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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30일 금요일

언론 파업에 승리를! 파업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이글은 레프트21 2012-03-31일자 기사 '언론 파업에 승리를!파업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를 퍼왔습니다.

언론 파업이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가장 먼저 싸움에 나선 MBC는 역대 최장기 파업의 기록을 깼다. 최근엔 방송사 창립 역사상 처음으로 예능부장 4명이 보직을 내놨다. 이로써 예능 제작 차질은 확대될 듯하다.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2.1퍼센트까지 떨어져 “애국가 수준”이라는 조롱을 받았고, 외주 제작으로 만들어진 (일밤)은 1.7퍼센트 시청률로 밑바닥을 기었다. 


△낙하산 주범은 MB 3월 23일 언론 노동자 총궐기대회. 투쟁의 판을 키워 ‘불공정 방송’의 원흉을 쓰러뜨려야 한다. ⓒ사진 이미진

파업 지지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신영복ㆍ조국ㆍ공지영ㆍ안철수 등이 노동자들을 응원한 데 이어, 방송 작가들과 영화인들도 파업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영국ㆍ프랑스ㆍ독일ㆍ벨기에ㆍ나이지리아 등 세계 곳곳에서 지지 서한도 도착했다.
그러나 사측의 대응도 강경하다. MBC 이용마 기자는 끝내 해고됐고, KBS에서도 ‘프로그램 복귀 불가’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 간부에 대한 손배 가압류도 가해지고 있다.
조중동은 노동자들이 “민주통합당과 합작”해 정치적으로 파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지금 언론 노동자들이 지키려는 것은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대중의 개혁 염원이고 노동자ㆍ민중의 목소리다.
“지난해 한미FTA 정국에서 국민의 질타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주 강정마을에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우리는 이제 ‘조중동 찌라시’가 되길 거부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선 언론 노동자들의 투쟁은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일부 좌파들처럼 ‘민주당 돕는 투쟁’이란 식으로 이 투쟁을 방관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민주통합당에 대한 태도 문제는 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논란 거리다. 손석춘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MBC 출신들이] 줄줄이 민주당에 ‘포진’해 있는 상태에서 정치인들과의 관계 설정에 엄정한 경계심이 없다면, 방송 파업은 한낱 정쟁 차원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민주통합당의 파업 지지나 지원을 활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손 교수의 지적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는 옳게도 노무현 정부 아래서도 방송 통제가 있었다는 점을 꼬집었다.
더구나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조중동 종편과 미디어법 문제에서 계속 정부ㆍ여당에 타협하며 대중의 뒷통수를 쳐 왔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언론노조 출신 인사가 민주통합당에 공천을 신청하거나 언론노조 지도부가 그것을 지지한 게 아쉬운 이유다.
대정부 투쟁 전선
무엇보다 투쟁 지도부는 힘을 더 키우고 결집하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
지금 언론 파업의 주된 방향은 “대항 콘텐츠로 총선을 보도해 파업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데 있다.
물론, 파업 노동자들이 제작ㆍ방송하고 있는 (제대로 뉴스데스크), (리셋 KBS 뉴스9) 등 팟캐스트들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자본ㆍ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전하는 이런 팟캐스트들은 정말 반갑다.
그러나 냉철히 말해, 이것이 투쟁의 힘을 대체할 수는 없다. 광범한 연대로 대정부 정치투쟁 전선을 치고, 파업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반드시 결합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KBS 새노조 지도부가 (1박2일) PD의 현장 복귀를 허용한 것은 아쉽다. 오히려 오상진 아나운서가 전현무 씨의 파업 불참을 공개 비판한 것이 옳다.
YTN노조가 “방송 경쟁력에 끼칠 영향”을 우려해 무기한 파업 돌입을 주저하는 것도 아쉽다. 정부와 사측은 작정하고 몰아치는데, 우리 측이 신사답게 굴 이유가 없다.
대체인력 투입을 막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방송사에선  외주화가 상당히 진척됐다. 이 때문에 파업 효과는 반감되고 있다. 외주화는 방송의 상업화를 가속화시키고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노동조건 악화도 동반해 왔으므로, 그동안 이를 막지 못한 것은 패착이다.
지금이라도 열악한 환경의 스태프와 비정규직 노동자 들의 요구를 함께 내걸고 단결해야 한다. 이들을 노동조합으로 끌어들일 필요도 있다.
KBS나 연합뉴스 노조도 더 많은 노동자들(수습기자를 포함해)을 파업에 동참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이 투쟁이 가진 정치적 성격을 부각시키며 더 광범한 연대를 조직해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하루 연대 파업’안에 60여 명(당일 참가 대의원의 20퍼센트 이상)이 연서명한 것은 노동자들의 관심이 적잖다는 점을 보여 준다.
민주노총은 언론 투쟁을 지지하는 하루 파업 등에 나서며, 대규모 연대 집회를 조직해야 한다. 이 싸움에서 누가 기세를 잡느냐가 향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KTX 민영화 반대 등 여러 투쟁들을 함께 결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언론사 노조들이 3월 25일 민중대회에 동원하지 않는 등 다른 투쟁과 힘을 합치지 않는 것은 지금 이 투쟁의 약점이다. 각개약진해서는 승리를 거머쥐기 어렵다.
총선 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힘을 집중해 함께 이명박에 맞서야 한다.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나프타의 멍에’ 노동자에 고스란히…캐나다, 수십만명 실직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18일자 기사 '‘나프타의 멍에’ 노동자에 고스란히…캐나다, 수십만명 실직'을 퍼왔습니다.

 FTA 깨어진 약속 ② 1% 대 99%
다국적 기업들 철수해도안전망 없어 속수무책
지니계수도 10.8%↑일자리정책, ISD 휘말려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 사는 조지 패너(36)는 지난 15년간 자동차 제조공장을 아홉 군데나 옮겨다녔다. 처음에는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기술을 익혀 다국적 기업으로 이직했고, 최근에는 공장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이직했다. 지난달 3일에는 아홉 번째 직장이자 세계 1위 중장비업체인 캐터필러가 런던의 디젤기관차 제조공장을 폐쇄했고, 패너는 동료 직원 450명과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캐터필러가 공장을 폐쇄한 이유는 임금 50% 삭감, 연금제도 폐지, 의료 혜택 축소 등의 새 근로조건을 캐나다 자동차산업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아서다. 이에 회사는 폐쇄한 기관차 제조공장을, 산업노조의 힘이 약한 미국 인디애나주로 옮길 계획이다. 회사의 경영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캐터필러는 지난해 49억달러(5조5200억원)의 이익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27억달러)에 견줘 83%나 늘어난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기관차 제조공장 앞에서 캐터필러의 보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던 패너는 “온타리오주에서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을지 암담하다. 아내, 딸과 헤어져 석유 채굴을 하러 다른 주로 옮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캐나다 사람들은 시장 경쟁 논리를 앞세우는 대기업에 대항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플램버러 지역 주민들은 지하수를 지키겠다며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해 채석장 사업 인허가를 받아내려는 다국적 시멘트업체에 맞서고 나섰다. 캐나다 자동차산업노조(CAW) 제공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발효 후 캐나다 상위 1%는 경제적 이득을 얻었지만, 나머지 99%는 산업구조가 재편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학자인 짐 스탠퍼드는 “나프타의 ‘에너지 공유’ 정책에 따라 캐나다의 석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이 미국으로 대거 수출됐다. 그래서 캐나다 달러 가치가 올라가고, 캐나다산 상품과 노동력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2000년에 미국 달러의 67% 수준이었던 캐나다 달러의 가치가 지난 10년간 폭등해 미화와 동등해졌고, 그사이에 57만개의 일자리가 제조업 부문에서 사라졌다. 반면, 대미 수출 증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자원 부문에서 저숙련, 저임금 노동력을 흡수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1920년대 이후 처음으로 캐나다의 소득 분배 상태가 악화됐다. 소득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10.8%나 상승해 2011년 현재 0.324를 기록했다. 선진국 가운데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0.378)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불평등 진행 속도는 캐나다가 빠르다. 스탠퍼드는 “나프타가 발효될 때 정부는 승자와 패자가 생기겠지만 재분배로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대기업이 법인세와 소득세를 삭감하라고 압박해 정부의 재정 수입이 줄었고, 덩달아 사회복지 지출도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프타 발효 때 국내총생산(GDP)의 43%였던 재정 수입 규모는 지난해 38.2%로 떨어졌고, 정부 지출도 49.7%에서 43.2%로 감소했다. 고용보험부터 노인연금까지 사회보장제도가 전반적으로 축소됐다. 스티븐 클라크슨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정치학)는 “캐나다 같은 중소국이 세계 최강국과 경쟁 논리로 맞서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부의 산업 정책도 나프타에 어긋나는 ‘보호무역주의’라고 압박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물산과 한국전력이 70억 캐나다달러(약 8조원)를 투자해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와 체결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사업이 투자자-국가 소송(ISD)에 휘말린 것이다. 삼성물산 등은 2016년까지 총 2500㎿ 규모의 세계 최대 풍력·태양광 발전 및 생산 복합단지를 온타리오주에 건설해 20년간 운영하기로 계약했다. 주 정부는 캐나다 현지 부품과 노동력을 25% 이상 의무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비싼 값에 사들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미국 텍사스주 재생에너지 개발업체인 메사(MESA)파워그룹이 “나프타 위반”이라며 손해배상금 7억7500만 캐나다달러를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팀 캐리 자동차산업노조 런던지역 대표는 “예전에는 캐나다에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타이어 등 일정 부품을 캐나다산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프타 위반이라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기업의 탐욕을 제어할 정부 규제를 시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토론토/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2년 2월 8일 수요일

거짓 드러난 삼성.근로복지공단, 끝까지 발뺌하나?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2-08일자 기사 '거짓 드러난 삼성.근로복지공단, 끝까지 발뺌하나?'를 퍼왔습니다.
발암물질 발견 연구결과에도 "극미량 인체 영향없다" 강조...산재소송은?



ⓒ민중의소리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정부가 무려 3년간에 걸친 연구결과 삼성전자 등 3개 반도체회사에서 백혈병 등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발견됐다고 발표함으로써 그동안 작업환경과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근로복지공단이나 삼성전자의 주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그러나 정작 삼성전자와 정부는 연구결과를 축소해석하면서 이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6일 발표한 연구결과는 삼성전자 등 3개 회사의 반도체 제조 사업장에서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전리방사선 등 1급 발암물질이 발생했다고 확인했다. 

그런데 정작 연구결과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스스로도 "이번에 검출된 발암물질의 양은 노출 기준치 보다 낮아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고 내세웠다. 연구원은 보고서 원문은 공개하지 않은 채 '반도체 사업장 일부 공정에서,벤젠 등 발암성물질이 극미량 부산물로 발생'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뿌렸다. 

삼성전자 역시 입을 맞춘 듯 "이번에 측정된 양은 모두 노출기준보다 낮아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고 보여지지만 앞으로 임직원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작 이번 발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점은 정부와 삼성이 그동안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 부터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재인정을 위해 싸워온 삼성반도체 산재 피해 노동자들이 산재승인을 요구할 때마다 삼성전자와 근로복지공단은 작업환경과 백혈병 등 암 발병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변해 왔다. 심지어 삼성전자는 해외컨설팅 업체인 '인바이런'에 용역을 통해 데이터 제시도 없이 백혈병과 업무와의 관련성이 없다는 조사한 결과를 지난해 발표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전자는 산재 피해노동자들이 제기한 산재불승인 취소 소송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6일 발표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삼성전자 등 3개 반도체 회사의 작업환경 연구 결과.
그런데 이번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연구결과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사용되는 물질 뿐만 아니라 공정진행(웨이퍼 가공라인/조립라인)과정에서 그 부산물로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한 모임'('반올림')이 7일 성명을 통해 "과거 열악한 작업환경속에서는 더욱 많은 양의 벤젠등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해야할 유력한 근거가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확인됐다"고 지적한 것은 이때문이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삼성전자는 발암물질이 노출기준치 이하로 발견돼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과 관련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ACGIH)가 정의한 '노출기준'이란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되어도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농도"로 규정돼 있는데, 이는 "안전농도와 위험농도의 경계치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ACGIH에서는 발암물질의 경우 독성의 역치(threshold: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없어 극히 낮은 수준의 노출로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한분자의 유전독성 발암물질이 유전적 변이를 유발할 수 있으며 종양발생도 증가시킬 수 있다.

노출기준보다 아무리 낮아도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이 1990년대와 2000년 초중반에 근무를 하다가 백혈병과 림프종이 발병한 피해당사자들이기 때문에, 개선된 작업환경에 대한 이번 연구의 조사시점(2009~2011)을 감안하면 피해자들이 근무했을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추론했을 때 훨씬 더 위험한 수준의 발암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와 근로복지공단이 피해 노동자들의 산재를 즉각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5명의 노동자가 삼성반도체 산재 관련 소송을 진행중이며,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6월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 등 2명에 대해서만 업무상 질환의 가능성을 인정해 산재를 승인하라는 판결을 내렸으나 원고인 근로복지공단은 곧바로 항소했다. 

이들이 생전에 근무하던 공장은 이번에 발암물질이 발견된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웨이퍼 가공라인이었다. 

ⓒ김철수 기자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산재 피해자들이 지난해 6월 법원의 산재승인 판결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장을 접수한 것에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목숨걸고 중국 어선 단속해도 생명수당 700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25일자 기사 '"목숨걸고 중국 어선 단속해도 생명수당 700원"'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사병도 노동자, 최저임금 지급해야"

지난 10일 군인, 공익근무요원, 의무경찰 등 병역 의무자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는 이날 서울중앙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현역 병장의 시급인 459원은 기껏해야 껌 한 통 값"이라며 "2012년 시간당 최저임금 4580원으로는 짜장면 한 그릇도 사먹을 수 없는 현실에서 군인의 시급으로는 라면 한 봉지도 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의무복무를 행하는 자들 역시 근로기준법 상에서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더군다나 직업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는 국가가 청년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진보신당이 논평을 낸 이후 인터넷상에는 이 문제를 두고 숱한 논쟁이 일어났다. 군인이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에서부터 실현 가능하느냐는 문제 제기까지 다양한 반응이 일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소송을 건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은 소송을 건 당사자인 황종섭(28) 씨와 김연(25) 씨를 만났다. 황 씨는 2009년 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해양경찰(전투경찰순경)로 근무했고, 김 씨는 2008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다.  

인천에서 해양경찰로 군 복무를 했다가 지난해 1월에 전역한 황종섭(28) 씨는 정부를 상대로 "군 복무기간 동안 밀린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며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군 복무기간 동안 자신이 해양경찰과 똑같은 일을 했음에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황 씨는 지난 2009년 1월에 입대해서 50톤 규모 배를 4개월간 타고 대부파출소에서 5개월간 근무했다. 이후 다시 300톤 규모 배를 4개월간 탔고, 마지막으로 100톤 규모 배를 9개월간 탄 후 제대했다. 그가 배에서 보낸 기간은 17개월. 황 씨는 3교대로 바다를 지키면서 시시때때로 '출동'을 갔다. 3,4일 동안 배를 타기는 일쑤였다. 실종자가 생기거나 재난이 발생하는 등 특정한 상황이 생기면 뭍으로 돌아오는 날은 기약이 없었다.

"목숨 걸고 받은 생명수당, 한 달에 2만 원?"

지난해 12월 중국 어선을 단속하던 해경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을 때, 황 씨는 아는 사람이 있을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그의 군 동료들도 중국 어선 단속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 중국어선에 꽂혀 있던 쇠파이프. ⓒ연합뉴스
"저는 다른 배를 탔지만, 중국 어선을 잡으러 다니는 동기나 후임, 선임도 있거든요. 실제 현장에 가면 총도 쏘고 난리난다고 하더군요. 중국 선원에게서 압수한 물건을 보니 끝이 뾰족하게 갈린 쇠파이프가 있었어요. 해경이 출동하면 중국 선원은 쇠파이프를 배에 달아서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간혹 그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도 하고요. 거기 있다 보면 다치고 죽었다는 소리가 부지기수로 들리죠."

황 씨는 "바다에서는 사람이 흔하게 죽는다"며 "하다못해 배에서 소변을 보다 죽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황 씨가 몇날 며칠씩 배를 타는 대가로 받는 '생명수당'은 고작 한 달에 2만 원. 늘 '대기 상태'인 해경의 업무 특성상, 기계적으로 계산하면 하루에 700원도 안 되는 '생명 수당'을 받고 목숨을 거는 꼴이다. 그는 "해경으로 간 군인도 실제 해양경찰과 하는 일이 같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라면서 "그런데 우리는 국방의 의무라는 터무니없는 핑계로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황 씨가 받는 월급은 군인과 똑같았다. 제일 많이 받았을 때가 한 달에 13만 원이었다. 생명수당 2만 원이 포함된 금액이었다. 그는 "군대에서는 위험하고 목숨을 거는 일을 하는데, 지금의 군 임금 수준은 말도 안 된다"며 "국가가 군인에게도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대에 가면 할 일이 없을 때마다 시급을 계산하게 돼요. 내 연봉은 120만 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죠. 다들 그런 불만이 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는 상상은 못해요. 지금까지 계속 그랬으니까. 그런데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때는 시급이 100원대였어. 지금 많이 좋아진 거야.' 물론 그때보다야 좋아졌겠죠. 그런데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습니까? 결국은 말이 되는 수준으로 조금씩 올렸다는 건데, 아직도 말이 안 되는 돈입니다. 말이 되는 기준은 법적으로 정해있죠. 바로 최저임금입니다."

"대법원 기준대로라면 군인도 노동자다"

2008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했던 김연(25) 씨도 지난해 6월 서울도시철도공사를 상대로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걸었다. 같은 해 11월 1심에서 패소한 김 씨는 현재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김 씨는 주간근무 1주일, 야간근무 2주일을 3조 2교대로 번갈아가며 일했다. 주간근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간근무는 오후 6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이어졌다. 정규직 역무원과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일을 했지만, 그가 받은 임금은 한 달에 20만 원 남짓이었다. 병무청에서 지급하는 월급이 8만 원, 나머지는 차비와 식비였다. 기관장 재량 하에 복무시간 외에도 일할 때도 있었지만 추가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 지하철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 ⓒ뉴시스
월급 20만 원은 차비와 통신비를 내기에도 빠듯한 돈이었다. 김 씨는 중간에 종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하는 시간이 부정기적이어서 일용직밖에 구할 수 없었고, 쉬는 날에도 잠도 못 자고 일했다. 김 씨는 "시간은 시간대로 뺏기고 생계를 위해 퇴근 후에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서 소송을 걸었다"고 말했다.

김 씨가 군인, 공익근무요원, 의무경찰등 군 복무자도 노동자라고 꼽은 근거는 간단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세 가지다. 첫째, 업무에 있어서 고용자로부터 구체적인 명령을 받을 것. 둘째, 고용자가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를 지급할 것. 셋째, 고용자가 월급을 지급할 것.

김 씨는 "군 복무자는 국가 혹은 준공공기관에 속하고, 이들 기관으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시와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며 "이들이 병역 의무를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노동자로 대우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도 법률상 노동자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으므로 국가가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군인은 불쌍하니까 돈 주자?…노동 권리로 봐야"

군인의 임금을 현실적으로 높이자는 주장은 이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 한나라당 남경필의원은 지난 2010년 "병사들의 월급을 40만 원으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병사 월급을 40만 원으로 올리면 병사들은 군 복무 기간 동안 대학 등록금을 모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황 씨는 "군인 중에는 대학생이 아닌 사람도 있는데, 굳이 대학 등록금과 군인 임금을 연결하기에는 논리가 취약하다"며 "모든 군인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는 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군인의 월급을 올려야 하는 데에서는 남 의원과 의견이 일치하지만, 군인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시혜적으로 월급을 인상하는 게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다"라며 "의무는 의무로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의무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아야 할 권리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씨도 "국방의 의무가 노동권과 배치되지 않는다"며 "군인이 국가의 의무를 통해서 노동을 제공한다면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정당한 대가는 법에 규정된 최저임금이다.

"군인들이 불쌍하니까 최저임금을 달라는 게 아니라, 노동 권리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겁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청년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이고요. 군인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노동이 전혀 우선순위가 아니잖아요. 사회적 합의가 그 수준이라는 데 문제제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군대 임금 문제는 특수한 게 아니라, 보편적인 노동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최저임금제도가 군대 내 노동 강도 줄여줄 것"

진보신당은 군인, 공익, 의경 등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했을 때 약 5조 원이 더 필요하다고 예상한다. 이러한 계산에 대해 김 씨는 "5조 원은 전체 국방비 규모(올해 32조9576억 원)로 비춰봤을 때 불가능하지 않다"며 "충분히 증액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황 씨도 "4대강 삽질에 30조 원을 쓰지 않았느냐"면서 "이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의지의 문제"라고 거들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은 2006년 군인의 월급이 약 251만 원, 일본 자위대의 경우 210만 원이다. 징병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도 군인들의 월급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2015년부터 징병제를 폐지하기로 한 대만에서는 2009년 상병이 월 40만7000원을 받았다. 아직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상병에게 약 48만6000원을 지급한다.

김 씨는 "이번 소송은 병역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한 번 더 제기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여성가족부 예산을 줄이고 군인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군인 최저임금제도를 실제로 실행한다면, 어디서 예산을 끌어오고 어떻게 배치해야할지 시민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인 최저임금제도가 군 감축을 유도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경필 의원은 "군인 월급 인상을 통한 군 전력의 효율화는 단계적 감군을 가능케 하며 궁극적으로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김 씨는 "장기적모델로 징병제를 유지할 것인지, 모병제로 갈 것인지, 병역에서 배제되는 여성이나 장애인은 어떻게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것인지, 대체 복무제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논의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황 씨도 "군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면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군대 내 인권 탄압 사례도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군대는 노동시간 책정이 잘 안 되는데, 임금표를 만들면 군대 내 부당노동, 초과노동, 사적노동 문제도 시정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제도가 군대 내 노동 강도를 줄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나영 기자

2012년 1월 23일 월요일

돌려막기 경제, 남은 카드가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1-21일자 기사 '돌려막기 경제, 남은 카드가 없다'를 퍼왔습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바로가기

»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위치한 유럽중앙은행(ECB) 앞에 세워진 대형 유로화 상징물 밑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2008년 이후 금융 상황이 쉴 새 없이 악화되는 것을 가리키기 위해 쓰고 있는 ‘위기’라는 개념은 어떤 유구한 체계에 느닷없이 이상이 생겼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원상복구를 하기 위해 무절제했던 그동안의 행태를 고치는 것 정도로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사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에 도입된 민주자본주의가 넘을 수 없는 어떤 혼돈을 내포하고 있다면 어떨까?
매일같이 현 경제위기를 수놓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시장’이 국가를 지배함을 알 수 있다. 자칭 ‘민주주의 주권국가’라고 하나 국가는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그어놓고 시민이 요구할 수 있는 것에 양보를 종용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바로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국가나 민주주의의 준엄한 원리에서 비켜 있는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을 위해 봉사한다. 대부분은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 대체로 안정적 기초경제 여건에 사소한 장애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냥 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대불황’(Great Recession)과 그로 인해 거의 붕괴된 공공재정은 모두 시장의 요구와 민주주의의 요구 간 줄다리기에서 결국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시장과 민주주의 간의 갈등은 혼란과 불안정을 낳는다. 따라서 현 경제위기를 이해하려면 본질적으로 갈등을 내포한 ‘민주자본주의’라 부르는 이 체제의 변환을 조명해야 한다.
1960년대 말 이후 정치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 사이의 모순을 뛰어넘기 위해 세 가지 방안이 차례로 도입됐다. 첫째 해결 방안은 인플레이션, 둘째는 공공부채, 셋째는 민간부채다. 각 방안의 해결 방식에 따라 경제세력, 정치권, 사회세력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나 이런 방안은 차례로 위기에 봉착했다. 2008년 금융 환란은 결국 세 번째 방안의 종언과 함께, 그 성격이 어떠할지 불확실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시장, 태생적 갈등관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부터 첫 위기를 겪었다. 당시 서방세계 전체에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가 시작되고 있었다. 경제성장 침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사 갈등 해소와 평화로운 관계의 지속성을 급작스럽게 위협했다. 당시까지 수용된 관계 방식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노동계층은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대가로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를 수용했다. 당시 정치민주주의는 사회보장과 지속적인 생활수준 향상을 보장했다. 20여 년간, 통제 없는 경제성장이 계속되면서 사회·경제적 진보가 민주시민권을 형성한다는 신념을 고착화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세계관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나,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이 불거졌다. 복지국가 확장, 자유로운 단체협상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와 완전고용의 정치적 보장 같은 요구였다. 정부는 케인스 경제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이 모든 요구 사항의 수용에 나섰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이런 관계는 지속되기 힘든 상태에 이른다. 노동사회적 저항이 전세계에 확산되면서 불안정이 대두됐다. 아직 실업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생활수준 향상 같은 자신의 진보적 권리라고 여겼던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서방세계의 정부는 모두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완전고용에 대한 케인스식 비전을 고수하면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1970년대, 대부분의 서방 정부는 실질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실업률 상승을 내버려두면 자신의 존립 기반이나 민주자본주의를 위협하게 된다고 믿었다(이는 국가 최고위 계층에서 공유된 신념이기도 했다). 각국 정부는 이런 난관에서 벗어나려 완전고용과 자유로운 단체협상을 동시에 지속하면서 하나의 방안을 강구하게 되었다. 바로 인플레이션 확대를 각오하고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물가 상승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가 상승에 실질임금을 연동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상당히 강한 노조가 이들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은 채권자와 금융자산 보유자, 즉 상대적으로 노동자층이 거의 없는 계층의 자산을 침식하면서 손해를 입혔다. 이런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분배의 갈등이 통화를 통해 그대로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쪽은 고용 안정과 국가 수입에 대한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노동자 계층이고, 다른 한쪽은 투자에 대한 이익 환수를 최대화하려 애쓰는 자본가 계층이다. 양쪽은 각자 회귀하게 되는, 서로 양립이 불가능한 사상을 토대로 한다. 한쪽은 시민권을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사유재산과 시장을 내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인플레이션은 한 사회의 아노미를 표출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정의의 공통 기준에 대한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는 아노미다.

성장 둔화와 마주친 케인스주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각국 정부들이 경제성장을 통해 계층 간 반목을 완화할 수 있었다면, 인플레이션은 실질 경제가 생산하지 않은 자원을 짜내면서 소비수준과 소득의 재분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어쨌든 이런 갈등 중재 전략은 효과적이었지만 무한정 지속될 수 없었다. 결국 자산 보호에 고심하던 자본가 쪽의 반발을 야기했다. 이들의 대응으로, 처음에는 노동자에게 유리했던 인플레이션이 실업을 낳으면서 노동자를 벌하게 된다. 시장의 압력을 받은 각국 정부는 재분배 중심의 임금 합의를 포기하고 통화 규제로 돌아서게 된다.
제임스 카터 미국 대통령(1977~81)에 의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새로 지명된 폴 보커가 전례 없는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인플레이션은 1979년 이후 안정됐다. 금리 상승 때문에 대공황 이후 초유의 실업을 기록하게 되었다. ‘폴 보커의 쿠데타’는 투표를 통해 인정받게 된다. 처음에는 보커가 취한 디플레이션 정책의 여파를 우려한다고 말했던 로널드 레이건이 1984년 재집권한 것이다. 1983년 영국에서는 미국 정책을 따르는 엄격한 통화정책으로 실업자가 급증하고 급속한 탈산업화가 야기됐음에도 마거릿 대처가 총리 연임에 성공했다. 두 나라에서 디플레이션은 노조에 대한 합법화된 탄압을 동반했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자본주의 국가 전체에서 인플레이션은 제어됐지만 실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프랑스의 실업률은 1980년 5%에서 1988년 9%로 증가했다. 같은 때 노조가입률은 급감했고 파업도 드물어져 일부 국가에서는 집계조차 그만두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의 한 축을 폐기 처분한 시점에 시작됐다. 그 축이란 실업은 집권 정부뿐 아니라 사회 구성 방식의 존립 기반인 정치적 지지를 무너뜨린다는 생각이다. 전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레이건과 대처가 이끈 정책 경험을 큰 관심을 갖고 추종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끝내면 경제 무질서가 해결될 것이라고 희망하던 자들은 곧 스스로 그 비용을 치르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은 멈추었지만 공공부채가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공공부채는 하늘로 치솟았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인플레 확대 동반한 임금 상승
먼저 경기침체로 납세자들은 세금 납부에 적대적으로 변했다. 부유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유독 심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자동적으로 세수 증가(소득 증가에 연동한)도 멈추었다. 이는 국가 통화의 가치를 하락시켜 공공부채를 지속적으로 경감하는 것도 끝났음을 의미했다. 사실 통화가치 하락은 초기에는 경제성장을 보완했다가 점차 부채를 줄이기 위한 최상의 수단으로 변해왔다. 통화 안정화에 따른 실업 상승으로 국가는 사회 지원 비용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게다가 1970년대 노조의 임금 상승 완급 조절 수용(일종의 차등화된 임금체계)을 대가로 형성된 여러 사회적 권리들에 대한 요구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는 점차 공공재정을 무겁게 짓눌렀다.
시장의 압력, 통화 규제로 급선회
시민과 시장의 요구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다시 활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사회 평화를 유지하는 부담은 국가에 돌아갔다. 한동안 공공부채는 기능적으로 인플레이션 같은 유용한 도구였다. 실제 인플레이션과 똑같이, 공공부채는 분배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아직 생산된 바 없는 자원을 유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달리 말하면 미래의 자원을 가져와 오늘 필요한 자원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시장과 사회의 요구 간 다툼이 생산의 터에서 정치의 터로 옮겨가면서 노조투쟁은 선거 압력으로 바뀌었다. 돈을 계속 찍어내는 대신, 정부가 먼저 나서 돈을 더 빌려오게 된다. 인플레이션 정도가 미미했기에 채권자들은 국채의 장기적 가치에 안심했고, 이런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공공부채 늘리며 노동자 달래기
그러나 공공부채 축적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경제학자들은 공공적자가 유용가능한 재원을 고갈시키고 금리 상승과 경기 둔화를 야기하며 민간 투자를 고사시킬 것이라고 정권에 경고해왔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임계점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한동안은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저금리를 유지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저축률이 예외적으로 낮은 미국은 곧바로 자국민과 외국 투자자들에게까지 국부펀드를 포함해 국채를 팔기 시작했다. 더구나 부채 부담이 커질수록 공공재정에서 이자를 지급하는 비중이 증가했다. 특히 사전에 규정할 수 없는 어느 시점에 국내외 채권자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터였다. 따라서 ‘시장’은 국가에 재정 규율과 이자 보전에 필요한 엄격한 공공예산을 실행하도록 압박하기 시작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중 적자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연방정부 적자와 국가 전체의 무역수지 적자였다. 이 문제를 선거 전략 중심으로 삼은 빌 클린턴이 승리하면서 ‘재정 건전화’(Fiscal Consolidation)에 역점을 둔 정책의 신호탄이 울린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주도 아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IMF 등이 이런 노력을 적극적으로 약속했다. 초기 민주당 내각은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통해 경제성장을 진작하고 세금을 올리면서 적자를 줄이려 했다. 그렇지만 1994년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의석 과반수를 얻지 못한다. 클린턴은 노선을 급선회해 공공비용 감축이 골자인 긴축정책을 받아들인다. 수십 년에 걸쳐 처음으로 1998∼2000년 미국 연방정부는 예산 흑자를 기록한다.


» 지난해 11월 ‘탐욕’ ‘그릇된 우상’이라 적힌 황금소 모형을 메고 월가를 행진하는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

시장의 새 압력, 재정 건전화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는 항구적으로 민주자본주의 정치의 경제를 순조롭게 진행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그의 사회갈등 조정 전략은 많은 부분에서 레이건 정권 때 이미 시작된 금융 분야 규제 완화를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노조의 지속적 쇠락과 사회보장 지출의 대대적 삭감, 재정 건전화 정책으로 위축된 수요 등으로 소득 불평등이 급속히 심화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개인과 기업들에 전례 없는 수준의 대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채가 민간부채로 대체된 것을 가리키는 그럴듯한 이름의 ‘민간 케인스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정부는 더 이상 양질의 주택을 평등하게 공급하거나 노동자를 교육할 비용을 대기 위해 돈을 빌리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들이 자신의 교육, 또는 더 나은 주거지로 옮기는 비용을 대기 위해(4) 위험과 리스크를 각오하고 대출 계약을 하게 된다(실제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출 확대, 공공부채를 민간부채로
클린턴 행정부에서 도입한 정책은 상당한 행복을 창출했다. 부자들은 세금을 덜 냈고, 그중에서 미리 눈치채고 금융 분야에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그런데 빈곤층도 전혀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초기에는 그랬다. 서브프라임 신용과 이에 따른 ‘부의 신기루’가 복지 지원금 삭감과 임금 상승(‘유연화’된 노동시장의 최하위층에서는 존재하지 않던)을 대체했다. 특히 흑인들에게 주택 취득은 단순히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들이 일자리에서 보장받지 못했고, 지속적인 긴축에만 매진하는 정부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퇴직연금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민간 케인스주의’로 금융 초호황
따라서 자유화는 재정 건전화와 공공 긴축정책을 상쇄했다. 공공부채에 이어 민간부채까지 가세해 국가 주도의 공공 수요를 대체하게 된다. 고용과 이익을 지탱하는 것은 개인 수요였고, 특히 부동산 부문은 더욱 심했다. 이런 동력은 앨런 그린스펀이 이끄는 FRB가 경기침체 및 실업률 재상승을 막기 위해 저금리를 도입하는 2001년부터 가속화했다. 그러나 ‘민간 케인스주의’는 금융 분야에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 호황의 중심축이기도 했다. 이는 유럽 노조들의 한없는 부러움을 샀다. 유럽 노조는 미국 사회의 급속한 부채 확산을 야기한 그린스펀의 통화 확대 정책을 모델로 한 정책을 입안한다. 유럽 노조는 유럽중앙은행과 달리 미국 FRB가 통화 안정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높은 고용을 유지해야 할 법적 의무를 지닌 점에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이것들은 모두 끝나버린다. 국제 신용의 피라미드가 갑자기 붕괴하면서 말이다. 이 피라미드는 1990년대 말과 2000년 초기 경제 번영의 토대였다.
인플레이션, 공공적자, 그리고 민간부채로 이어지는 시대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자본주의는 이제 네 번째 단계로 진입했다. 전세계 금융 시스템이 내폭하려고 하자 국가들은 그 전에 재정 건전화 정책을 상쇄할 목적으로 용인한 치명적 대출을 사회화하면서 경제 신뢰를 회복하려 했다. 실물 경제 붕괴를 막는 데 필요한 경기 부양과 맞물려 이런 조처는 공공적자를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했다. 그 경과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사태는 일부 이론의 주장과 달리, 세계은행과 IMF 체제하의 1990년대에 벌어진 기회주의 지도자나 공공기관의 잘못된 지출 탓이 아니었다.
위기, 그리고 부실채권의 사회화
그 경과는 이렇다. 2008년 이후 민주자본주의에 내재된 분배 갈등은 국제 금융 투자자들과 각 주권국가 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바뀌었다. 과거에는 노동자와 사장, 시민과 재정 부처, 개인 채무자와 민간은행 간의 싸움이었지만 오늘날은 금융기관들이 국가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최근까지 국가를 협박해 자신을 구제하도록 요구했다. 앞으로는 이런 상황의 근본인 그 역학관계가 어떤 것인지 규정하는 일이 남았다.
실례로 금융위기 초기 이후부터 금융시장은 국가별로 상이한 금리를 요구했다. 금융시장이 각국 정부에 차등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면서 해당 국가의 국민은 전례 없는 재정 감축을 감내해야 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부채가 국가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아주 미미한 수준의 국채 금리 상승도 여차하면 재정 파탄을 야기할 수 있다. 동시에 국가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장은 국가를 너무 강하게 압박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부 국가들은 가장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다른 국가들을 기꺼이 도우려 한다. 그렇게 해서 국채 금리 상승을 대비하는 것이다.
시장이 기대하는 것은 단지 재정 건전화만이 아니다. 시장은 경제성장에 대한 합리적인 전망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 건전화와 경제성장, 이 둘을 어떻게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 아일랜드가 재정 적자 감소를 위한 강력한 조처를 약속했을 때 아일랜드 부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낮아졌다. 그러나 몇 주 뒤 프리미엄은 다시 상승했다. 경제재건 계획이 너무 혹독해 어떤 경기회복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민주자본주의 정치를 실행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대공황 이후 정책 결정자들이 이렇게 불확실성이 큰 상황과 대면한 적은 없었던 듯하다.
게다가 일부에서는 사상 초유로 저금리의 돈이 넘쳐나면서 새로운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원자재나 새로운 인터넷 경제 전망은 매력적이다. 금융회사들은 주요 고객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새로운 성장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이는 분야에 중앙은행이 공급해준 넘치는 유동성을 이용할 소지가 충분하다. 어쨌든 금융 분야 규제를 목표로 한 개혁들이 거의 실패하는 바람에 자본은 예전보다 더 성마르게 요구 사항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2008년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 은행들은 2012년이나 2013년에도 같은 도움을 바랄지 모른다. 그리하여 3년 전 국가를 상대로 능수능란하게 펼쳤던 협박을 다시 실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본주의의 공공구제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공공재정이 능력의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민주자본주의에 남은 카드는 있나
현재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를 짓누르는 위기만큼이나 심각하다. 현대사회의 ‘시스템 통합’, 즉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적 운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통합’도 흔들리고 있다. 새로운 긴축 시대가 열리면서 시민의 권리와 자본 축적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각국의 능력은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또한 국가 간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심화되면서 경제와 사회, 또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갈등을 국내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현실성이 떨어지고 있다. 어떤 정부도 더 이상 국제사회의 제약과 의무, 특히 자국민을 희생시켜야 하는 금융시장의 강요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은 국가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조합과 교체를 진행하며 점차 국제적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의 흐름을 관찰해볼 때, 민주자본주의가 사회 갈등을 조정할 (한시적이긴 해도) 새로운 방안을 찾게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적으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위치에 견고히 버티고 있는 자본가 계층, 즉 국제 금융산업에 전적으로 유리한 방향일 것이다.
글 / 볼프강 스트리크 Wolfgang Streeck
막스플랑크 사회연구소(쾰른) 소장. 본문은 2011년 9~10월 발행된 (New Left Review) 71호(런던)에 게재된 분석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번역 / 박지현 sophile@gmail.com
남극보호연합(ASOC) 동아시아지부 담당.

2012년 1월 16일 월요일

노동자 버리고 우경화하는 진보


이글은 레디앙 2012-01-16일자 기사 '노동자 버리고 우경화하는 진보'를 퍼왔습니다.
민주통합, 진보·노동으로 색칠…통합진보·민주노총 침묵 동조

“지도부 및 후보 9명이 한미 FTA 굴욕적 불평등 협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미 FTA는 폐기하고 원점 재검토를 하겠다는 것이 통일됐고 총선 승리하면 반드시 폐기하겠다.” 1월 15일 치러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말이다.
그는 노동공약으로 “임금 삭감 없이 근로시간 축소를 통해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며 ‘주 35시간 노동’을 약속했고, 재벌개혁과 부자증세를 약속했다.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약속한 문성근, 이인영 등 진보적 성향의 최고위원들이 당선됐고, ‘호남의 맹주’를 자처한 박지원은 4위에 그쳤다.
후보들은 이미 △노동조합법 전면 재개정 △비정규직 감축 및 차별 철폐 △실업 안전망 확충 등 7대 노동정책안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통합당이 ‘진보’와 ‘노동’의 색채를 더욱 뚜렷이 내며 ‘좌클릭’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한나라당의 좌클릭
이명박 정권의 부패와 전당대회 돈봉투 파문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도 재빠르게 진보의 색채를 덧붙이고 있다. 1월 12일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KTX 민영화 추진에 대해 “국민의 우려와 반대가 크니 반대 입장을 표명하자"고 했다.
비대위 산하 눈높이위원회는 ”정부의 KTX 경쟁 체제 도입 방침에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철도 민영화'라며 반대 의견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고 보고했고, 황우여 원내대표는 “세계 역사상 철도 민영화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14일 이명박은“선거철이 되면 포퓰리즘에 의해 국가 미래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며 KTX 민영화를 강행하겠다고 말했고, 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한나라당 비대위를 비난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민주통합당과 함께 재벌과 부자 정당이라는 색깔을 지우며 ‘좌클릭’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우클릭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의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1%를 위한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를 제시하며 노동자 민중과 싸워야 할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구 민주노동당은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이라는 3대 악법을 만들었던 국민참여당과 합당하기 위해 이미 사회주의라는 강령을 내팽개쳤고, 합당한 이후 19대 총선공약 5대 핵심기조(주권 확립, 공공성 강화, 정치 개혁, 평화통일 추구, 생태주의 지향)에 노동문제를 제외시켰다.
통합진보당을 상징하는 로고에는 노동자-농민-서민에서 시민이 사라지고 재벌도 포함되는 ‘시민’이 들어갔다. 2000년 1월 창당 이후 12년 동안 민중의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진보정당 행사에 태극기가 등장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수 십년 동안 노동현장과 모든 행사장에서 진행됐던, 노동자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웠던 열사들을 기리는 민중의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후보단일화를 구걸하나
통합진보당은 15일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가 호혜존중의 야권연대 정신에 충실하여, 곧 진행될 총선 야권연대 논의에 진정성 있게 임할 것이라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통합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며 3대 악법을 만들고 한미FTA를 체결했다. 과거를 반성하는 척하더니 지난 연말 한미FTA 폐기를 위한 거리 투쟁을 외면하고 슬그머니 국회로 들어갔다.
‘금배지’를 달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와 대중투쟁을 외면하고 보수야당과의 거래를 넘어 연대를 구걸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통합진보당은 아무런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연대 ‘구걸’에 대해 이해찬 전 총리가 “이정희 대표가 관악으로 올 때는 경선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경선해서 이 대표가 이기기 어려운 조건이니 져도 좋다면 하고, 아니면 다른 쪽으로 옮기는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해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노골적으로 지역구를 옮기라고 주장할 정도다.
비정규직 외면·연대세력 쫓아낸 이경훈에 대한 침묵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연대세력을 쫓아낸 현대차 이경훈 전 지부장의 울산 남구 출마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침묵은 ‘노동’을 버린 진보정당의 상징이다.
이경훈씨의 출마에 대한 과 , 의 잇단 보도와 비판, 비정규직 당사자와 트위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은 이경훈 출마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노회찬 대변인은 트위텃에서 “예비후보일 뿐”이라고 밝혔다.
트위터를 비롯해 이경훈 출마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가 나섰다. 는 “진보정당은 하향식 공천을 하지 않는다”며 “이경훈 후보와 관련해 통합진보당에 제기되는 비판의 대부분은 보수정당의 후보 선출 절차와 진보정당의 진성당원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어 이경훈 후보의 비정규직 투쟁 외면과 외부세력 ‘색출’에 에 대해 “전임 집행부들과 비교했을 때 실제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간 협력과 연대투쟁의 정도가 뒤졌다고 볼 수 없다”고 두둔했다.
부끄러운 기사
가 통합진보당의 기관지가 아니지만 이경훈 논란에 대한 통합진보당의 시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통합진보당의 진성당원제는 6개월 전에 1만원만 내면 되는 제도로 현재 이경훈 후보는 조승수 후보측에 의해 ‘기획입당’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진성당원제를 들먹이며 이경훈을 옹호하고 있는 기사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이 기사에 대한 트위터의 격렬한 비난은 이를 보여주는 증거다. 한나라당은 KTX 민영화에 대해 SNS의 반대 여론을 보고받고 반대 입장을 냈는데 들끓는 이경훈 반대 여론에 대해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심상정, 노회찬은 입을 다물고 있다.
통합진보당뿐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1월 말부터 시작되는 울산 남구 예비선거에서 이경훈 후보가 승리하면 그는 어떤 검증 절차도 없이 통합진보당 후보와 민주노총 후보가 되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진보와 노동으로 색칠하고, 한나라당마저 좌클릭하고 있는 정치의 계절에 통합진보당과 노동운동은 돌이킬 수 없는 우경화와 반노동자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2011년 겨울 현대차 자본의 탄압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배고픔보다 더 서글프고 고통스러웠던 이경훈 당시 지부장의 협박과 탄압을 기억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 더 절망스럽게 이경훈 후보와 통합진보당, 민주노총을 바라보고 있다.

2012년 01월 16일 (월) 10:11:36 주간 변혁산별

2012년 1월 3일 화요일

[사설]비정규직 대책 허구성 드러낸 공공부문 해고사태


이글은 경향신문 2012-01-02일자 사설 '[사설]비정규직 대책 허구성 드러낸 공공부문 해고사태'를 퍼왔습니다.
새해 초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인천공항세관, 노사발전재단, 서울고법, 서울 구로보건소 등 공공부문 거의 전 분야에서 해고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현장에서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천공항세관에서 수하물에 전자태그를 붙이는 일을 하는 하청노동자 34명은 지난해 12월31일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새로 하청을 맡은 용역업체가 고용을 승계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용노동부 산하 노사발전재단도 최근 비정규직 31명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 업무를 하는 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집단 해고한 것은 설립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의 청소용역 노동자 6명, 구로보건소의 방문간호사 2명도 지난해 말 해고됐다.

2011년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모두 34만여명이며 이 가운데 29%인 9만9000여명이 파견·용역·외주 등 간접고용 형태이다. 공공부문의 간접고용은 2006년 6만4000여명보다 8.5%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한 비정규직을 기간 제한 없이 고용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용역업체가 교체되더라도 원칙적으로 고용을 승계토록 하는 내용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했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부문이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자찬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남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공공부문 선진화’란 이름의 잘못된 정책기조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의 허구성은 일련의 해고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2년 이상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노사발전재단에서는 무기계약직 전환을 단 4개월 앞두고 있던 노동자를 해고했다. 고용주가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둔 대책은 대책이 아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같은 일을 하면서 불합리하게 차별받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발언이 빈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공공부문에 무분별한 해고를 자제토록 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2011년 12월 10일 토요일

MB가 집값을 절대 끌어올릴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1-12-09일자 기사 'MB가 집값을 절대 끌어올릴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퍼왔습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끝났다… 집값 폭락 과도기, 전세 기근 계속될 듯

공급을 늘려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택 보급률과 자가 점유율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서울시 주택 보급률은 2000년 77.4%에서 지난해 96.7%까지 늘어났다. 그런데 왜 집 없는 사람이 이리도 많을까. 자가 점유율은 2000년 40.8%에서 지난해 41.1%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집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내 집 마련을 한 경우 보다는 기존에 집이 있던 사람들이 추가로 산 경우가 많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전셋값이 계속 오르면 집값도 뛰어오를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전세 수요와 구매 수요는 분명히 다르다. 전셋값이 오르는 건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기도 하고 전세를 끌어안고 집을 사는 투기적 가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실 수요와 투기적 가수요가 동시에 줄어드는 상황이다. 물가가 오르면서 저축률이 하락하고 노동자 가구 가처분 소득도 줄고 있다. 대출 받아 집 사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지역 주택 보급률과 자가 점유율 추이. 핵심은 무작정 공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살 수 있는 싼 집을 늘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대우증권.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DTI(총부채상환비율)이나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쉽게 풀지 못하는 건 가계부채가 이미 위험스러울 정도로 불어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계신용 잔액은 1998년 184조원에서 지난해 795조원, 올해 9월 말 기준으로 892조원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명목 국민총생산은 연 평균 7.3% 늘어났는데 가계부채는 13.0% 늘어난 셈이다. 

대우증권 송홍익 연구원은 “결국 지난 1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경제 성장률을 상회했는데 이는 저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가 부동산 가격 상승의 핵심 원동력이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동자 가구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994년 49.5%에서 2000년 73.3%, 지난해에는 122.5%까지 급증했다.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는 이야기다. 

송 연구원은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가계부채 증가를 제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가계부채를 동반한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송 연구원은 “부채를 늘릴 수 없다면 소득이라도 늘어나야 부동산 시장을 떠받칠 수 있을 텐데 가계소득 증가율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총생산 증가율을 밑돌고 있다”면서 “소득 증가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주요도시 PIR. 소득 대비 집값의 비율이다. 서울지역의 경우 13년 동안 소득을 모두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대우증권.

2000년 기준으로 노동자 가구 가처분 소득은 364조원, 전국 아파트 시가총액은 700조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각각 641조원과 2580조원으로 늘어났다. 비율로 보면 1.9배 수준에서 4.0배까지 늘어난 셈이다. 소득 대비 집값을 나타내는 PIR은 서울이 13.0배, 경기도가 7.0배에 이른다.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13년 동안 소득을 모두 저축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소득의 3분의 1을 저축한다고 해도 40년 가까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신생아 수와 서울 아파트 가격 추이. 송홍익 연구원은 "집값이 비싸니 결혼이 늦어지고 신생아 수가 급감, 경제의 동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우증권.

인구 고령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순자산은 2억4560만원이지만 30대만 놓고 보면 1억6124만원 밖에 안 된다. 대우증권은 수도권의 경우 가구당 순자산이 3억708만원, 30대 가구는 2억155만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시 평균 아파트 가격이 105.6㎡ 기준으로 5억6736만원, 경기도는 3억464만원 정도니까 서울에서는 3억6518만원, 경기도에서도 1억309만원을 대출 받아야 한다. 

결국 대출 기준을 크게 완화하지 않는 이상 30대가 대출을 받아 집을 사기는 요원하다는 이야기다. 40대 가구의 경우도 전국 기준으로 순자산이 2억4419만원, 수도권 지역은 2억6213만원 정도다. 역시 상당한 대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PIR이 5배 안팎이었던 10여년 전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집값은 너무 비싸고 소득 수준은 그때보다 더 열악하다. 특히 30대와 40대의 구매 여력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선거철마다 나왔던 부동산 대책도 내년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쓸 수 있는 대책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송 연구원은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20~40대의 지지를 끌어모아야 할 텐데 과거와 같은 부동산 부양 정책은 전·월세 가격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2040세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면서 “과거와 달리 전·월세 가격을 제어하기 위한 주택 공급 증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년에도 집값 하락이 계속될 거라는 근거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율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에 빚 내서 집 사는 사람이 늘어날 수가 없고 둘째, 물가 상승과 저축률 하락,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있어 소득 증가에 따른 가격 상승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2040세대의 불만이 거센 상황이라 과거와 같이 일방적인 부동산 부양 정책 보다는 공급 증가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정책과 가격 추이. 정부 정책의 약발이 갈수록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동양증권.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나간다는 신호가 여러 경로로 감지되고 있지만 전셋값 상승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증권은 전세와 매매 비율 추이를 분석한 결과 과거 고점이 서울은 58.7%, 경기도는 63.9%인데 현재는 각각 47.2%와 52.4%로 낮은 편이다. 결국 한동안 전셋값 상승이 계속되거나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지 않는 이상 전세 기근현상이 한동안 계속될 거라는 이야기다. 

대우증권은 이례적으로 “최소 향후 5년 동안은 아파트 가격 하향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우증권은 “집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집값이 계속 오르길 원하겠지만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생산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면서 “2040세대가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원은 “단기적인 경제 성장에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2030년을 바라보며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저녁 방송된 KBS <뉴스9>

12·7 대책은 집권 말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보수 기득권 세력을 달래려 내놓은 고육지책이지만 별반 새로울 게 없고 실효성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핵심은 이미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데 있다. 이제 대출을 늘려주고 세금을 깎아주면서 집값을 끌어올리는 시대가 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동산 대세 하락이 시작됐고 이 대통령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는 모두 나온 상황이다. 

동양증권 정상협 연구원도 “센티멘트(심리) 개선만으로 부동산 시장이 살아날 거라고 보지 않는다”면서 “현재 부동산 시장 침체의 근본적인 문제는 공급되는 주택 가격과 실제 소비자들이 사고자 하는 가격의 괴리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정부의 이번 대책은 부동산 시장에서 양도차익 기대감이 클 때 효과를 볼 수 있는 조치들이지만 시장이 계속 횡보할 것으로 보이는 지금 상황서는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2011년 12월 9일 금요일

[사설]‘희망텐트’, 쌍용차 노동자 희생 막을 희망이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1-12-08일자 사설 '[사설]‘희망텐트’, 쌍용차 노동자 희생 막을 희망이다'를 퍼왔습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조합원 등이 그제부터 쌍용차 평택 공장 정문 앞에 텐트를 치고 복직 투쟁에 들어갔다. 한진중공업 해고사태를 해결한 ‘희망버스’에 이어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텐트’가 등장한 것이다. 경찰과 평택시가 텐트들을 불법 건축물이라며 강제 철거했지만 조합원들은 계속 싸우겠다고 밝혔다. 새롭게 이슈로 등장한 희망텐트가 쌍용차 해고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될지 주목된다. 

‘희망텐트’는 쌍용차 해고·휴직 노동자와 가족이 죽어가는 절망적 상황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물이다. 2009년 이래 2년8개월 동안 쌍용차에서 해고되거나 휴직당한 19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자살 또는 사망했다. 해고 노동자의 80%가 심각한 우울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살아남은 노동자와 가족들은 자신들도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희망텐트를 치고 나선 것이다. 희망텐트는 또한 회사 측을 향해 2009년 8월 ‘노사 대타협’ 때의 약속을 지키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에서 출발한다. 회사 측은 당시 461명의 무급휴직자를 1년 뒤 복직하기로 했지만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명도 복직시키지 않았다. 경영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회사 측은 그제 “3분기 말까지 1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텐트촌은 ‘절망텐트촌’이 될 수밖에 없다”며 즉각 복직을 거부했다. 하지만 쌍용차는 지난 1일 지난 2005년(6만5521대) 이후 7년 만에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올렸다고 자랑했다. 완성차 누계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62% 이상 증가한 6만8467대라는 것이다. 20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의 죽음 앞에서조차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더구나 최근 한 임원은 해고자에게 ‘복직하고 싶으면 공적자금을 따와라. 그럼 복직시켜 주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경영진이 할 말이 아니다. GM대우차는 지난 2001년 2월 1725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가 이듬해 실적이 좋아지자 12월부터 순차적으로 해고자를 복직시켰다. 이것이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한 희망을 살리고, 결국 GM대우차가 소생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을 왜 쌍용차 경영진은 모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복직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이 겨울을 지나게 해선 안된다. 그런데도 회사는 “또다시 거대 세력과의 싸움이 시작됐다”며 희망텐트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희망버스로 보여준 시민들의 사회적 연대가 다시 쌍용차로 향하게 될 수밖에 없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이 그들에 대한 공고한 지지를 확인함으로써 그들의 복직을 이끌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희망버스의 열기가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을 지키는 희망텐트의 온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경찰과 평택시도 희망텐트의 온기를 꺼뜨려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