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3일 월요일
김현종, 美에 “FTA 개성공단 좌파이슈”…노무현‧김근태 속여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2-12일자 기사 '김현종, 美에 “FTA 개성공단 좌파이슈”…노무현‧김근태 속여;를 퍼왔습니다.
“盧 훈령 어겨…국회가 압박한다 美에 호소”
김현종 당시 협상교섭본부장은 2007년 한미FTA 추진 당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강력하게 요구했던 개성공단 문제를 철저히 속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3회는 여러 개의 미국 외교문서를 근거로 김 본부장의 ‘이중 행보’를 짚었다.
한미FTA 찬반 여부를 떠나 개성공단 문제는 자주 언급된다. 추진 당시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한미FTA에 함께 포함시키는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큰 관심사였지만 해결되지 못한 해 한미FTA는 타결됐다. 이와 관련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문건에는 개성공단이 왜 협정문에서 빠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들어 있다.
김현종 협상교섭본부장은 2007년 4월 2일 한미FTA 협정 타결 직후 “개성공단 제품도 한미FTA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김 본부장은 “역외 가공 지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데 미 측이 원칙적으로 수용을 했다”며 “이제 남은 것은 양국이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에서 역외가공지역을 지정하면 한국산과 동일하게 한미FTA 특혜 관세를 적용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을 한미FTA 협상의 대표적 성과로 꼽으며 “앞으로 개성공단 뿐 아니라 북한 전역이 이 근거에 혜택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미국측 입장은 이와는 전혀 달랐다.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현재 한미FTA의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면서 “개성공단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한국산으로 원산지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실제 한미FTA 협정문에는 ‘개성공단’이라는 용어는 찾아 볼 수 없다. 협정 발효 1년 후 한미 공동으로 한반도 역외가공위원회를 설립해 역외가공지역 제품의 한미FTA 적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정기준도 북한 비핵화와 역외가공지역들의 노동 임금 조건들이서 결국 미국 손에 달린 셈인 것으로 드러났다.
개성공단 제품도 한미FTA 포함시키려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지만 협상 결과는 이처럼 보잘 것 없었던 것이다.
뉴스타파는 노무현 정부 협상책임자들은 개성공단 이슈 관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지를 외교문서를 근거로 따져나갔다.
지난 2007년 3월 당시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방한 내용을 기록한 주한 미 대사관 3급 비밀전문에 따르면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은 폴슨 장관에게 “개성공단 이슈는 노무현 정부의 좌익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한 것으로 적혀있다.
ⓒ 뉴스타파 화면캡처
또 김현종 본부장은 “당시 북미 관계의 개선이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의 자기 직무를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으며 “국회가 개성공단 제품을 FTA에 포함하라고 자신을 더 세게 압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난 시점은 한미FTA의 마지막 협상을 앞둔 시점이었고 김 본부장의 “개성공단 문제가 좌익들에게 중요한 이슈”라는 언급이 미국 측에 어떤 신호가 됐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는 보도했다.
2006년 6월 14일자 주한미국 대사관 외교 전문은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FTA 1차 협상때 우리측 대표단이 “개성공단 문제를 최초 요구사항에 포함시키라는 정부의 확고한 훈령을 어겼다”는 외교통상부 북미 국장의 발언도 담고 있다.
한미FTA 초기부터 우리 협상 대표단이 청와대의 입장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미FTA 협상 막바지인 2007년 3월 주한 미 대사관 외교전문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발언도 담고 있다.
김 의장은 미 대사와 만나 “한미FTA는 더 면밀하게 검토해 다음 정권에서 결론을 내야 하며, 개성공단 제품을 FTA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당시 미 대시 버시바우는 “한미FTA는 지금 아니면 안 되고, 개성공단 관련 요구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퇴임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시작한 한미FTA결과에 대해 별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했다. 2008년 9월 주한 미 대사관 외교전문에 따르면 버시바우 대사가 이임 인사차 노 전 대통령을 방문해 “무엇보다 한미FTA 타결에 대해 감사한다, 미국에 돌아가 한미FTA 비준 위애 노력하겠다”고 덕담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별 반응 보이지 않았다. 버시바우 대사는 “자신의 성취에 대해선 별로 자긍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기록했다.
결국 한미FTA는 이명박 정부 들어 더 개악된 채 날치기 통과됐고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FTA 협상 책임자는 삼성그룹 사장으로 갔다. 또 협상과 재협상의 주역은 여전히 통상교섭 업무를 지휘하고 있다.
위키리스크 전문은 지난해 터져 나왔지만 지상파와 기성 언론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대안언론 ‘뉴스타파’가 이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 트위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트위터에는 “뉴스타파 3회 봤다면 왜 노무현 정부가 FTA를 추진했는지 알 게된다. 바로 개성공단 때문이었다. 개성공단을 살려서 남북한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기를 바랬다”, “한미FTA와 개성공단.. FTA실무자들은 애초부터 개성공단제품 따위엔 관심이 없었음이 위키리크스 자료 통해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관심과 지시가 있었음에도..김현종,김종훈..와..참 잘했다 니들..”,
“뉴스타파 3회를 보니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 국익에 도움되지 않는다면 안해도 된다고 했는데 김종훈 김현종 등 통상외교쪽 몇 놈들의 장난에...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장관 역시 개성공단제품을 국내 상품으로 인정하는 줄 알았는데...저놈들의 장난이?”, “참여정부 당시 통상관료들이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산으로 인정된다고 보고하고 미국에게는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사실상 고의로 대통령 행정명령인 훈령을 어긴 것이다”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 패러디봇인 ‘김빙삼’은 “결국 노무현대통령은 한미FTA를 통해 북한을 미국과 경제적으로 연결 시키면서 개방하게 하는, 그래서 남북관계 개선을 할라카는 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었구만. 그거를 미국 간첩 김현종이캉 매국노 김종훈이 어그러뜨린기네”라고 일침을 가했다.
2012년 1월 5일 목요일
[사설]이란 제재 동참 강요하는 미국, 대책 없는 한국
이글은 경향신문 2012-01-04일자 사설 '[사설]이란 제재 동참 강요하는 미국, 대책 없는 한국'을 퍼왔습니다.
미국 의회가 지난해 말 이란의 원유 수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통과시킨 제재법안(국방수권법)이 신년 벽두부터 동맹국 한국에 무거운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 같은 법안의 통과 가능성을 간과한 정부의 무대책이 피해를 더욱 키울 것으로 관측된다.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경제에도 고유가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국방수권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금융기관들이 미국 금융시스템과 거래하는 것을 막고 있어 미국과 거래를 하려면 궁극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막연하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함에 젖었던 한국 정부의 미숙한 대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0년 6월 이란의 핵활동을 묶기 위해 제재결의 1929호를 발표한 뒤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2010년 8.3%였던 이란산 원유의존율은 2011년 11월 말 현재 9.8%로 되레 올라갔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이란산 원유의존율이 12.1%였던 일본은 국제사회의 흐름을 꿰뚫고 지난해 11월 수입분에서 6.4%로 줄여놓았다. 한국 정부는 이제서야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할 요량이지만 일본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워싱턴으로 가 고위급 교섭에 착수했다. 한국은 국방수권법이 규정한 180일의 유예기간 동안 원유수입선을 대체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의 수입선 교체도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 동반되는 유가인상과 유가수급의 혼란을 피하기는 어렵다. 외교통상부는 뒤늦게 “우리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면서 미국의 선처를 호소할 방침이다. 정부의 ‘천수답 외교’ 탓에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의회의 ‘근육질 사고’가 문제다. 비핵화는 피해 갈 수 없는 국제사회의 공동책무이다. 그러나 그동안 대이란 제재가 얼마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이란 재정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 수출을 막으면 이란 국민에게도 고통이 돌아간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 경제강국들은 미국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어 효과가 불투명하다.
미국이 그럼에도 일방주의적인 제재를 강행하면서 하필 동맹국의 고통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자칫 동맹국 국민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올 11월 대선·총선을 앞두고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법안 통과를 서두른 혐의가 짙기도 하다. 미국은 일방적인 고통분담만 요구할 게 아니다. 진정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고민하길 바란다.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
이글은 레디앙 2011-12-22일자 기사 '"가상 시나리오보다 실사구시를"'을 퍼왔습니다'
[기고] "미중 한반도 이해관계 드러나…북미대화는 유훈"
‘문제적 인물’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도 죽음과 죽음 이후에 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문제적’이라 함은 특정의 가치판단을 개입시킨 표현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 사람의 삶 자체가 역사적 과정 속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수많은 역사적 문제들과 얽혀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한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사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뉴스로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1994년 7월 故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필자가 다니던 학교 학생회관 앞에 붙었던 모 학생정치조직 명의의 ‘경축 독재자의 죽음’이라는 대자보, 격렬했던 조문파동, 대학가 분향소 설치 논란,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파동과 공안사건들로 이어지던 어두운 기억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 극단적인 논란의 소용돌이에는 빠지지 않은 점은 1990년대 초부터 단속적으로 진행되어온 남북 화해, 교류협력 흐름의 성과라고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역사화’된 인물이다(그가 살아 있었을 때조차도).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북한 체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또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에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라는 표현이 부족해 ‘수령제’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 북한 체제 ‘최고지도자’로서 군림해왔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분석하고 전망하며 대응하는 시야는 조의, 조문과 같은 문제에 국한될 수 없다. 또한, 생전의 김정일이라는 인물과 그가 구축하고 이끌어온 체제에 대한 호불호와도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 시나리오보다는 실사구시를
예컨대, 조의, 조문의 문제는 이미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정부가 조금만 유연성을 발휘하면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정지해 있었는지 달리고 있었는지가 국정원과 군 정보당국에게는 꽤 중요한 정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정보당국들의 무능력을 질타하는 여론을 의식해 (우리는 이 정도까지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서로 경쟁하며 정보를 흘리는 것이라면, 볼썽사납지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기에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정보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염두에 둔 발언들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토록 핵심적인 정보를 정보위 국회의원들을 통해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그렇고, 특히 국정원 측의 정보와 군 정보당국의 정보가 서로 엇갈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원세훈 국정원장의 12월 20일 국회 정보위 발언과 김관진 국방장관의 12월20일 국회 국방위 발언).
북한 급변사태론(혹은 붕괴론)은 특히,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과 와병을 즈음해서 다시 힘을 얻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개념계획으로 존재해오던 한미연합 ‘작계5029’를 공식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참고로 ‘작계5029(정확하게 얘기하면 개념계획5029, CP-5029)’는 북한 급변사태를 상정한 북한 지역에 대한 개입과 안정화 작전에 대한 계획이다. 이중 일부는 올해 2월 한미연합 키리졸브 훈련 시 시험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이 공표되었을 때, 워치콘 단계를 격상시키는 등의 조치도 비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북한의 급변사태나 붕괴를 상정한 군사훈련이나 군사적 조치가 취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북한을 자극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북한 급변사태가 어떤 근거 하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인가도 문제이다. 북한의 리더십과 체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까지 이렇다 할 불안정과 동요가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김정은을 중심으로 하는 북한의 집단지도체제는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와 참배 모습, 중국의 반응 등을 종합해 볼 때 그동안 준비해왔던 ‘권력승계 프로세스(succession process)’를 착실히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오히려 북한의 새로운 권력체제의 운명은 이후 전개되는 내외적 요인들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에 기반 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자칫 현실을 희망적 사고로 재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북한의 권력승계 과정을 둘러싼 국제정치
우리는 북한의 내적 문제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설사, 무리한 개입을 시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결과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세계사가 확인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북한과 북한 리더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정책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를 위한 신뢰 조성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염두 해 두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우선, 북한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전에 고위급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3차 북미 고위급 대화가 예정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를 맞이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12월21일자). 북한의 입장에서는 애도 기간과 ‘국상’이라는 변수로 인하여, 미국만큼 적극적일 수는 없을지라도 대화의 모멘텀은 유지해 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북미 대화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과 같은 사업으로 볼 수도 있으며, 또한 북미 대화를 시작한 배경이 남북 관계의 단절과 6자회담의 교착국면 속에서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조처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6자회담 재개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또한,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비핵화’를 위한 논의의 진전이 가능한가는 더 미지수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김일성 주석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지속된 북미 대화의 성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에 이미 공고한 권력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1974년 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의 후계자 공인만을 고려해보더라도 20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배경에서 나름의 ‘정치적 결단’이 가능했을 것이다.
후계자 김정은의 경우는 이제 갓 후계자라로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새로운 리더십이 ‘정치적 결단’에 이르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미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가능성의 공간은 새롭게 열릴 수도 있다. 그것이 당장 한반도 문제의 ‘일대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그동안의 경색된 정세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관계’라는 것이 서로 상대가 존재하고 복수의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망각하곤 한다.
중국과 미국,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공통의 이해관계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대중 접근, 대중 의존에 대해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들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위기’를 맞은 북한이 이 같은 경향성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단순히 근거 없는 시나리오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전락한다든지, 혹은 ‘종속’될 것이라는 등의 표현은 한미 관계의 프리즘을 통해 북중 관계를 바라본다는 점에서, 혹은 북중 관계를 너무 단순화해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북한이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라고 촉구하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의 대중 접근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축소, 단절, 그리고 사실상의 남북관계의 단절이 계속되었고,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북한이 경제적 측면에서나,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은 예상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게 남쪽과 서쪽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면 그런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북한의 권력승계 국면을 맞아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오래간만에 일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라는 이해관계에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과 미국이 발표한 성명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안정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미중 양국이 한반도의 현상변경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북한의 핵무장과 핵보유국으로서의 등장도 현상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미중 양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와는 절반 정도밖에 일치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또한, 전쟁의 부재도 중요하지만 국지적인 무력충돌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문제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장기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남북의 경제공동체 건설과 통일 같은 목표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구축이라는 큰 틀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다. 설사 급격하고 격렬한 체제변동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체제변동이 바람직스럽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비용-정치적, 경제적 비용 뿐만아니라 인간적 비용(human cost)까지를 포함해서-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목적의식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평화는 포기할 수없는 목표이다. 또한, 평화가 전면 전쟁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운신의 폭은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의 재개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조치와 군사훈련 등의 자제만으로도 신뢰회복의 메시지는 보낼 수 있다. 이것이 어쩌면 현 정부가 다음 정부에게 남겨주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정부만의 몫은 아니다. 시민사회와 다양한 민간부문의 사려깊은 대응이 동반되어야 할 부분이다. 현 정부의 정책전환을 촉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요구에 부응하지 않는다면 비판하고 심판하는 몫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22일 (목) 16:15:50 이준규 / 메이지가쿠인대학 국제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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