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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8일 수요일

여론이 '중앙' 김진의 ‘색깔론’을 거부한 이유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27일자 기사 '여론이 '중앙' 김진의 ‘색깔론’을 거부한 이유'를 퍼왔습니다.
[비평]사실이 없는 색깔론의 무력함

다시, ‘색깔’이다. 선거를 보름여 앞두고, 조중동이 정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소재는 ‘경기동부’다. 구태의연하더라도 다시 ‘주사파’ 타령이다. 시기는 맞춤하고, 의도는 적나라하다. 비판에 합세한 조중동의 흐름은 일치된 것이었고, 기사의 전개는 유려하다. 조중동은 경기동부를 호명하곤, 사실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건너뛰고 곧장 가정과 주장으로 향했다. SNS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기정사실화해, 상황을 최대한 익숙한 색깔론의 구도로 단순화했다.
26일까지는 조중동 모두에서 ‘스트레이트’가 범람하던 국면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차원에서 진중권 교수의 멘션이 인터뷰 코멘트처럼 널리 인용됐고, 조중동의 구미에 딱 맞는 이야기를 하는 변희재의 발언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정희 의원은 ‘쉬리’의 여전사가 연상되는 ‘숙성 괴물’로 묘사되었고, 그녀의 남편은 신비감이 최대한 증폭된 ‘주사파의 이데올로그’로 표상됐다.
하지만 이 대표가 사퇴하고 통진당이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거부를 선언한 27일로 접어들며 상황이 좀 변화하고 있다. 소설보다 더 흥미롭던 ‘스트레이트’의 국면이 지나가고, 주장/주의가 난무하는 ‘프로파간다’ 지면이 찾아오자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 27일자 김진 칼럼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한 이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다.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중앙일보 출신 이상일 대변인이 연일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동료였던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이번 ‘색깔론’에 ‘운명’과 ‘영령’까지 끌어들였다. 김진은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했다’고 규정하며, “2년 전 유시민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던 국가안보의 영령”을 또 보았노라고 감탄했다.
김진의 논법을 따라 에두르지 말고, 질러 말해보자. 김진이 2년 전 사례를 꺼내들며, 경기동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전선’의 구축이다. ‘MB심판론’의 총선이 아니라 ‘야당심판론’의 총선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이 버젓한데, 죽은 권력을 다시 심판하자는 건 논설위원 씩이나 되서 주장하기엔 멋쩍은 '프레임'이다. 제 정신을 가진 언론인이 말하기는 힘든 언어 도단다.
김진은 경기동부를 지렛대로 조중동은 죽은 권력을 심판하자는 낙후된 프레임을 버리고, 미래 권력(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을) 심판하자는 세련된 논법을 출격시킨다. 실제, 조중동은 경기동부가 등장한 이후 부쩍 통진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김진은 아예 이정희를 향해 ‘의회 지도자’라는 표현까지 썼다. 진보정당 대표에 대한 유례없을 융숭한 대접은 역설적이게도 ‘야권 총선 승리=경기동부 미래권력’이란 도식의 구축을 위한 디테일인 셈이다. 
그러나 김진의 이 규정은 무리하다. 무수한 갈래 길과 드넓은 공백이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번 사건이 “골방에 있던 운동권 정파 조직이 세상에 드러난 일”이라고 했는데, 김진은 이를 받아 말하자면 “운동권 정파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그리곤 좌고우면하지 않고, ‘색깔론’으로만 일방 돌진했다. 전매특허의 발현, 전가의 보도,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잘 먹히지 않는다. 트위플은 ‘주사파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설레발에 비해 여전히 이정희 엄호 양상은 두드러지고, 야권연대에 대한 지지가 공고하다는 점은 여론조사 결과로 확인된다. 왜 일까? 일차적으로 말하면 ‘사실’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경기동부에 대한 ‘사실’을 갖고 있지 않고, 주사파에 관한 ‘취재’된 진실이 없다. 다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정’을 기정사실로 변환하는 논리적 ‘기술’로 사건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늘 팔아왔던 ‘색깔론’을 도래한 정치의 계절에 다시 팔고 있을 뿐이다.
이건 흡사, 아스팔트 우파라고 불리는 어르신들이 집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국이 도와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됐다’고 주창하는 안보에 대한 절대적 믿음 같은 것과 다르지 않다. 내용적으로 빈약하고, 효과 면에선 낙제점이다. 실상, ‘색깔론’이라고 하는 전가의 보도가 이렇게 무딘 칼이었단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지난 십 수 년 간 조중동이 휘둘러 온 ‘색깔론’에 비해 조중동 내부에 축적된 내용의 실체는 트위터에서 떠도는 멘션만큼도 안 된다. 조선은 87학번 이정희를 92년에 결성된 전국연합이 육성했다고 할 만큼 부정확하고, 중앙일보 김진은 ‘영령’을 끌어들이지 않고선 논리를 세우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일 뿐이다.
경기동부의 실체에 대해 조중동은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점, 김진이 주사파에 관한한 ‘카더라 통신’ 이상의 정보력이 없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조중동이 누군가에겐 잘 들리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겐 전혀 소구되지 않는 메아리라는 점을 보여준다. 양질의 정보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환경에서 늘 같은 얘기를 하지만 별다른 정보는 없는 김진과 같은 언론인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다. 


▲ 이정희 대표가 사퇴한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계속 '경기동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를 가장한 '소설'이 범람했는데, 통합진보당은 결국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 거부를 선언했다.

그래서, 다시 제기된 ‘색깔’이지만 이번 선거도 ‘색깔’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중동이 열과 성을 다해 이 대표와 야권연대를 물어뜯는 시간에도 여론은 야권연대를 찍겠단 의지를 다졌다. 김진이 과대망상적 역사를 본 순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정점으로 여론이 다시 ‘정권심판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과학'을 전했다. 야권이 ‘잡음’을 일으킬 때, 이를 색깔론으로 역공한 조중동의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은 신통치 않다. 구성력이 너무 떨어지고, 구성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진부하다. 단언하건데, 김진이 말한 ‘역사의 비상한 작동’ 같은 건 없다. 경기동부가 호명되고 또 주사파 타령이 울려 퍼지지만 조중동이 원하는 ‘전선’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령'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자기 고백같은 것이 아닌가.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


이글은 레디앙 2011-12-22일자 기사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을 퍼왔습니다'
[기고] "미중 한반도 이해관계 드러나…북미대화는 유훈"

‘문제적 인물’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죽음과 죽음 이후에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적’이라 함은 특정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킨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의 삶 자체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과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뉴스로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4년 7월 故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 학생회관 앞에 붙었던 모 학생정치조직 명의의 ‘경축 독재자의 죽음’이라는 대자보, 격렬했던 조문파동, 대학가 분향소 설치 논란,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파동과 공안사건들로 이어지던 어두운 기억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논란의 소용돌이에는 빠지지 않은 점은 1990년대 초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온 남북 화해, 교류협력 흐름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역사화’된 인물이다(그가 살아 있었을 때조차도).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북한 체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또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에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라는 표현이 부족해 ‘수령제’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 북한 체제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왔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분석하고 전망하며 대응하는 시야는 조의, 조문과 같은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 또한, 생전의 김정일이라는 인물과 그가 구축하고 이끌어온 체제에 대한 호불호와도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 시나리오보다는 실사구시를
예컨대, 조의, 조문의 문제는 이미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하면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정지해 있었는지 달리고 있었는지가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정보당국들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여론을 의식해 (우리는 이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서로 경쟁하며 정보를 흘리는 것이라면, 볼썽사납지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정보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염두에 둔 발언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토록 핵심적인 정보를 정보위 국회의원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국정원 측의 정보와 군 정보당국의 정보가 서로 엇갈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원세훈 국정원장의 12월 20일 국회 정보위 발언과 김관진 국방장관의 12월20일 국회 국방위 발언).
북한 급변사태론(혹은 붕괴론)은 특히,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와병을 즈음해서 다시 힘을 얻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개념계획으로 존재해오던 한미연합 ‘작계5029’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참고로 ‘작계5029(정확하게 얘기하면 개념계획5029, CP-5029)’는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북한 지역에 대한 개입과 안정화 작전에 대한 계획이다. 이중 일부는 올해 2월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 시 시험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표되었을 때, 워치콘 단계를 격상시키는 등의 조치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상정한 군사훈련이나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북한을 자극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어떤 근거 하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인가도 문제이다. 북한의 리더십과 체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불안정과 동요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는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와 참배 모습, 중국의 반응 등을 종합해 볼 때 그동안 준비해왔던 ‘권력승계 프로세스(succession process)’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오히려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제의 운명은 이후 전개되는 내외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에 기반 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칫 현실을 희망적 사고로 재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을 둘러싼 국제정치
우리는 북한의 내적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설사, 무리한 개입을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세계사가 확인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북한과 북한 리더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를 위한 신뢰 조성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염두 해 두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북한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고위급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차 북미 고위급 대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를 맞이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12월21일자). 북한의 입장에서는 애도 기간과 ‘국상’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미국만큼 적극적일 수는 없을지라도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해 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미 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과 같은 사업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한 북미 대화를 시작한 배경이 남북 관계의 단절과 6자회담의 교착국면 속에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6자회담 재개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또한,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의 진전이 가능한가는 더 미지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북미 대화의 성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에 이미 공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1974년 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의 후계자 공인만을 고려해보더라도 20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나름의 ‘정치적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후계자 김정은의 경우는 이제 갓 후계자라로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이 ‘정치적 결단’에 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가능성의 공간은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그것이 당장 한반도 문제의 ‘일대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동안의 경색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관계’라는 것이 서로 상대가 존재하고 복수의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중국과 미국,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중 접근, 대중 의존에 대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들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위기’를 맞은 북한이 이 같은 경향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근거 없는 시나리오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한다든지, 혹은 ‘종속’될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한미 관계의 프리즘을 통해 북중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혹은 북중 관계를 너무 단순화해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북한이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촉구하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대중 접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축소, 단절, 그리고 사실상의 남북관계의 단절이 계속되었고,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경제적 측면에서나,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은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게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그런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북한의 권력승계 국면을 맞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오래간만에 일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이해관계에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이 발표한 성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안정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현상변경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북한의 핵무장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등장도 현상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양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절반 정도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또한, 전쟁의 부재도 중요하지만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문제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장기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남북의 경제공동체 건설과 통일 같은 목표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다. 설사 급격하고 격렬한 체제변동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체제변동이 바람직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정치적, 경제적 비용 뿐만아니라 인간적 비용(human cost)까지를 포함해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목적의식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평화는 포기할 수없는 목표이다. 또한, 평화가 전면 전쟁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운신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의 재개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와 군사훈련 등의 자제만으로도 신뢰회복의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이것이 어쩌면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게 남겨주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다양한 민간부문의 사려깊은 대응이 동반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 정부의 정책전환을 촉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비판하고 심판하는 몫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 16:15:50 이준규 /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