하면서 이 명단이 나온 것 같다”며 “공직생활 20년 하면서 꼼꼼히 정리해놓은 것으로 (민간인 사찰)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 경감은 포항 출신 경찰관으로, 김종익씨 사찰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황준범 박태우 기자 jaybee@hani.co.kr

2012년 1월 27일 금요일

BW-ODA-크레딧스위스, '다이아게이트' 정권실세 의혹의 열쇠?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1-27일자 기사 'BW-ODA-크레딧스위스, '다이아게이트' 정권실세 의혹의 열쇠?'를 퍼왔습니다.
'다이아게이트' CNK 사건 풀리지 않은 3대 의혹



ⓒ이승빈 기자 CNK인터내셔널

CN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에도 불구하고, 정권 실세 관련 의혹은 결국 밝혀내지 못했다. 감사원은 연루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을 조사했으나,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다만 박 전 차관이 문제의 2010년 12월 외교통상부 보도자료 배포를 전후해 김은석 에너지자원대사, 조중표 전 총리실장, 오덕균 CNK 등과 수시로 접촉한 정황만 파악해 검찰에 '수사 참고자료'로 제공하는 수준에 그쳤다. 

박 전 차관을 포함해 핵심 실세 2명의 이름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풀지 못한 핵심 의혹은 ▲이들 정권 실세가 CNK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받았는지 여부와 ▲지난해 초부터 이어진 청와대 민정수석, 총리실,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왜 지연됐는지 등이다. 이밖에도 언론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CNK의 거액 자금 조달도 의혹의 대상이다. 

우선 약 248만주의 CNK신주인수권을 오덕균 CNK 회장이 누구에게 제공했느냐는 의혹은 이미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부터 쏟아져 나온 바 있다. 

당시 국감에서는 박영준 전 차관과 오덕균 CNK대표 등 관련 인물들의 부인들끼리 계모임을 하면서 정보를 나누고 남편들을 소개시켜 줬으며, CNK의 BW가 정권 실세들에게 제공됐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19일 총리실 국감에서 "박영준 전 차관 부인과 오덕균 대표 부인 등이 만나면서 남편들을 소개했고, 박 전 차관이 카메룬 정부와 CNK를 연결해주고, 주가조작 과정 등이 이어지면서 수십억원을 넘게 챙겼다는 의혹이 있다"며 "박 전 차관과 오덕균 대표 등의 부인들끼리 계모임을 한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신건 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9월 23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CNK의 전신인 '코코엔터프라이즈'의 신주인수권부사채가 2009년 유통되는 과정에서 정관계 고위 인사에게 특혜가 제공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BW관련 의혹을 보면, CNK 사건이 두 차례(2010.12.17, 2011.6.28) 외교부 허위 보도자료를 이용한 단순한 주가조작이 아니라 2009년부터 진행돼 온 '프로젝트'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관련 최근에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무소속 정태근 의원이 "권력실세 두 명이 BW 상당 부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차관은 CNK 관련 내용은 김은석 에너지자원대사로부터 처음 들었고, 김 대사 소개로 카메룬에 가기 몇 달 전에 CNK를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집무실로 불러 보고를 받았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박 전 차관은 외교부 보도자료 배포 등 CNK와의 연루설을 부인하고 있으나, 2010년 5월 카메룬 방문 당시 제공한 ODA(공적개발원조)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박 전 차관은 당시 카메룬에 광물실험연구소를 지원하는 명목으로 약 82억원(700만 달러)를 무상으로 지원키로 했다. 이뿐 아니라 정부는 한달 뒤인 그해 6월에는 카메룬의 유일한 무역항인 림베신항 개발사업 협력MOU를 체결하고 8월에는 ODA 지원이 추진됐다. 이 사업은 8억 달러 규모였다. 연이은 카메룬에 대한 ODA 제공 움직임이 카메룬 다이아 사업을 CNK에 주기 위한 특혜 차원에서 진행된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청와대와 총리실, 금융당국 등 사정기관의 CNK주가조작 조사 지연은 사건을 덮는 과정에 권력 핵심부가 동원됐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지난 2010년 12월 17일 배포한 "CNK가 매장량이 최소 4억2천만 캐럿에 달하는 카메룬의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획득했다"고 알린 보도자료

앞서 지난해 초 금융감독원은 증권가에서 CNK주가가 이상하다는 추문이 일자 3월부터 조사에 나섰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는 외교통상통일부와 지식경제부, 총리실 관계자를 집중조사했으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와중에 CNK주가조작을 조사했던 금융감독원 담당 국장은 지난해 4월께 갑자기 다른 자리로 전보됐고, 해당 국장은 박영준 전 차관과 가까운 인사로 교체됐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여권에서는 박 전 차관이 CNK와 연루돼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와 해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박 전 차관은 시간을 달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차관은 지난해 5월이 돼서야 물러났다. '은폐 세력'은 또 지난해 6월 2차 보도자료, 8월부터 시작된 감사원 감사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태근 의원이 "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자 한 세력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때문이다. 

알려져 있지 않은 CNK의 거액 자금 동원도 풀어야 할 의문 중 하나다. 

CNK는 지난해 2월 스위스 투자은행인 크레딧스위스로부터 1천만 달러(약 120억원)를 대출받았는데, 이는 2010년 12월 외교부 보도자료에 이어 또한번 CNK의 주가를 띄웠다. 

오덕균 CNK대표가 지난해 2월 25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크레딧스위스 싱가폴 지점은 CNK의 주식을 담보로 1천만 달러를 대출하고 500만 달러를 추가로 대출키로 했다. 오덕균 대표는 이에 대해 "크레딧스위스의 글로벌 브랜치들과 애널리스트들의 자료수집 및 카메룬 현장방문 등을 토대로 상당기간 저희 회사를 분석하여 여신을 받게 됐다"며 "크레딧스위스에서는 철저한 조사결과 사상 처음으로 중소기업에 대규모 여신을 결정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크레딧스위스가 국내 광물개발업체에 어떻게 자금지원이 가능했는지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한편 광물개발업체인 CNK에 조중표 전 총리실장, CNK감사인 서준석 전 청와대 경호과장 등 공직자 출신 인사들이 모이게 된 배경과, 이들이 정권 실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조태근 기자taegun@vop.co.kr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사설]‘먹통 정보력’으로 북 급변사태 대응 가능한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20일자 사설 '[사설]‘먹통 정보력’으로 북 급변사태 대응 가능한가'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북한 관영매체가 공식 발표할 때까지 이틀 동안 전혀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김관진 국방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김 위원장의 사망을 북한 발표 후에 알았다고 답변했다. 막대한 예산을 쓰는 정보당국이 북한 내부의 엄청난 급변사태를 51시간이 넘도록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먹통 국정원’이라는 비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북한이 내부 사정을 매우 알기 어려운 폐쇄사회인 점은 분명하다. 온갖 정보수단을 가동해 북한을 감시하고 있는 미국도 이상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 북한의 급변사태를 공식 발표 전까지 낌새조차 채지 못한 것은 납득이 안된다. 그 때문에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자리를 비운 채 일본 방문에 나섰다. 국방부와 외교통상부 등 관계 부처들도 주말 동안 아무런 비상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안보상의 중대한 허점을 노출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특별방송을 예고한 뒤에도 정보 당국이 이를 김 위원장의 사망발표와 연결해 분석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탈북자 출신으로 구성된 민간단체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양상이 비슷하다며 김 위원장의 사망 발표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보 수집은 고사하고 분석조차 민간단체보다 못한 것이다. 사실 대북 정보에 대한 취약성은 진작부터 우려돼온 바다. 원 국정원장 등 비전문가가 정보 기관의 주요 위치에 포진한 데다 북한 관련 정보가 허술하게 다뤄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2008년 여름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칫솔질을 할 수 있는 정도”라는 등의 공개되지 말아야 할 첩보 수준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 게 대표적인 예다. 어떤 게 진짜 정보 당국의 능력인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의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직결된다. 북한 내부의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면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첨단 기술에 의한 정보수집은 미국과의 공조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특장이 있는 인적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정보 능력이 곧 안보의 핵심 역량이다.

[사설] 북의 움직임을 전혀 모르는 남쪽 정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20일자 사설 '[사설] 북의 움직임을 전혀 모르는 남쪽 정부'를 퍼왔습니다.
정부의 대북 정보력이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김관진 국방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북쪽 방송을 보고서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처음 알게 되었음을 인정했다. 김 위원장이 숨진 것도 모른 채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한다고 나라를 비웠다. 그동안 북쪽 사정을 훤히 들여다보는 척하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 관련 정보를 슬며시 흘리곤 하던 정부기관들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다.
더욱 문제는 정부가 구체적인 정보를 놓친 것에 그치지 않고 공개된 정보조차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북은 그제 정오에 ‘특별방송’을 할 것임을 아침부터 예고했다. 특별방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한차례 한 게 전부임을 근거로 일부 민간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유고 가능성을 예견했다. 반면에 통일부 당국자들은 우라늄 농축 중단 발표 아니겠느냐고 헛짚고 있다가 허둥댔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전하는 특별방송을 앞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고깔모자를 쓴 청와대 직원들한테 둘러싸여 자신의 생일축하 잔치를 벌이는 웃지 못할 희극을 연출한 것은 이런 외교안보라인의 무능 탓이다. 정부의 상황파악 능력이 이 정도이니 국민이 불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상황은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선 다양한 남북 교류와 인적 접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정보가 비교적 활발히 소통되었다. 아울러 한-중 외교 경로를 통해 핵심적인 정보가 교환됐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미국 편중 외교를 벌이고 대중국 외교를 소홀히 한 결과 비상 상황에서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그동안 정탐활동을 강화한다며 막대한 정보예산을 쏟아부은 게 무색할 지경이다.
한반도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북 지원이든 뭐든 하려 해도 돌아가는 걸 알아야 판단을 하는 법이다. 북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것은 곧 상황 관리를 위한 지렛대를 잃는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북한 상황과 관련한 국제 협의 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정보력이 없다면 주도적인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대북 정보력의 허점은 정세관리 능력의 부재로 직결된다. 국정원장은 허점을 드러낸 일차 책임자로 당연히 문책해야 한다. 아울러 문제의 근원이 범정부 차원의 그릇된 대북정책 기조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권태선 칼럼] 비상한 시기, 한민족의 성숙함을 보여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9일자 기사 '[권태선 칼럼] 비상한 시기, 한민족의 성숙함을 보여야'를 퍼왔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돌연한 사망으로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한반도 남과 북의 위정자들과 주민들이 이 시기를 얼마나 지헤롭게 넘기느냐에 한민족의 명운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이 가져올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이 가져왔던 불안정성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북한은 공산권 몰락의 여파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지만, 그래도 74년부터 후계수업을 해온 김정일이란 후계자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김정은도 후계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그 기간이 일천합니다. 더군다나 그의 나이는 김일성 주석을 승계할 당시 김정일 위원장 나이의 절반을 조금 넘는 29살에 불과합니다. 통상적으로 나라를 다스릴 만한 경험이나 경륜을 기대하기 어려운 나이입니다. 여기에 더해 북한에는 94년에는 없었던 핵무기가 존재합니다. 자칫 잘못 대응했다간 한반도와 동북아를 격랑 속으로 빠뜨릴 위험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느냐는 일차적으로 북한의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것입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한 북한 방송은 말미에 “김정은 동지의 영도에 따라 더욱 억세게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특별방송과 동시에 장의위원 명단과 장의절차 등이 질서정연하게 발표됐습니다. 이는 북한 권력 내부가 당장은 큰 동요 없이 김정은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김정은 체제가 이미 안착되었음을 알리는 징표로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 군부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의견도 없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은 북한이 오래전부터 타이의 입헌군주제를 검토해왔다는 점입니다. 노태우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여러 차례 만났던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북쪽 인사들이 타이의 입헌군주제를 높이 평가해 상당한 정도로 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인 김정은에겐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절대권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당 행정부장과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 등이 집단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의회와 내각 대신 당과 군이 권력을 행사하는 변형된 입헌군주제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런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김정일 사후 북한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 급변사태를 초래하리란 분석은 북한을 자멸시켜 흡수통일하자고 해온 이들의 희망적 관측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합니다. 모험적인 흡수통일론자들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이 기회를 대북관계 개선의 전기로 삼아야 합니다. 조문파동을 일으켜 이후 남북관계를 크게 경색시켰던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상황이 재연돼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권은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북한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또 당장 이틀 전에 일어난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우리 정부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우리의 대북 정보력은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얄팍한단기적 이익을 위해 경거망동하다간 민족과 국가를 전대미문의 위난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최우선”이라고 말해 현 상황이 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를 위해 이 대통령이 할 가장 시급한 일은 김 위원장의 역사적 공과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고,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예의를 다함으로써 꽉 막혀 있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의 새 지도부와 신뢰관계를 형성한다면 북한을 개방사회로 유도해 한반도를 안정화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정부의 진지한 대응을 기대합니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