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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9일 목요일

[사설] 서울시립대생의 전진, 참여하면 바뀐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28일자 사설 '[사설] 서울시립대생의 전진, 참여하면 바뀐다'를 퍼왔습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서울시립대 등록금이었다. 서울시가 11월 초 시의회에 낸 2012년 예산안엔 반값등록금을 위한 예산 182억원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반값등록금 요구를 박원순 후보가 공약으로 수용했고 이를 실천한 결과로 나타났다.
물론 쟁점이 비등할 때 선거가 치러졌다고 해서 이런 결과가 무조건 나오는 건 아니다. 학생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선거에 참여하고,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후보를 집중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도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바 있지만, 이들은 지난해 등록금의 12~13% 정도에 해당하는 국가장학금을 마지못해 늘렸을 뿐이다.
대학생의 선거 참여 열기는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신청자가 한 학교당 2000명 이상일 때 대학 안에 설치하는 대학 부재자투표소가 2008년 18대 총선 땐 3곳이었지만, 2010년 지방선거 땐 17곳으로 늘었다. 대학생 부재자투표율 역시 69.1%로 4년 전(42.2%)보다 무려 26.9%포인트나 높아졌다. 학생들의 이런 폭발적인 참여로 반값등록금과 취업 문제 등 이들의 고민이 정치권의 본격적인 쟁점이 되었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의미있는 승리를 일궈냈다. 국가장학금의 증액도 이런 도전의 결과였다.
승리의 기억은 다시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신감을 갖게 하고, 한발 더 앞장서 현실의 모순과 맞서게 한다. 지난해 반값등록금을 쟁취한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이번 4월 총선을 앞두고 투표권자 6500여명 가운데 무려 2593명이 부재자투표를 신청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2210명보다 18%나 늘어난 수치다. 참여하면 바뀐다는 진실을 체득한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냉소적이거나 방관하는 학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베스트셀러 의 저자 우석훈 교수가 ‘변화하지 않는 20대’에 절망해 이 책의 절판을 선언했을까. 그는 20대가 왜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쳐야 하는지 설득했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변화의 기대치는 누구나 다를 수 있다. 짱돌을 들진 않아도 변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 열에 여섯만 취업하고, 절반은 비정규직인 현실에 안주할 순 없다.
이번 총선은 이런 청년 학생의 운명에 균열을 낼 장이다. 그들 대신 싸워줄 집단은 없다. 스스로 바꿔야 한다. 참여하면 바뀐다.

2012년 3월 11일 일요일

"'뉴스Y'에서 박원순시장 리포트 금지령"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09일자 기사 '"'뉴스Y'에서 박원순시장 리포트 금지령"'을 퍼왔습니다.
연합뉴스노조, 내부 부당 지시 폭로

연합뉴스의 보도전문채널 뉴스Y에서 ‘촛불집회 화면 금지’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리포트나 KBS 새 노조의 파업 관련 리포트를 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폭로가 내부에서 나왔다.
현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의 연임을 반대하며 총파업 돌입을 예고한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 지부(지부장 공병설)는 9일 발행한 특보를 통해 뉴스Y에 근무하는 노조원들이 노조로 제보한 ‘뉴스Y 편향 조짐’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했다. 

특보에 따르면, 한 노조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관련 리포트나 KBS 새노조의 파업 찬반투표 단신 리포트를 내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있어 (리포트가) 빠졌다”며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심층 인터뷰도 여야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다른 노조원도 “전문가를 스튜디오로 초청해 대담을 하는 코너가 많은데 평소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성향의 전문가를 섭외했다가 ‘윗선’의 지시로 부랴부랴 출연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노조는 이에 대해 “뉴스Y가 ‘연합뉴스가 만드는 뉴스’라는 모토를 내세우고 있고 상당수의 연합뉴스 기자가 파견 근로하는 만큼 뉴스Y의 불공정 보도는 연합뉴스와 불가분하다고 할 수 있다. 뉴스Y의 보도 편향도 엄중하고 세밀하게 감시해야 한다”며 “뉴스Y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박정찬 사장은 실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편향보도 사례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해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합 특종·단독 기사들이 사라진 이유는? 
한편, 지난 2009년 이후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의 전화 또는 지시로 연합뉴스의 특종, 단독 기사들이 누락됐던 사례도 뒤늦게 드러났다. 
특보에 따르면, 지난 2009년 4월 말 한미FTA 비준안 처리 몸싸움 과정에서 당시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국회 회의장에서 마이크를 꺼진 줄 알고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에 대해 “왜 들어와 있어 미친놈”이라고 속삭였다. 이후, 연합뉴스 정치부 담당기자는 이 발언을 확인해 단독 기사를 작성했지만 기사는 송고되지 못했다. 노조에 따르면, 이후 박정찬 사장은 유명환 당시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연합의 위력을 알겠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에도 연합뉴스 사회부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들의 외유성 출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취재했으나 결국 출고되지 못했다. 당시 위원장인 이영성 경희대 교수는 박정찬 사장의 대구 계성고 1년 후배였다. 노조에 따르면, 사장실에서 사회부로 전화해 기사가 출고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3월 7일 수요일

민주통합당이 잘 나간다고? 지금이 더 위기


이글은 대자보 2012-03-05일자 기사 '민주통합당이 잘 나간다고? 지금이 더 위기'를 퍼왔습니다.
[진단] 지도력 부재 등 총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대선 패배 막아

총선 공천심사를 둘러싼 민주당의 내홍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0년 지방선거 공천심사의 혼란을 능가한다. 당시에는 서울시장과 경기도를 놓쳤지만, 나머지 부분의 승리로 그 과오가 묻혀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총선 결과와 직결될 것이다. 이미 민주당의 상승세는 변곡점을 지났다. 일부 탈락자들의 무소속 출마가 속출할 것이다. 야권연대의 전망도 부정적이다. 자칫 재앙에 가까운 결과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총선 이후 결과가 나빠도, 대선준비를 앞세워 총선관련 과오가 묻혀버릴 수 있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대선 패배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공천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태를 이렇게 이끈 원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지도력 문제이다. 한명숙 대표의 등장과 더불어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다. 사실 한명숙 대표는 두 차레의 장관과 총리를 지낸 화려한 정치이력에 비해 이렇다할 지도력을 보여준 바 없다. 무난한 관리형 지도자였고, 선량한 이미지의 대독총리였다. MB정부의 표적 수사로 얻게된 상징성이 그를 띄웠을 뿐이다. 하지만 통합야당의 당권장악을 노린 친노와 486 등은 그의 상징성이 필요했고, 재판받은 것 이외에는 야권통합을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그를 대표로 옹립했다. 친노와 486의 야욕과 그의 노욕이 만난 불행한 결혼이었다. 

한명숙 대표는 결코 이번 사태를 수습하지 못할 것이다. 야권은 오랫동안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수첩공주라 비난해 왔다. 이것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고, 정확한 상황판단을 오도하는 측면이 있다. 사실 여기에 더 가까운 사람은 민주통합당의 한명숙 대표다. 총리시절 그의 역할은 대독총리에 매우 충실한 것이었다. 그가 총리로서 한미FTA에 항의하는 진보진영을 향해 발표했던 서릿발같은 성명은 그의 민주화 및 인권운동 이력과 온화한 그의 평소 성품에 비추어 그의 본의라 생각하기 어렵다. 대표가 된 지금은 역시 총리시절 못지 않게 대독대표의 역할을 즐기는 듯하다.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총리시절과는 거의 정반대의 입장을 발표하면서도 어떠한 내적 갈등의 낌새도 주지 않는다. 그 때도 대독이었듯이 어차피 지금도 대독이기 때문인가? 문제는, 대독대표로는, 관리자로는 총선이라는 거대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당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섰고, 너무 많이 왔고, 되돌갈 용기를 내기도 어려울 상태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천에 대한 불만은 항상 있었다. 돌이켜보면 17대 총선이 있던 2004년 공천에 대해 불만이 제일 적었다. 경선방식은 조금 어설펐지만, 소수의 전략공천을 제외하고 대부분 경선을 실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비례대표도 선거인단을 구성해 순위결정을 위한 경선을 실시했다. 중앙당 공심위는 범법 사실과 같은 자격심사에 충실했고, 이번과 같은 인위적 컷오프는 하지 않았다. 사실 민주적 정당에서 중앙당이 공천심사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중앙당의 공천권한이 커질수록, 정당의 민주주의가 후퇴할 수록 공천심사에 대한 불만은 높아졌다. 김대중 총재의 지도아래서 겉으로 드러난 불만이 적어 보였던 것은 김총재 자신이 신진인사 발탁에 적극적이었고, 그의 권위로 당내 기득권세력의 양보를 종용하고 불만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총재에 버금가는 대중정치인이 자리잡고 있는 새누리당의 상황이 이와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김총재와 같이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사라진 야당에서는 또다시 중앙당의 공천권을 강화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민주주의의 후퇴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한명숙 대표와 손잡고 당권을 장악한 친노와 486이 바로 그런 일을 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엿장수 기준에 맞춰 칼춤을 춘 것이다. 친소관계가 중요한 판단이었던 듯하다. 상호간 기득권 지키주기가 더 중요한 기준이었던 듯하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공천편의주의 앞에 너무도 쉽게 굴복당한 듯하다.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중앙당의 공심위는 범죄사실이나 해당행위 여부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정해 자격심사만 담당했어야 했다. 자격을 충족하는 사람이라면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 모두에게 경선참가자격을 부여했어야 했다. 경선후보가 난림하는 것이 문제라면 경선결선제를 도입했어야 했다. 짧은 총선준비기간 때문에 중앙당 공심위의 일정한 역할은 불가피했다고 치자. 어차피 공천에서 탈락한 당사자들의 불만은 불가피한 것이라 치자. 공천결과가 당원과 지지자들의 생각과 이토록 멀지 않았다면 그런 불만쯤은 무마하고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첫째, 민주통합당의 출발 자체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민주통합당은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의 통합이다. 당밖의 많은 시민사회세력이 동참했다. 전당대회는 문성근을 제외하면 여전히 기존 민주당 인사들의 잔치가 되었지만, 한 때 이학영이 공천심사위원장으로 거론되었다. 한명숙 대표가 임종석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하고, 당 안팎의 공심위원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민주통합당이 새로운 당으로 바뀌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둘째, 중앙당과 공심위 스스로 너무 기대를 부풀린 것도 한몫했다. 정체성을 어느 때보다 중시할 것이라 자랑했다. 정치신인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 공언했다. 무엇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드릴 것이라 약속했다. 결과는 공천에서 탈락한 본인들은 물론이고 당원과 지지자들이 보기에 어느 한 가지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공심위가 여러가지 심사기준을 말했지만 공심위가 현역을 주로 단수 공천하고, 정치 신인들을 제거하는데 사용한 주요 근거는 경쟁력이라 한다. 다른 말로는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를 공천결정의 근거로 삼는 것처럼 비정치적이고 어리석은 것은 없다. 2002년에 민주당이 여론조사로 대통령 후보를 정했다면 노무현이 아니라 이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이 여론조사를 공천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가지 더 보탠다면 총선전략도 그렇다. 지금 민주당 주변에서는 한미FTA 폐기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절대적이지 않으니 MB심판을 앞세우자는 견해와 정체성의 핵심이므로 이게 우선이라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당권파인 친노와 486은 후자가 선거를 모른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를 추진할 때도 일부 당내의 반발과 진보 진영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하던 말은 여론조사상 다수 국민이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꼭 그런가? 여론조사는 참고사항일 뿐이지 결정권을 가져서는 안된다. 여론조사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출처] 민주통합당 공천의 문제점|작성자 윤석규

호남지역 현역의원들을 심사하기 위해 도입된 다면평가제는 코미디에 가깝다. 현역의원들이 동료 현역의원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동료 현역의원들 공동의 이익을 지키는데 얼마나 충실한가 여부이다. 의료사고를 규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입증을 도와야 할 동료의사들이 동료의사에 맞서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검찰과 사법부의 비리를 전담하는 공직수사비리처가 필요한 이유는 그들의 끈끈한 동료애 때문이다. 어떤 개혁적인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튀는 의원이 동료의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그에 대한 다면평가가 높을리 만무하다. 부패방지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공심위원장이 동질적 집단 내에서 부패에 대한 내부자 고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리 없건만 이처럼 어리석은 기준을 채택했다는 것이 의아하다. 달리 말하면, 너무 가혹하게 들릴리 모르지만, 이번 공심위의 심사방식에서 숙고한 흔적을 찾기란 쉽지만은 않다. 

모발일 경선은 처음부터 적지 않은 우려를 안고 있었다. 지역구별로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총선경선은 전국이 단일선거구로 치루는 전당대회와 다르다. 조직선거, 돈선거가 되는 것이 너무도 자명했고, 진작 우려가 제기되었다. 새누리당과 동시경선 및 모바일 경선 협상이 타결되었더라면 상황은 조금 달랐을 것이다. 협상이 깨졌을 때 방향을 선회했어야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 흥행성공에 눈이 먼 지도부는 귀를 닫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그토록 소통부재를 비판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 민주통합당의 지도부가 불통에 빠진 결과다. 

지금 민주통합당은 심각한 위기다. 그 원인도 자명하다. 당권파의 항변 또는 침묵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민통합당을 통해 당에 참여한 시민운동 출신 지도력들의 침묵은 이채롭다. 나아가 절망스럽다. 문성근 혼자 최고위원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하나, 백만민란을 추진하던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를 바라는 주요 지도력들은 완벽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윤인순, 김기식, 최민희, 이학영, 송호창, 이용선 등 제씨가 시민운동 시절에 보여주던 기개와 비판정신을 온데간데 없다. 민주통합당의 쇄신의 동력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기득권 카르텔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에 참여한 시민운동 지도자들의 진정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총선도 문제지만 총선이후가 더 문제다. 지도부의 연이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이 과반의석에 성공하면, 아니 제1당만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만약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을 경우 민주통합당은 책임론을 둘러싸고 커다란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미 공천결과에 대해 당내 계파간 온도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크게 보아 현 당권파와 입장을 같이하는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의 공천이 개혁공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통합당 지지자 일반과 비당권파의 공천평가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큰 싸움이 예견된다.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의 의회지배를 끝낼 절호의 기회가 점점 우리의 과로때무에 사라져가는 것에 분노를 멈출 수 없다. 아직은 필자도 그 일원인 민주통합당이 역사앞에 커다란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 공천을 포함해 이미 총선준비는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를 잃었다. 총선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의 과제다.

2012년 2월 23일 목요일

강용석 사퇴 … 전의총·동아일보 불똥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2-23일 기사 '강용석 사퇴 … 전의총·동아일보 불똥'을 퍼왔습니다.
'강용석 감싸기' 비판여론 급증하자 변명으로 일관

강용석 무소속 의원이 21일 사퇴의사를 밝혔지만 비난여론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강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박주신씨가 병역기피 의혹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박씨가 병무청에 제출한 MRI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다른 디스크 환자의 것과 바꿔치기했다는 것.
그러나 22일 박씨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다시 MRI 검사를 실시한 결과, 강 의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진 직후 강 의원은 “의혹제기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을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강 의원이 사퇴의사를 표명한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 잔여임기가 석 달밖에 남지 않은 점, 4월 총선 불출마 여부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그의 의원직 사퇴가 '꼼수'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과 동아일보 등 일부언론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앞서 전의총은 “척추 MRI의 주인공은 비만 체형을 가진 30~40대 이상 연령대일 것으로 보이며, 20대(박 시장 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동아일보도 강 의원 측의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기사를 내보내며 박 시장 아들 병역비리의혹을 대서특필했다. 강 의원의 주장에 이들이 힘을 실어준 셈이다.
문제는 강 의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이후에도 이들은 변명하기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전의총은 “전문가의 소견을 밝힌 목적이 논란을 부추기고자 함이 아니었다”며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만큼 사실 확인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명확한 사과라기보다는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변명과 발뺌인 셈이다.
동아일보도 23일 사설에서 “그동안 박 시장이 소극 대응하면서 의혹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목적으로 무책임한 의혹을 터뜨리는 행태가 사라지기 바란다”고 촌평했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주신씨 병역기피 의혹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곳은 동아일보였다. 
트위터 등 SNS에서도 이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강용석 주장에 동조했던 전의총이라는 의사집단의 대표로 있는 노환규씨는 뉴라이트 출신 의사입니다. 차기 의협회장까지 바라보고 있는 것 같고요. 전의총?? 의사들 사이에서도 뉴라이트 수구꼴통 집단으로 취급받고 있네요”
“이번 일로 의료계 전체가 신뢰를 잃을 것 같아 두렵다. '전의총'이란 단체는 의협산하단체가 아니고, 의료민영화를 주장하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보수적 단체이며, 보수시민단체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분이 대표로 있는 단체인데. 절대 대표성 있는 집단이 아님!”
“미친 전의총 의사협회. 권력의 개가 되려나… 배운 놈들이 이렇게 사는 거보면. 참 가방끈과 인간됨됨이는 무관함이 증명된다. 소신도 없고. 희망도 없고. 배려도 없고. 촌스럽게 그지없는 그지같은 인간들”
“동아일보 어제 자폭용 기사를 1면 톱으로 실었다! 강용석의 거짓말이 백주에 탄로나는 날 강용석 말을 뒷받침해주는 소위 전문가들의 말로 1면 톱을 도배했다. 참으로 위험한 도박을 벌였고 결과는 처참했다”
“동아일보가 왜 동아일보인지 알 수 있다.~박원순 아들 병역 의혹 허위로 입증… 강용석 따라서 칼춤 췄던 ‘부끄러운 언론’” 등 강용석 의원의 무책임한 폭로를 지지했던 이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줄을 잇고 있다. 

2012년 2월 6일 월요일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 및 인사, 결자해지해야


이글은 대자보 2012-02-05일자 기사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 및 인사, 결자해지해야'를 퍼왔습니다.
[시론] 파탄난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임기말에 반성도 개선도 전혀없어


▲ MBC노조파업 © 언론노조

임기 1년여를 남기고 이명박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들어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언론운동시민단체 진영의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10월 말 무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승리에 이어, 현재 진행형인 BBK발언 관련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 전의원 구속으로 비판 여론이 일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 행해졌던 검찰 동원 강제 임기 하차 정연주 KBS 전사장의 무죄 판결, 한명숙 전국무총리의 뇌물수수 무죄 판결 등이 잇달았기 때문으로 풀이 된다. 

여기에다 임기 1년여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 측근 인사와 영부인과 가까운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비리에 구속되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것도 한몫 작용한 듯하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최시중 전방통위원장이 양아들로 알려진 한 참모의 금품 비리 등으로 중도하차했고, 또 다른 비리 의혹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면서 시민사회언론단체들에 의해 최 전위원장은 고발까지 된 상태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형이면서 현 정권의 실세로 지낸 이상득 의원도 비리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야당 대통령 후보를 500만표 이상 뿌리치고 화려하게 등장한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말기 레임덕이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임기 중 이명박 정부 일어난 언론사 및 문화부처 관련 인사는 무레함 그 자체엿다. 검찰을 동원해 KBS사장을 자르고, 문화관광부 소관 각종 위원회는 전 참여정부에서 임명한 위원장의 임기가 남아 있는데도 쫒아 내다시피했다. YTN사장 낙하산 인사, KBS사장 낙하산 인사, MBC 엄기영 사장 낙마와 방문진 이사 교체 과정, 종편 선정, 미디어렙 등 수많은 언론 관련 정책 및 인사는 상식을 초월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 나꼼수 © 나꼼수

그럼 당시 언론은 뭘 했을까.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거나 축소했고, KBS, MBC, SBS 등 방송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본질 보도를 찾기 어려웠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인데도 말이다. 

이명박 정권의 임기가 얼마남지 않는 탓인지 보수 언론까지 정권의 비리 의혹 기사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청와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키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청와대 실세로 불리던 이상득, 최시중, 이재오 등의 총선 배제 움직임이 싹트고 있고, 당명까지 공모해 새누리당으로 바꾸었다. 과거 한나라당의 구태 정치를 새롭게 일신하자는 의미로 보인다. 비대위는 이명박 정부의 대결 위주의 대북정책을 바꿔 ‘유연한 대북정책’으로 갈 것이라고도 선언했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유연하게 바뀌고 있는 모습이지만 청와대와 통일부는 '대결위주의 대북정책' 고수하며, 꼼작도 하지 않고 있다. 당의 정책이 바뀌면 검토를 하거나 고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도 아직 묵묵부답이다. 

연일 언론운동시민단체들은 나꼼수 정봉주 전의원의 석방과 MB 멘토 최시중 전방통위원장 구속을, 파업 중인 MBC노조는 공정방송과 불공정방송 책임자 김재철 사장 퇴진을, 부산일보노조는 민주적 사장 부임과 정수장학회 반환을,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와 언론본부는 남북의 긴장완화를 위한 평화적 교류와 남북 언론인 교류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결자해지한 해법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길 기대해 본다. 

2012년 1월 3일 화요일

방송사들이 임진년 보신각의 밤을 빼앗았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03일자 기사 '방송사들이 임진년 보신각의 밤을 빼앗았다'를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정승권 CBS PD "정권과 자본에 영합하는 지상파 끔찍하다"

어린 시절 나는 인천에 살았다. 해마다 12월 31일이면 그날 만큼은 밤새 TV를 볼 수 있었다. 부모님과 TV를 보며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중요한 연례행사였다. 그런데 2012년 임진년(壬辰年)을 맞는 새해에는 달랐다. TV를 켜고 기다리던 국민 대다수가 보신각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타종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10만 시민이 2012년 새해를 맞는 모습도, 힘차게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생생한 모습도, 지상파 TV를 통해서는 보기 힘들었다.
이날 나는 보신각 타종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저녁 7시부터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지상파 TV 3사의 중계방송 여부는 현장에서 확인할 수 없었지만, tbs TV(서울교통방송. 서울 경기 일부 가시청권)의 생방송 메인 카메라가 와 있었고, 인근에 KBS와 YTN 중계차가 눈에 띄었다. MBC와 SBS의 중계차는 보이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인터넷에 접속해보니 SNS는 이 문제로 들끓고 있었다. 한 트위터리언은 “KBS는 아예 형식적으로 보여주려고 작정한 듯. 박원순 시장 나오고. FTA 반대 시민들까지 대거 나와서 그런 걸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생방중에 잠깐씩 연결하다 타종 2분 30여초 전에야 현장을 연결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MBC는 임진각의 김문수 경기 지사를 인터뷰해 방송했다고 한다. SBS는 을 방송하느라 타종 현장은 연결조차 하지 않았다.
이같은 ‘타종행사 왕따’ 현상이 올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8년 12월 31일의 보신각 타종행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억눌린 상황에서 마땅한 소통 창구를 찾지 못한 시민들은 타종행사에 모여 ‘반MB’를 외쳤다. 이 행사를 독점중계하던 KBS는 현장에서 들려오는 시민들의 구호와 노래를 삭제하고 오세훈 당시 서울 시장의 인터뷰와 타종 소리만 골라서 들려줬다. 그 때도 시민들은 ‘과연 KBS가 공영방송인가’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지난 1일 보도한 CBS 노컷뉴스의 지난해 마지막 한미FTA 반대집회와 임진년 타종행사 동영상 캡쳐

2012년을 맞는 올해 보신각 타종행사 역시 그러했다. 시민들의 언로는 더욱 답답하게 막혀있다. 이날 광장을 통해서라도 생각을 전해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행사 4시간 전인 8시부터 청계 광장에서는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반대 촛불집회가 대규모로 열렸으며, 촛불집회 참여 시민 대부분이 보신각 타종행사에 참여했다. 올해는 타종행사에 정신대 할머니 김복동씨가 직접 참여했으며 다문화 가족과 장애인들도 식전 행사에 참여하는 등 서울시 측의 준비도 남달랐다.
하지만 방송은 이들의 분출하는 의지를 외면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에는 독점으로 특정 방송사에 방송권을 준 것도 아니고 중계를 막지도 않았다고 한다. 방송 3사는 엉뚱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MBC는 기존에 해오던 임진각을 다시 찾은 것이라고 하고, KBS는 “국가적 행사가 아닌 서울시 행사다”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SBS는 아예 관심사 밖이다. 그런데 이들 방송사가 보신각의 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직 국민들만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상파 방송은 기본적으로 불특정한 다수 시청자를 향하여 무선 전파로 발신된다는 점에서 수신자를 지정하는 미디어인 신문·잡지·영화·서적·음반 등과 구별된다. 신문은 돈과 뜻만 있으면 누구나 발행할 수 있지만 지상파 방송은 그렇지 않다. 지상파 방송은 그 전달방식에서 공공재적인 특성을 지닌다. 전파매체이기 때문에 누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국민으로부터 그 전파의 운영권리를 수탁 받은 자만이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이 허가제라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대신해 이 전파의 사용 권한을 부여했다는 의미이다.
전파의 주인인 국민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타종소리를 기다렸다.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추위 속에 현장에 나서기도 했다. 그런 보신각의 밤을 누가 국민들로부터 빼앗는가. 일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 행사를마음대로 가리려 했다면 방송3사는 그것을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지금도 국회에서는 전파의 권한을 남용하고 공익을 외면하는 지상파 방송들이 수신료를 인상해달라거나 아예 방송광고 직접영업을 하겠다며 자사이익을 위해 벌거벗고 나서고 있다. 정권의 이익과 광고주의 자본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지상파 방송. 생각만 해도 끔찍한 미래다. 방송의 공영성과 다양성을 지켜내는 미디어렙법 입법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일 보도한 CBS 노컷뉴스의 지난해 마지막 한미FTA 반대집회와 임진년 타종행사 동영상 캡쳐

지난 1일 보도한 CBS 노컷뉴스의 지난해 마지막 한미FTA 반대집회와 임진년 타종행사 동영상 캡쳐

2011년 12월 29일 목요일

중구난방(衆口難防), 무리의 입은 막을 수 없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자 기사 '중구난방(衆口難防), 무리의 입은 막을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시민정치시평] '뿌리 깊은 나무'와 SNS의 정치학

올해 가장 인기를 누렸던 TV 드라마 중 하나인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과정을 현대적인감각으로 극화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조선을 건국하는데 핵심역할을 했던 밀본(密本)이라는 사대부 비밀결사가 세종의 한글창제를 막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알기 쉽고 배우기 쉬운 글이 백성들에게 '역병처럼 퍼져나가면' 성리학의 해석권한을 독점한 사대부의 위치가 위협받게 되고, 종국에는 성리학의 국가인 조선마저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반면, 드라마에서 세종은 신분제도의 역사적 한계에 갇혀 있지만, 민중들에게 표현하고 사고할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권리를 찾게 하기위해서는 장래 조선왕조가 무너지는 것까지도 감수하는 계몽군주로 묘사된다. 드라마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파격과 욕설을 일삼는 세종의 캐릭터에는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최근 유행하는 나꼼수의 풍자스타일이 묘하게 묻어난다.

ⓒSBS

연말 들어, 이명박 정부의 사정기관들에서는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규제하기 위한 일련의 방책들을 내놓고 있다. 최근 수년간, 특히 올해에 와서 '역병처럼 번져나가' 정권의 존립마저 위협하게 된 SNS의 영향력에 대해 규제당국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것을 불온하게 생각한 선관위가 '정치성향이 있는 유명인들이 SNS를 이용하여 투표독려를 위한 인증샷을 올려서는 안된다'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었다. 이 방침은 곧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무력화되었는데, 여론의 반응은 거의 조롱과 놀림에 가까웠다. '유명인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로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으로 선관위의 규제방침을 공공연히 비웃었다. 선관위는 한발 물러서는 듯 했다. 하지만 뒤이어 몇몇 보수적인 시민들이 선관위 방침을 근거로 김제동 씨와 조국 씨를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검찰은 지난 12월 26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SNS 선거운동 처벌기준을 작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SNS 규제에 나섰다. 방통심의위는 SNS를 위원회의 심의대상으로 포함시킨데 이어 이를 규제하기 위한 전담팀도 꾸렸다. 방통위에 따르면 SNS가 개인 간의 사적인 의사소통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개인의 의견을 공공연히 퍼뜨리는 '공연성(公演性')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허위사실 등이 유포될 경우, 계정자체를 폐쇄하는 등의 강력한 규제가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국의 이런 접근방식은 SNS에서 일어나는 시민의 의사소통이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힘든 혼란을 야기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다. 군중의 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중구난방(衆口難防)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례와 용례가 사뭇 다르다는 점은 이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중구난방은 통상 어수선하고 종잡을 수 없이 제각각 떠드는 모양새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서인 십팔사략에 따르면, 중구난방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는 이렇다. 주나라 소공(召公)이 여왕(周勵王)의 탄압 정책에 반대하며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충언하였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이 같은 충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국인폭동(國人暴動)으로 알려진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하여 평생을 갇혀 살게 되었다.

여왕이 없는 동안 일부 제후와 재상이 왕을 대신하여 집정(執政)하던 시기를 공화(共和)라 불렀는데, '공화제(共和制)'란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중구난방은 공화제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셈이다.

그런데, 지배자들에게 백성의 생각과 말이 자유롭게 표현되는 상황은 종잡을 수 없는 무질서와 혼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던 반면, 중구난방의 고사에서는 백성들의 생각과 말을 개천에 비유함으로써 사실상 그 속에 일정한 경향과 흐름, 즉 시대정신이라 할 만한 것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이 무질서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알려지고 이용되게 된 까닭은 민주주의에 대한 통치자들의 원초적인 두려움과공포가 반복적으로 이 용어의 해석에 작용해온 탓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리의 입을 통해 표현되고 있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2011년은 전 지구적 의미에서 '중구난방'의 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연초 시작된 아랍과 북아프리카에서의 민주화 도미노가 금융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 점거시위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유럽과 전 세계로 '역병처럼 퍼져나가' 전지구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한국에서도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흐름은 여지없이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시민들의 신속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 SNS 시스템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

사실 아랍/북아프리카와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북미/유럽은 체제/문화/지리적 공간 모든 면에서 매우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맥락에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아랍/북아프리카는 현대자본주의 문명의 핵심을 이루는 석유라는 화석연료가 집중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지역으로서, 서구제국의 편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할되어 반(半)봉건적인 혹은 소수 권위주의 지배자가 통치하는 국가들간 서로 반목하는 체제로 유도되고 관리되어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 점에서 서구국가들이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와 화해를 촉구해온 것은 다분히 이중적이고 의례적인 것으로서 해당 공동체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희구해온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것이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테러와의 전쟁은 이러한 모순적 연관을 극단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다분히 석유패권을 노린 것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확산을 주창했던 것이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은 종국에는 서구의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 '쇼크 독트린'의 저자이자 경제평론가인 나오미 클라인 식으로 풀이하면 테러와의 전쟁의 주창자들은 이른바 '쇼크 독트린'을 통해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안보와 전쟁 논리 뒤에 감추고, 결과적으로 그 투기성, 소모성, 약탈성을 심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위기를 재앙의 수준으로 심화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2011년은 소련이 해체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1991년 12월의 소련 연방해체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시작된 구사회주의 체제 몰락에 마침표를 찍었다. 당시 동베를린에 모였던 반공산당 시위대가 내걸었던 유명한 구호는 "우리가 바로 인민이다. We are the people"이었다. 20년이 지난 후 월스트리트에서는 "1%의 탐욕에 봉사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우리가 바로 99%다"라는 구호가 내걸렸다. 20년의 시간을 두고 제시된 두 구호가 지니는 공통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냉전이 해체되었을 때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민주주의기도 했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훨씬 겸허하게 보다 정의로운 시스템을 모색했어야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탐욕의 질서를 더 극단으로 밀어부쳤고 현재의 위기를 잉태했다. 2011년 지구촌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제 전세계적인 금융/재정위기와 에너지/자원 위기라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위기 앞에서 대다수의 민중들을 삶의 극단으로 내모는 모순에 찬 세계화와 양극화에 맞서는 전 지구적인 민주화 흐름이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봇물처럼 흘러넘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2011년은 중구난방의 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명확한 경향이 엿보였다. 극단적인 경쟁사회, 양극화사회, 위험사회, 소수를 위한 특권사회에 대한 시민의 도전이 그것이다. 극단적인 양극화 속에서 시민의 삶은 안전장치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시민들은 그들이 겪는 고통이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것인 양 정당화해왔던 기성 보수 정당과 관료 기구, 그리고 주류 언론과 주류 지식사회를 불신하기 시작했고, 당연시했거나 무력하게 감내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하기 시작하고 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민영화, FTA, 원자력발전, 군사기지 등 2011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회적 이슈의 목록이 시민들 내면의 금기가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평화, 표현의 자유를 향한 목소리가 힘을 얻는 반면, 재벌체제, 정당질서, 주류언론, 공안기구 등은 전에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 기성의 체제가 제시한 (글로벌) 스탠다드는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99%의 시민들이 더 이상 그들의 언어와 권력에 더 이상 주눅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류언론은 이러한 경향을 여전히 혼란과 위기의 징후로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위기는 특권적 구조의 재생산에 봉사해온 가부장적인 국가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맹목적으로 강조되어온 국가안보나 국익보다 사회적 안전망과 구성원 개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삐 풀린 시장의 자유보다는 시장과 국가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도리어 실질적으로 더욱 공익적이고 안전하며 균형 잡힌 사회로 나아갈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 것 같다. 즉 시민주도 민주주의가 가져올 건강한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참여연대 창립자의 한 분이자, 초대 공동대표를 역임한 김중배 선생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문명의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고, 그 문명의 전환을 어떤 쪽으로 끌어갈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지구적인 수준에서 경제위기, 자원위기가 만성화되고 있고, 한반도 분단체제도 다시 찾아온 냉전적 대결구도와 군사적 긴장 속에서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다. 시민의 요구는 한계에 직면한 성장주의와 군사주의를 뛰어넘을 새로운 대안을 향하고 있다. 이 전환의 국면에서 사회운동과 정치가 할 일은 문턱을 더욱 낮추고 조촐한 마음으로 즐겁게 시민의 바다에 뛰어드는 것, 절박한 외침이 있는 곳을 향해 요란하지 않게 쉼 없이 흘러가는 것, 더욱 대담하게 하지만어깨에 힘을 빼고 시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12년에도 중구난방의 힘, 그 신나는 축제의 에너지가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열어나갈 것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9일자 기사 ''김정일 이후'와 2013년 체제'를 퍼왔습니다.
[백낙청 편집인 신년칼럼] "김정일 급서, 남녘의 봄은 준비되고 있는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타계는 한반도 전체로서도 큰 사건이다. 평소에 한반도에 관심이 적은 서방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김정일 이후'가 어떻게 전개될지 많은 논평을 쏟아냈다. 후속 김정은시대가 어떤 양상일지 누구나 궁금해할 법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도 있다. 북녘의 지도자 교체와 남녘에서의 2013년체제 중 어느 것이 더 큰 변수가 될까. 북녘 동포들로서야 영도자의 급서(急逝)가 당연히 최대의 사건이겠지만, 한반도 전체의 장기적 전망에서는 2013년체제의 성패, 곧 1987년 6월항쟁으로 한국사회가 한번 크게 바뀌었듯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을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여부가 한층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2013년체제'에 관해서는 2011년 여름호에 수록된 졸고 "'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참조).

최고지도자의 급서와 '급변사태'를 구별해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지도자의 급서가 곧 나라의 급변사태로 이어지지 않을 시스템을 북측이 마련해놓았음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이 민주적이냐 또는 사회주의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오히려 왕조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회고록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국의 입헌군주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고 나온다는데, 북조선 체제가 형식과 내용 모두 태국과 거리가 멀지만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교체가 연로한 국왕의 승하(昇遐)를 대비하여 책봉해두었던 왕세자의 등극과 흡사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대비에 주목했더라면 너무 쉽게 '급변사태'를 예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북측 체제의 '왕조적 성격'에 유의한다면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나이가 어리다거나 후계연습기간이 아버지 때보다 짧았다는 사실도 당장에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첫번째 세습의 경우는 국조(國祖)에 해당하는 김일성 주석의 비중이 워낙 크고 그의 죽음이 워낙 갑작스러운데다 공산주의혁명을 표방하고 건설된 국가의 '왕조적' 변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어쩌면 더 큰 진통이 따랐을지 모른다. 반면에 3대세습은 김일성 가문(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고는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오를 수 없음이 통념화된 사회에서 2대세습으로 이미 닦아놓은 길을 따라 진행되는 사건인 것이다.

다른 한편 같은 유일체제라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이 달랐듯이 김정은 체제도 많든 적든 변용을 거쳐 형성되리라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절대권력을 휘둘렀다고 하지만 선대와는 달리 그는 '수령'도 '주석'도 아닌 지위에서 '선군정치'라는 군부와의 일정한 타협을 전제로 권력을 행사했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왕년의 일본 천황을 방불케 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옹립되더라도 그의 실질적인 통치는 당과 군 엘리트집단과의 또다른 관계 속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그 새로운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에 적합하며 '대장 동지' 자신이 얼마만큼의 정치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김정은시대의 명운이 갈릴 것이다.


▲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을 호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체제 건설이 핵심 변수인 이유

아무튼 김정일 위원장의 육체적 생명에 대한 불확실성을 곧 북측 체제의 '급변사태' 가능성과 동일시하던 시나리오가 퇴색하면서 한반도정세의 '불확실성'이 도리어 감소한 면이 없지 않다. 동시에 남한 민중이 2013년체제를 건설하느냐 못하느냐는 변수의 비중이 그만큼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 비중은 남북한의 국력차이와 무관하지 않다. 남북은 경제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결국 남쪽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큰 무게를 갖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원론적 고려를 떠나서도, 그동안 이명박정부가 한반도정세를 꼬이게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돌이켜보면 '한반도문제에서 한국정부의 주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한반도평화아카데미 2011.12.1 강의 '2013년체제와 포용정책2.0' 참조)

물론 북에서 급변사태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먼 장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야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중기적으로도 북의 급변사태를 방지하려는중국의 의지와 능력에 큰 변동이 없을 터인데다, 지금은 내부적으로 비교적 질서정연한 승계작업이 진행되는 모양새이고, 중국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행여나 순탄한 진행이 안될까봐 일제히 '안정 최우선'을 부르짖고 나오는 형국이다. 심지어 이명박정부도, 특유의 무정견(無定見)과 무교양(無敎養)을 드러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유지를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남한 바깥의 변수로 말하면 오히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걱정거리다. 후보지명전에 나선 인사들 중에 심지어 온건파라는 롬니 매사추세츠주 지사조차 극우적인 공약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로 공화당이 집권하더라도 2013년체제가 아주 불가능해질 것 같지는 않다. 조지 W. 부시가 당선된 2000년대 초와 달리, 현재 미국은 국가경제가 거의 거덜나고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된 상태이며, 이런 판국에 합리적인 국가경영을 아예 포기한 듯한 정강정책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부시와 같은 완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국민이 2012년에 새 출발을 선택했을 때 훼방을 놓고 애를 먹일 수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좌절시킬 수는 없으리라 본다.

2013년체제 건설에서의 북한 변수

여기저기서 논의와 공부가 진행되고 있듯이 2013년체제는 한국사회의 일대 전환을 기약하고 있다. 87년체제에서의 민주화가 새로운 단계로 약진하면서 그간의 극심한 양극화 경향을 반전시키고 국가모델을 생명친화적인 복지사회로 바꾸며 정의・연대・신뢰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를 재생하는 등의 과제를 설정하고 있다. 이때 핵심적 의제의 하나이자 어떤 의미로는 여타 의제의 성공을 좌우할 것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다.

'극복작업의 획기적 진전'이지 완전한 '해소'를 주문하지 않는 것은 1953년의 한국전쟁 휴전 이래 굳어져온 분단체제의 온전한 극복은 아직 먼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2013년체제 성공의 한가지 전제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하다. 새 정부가 그것조차 해내지 못한다면 87년체제의 민주개혁작업을 발목잡던 세력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평화협정만 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북측의 동의와 주변국 특히 미국의 동조가 필요하다. 6자회담이 재개되고 핵문제 해결에 최소한 상당한 진전을 보이면서 남북간 및 미북간의 신뢰가 쌓여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김정일 유훈'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북측도 김정은시대의 안착을 위해 마땅히 추구할 일들이라 생각된다.

반면에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2013년체제의 더 큰 목표는 좀 다른 차원이다. 이것도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6・15공동선언에 포함된 것이고 실제로 10・4선언을 통해 그 준비에 시동이 걸렸지만, 정작 남북연합을 수용하려면 새로운 전략적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그럴 의지와 실력을 갖게 될지는 현재로서 미지수인데, 주변여건이 개선되고 특히 남쪽 국민이 북과의 화해와 협력을 확실히 선택하여 지혜롭게 추진할 경우 새 대통령의 임기내 실현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도 아니리라 믿는다.

어쨌든 이명박정부의 남은 기간에라도 대북지원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고위급 접촉을 진행하여 '북한 변수'를 대한민국의 이익과 한반도 대다수 주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정권의 불명예가 그나마 덜어지고 87년체제 극복이 그만큼 순조로워질 것이다. 반면에 그것조차 못한다고 하면 정권교체를 통해 새 체제를 출범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질 따름이다.

2013년체제는 오고 있다

2013년체제가 다가오는 징후는 2011년 한국의 도처에서 나타난 바 있다. 무엇보다 지난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안철수현상'이 그랬고, 한진중공업에서 309일 간의 고공농성을 해낸 김진숙 씨가 희망버스를 비롯한 범사회적 지원을 업고 생환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런 징후의 일환일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 SNS라는 새 매체를 통해 전에 없이 긴밀히 연결되고 소통하는 대중이 있음은 여러 분석가들이 지적하는데, 이들 대중이 여차하면 오프라인에서도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다. 여기에 김정일시대의 종언은 어쨌든 변화가 불가피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북에서도 '재스민혁명'이 임박했다는 허황된 기대가 아니라, 남한의 수구세력이 북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분단현실을 슬기롭게 관리할 능력이 태무함을 재확인해줌으로써 시대전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 위원장으로 때이르게 전면에 나선 것도 2013년체제를 예감케 하는 징후가 아닐까 싶다. 어차피 '이명박 계승'을 내걸고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바였고, 따라서 박위원장이 언젠가 나서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거리를 두면서도 좀더 오래도록 신비의 베일 속에 머물다가 총선이 임박해서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이 애초의 전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급변하는 세상은 그런 우아한 이미지 정치를 더는 용납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지못해 나경원 후보 지원에 나섰다가 상처만 입었고, 비대위 위원장으로서의 '조기등판'조차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어쨌든 에이스의 구원등판으로 접전의 양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박근혜 체제가 실제로 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며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그의 대선 전망도 한결 밝아질 것이다. 반면에 그러지 못할 경우 대선승리를 위한 여당의 최대 카드가 일찌감치 무력화되기 쉽다.

야권이 분열로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도 엄연히 남아 있다. 그동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출범으로 각기 부분적인 통합을 이루었고 최소한 연합 대상정당의 '개체 수'를 줄이는 성과를 확실히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두 당의 추가통합 내지 선거연대는 여전히 장담 못할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당끼리 연합한다는 것은 공동정부를 전제로 대통령후보를 단일화하는 일보다 몇배나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위력을 상징하는 '안철수현상'이 추가 변수로 남아 있는데, 연대조차 못하는 야권이 그들을 끌어들이기는 힘들 터이다.

관건은 역시 2013년체제다. 얼굴을 바꾸고 'MB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구 집권세력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남한에서뿐 아니라 남북이 공유하는 획기적인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룩할 것인가. 어렵지만 가슴 벅찬 모험의 길을 향해 다수 국민들이 열성과 지혜를 모으기만 한다면 총선이라는 최대의 난관을 돌파하는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정치권의 타성과 작은 이익 챙기기가 한결 발붙이기 어려워지는 동시에, 분단체제 속에 살면서 너무 완벽하고 상큼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도 또다른 타성임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우리들 하나하나가 2013년체제 도래의 징후에 마음을 열고 신심에 찬 노력을 지속할 일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리 있으랴?"고 영국의 시인 셸리가 노래한 바 있는데( 1819), 우리는 표현을 약간 바꾸어, "봄이 다가오는데 겨울이 오래 버텨낼 수 있으랴?"고 읊어봄직하다.

* 12월 29일 발행된  전문입니다.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꼼수정권’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꼼수들


이글은 대자보 2011-12-19일자 기사 '‘꼼수정권’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꼼수들'을 퍼왔습니다.
[김주언의 뉴스레이다] 이명박 정권, 남은 임기라도 원칙과 정도를 찾아라

올해 가장 인기와 화제를 몰고 온 ‘나는 꼼수다’는 ‘각하 헌정방송’이다. 말 그대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꼼수’란 이름을 지은 김어준 총수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 방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나꼼수는 성역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여 비판과 풍자의 칼날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 ‘나꼼수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나꼼수는 국내를 넘어 미국 등 해외에서도 성가를 높이고 있다. 

나꼼수의 영향력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다.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의 ‘1억원 피부숍 사건’을 폭로해 박원순 시장의 당선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 특히 선거일 선거관리위원회 해킹사건이 ‘나 후보 당선을 위한 것’이란 특종으로 화제를 몰고왔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통령후보 시절 불거졌던 BBK 사건을 재조명하여 다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내곡동 사저 문제’ 등 퇴임 후 주거문제까지 이대통령과 관련해서라면 모든 게 풍자대상이다. 

나꼼수의 이러한 인기는 이명박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방송을 장악하여 정권 홍보방송에 열중하고 인터넷 통제에 열을 올려 비판적인 여론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언로가 막히면 자연히 유언비어가 떠돌기 마련이다. 유언비어 중에는 사실로 확인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보수신문과 이명박 정부는 이를 ‘괴담’으로 치부하고, 비판세력을 ‘종북 좌파’로 매도해왔다. 자신에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려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불통 정부’를 넘어 ‘꼼수 정부’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나꼼수가 꼼수 정부의 꼼수를 파헤쳐 알려주니까 국민은 열광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한해 동안 꼼수 정부의 꼼수는 넘쳐났다. 특히 연말을 앞두고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몇몇 사건에서는 이러한 꼼수가 빛을 발한다.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꼼수를 그들은 ‘묘수’인 것처럼 낯에 철판을 깔고 떠벌린다. 바둑판에서의 꼼수는 웬만한 하수가 아니라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국민은 하수가 아니다. 나꼼수가 ‘수읽기’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최구식 한나라당의원 보좌관 등의 선관위 해킹(디도스)공격은 꼼수의 대표적 사례이다. 그동안 정부기관과 농협에 대한 두 차례의 디도스공격에 대해 수사기관은 북한소행이라고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기는 했지만 이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해킹공격을 감행한 이들도 자신들이 저지른 해킹공격을 북한소행으로 묻힐 사건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수사기관이 북한소행이라고 발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보수신문의 한 논객과 한나라당 의원조차도 “북한소행인 줄 알았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까. 

이러한 꼼수는 경찰수사로 들통 나고 말았다. 그러나 경찰수사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의 이목이 쏠린 사건에 대해 경찰은 ‘술김에 저지른 우발적 사건’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1억원의 돈거래가 밝혀지면서 경찰 고위층의 축소은폐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경찰의 또 다른 꼼수가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제 검찰이 사건의 진실을 어디까지 밝혀내느냐에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다. 

선관위 해킹공격은 ‘4.19혁명을 불러온 3.15부정선거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여당을 ‘빅뱅’으로 몰고 간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몇몇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꼼수가 불러온 후폭풍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원칙과 정도를 벗어난 꼼수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지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꼼수 정권의 꼼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문제도 꼼수가 불어온 화근 중의 하나이다. 꼼수가 들통 나면서 허겁지겁 사태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아직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불법․편법 의혹까지 덤으로 불거져 나왔다. ‘재임 중 형사 고발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는 꼼수가 가져온 부작용의 하나일 뿐이다. 

그동안 ‘상왕정치’를 해온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의원의 불출마 선언도 눈에 보이는 꼼수에 불과하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의 쇄신을 위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동안 저질러온 비리연루 의혹을 감추기 위한 꼼수’라는 게 세간의 평가이다. 이 의원은 그동안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출마 요구를 거부해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15년 지기 보좌관 박배수씨의 7억원 수뢰혐의가 불거지자 서둘러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상득 의원은 그동안 ‘모든 일은 형을 통하면 된다’는 만사형통의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했다. 박씨에게 뇌물을 건넨 이국철 SLS사장도 “이의원을 보고 돈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검찰의 칼끝이 이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난형난제라고나 할까. 이 의원의 친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자화자찬한 적이 있다. 사촌처남인 김재홍씨마저 수뢰혐의로 구속된 마당에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나꼼수의 지적대로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을 숨기려는 꼼수였을까.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신문에 종합편성 채널을 허가한 것도 꼼수였음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미디어그룹의 육성과 채널 선택권의 확대 등을 종편 허가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채널의 종편이 개국하면서 사실은 ‘보수정권의 재창출’이 근본이유였음이 드러났다. 종편 4개 채널은 개국 때 동시에 박근혜의원을 인터뷰하면서 ‘박비어천가’를 읊어댔다. 오죽하면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아부성 찬사마저 흘러나왔겠는가. 나꼼수는 자칭 ‘가카 헌정방송’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종편은 ‘수첩공주’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공주마마 방송’ 쯤 될 것이다. 

나꼼수는 국민에게 꼼수정권의 꼼수를 읽어내는 방법을 속속들이 ‘까발려’ 주고 있다. 꼼수정권인 이명박 정부로서는 얼마나 나꼼수가 미울 것인가. 그래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동원했다. 방통심의위는 ‘사적 통신을 검열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여론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SNS 심의를 강행했다. 누가 보더라도 나꼼수를 잡아들이기 위한 꼼수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나도는 음란물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사례를 색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분을 내세웠지만 명불허전일 뿐이다. 이를 미끼로 나꼼수 같은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드물다. 

참여정부 말기에 ‘노무현 씹기는 국민 스포츠’라는 말이 있었다. 이제는 이에 빗대어 ‘이명박 조롱하기는 국민 오락’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꼼수정권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꼼수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꼼수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원칙과 소통을 외면한 채 꼼수를 부려서는 국민의 비판여론을 잠재울 수 없다. 나꼼수가 없어지면, 제2, 제3의 나꼼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니 국민 모두 나꼼수가 될 수도 있다. 마지막 1년 동안이나마 원칙과 정도를 되찾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언론광장 감사, <시민사회신문>(http://www.ingopress.com) 편집인

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SNS 혁명은 없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1-28일자 기사 '"SNS 혁명은 없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를 퍼왔습니다.
[의제27 '시선'] "청년들의 손이 아니라 마음을 보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의 당선에 기성 정치권에 대한 청년층의 불만을 전파한 SNS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도 SNS를 선점하는 쪽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스마트폰의 이용자가 폭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SNS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중동의 자스민 혁명, 남유럽의 시위, 미국 월가 시위에서 그 위력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평가한다. 올해 봄 나는 마드리드 시청 앞 광장에서 분노에 찬 대학생들을 만났다.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학생들은 노트북, 인터넷,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최근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는 구호로 시위가 벌어진뉴욕에서도 스마트폰, 태블릿 등 전자통신기기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월스트리트 시위는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이용해 빠르게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전달되었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SNS에 익숙한 청년층이었다.


▲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아랍의 봄'이 발생한 진짜 이유는?

2011년 튀니지 '자스민 혁명'의 시발도 SNS였다. 청과물을 팔던 노점상 청년이 경찰의 단속에 맞서 분신자살을 한 소식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급속하게 퍼졌다. 튀니지 인구 1040만 명 중 60%가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인데, 인터넷 사용자는 350만 명 이상, 페이스북 사용자는 200만 명을 넘었다. 튀니지 정부는 SNS를 통제하지 못했고 반정부 시위는 장기독재 체제를 한 순간에 종식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없었다면 이집트 시민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올 해 초 이집트 시민들이 30년 독재자 무바라크를 몰아낼 수 있었던 것도 SNS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집트 혁명을 '페이스북 혁명'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런가? 수많은 시민의 봉기를 SNS 혁명이라는 부르는 것이 맞는가?

천만에. 우리는 역사의 혁명적 변화를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정보기술이 등장하지 않았던 1789년 프랑스 시민들은 바스티유 요새를 점령했다. 소셜 미디어가 없었던 1848년과 1968년 세계는 거대한 혁명적 격변을 경험했다. 페이스북이 없이도 1991년 소련은 무너졌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용기이다

최근 이집트 민주화운동을 촉발한 청년단체 '4월 6일 청년행동'의 공동창설자 아흐메드 마헤르 이브라힘 엘탄타위가 한국에 왔다. 그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는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민주화는 민주주의를 열망해온 수준 높은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가 이집트 혁명에 미친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SNS 혁명'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기술의 역할을 과대평가한다는 주장이다.

튀니지 사람들은 자신들의 혁명을 '자스민 혁명'이라고 부른다. 자신들의 꽃인 자스민을 손에 들고 시위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집트 혁명의 상징이 SNS인가? 사실 'SNS 혁명'이라는 용어는 서방 언론의 작품이다. 이는 SNS라는 서양 문명의 영향으로 이집트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매우 정치적 해석이 담겨 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은 미국 행정부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테러 전쟁'에서 미국을 도운 무바라크 친미정권의 붕괴는 미국의 중동 정책의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미국과 서구의 언론은 이집트의 정권교체를 다른 상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아랍 혁명을 'SNS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서방 중심적 사고이다.

68혁명, 페이스북 없는 대중운동

1968년 세계를 뒤흔든 학생혁명은 당시 통신수단이었던 전화와 텔렉스가 만든 것일까? 68혁명 당시 서방세계의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기득권층이 독차지했다. 학생들은 대자보와 유인물을 만들며 직접 행동에 나섰다.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등 전 세계 대학에서 점거농성이 시작되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체코의 '프라하의 봄'과 중국의 '문화혁명'도 폭발했다.

나는 올해 6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개최된 '한국과 독일의 학생운동과 시민사회' 제목의 학술대회에서 독일의 60년대 학생운운동의 주역들을 만났다.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였던 클라우스 메쉬케트 사회학 교수는 "독일 대학생들이 나치에 협력한 기성세대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경제성장을 이루어졌지만, 젊은 세대의 감수성은 새로운 시대를 원했다. 1980년대의 한국도 고속성장을 이루었지만, 유신독재와 광주학살을 저지른 군사정부는 학생들에게 불신을 받고 권위를 상실했다.

독일 사회주의대학생연합(SDS)의 지도자 루디 두취케(당시 베를린자유대학 사회학과 학생이었다)와 학생들은 정당과 노조의 보스와 달랐다. 이들은 정형화된 지도부를 만들지 않았지만, 점거농성과 대중집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분출했다. 비폭력, 자발성, 탈중심의 운동을 창조했다. 대학 개혁, 권위주의 타파, 등록금 폐지, 베트남 전쟁 반대 등 요구조건도 다양했다. 이들이 개최한 공개토론회는 지금 기준에서 보면 아날로그 방식이지만, 수평적 의사소통으로 새로운 대중운동의 지평을 열었다.

인간의 삶과 사회구조의 중요성

인터넷은 다수의 대중의 힘을 강화할 가능성을 키운다. 냉전 시대 인터넷은 미국 국방성프로젝트에서 출발했지만, 히피 문화와 사회의식을 가진 해커의 세례를 받아 전혀 다른 성격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곧 바로 대중의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인터넷 전문가 예브게니 모로조프는 (Net Delusion)이라는 책에서 정보기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와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이 되는 현실을 보면서 경악했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가 전 세계에 확산되었지만 모두 아랍과 같은 정치적 격변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2009년 이란의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행위에 맞선 청년들의 시위가 발생하자 이란 정부는 시위에 참여한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 웹에 올린 사진과 동영상을 이용했다. 독재정부에서 정보통신기술이 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모든 독재정부는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장악하여 대중을 통제할 수 있다. SNS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 사회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아랍 혁명은 사회인구적 변동에 따른 구조적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특히 젊은 층의 인구 증가와 경제위기가 결합되면서 정치적 갈등으로 촉발되었다. 정치적 갈등이 맨 먼저 발생했던 이집트는 젊은층 인구 비중이 52.3%에 달했다. 튀니지는 42.1%, 리비아는 47.4%에 달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위기가 심각하고 청년 실업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이집트는 24%, 튀니지와 시리아는 30%가 넘었다. 젊은이들의교육 수준은 지속적으로 높아졌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상당수의 대졸 실업자들이 대거 시위에 참가했다. 이들의 요구는 권위주의 정부의 장기집권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다른 아랍 국가인 알제리에서는 급격한 사회변동이 발생하지 않았다. 알제리 정부는 수십 년 전부터 급진세력의 사회운동을 미리 경험하면서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 올해 1월 알제리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지만, 정부는 공권력 사용을 자제했다. 1992년 '테러 전쟁'에서 시작한 '국가비상사태'를 야당의 요구에 따라 해제했다. 또한 청년고용을 창출하고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주택난 해소를 위한 정책도 추진했다.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한 정치적 타협을 효과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치솟는 청년실업, 사회갈등의 폭발

실제로 아랍 혁명이 촉발한 계기는 SNS가 아니라 청년실업이었다.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시위도 마찬가지이다. 스페인의 청년 실업율은 45%가 넘는다. 최근 월가 시위 확산의 배경도 일자리 부족과 높은 청년 실업률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의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2008년 위기 이전 수준과 비교해 약 687만 명이 감소했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이 심각한 상황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2007년 4.6%에서 2011년 8월 9.1%로 상승한 반면, 고용률은 2007년 63%에서 2011년 8월 58.2%로 낮아졌다.

중국은 어떤가? 최근 QQ 등 SNS가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는 "인터넷이 자유를 쟁취할 가장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중국에서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민주화운동이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중국의 고도성장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정부의 철저한 인터넷 감시망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중국 사회가 불안해질 위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의 빈부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 높은 교육열에 따라 고임금의 직장을 선호하는 고학력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교육 수준의 상승과 실업율의 증가가 동시에 발생하면 사회의 불안은 증폭될 수 있다.

젊은이의 저항이 세상을 바꾼다

한국에서도 'SNS 혁명'과 젊은이들의 저항을 둘러싸고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한다. 먼저, SNS가 사회변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클레이 셔키 뉴욕대 언론대학원 교수는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중동 시민혁명의 근본적 원인을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로 설명한다.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이 극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음으로, SNS가 쓸데없는 잡담이나 늘어놓고 유언비어나 퍼트리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정반대의 평가가 존재한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앤드류 킨은 `아마추어 숭배'에서 인터넷에 참여하는 대중이 아마추어 지식을 퍼트리면서 질 나쁜 정보를 확산하고 있다는 비판했다. 누가 맞는가? 분명한 것은 SNS 자체는 두 가지 가능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의 삶 자체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조건이 그들을 불행에 빠트리는지, 자신들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려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실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그저 그런 오락과 소일거리를 찾고 있다. 하지만 언제 그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와 투표장으로 몰려나올지 알 수 없다. 대학 등록금은 치솟고 일자리는 찾기 힘든 현실 속에서 젊은이들의 분노가 커져만 가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과 행동이 없다면 누구도 튀니지 거리, 마드리드 광장, 월스트리트에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젊은이들의 손에 있는 기계를 보지 말고 그들의 가슴을 읽어야 한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