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채널A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채널A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대통령 하야 주장 봇물, 새누리당 선거 어떻게 하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3-31일자 기사 '"대통령 하야 주장 봇물, 새누리당 선거 어떻게 하나"'를 퍼왔습니다.
종편도 불법 사찰 비판… 침묵하는 모기업 조중동과 엇박자

30일 민간인 사찰 파문이 4·11 총선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운데 종합편성채널들이 정치권의 "대통령 하야" 발언 등을 헤드라인으로 전하는 등 사찰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나서 주목된다.
'TV조선' 'JTBC' '채널A' 등 종편들은 MB 정권에서 신규로 방송 허가권을 받은 데다 이날 모기업 신문사인 조선·중앙·동아일보가 관련 사건을 축소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민간인 사찰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지 관심을 모았었다.
TV조선은 톱뉴스로 를 다룬데 이어 등 4건의 리포트를 통해 민간인 사찰 문건 내용을 전하면서 정치권의 파장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보도 방향도 정부의 민간인 사찰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TV조선은 톱뉴스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메가톤급으로 커지고 있다"며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 주장까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어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긴급기자회견 내용을 전하면서 "민주당은 'BH 하명'이라는 표현이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증거라며 청와대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덧붙였다.
TV조선은 또 "새누리당 내에서는 '수도권 선거는 이걸로 끝났다'는 탄식이 나온다"며 "하루종일  대책에 골몰하던 새누리당은 '윗선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박근혜 새누리당'은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알아서 해결해달라는 것"이라고 여권 반응을 정리하기도 했다.


▲ TV조선 3월30일 메인뉴스

사찰 증거를 은폐한 총리실에 대해서도 "과거에도 했던 일이고, 민간인은 어쩌다 한 둘인데 억울해하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앵커멘트로 비판했다.

채널A, 민간인 사찰 파문 집중 조명…기사양·논조에서 타 종편 압도
채널A의 민간인 사찰 사건 보도는 특히 돋보였다. 사건의 진행 과정과 파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총리실의 사찰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청와대 연루 의혹, 검찰의 부실 수사 등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채널A는 메인뉴스인 에서 등 사찰 리포트를 무려 6꼭지나 전면에 배치했다.


▲ 채널A 3월30일 메인뉴스

채널A는 헤드라인 앵커멘트에서 "총리실의 불법 사찰 사건, 깃털이 몸통이라고 우기더니 결국 들통이 나고 있다"며 "공직자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 사찰이 이뤄졌다. 특히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폭넓게 사찰했다"고 지적했다.
뉴스 리포트에서는 "언론사 임원 교체 문제에도 적극 개입한 흔적이 나타난다"며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언론사 대표의 성향과 현 정부에 대한 충성도까지 묘사돼 있다"고 다른 종편들보다 언론장악 의혹을 자세히 전하기도 했다. 채널A는 또 사찰 대상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을 직접 접촉해 코멘트를 받는 모습도 보였다.
채널A는 특히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명박 정부 초기인 지난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며, 지원관실은 대통령 측근 인사로 알려진 이영호 전 비서관 지휘 아래 42명이 직원 중 절반 가까이가 경북 영덕과 포항출신,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채워졌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JTBC도 헤드라인 에서 "문건에는 'BH(청와대) 하명'이라는 기록도 있어 청와대가 사찰을 지시한 정황도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JTBC는 "KBS 노조와 관련해 언론노조의 개입으로 MBC노조와의 연대 투쟁 및 강성 집행부 등장 등이 우려된다는 동향과 YTN은 노조의 경영 개입을 차단하고 좌편향 방송 시정 조치를 단행했다는 내용 등이 보고서에 포함됐다"는 언론 동향 보고 내용을 전했다.
언론 사찰 문건 당사자인 KBS·YTN·MBC 등은 두루뭉술하게 보도
해당 문건에서 사장의 성향과 임원들의 동향이 자세하게 보고된 것이 드러난 KBS와 YTN은 보도는 했지만 관련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보도하게 넘어갔다.
이들 방송사들은 민간인 사찰 문건을 보도했지만 이 문건에 KBS와 YTN도 사찰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고만 언급했을 뿐 '정권에 충성심이 강하다' '좌파 방송을 시정했다'는 평가와 함께 사장 임명을 건의한 내용 등이 담긴 배석규 YTN 사장 관련 보고서, '거만하고 자기 사람을 너무 챙긴다'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김인규 KBS 사장 관련 보고서 내용들은 보도하지 않았다.
중앙·조선 등 31일 지면서도 민간인 사찰 문건 왜곡 의도 드러내
다른 조간들이 민간인 사찰 사건을 1면에 다뤘는데도 사건의 의미를 왜곡(조선일보)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던 신문(동아·중앙일보)들은 정치권으로까지 파장이 확산되자 하루 뒤인 31일부터는 관련 보도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문건의 의미를 축소하고 정치적 색깔을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였다. 총선을 노린 정치적 폭로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제목과 달리 기사 내용은 객관적이었다. 편집책임자인 데스크의 시각이 투영됐다는 얘기다.
기사와 제목이 따로 노는 경우는 조선일보에서도 발견된다. 조선일보는 3면 머리기사 제목을 로 달았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 대부분이 '공직감찰'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제목이 무색하게 해당 기사에는 정치인과 민간인, 언론인, 노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을 무차별하게 감찰한 사례가 나열돼 있었다.
보도가 하루 늦기는 했지만 조중동 가운데에서 그나마 드러난 사실을 손바닥으로 가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31일 1면 , 2면 , 3면 , 사설 등 중립적으로 기사들을 처리했다.

2012년 3월 28일 수요일

종편 100일, 그 기막힌 이야기


이글은 시사인 2012-03-27일자 기사 '종편 100일, 그 기막힌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개국했던 종편은 케이블TV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로 100일을 맞았다. 대작이 실패하고 불공정 행위로 제작사들의 비판을 받았다.

흉흉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엄청난 돈을 쏟아 부은 드라마가 망하자 오너가 회사 복도에 붙어 있는 드라마 포스터를 찢었다는 이야기, 어느 종편은 벌써부터 매각설이 증권가 정보지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어느 종편은 개국공신들을 전부 숙청할 것이라는 이야기…. 모두 종편과 관련해서 나오는 ‘괴담’들이다.

JTBC, 채널A, TV조선, MBN. 종편 4사가 3월9일로 개국 100일을 맞았다. 그러나 지난 100일간 각 채널이 방송한 프로그램 중에서 이슈가 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화제가 되었던 것은 채널A 정규 뉴스가 방송사고 때문에 한참 방송되지 못했다는 사실, TV조선의 설 특집 드라마 (아버지가 미안하다)(극본 김수현)가 방송사고 때문에 불안정하게 방송되었다는 사실 따위였다. 이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이것들이 초대형 방송사고임에도 그리 이슈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한반도)(TV조선)의 실패는 종편들을 더욱 낙담하게 만들었다. (한반도) 시청률은 2월6일 1.649%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하락해 2월27일에는 0.866%까지 떨어졌다(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가구 대상). 는 각개약진하던 종편 4사가 모래시계 효과를 노리며 이례적으로 공동 홍보를 해줄 정도로 기대를 건 작품이었다. 

언론 재벌 3세·4세 리더십 ‘상처’

이제 종편들은 감히 MBC·KBS·SBS와 같은 지상파가 자신들의 경쟁 상대라고 말하지 않는다. 삼성 등 대기업이 이들 종편의 광고단가를 지상파의 25% 선으로 결정했는데 이마저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개국 초기 이들은 종편 광고 단가를 지상파의 70% 수준으로 요구한 바 있다). 한 종편 관계자는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광고 단가가 더 떨어졌다. 요즘은 시청률만큼도 못 받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12월부터 2월까지 종편 평균 시청률은 0.3%대(JTBC 0.382%, 채널A 0.323%, MBN 0.321%, TV조선 0.296%-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가구)로 지상파 평균 시청률(5~7%)의 5% 수준이다. 4사 시청률을 모두 합쳐도 1.3~1.4%밖에 되지 않아 EBS 시청률을 조금 넘는다.

이마저도 시청률 집계기관이 종편에 편의를 봐준 결과라는 지적이다. 보통 다른 케이블TV 채널은 시청률을 환산할 때 24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종편은 06~25시(01시) 기준으로 시청률을 산출한다. 06시 이전과 25시(01시) 이후 저조한 시간대 시청률은 빼고 계산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 시청률은 다른 케이블TV 채널 시청률에 비해 과다 계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국언론노조 (뉴스타파) 제작팀이 케이블TV를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 종편들의 시청률은 케이블TV에서도 중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같은 실적은 이들 종편을 운영하는 언론사 차세대 경영인들의 리더십에도 상처를 남기고 있다. 현재 각 종편에는 방정오 (조선일보) 뉴미디어실 부실장 겸 전략기획마케팅팀장,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 홍정도 (중앙일보) 전무 등 언론 재벌 3세·4세가 직간접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3세의 경영능력 가늠자가 될 종편이 죽을 쑤고 있는 것이다.

종편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시간을 종편 개국 직전인 지난해 11월 말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종편 4사 수뇌부가 모여서 격론을 벌였다. 요지는 준비가 덜 되었으니 종편 개국을 늦추자는 것이었다.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가 개국 연기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JTBC가 고집을 부렸다. 1980년 11월30일 정파했던 TBC(동양방송)를 잇는다는 의미로 12월1일부터 개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12월1일 개국이 결정됐다.

준비가 덜 된 개국의 결과는 참담했다. 가장 헤맨 곳은 TV조선이었다. 프로그램 준비가 덜 되어 급히 영화를 구매해 땜질 편성을 해야 했다. TV조선은 일단 개국 후 프로그램을 확대·편성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믿었던 까지 무너지면서 초반의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청률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TV조선은 (시사IN)이 종편 개국 100일을 맞아 현직 PD와 방송작가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60~61쪽 딸린 기사 참조).


ⓒTVb조선 제작비 100억원을 들인 TV조선 드라마 <한반도>(위)는 시청률이 1% 아래로 떨어졌다.

현재 TV조선은 (한반도)의 실패 이후 관련 간부들을 문책하고 이를 축소·편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종편 관계자는 “대작 전략은 신생 채널인 종편에 유의미한 전략이다. 단 뚝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꼬리를 내려서 현업 제작자들의 의지를 꺾었다”라고 논평했다.

채널A는 다른 케이블TV 채널에서 보류했던 아이템들을 받아다 급히 편성했다. 그러나 설익은 기획을 덥석 물었다가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제작비에 비해 프로그램 반응이 좋지 않아 몇 회 방송하고서 프로그램을 조기 종영했던 것이다. 

MBN은 기존에 방송하던 뉴스·시사 프로그램에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더 제작해 확대 편성했는데, 세심한 전략 없이 이를 편성했다가 뉴스·시사 프로그램만 내보낼 때보다 시청률이 급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현재 MBN은 다시 보도채널로 회귀해 낮 시간에는 뉴스·시사 프로그램만 편성하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개국 초기 다른 종편 시청률의 곱절이었던 JTBC 또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종합 시청률이 꾸준히 하락해 요즘은 다른 종편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일일 시청률에서 종편 4사 중 꼴찌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른바 ‘조·중·동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JTBC 측은 자신들을 다른 채널과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다른 채널에 비해 나은 것이 없는 상황이다.


적자폭 500억~600억원대 예상

JTBC 한 관계자는 “일정한 성과도 있었다. 기존 케이블TV가 해내지 못한 것을 JTBC가 해냈다. 평일 9시 시간대에 드라마 편성을 자리 잡게 한 것과 주말 8시 시간대 연예·오락 프로그램 시간대를 개척한 것은 성과다. tvN이 간판 프로그램인 를 주말 8시에 편성한 것만 봐도 우리가 선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항변했다.

종편은 개국 시 특혜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방송 종사자들에게는 환영받기도 했다. 방송 채널이 늘면 일자리가 증가하고 프로그램 수요도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국 100일이 지난 지금 방송가의 시선은 싸늘하다. 지난 3월12일 종편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제작사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독립제작사협회 명의로 된 성명서에서 이들은 “종합편성채널이 불공정한 계약을 일삼고 있다. 계약 없이 제작을 먼저 하게 한 후 제작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 제작비의 일방적 삭감과 편성 수시 변경, 협찬금의 불공정한 분배, 외주사 프로그램 포맷의 무단 사용 등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폭로했다.

외주 제작사들에게 종편 편성 간부들은 ‘꼴갑’이라 불린다. 시청률도 낮고 제작비도 적어 제대로 ‘갑’ 축에도 들지 못하면서 깨알같이 ‘갑’ 대우를 받으려는 행태를 비아냥대는 것이다. 독립제작사협회 배대식기획팀장은 “종편이 개국하면 지상파 독점의 방송시장에 숨통이 트여 제작 환경이 개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반대다. 개국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프로그램이 25편이다. 손해는 고스란히 외주 제작사들이 떠안았다”라고 주장했다.

조만간 종편 4사는 봄 개편을 하리라 보인다. 하지만 말이 좋아 개편이지 사실상 ‘축소 편성’이 될 것으로 다들 예상한다. TV조선은 애초에 준비했던 계획 중 ‘플랜B’를 택해 뉴스·시사 채널로 가리라 예상된다. MBN 또한 뉴스·시사 채널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 채널A는 시사·교양 프로그램 중심의 채널이 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오는 중이다.

JTBC는 ‘종합편성채널’을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개국 전 채널 설명회 때 종편사들은 제작비를 1500억~2000억원 규모로 쓸 예정이라고 광고주들에게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종편사 대부분이 축소 편성을 한 결과 그 규모는 1000억원 이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종편사들이 감내해야 할 첫해 적자 폭은 500억~600억원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제작비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는 JTBC는 적자 폭이 1000억~1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이면의 진실 추적? 탐사프로 줄줄이 없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3-16일자 기사 '이면의 진실 추적? 탐사프로 줄줄이 없애'를 퍼왔습니다.
종편 3사 폐지 혹은 잠정 보류, 토크프로로 대체…"시청률 ↓ 제작비 ↑"

종합편성채널이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방영을 보류하고 있다.
종편은 신문사를 모기업을 갖고 있는 만큼 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채널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비춰왔다. 특히 자체 제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지상파와 나란히 어깨를 겨루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지만 개국 넉 달만에 결국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JTBC (탐사코드J)는 기존 탐사프로에 대한 'Extreme Version'라는 모토로 심층성 시사를 표방한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사건이나 현상에서 실마리를 풀어가지 않는다. 사건과 현상 뒤에 숨겨진 증거, 증언, 상징을 통해 진실을 추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11회분 방송을 마지막으로 (탐사코드J)는 편성표에서 사라졌다.
JTBC 편성팀은 (탐사코드J)가 공식적으로 폐지됐다고 밝혔다. 편성팀 관계자는 "폐지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면서 "탐사보도 뉴스는 메인 뉴스에 꼭지 리포팅으로 들어가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TV 조선이 텍스트 문자와 영상의 결합의 신개념 미디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크로스미디어 탐사보도 프로그램 (현장추적 WHY)도 잠정적으로 폐지됐다.
(현장추적 WHY)는 조선일보의 주말 섹션판 신문 기사를 바탕으로 해서 영상과 결합한 크로스미디어 형태의 프로그램이다. TV 조선은 특별취재팀까지 꾸려 (현장추적 WHY) 기획물을 만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TV 조선은 (현장추적 WHY) 제작을 잠정 보류해 지난달 26일부터 방영이 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잠정 폐지인 셈이다.
TV조선 편성실 관계자는 "지면과 영상을 결합한 원소스 멀티미디어를 생각했는데 모든 아이템이 영상과 지면으로 100% 결합되지는 않아 당초 예상한 것과 달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기적인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아이템을 축적해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폐지가 아닌 휴지기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종편 탐사보도물 <현장추적 WHY> @TV 조선 홈페이지

채널A의 (잠금해제2020)도 '방송기자와 신문기자가 함께 만드는 심층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라고 홍보했지만 12월 한달간 3회분까지 방송을 내보낸 이후 메인뉴스인 뉴스 A의 탐사 보도 꼭지 형태로 편성해 놓고 있다.
채널 A는 16일 4회분을 방영할 예정이라며 (잠금해제2020) 방영을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채널 A 기획홍보팀은 "3회분 방영 이후 뉴스 꼭지로 편성해 석달 동안 공백이 있었지만 다시 독립코너로 만들어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고 문제가 될만한 현상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 채널에 비해 그나마 개국 이후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곳은 MBN이다.  MBN (시사기획 맥)은 매주 토요일에 방영돼 현재까지 15회분을 방송했다.
종편이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폐지 혹은 보류하고 이를 대체하거나 확대하는 프로그램이 인터뷰 대담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JTBC는 (탐사코드J)를 폐지하면서 (탐사코드J) 제작진을 그대로 (신예리, 강찬호의 직격토크)로 전환했다. (신예리, 강찬호의 직격토크)는 초대 인물에게 취재 기자의 특성을 살린 예리한 질문을 던져 속살을 파헤친다는 본격 인터뷰 대담 프로그램이다. 이외 JTBC에서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정진홍이 초대 인물과 인터뷰를 하는 (정진홍의 휴먼파워)과  (박성태의 피플&토크)를 방영하고 있다.
TV 조선은 지난 2월 중순부터 (토크쇼 노코멘트)를 매주 금요일 밤에 편성해 방영하고 있다. TV 조선의 인터뷰 프로그램은 (강인선의 인사이트), (최박의 시사토크 판) 등이 있다. 채널 A 역시 (박종진의 시사토크 쾌도난마), (대담한 인터뷰) 등 인터뷰 프로그램이 많다.
지상파 관계자는 종편이 탐사 보도물에 손을 떼고 인터뷰 프로그램으로 대체하는 이유를 제작비 때문이라고 말한다.
0.1%대 시청률을 벗어나는 데 드라마, 예능 뿐 아니라 자사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탐사보도물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인지도나 영향력도 떨어지면서 굳이 프로그램을 유지시킬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얘기다.더구나 예능 드라마와 달리 탐사 보도물의 경우 자체 제작을 해야 하고, 여타 자체 제작 프로그램보다 회당 제작비가 높은 것도 부담이 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최소 탐사보도물의 한 회당 제작비는 3천만 원 안팎으로 나오는데 종편이 이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고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는 얘기"라며 "반대로 인터뷰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탐사보도물보다 3분의 1 정도로 제작비가 덜 들고 시사 교양물이라는 생색이라도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012년 2월 1일 수요일

종편·SBS, ‘최시중 돈 봉투’ 왜 침묵하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201일자 기사 '종편·SBS, ‘최시중 돈 봉투’ 왜 침묵하나'를 퍼왔습니다.
종합편성채널 대다수와 SBS가 최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돈 봉투’ 의혹을 보도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언론사들은 다른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보도하면서도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어, 보도 누락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최시중 전 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한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종편 4곳과 지상파 3사 저녁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 중앙 종편 JTBC, 동아 종편 채널A, 매일경제 종편 MBN은 ‘최 전 위원장이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을 통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쪽에 5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한 의혹’, ‘최 전 위원장이 직접 친이계 한나라당 의원들 3명에게 3500만 원을 전달한 의혹’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종편사들은 최 전 위원장의 사퇴 배경을 정용욱씨의 비리 의혹과 연관지어 해석하면서도 ‘돈 봉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보도를 했다. 사퇴 배경에 대해 채널A는 27일 (뉴스A) 첫 리포트(최시중 방통위원장 사퇴, 측근 비리 의혹에 부담 느낀 듯)에서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의 수뢰 혐의로 마음의 부담을 느낀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고, MBN은 같은 날 (뉴스10) 첫 리포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사퇴)에서 “예기치 않은 측근 비리 의혹”이라고 보도해 ‘정용욱’을 언급하지 않았다.
JTBC는 31일자(NEWS 10) 11번째 리포트 (‘돈 봉투’ 당당히 걷겠다? ‘돈 정치’ 역행하는 정치권)에서 ‘돈 봉투’ 의혹 관련자로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 비서관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지만 최시중 전 위원장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JTBC의 모회사인 중앙일보도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비리 의혹이 연일 쏟아졌던 지난달 3일부터 일주일 간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에서 유독 ‘최시중’이라는 실명을 표기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 지난달 27일 사퇴 기자회견을 한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태희 대변인은 "최 위원장은 현재 건강 체크를 위해 연가를 내신 상태이고 행정적으로 사퇴 처리가 진행 중"이라며 "홍성규 부위원장이 직무 대행을 맡고 1일 전체회의는 홍 부위원장이 주재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종편에서는 TV조선 9시뉴스 ‘날’이 31일자 7번째 리포트(‘최시중 돈봉투’ 의혹, 그때 무슨 일이)에서 “전당대회 돈봉투에 의원관리용 돈봉투까지, 봉투파문에서 한나라당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친이계쪽 돈 봉투를 “의원관리용”이라고 표현해 보도했다. 그러나 TV조선도 문방위 ‘돈 봉투’ 의혹은 해당 기간 중에 보도하지 않았다.
지상파 3사 중에서는 SBS는 30일 2번째 리포트 (“책상 위에 돈봉투”…정무수석 조사 불가피할듯)에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연루된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하면서도 최시중 전 위원장 관련 ‘돈 봉투’ 의혹에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KBS는 27일 메인뉴스 1면 기사(최시중 방통위원장 전격 사퇴…비리 의혹 부인)에서 문방위 ‘돈 봉투’ 의혹은 보도했지만 현재까지 친이계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 KBS는 민주당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해 오고 있다. MBC는 31일 두 번째 리포트 (최시중 전 위원장, 친이계 의원에 돈봉투 제공 의혹)에서 최 전 위원장 관련 ‘돈 봉투’ 의혹 두 사례를 모두 지적했다.
이들 언론사들이 최시중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해봐야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들 언론사와 최 전 위원장이나 현 정권과의 관계를 보면 언론사 간의 이해 관계가 눈길을 끈다.


지상파 방송 3사 중에서 SBS는 최시중 전 위원장과 정용욱 전 보좌역에 대한 비리 의혹에 대해 가장 적게 보도했다. ©뉴스타파

동아일보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은 재임 기간 동안 지상파 등 다른 언론들의 반발에도 이른바 ‘조중동 방송’인 종편에 ‘특혜’를 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 전 위원장이 종편을 갓난아기에 빗대며 “걸음마 단계까지는 돌봐줘야 한다”며 이들 매체의 육성을 강조한 상황에서, 이들 종편들이 태생적으로 최 전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조선일보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TV조선이 동아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는 최근 동아와 중앙이 지난달 30일자 1면 지면에서 조선 출신인 김효재 청와대 수석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비교돼 눈길을 끈다.
지상파 중에서 SBS가 유독 최 전 위원장에 대해 비판의 ‘날’이 무딘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상파 3사 중에서 최 전 위원장과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비리 의혹에 대해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한 곳은 SBS였다. 27일 (뉴스타파)보도에 따르면, 1월5일부터 25일까지 메인뉴스를 조사한 결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에 대해 KBS는 5일, 8일 이틀간, MBC는 5일, 7일, 9일 3일간 보도했지만. SBS는 10일 하루만 보도해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했다. 또 같은 기간 SBS만 ‘정용욱’ 실명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주목되는 점은 최근 들어 정부·여당쪽에 SBS 출신들이 대거 포함된 점이다. 하금열 대통령실장, 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등이 청와대에 재직 중인 SBS 출신 인사들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허원제 의원을 비롯해 전 간사인 한선교 의원도 SBS 출신이다. 최근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거론되는 후보군 중에서 송도균 전 방통위 부위원장도 SBS 출신이다. 그동안 문방위에서 처리된 미디어렙 법안은 종편과 SBS를 위한 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 정권 말기 언론 분야에서 SBS쪽에 유독 유리한 정책이 적지 않다.
이들 언론사들이 향후 얼마나 ‘방통대군’이라 불린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한 검증 작업에 나설지는 미지수이지만, 언론계에서는 최 전 위원장 임기 당시 이뤄진 ‘권언 유착’의 실태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1일 사설(최시중씨의 비리·부정 단죄, 이제 시작)이라며 “최 전 위원장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밝혀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돈의 출처”라고 논평했다. 이어 한겨레는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최 전 위원장의 비리와 부정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은 1일 사설(‘돈 냄새 진동’ 한나라, 언제까지 오불관언할 텐가)에서 “최 전 위원장이 측근 비리 및 자신의 연루 의혹으로 물러났지만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당연히 내놓을 법한 진상규명 촉구 논평도 없었다”며 “한나라당이 진정 국민 앞에서 뼈를 깎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면 지금 눈앞에서 드러나고 있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 백배 사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채널A, 존폐 걸린 사고 났지만 아무도 몰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1-19일자 기사 '채널A, 존폐 걸린 사고 났지만 아무도 몰라'를 퍼왔습니다.
서버 다운으로 메인뉴스 1시간 파행, 시청률 0%대 종편의 굴욕

치명적 사고가 났지만, 아무도 사고가 났는지 조차 모르는 방송
지난 17일, 동아일보 종편 채널A에서 심각한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예정대로라면 밤 10시에 방송되었어야 할 메인뉴스 ‘뉴스A'가 10시 55분에 방송됐다. 1시간의 치명적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메인뉴스는 방송사 전체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시간 고수가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당일 채널A는 뉴스 시간을 변경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뉴스가 미뤄진 그 시간에는 같은 화면의 영상 클립이 10여 차례 정도 재방송됐다고 한다. 직접 시청한 사람에 따르면 “한 마디로 꼴불견”이었다고 한다.


▲ 1월 17일자 채널A의 메인뉴스 '뉴스A'는 예정된 시간인 10시가 아닌 10시 55분에 시작해 1시간 여의 방송사고가 났다.

하지만 시청률 조사기관의 편성표에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 재방송되었다고 나와 있다. 채널A 홍보실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이 재방송되었는지 홍보실에서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본 사람을 수소문했다. 직접 방송을 봤다는 한 방송사 관계자는 “개국쑈 등 5~6분 정도로 편집된 화면이 한 10번 정도 반복돼서, 화면을 다 외울 정도였다”며 “통상적으로 방송사에서 예비로 만들어 놓는 영상화면(방송계 속어로 ‘쿠션’)을 계속 튼 것 같다”고 전했다. 엄청난 방송 사고가 났지만, 사고가 났다는 사실 조차 잘 확인되지 않는 방송. 그 시간의 채널A 시청률은 0.149%였다.
채널A, 디지털 방송의 핵심 시스템인 ‘스토리지 서버’ 다운
이런 문제는 왜 벌어진 것일까? 복수의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이날 채널A의 방송 사고는 ‘스토리지 서버’(storage server, 저장장치)의 다운 문제라고 한다. 스토리지 서버란 기억 장치 또는 저장 장치로 방송 시스템에선 화면 데이터와 송출 명령어를 저장하기 위해 사용된다. 뉴스가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된 이후 가장 핵심적이고 총체적인 중앙 시스템 장비이다.
취재 결과 채널A의 방송 사고는 스토리지 서버 증설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였다. 방송 종료 후 스토리지 서버를 증설했어야 했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방송 도중에 스토리지 서버 증설 작업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 돼, 저장된 정보를 인식하지도 데이터를 읽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17일 사고 이후 아직까지 스토리지 서버가 복구되지 않고 있단 점이다. 2만 여개의 비디오클립이 날아갔고, 큐시트에 맞춰 디지털화 된 화면을 자동으로 연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채널A에 스토리지 서버를 설치한 업체는 미국 회사인데 아직 입국조차 하지 않았고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을 전달했다고 한다. 채널A의 엔지니어들은 현재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고 한다.


▲ 지난 해 12월 7일자 '동아일보'는 1면에서 자사 종편 채널의 뉴스 시청률이 1위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치명적 방송사고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지지조차 않았다. 결국 시청률이 사실상 0% 이다보니, 메인뉴스 시간에 한 시간씩 방송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르고 방송국도 쉬쉬할 수 있는 셈이다.

방송사고 이후 개별 USB에 리포트 담아 뉴스 송출 중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에 그러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 방송 기술 전문가는 “스토리지 서버는 디지털 방송 장비의 핵심이다. 스토리지 서버가 없다면 기자들이 만든 화면을 일일이 컴퓨터를 옮겨 다니며 복사를 해서 손으로 날라 방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금 채널A의 기자들은 취재한 화면을 편집해 USB에 담아 스튜디오 부조실로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 기술 전문가는 “스토리지 증설은 원래 방송 종료 후에 해야 하고, 오류가 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하지만 “채널A의 경우 방송 도중에 증설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개국 준비 부족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영상 편집 및 화면 구성의 체계화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다. 현재, 방송 시스템은 촬영 테이프를 비디오 데크에 넣는 것이 아니라 촬영한 화면을 파일로 전환해, 컴퓨터에 입력해 뉴스 전체를 아예 하나의 비디오 파일로 만들어 큐시트에 맞게 배열해 전송하는 방식이다.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이 작업을 전혀 수행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취재한 리포트를 USB에 담아 각각 부조실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스토리지 서버가 다운되면 중계차 연결 등 속보성 방송은 전혀 불가능 하다. 하나의 파일로 편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각의 리포트를 일일이 편집해서 별도의 저장장치에 담아 손으로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복구 불가능? 2만 여개 비디오 클립 삭제, 데이터베이스 무력화
문장으로 설명해선 잘 체감되지 않지만, 방송이 시스템이란 점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사고인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시스템의 복구가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단 점이다. 이에 대해 채널A의 한 엔지니어는 “시스템 설비의 특성상 설치한 업체가 와야만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복구가 불가능해 보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스토리지 서버 안에 저장되어 있던 2만 여개의 비디오클립 역시 사라져버려 채널A가 구축한 데이터베이스가 사실상 붕괴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게 된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 방송 기술 전문가들은 “개국을 워낙 촉박하게 졸속으로 하다 보니 시스템 구축과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상파의 경우 시스템 구축 후 충분한 시험을 거치고도 예비 시스템까지 구축해놓는다. 그래도 사고가 발생한다. 얼마 전에는 KBS에서 사고가 발생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사를 하고, 관련자를 중징계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종편 채널들의 경우 동시 개국을 하며, 미국 업체 한 곳이 동시에 4곳의 설비를 그것도 촉박하게 구축했다고 한다. 그리곤 시험방송조차 없이 개국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기술 전문가는 “종편의 방송 사고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만, 이번 사고의 경우 일회성 사고가 아니라 ‘재난’수준이라는 점이 문제인데, 그나마 백업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졌다면 모를까 방송국의 존폐가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의 경우 네트워크 장비 경험이 많은 엔지니어가 필요하고 오랜 시간 시스템의 예행연습이 필요하지만 종편 채널들은 그 과정을 무시하고 생략했다. 
사실상 0%의 시청률, 그 안타까움과 조롱 사이
방송사 메인 뉴스는 방송국의 신뢰와 직결되는 프로그램이다. 그 시간에 무려 한 시간이나 방송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채널A 나아가 종편 채널의 사회적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소수점 몇 자리까지 따져, 시청률을 측정해주고 있지만 결국 시청률이 사실상 0% 이다보니, 한 시간씩 방송 사고가 나도 아무도 모르고 방송국도 쉬쉬할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지금 채널A의 사기가 말이 아니다. 지상파 방송에선 오디오 싱크만 몇 초 틀려도 난리가 난다. 근데 채널A는 1시간이 통으로 사고가 났는데도 아무도 모른다. 내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채널A 내부 분위기가 엉망”이라고 전했다.
어찌되었건 방송사에서 치명적 사고가 발생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고를 아무도 모르고 또 쉬쉬할 수 있는 상황은 또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사고의 안타까움과 0% 시청률애 대한 조롱 사이에서 견딜기 힘든 자괴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채널A 기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쩜 열심히 리포트를 USB에 저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2011년 12월 19일 월요일

MBN 종편, 시청률 반토막난 사연


이글은 시사인 2011-12-19일자 기사 'MBN 종편, 시청률 반토막난 사연'을 퍼왔습니다.
종편 4사의 초반 판세를 분석했더니 중앙일보 계열사인 JTBC가 가장 앞섰다. 예능·드라마 분야에서 채널A를 멀리 따돌렸다. 시사·경제 분야에선 TV조선이 예상 외로 MBN을 추월했다.

종편 생존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종편 개국 전 마지막까지 개국 시점을 놓고 샅바싸움이 벌어졌다. JTBC가 12월1일 개국을 밀어붙이자 TV조선 측과 채널A 측에서 필사적으로 말렸다. 개국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JTBC 측이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1980년 11월30일 정파된 TBC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12월1일 개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속내도 있었다. 다른 종편사 채널과 출발 단계에서부터 차별화해서 종편과 경쟁하는 채널이 아닌 지상파와 경쟁하는 채널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종편 4사 중 JTBC가 가장 앞서기는 했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JTBC는 다른 종편사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드라마를 중심으로 프라임타임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압도적인 파괴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등의 드라마를 선보였지만 시청률은 1%를 넘는 정도였다. 지상파 드라마와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앞부분을 보지 않으면 중간에 시청자가 유입되지 않는 드라마 특성상 특별한 이슈를 만들어내지 않는 한 JTBC가 반등을 이뤄내기는 쉽지 않으리라 보인다. 


ⓒ뉴시스 종편 4사의 초반 판세는 JTBC과 TV조선이 앞서고 있다는 평가다.

종편사 중에서 가장 빨리 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던 동아일보의 채널A에 대해서는 우려했던 것보다는 프로그램이 잘 나왔다는 반응이다. 문제는 시청률이다. 채널A는 JTBC 수준의 편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타 종편사의 한 간부는 “채널A는 애매한 방송이다. 구색도 갖췄고 프로그램도 괜찮은 편인데 시청률이 안 나온다. 편성 전략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헤맬 것 같다”라고 평했다. 

종편 관계자들은 JTBC와 채널A가 각축하고 TV조선과 MBN이 경쟁할 것으로 예상한다. 예능과 드라마에 기반한 종편 모형이라는 점에서 JTBC와 채널A가 비슷하고 뉴스와 시사·경제 프로그램에 기반한 종편 모형이라는 점에서 TV조선과 MBN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채널끼리 준결승전을 치르면서 종편 최종 승자가 결정되리라 보인다. 

준결승전의 초반 판세는 예능·드라마 모형에서는 JTBC가 채널A에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채널A는 JTBC와 비슷한 편성을 하고도 시청률은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뉴스와 시사·경제 모형에서는 TV조선이 MBN을 빨리 따라잡았다고 평가된다. 10년 이상 케이블 채널을 운영했던 MBN을 TV조선이 단숨에 추격할 수 있었던 비결로는 충성도 높은 신문 독자가 꼽힌다. 사실 TV조선은 가장 준비되지 않은 종편이었다. 이는 시청률 상위 10위 프로그램 중 2편이 영화( )였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급한 대체 편성이 많았다. JTBC의 한 관계자는 TV조선에 대해 “이건 종편이 아니다. 그냥 프로그램 중간 유통업자일 뿐이다”라고 폄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JTBC와 채널A가 90% 정도 패를 보여준 상황인 데 비해 TV조선은 70% 정도밖에 패를 꺼내지 않은 상황이라는 반론도 있다. 더욱이 TV조선은 처음부터 2등 전략이었다. 1등(JTBC)의 행보를 보고 단계적으로 추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단 2등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로 인해 내분이 일기도 했다. ‘중앙 종편에 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내부 보고서가 작성되기도 했다. TV조선 윤석암 편성실장은 “단계적인 편성 전략을 쓸 예정이다. 시청률이 저조할 때 카드를 함부로 쓰는 것은 위험하다. 먼저 기반을 다지고 서서히 추격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JTBC 측에서는 TV조선이 드라마를 정규 편성하면 만만치 않은 적수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MBN, 기존 시청자를 버렸다

지난 17년 동안 케이블TV 채널을 운영했기 때문에 종편사 중에서 가장 알찬 장사를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MBN은 현재 종편사 중에서 가장 확실하게 손해를 보았다. 11월까지 평균 시청률이 0.5% 정도로 케이블 채널 중에서 상위권이었던 MBN은 종편 개국 후 시청률이 0.3%대로 떨어져 반토막났다. 

MBN의 실패는 특화된 시청자 층을 겨냥하는 케이블TV 편성 전략을 버리고 무리하게 전체 시청자를 겨냥하는 편성을 했다가 기존 시청자도 잃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8월 수해 보도 이후 경쟁사인 YTN을 제치기까지 했던 MBN의 시청률이 하락한 것에 대해 한 MBN 기자는 “MBN은 경제뉴스라는 특화된 강점이 있었다. 돈 때문에 이 채널을 보던 사람들이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을 정신이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1991년 SBS는 6개월 이상의 시험 방송을 거쳐 개국했다. 당시에는 케이블TV가 없어서 대안도 없었다. SBS가 를 통해 KBS, MBC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상파 방송사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5년이 걸렸다. 종편사 채널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종편 일주일 성적표 들여다보니


이글은 시사인 2011-12-19일자 기사 '종편 일주일 성적표 들여다보니'를 퍼왔습니다.
지상파의 독점 구도를 깨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한 종편이 첫 주 시청률0.3%, 군소 케이블TV로 전락했다. 유리하게 산정된 수치가 그 정도다. 지상파를 따라한 편성도 발목을 잡았다. 광고비 하락이 불가피하다.

부모가 과목별로 족집게 과외도 시켜주고 공부 잘하는 친구 옆에 앉아서 커닝도 할 수 있게 해주고 시험지도 유출해 주었는데 성적은 밑바닥이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지진아? 12월1일 개국한 조·중·동 종편이 이런 의심을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KBS1, EBS에나 적용돼 왔던 의무 재송신 채널에 포함되면서 황금채널(15~19번)을 배정받는 등 온갖 혜택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종편 시청률은 선동렬 방어율보다 낮게 나왔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12월1~7일 개국 1주일 동안의 종편 평균 시청률은 0.3%(JTBC 0.573%, MBN 0.336%, 채널A 0.329%, TV조선 0.315%(전국가구, 지상파 집계 기준)) 내외로, 지상파 평균 시청률인 5~7%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tvN이나 OCN과 같은 기존 케이블TV 채널(0.5% 내외)보다도 낮았고 YTN이나 EBS(1% 내외)에는 훨씬 못 미쳤다. 그나마 전반적인 시청률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른바 ‘개국발’이 떨어지면서 시청률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종편 4사가 12월1일 개국했지만 시청률은 일반 케이블TV 시청률 정도다. 지상파 수준의 제작비를 쓰는 것을 감안하면 시청률이 미미했다.

또 다른 시청률 조사기관인 TNmS가 조사한 지난 12월1∼6일 시청률 역시 모두 0.5%를 밑돌았다. JTBC 0.43%, TV조선 0.39%, MBN 0.35%, 채널A 0.3%였다. 심지어 시청률 0%를 기록한 곳도 있었다(전국 가구, 06시~25시). 12월5일 MBN이 새벽 1시59분에 방송한 (교통안전 리얼여행 드라이빙노트)는 시청률 0.000%(AGB닐슨)였다. 

케이블TV에서 일하다 종편사로 옮긴 한 편성 관계자는 “종편으로 옮긴 지상파 출신 간부나 일선 PD 중 몇몇은 시청률에 쇼크사할지도 모른다. 소수점 아래 셋째 자리까지 표시된 시청률을 들여다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라고 말했다. 

시청률이 생각보다 낮게 나오자 종편사들은 태도를 바꾸었다. 종편사들은 개국 전까지 자신들의 경쟁자는 기존 케이블TV가 아니라 지상파 채널이라고 공헌했다. 지상파 수준의 제작비, 혹은 그 이상을 들여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며 광고주들에게 지상파 70% 수준의 광고비를 요구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즉 시청률이 형편없이 나오면서 이제 모든 기준은 다른 케이블TV 채널이 되었다. ‘케이블TV치고는’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기 시작했다. 12월5일 (중앙일보)는 “평균 시청률이 0.3∼0.4%인 케이블 방송에서 시청률 1%를 넘으면 ‘성공’, 2%를 넘기면 ‘대박’으로 인정받는다”라고 보도했다. 지상파의 독점을 깨겠다는 ‘대망’에서 물러나 케이블TV ‘골목대장’을 자처한 것이다. 



3~4가구에 시청률 판도 바뀌어

도토리 키재기 식 경쟁을 하고 있는 종편사들은 시청률 0.1%를 놓고도 다투는 중이다. 그런데 시청률 조사를 하는 AGB닐슨과 TNmS의 시청률 조사 표본은 각각 3130가구와 3000가구이다. 시청률 0.3%라면 3000여 가구 중 평균 10가구 정도가 종편 중 한 곳을 시청한다는 얘기인 셈이다. TV조선의 한 편성 관계자는 “사실상 무의미한 시청률이다. 3~4가구가 종편사 채널을 틀어놓고 잠이라도 자면 시청률 판도가 바뀐다”라고 말했다.  

시청률이 형편없게 나오자 종편사들은 희한한 분석 방법을 동원해 자사 프로그램을 홍보하고 있다. 12월3일자 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한 관계자의 말을 빌려 ‘개국 첫 뉴스 시청률이 유료 방송 가입가구 기준 1.06%라는 것은 의미 있는 수치’라며 ‘지상파 시청률로 환산하면 13∼14%로 추산된다’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언급된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케이블TV와 지상파는 환경과 시청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없다. 기자가 오버했다”라고 일축했다. 

여기서 종편사 시청률과 관련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AGB닐슨과 TNmS 등 시청률 집계기관이 시청률이 실제보다 ‘과다 계상’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케이블TV 시청률은 24시간 기준으로 산정된다. 그런데 지상파 시청률은 06~11시, 17~24시(휴일 06~25시)의 시청률만 산정된다. AGB닐슨의 경우, 종편사들도 지상파 시청률 기준을 적용받음으로써 0~06시, 11~17시 사이의 시청률이 낮은 시간대는 시청률 집계에서 빠진다. 이렇게 되면 시청률이 다른 케이블TV 채널보다 높게 계산되는데, 이 차이는 대략 25%에 이른다. 그러므로 종편사 채널 시청률과 기존 케이블TV 시청률을 비교하려면 종편사 시청률에서 20~30% 정도를 빼는 것이 합리적이다(TNmS는 06시~25시로 적용). 

이렇게 지상파와 케이블TV 사이에서 ‘박쥐 행각’을 벌이는 종편사를 시청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것은 종편사에게 중요한 지점이다. 종편 채널을 지상파에 준하는 방송사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신생 케이블TV로 받아들이느냐는 종편사 성공의 열쇠다. 전자일 경우 광고영업 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종편사는 자신들이 지상파를 대체할 글로벌 미디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후자였다. 이것은 시청자들의 시청행태 분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GB닐슨의 시청률 자료를 보면 시청자들의 시청 총량에서 지상파 채널은 11월 한 달 평균 19.253%를 기록하던 것이 종편 개국 후 1주일 평균 19.024%로 약 0.230% 감소했다. 반면 케이블TV 채널은 11월 한 달 평균 13.404%를 기록하던 것이 종편 개국 후 1주일 평균 12.857%를 기록해 약 0.550% 감소했다. 이 기간에 종편은 1.3%를 기록했다. 

이 자료를 통해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종편사들의 전체 시청량은 지상파 전체 시청량의 7%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과 지상파 시청률 감소보다 케이블 채널 시청률 감소가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편 채널이 지상파 대비 7% 정도의 광고 효과밖에 내지 못한다는 것과 시청자들의 지상파 우선 시청 패턴을 바꾸지 못하고 기존 케이블TV 시청자를 끌고 온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종편을 보는 시청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AGB닐슨의 시청률 조사 결과를 보면 종편의 시청자는 연령대가 높았다. 남자는 60대 이상이 주로 시청했고 여성 역시 40~60대로 중장년 연령층이었다. 연령층은 특히 TV조선이 높아서 남녀 모두 60대 이상이 주로 시청했다. 이렇게 특정 계층 중심으로 시청자 층이 형성된 것을 보면 종편은 지상파 채널처럼 종합 채널이 아니라 다른 케이블TV 채널처럼 타깃 시청자 층을 가지고 있는 채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종편사 채널의 시청률 조사 결과를 보면 또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황금 시간대가 형성되지 않고 시간대별 시청률 패턴이 일정하다는 것이다. 종편 시청률은 오전에는 조금 낮은 편이고 오후부터 증가하는데, 이때부터 늦은 밤까지 시청률 차이가 나지 않고 거의 일정하다. 단, 종편 중에는 유일하게 JTBC가 시트콤 방영 시간과 드라마 방영 시간대를 중심으로 프라임타임을 형성하고 있었다.  


망하지 않으려면 편성 줄일 수밖에

종편사 채널이 황금 시간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종편사들이 지상파와의 프라임타임 시청률 싸움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종편사들의 광고 영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종편사들의 광고 단가는 프라임타임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단가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라임타임을 형성하지 못한 것은 편성 전략의 실패를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종편사들은 기존 케이블TV 채널의 편성보다는 지상파에 준하는 혹은 맞서는 편성을 했다. 지상파 편성을 거의 그대로 도입하거나 약간 시간대를 바꾼 ‘변형 맞배 편성’을 한 것이다. 이는 지상파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을 흔들어 종편 채널로 유입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JTBC 주철환 편성본부장은 이에 대해 “현재 적용된 지상파의 편성은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을 감안한 가장 과학적인 편성이라고 보고 이에 준하는 편성을 했다”라고 종편 개국 전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종편사들의 이런 편성 전략은 지상파 시청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함으로써 난관에 봉착했다. 특히 ‘개국발’이 사라지고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편성 기조 또한 흔들리기 시작했다. 케이블TV가 쓰는 전가의 보도인 ‘재방’ ‘삼방’ 카드를 벌써부터 꺼내든 것이다. TV조선의 한 관계자는 “JTBC 편성이 1주일 만에 흔들렸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재방·삼방을 남발하고 있다.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라고 이해는 하지만 저렇게 하면 편성이 흔들린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종편 시청률이 현재의 시청률인 0.3%(지상파 집계 기준) 내외로 고착되면 어떻게 될까? 혹은 JTBC처럼 0.6%(지상파 집계 기준) 내외를 기록하면 어떻게 될까? 한 종편사 경영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제작비 규모로 0.3%대밖에 기록하지 못하면 1년 안에 망하고, 0.6%대밖에 기록하지 못하면 3년 안에 망한다. 계산이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종편 시작 전 한 언론사주가 “신문만 하면 천천히 망하고 방송을 하면 빨리 망한다”라고 한 예언이 들어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현재 종편사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tvN이다. tvN의 평균 시청률은 0.5% 정도인데, 광고로 연간 70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시청률이 비슷한 JTBC도 이 정도의 광고 매출액을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제작비다. 보도국이 없고 조직이 슬림한 tvN은 이 정도의 광고 매출액으로도 수지를 맞출 수 있지만 대규모 보도국 인력을 보유하고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의 제작비율이 높은 JTBC는 1년에 1800억~2000억원 정도를 제작비로 쓴다(채널 설명회 때 이렇게 발표했다). 단순 수치상으로도 1000억원 이상 적자가 예상된다. JTBC가 수지를 맞추기 위해서는 1.5~2% 정도의 평균 시청률이 필요하다. 그래서 JTBC는 이 수치를 시청률 목표로 삼고 있다.  

이제 막 출발선을 벗어난 종편의 미래에 대해서 일주일간의 시청률만 보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시청률로는 미래가 어둡다는 것이다. 한 종편사 간부는 “현재와 같은 시청률이 계속 나온다면 종편은 다 망한다. 망하지 않으려면 편성을 줄인 ‘중편’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고 단언했다.

ⓒ매일경제 제공 12월1일 종편 4사 공동 개국식에 정부 요인들이 두루 참석했다.

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종편 출연은 십자가에 매달아야할 부역인가?


이글은 미디어스 2011-12-16일자 기사 '종편 출연은 십자가에 매달아야할 부역인가?'를 퍼왔습니다.
'진보진영의 종편 출연, 어떻게 볼 것인가' 집담회

진보 진영 인사의 조중동매경 종합편성채널 출연, 프로그램 제작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허지웅 영화평론가와 독립 다큐멘터리 이성규 PD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아일보) 종편 ‘채널A’의 영화프로그램에 출연한 허지웅 영화평론가에게 “나무 십자가에 매달아 공개 화형하자”는 극언이 쏟아졌다. (시사IN) 고재열 기자는 허지웅 평론가는 ‘부역자’라는 비판과 함께 “조중동 종편의 유일한 성과는 허지웅 밥벌이를 해결해 준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종편출연 논란은 개인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 방식으로 이뤄질 뿐, 누구하나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애정남이 필요한 상황이다.


▲ 12월 14일 저녁 7시 신촌 위지안에서 언론연대, 문화연대 주최 '진보진영, 종편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권순택

지난 14일 (진보진영, 종편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에서 (안티조선운동사) 저자 한윤형 자유기고가는 “종편에 출연하는 개개인에 대해 타격을 가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종편출연은 절대 안 돼’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
한윤형 자유기고가는 “‘종편출연은 안 된다’는 기준을 잡으면 사실상 조중동매경의 모든 계열사까지 거부해야한다”며 “그러나 그런 식의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윤형 자유기고가는 ‘삼성불매운동’을 예로 들어 “삼성이란 기업에 비판적 인식을 하고 있어 불매운동을 동참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공짜폰을 받으려고 삼성을 (어쩔 수 없이)쓰시는 분도 있다.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삼성 제품을 쓰게 되는 경우인데 이 사람들 전체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또한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대기업과 건설 보도에 대한 감시는 시민의 역할이지만, 그렇다고 이들 신문에 삼성과 건설 광고 없이 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목숨 걸어라’는 수준의 이분법 사고를 강요하게 되면 결국 (경향신문), (한겨레), (시사IN)은 존재할 수 없다. 이들 신문이 사라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인가?”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윤형 자유기고가는 ‘내편 네편’ 시각으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연아 선수가 정치적 발언을 하길 원하느냐?”고 물었다. 이어 “(종편출연에 대한 지금의 이분법사고에서) 김연아 선수가 (조선일보)를 비판하더라도 사람들은 ‘삼성 돈 받고 피겨타면서’라는 비판을 가할 것”이라며 “스포츠 칼럼 웹툰 모두 포털을 통해야한다. 이들에게 역시 ‘여론을 왜곡하는 곳에서 밥 벌어먹으면서’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윤형 자유기고가는 “종편에 참여하는 진보적 교수가 있다면 종편을 통해 일할 기회를 얻게 되는 노동자들도 있다. 허지웅 평론가의 사례는 그 중간”이라며 “이들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는데 적절성과 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복받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 정치적 발언을 가로막는 기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종적 판단은 ‘충분히 고민한 개인’에게
김진혁 EBS PD([지식채널e] 등 제작)는 “종편 출연을 진영의 논리대로 ‘네편’과 ‘내편’을 극단적으로 나누는 것은 경계해야한다”며 “비판할 수는 있지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적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최종적 판단은 개인에게 맡기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김진혁 PD는 그러나 ‘충분히 고민한 개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과연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은 개개인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진혁 PD는 “언론인의 자세는 언론인으로서 사사로운 이익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전달자 역할”이라며 “어느 곳에서 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조선, 중앙 등에서 일하는 것은 이 자세를 지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제자의 종편 진출을 막을 수 있나’는 물음에 토론회 사회자인 전규찬 교수는 “조중동 종편에 간다고 하더라도 ‘하지 말라’고 말 못할 것 같다”, “오히려 거기에서도 가능할 수 있으니 기왕에 간 거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할 것 같다”고 답했다.
전규찬 교수는 “KBS가 이명박 정부 이후 작살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출연하고 있다”면서 “KBS에 출연하는 것과 종편에 출연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계속 든다”고 밝혔다.
원용진 서강대 교수는 “종편을 반대할 당위는 있다. 조중동 신문의 이웃이라기보다는 ‘편법’, ‘불법’, ‘위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종편반대 투쟁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가 만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유저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의 형식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토론자인 김완 기자는 “진보진영이 현재 지상파를 막연한 우리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정권을 되찾아 사장 갈아치우고 보도국도 싹 바꾸면 다시 좋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안이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종편반대투쟁 이전에) ‘지상파 정상화’라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이성규 독립PD가 10년 이상 찍은 (오래된 인력거)를 지상파가 아닌 종편에 납품됐다”며 지상파와 계약하게 되면 저작권 자체를 해당 방송사에 넘겨야하는 불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완 기자는 “여전히 지상파는 수퍼갑이란 사실”이라며 “지상파가 약탈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근 10년 간 주요 운동과제가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상파가 공정 거래를 확립한다면 완성도가 높은 외주·독립제작사들의 콘텐츠가 종편으로 가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지상파를 정상화시키는 운동은 종편 반대투쟁과 다른 말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2011년 12월 17일 토요일

채널A? <동아일보>는 1975년에 죽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16일자 사설 '채널A? 는 1975년에 죽었다!'를 퍼왔습니다.
[프레시안 books] 김삼웅의

이태 전쯤 인터넷을 뒤지다가 간부가 쓴 묘한 칼럼을 발견했다. 이른바 '87년 체제'를 낳은 1987년 6월 항쟁 때 동아일보가 한 대단한(?)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때 태어나지도 않은 가 무슨 할 말 있느냐고 힐난하는 투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슨 망발이냐고 블로그에 몇 자 썼더니 댓글들이 붙었는데, 그 중에 기가 막힌 게 있었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목숨을 걸고 맨 처음 보도한" 사람이 동아일보 아무개 기자였다며, 를 "악질적 옐로페이퍼"로 몰더니 이런 댓글을 하나 더 달았다.

"한마디만 더 하지요. 유신 시대에 동아투위, 조선투위가 얼마나 처절하게 유신정권에 저항했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이 득의양양 용감무쌍한 '논객'은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조선투위(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가 그 신문사 재직 기자들 조직이고, 그들이 속한 그 신문들이 피눈물 나게 싸운 덕에 저 역사적 6월 항쟁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따위가 어디 감히! 뭐 그런 식이었는데, 칼럼을 쓴 간부의 의식 수준이 설마 동아투위, 조선투위가 그 신문사들 전위 조직쯤 되는 걸로 여긴 그 '논객'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그 양자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 1987년 여름 전두환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휩쓸고 지나간 뒤 열리기 시작한 좁다란 자유의 공간을 비집고 노동자들의 대투쟁이 시작됐다. 그때 창원 공단에 그걸 취재하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갔던 나는 혼쭐이 났다. 지게차를 끌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현장 노동자들이 삽시에 나를 에워싸였다. 그들은 험악한 소리를 내지르며 카메라를 빼앗더니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박살난 카메라를 아까워하기는커녕 미처 뭐라 항변할 새도 없이 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내 멱살을 잡았다. 그 긴박했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지만, 단말마의 비명과 외침이 오가는 우여곡절 끝에 어쨌든 간신히, 무사히 풀려났다.

그때 그들이 외친 구호가 놀랍게도 "기자들 다 죽여라!"였다. 설마 살인을 저질러도 좋다는 얘긴 아니었겠지만, 그만큼 언론사와 기자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격했다. (어쩌면 속으로 타고 있을 뿐,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때 그런 시위 현장에서 기자들은 기자가 아닌 양 행세해야 했다. 그런 판에 떡 하니 카메라를 들고 나가 겁 없이 여기저기 겨누며 셔터를 눌러댔으니.

그 시기를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당시 기자들은 그들에겐 거의 공적, 공공의 적이었다. 칼럼을 쓴 간부가 완전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그때 그나마 한두 줄짜리 시국 관련 기사들을 흘리고, 아주 완곡하게 에둘러가긴 했지만 그래도 그 서슬 퍼런 체제에 싫은 소리를 하는 지사풍의 용감한 칼럼니스트들 글을 가끔이나마 내보낼 수 있었던 매체는 가 거의 유일했다. 그 정도는 분명 평가할 수 있다. 살벌했던 당시 상황에서 행보다는 행간을 읽어야 했던 일부 사람들에게 는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기자들 다 죽여라!"는 시위 군중의 구호가 상징하듯, 그때 한국 주류 언론은 사실상 완전히 죽어 있었다. 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얼음 밑에서도 살아 움직이던 양심적인 기자들이 아주 없진 않았고 당연히 그들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겠지만, 칼럼을 쓴 그 간부처럼 가 그렇게 으스댈 만한 역할을 한 건 전혀 아니었다고 해도 좋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옳지.

1975년 3월 15일 당시 편집국장 송건호가 사표를 냈다.

"한 둘도 아니고 수십 명을 내 이름으로 해임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양심상 도저히 그 자리에 그냥 눌러 있을 수가 없었다. 50여 명을 내 이름으로 해임한다는 것은 죽으면 죽었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도 사랑하는 처자가 있고 설혹 방법상 다소 이견이 있더라도 언론의 독립과 자유라는 어느 시대에 내놓아도 떳떳한 명분을 가지고 투쟁하는 그들을 해임할 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이번 파동도 나를 위해 생긴 일이 아니었던가."


▲ <송건호 평전 : 시대가 투사로 만든 언론 선비>(김삼웅 지음, 책보세 펴냄). ⓒ책보세
그 전 해인 1973년 10월 23일 서울대학교 농업대학 학생 김상진이 유신 철폐를 주장하며 자결했다. 격렬한 교내 시위가 벌어졌지만 신문과 방송은 침묵했다. 그때 유일하게 1단짜리 기사로나마 그 소식을 전한 것이 였고, 그렇게 하도록 지시한 사람이 편집국장 송건호였다.

보이지 않는 행간을 읽어야 의미를 제대로 짐작할 수 있는 그 짤막한 기사가 나간 날 낯선 세 명의 기관원들이 들이닥쳐 송건호를 연행했다. 그렇게 연행될 줄 알고 그는 미리 속옷을 두툼하게 차려 입고 있었다.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한 번 가면 열다섯 시간은 족히 걸리는, "언제 끌려가도 기분 나쁜" 그 연행, 그가 "나를 위해 생긴 일"이라고 했던 그 "파동"을 낳은 연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기자들이 농성을 시작했고 다음날인 10월 24일 등의 기자 180여 명이 박정희의 유신 독재 이후 미동도 하지 않던, 나중에 폭로된 '보도 지침'에 압축된 끔찍한 언론 통제 체제에 대한 선전 포고인 '자유 언론 실천 선언'을 발표했다.

"신문·잡지·방송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하고, 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하며, 언론인의 불법 연행을 일체 거부하고, 동료 기자가 연행되면 풀려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결의한다."

기자들의 자유 언론 수호 운동은 1973년 가을부터 시작됐으나 1974년 1월 초법적인 대통령 긴급 조치 선포로 움츠러들었다. 기자들은 무시로 연행됐고 구속당했으며 잘렸다. 당시 독재 정권은 일본 서울 지국까지 폐쇄하고 특파원을 추방했으며 국내 수입·배포도 금지했다. 방위병이 변심한 애인 집에 가서 불을 질러 집이 좀 타다 만 사건을 짤막하게 내보냈다고 와 편집국장들을 비롯한 10여 명이 끌려갔다.

신문사에 상주하며 기사 내용과 형식까지 통제하던 기관원들은 그들을 붙잡아다 놓고 "군과 민간을 이간질시켰다"며 '빨갱이'로 몰았다. 서울 달동네 연탄 값이 아랫마을보다 세 배나 더 비싸다는 기사를 쓴 기자는 상을 받는 대신 "민중 봉기를 획책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죽도록 맞았다. 대학생 김상진이 할복 자결을 결심한 시절의 세상 꼴이 그랬다. 신문·방송 뉴스의 내용과 크기를 결정한 건 그들 기관원이었다.

기자들과 거의 동시에 기자들 150여 명도 자유 언론 실천 선언을 발표했다. 긴장한 정권은 신문사 사주를 압박해 수십 명의 기자들을 해고하고 윽박지르는 공작을 벌이다가 그게 먹혀들지 않자 직접 칼을 빼들었다. 1974년 12월 10일부터 시작된  광고 해약 사태가 그것이다. 다음해 1월 25일까지 광고의 98퍼센트가 떨어져 나갔다. 에 광고를 계속 실었다가는 기업이 망할 판국이니 광고주들도 어쩔 수 없었다.

1974년 12월 26일부터 광고 지면이 활자가 완전히 빠져버린 채 하얗게 나간, 언론 역사상 특기할 만한 백지 광고 사태가 시작되자 그 빈자리를 시민들이 자발적 개인 광고로 메우기 시작했다. 1975년 5월까지 하루 평균 350건, 모두 5만 건에 이르는 개인 광고들이 광고 지면을 장식했다. 봉기에 가까운 시민 저항이었다.

이 뜻하지 않은 사태 전개에 당황한 권력은 마침내 사주를 압박해 기자들을 무더기로 몰아냈다. 160여 명의 기자들, 30여 명의 기자들이 그때 쫓겨났다. 죽었으면 죽었지 그 쫓아내는 역할을 내 손으론 못하겠다며 스스로 자신을 자른 사람이 바로 송건호였다.

한국 언론사, 아니 한국사를 바꾼 그 사건으로 는 그때 다시 죽었다. 식민 지배자들이 폭발을 막기 위해 내준 '바람구멍'이었던 , 는 1930년대 일제에 완전히 투항하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민족주의적 색깔마저 버렸다.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과 함께 그들은 그때 죽었고, 광복 뒤 미국 점령군 치하 친일파 대변지를 자임하면서 거듭 죽었으며, 1975년 그때 또 죽었다. 그 이후, 는 살아났나?

저 용감무쌍한 '논객'이 얘기한 동아투위, 조선투위는 , 기자들이 제대로 된 보도를 쟁취하기 위해, "처절하게 유신 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아니라 유신에 철저하게 복무한 유신 기관지 , 와 싸우다 쫓겨난 기자들이 그 신문사들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는 사실조차 그 논객은 몰랐던 것이다.

그 자신 그 엄혹했던 시절의 투사요 기록자였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책보세 펴냄)는 그 시절을, 송건호의 일대기를 매개로 일목요연하고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다.

쫓겨난, 아니 자신을 쫓아낸 송건호는 당신께서도 거듭 자인했거니와 결코 타고난 투사가 아니었다. 통상적 의미의 대범과 호방도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진짜 투사로 단련시킨 건, 예컨대 이런 가혹한 현실이었다.

"아이들 여섯을 데리고 어떻게 사나? 다음 달은 어떻게 사나? 아니 내년엔 어떻게 될까? 온갖 잡념이 거의 24시간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1976년이 되고 다시 77년이 되면서 처음 매일같이 집요하게 못살게 굴던 공포가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오는 것이었다. 사나흘간은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별 탈 없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안 공포가 찾아왔다. 이럴 때는 거의 미칠 것 같았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어쩌자고 이렇게 멍하니 있기만 하는가, 수입도 없고 하는 일도 없이 어떻게, 이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하면 거의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런 세월은, 나이 쉰에 직장에서 쫓겨난 바로 그 다음날부터 줄곧 이어졌다. 다음해 12월 세상을 떠난 어머니 임종도 하지 못했다. 노모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여섯 자녀를 거느리고도 돈 한 푼 못 버는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눈을 감았다"는 얘기를 "원고 집필에 바빠" 그는 전해 들어야만 했다. 편집국장 직을 쫓겨나자마자 생계를 감시와 억압 속에 이런 집필과 강연으로 꾸려야 했던 간난의 세월은 송건호를 좌절시킨 게 아니라 뛰어난 한국 현대사 연구자로 만들었고 그를 불퇴전의 재야 운동가로 단련시켰다.

저 1987년 6월 항쟁 직후 창원 공단에 카메라를 들고 간 것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펴낸 비합법 지하 매체 기자로서의 현장 취재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고함소리와 함께 다짜고짜 달려들어 내 멱살을 쥐었던 사람들에게 나는 거듭 외쳤다. "난 지 기자요!" 다행히 그들 중에 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약간의 설명 끝에 나는 풀려났다.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카메라가 박살난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맞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지.

1985년 5월에 창간호를 낸 그 을 만든 사람들이 동아투위, 조선투위 사람들이었고 송건호가 그 중심에 있었다. 1984년에 만들어진 민언협 기관지 이야말로 그 시절 다른 어떤 매체보다 언론 본연의 자세에 충실했던 언론 매체다. 을 특집호로 제작해 만천하에 그 존재를 드러내고,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협의해 세상에 공표한 것도 민언협과 이었다. 그나마 가 1단짜리로 가끔 실었던, 군사 정권이 보도 절대 엄금 지침을 내렸던 숱한 사건들과 그들의 구미에 맞지 않았던 세상 변화를 당시 가장 충실하게 보도한, 유일한 매체가 이었다.

비밀 장소에서 편집하고 식자 찍어 대장을 만들고 비밀리에 인쇄해 비밀리에 배포해야 했다. 들키면 모든 걸 압수당했고, 압수를 피해도 배포된 뒤 예외 없이 사무총장 등이 1주일 이상의 구류를 살아야 했던 은 전국적 배포망을 지닌 나름 인기 높은 매체였다. 송건호가 대표하는 민언협 멤버들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소식지 이 '87년 체제' 창출에 수행한 역할을 뒷날 역사 연구자들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6월 항쟁 당시의 전국 상황을 기자들을 현지에 파견해 가장 먼저 종합 정리한 매체도 이었고, '6월 항쟁'이란 말 자체를 '6월 항쟁 특집호' 제목으로 뽑아 그 시대의 상징어로 만들고 정착시킨 것도 이었고 민언협이었다. 그때 우리는 1946년 대구를 뒤흔들었던 10월 항쟁을 생각했다. 이 합법 매체로 기자들이 제 이름들을 밝히는 기명 기사를 쓰기 시작한 건 87년 체제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태 전 동아일보가 6월 항쟁에서 한 역할을 자랑하며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가 한 게 뭐냐고 묻던 그 간부의 칼럼은 의도적인 것이든 무지에서 비롯됐든 잘못된 것이다. 6월 항쟁 주역이 민언협 멤버도 그 한 축을 이뤘던 시민 운동 세력, 민주화 운동 세력이었다면 6월 항쟁의 정신을 고취하고 87년 체제를 만들어내는데 는 기념비적인 공을 세웠다.

왜냐하면 야말로 바로 와 가 쫓아낸 해직 기자들이 중심이 돼 만든 민언협과 의 모태로 태어난 것이며, 87년 체제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물 중의 하나가 국민주 형태로 모금해 주주가 6만 명이 넘는 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지금도 그 평가에 걸맞게 잘 하고 있느냐는 핀잔과 비판을 받기도 하는 에 대한 평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은 그때의 그 세계를 송건호 자신의 얘기와 증언들을 인용해 압축적으로 요약하면서 김삼웅 사관에 입각해서 평가한다.

그 용맹무쌍한 '논객'이 얘기한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을 "목숨을 걸고 맨 처음 보도한" 아무개 기자를 1998년 도쿄에서 만났다. 그리고 2년쯤 뒤 그는 급성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훌륭한 기자였고 품성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때가 이른바 'IMF 사태'로 불린 외환 위기 시절이었는데, 도쿄 특파원들은 갑자기 치솟은 원화 환율 때문에 실질 소득이 줄어 고생들을 했다. 도쿄 생활 비용은 차차 환율에 맞춰 조정이 되긴 했지만, 각사는 특파원 수를 줄이거나 아예 철수시키기도 했다.

의 그 기자는 그때 갑자기 불어난 일의 무게에 눌려 무척 힘들어 했다. 더 많은 술을 마셔야 하는 일을 덤으로 더 해야 했다. 1999년 연말연시든가 등산을 갔다가 통증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는 그게 계속되자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의 일본인 의사는 당장 수술을 받든지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든지 하라고 재촉했다. 서둘러 귀국하던 그와 그의 가족을 그의 집에서 동료 특파원들이 함께 모여 송별회 같은 걸 한 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 유족이 그의 산업재해 인정 여부를 놓고 회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도 회사는 산재 인정을 거부하고 있었다. 에는 그런 좋은 기자들이 많았지만, 160여 명의 기자들을 한꺼번에 쫓아낸 그 회사가 그 뒤에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김삼웅이 인용한, 김대중 내란 음모죄라는 날조 사건에 영문도 모른 채 연루돼 잡혀 들어간 뒤 당한 지독한 고문 후유증이 분명한 파킨슨씨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던 시절의 송건호 생애 마지막 저서 (1990년)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민족은 분열되어 서로 증오하고 국토도 분단되어 내 땅이면서도 마음대로 오가지도 못하고, 오늘은 여기에 붙었다가 내일은 저기에 붙고 외세에 아부하고 친해야만 '애국자' 소리를 듣는, 거꾸로 된 이 세상 더러운 시대에 왜 생을 얻어 이 고생인가 싶다. 내 죄와 고민은 하늘만이 심판할 수 있다."

김삼웅이 "모든 진정한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한 이탈리아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 그리고 "역사는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의미에서 현재에 관한 학문"이라는 스페인 생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을 인용한 건 바로 송건호 한국 현대사 연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바로 그가 때론 남루하게, 절박하게, 눈물을 흘리고 피를 토하며 살아간 그때 한국이라는 나라의 '현재'였기 때문이다.

12호에 실린 '현대사 연구의 이모저모'(1992년)에서 송건호는 말한다.

"평생을 바친 언론계를 떠나 감시 속에서 괴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인생을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고 점차 현대사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나는 괴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양심을 지키고 항일 운동을 한 애국선열들이 어떤 생활과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가를 알고 싶었다. 이리하여 나는 점차 현대사 연구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많은 자녀를 데리고 학비를 마련해야 할 경제적 곤궁과 권력의 감시 속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현실의 고통과 위기야말로 송건호 현대사 연구의 출발점이었고, 그 현실의 실천적 필요성, 절박성에 쫓긴 현재의 눈으로 한국 근현대를 재해석한 것이 그의 한국 현대사 연구였다. 모든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필요와 절박이라는 실천적 욕구를 통해 걸러지고,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모두, 예외 없이 현대사다. 달리 말하면, 그런 현재의 실천적 문제의식 없는 역사연구는 제대로 된 연구가 아니거나 의미 없는 헛짓이다.

송건호가 자신의 고통과 절박과 문제의식을 만들어낸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극히 실천적인 필요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들어가 파헤친 한국 근현대 역사의 진실은 식민 지배와 친일파, 일제를 대신한 미국의 한반도 분단과 친일파 기용을 통한 식민 잔재 재생산, 반공을 방패로 살아남은 친일파와 그들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분단 모순, 민족 모순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적 야망과 '현실의 길'을 택한 기회주의적 국민주의자 이승만, 그 개인보다는 공공과 역사의 길을 택한 민족주의자 김구 등 그의 집요한 인물 탐구도 결국 송건호 자신이 그런 현실에서 어떤 좌표를 설정하고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한 실존적 고뇌와 연결돼 있다. 그는 김원봉과 의열단 연구까지 나아갔다. 일제-이승만-박정희 등등으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가 택할 길은 자명했다. 그는 역사의 길을 택했고 죽는 날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십중팔구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연구자의 존재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이 위험한 주제를 한국의 역사 연구자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들은 고대, 중세, 전근대라는 안전지대로 도피했다. 그 공백을 식민사관과 그 변주인 뉴라이트 사관이 차지했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 송건호의 또 다른 위대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터부를 과감하게 깨뜨렸다는 것이다. 등에 담긴 그의 생각은 청년들과 역사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김삼웅 버전의 송건호 평전은 그의 이런 측면을 잘 드러낸다.

저 용맹무쌍 '논객'이 송건호와 이런 역사를 알았을 리 없다.

광복 65년이 넘도록 주류 국민주의 현실론자들이 신문 시장의 75퍼센트를 장악하고, 방송까지 합하면 90퍼센트 이상의 여론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류가 터부시하고 위험시하고 심지어 탄압까지 하는 그런 위험한 역사를 모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일제에서 미국, 분단으로 이어진 시대를 통틀어 여전히 군림하고 있는 그런 주류가 재해석하고 재구성한 세계에서 줄곧 살아왔으니까.

이건 바꿔 말하면, 송건호가 온몸으로 저항하며 찾아 헤맨 저 시대의 과제, 문제의식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펄펄 살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저들은 종합 편성 채널이라는 터무니없는 장치까지 만들어 기득권을 다지는 한편 반복 선전을 통해 특권유지의 기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다.

드라마 의 본원 정기준처럼. 송건호는, 말하자면, "역병처럼 번져가리라" 세종이 예언했던 한글처럼, 기득권의 역사를 뒤엎을 씨앗을 뿌렸다. 그것이 역병처럼,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기를 선지자 송건호도 바랐을까.



/한승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