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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8일 일요일

기업, 주주에게만 맡기지 말라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3-01일자 기사 '기업, 주주에게만 맡기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Ⅰ] 변화 필요한 주주자본주의 - ① 이해관계자 기업 모델 대안으로 거론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실패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프랑스의 가 최신호에서 도발적인 선언을 했다. 주주의 권한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소개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끔찍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금융계가 위험천만한 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결국 기업의 단기적인 성장주의를 부추겨 오히려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 ‘불임 기업’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지배구조 이론의 참담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과 소비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의 주장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다. 재벌에 의한 전횡이 시장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인 상황에서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지배구조 이론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전횡을 막으면서 소외된 이해관계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_편집자
환경비용 등 고려 대상 늘어… 주주들만의 자본주의 벗어나야 ‘미래 비전’ 가능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기업 활동이 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새로운 종류의 기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수십 년째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이론이 대기업의 경영 원칙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경영자는 기업의 법적 주인인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논리대로라면 기업지배구조 이론에 따라 경영자를 압박하면 만인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다. 경영자가 기업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새로운 수요 변화에 맞춰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다. 특히 금융계가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따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끔찍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단순히 금융계가 위험천만한 투자에 나서도록 부채질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 광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행히도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생산지 이전은 산업국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기업의 단기주의 경영전략도 부추겼다. 기업의 근시안적 경영은 해당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지만, 그런 경영원칙을 따르지 않는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의 기업이 성공하는 데 유리한 토양을 제공했다.

주주 이익 극대화의 함정
1970년대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대기업 경영자는 협력적 방식으로 부를 생산하는 관료조직의 수장이자 일원으로 자리했다. 무엇보다 업무능력과 통솔력이 있는 자가 경영자로 선출됐다. 경영자는 장기적 비전에 따라 기업을 운영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평론가 제임스 버넘이 1941년 저서 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기업 경영에서 무엇보다 재생산이 우선시될 정도였다. 버넘의 이론은 20년 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와,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에 의해 계승됐다.
이미 1932년부터 미국의 아돌프 벌과 가디너 민즈는 에서 거대 산업체를 지휘하는 경영자가 실질적 경제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주가 여러 명으로 분산되고, 특히 경영자의 전문적 역할이 중시되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얼마 못 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됐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책을 근거로, 경영자가 그저 주주의 완전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임자나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주주의 권한이 강화됨과 동시에, 연기금이나 기타 기관투자자들의 세력도 함께 확대됐다. 가계 자산에서 금융 자산의 비중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영광의 30년’(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의 경제호황기)이라 불리는 호황기 동안 산업국에서는 임금노동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노동자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노동자 역시 저축금을 기반으로 수익을 챙겼다. 노동자가 맡긴 종잣돈은 점차 유가증권 등의 형태로 투자됐다. 일반 법인이 직접 관리하던 노동자의 예금은 점차 전문기관의 손에 운용되기 시작했다. 이 전문기관들은 무엇보다 주주의 수익 증대에 역점을 두라고 경영자를 압박했다.
이렇게 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경영자는 밥그릇을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좀더 생산성 있는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상당한 시간을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보내야 했다. 동시에 이런 변화 덕분에 경영자 자신도 배를 불릴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 증대’라는 미명 아래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자신 역시 그에 비례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챙겼다.
그렇다고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지닌 최악의 모순이 비단 경제침체기에도 경영자의 보수가 인상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리라.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주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자산관리자뿐 아니라 경영자에게도 자신의 어마어마한 소득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주주 이익 수호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면서 1980년대부터 기업은 바야흐로 ‘핵심사업 집중화’ 전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복합기업(Conglomerate·서로 별 연관이 없는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그룹)과 수직통합형 기업(Vertical Integration·한 기업이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 단계에 진출하는 것)에 다양한 사업부문을 인수해 발전시키기보다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바라는 다른 경쟁사에 이문을 남기고 팔 수 있는 부문을 매각하도록 권했다.
이처럼 사업영역을 전문화하면서 기업은 핵심부문의 몸집을 불리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취약해지는 역효과도 일어났다. 자산 증식에만 목매는 근시안적 경영은 총체적 경제성장이나 혁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많은 기업이 자사가 가장 잘하는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그로 인해 일부 자회사나 사업부문을 접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일정 시기에는 다소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회사나 사업부문도 한 기업의 노하우나 역량의 폭을 넓혀 결국 미래 성장 잠재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랬다면 기술 변화가 급격한 시기에도 기업은 좀더 다양한 경영전략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지배구조’가 인기 없는 까닭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맬서스주의적인 축소 지향 경향을 띠는 탓인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신흥국에서 이 이론은 좀처럼 인기가 없다.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신흥국의 기업들은 ‘경영자 중심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에 입각한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내적 성장에 역점을 두고 사업 다각화나 수직 통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재벌’이다. 비단 신흥국 기업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유럽 산업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기업 중에도 여전히 주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장기적 시각의 경영전략을 펼치거나 다양한 상품군을 유지하면서 주주의 요구까지 충족한 기업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생고뱅과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더욱이 GE는 금융부문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기업이어서 더욱 놀랍다.
어쨌든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적어도 주주의 수익을 늘리는 데는 기여하지 않았을까? 사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먼저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임금노동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의 붐이 일어나면서 노동자는 고용불안의 제물로 전락했다.
여기에 저성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대량실업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위를 더욱 약화시켰다. 경제호황기 동안 노동자에게 더 많은 안전망을 제공하는 사회적 협약이 반드시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주주는 배당금 형태의 수익 배분 비중이 줄어들었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며 성장의 파이를 함께 나눠먹어야 했다. 동시에 수익 가운데 일부가 주주에게 배분되지 않고 기업에 재투자된 덕분에 장기적으로 주주의 수익이 더욱 배가됐다. 반면 오늘날 기업은 매번 막대한 규모의 배당금 배분에 나서야 하는 까닭에 정작 투자나 발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에는 비교적 대출금리가 낮고 물가상승률이 높은 탓에 은행의 자본이 대개 금융 외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반면 오늘날에는 모든 자본이 금융권으로 쏠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단기 수익을 올릴 별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막대한 현금을 쏟아붓고 있다.
한 예로 2010년 프랑스 CAC40 상장기업이 자사주 매입에 지출한 금액은 무려 59억유로(약 8조7252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기업은 어떻게 부를 창출할지 몰라 그저 파이를 나눌 입이라도 줄여보겠다며 자기자본을 잠식하고 있다. 훨씬 더 맬서스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토록 생각이 짧은 경영진에게 어쩌자고 후한 보수를 챙겨주는 것일까?
하루빨리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광의 30년’ 시대의 기업 경영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적합한 방식이었다. 당시 유럽은 오늘날 신흥국과 같이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고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구가했다. 

미국 뉴욕의 주식시장에서 미국 기업 메릴린치 직원들이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경제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AP.

이해관계자 기업 모델로 가야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측정하고 환경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새로운 세상에 적합한 좀더 장기적인 비전에 입각한 시장경제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스스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 외에 새로운 규범과 규칙을 부과해야 한다.
주주의 이윤 증대를 강요하는 독재적인 경영과 단절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모델을 창안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뿐 아니라 납품업체, 고객, 토지 소유자까지) 위험부담을 나눠가져서, 장기적으로 기업이 잘 운영되는 게 이로운 모든 이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 필리프 프레모 Philippe Fremaux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이명박 대통령이 뿌린 진짜 '재앙의 씨앗'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9일자 기사 '이명박 대통령이 뿌린 진짜 '재앙의 씨앗'은?'을 퍼왔습니다.
[이명박 5년, 빛과 그림자·9] 농업 정책

학술단체협의회와 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각 분야별 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글이 실리고, 나중에는 책으로도 묶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명박 정부 4년간 2008년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을 비롯한 크고 작은 먹을거리 대란이 끊이지 않았다. 임기 마지막인 올해도 소 값 폭락 사태로 장식하고 있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농업과 먹을거리의 재앙으로 가득 찬 불행한 시대로 역사에 남게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불행의 씨앗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농산물 시장 개방과 농업 구조 조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1989년 농축산물 수입 자유화 조치 이후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가입으로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의 비관세 장벽이 철폐되고, 2000년대부터는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 장벽마저 점차 축소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소위 '선택과 집중'에 따라 농지와 농기계 등 농업 자원을 소수의 정예 농가에 선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농업 구조 조정이 강조되었다. 10만여 명의 전업농이 정예 농가로 선정되었고, 정책 자금과 농업 자원은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그 대신 절대 다수의 중소 가족농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고, 그 결과 농업은 축소와 해체라는 수순을 밞게 되었고, 농촌은 공동화로 인해 피폐해지는 경로를 걸어 왔다.

신자유주의 개방 농정과 농업의 위기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세계 먹을거리 체제)으로의 편입과 먹을거리 위기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내 농업의 해체는 식량 자급률을 약 25퍼센트 수준까지 하락시켰고, 이로 인해 먹을거리의 약 4분의 3을 수입 먹을거리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글로벌 푸드 시스템이 제공하는 수입 먹을거리 때문에 한국 사회의 먹을거리 위험이 크게 증가하였다. 한편, 취약한 국내 농업 생산 기반 때문에 기상 요인으로 인한 작황 불안이 가격 파동을 점점 대형화하도록 만들었다. 사회 전반의 양극화는 먹을거리의 양극화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저소득층과 빈곤층일수록 위험한 먹을거리를 더 많이 섭취함으로써 건강 불평등도 확대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유난히 대규모 먹을거리 사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대외 정책과 무능한 농업 정책 때문이다. 이명박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2008년 4월 미국 방문 선물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허용하여 대미 굴종 외교 노선을 분명히 하였고, 전 국민적인 촛불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2010~2011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소 값 폭락 사태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작동했다. 여기에다가 소 값을 연착륙시키는데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도 더해져 폭락 사태를 더욱 키웠다.

또 대북 적대 정책으로 쌀 지원을 중단하였고, 이 때문에 국내 쌀 재고량이 과잉되고 누적되면서 2009~2010년에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한때 쌀값이 1990년대 중반 수준까지 폭락하기도 했으며, 쌀 농가의 실질 소득이 적게는 1.5조 원에서 많게는 2.5조 원가량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쌀값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이 또 다시 확인되었다.

농정에 있어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2010~2011년 구제역 대란과 2010년 하반기 채소 값 폭등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초기 방역 덕분에 비교적 적은 피해로 끝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초기 방역에 실패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약 350만두의 가축이 살처분 매장당하고, 약 6조5000억 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구제역 대란을 야기하였다. 또 2010년 하반기에는 채소류의 수급 예측과 생산 조정의 실패로 무, 배추 등 채소류를 중심으로 2∼3개월 사이에 농산물 가격이 약 3∼4배가량 폭등하는 채소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 농업과 먹을거리 대규모 사태(2008년~현재). ⓒ장경호

이명박 정부는 잇따른 농업과 먹을거리 대란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정책적 무능과 실패를 반복해 왔다. 초기에 선제적 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면 대란으로 악화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항상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대형 사고를 스스로 초래하였다. 사태가 악화된 이후에야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부산을 떨었지만 그나마 책임 회피성 생색내기나 땜질식 임시처방에 그쳐 사태 수습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는 농업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생산 조정 및 출하 조절을 통해 가격 안정과 소득 보장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했지만 이 부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농정은 농업과 먹을거리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업농보다도 더욱 소수의 주업농, 기업농, 강소농을 중점 지원하면서 전반적인 농업의 해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또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먹을거리의 안정적인 생산, 공급은 뒤로 하고 돈 버는 농업과 수출 농업을 강조하면서 안정적인 생산, 공급 기능은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농민과 농촌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면서 농민과 농촌의 빈곤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2010년 현재 농가 소득은 도시 소득의 약 64퍼센트 수준에 불과하고, 농가 인구 가운데 절대 빈곤층의 비율이 약 19.6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작년 11월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날치기로 강행 처리하였고, 오는 3월에 발효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의 비관세 장벽은 물론 관세 장벽까지 완전히 철폐되어 농업 해체, 농민 분해, 농촌 붕괴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다. 이는 국민 먹을거리를 더욱 더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것이며, 먹을거리의 위험은 제어 불능의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다.

지구적 식량 위기에 따른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과 취약한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은 대규모 가격 파동을 더욱 빈번하게 발생시킬 것이다. 먹을거리 양극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어쩌면 치유 불능의 상태가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농업과 먹을거리의 재앙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권 교체만이 그나마 살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야가 바뀌고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 된다고 해서 농업과 먹을거리의 살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정권 교체 과정에서 농업과 먹을거리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공약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정권 교체 후에는 실질적인 정책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농민들은 기초 농산물 국가 수매제를 중심으로 식량 자급률 50퍼센트 실현과 먹을거리 복지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생산 조정 및 출하 조절을 통해 가격 안정과 소득 보장을 이룰 수 있는 구조와 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며, 먹을거리 양극화 해소를 위해 먹을거리 정책과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연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식량 주권 혹은 먹을거리 기본권과 같은 새로운 대안의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정권 교체가 농업과 먹을거리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2012년 2월 26일 일요일

목사와 기자출신, 두바보의 편지대화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현 기자의 블로그 휴심정 2012-02-22일자 기사 '목사와 기자출신, 두바보의 편지대화'를 퍼왔습니다.

김기석 목사(왼쪽)와 손석춘 이사장이 청파감리교회에 걸린 성화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라미드 위를 오르면서 남들을 딛고 성과물을 독식하는 승리자에게 열광하는 세태 때문일까. 시류에 역류하는‘바보’가 더욱 그리워지는 세상이 됐다. 논객 손석춘은 거대 기득권인 골리앗과 싸우는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닉네임을 붙였고, 3년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말년에 스스로를 “바보야”라고 불렀다.
  영정 속의 두 바보를 대신해 살아있는 두 바보가 등장했다. 김기석 목사(55·용산 청파감리교회)와 손석춘(52)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이사장이다. 이들이 (꽃자리 펴냄)를 출간했다. 개신교 월간지 을 통해 1년반 동안 주고받은 지상편지글 모음이다.
21일  두 바보를 만났다. 화려한 십자가도, 아무런 외장도 없이 화장기 없는 맨얼굴 그대로 ‘바보스런’ 서울 청파동3가 청파감리교회에서다.
손 이사장은 기자로서,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언론개혁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언론운동가다. 그는 편지글에서 일용직 건설 노동일을 하면서 병든 어린 아들과 단 둘이 살던 윤아무개씨가 아들을 기초생활수급자나 ‘장애아동 재활치료 대상자’로 지정해달라는 희망을 남기고 여의도에서 나무에 목 매 자살한 사연을 들려주며, ‘예수가 어디로 갔는가’를 아프게 묻는다.

그리고 대구에 갔을 때 탔던 택시의 기사가 ‘현실에선 아무런 희망을 찾을 길이 없고, 오직 죽어서 천당가는 희망 밖에 없다’고 한 말을 전하면서 “절망의 현실에 눈을 감고, 오직 내세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내세우는 게 기독교인가”라고도 묻는다.
  이런 편지를 보낸 손 이사장에 대해 김 목사는 “이토록 부드럽고 조용한 분의 어디에서 이렇게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언론인을 ‘현대의 성직자’라고 한 함석헌의 말을 빌어 “약자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예언자”라고 평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보다는 수도자나 묵상가가 어울릴법한 성찰형 인간이다. 물어 물어 이 교회까지 찾아와 세상 밖으로 그를 끌어내려는 젊은이들의 채근에도 세상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주저하는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손 이사장의 편지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개신교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여 ‘이대로 가다간 한국 교회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교회의 얼굴로 비춰지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비리가 쉴 새 없이 터져나오고 있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 그의 견해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답했다.
“가면을 쓴 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맘몬(돈)과 권력과 명예를 구주로 섬기는 이들이 망하는 것과 한국 교회가 망한다는 말은 다르지요.”
교회가 아닌 이들이 망해야 진짜 한국 교회가 살 길이 열린다는 역설로 그는 새로운 희망을 안내했다. 성경 공부를 하다가 성령의 불이 붙었다며 갑자기 뜨거워져 설레발을 치는 이들에게 찬물을 뒤집어 씌워 제정신을 차리게 했다는 의 신학자 김교신 선생(1901~45)을 가장 존경하는 그 다운 냉철함이었다.
소비자들이 구멍가게를 내팽개치고 대형 할인마트로만 달려가듯 아무리 비리가 불거져도 대형교회로만 달려가는 듯 내비치는 교회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주체적 개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없어 타자의 욕망을 내 욕구와 동일시하며 부화뇌동하는 이들도 적지않지만, 사람에겐 누구나 진실과 선의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조·중·동 보수신문에 맞서온 손 이사장도 “어떤 비판에도 그들(조·중·동)이 의제를 설정한대로 굴러가 정국을 좌지우지했지만, 결국은 이제 대중이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지 않았느냐”며, 김 목사에게 동의의 박수를 보냈다.
  김 목사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올곧게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 땅에 구현하려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을 만나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결코 희망을 저버릴 수 없다”며 “요즘 부쩍 대형교회의 대안으로 확산되고 있는 작은교회 운동은 종교개혁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이 약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평화를 깨트리고 갈등과 폭력을 부추기는데도 여전히 광신자들의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것에 대해, 그는 “아무런 비판 의식을 갖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신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배욕에 휩싸인 자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라며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근본주의는 성찰과 질문을 거절하기 때문에 다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도덕한 세상에 대해 ‘세상이 다 그런거지’라며 세상은 변화시킬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던 자신에게 용기를 준 것도 ‘손 이사장의 끊임 없는 질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김 목사의 ‘성찰’에 대해 정치권 진보세력의 통합작업을 해온 손 이사장도 “유대인 기득권자들의 좌판을 뒤엎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진보 세력도 자신의 좌판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야 한다”며 성찰과 반성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음을 고백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2012년 2월 21일 화요일

[사설] 박근혜의 과거 단절론과 정수장학회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20일자 사설 '[사설] 박근혜의 과거 단절론과 정수장학회'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가장 강조한 말은 ‘과거와 단절’이었다. 그는 “지금 새누리당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며 “과거의 잘못과 완전히 단절하고 새로 태어나기 위해 과감한 쇄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닷새 전 정당대표 연설에 이은 거듭된 과거 단절론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정강·정책의 기조를 경쟁을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에서 행복을 중시하는 복지 확대 쪽으로 바꿨다. 14년 이상 써오던 한나라당이란 이름도 과감하게 버렸다. 지금 한창 작업을 진행중인 공천에서도 도덕성을 기준으로 현역 의원들을 대폭 물갈이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명박 아니면 아무거나’라고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예상된다.
박근혜 위원장이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변화와 개혁은 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대를 바라는 나라 안팎의 흐름을 반영하는 동시에, 양대 선거를 겨냥한 포장술의 의미도 띠고 있다. 어쨌든 정당이 시대정신을 반영해 변화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 속에 진정성까지 담겨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 위원장이 추구하는 과거와 단절, 변화와 개혁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으로 소통부족과 양극화의 심화를 지적했다. 소통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양극화는 경제의 실패를 말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양극화는 일단 제쳐두더라도 소통과 민주주의에 대한 박 위원장의 의지를 거의 느낄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사안이 정수장학회 문제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 문화방송 지분 30%와 경향신문사 터 700여평을 소유하고 있는 재단법인이고, 아직도 박 위원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날 관련 질문을 받고 “2005년 이사장을 그만둬서 나와 관련이 없다. 이와 관련해 장학회에서 분명히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지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임금님’, 박 위원장을 ‘큰영애’로 부르는( 2월4일치 3면) 최필립씨가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과 매우 거리감 있는 인식이자 발언이다.
세상일이란 법적 관계로만 이뤄져 있는 게 아니다. 사람으로도 얽히고 정으로도 매여 있다. 박 위원장이 진정으로 정수장학회와 관련이 없다면 자신을 아직도 왕조시대의 상전처럼 모시는 사람을 이사장에서 물러나게 하고 시민·언론단체의 요구대로 사회에 재단을 환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과거와 단절은 남으로부터가 아니라 자기부터 시작해야 진정성이 있다.

2012년 2월 7일 화요일

의료민영화 '괴물'은 언제든 되살아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07일자 기사 '의료민영화 '괴물'은 언제든 되살아난다'를 퍼왔습니다.
[복지국가SOCIETY]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평가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정부와 한나라당 쪽에서 영리법인병원 추진을 줄기차게 주장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영리법인병원 추진이니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니 하는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조차 평생맞춤형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주요내용으로 포함하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겠다고 하는 판이니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표 떨어질 이야길 일체 삼가는 상황이고, 청와대나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되지도 않을 이야기를 해봐야 득이 될 것이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통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와 경제특구의 레칫 조항과 같은 의료민영화 추진의 중요한 수단 하나를 확보하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야심차게 추진한 의료민영화 관련 법·제도의 변화는 제대로 이루어 낸 것이 없는 실정이다. 국민적 우려와 반발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굳이 이 시점에서 제기하는 이유는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개개인을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참여정부에서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까지 의료민영화 추진이 지속되고 있는 데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와 배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평가에 앞서 우선 그 배경부터 짚어보자.

일련의 의료민영화 추진 흐름은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보건의료개혁의 한국판 버전으로서 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우파가 주도한 의료개혁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민영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서비스 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가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다. 과거 선진국의 경험을 놓고 볼 때 이러한 국면에서 취한 대응방식은 유럽식 복지국가 전략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미국식 금융·의료·교육산업 육성 전략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2000년대 초반이라는 구체적 시점에서 미국식 모델을 본격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지난 10여년의 의료민영화 추진 논란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청와대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정부 당국은 일련의 의료민영화 조치들을 통해 자본시장의 여유 자금을 의료시장으로 유입시켜서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자 시도 한 것이다. 즉,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합법화와 의료비 재원 조성과 배분을 담당하는 민간보험회사의 활성화가 그 요체였다.

이 두 가지 조치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이 훼손될 것이란 점에서 '의료민영화'라 명명되어 왔던 것이고. 그 어떤 집권 세력이든지 청와대 입성 후 가장 절실한 국정운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손쉬운 수단을 외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안타깝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고, 웬만한 지금의 웬만한 여야 정치인들도 결코 예외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판단이다.

둘째,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과 의료 관련 기업들이 의료시장에 들어와서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설립하거나 기존 의료기관을 그 산하로 인수하여 돈을 벌고, 동시에 보험회사를 통해 의료보험상품을 보다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직접 투자자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도 비슷할 것이다. 이들이 갖는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인천 송도에 삼성이 직접 투자하고 운영하는 영리법인병원 설립이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란 소식이 계속되고 있는 데, 이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셋째, 현재의 국민건강보험 저수가 체계와 과도한 경쟁에 지쳐하는 의료계 일각의 의료민영화 추진 흐름이다. 병원 운영자 입장에서 보면, 치열한 환자유치 경쟁 구도 속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투자가 절실한 상황인데, 영리법인병원 합법화는 이러한 갈망에 들어맞는 정책 대안이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해서는 영리법인병원 합법화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계기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를 흔들어 수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거나 수익이 높은 민간의료보험으로 갈아타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일부이지만 영리법인병원을 통해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서고자 하는 경우도 있다.

넷째, 소위 의료관광으로 대표되는 개발도상국의 영리법인병원 성공사례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의료산업 선진화를 통한 국부 창출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의료를 통한 수출 증대까지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확산되었다. 태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도 의료로 달러를 벌어들인다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단순 논리의 파괴력이 만만치 않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인식이 한국사회 주류의 인식을 장악해 나가면서 영리법인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대변되는 의료민영화 추진방향이 자연스럽게 대세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 ⓒ뉴시스

이 네 가지 흐름과 요인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최근 10여 년 동안 '의료선진화'를 명분으로 한 우파적 의료개혁 흐름이 맹위를 떨쳤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그들이 추진한 의료개혁의 성과가 기대보다 변변치 못했던 것일까? 왜, 국민적 반감과 저항에 부딪치게 된 것일까? '신자유주의 의료개혁이기 때문에' 식의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주장만으로는 제대로 설명하기도 어렵거니와 설득력도 떨어진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가장 큰 이유는 의료시장을 통한 내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비용 부담을 국민에게 요구하고 전가시키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누군가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만 의료를 통해 내수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느냐이다. 의료민영화 추진론자들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그 부담주체는 국내 환자와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환자이다. 국민들에게 돈 더 내라는 이야기는 꺼내기가 어려웠는지, 열심히 해외환자 유치를 통한 국부창출 논리만 더 큰 소리로 되풀이 해댔다.

이 대목에서 의료를 통한 내수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대표적 사례인 미국의 경험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데, 미국은 그 비용을 기업과 세금을 매개로 국가가 부담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미국 의료체계가 본격적으로 상업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 이전부터 미국 의료비의 대부분을 기업과 국가가 부담해왔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국 내수의 버팀목으로 성장해 올 수 있었다. 지금에야 너무 비대해지고 낭비적인 탓에 국가와 기업들이 그 비용의 적지 않은 부분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면서 반발과 저항이 고조되고 있지만. 만약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1970년대 중반 무렵부터 국가와 기업이 국민들에게 내수산업 육성과 일자리창출을 위한 추가 비용을 온전히 국민들에게 요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둘째, 정부 당국과 기업에서 내수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비용 부담 주체로 상정한 해외 환자들의 규모가 국가의 미래 전략산업으로 간주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는 점이다. 2010년부터 해외환자들이 국내에서 쓰고 간 돈이 1,000억 원을 넘기 시작했다. 한류 바람이 뒤를 받쳐주고, 최소한 지난 5년간 정부와 민간에서 정말 열심히 일한 성과가 이렇다. 국내 유명 아웃도어 기업(섬유산업) 한 곳의 매출액이 같은 해 1조 5천억 원을 넘긴 것에 비하면 한 국가의 전략산업이라는 말이 무색한 지경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최근에 유행하는 의료관광 산업의 성공은 누가 더 저렴한 임금과 비용으로 보다 질 좋은 서비스를 제시할 수 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개도국에도 공부 잘해서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교육받고 수련 받은 우수한 의사들이 있고, 이들이 영리법인병원을 매개로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선진국 의료소외계층들에게 제시하기 때문에 의료관광에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경쟁 원리가 섬유산업이나 신발산업과 똑 같다. 이러니 우리의 인건비와 부대비용 수준을 고려할 때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시장의 파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도 해외 환자를 대상으로 '메디컬 코리아!(Medical Korea!)'라는 입소문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기존 공간과 분리하여 병원시설의 일부라도 미국식 병원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을 갖추고 해외 환자를 맞이해야 한다. 물론 동남아 국가 대비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가격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착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병원을 찾는 해외환자 규모로는 적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그 어떤 병원도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국내를 찾는 환자들도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분산되고 있어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투자 전망도 난망한 실정이다.

외국의 경험으로 볼 때 해외환자를 끌어들이는 원리도 국내환자 유치와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찾는 환자가 소수지만 서비스가 좋고 가격 경쟁력도 있으면서 치료 결과가 좋아야 좋은 입소문이 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환자도 늘어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정 단계로 올라서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인데, 소리만 요란했지 내실 있는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실정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해외환자 유치사업에 대해서는 그 규모와 실상에 걸 맞는 대접을 해 주어야 하며, 새로운 기조 속에서 기존 해외환자 유치 활성화 사업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방향과 전략의 수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의료선진화로 칭하든, 의료민영화로 칭하든 간에 그 실체가 의료개혁 담론으로서의 완결성이 낮았다. 내수 경제의 활성화, 일자리 창출, 해외환자 유치를 통한 국부창출과 같은 정책 추진의 명분은 있었지만, 복잡하게 얽힌 의료제도의 난맥상을 관통하는 논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설득과 동의를 구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넷째, 모순이 심화되는 미국 의료제도의 실상이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되면서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우연히도 2008년 초 국내에 소개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를 비롯하여 미국 의료제도의 실상을 체험한 무수한 사람들이 쏟아내는 처참한 실상들이 국민적 각성과 반발의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더불어 2009년을 관통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의료개혁 논란도 적지 않은 자극제가 되었다.

다섯째, 의료민영화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 분화와 의료계의 일관된 지지 확보 실패 탓도 적지 않았다. 환자유치 경쟁이 심화되면서 서울 소재 초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료시장으로 외부 자본이 본격적으로 영입되었을 때 나타날 양상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재래시장에 미친 영향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의료계의 입장에도 일정한 분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윤리적 측면에서 미국식 의료제도로의 변화를 원치 않는 의료계의 정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마무리 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차기 정부가 취할 기존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평가와 정책 방향이다. 복지국가 실현을 너도 나도 이야기 하는 속에서 의료민영화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울 정당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과거 집권세력으로 일정한 책임이 있는 탓에 아마도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평가나 언급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입성 후에도 이러한 기조와 흐름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내외 경제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고, 내수경제의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며, 보건복지 분야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내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증세와 전달체계 혁신을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5년 임기 안에 일정한 성과를 도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와중에 자본주의 고도화에 따른 서비스 산업 육성을 통한 내수 확장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의료민영화와 의료선진화 담론이 어떤 식으로든 국정과제로 부상할 여지는 남아 있다. 집권세력을 둘러싼 정치적 역관계의 변화와 재벌을 필두로 한 대기업과 보수언론의 영향력, 강고한 보수 지지층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이명박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2012년 정치공간에서 의료민영화 추진에 대한 활발한 평가, 논쟁, 그리고 적극적인 대안 모색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의료민영화는 최근 여야가 경쟁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포함한 '복지국가'와는 상극의 위치에 놓여 있다. 우리는 지금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의료공공성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자는 게 우리의 시대정신이기 때문이다.



/박형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제주대학교 교수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정권교체 가능성 높지만, 복병도"


이글은 레디앙 2012-01-14일자 기사 '"정권교체 가능성 높지만, 복병도"'를 퍼왔습니다.
[인터뷰-손호철] 반성 없는 '좌경화'…진보, 북한문제 '빅딜' 필요

손호철 교수는 "현재로서 정확히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높아졌다."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교체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21세기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놓고 국민적 토론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2012년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며 선거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대안 체제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손호철 교수(사진=레디앙)

자기 반성 없는 '좌경화' 신뢰 못해
손 교수는 또 현재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통합당 등 구 정치세력들이 '좌경화'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과거 정책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자기 반성을 하지 않으면 신뢰할 수도 없고,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며 정치권의 '말로만 좌클릭'에 경계감을 표했다.
그는 또 선거에서 가정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단일 변수는 여전히 '지역 요인'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진보진영의 민족주의 진영과 평등파 쪽이 북한 문제를 놓고 '빅딜'을 함으로써 통합의 기운을 높이고, 21세기 진보가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통합진보당은 '최악의 조합'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는 한편, 진보진영 통합 무산의 가장 큰 책임은 진보신당 내 독자파에 있지만, 이른바 노심조의 무원칙한 탈당이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은 최장집 교수 인터뷰에 이어 손호철 교수를 만나 정치 이념 문제와 최근 정치 현안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0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강대 손 교수 연구실에서  2시간여 동안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가 진행했으며 이광호 편집국장도 함께 했다.  
사회과학자와 의사
- 1993년 출간된 『전환기의 한국정치』에서 선생님께서는 “나는 내 연구가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주인공의 적대적 경쟁자)의 역할을 하는데 만족하며, 철저하고 투철한 안타고니스트는 그 나름대로 어설픈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 주인공)보다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
= 지금도 마찬가지다. 역사라는 게 꼭 주인공만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반영웅도 필요로 한다. 역사는 정반합의 흐름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인공 역할만이 아니라 비판자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의 역할은 의사의 역할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의사는 병원에 종합 진단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간도 괜찮고, 대장도 괜찮고, 위장도 괜찮은데 폐암으로 죽습니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게 의사의 역할이다.
의사의 역할이 건강에 대한 조기 경보 기능을 통해 불치병으로 발전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면, 사회과학 그리고 사회과학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로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비판적 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방 50주년이던 지난 1995년에 조중동에서는 대한민국 판 역사의 종말론을 펼쳤다. 그들은 비판적으로 한국 현대사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를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북한과의 대결은 이미 끝났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군사독재 시절에 가지고 있었던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콤플렉스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조장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 이른바 ‘전후 최대의 국란’이라는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아 나라가 거덜 난 경험을 겪었다. 한국판 역사 종말론과 같은 미화론이 결국 비판적 지성을 마비시켰을 때 어떨 결과 오는지는 97~98년 당시 위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힘들 때 생각나는 두 사람, 정운영과 김수행
개인적으로는 외로울 때도 많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두 명 있다. 돌아가신 정운영 선생과 지금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계신 김수행 선생이다. 그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후 세대에 뿌리를 내리게 한 분들이다.
그 두 분은 소위 민주대학이라고 불리던 한신대학교에 재직하다가, 민중신학으로 유명한 안병무 교수 같은 분들과 학내 문제로 충돌하다가 결국 해직됐다. 그때 그 분들은 “박정희나 전두환하고 싸우다 잘리면 민주투사라도 되지만, 최고의 민주투사한테 잘린 우리는 뭐냐?”라는 얘기를 했다.
또 떠오르는 사람은 윤한봉씨 같은 사람이다. 광주는 한국사회에서 소수였다. 그런데 그는 광주에서 광주 지역주의를 비판한 소수의 소수였다. 대구에서 대구 지역주의를 비판하면 민주투사지만, 광주에서 DJ나 호남을 비판하면 한나라당 프락치 얘기를 듣던 시절이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보수주의, 냉전적 보수주의자들이 주류였다면 자유주의 세력은 소수였다. 물론 정권교체 경험도 있고, 과거 민주화세력이 주류가 되고, 프로타고니스트가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냉전 주류 민주화 소수 그 중에서도 자유주이 세력 소수라면 진보정당 진보독자 운동은 소수의 소수. 아직도 그런 세력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소수인 자유주의 세력에서도 진보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소수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가 민족주의 계열이 다수인 진보진영에서도 또 소수가 되다보니 소수가 한 네 번 정도는 붙어야 내 위치가 설명될 수 있을 거 같다. 힘들고 외로울 때도 많지만 그런 만큼 지적 자극이 항상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나라당 발본적 혁신, 민주통합당 무장해제 만나면?
- 선생님께서는 최근 칼럼을 통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 한국정치인 만큼 안심하기는 이르다.”, “정작 문제는 12월 19일이 아니라 그 이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올해 선거에 대한 전망과 함께, 대선 이후 정국과 관련해 주목해봐야 할 지점들에 대해 짚어본다면?
= 사회과학의 기본적 생각이 다윈적 자연과학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 모델은 과거 현상들을 일반화하고 법칙화하면, 그 법칙성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사회과학도 사회 현상을 일반화하고 법칙화하면 예측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흔히 카오스 이론 이야기 많이 나오고 있다. 자연과학에서까지도 미래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다. 사회과학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변수가 너무 많은 한국정치를 예측하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고승덕 의원이나 오세훈 전 시장 때문에 발생한 일들 때문에 정권 교체 가능성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발본적인 자기혁신을 하는 반면, 민주세력이 안일하게 대응하거나 무장해제하면 정반대 경우가 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꼭 이길 거라고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을 사실이다.
한나라당 5년 세월 동안 역사적 후퇴가 심각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는 정권교체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정권교체를 할 거냐가 중요하다. 내가 12월 19일이 아니라 그 이후가 문제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한 말이다.


▲사진=레디앙

핵심은 민주세력 실패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
과거 민주화 세력 집권 10년 동안의 시장주의 정책에 따라 사회양극화가 심화됐고, 그 결과로 민주와 운동세력은 양극화와 무능의 대명사로 찍혔다. 결국 2007년 서민들이 서민정당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당 대신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한 ‘묻지 마’ 지지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5년은 그것을 개선시키지는 못하고 오히려 더 심화시켰다. 다시 민심 이반 현상이 일어나고 이번에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해 ‘묻지 마 비판’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것이 민주세력의 집권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거 정책으로부터 발본적인 변화 없이 또다시 사회 양극화를 가져온 정책을 지속한다면 이들이 집권해도 또다시 민심이반이라는 악순환 패턴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지난 2007년 대선 논쟁 당시 반어법 표현으로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의 집권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문제의 핵심을 결국 민주세력의 잘못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것을 민중이 겪어봐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선거, 한국사회 미래 대한 치열한 논쟁의 장 돼야
바로 지금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만약 민주개혁 세력이 집권해도 여전히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다시 사회양극화와 1 대 99 사회를 만든 정권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권교체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 하면 대선에 이길 것인가, 어떻게 반MB, 반한나라당 연합 만들어서 이기게 만드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요즘 얘기되는 2013년 체제건, 2012년 이후의 사회든, 그것이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중심으로 ‘좌클릭’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보수’라는 단어를 빼자 말자라는 논란도 벌어졌다. 이것은 한국사회 미래에 대한 한나라당 버전의 대응이다.
민주통합당 같은 자유주의세력은 그 세력대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통합진보당이라는 진보와 자유주의세력의 연합정당은 또 나름대로 중도 좌파적 대안을 제시하고, 진보신당 등 나머지 순수한 진보정당들도 대안을 내놓으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한다.
이처럼 21세기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놓고 국민적 토론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2012년 선거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고, 그렇게 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단순히 반MB, 반한나라당 정권 쟁취를 넘어서서 21세기 신자유주의 대안체제 논쟁을 활성화시키고, 이걸 국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교육하면서, 가치연합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한나라당-반신자유주의의 2중 전선
- “MB의 ‘악마화’와 반MB 투쟁의 ‘신성화’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한국에서 최대 정파는 ‘무당파와 기권자.’ 그 사람들을 묶어낼 잠재적 기반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정당체제에 변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 반MB 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이라는 2중 전선에 대해 더 큰 고민 있어야한다. 한나라당부터 시작해서 여기저기서 정당의 ‘좌경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자기반성이 전제돼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에 이명박 정권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반MB 투쟁을 얘기했지만, 그것 못지않게 김 전 대통령이 했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그건 본인이 대통령 재임 당시 추구했던 모델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허황된 신기루였는지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 월스트리트 위기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해줬다. 당시 정권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든지, 잘 모르고 그랬다든지 얘기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자신을 따른 사람들이나 민주주의 세력들이 새로운 대안, 새로운 체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유연한 진보론 펴면서, 우리를 굉장히 낡고 경직된 진보라고 비판했다. 그때 핵심적인 논쟁 중 하나가 한미FTA의 투자자 국가 제소 조항이었다. 우리는 그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한미FTA는 안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은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 당시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갑자기 표변하여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데, 그런 식의 말 바꾸기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과거 정치적 유산에 대한 평가와 자기반성을 기초로 해서 대안을 제시해야지, 그런 것이 없으면 곤란하다.
지역주의, 아직도 결정적인 변수
- 선생님께서는 “한국 선거의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아직까지도 ‘민주 대 반민주’도, ‘진보 대 보수’도, 부상하고 있는 세대도 아니고, 지역주의”라고 말씀하셨다. 최장집 선생은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적 결정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왜 지역주의 문제를 결정적 변수로 중요하게 바라보는지?
= 지역주의가 한국정치에 끼치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정도가 약화되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요인이 중요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일 변수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지역주의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 사람들이 세대 문제를 갑자기 얘기하는데, 2002년 대선 때 이미 세대 문제로 난리가 났었다. 촛불도 마찬가지다. 학자들이나 언론도 모두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촛불은 2008년이 처음이 아니다.
2002년 효순, 미선 ‘사건’ 때도 촛불은 있었고, 2004년 당시 노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촛불은 있었다. 그런데 그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갔나. 2007년 대선 때 그 촛불들은 침묵을 했거나, 이명박을 지지했던 역사적 경험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2002년 대선 때도 방금 언급한 것처럼 세대 문제가 뜨거운 이슈였다. 2030이니 5060이니 하는 얘기가 그때 나왔다. 나는 그 당시 구체적인 자료를 놓고 세대 균열지수를 뽑아봤다. 인상적이 수준이 아니다.
20~30대와 50대가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비율의 차이는 약 25%포인트 수준이었다. 이런 수치는 그 전보다는 높아진 것이다. 세대 균열이 커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역주의 균열은 훨씬 커서 65%포인트 수준이었다.
계급적 변수? 앞으로 높아지겠지만 가난한 사람이 통합진보당이나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 비율과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비율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여기서 나오는 차이가 지역주의에서 나오는 차이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주목해야 될 부분은 계급적인 문제가 중요해지는 것은 사실인데, 97년 대선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김대중 후보를 찍고, 부자일수록 이회창 후보에 투표했으며 이들의 균열지수는 15%포인트 정도 차이가 났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이 지난 후인 2007년 대선 때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이명박을 찍고, 오히려 부자가 정동영에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올지 모르겠으나 사회경제적 이슈가 중요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세대와 지역 문제는 계급 문제와 중첩돼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단일 변수로는 지역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민족주의 계열과 평등파 '빅딜' 필요
- 선생님께서는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북한의 문제는 더 이상 사르트르의 논리에 기초해 침묵하고 있기에는 이미 용인의 수위를 넘어섰다, 진보진영은 북한의 반역사적인 왕정식의 세습정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얼마 전 출간한 『현대 한국정치 ― 이론, 역사, 현실, 1945~2011』에서 분단체제론을 중심으로 머지않아 다가올 ‘통일정국’의 의미를 짚어보고, 통일지상주의를 넘어 남북한 문제를 동시에 사고하는 통일론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등장 이후 남북 관계를 전망할 때 주목해야 할 지점은?
= “우리의 실천 현장은 여기고 지금 이때”라는 사르트르 논리에 기초해 그 동안 북한이나 사회주의권 국가가 아니라 남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핵 문제가 현실적인 핵심 문제로 등장했다. 내가 그 당시 충격을 받았던 것은 강재섭씨가 한나라당 대표일 때(2006~2008년) TV 화면에 비친 최고위원회 회의 장면이었다. 그 회의실 뒤에 붙어있는 문구가 ‘인권, 반핵’이었다.
인권과 반핵이라는 진보적 담론이 어느 날 갑자기 냉전 보수세력들이 들고 나오는 담론이 돼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당시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더 이상 침묵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북한 체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것과 현실 정치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3대 세습 문제에 대해서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이정희 대표가 북한 비판은 도움이 안 된다,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을 거냐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전혀 그런 문제가 아니다. 비판하는 것과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북한이 도덕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같이 하면 안 된다는 극우적 시각이 잘못된 것처럼, 북한과 같이 가야 하기 때문에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잘못된 시각도 비판받아야 한다.
이번 김정은 체제 등장은 그런 점을 잘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냉전 보수세력이나 이명박 대통령도 가능하면 빨리 김정은 체제 안착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점을 잘 보여줬다. 북이 김정일 사망으로 삐걱 거릴까봐 우려하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도덕과 현실정치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등장을 보면서 느낀 건 개인의 죽음은 모두 불행한 것처럼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은 불행하다. 세습 문제 나올 때 얘기한 적이 있지만, 불행하긴 하나 김정일의 죽음이 남한이 선거 국면과 맞물리지 않은 게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선 국면에서 조문이니 세습이니 하는 논쟁 속으로 빠져들면 중요한 다른 이슈가 실종될 수 있다.
통일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온 건 아니다. 북한의 민주화는 것은 북한 민중 스스로 힘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하는 북한 민주화운동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북한 민중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나 고민해봐야 한다고 본다.
진보신당이 통합 부결시킴으로써 결국 좌절됐지만, 민주노동당의 중심인 민족주의 계열과 진보신당의 주축인, 흔히 말하는 PD계열 또는 평등파가 어떻게 하면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3대 세습 문제가 불거졌을 때 민주노동당의 핵심 또는 강경 민족주의 사람들과 개인적인 세미나를 열고, 함께 토론도 한 적이 있다. 

세 가지 정도를 같이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민족주의자들도 북한 문제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을 해야 한다. 물론 남한 사회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지속돼야 한다. 이것이 뉴라이트와 다른 점일 것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매개 고리는 인권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의 경우 국제적 고립이라든가 항시적 전쟁체제라는 조건에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그런 조건에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한반도 평화와 북한이 느끼고 있는 군사적 위험에 대한 인식, 평화 체제 안착의 중요성 등에 대해 과거 민족주의자들 가지고 있었던 입장과 견해를 그렇지 않은 진보세력도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비민족주의적인 평등계열은 북의 평화 체제 문제에 대해 더 많이 노력을 기울이고, 거꾸로 과거 민주노동당 중심의 민족주의 세력은 북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런 입장들의 ‘빅딜’을 통해 진보가 통합되고, 21세기 진보가 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계속)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사설]한·미FTA 무효화 투쟁 정당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3일자 사설 '[사설]한·미FTA 무효화 투쟁 정당하다'를 퍼왔습니다.
야 5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 그동안 한·미FTA를 반대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이 어제 비준 무효화를 선언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 그제 한나라당이 한·미FTA라는 국가 간 중대 조약의 비준을 날치기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폭거로서, 야권과 시민사회가 비준 무효화를 위해 즉각 나선 것은 정당한 행동이다.

한·미FTA 비준이 무효화돼야 하는 이유는 날치기 비준 처리로 인한 의회민주주의 파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2006년 6월 협상을 시작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밀실 협상’과 ‘졸속 대응’으로 일관한 보기드문 조약이다. 협상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는 철저히 배제됐고, 찬반양론이 치열하게 갈린 상황에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제대로 된 의견수렴도 없었다.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는 무시됐다. 한나라당의 날치기 비준 처리는 절차적 정당성이 실종된 한·미FTA의 예고된 수순이다

절차적 정당성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한·미FTA 그 자체에 있다. 한·미FTA는 단순히 교역을 늘리기 위한 협정이 아니라 우리의 법과 제도, 관행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미국화’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효과는 정부 주장보다 더 작을 수도 있고, 반대 진영의 주장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우리가 우려하고 경계하는 것은 한·미FTA를 통해 이식될 신자유주의, 즉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가 초래할 병폐다.
규제 완화와 시장자율, 기업 제일주의와 개방을 통한 무한경쟁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양극화의 문제는 이미 세계의 고민거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한계와 부작용을 똑똑히 목도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국화=선진화’라는 맹목적 인식에 사로잡혀 한·미FTA를 ‘절대선(善)’으로 떠받들고 밀어붙이고 있다. 시대착오적이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온 한·미FTA의 불합리·불평등 조항들은 국내법과 제도를 비롯한 경제·사회 체질을 미국화하는 도구다. 미국 법령과 협정이 충돌하는 경우 미국 법령이 우선하지만, 협정과 충돌하는 국내 법률은 모두 무효가 되는 현실이 그 하나의 사례다. FTA를 위해 14개 법을 뜯어고쳤다. 사법주권 침해 우려뿐이 아니다. 시장만능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갈수록 정부의 역할, 정책의 공공성이 절실해지는 상황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는 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취약산업을 보호할 국가정책을 위협한다. 정부는 이미 FTA와 충돌한다는 이유로 중소상인보호를 위한 유통법·상생법을 반대한 바 있다. 한번 개방하면 그 폭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한 역진방지 장치 등도 업종간·계층간 양극화를 더욱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가뜩이나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국내 현실에서 농어민·중소상인 등 개방 파고에 휩쓸릴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활동이나 공공정책의 자율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으로 피해보상하고 넘어가는 ‘사실상 농업 포기’는 또 다른 문제다.

4년 넘는 논쟁에도 불구하고 한·미FTA는 끝내 독소조항 한 군데 손대지 못한 채 날치기로 비준 처리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이제 더 이상 갈등을 키우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며 한·미FTA 비준으로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날치기 비준은 끝이 아니다. 무효화의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