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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일 목요일

미국이 F-35 한국에 떠넘기려는 이유는?


이글은 시사인 2012-02-28일자 기사 '미국이 F-35 한국에 떠넘기려는 이유는?'를 퍼왔습니다.
F35는 천문학적 자금이 들어갔지만 아직 제대로 된 폭탄 투하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국방비 감축으로 인해 록히드마틴에서 벌어질 대량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이 한국 정부에 이를 떠넘긴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2월4일 미국 지역 일간지 중 하나인 (www.nwfdailynews.com)에 게재된 기사 하나가 한국 정부를 놀라게 했다. 기사는 미국 록히드마틴 스테핀 오브라이언 부사장의 발언을 인용한 것으로 “이스라엘과 싱가포르, 일본, 한국은 F35 개발에 자금을 대지 않았지만 이를구매하기로 동의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한 대당 6500만 달러인 가격에 더해 그 나라들이 개발비 일부를 보충하는 걸 도와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이스라엘과 싱가포르, 일본, 한국은 7대 개발 프로그램 협력국보다 더 많은 F35를 주문할 예정이다”라고도 했다. 요지인즉 한국 정부가 이미 록히드마틴 사와 F35를 구매하기로 사전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이 보도가 나간 직후 록히드마틴은 해당 기사가 오보라고 해명하며 진화에 나섰다. 또한 해당 언론사에 정정 보도를 요청했음을 한국 언론에까지 알리는 성의를 보였다. 록히드마틴이 이렇게 진땀을 흘리며 해명을 하는 이유는 아직 한국 정부가 F35 구매를 공식화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해프닝이 벌어진 배경에는 F35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놓여 있다.


ⓒLockheed-Martin 제공 미국 텍사스 주에 있는 록히드마틴 사의 F35 생산 공장 모습. 총 6000여 명이 근무한다.

F35는 록히드마틴 사가 개발한 미국의 제5세대 전투기로 스텔스 기능을 탑재한 최첨단 전투기다. 하지만 F35가 태어나기 전 더 불행했던 F22가 있었다. F22는 냉전 시대 소련에 대적하기 위한 최첨단 전투기로 탄생했다. 이 ‘꿈의 전투기’는 현존하는 지구상의 전투기 중 최강자로 불릴 만큼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알래스카 상공에서 벌어진 두 차례 가상 공중전에서 F22가 가세한 ‘블루포스’가 ‘레드포스’에 144대0, 241대2로 압승하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일명 ‘알래스카 전설’이라 불리는 이 가상전에 F22는 겨우 12대가 출격했을 뿐이지만 단 한 대도 격추되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는 이 놀라운 결과에 흥분해 F22 750대를 도입하려 했다.

문제는 F22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었다. 한 대당 1억5000만 달러(약 1700억원)라는 천문학적 액수가 드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 뜨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소련 해체 이후 전쟁 양상도 바뀌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양대 전쟁에서 산악을 뛰어다니는 탈레반이나 사막에서 전투를 하는 저항 세력들이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했던 탓이다. 이들을 상대하고자 막대한 비용이 드는 F22를 도입해 출동시킨다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F22는 187대로 생산이 중단되는 불운의 전투기가 되었다. 대신 록히드마틴은 F22에 비해 성능은 조금 떨어지지만 가격을 대폭 낮춘 보급형 F22인 F35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존 매케인 “F35는 스캔들이자 비극”하지만 F35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덩치 큰 F22의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더 싼 가격의 F35를 만든다는 발상부터가 무리였다. 개발비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들어갔다. 미국 정부는 ‘돈 먹는 하마’인 F35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자 국방위원인 존 매케인은 “간단히 말해서 JSF(F35) 프로그램은 스캔들이자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10년여 세월 동안 국민 세금이 560억 달러(약 63조원) 가까이 투입됐지만 F35가 미국 국방부가 요구하는 폭탄 투하 능력 등을 충족시키지 못해 성능 시험 일정이 지연되자, 가장 중요한 비행 테스트 또한 아무리 빨라도 2015년 이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월 초 게이츠 국방장관은 “(해병대용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B 전투기 개발사인 록히드마틴에 2년간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이 기간에 F35 개발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개발 프로그램 자체를 취소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F35 도입과 관련해 미국 국방부가 상원에 요청한 예산 조정안은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칼 레빈 위원장과 존 매케인은 F35 전투기 도입에 필요한 예산을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국방부의 요청을 거부하고, 2017년까지 생산을 요청한 F35 전투기 423대 중 120대의 생산을 늦추도록 했다. 이로써 국방부는 향후 약 151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경제위기에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F35 예산 삭감은 군수업체의 대량 해고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지난해 록히드마틴은 6500여 명을 해고할 계획임을 밝혔다.


미국 일간지 <노스웨스트 플로리다 데일리 뉴스> 홈페이지에 F35 구매 관련 기사가 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에 중점을 둔 3조8000억 달러(약 4271조원) 규모의 2013년도 예산안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의 2012년 재정적자는 1조3000억 달러인데 이를 2013년 9010억 달러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이에 따라 올 한 해 F35 전투기 관련 예산이 16억 달러 삭감되는 등 국방비가 크게 감축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오바마는 고용 확대를 위한 지원에 집중할 계획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군비 감축과 고용 확대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것인데, 록히드마틴의 경우 F35 예산 삭감으로 인해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질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꺼내든 카드가 해외 판매 확대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과 대치 중이고 전투기가 노후된 한국 같은 나라에 이를 판매하면 군비를 감축하더라도 제조사의 대량 해고를 피할 수 있다. 

록히드마틴의 F35 생산 공장이 있는 텍사스 포트워스는 나날이 들려오는 F35 관련 뉴스에 울고 웃는다. 록히드마틴 F35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한 엔지니어는 “작년 한 해 F35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서 얼마나불안했는지 모른다. 일자리를 찾기 힘든 지금 해고되면 가족의 생계에 문제가 생긴다. 동료들 모두 걱정이 태산이다. 일본, 싱가포르, 한국에서 우리 제품을 구매할 것이라는 뉴스를 들으면 하루가 신나다가도 캐나다, 인도 등이 F35 인도를 보류할 것이라는 뉴스를 들으면 온종일 침울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정부가 F35를 60대나 구매할 것이라는 소문은 록히드마틴 공장뿐만 아니라 하청업체에도 파다하게 퍼져 있다고 전했다. 

에서 관련 기사가 나온 뒤 록히드마틴의 주가는 크게 뛰었다. 이 회사 주가는 F35의 예산 삭감 뉴스가 들린 지난해 12월15일 곤두박질친 바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싱가포르, 일본, 한국이 7대 개발 프로그램 협력국보다 더 많은 F35를 주문할 예정이다”라는 뉴스가 나오자 다시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뉴스가 오보이든 아니든 록히드마틴 사로서는 나쁠 것 없는 기회다. 미국의 한 일간지 기자는 “의도된 보도 릴리스(배포)일 수도 있다. 록히드마틴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알릴 리 없다. 기자가 착각해서 기사를 그렇게 썼다는 것도 난센스다”라고 말했다.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ISD 중재해본 전문가, 한국 제로, 미국 최다


이글은 Econ0my Insight 2012-02-01일자 기사 'ISD 중재해본 전문가, 한국 제로, 미국 최다'를 퍼왔습니다.

그래픽 이병곤


ICSID 등록 불구 실제 사건 선임된 적 없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국회 비준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특히 야권에서는 총선 승리를 통해 한-미 FTA는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미 FTA의 최대 쟁점은 역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이다. 정확히 번역하면 ‘투자자-정부 중재제도’다. 일개 사기업에 불과한 외국 투자자가 투자를 한 나라의 정부를 상대로 그 나라의 공식 사법기관이 아닌 제3의 기구에 중재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사법기관이 아니므로 ‘소송’이 아닌 ‘중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결국 중재기관의 객관성 및 공익성 확보가 중요한 요소다. 또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중재인·조정인이 충분한지도 검토할 대목이다. 한국 출신 전문가가 실제로 ISD 중재 활동을 했고 축적된 노하우가 있는지 여부도 가늠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ISD의 최대 중재기관인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자료를 보면 불안감을 떨치기가 어렵다. ICSID 중재 사건 등에 2011년까지 선임된 중재인·조정인은 모두 1163명인데,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은 1명도 없었다.
한국은 2009년에도 ICSID에 4명의 중재인과 4명의 조정인을 등재했다. 그러나 등록만 돼 있지 여전히 실제 중재 사건에 선임되지 못하고 있다. 중재위원회는 3명의 중재인으로 구성된다. 투자자와 피소국 정부가 1명씩 자기 입맛대로 선임한다. 이는 어쩔 수 없더라도 나머지 1명은 합의가 없는 경우 ICSID 사무총장이 뽑는다. ICSID 행정이사회 의장이 별도로 등재해뒀던 중재인 또는 각 정부가 등재해뒀던 인물 중에서 주로 제3국인을 대상으로 뽑는다. 결국 사무총장의 제3국 중재인 선임 때도 한국인은 1명도 없었다는 뜻이다. 위원회 판단이 구속력을 갖지 않는 조정위원회마저 한국 국적의 조정인은 실제 사건에서 선임된 적이 없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1984년 2월 무기 제조업체 ‘콜트’로부터 무기 생산 특허와 관련해 피소됐을 때도, 한국은 1명의 선임권 티켓을 우리 국적 중재인 명단 중에서 행사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중재인에 등재된 한 변호사는 “우리 정부는 그동안 외교관을 중재인 명단으로 올리다 몇 년 전에야 중요성을 깨닫고 국제 중재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등재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험이 없어 실제 사건에 뽑아주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노하우도 쌓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국인이나 일본인도 사건에서 중재인으로 선임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한국처럼 논란이 많은 미국과의 FTA를 아직 체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장 중재인·조정인으로 많이 선임된 나라는 미국으로 모두 137명이었다. 이어 프랑스(126명), 영국(107명), 캐나다(89명), 스위스(77명) 차례였다.

 / 송창석 이코노미 인사이트 부편집장 number3@hani.co.kr

2012년 1월 14일 토요일

"美-이란 전쟁 일어나면 국내물가 7.1%↑"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1-13일자 기사 '"美-이란 전쟁 일어나면 국내물가 7.1%↑"'를 퍼왔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 호르무츠해협 국지전 1년 이상 지속시 시나리오


ⓒ현대경제연구원 호르무츠 해협 위기시 경제적 시나리오

서방의 금수조치에 대해 이란이 호르무츠 해협 봉쇄를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경제 성장률이 2.8%에 그치고, 물가는 7.1%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호르무즈해협의 위기와 경제적 파급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츠 해협에 국지전이 발생해 이란의 반격과 미국의 추가 파병 등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수송 중단사태가 1년 이상 장기화할 경우 70년대 1, 2차 오일쇼크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됐다. 

보고서는 "1년이상 장기전 양상을 보이면 국제유가는 210달러까지 폭등하고 세계 경제성장률은 2.9%로 하락하고 국제물가는 5.1%내외까지 오를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국내 성장률은 2.8%로 떨어지고 물가는 7.1%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이란 사태가 해협 봉쇄로 이어지고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경제는 물론 국내경제도 고유가에 의한 물가상승과 소비침체 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73∼1974년 1차 오일쇼크 때 세계 성장률은 6.8%에서 2.8%로, 국내 성장률은 14.8%에서 9.4%로 낮아졌다. 국내 물가 상승률은 3.2%에서 무려 24.3%로 폭등했다.

1978∼1980년 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세계 성장률이 3.9%(79년)에서 2.4%(80년)로 낮아졌고, 국내 성장률은 6.8%에서 -1.5%로, 물가는 18.3%에서 28.7%로 급상승 했다. 

한편 전쟁이 6개월 내에 끝날 경우 국내 성장률은 3.3%로 하락하고 물가 상승률은 5.5%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조태근 기자taegun@vop.co.kr

2012년 1월 6일 금요일

"MB여,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06일자 기사 '"MB여,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를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오, 평화']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한국의 선택

군비 삭감 시대에 접어든 미국의 새로운 군사 전략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군사비를 늘려온 미국은 최근 극심한 경제난과 재정난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향후 10년간 최소 4500억 달러, 미 의회가 올해에 재정 적자 삭감안 합의에 실패하면 추가적으로 50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줄여야 할 형편이다. 이는 대규모의 군비 지출을 전제로 했던 군사 전략의 수정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과 군사동맹 관계에 있는 반면 북한과는 적대 관계에 있다. 미국의 군사 전략 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한국에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제 무기 수입, 주한미군 기지 이전 비용 증액 등 주로 '돈'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또한 한미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이 더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고 지역적ㆍ세계적 역할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에 상당 부분 담겨 있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미동맹 사이에 대북 군사전략을 놓고 '엇박자'나 한국이 '독박'을 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신군사전략은 중국 견제와 봉쇄에 맞춰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한국에도 엄청난 전략적 부담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리가 미국의 신군사전략을 예의주시하면서 현명한 대응책을 세워야 할 까닭들이 아닐 수 없다.

미국 신군사전략의 방향은?


작년 봄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에 의해 시작된 군사 전략 재검토는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챙길 정도로 중대 사안으로 부상했다. 오바마는 지난 9월 이후 6차례에 걸쳐 펜타곤 관리들과 전략 협의를 가진데 이어, 5일(현지시간)에는 펜타곤을 직접 방문해 '국방 전략 검토(Defense Strategy Review)'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국방장관 및 합참의장과 나란히 할 예정이다. 미국 대통령이 펜타곤 문서를 발표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새로운 군사전략의 방향은 '세계 경찰'로서의 역할과 야심을 줄이고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1월 4일자 는 새로운 군사 전략은 "중국과 같은 적대국들이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과 정밀 레이더를 사용하려는 시도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 체계에 투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막대한 운영유지비가 소요되는 항공모함도 11척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의 신군사전략에서 주목할 것은 육군과 해병대 감축 방침이다. 펜타곤은 작년에 이미 2015년부터 2만7000명의 육군과 1만5000~2만 명의 해병대를 감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공식적으로 이라크 전쟁 종식과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감축을 선언하면서 추가적인 감축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미 국방부는 현재 57만명의 육군을 49만명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4일자 가 보도했다.

주목할 것은 감축 이유이다. 예산 절감은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사유는 군사 전략의 변화에 있다. 1990년대 이후 유지해온 '윈-윈 전략'을 사실상 폐기하고, 하나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도모하는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적대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봉쇄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엄청난 예산과 군대 투입이 불가피한 '대규모의 안정화 작전'을 더 이상 수행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는 "새로운 전략 문서는 육군과 해병대의 규모가 더 이상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처럼 대규모의 장기적인 안정화 작전을 수행할 필요에 의해 결정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업무보고를 듣기 위해 통일부를 찾았다. ⓒ청와대

미국, '북한 안정화 작전' 꺼린다

바로 이 지점에 한국과 미국의 중대한 '엇박자'가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의 대북 군사전략의 핵심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에 맞춰졌고, 그 핵심은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흡수통일을 달성한다는 데에 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 '개념계획'으로 있었던 '5029'를 작전계획 수준으로 격상한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대규모의 미군을 투입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보ㆍ탈취ㆍ파괴ㆍ유출 차단 등 제한적인 임무만 맡고 엄청난 인적ㆍ물적 피해가 불가피한 안정화 작전은 한국이 알아서 하라는 의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미국의 의도는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미국은 신속하게 대북감시태세(워치콘)와 대북방어태세(데프콘)를 격상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권력 전환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북한군을 자극해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 변수'가 '급변사태'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흡수통일'이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기다리기 전략'으로 일관해온 이명박 정부는 물론이고 차기 정권을 꿈꾸는 정치인들도 이와 같은 변화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조차도 북한의 급변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대규모의 군사적 개입에 나설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를 이유로 외부 세력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분명해진다. 북한의 급변사태를 '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면서 무력 흡수통일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위험천만한 것이라는 점이. 그래서 정신차려야 한다. '북한은 곧 망할 것'이라는 '종북(終北)주의'에서 깨어나, 남북관계와 주변국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맺어가야 하는가를.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2012년 1월 5일 목요일

[사설]이란 제재 동참 강요하는 미국, 대책 없는 한국


이글은 경향신문 2012-01-04일자 사설 '[사설]이란 제재 동참 강요하는 미국, 대책 없는 한국'을 퍼왔습니다.
미국 의회가 지난해 말 이란의 원유 수출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통과시킨 제재법안(국방수권법)이 신년 벽두부터 동맹국 한국에 무거운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 같은 법안의 통과 가능성을 간과한 정부의 무대책이 피해를 더욱 키울 것으로 관측된다.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계경제에도 고유가의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국방수권법은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금융기관들이 미국 금융시스템과 거래하는 것을 막고 있어 미국과 거래를 하려면 궁극적으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막연하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이함에 젖었던 한국 정부의 미숙한 대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0년 6월 이란의 핵활동을 묶기 위해 제재결의 1929호를 발표한 뒤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2010년 8.3%였던 이란산 원유의존율은 2011년 11월 말 현재 9.8%로 되레 올라갔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이란산 원유의존율이 12.1%였던 일본은 국제사회의 흐름을 꿰뚫고 지난해 11월 수입분에서 6.4%로 줄여놓았다. 한국 정부는 이제서야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할 요량이지만 일본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워싱턴으로 가 고위급 교섭에 착수했다. 한국은 국방수권법이 규정한 180일의 유예기간 동안 원유수입선을 대체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짧은 기간 동안의 수입선 교체도 녹록지 않은 일이지만, 그 과정에 동반되는 유가인상과 유가수급의 혼란을 피하기는 어렵다. 외교통상부는 뒤늦게 “우리 경제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면서 미국의 선처를 호소할 방침이다. 정부의 ‘천수답 외교’ 탓에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의회의 ‘근육질 사고’가 문제다. 비핵화는 피해 갈 수 없는 국제사회의 공동책무이다. 그러나 그동안 대이란 제재가 얼마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는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이란 재정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 수출을 막으면 이란 국민에게도 고통이 돌아간다. 더구나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 경제강국들은 미국의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어 효과가 불투명하다.

미국이 그럼에도 일방주의적인 제재를 강행하면서 하필 동맹국의 고통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자칫 동맹국 국민들의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올 11월 대선·총선을 앞두고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법안 통과를 서두른 혐의가 짙기도 하다. 미국은 일방적인 고통분담만 요구할 게 아니다. 진정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고민하길 바란다.

2011년 12월 22일 목요일

[사설] 한-중 간 심각한 외교 부재, 전면 재검토해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22일자 사설 '[사설] 한-중 간 심각한 외교 부재, 전면 재검토해야'를 퍼왔습니다.
이상징후를 보여온 한-중 외교관계의 실상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그 적나라한단면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 정상과 긴급통화를 했는데, 유독 중국과만 불통이었다. 우리 쪽에서 후진타오 주석과의 통화를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도 중국 쪽이 회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중 외교장관끼리의 통화도 20일 밤에야 이뤄졌다.
이는 정상적 외교관계로 보기 힘들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6자회담 의장국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 사망으로 앞날을 점치기 어려운 북한의 최대 맹방이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후견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중국과 핫라인도 개설돼 있지 않았고 긴급상황에서 정상 간 통화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한-중 관계가 이처럼 비정상적인 관계로 악화한 것은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 일변도의 외교정책을 강화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정책에 동참했다. 중국으로서는 이런 한국이 달가울 리 없다. 김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대거 조문을 하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이처럼 냉랭하게 대하는 것은 미국 일변도인 우리 정부의 외교적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 때와 최근 미-중 간 대미얀마 외교 신경전에서도 보듯 지금 중국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한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대중 외교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중국의 태도도 적절치 않다. 중국이 최우선 목표로 설정한 북한의 안정적 관리는 미국과의 관계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남북의 한 당사자인 한국을 빼놓고 한반도 안정을 얘기할 수는 없다. 중국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면 좀더 유연한 자세로 한국과 대화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2011년 12월 20일 화요일

평화를 관리하려면 다가가야 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0일자 기사 '평화를 관리하려면 다가가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김종배의 it] 김정일 조의, 싫어도 필요하니까 해야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코미디다. 28살 밖에 안 된 김정은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되는 현실은 난센스다. 우리가 아는 한 김정은은 한 일이 없다. 북한에서 말하는대로 하면 '백두의 혈통', 우리의 일상용어로 하면 '유전자'를 이어받았다는 것 외에는 그가 북한 최고 권력자가 돼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엄밀히 말해 사기업에 불과한 재벌의 2·3세 상속조차 곱게 보지 않는 우리 아닌가. 하물며 2400만 북한 주민의 삶을 짊어져야 하는 북한 최고 권력자 자리를 단지 부모 잘 만나 거머쥐는 모습이 어찌 좋게 보이겠는가. 그건 부조리에 가깝다.

그런데도 원치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 사후의 북한이 급속히 붕괴되는 일은 원치 않는다.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성에 휘말리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연합

이유는 하나다. 한반도 평화 관리가 절대명제요 지상과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 관리만이 국민의 안녕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점증되는 수준을 넘어 붕괴상태로 이어지면 악몽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 김정은 체제의 붕괴가 한반도 전체를 아수라장 같은 혼미 상태로 내몬다.

솔직하게 묻고 답하자. 북한 체제가 붕괴해 수십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이 월남을 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감당할 여력과 의지가 있는가. 군사적 위기가 고조돼 하루하루를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가. 금전적·정서적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는가.

우리의 현실이 이렇다. 북한을 앞에 두고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최고 권력자의 정치기반이 안정되기를 기대하는 게,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감정적·도덕적 접근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감정의 배설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생산성은 없다. 이성적·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북한발 불안요인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지금 조문 논쟁이 한창이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줄기가 아니라 가지다. 본질적인 문제는 남북간 교류다. 민간을 넘어 당국간 교류까지 모색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 4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이 점증될 경우 주변 4강, 특히 미국과 중국이 어떤 전략으로 나올지 가늠하기 힘들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까지 대비한다면 남북간 핫라인을 구축하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미중의 선택에 따라 갈리는 상황을 방지하려면 남북간 교류를 통해 완충제 겸 방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조문은 이를 위한 출발점이다. 남북간 교류를 트기 위한 시작이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발이다. 이희호 씨나 권양숙 씨의 조문을 막을 이유가 없다. 그건 사적 조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북한이 조문단과 조전을 보낸 데 대한 답례 차원이다. 이런 사적 조문을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 차원에서 조의를 표하는 것까지 모색해야 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필요해서 하는 말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사설]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에 섣불리 동참 말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1일자 사설 '[사설]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에 섣불리 동참 말라'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추가적인 경제보복 조처에 서둘러 동참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의회가 강력한 이란 제재 법안을 이번주 안에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되자, 우리 정부도 이에 맞춰 추가제재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국내 수입 원유의 10% 가까이를 공급하는 이란에 대한 제재는 우리 경제와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주권 국가로서 최소한 자존심과 국민 안위를 고려한다면 섣불리 추가제재에 나서선 안 된다.
미 의회가 마련한 이란 제재 법안은 이란의 대외교역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할 경우 다른 나라 금융기관도 미국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고 있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제재 대상이다. 두 은행은 현재 이란과의 교역에서 유일한 결제창구다. 따라서 미국의 이란 경제보복은 국내 기업한테 이란에 진출할 기회를 차단하고 교역관계를 끊게 하는 피해를 가져온다.
우리 정부는 애초 미국 의회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듯하다가 이달 초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조정관이 방문한 뒤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이란 제재와 관련해 “우방국의 빠르고 강력한 통일된 행동을 바란다”며 우리나라의 동참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제재안은 국제사회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이란 제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도 벗어나는 미국만의 치외법권적 조처다. 명분도 약하다. 미국은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보고서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가 더 뚜렷해졌다고 주장하지만, 보고서에는 직접적인 증거 없이 정황에 따른 의혹만 들어 있을 뿐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9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폐쇄하는 등의 제재안을 미국 요구에 따라 서둘러 강행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국내 기업이 큰 피해를 봤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추가제재안을 받아들이려는 것은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이란의 대응조처에 따라 자칫 국내 원유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란다면 맹목적인 대미 추종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세계평화와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한 실용외교를 펴야 할 때다.

2011년 12월 8일 목요일

"오바마 정부의 '중국 견제' 핵심은 석유 수송로 장악'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07일자 기사 '"오바마 정부의 '중국 견제' 핵심은 석유 수송로 장악''을 퍼왔습니다.
[해외시각] "석유로 중국 목을 죄겠다는 미국의 위험한 불장난"

미국이 최근 외교안보적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핵심 사안은 남중국해 문제다. 미국은 인도, 인도네시아,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중국을 둘러싼 국가들과 외교적·군사적 유대를 강화하면서 해양으로 뻗어나오려는 중국을 봉쇄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행보는 남중국해를 장악함으로써 중국의 목줄을 틀어쥐려는 시도라고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대 교수는 주장했다. 에너지 안보 권위자인 클레어 교수는 6일(현지시간) 미국 웹사이트 '톰디스패치' 기고에서 과거에도 미래에도 국제정치의 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석유일 것이라며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움직임은 중국의 석유 수송로 인근의 통제력을 강화하는데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클레어 교수는 이같은 미국의 전략이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 아시아 지역에서 신냉전을 촉발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미국의 에너지 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환경 파괴 등의 이유를 들어 우려를 표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지난 1월 백악관에서 공동기자회견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중국에 대한 정책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려 하는가? 중동 지역에서의 재앙과도 같았던 두 개 전쟁을 끝내며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에서 새로운 냉전을 촉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석유는 다시 한 번 지구적 패권의 열쇠로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호주 의회 연설에서 대담하면서도 지극히 위험한 지정학적 견해를 드러낸 것은 미국의 새로운 정책을 나타내는 신호였다. 지난 수십 년간 중동에 집중돼 왔던 미국의 힘의 초점이 아태 지역으로 옮겨지리라는 것이다. 오바마는 "나의 방침은 명확하다"면서 "우리는 미래에도 이 지역에서의 강력한 군사력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 관리들이 이 새로운 정책에 대해 특별히 중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바마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제부터 미국의 군사전략 우선순위는 대테러전략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봉쇄가 될 것이다. 어떤 위험이나 대가가 따르더라도 말이다.

지구의 새로운 중심

미 고위 당국자들은 현재 아태 지역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 집중하고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중국이 아태 지역 내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기회를 가졌다고 말한다.

2차 대전 이후로 미국은 처음으로 아태 지역에서의 지배적인 경제 행위자가 아니게 됐고, 만약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려면 아태 지역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회복하고 중국의 영향력을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것이 향후 몇십 년 간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전략에 발맞춰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힘을 강화하고 중국을 수세에 처하게 한 일련의 움직임을 취했다. 호주 다윈기지에 미군 2500명을 파견하기로 한 것이나 지난달 18일 '마닐라 선언'을 통해 필리핀과 긴밀한 군사적 유대관계를 맺기로 한 것 등이 이에 포함된다.

또 백악관은 인도네시아에 F-16 전투기 24대를 판매한다고 발표했고 클린턴 장관은 미국 국무장관으로서는 56년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오랜 동맹국이자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던 버마를 방문했다. 클린턴은 또한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과의 외교‧군사적 유대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중국을 둘러싸고 있거나 중국이 천연자원을 수입하고 자국 제품을 수출하는 해상 무역로상에 있다.

오바마 행정부 관리들의 말처럼, 이런 움직임은 중국이 역내에서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미국의 외교‧군사적 우위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다. 클린턴은 최근 기고에서 경제적으로 약화된 미국은 더 이상 다수의 지역에서 동시적인 우세를 유지할 수 없음을 암시했다. 미국은 반드시 전장(戰場)을 신중하게 골라야 하며 제한된 자원을 투입해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권력질서에서 아시아가 갖는 중심성을 감안하면 이는 곧 자원을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클린턴은 "지난 10년 간 우리는 막대한 자원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었다"며 "앞으로의 10년 동안 우리의 리더십과 안보, 이익을 유지하는데 가장 좋은 위치를 점하려면 어디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지 스마트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 따라서 앞으로 10년 간 미국의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아태지역에 투자할 외교적 경제적 전략적 자원을 실질적으로 계속 증가시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이는 위험한 도발이다. 최근 발표된 조치들은 중국을 둘러싼 해상 군사력 증대와 중국 인접국들과의 군사 유대 강화 등을 수반한다. 이는 중국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미국의 침입에 대한 더 적극적인 군사 대응을 선호하는 중국 지도자(특히 군사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다.

미국의 시도가 어떤 형태를 띠든 한 가지는 명백하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 중국의 지도자들은 자국 주변에서 미국이 영향력을 강화하는데 대해 중국이 약하고 우유부단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이 2011년 아시아에서 신냉전의 씨앗을 뿌린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군사력 집중과 잠재적인 중국의 반격 가능성은 이미 미국과 아시아 등 언론에서 토론 주제가 됐다. 그러나 (미중 간) 초기 투쟁의 중대한 한 측면은 전혀 주목받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갑작스런 행보가 세계의 최신 에너지 질서에 미칠 영향의 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관측처럼 이는 미국에는 우위를, 중국에는 취약성 증대를 가져올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 질서

수십 년 동안 미국은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수입된 석유에 심하게 의존해 왔다. 반면 중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2001년 미국은 매일 196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지만 자국 내 생산량은 일일 900만 배럴에 불과했다. 매일 1060만 배럴을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큰 근심거리였다. 미국은 중동의 석유 생산국과 긴밀하고 군사화된 유대를 맺는 방식으로 대응했고 미국의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때때로 전쟁도 벌였다.

반면 중국은 2001년 석유 소비량이 하루에 500만 배럴에 불과했고 국내 생산량은 일일 330만 배럴이었다. 때문에 중국은 해외 석유 공급자들의 안정성에 크게 목을 매지 않았고 오랫동안 복잡한 외교정책을 통해 개입해 온 미국의 전철을 밟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바마 행정부의 결론처럼 판이 바뀌었다. 중국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중산층이 출현하면서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미 자동차를 샀다) 중국의 석유 소비량은 급등했다. 중국의 일일 석유 소비량은 2008년 780만 배럴이었으나 2020년에는 1360만 배럴로, 2035년에는 1690만 배럴로 늘 것으로 미 에너지부는 추산했다. 반면 중국 국내의 석유 생산량은 2008년 하루 400만 배럴에서 2035년 530만 배럴로밖에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2008년 하루에 380만 배럴이었던 중국의 일일 석유 수입량은 2035년 1160만 배럴까지 늘어 미국을 추월하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에너지 상황은 좀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알래스카나 멕시코만 인근 의 유전, 몬태나, 노스다코타, 텍사스의 '셰일 오일' 등 미국 국내에서 이뤄질 소위 '힘든 기름'(tough oil. 깊숙이 묻혀 있거나 지질학적으로 시추가 어렵다는 등의 사정으로 채취 비용이 많이 드는 원유 : 옮긴이)의 생산량 증대에 힘입어, 전체 소비량이 늘어나더라도 수입량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중동이나 아프리카보다 서반구의 석유 생산량이 더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 역시 캐나다, 브라질에서 더 많은 '힘든 기름' 탐사가 이뤄졌고 콜롬비아의 상황이 안정화되는데 따른 것이다. 에너지부는 미국, 캐나다, 브라질의 석유 생산량이 2035년이면 일일 1060만 배럴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증가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설치한 해상 구조물. ⓒ로이터=뉴시스

해양 수송로는 누구의 것인가?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미국에 이익이 될 것이며 중국은 해양 수송로에서 일어나는 예상 밖의 변화에 더 취약하게 될 것이다. 즉 미국은 오랫동안 자국 외교정책을 지배해 왔으며 스스로를 황폐화시킨 비싼 전쟁으로 자신을 이끌었던 중동 산유국과의 정치적 군사적 유대를 점차 느슨하게 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게 됐다.

오바마가 호주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은 진실로 스스로의 군사적 초점을 재조정해야 할 위치에 와 있다. 오바마는 "값비싼 전쟁을 치른 지난 10년이 지난 후, 미국은 아태 지역의 광대한 잠재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모든 것은 중국에는 잠재적인 전략적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석유 수입량 중 일부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의 송유관을 거쳐 오지만 중동, 아프리카, 남미로부터 유조선에 실려 오는 양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이 유조선을 거쳐 오는 해양 수송로는 미국 해군이 경비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으로 들어오는 거의 모든 유조선은 오바마 행정부가 해군력에 의한 효율적 통제 방안을 찾고 있는 수역, 즉 남중국해를 가로지른다.

오바마 행정부는 남중국해와 인접 해역의 지배권을 확보함으로써 21세기 에너지 질서의 주도권을 획득하려 하고 있는 것이 명확하다. 이는 20세기에 핵무기가 수행했던 협박과 같은 역할이다. 즉 '우리를 압박한다면 에너지 공급로를 차단함으로써 너희의 경제를 마비시킬 것이다'라는 것이 이 정책의 함의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절대 공식 석상에서 나오지는 않지만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이런 노선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중국이 이같은 위험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도 많다. 예를 들어 중국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카스피해에서부터 드넓은 아시아 전체를 가로지르는 송유관(또는 가스관)을 건설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오바마의 새로운 전략의 청사진이 명확해질수록 이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이 자신들의 에너지 생명줄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리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시도에는 경제적, 외교적 조치가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지역 국가들과 앙골라,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주요 석유 공급국들의 환심을 사려 할 것이다.

그러나 오해해서는 곤란한 것은, 군사적 속성을 띠는 조치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함대에 비하면 여전히 작고 초보적인 수준이겠지만 중국이 해군력 강화에 나서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또한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상하이협력기구(SCO) 회원국들과의 군사적 유대 강화도 이뤄질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냉전 시기와 같은 군비 경쟁에 불을 지핀 것일 수도 있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떤 국가든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긴장을 더 격화시키고 우발적인 사태가 벌어질 위험을 높일 수 있다. 2009년 3월 대(對)잠수함 작전 중이던 미 군함 임페커블호를 중국 해군 함대가 에워싸고 거의 교전 직전 상황까지 갔던 사태와 같이 미국, 중국과 동맹국 군함이 개입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군함들이 더 도발적인 태세로 이 해역을 돌아다니게 된다면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더 극단적인 결과가 일어날 위험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군사력 우선 정책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과 비용은 아시아 안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려 하는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극지 탐사, 심해 탐사, 수리학적 파쇄 같은 환경 파괴 우려가 높은 기술들을 승인해 주고 있다. 지난해 4월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호라이즌호 폭발 같은 환경 재앙이 미 본토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가장 더러운 에너지'로 불리는 캐나다 '타르 샌드'(tar sand, 모래와 기름이 섞인 물질에서 추출한 석유 : 옮긴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수록 온실 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등 환경 파괴 위험이 커질 것이다. 브라질 인근 등 대서양 심해에서의 석유 생산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모든 상황은 명백히 우리가 환경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더 위험한 세계에 살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동에서 벌어진 재앙과도 같은 전쟁에서 몸을 빼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런 군사적 지배와 도발을 강조하는 전략을 재차 선택한 것은 분명 반작용을 불러올 것이다. 이는 신중한 태도도 아니며 장기적으로 보아 세계적 경제 협력이 중요한 이 시기에 미국의 국익을 증진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외부 에너지 의존성을 줄이기 위해 환경을 희생한다는 것 또한 말이 안 된다.

아시아에서의 신냉전과 서반구에 걸친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지구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대립과 환경적 재앙을 불러올 독약과도 같은 정책들은 아직 되돌릴 수 있을 때에 재고돼야 한다. 이런 정책이 훌륭한 통치행위의 표본이 아니라 '바보들의 행진'에 불과하다는 것은 굳이 예언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곽재훈 기자(번역)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


이글은 레디앙 2011-11-28일자 기사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를 퍼왔습니다.
[한미FTA와 전력]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최근 한국전력(이하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의결했다. 한전 측은 이에 대해 지난 8월 전기요금을 4.9% 인상했으나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적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은 통상 한전 이사회에서 적정한 인상안을 마련해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승인 신청을 하고, 장관은 대통령에게 추인을 받아야 한다.



소액주주 "전기요금 적게 올려 회사에 손해"
한전의 이번 행동은 지난 8월 김쌍수 전 한전 사장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고려한 조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전 소액주주 14명은 지난 8월 전기요금 현실화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김쌍수 전 사장을 상대로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연료비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한전 주주소송은 다른 소액주주 소송과 달리 명백한 불법행위나 ‘도덕적 해이’로 송사에 휘말린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 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한국정책금융공사와 정부의 지분이 51%에 이르는 전형적인 공기업이고,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 대상이 정부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한미FTA와 전기요금이 연관될 수 있는 실마리가 관찰된다. 한미FTA는 공공복지정책보다 투자자 보호를 중시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투자자유화 정책을 그대로 도입하는 협정이다. 특히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협정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해결 절차다.
ISD의 핵심쟁점은 ‘간접수용’ 조항인데, 이는 투자자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정부의 조치를 ‘수용’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는 자신의 자산을 수용당하지 않더라도 단지 정부의 규제에 의해 자산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전에 투자한 미국인 주주 한국정부 제소?
이는 한미FTA가 발효된 후 한전 주식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들이 전기요금 억제 정책을 펴는 우리나라 정부에 제소를 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전은 정부와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정부투자기관으로서, 국내 판매전력의 100%를 담당하고 있다. 발전의 경우에도 자회사를 통해 국내 생산전력의 95%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전력수급뿐만 아니라 국가공공정책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한전은 외국인 보유지분을 4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미국 투자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래를 통해 주식을 보유하고 우리나라 전기요금 정책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등 발전자회사 6곳 외에도 엔지니어링·발전설비·정비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 5곳을 합쳐 10개가 넘는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자회사 가운데 상장업체로는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는 한전기술, 한전KPS와 지분 29%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는 한전산업 3개사가 있다.
이 자회사들의 주식가격은 한전의 영업실적에 따라 출렁거린다. 그리고 한전 영업실적은 대부분 전력을 구입해 팔아 얻는 수입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에 따라 한전뿐만 아니라 한전의 자회사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이 한전의 자회사들이라고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최근 한전은 수천억 원의 영업적자를 이유로 자회사들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일부 인터넷 진보언론을 통해 ‘핵 폐기’를 선언한 독일이 ISD소송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웨덴 국영 에너지기업인 바텐팔이 자신들이 소유한 독일 함부르크 부근 브룬스뷔텔 원전(66.7%), 크뤼멜 원전(50%)을 폐쇄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ISD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탈핵’을 선언할 경우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우리도 탈핵 선언하면 제소된다?
한전이 원전사업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전이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인 한수원이 전 원전을 보유하고 운영과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결국 한전의 향후 지배구조 변화와 운영방식 변경에 따라 얼마든지 국내 원전의 소유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만에 하나, 한전이 민영화라도 하게 될 경우 통상적이지만 엄청난 폐로비용, 핵폐기물 저장 비용 등 외에 독일의 사례처럼 한국사회도 ‘탈핵’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엄청난 비용을 추가적으로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한전뿐만 아니라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상장공기업들도 소송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스공사는 한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요금을 통제하고 있어 부대사업이 없으면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를 수십년 째 유지하고 있다.
원가 미반영분을 추후에 정산받고 있는 지역난방공사도 계절별 수익구조가 다른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주들의 제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건 물론 한미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의 이야기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더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알뜰주유소가 자칫 한미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만일 SK에너지(외국인지분 31%)나, GS칼텍스(미국계 석유자본 셰브론 50% 지분보유)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나 기업이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SK주유소나 GS칼텍스 주유소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물가와 선거를 의식한 ‘저렴한 전기요금’과 일부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에너지 가격 구조의 왜곡을 초래했다. 싼 전기요금은 전기 과소비를 부르고, 높은 환율에 세금이 절반인 석유 가격 구조는 국제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괴상’한 흐름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물가나 선거 등을 감안할 때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할 수도 없고, 유류세를 줄여 세수가 감소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에너지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못난 정부’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에너지가격 등 공공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에너지복지’를 실현할 주체이고, 전기와 같은 에너지는 생활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전기 등 에너지가격을 미국인 투자자가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한미FTA는 이 같은 우려를 가능하게 만드는 협정이다. 한미FTA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체계를 바로 잡고 전기요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가정용 전력은 비싸고 산업용은 저렴하게 공급하는 경제주체 간 교차보조금 제도를 없애고 누진율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난 9월 15일 초유의 정전대란을 겪었다. 또한 올 겨울 한파가 닥칠 경우 또 다시 전력피크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넘겨주는 정부에게 희망은 없다.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권승문 /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

2011년 11월 27일 일요일

한-미 FTA 앞, 국가와 헌법을 묻다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11-11일자 기사 '한-미 FTA 앞, 국가와 헌법을 묻다'를 퍼왔습니다.

1. “차종에 대한 비메탄유기가스의 배출량은 캘리포니아 규정집 제13편제1961(b)(1)(A)조에 규정된 것보다 더 엄격하지 아니할 것이다.”(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부속서 9-나 자동차 작업반 부속서한) 시민이 물었다. “환경 기준조차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정부가 답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채택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기준을 도입하며, 우리 배출가스 기준을 캘리포니아주가 정하는 것은 아니다.”(지난 11월 2일 외교통상부 대변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규정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한-미 FTA의 맨얼굴이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은 조약이다. 헌법상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헌법 제6조). 미국은 다른 나라와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을 체결하기도 한다. 한-미 FTA가 그것이다. 그런데 미 의회는 행정협정 중에서 통상협정(Trade Agreement)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행법을 만들어 내용을 규정함과 동시에 효력을 제한한다. 과연 한-미 FTA는 미국의 법과 제도, 행정 조치와 실무 관행을 어느 정도 변화시키는 협정일까? 또박또박 읽어야 한다.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의 핵심은 이렇다. “한-미 FTA 제1장(최초 규정 및 정의), 제11장(투자), 제21장(투명성), 제23장(예외) 및 제24장(최종규정)을 이행하는 데에 행정 조치의 변경은 필요 없다”, “제5장(의약품 및 의료기기)을 이행하는 데에 법, 행정부 규정 및 실무 변경은 필요 없다”, “제7장(관세행정 및 무역 원활화), 제9장(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제19장(노동), 제20장(환경)을 이행하는 데에 법의 변경은 필요 없다”, “제10장(무역구제)을 이행하는 데에 미국의 반덤핑 또는 상계 관세 법률과 규정을 바꿀 필요가 없다”, “제3장(농업), 제8장(위생 및 식물검역 조치), 제12장(국경 간 서비스 무역), 제13장(금융서비스), 제14장(통신), 제15장(전자상거래), 제16장(경쟁), 제18장(지적재산권)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 조치의 변경은 필요 없다”….
미국은 바뀔 거라곤 없다.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꿀 생각조차 없었다. 가장 고전적 의미의 순수한 ‘자유무역협정’ 그대로다. 그래서 바뀌는 거라곤 ‘무역관세’와 ‘수수료’다. 관세와 수수료를 인하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역관세와 수수료를 인하해야 한다. 실무 관행을 바꿔야 한다. 행정 조치를 바꿔야 한다. 경제질서를 우회전해야 한다. 이미 10개 이상의 법을 바꿨고, 대기 중인 법만도 20여 개다.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 종국엔 국민투표에 의하지 않고 헌법을 바꿔야 한다. 해석 개헌이 아니라, 헌법 아래 있는 조약이 헌법을 치받아, 헌법을 바꿔버리는 꼴이다.
미국은 그대로, 한국만 뒤집어진다
2. 목표가 달랐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한-미 FTA의 목표를 ‘관세협상이 아니라 규제완화, 민영화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것’과 ‘비관세장벽 제거’에 두었다. 당연히 미 이행법 제102조는 “미국의 어떠한 법령에 불합치하는 협정의 규정 또는 어떠한 자나 상황에 대한 동 규정의 적용은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정했다.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통상 목표에 호응했다.
참여정부 시절에 협상 책임자였고 지금은 삼성전자 사장으로 가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을 되새겨보자. “한-미 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한-미 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2006). ‘감세, 규제완화, 작은 정부’를 내용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정부,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시장만능주의에 기반한 미국식 국가 모델을 우리 국가 모델로 채택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시민주권의 동의조차 없이 통상 관료와 행정부 책임자의 정치적 결단으로 국가 모델을 직수입하는 역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시민주권에 대한 심각한 모반이었다.


<절망의 무게>, 2011-정용일

삼정전자 사장님의 헌법학
그로부터 2년 뒤 미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물론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당시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전은 철저히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 초고금리 정책이었다. 재정적으론 긴축을 요구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금융기관은 통폐합되고, 당연히 정리해고가 실시됐다. 그럼에도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초고금리가 아니라 ‘초저금리’였다. 재정 적자의 나라 미국에서 강력한 재정 투입이 있었다. 대규모 인위적 경기부양에 나섰다. ‘대마불사’(大馬不死)는 정치적 현실이 되었다. 금융기관을 살렸고, 자동차 회사를 국가가 먹여살렸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최소 개입 원칙은 온데간데없었다.
돌이켜보면 한-미 FTA 협상을 시작한 2006년이나 협상을 강압적으로 비준하려는 2011년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해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같은 점이라면, 미국식 경제 모델과 국가 모델을 역사의 완성태로 이해하려는 점이다.
3. 한국과 미국, 두 나라 간 헌법의 차이가 국가 모델의 차이다. 미국은 계약의 자유를 근본적 권리로서 보호하며 사적 소유권 보호가 철저하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강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협정에서 지적재산권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다. 지적재산권을 규정한 제18.10조 27항의 일부다. “(지적재산권) 침해자의 금전적인 동기를 제거하려는 정책에 합치되게, 장래의 침해를 억지하기에 충분한 벌금형뿐만 아니라 징역형 선고를 포함하는 처벌. 각 당사국은 나아가 사법 당국이 형사적 침해가 상업적 이익, 사적인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발생하는 때에, 실제 형기의 부과를 포함하여 장래의 침해를 억지하기에 충분한 수준에서 처벌하도록 권장한다.”
책도둑은 글로벌 파렴치범
지적재산권은 보호해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으로(물론 현실과 합치된다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지만)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존재한다. 미국은 이런 사회 문화조차 바꾸고 싶어 한다. 수단 하나로 형사 절차에 깊숙이 개입하고 싶어 했다. 형의 종류를 형법도 아닌 조약에 규정했다. 입법 재량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사법 당국에는 강력한 처벌을 주문했다. 우리 대법원은 조약에 이런 내용까지 담긴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동의했을까? 통상교섭본부가 이런 부분까지 약속하도록 시민주권은 미리 위임했던 걸까? 사법부의 양형 재량까지 한-미 FTA가 정해주었다. 미국식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다.
4. 물론 우리도 계약과 시장에 기반한 사회다. ‘소유권 중심 사회’라는 것 또한 인정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재산권은 보장하되,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제23조 2항)고 정해두었다. 시민의 기본권은 인정하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제37조 2항 전단)고 유보해두었다.
한국과 미국의 헌법 모델에서 결정적 차이는 바로 이 시대의 우상, ‘경제’에 있다. 미국 헌법에는 경제 조항이 없다. ‘정부 편’과 ‘기본권 편’만으로 구성된 것이 미국 헌법이다. 한국에 있는 ‘경제질서 편’이 없다. 계약 조항과 적정 절차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헌법 의식이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경제질서 편을 두었고, 그곳에 9개 조문을 두었다. 그중에서 결정적 의미는 헌법 제119조 2항에 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경제질서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헌재 1996.4.25 92헌바47)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이 정한 경제질서, 즉 이런 헌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 모델은 ‘자유시장경제 질서’와 ‘사회적 시장경제 질서’의 조화에 있다. ‘공익’과 ‘사익’의 조화에 있다. ‘개인’과 ‘나라’의 균형에 있다. 특히 경제 영역에서만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 제조업과 농·어업의 조화 등 공익적 가치를 추구한다.
어쩌면 한-미 FTA 최고의 수혜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대변하는 재벌이 될 것이다. ‘시장만능주의’를 추구해온 전경련에 헌법 제119조에서 127조에 이르는 경제 편은 최악의 ‘전봇대’였기 때문이다. 한-미 FTA에 더 이상 농·어민 보호는 없다. 중소기업 보호도 없다. 시민주권에 대한 책임성과 반응성의 원리도 없다. 오로지 투자자의, 투자자에 의한, 투자자를 위한 국가만이 존재한다.
그 중심에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있다. 미국 뉴욕 월가의 초국적 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경우를 예상해보자(미국 자본을 미국인들만의 자본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협소한 이해다). 이들은 △우리 중앙정부나 시도 정부가 투자 인가나 투자 계약을 위반한 경우 △직접 혹은 간접 수용으로 인해 자신들의 투자에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국제중재청구를 제기할 수 있다. 투자 계약은 미국이 맺은 FTA 중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하다. 투자 계약은 한마디로 공공서비스 민영화 계약이다. 사회적 인프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계약이다.
통째로 삭제되는 헌법 ‘경제편’
이를 ‘투자 계약’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화장했다. “발전 또는 배전, 용수 처리 또는 분배 또는 통신과 같이 당사국을 대신하여 공중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권리 또는 정부의 배타적 또는 현저한 이용과 혜택을 위한 것이 아닌 도로, 교량, 운하, 댐 또는 배관의 건설과 같은 기반시설 사업을 수행할 권리”(제11.28조). 즉 상하수도 민영화, 전력 민영화 계약이고 대중이 이용하는 도로나 댐 등에 대한 건설 계약이다. 미국 투자자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했고,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계약을 위반할 경우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도록 규정했다.
현 정부가 인천공항 민영화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바뀐 새 정부가 이를 취소했다고 하자. 곧바로 소송감이다. 얻은 건 투자자의 민영화 참여권이요, 잃은 건 공공정책의 재량성이다. 후진할 수 없다. 시민을 위해, 공공복리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전진이 아니라 후진으로 인정된다. 개방과 자유화를 향해, 투자자를 위한 기업국가만을 목표로 앞으로 내달려야 한다. 브레이크 없는 미국산 자동차에 동승한 형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투자자에게 있다
5. 간접 수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란이 거세다. 미국 판례법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법리다. 세상 어느 곳도 헌법에 간접 수용을 명문화한 나라는 없다. 오로지 재산권의 절대적 보장과 계약에 기초한 미국 사회라서 가능한 법리다. 문제는 공공정책의 재량성이다. 공공정책의 무기력화다. 물론 정부는 재량을 충분히 확보해두었다고 방어한다. 일부는 옳고, 대부분 틀렸다.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예컨대 저소득층 가계의 주거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통한)와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되고 적용되는 당사국의 비차별적인 규제 행위는 간접 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부속서 11-나 수용) 담배에 대해 가격규제 정책이 강화될 수 있다. 한국 정부에는 공중보건이지만 미국 투자자에게는 간접 수용이다.
조약에 대한 해석은 각자 유리하게 하는 법이다. 모든 공공정책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이 공중보건 등 4가지 정책에 한정될 수도 없다. 달리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만큼 정부 정책이 소송 대상이 될 여지도 충분하다. 정책의 시민영향성을 고려하기보단 외국 투자자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왜 시장에 대한 조정 권한과 공공정책에 대한 결정 역량을 스스로 축소하길 바랄까. 왜 “경제가 사회적 관계에 포함되는 대신 사회적 관계가 경제 체계 안에 포함돼버리는”(칼 폴라니) 상황을 희망하는 것일까. 왜 시민주권보다 투자자 재산권을 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의 존엄보단 계약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초시장사회, 초시장국가 모델을 왜 구태여 탐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흐릿한 먼 곳을 무턱대고 쳐다보지 말고 우리가 서 있는 주변의 복잡한 상황을 잠시 동안 조용히 응시하자.”(토머스 칼라일)

글. 최재천 (변호사) 헌법학 박사, 전 국회의원(17대). 저서로 (2006), (2009) 등이 있다.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사설]한·미FTA 무효화 투쟁 정당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3일자 사설 '[사설]한·미FTA 무효화 투쟁 정당하다'를 퍼왔습니다.
야 5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 그동안 한·미FTA를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어제 비준 무효화를 선언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그제 한나라당이 한·미FTA라는 국가 간 중대 조약의 비준을 날치기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폭거로서, 야권과 시민사회가 비준 무효화를 위해 즉각 나선 것은 정당한 행동이다.

한·미FTA 비준이 무효화돼야 하는 이유는 날치기 비준 처리로 인한 의회민주주의 파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2006년 6월 협상을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밀실 협상’과 ‘졸속 대응’으로 일관한 보기드문 조약이다. 협상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는 철저히 배제됐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갈린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제대로 된 의견수렴도 없었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는 무시됐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비준 처리는 절차적 정당성이 실종된 한·미FTA의 예고된 수순이다

절차적 정당성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미FTA 그 자체에 있다. 한·미FTA는 단순히 교역을 늘리기 위한 협정이 아니라 우리의 법과 제도, 관행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미국화’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효과는 정부 주장보다 더 작을 수도 있고, 반대 진영의 주장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우리가 우려하고 경계하는 것은 한·미FTA를 통해 이식될 신자유주의, 즉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가 초래할 병폐다.
규제 완화와 시장자율, 기업 제일주의와 개방을 통한 무한경쟁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양극화의 문제는 이미 세계의 고민거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부작용을 똑똑히 목도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화=선진화’라는 맹목적 인식에 사로잡혀 한·미FTA를 ‘절대선(善)’으로 떠받들고 밀어붙이고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온 한·미FTA의 불합리·불평등 조항들은 국내법과 제도를 비롯한 경제·사회 체질을 미국화하는 도구다. 미국 법령과 협정이 충돌하는 경우 미국 법령이 우선하지만, 협정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은 모두 무효가 되는 현실이 그 하나의 사례다. FTA를 위해 14개 법을 뜯어고쳤다. 사법주권 침해 우려뿐이 아니다. 시장만능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갈수록 정부의 역할, 정책의 공공성이 절실해지는 상황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는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취약산업을 보호할 국가정책을 위협한다. 정부는 이미 FTA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중소상인보호를 위한 유통법·상생법을 반대한 바 있다. 한번 개방하면 그 폭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한 역진방지 장치 등도 업종간·계층간 양극화를 더욱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가뜩이나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국내 현실에서 농어민·중소상인 등 개방 파고에 휩쓸릴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활동이나 공공정책의 자율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으로 피해보상하고 넘어가는 ‘사실상 농업 포기’는 또 다른 문제다.

4년 넘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는 끝내 독소조항 한 군데 손대지 못한 채 날치기로 비준 처리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이제 더 이상 갈등을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며 한·미FTA 비준으로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날치기 비준은 끝이 아니다. 무효화의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사설] FTA 피해도 제대로 모른 채 무슨 대책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23일자 사설 '[사설] FTA 피해도 제대로 모른 채 무슨 대책인가'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뒤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고 한다. 앞서 외교통상부도 대변인 성명에서 “정부는 피해 우려 분야에 대한 보완대책을 차질없이 시행하는 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시행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나라당의 날치기 비준동의에 이어 국내 후속 대책마저 졸속으로 시행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가 잠정적 목표로 잡은 협정 발효일은 내년 1월1일이다. 협정이 이대로 발효되면 당장 농어민과 소상공인,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제약업계가 타격을 받게 된다. 2007년 6월 말 두 나라 정부가 협상 종료와 함께 체결을 선언할 때부터 예고된 충격이다. 그러나 4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의 피해대책은 막연하고 실효성도 없어 보인다.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정부의 국내 보완대책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농어민 지원대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8월에 정부가 발표한 지원대책은 10년 동안 22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 피해 농민을 구제하고 농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골자다. 이는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발효 때 만든 대책을 2007년 참여정부에서 한-미 협정 체결 때 재탕하고, 이명박 정부가 다시 ‘삼탕’한 것일 뿐이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해온 농업육성 사업까지 협정 피해 대책으로 포장한 경우도 있다. 이러니 큰 충격을 코앞에 둔 농민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대책에 위로는커녕 절망감만 느끼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국회 비준동의를 밀어붙이는 데 급급해 정확한 국내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더욱이 기대효과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부풀리고 불 보듯 뻔한 피해는 되도록 줄여 여론을 호도해왔다. 한-미 협정에 대한 과장 논리의 압권은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자주 거론하고 일부 언론이 확대재생산하는 ‘경제영토 확장론’이다. 역사의식과 현실 인식 능력이 지극히 의심스런 논리다. 경제강국들과 무분별하게 경제통합을 추진하다 파국을 맞은 사례가 세계 곳곳에 널려 있는데도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대격변기를 맞아 객관적이고 냉철한 상황판단 능력이 없으면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지금 정부의 모습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