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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8일 일요일

기업, 주주에게만 맡기지 말라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3-01일자 기사 '기업, 주주에게만 맡기지 말라'를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Ⅰ] 변화 필요한 주주자본주의 - ① 이해관계자 기업 모델 대안으로 거론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실패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프랑스의 가 최신호에서 도발적인 선언을 했다. 주주의 권한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소개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끔찍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금융계가 위험천만한 투자에 나서는가 하면, 기업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결국 기업의 단기적인 성장주의를 부추겨 오히려 성장하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는 ‘불임 기업’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지배구조 이론의 참담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주주뿐 아니라 종업원과 소비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의 주장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다. 재벌에 의한 전횡이 시장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인 상황에서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업지배구조 이론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전횡을 막으면서 소외된 이해관계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_편집자
환경비용 등 고려 대상 늘어… 주주들만의 자본주의 벗어나야 ‘미래 비전’ 가능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고, 기업 활동이 사회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새로운 종류의 기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수십 년째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이론이 대기업의 경영 원칙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경영자는 기업의 법적 주인인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논리대로라면 기업지배구조 이론에 따라 경영자를 압박하면 만인이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다. 경영자가 기업을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거나, 새로운 수요 변화에 맞춰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가져온 결과는 참담하다. 특히 금융계가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따른 결과, 오늘날 우리는 끔찍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단순히 금융계가 위험천만한 투자에 나서도록 부채질만 한 것이 아니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 광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불행히도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생산지 이전은 산업국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기업의 단기주의 경영전략도 부추겼다. 기업의 근시안적 경영은 해당 기업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지만, 그런 경영원칙을 따르지 않는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의 기업이 성공하는 데 유리한 토양을 제공했다.

주주 이익 극대화의 함정
1970년대 모퉁이를 돌기 전까지 수십 년 동안, 대기업 경영자는 협력적 방식으로 부를 생산하는 관료조직의 수장이자 일원으로 자리했다. 무엇보다 업무능력과 통솔력이 있는 자가 경영자로 선출됐다. 경영자는 장기적 비전에 따라 기업을 운영했다.
미국의 정치·경제평론가 제임스 버넘이 1941년 저서 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기업 경영에서 무엇보다 재생산이 우선시될 정도였다. 버넘의 이론은 20년 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와, 프랑스의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에 의해 계승됐다.
이미 1932년부터 미국의 아돌프 벌과 가디너 민즈는 에서 거대 산업체를 지휘하는 경영자가 실질적 경제권을 쥐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주가 여러 명으로 분산되고, 특히 경영자의 전문적 역할이 중시되면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는 얼마 못 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됐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책을 근거로, 경영자가 그저 주주의 완전한 재산권을 행사하기 위한 수임자나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주주의 권한이 강화됨과 동시에, 연기금이나 기타 기관투자자들의 세력도 함께 확대됐다. 가계 자산에서 금융 자산의 비중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영광의 30년’(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 동안의 경제호황기)이라 불리는 호황기 동안 산업국에서는 임금노동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노동자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노동자 역시 저축금을 기반으로 수익을 챙겼다. 노동자가 맡긴 종잣돈은 점차 유가증권 등의 형태로 투자됐다. 일반 법인이 직접 관리하던 노동자의 예금은 점차 전문기관의 손에 운용되기 시작했다. 이 전문기관들은 무엇보다 주주의 수익 증대에 역점을 두라고 경영자를 압박했다.
이렇게 기업 환경이 변화하면서, 경영자는 밥그릇을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좀더 생산성 있는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상당한 시간을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보내야 했다. 동시에 이런 변화 덕분에 경영자 자신도 배를 불릴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다. 경영자는 ‘주주의 이익 증대’라는 미명 아래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자신 역시 그에 비례하는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을 챙겼다.
그렇다고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지닌 최악의 모순이 비단 경제침체기에도 경영자의 보수가 인상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리라. 어쨌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주 이익을 수호하는 것이 자산관리자뿐 아니라 경영자에게도 자신의 어마어마한 소득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주주 이익 수호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면서 1980년대부터 기업은 바야흐로 ‘핵심사업 집중화’ 전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복합기업(Conglomerate·서로 별 연관이 없는 다양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그룹)과 수직통합형 기업(Vertical Integration·한 기업이 생산에서 유통까지 전 단계에 진출하는 것)에 다양한 사업부문을 인수해 발전시키기보다 불필요한 사업부문을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바라는 다른 경쟁사에 이문을 남기고 팔 수 있는 부문을 매각하도록 권했다.
이처럼 사업영역을 전문화하면서 기업은 핵심부문의 몸집을 불리거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이 취약해지는 역효과도 일어났다. 자산 증식에만 목매는 근시안적 경영은 총체적 경제성장이나 혁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많은 기업이 자사가 가장 잘하는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그로 인해 일부 자회사나 사업부문을 접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일정 시기에는 다소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회사나 사업부문도 한 기업의 노하우나 역량의 폭을 넓혀 결국 미래 성장 잠재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랬다면 기술 변화가 급격한 시기에도 기업은 좀더 다양한 경영전략을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지배구조’가 인기 없는 까닭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맬서스주의적인 축소 지향 경향을 띠는 탓인지,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신흥국에서 이 이론은 좀처럼 인기가 없다.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신흥국의 기업들은 ‘경영자 중심 자본주의’(Managerial Capitalism)에 입각한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내적 성장에 역점을 두고 사업 다각화나 수직 통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재벌’이다. 비단 신흥국 기업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유럽 산업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기업 중에도 여전히 주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장기적 시각의 경영전략을 펼치거나 다양한 상품군을 유지하면서 주주의 요구까지 충족한 기업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생고뱅과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더욱이 GE는 금융부문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기업이어서 더욱 놀랍다.
어쨌든 기업지배구조 이론은 적어도 주주의 수익을 늘리는 데는 기여하지 않았을까? 사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먼저 기업지배구조 이론이 임금노동자에게 이롭지 않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이라는 미명 아래 구조조정과 생산공장 해외 이전의 붐이 일어나면서 노동자는 고용불안의 제물로 전락했다.
여기에 저성장과 그로 인해 발생한 대량실업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지위를 더욱 약화시켰다. 경제호황기 동안 노동자에게 더 많은 안전망을 제공하는 사회적 협약이 반드시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주주는 배당금 형태의 수익 배분 비중이 줄어들었고, 생산성 향상에 따라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며 성장의 파이를 함께 나눠먹어야 했다. 동시에 수익 가운데 일부가 주주에게 배분되지 않고 기업에 재투자된 덕분에 장기적으로 주주의 수익이 더욱 배가됐다. 반면 오늘날 기업은 매번 막대한 규모의 배당금 배분에 나서야 하는 까닭에 정작 투자나 발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과거에는 비교적 대출금리가 낮고 물가상승률이 높은 탓에 은행의 자본이 대개 금융 외 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반면 오늘날에는 모든 자본이 금융권으로 쏠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단기 수익을 올릴 별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한 채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막대한 현금을 쏟아붓고 있다.
한 예로 2010년 프랑스 CAC40 상장기업이 자사주 매입에 지출한 금액은 무려 59억유로(약 8조7252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기업은 어떻게 부를 창출할지 몰라 그저 파이를 나눌 입이라도 줄여보겠다며 자기자본을 잠식하고 있다. 훨씬 더 맬서스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토록 생각이 짧은 경영진에게 어쩌자고 후한 보수를 챙겨주는 것일까?
하루빨리 ‘게임의 법칙’을 바꾸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광의 30년’ 시대의 기업 경영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적합한 방식이었다. 당시 유럽은 오늘날 신흥국과 같이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고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구가했다. 

미국 뉴욕의 주식시장에서 미국 기업 메릴린치 직원들이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주주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계경제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AP.

이해관계자 기업 모델로 가야
앞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측정하고 환경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새로운 세상에 적합한 좀더 장기적인 비전에 입각한 시장경제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스스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 외에 새로운 규범과 규칙을 부과해야 한다.
주주의 이윤 증대를 강요하는 독재적인 경영과 단절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 모델을 창안해야 한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뿐 아니라 납품업체, 고객, 토지 소유자까지) 위험부담을 나눠가져서, 장기적으로 기업이 잘 운영되는 게 이로운 모든 이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 필리프 프레모 Philippe Fremaux 기자 ⓒ Alternatives Economiques·번역 허보미 위원

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착각, MB는 CEO가 아니었다


이글은 위키프레스 2012-02-26일자 기사 '착각, MB는 CEO가 아니었다'를 퍼왔습니다.
국가를 기업처럼 운영하는 대통령은 안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쉽게 잊고 산다. 5년 전 대통령 선거가 한창일 때 MB는 CEO(최고 경영자:chief executive officer) 출신 후보로서 우리 경제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자기가 당선되면 747(경제 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 대국)이 가능하며 종합주가지수도 3,000이 넘어 주식시장에서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 공약들은 예측이었다고 하겠지만 거짓말로 확인되었다. MB가 과연 CEO였는가? CEO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정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 한번 따져보자. ‘아니다’가 결론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층 직함은 회장 사장 대표이사 등이다. MB는 이 모든 직함을 가졌지만 CEO는 아니었다.
기업에서는 책임의 범위에 따라 영업에 대해서 책임지는 수익중심점, 공장 일반관리 등 원가를 책임지는 원가중심점, 영업결과인 매출과 원가의 차이인 이익을 책임지는 이익중심점, 여기에 신규투자나 사업 철회까지 책임지는 투자중심점으로 나누어 조직을 관리한다. 투자중심점 책임자가 기업경영의 최종 책임을 진다. 이 사람이 CEO이다.



대주주인 기업소유자(owner)가 회사의 대표로서 경영에 참여하면 CEO이다. 전문경영인 회장 또는 사장이 CEO인 경우는 POSCO 등 몇 개 회사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물다. 왜냐하면 이들이 투자의사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정 금액 이상의 투자는 반드시 대주주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MB가 현대건설 대표로 있으면서 고 정주영 회장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투자하거나 사업을 접을 수 없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바로 현대건설의 CEO였다. 삼성의 이건희 LG의 구본무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 등이 CEO이고 이들 재벌 그룹의 자회사 사장들은 CEO가 아니다. 어떤 부도덕한 기업인의 표현을 빌리면 MB는 고 정주영 회장의 머슴이었다.
그러나 5년 전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국민들은 MB를 CEO라고 오해했고, 언론은 잘못 보도했고, MB는 자신을 CEO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CEO 출신이라고 일 잘 하는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나 수상을 지낸 경우가 있으나 성공한 경우는 없다.
최근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막강한 재벌 그룹의 총수였다. 재임 중 끊임없이 지저분한 추문에 시달렸고 이탈리아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태국의 탁신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실례들이다.
CEO들은 본질적으로 사익(private interest) 추구에 익숙하다. 금년에 이익을 얼마 올리겠다고 목표가 정해지면 마련된 전략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자원을 집중하여 목표를 달성하면 된다. 대체로 기업은 경영성과라는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과정상의 문제들은 CEO 평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의 임무는 국익이라는 공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공익은 기업의 이익처럼 숫자로 명백하게 제시하기 어렵다.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존재하고 이들 간의 이해상충을 잘 조정하는 것이 공익추구의 기본이다. 원만한 의사소통이 필요불가결 하다. 사익추구에 익숙한 CEO 출신이 수많은 이해당사들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 민주주의는 결과는 물론 과정이 중요하다. 공익과 사익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다. 이래서 CEO 출신 국가 원수들이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다.
특히 대통령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시대적 소명을 정립해서 모든 국정을 여기에 맞추어 운영한다. 국가 경영에 관련된 시대적 소명에 충실한 CEO는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해방 후 우리역사에서 많은 CEO 들이 국회의원으로, 대권 도전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성공한 사람이 없다. 자신이 경영하던 기업도 망하고 부패 등의 이유로 개인적으로도 불행하게 끝났다.
MB는 국가를 기업처럼 운영해온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해상충이 조정될 수도 없었다.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이해도 부족했고 사익을 공익으로 혼동한 경우도 있었다. 사장 출신 대통령의 한계인지 본인의 자질 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매사를 10년 전으로 되돌리고 있다. 역사의 평가를 어찌할 것인가?
오는 4월 11일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12월 19일은 대통령 선거일이다. 번지레한 말 한마디라도 정확하게 살펴보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깨어 있는 국민이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탁월한 지도자를 모시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복이다. 그런 지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우리 모두 더 이상 착각하지 말자.

2011년 11월 21일 월요일

론스타 '먹튀', 금융 민주화 내팽개친 '모피아 왕국'


이글은 프레시안 2011-11-21일자 기사 '론스타 '먹튀', 금융 민주화 내팽개친 '모피아 왕국''을 퍼왔습니다.
[우석훈 칼럼] 외환은행, 아직도 국민주 방식은 가능하다

금융위원회는 론스타 문제와 관련하여 산업자본의 성격규명에 대한 자기 업무를 방기하고, 이미 이미 유죄로 확정판결된 사안에 관해서 '6개월 내 매각'이라는 단순 매각 명령을 내렸다.

금융당국은 2004년 KCC에 대해서, 2008년 DM 파트너스에 대해서 '징벌적 매각 명령'을 이미 내린 적이 있다. 전례에 비추어 처리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외환은행을 소유할 수 없는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가리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데, 금융위원회는 오로지 하나금융의 김승유 회장만을 고려해서 모든제도를 해석하였다.

어떻게 사태를 놓고 해석해도, 대통령의 친구에게 혜택을 주겠다, 이 한 문장 외에는 달리 해석이 되지가 않는다. 정치를 뛰어넘는 경제가 있기가 어렵고, 금융은 거기에 또 하나의 하부 장치이기는 하지만, 대통령 친구를 위해서 모든 국가 금융장치를 남용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치욕적인 사건이다. 게다가 금융관료들이 전문성의 틀 내에서 '모피아의 왕국'을 만들고 있어서, 아무리 사회가 민주화되어도 '금융 민주화'의 길은 여전히 멀다는 항간의 얘기들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민주당 등 야당의 국정조사가 진행되면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내린 판단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석이 애매한 금융위원회의 판단에 대해서는 외환은행 노조의 원인무효와 관련된 소송이 진행될 것이니, 이 사건은 다시 법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다만 이제는 지금까지는 론스타가 피고였으나, 이제부터는 여차직하면 금융위원회의 위원들과 관련된 공무원들이 여차하면 피고석에 앉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자, 이런 국정조사와 법원의 논란은 그거라 치고, 과연 외환은행은 어떻게 푸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듯 싶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는, 강만수 전 장관이 오랫동안 신념으로 가지고 있고, 많은 모피아와 삼성 계열 경제인들이 금과옥조처럼 외쳤던 '메가 뱅크'가 과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인가에 대한 검토의 문제이다. 투자은행(IB : Investment Bank)이 과연한국 금융의 장기적 전략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산업은행에서 농협에 이르는, 지금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일련의 민영화와 대형화 전략이 바로메가뱅크라는 그림 하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이게 과연 현 시점에서 옳은가, 여기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금융 공공성'에 대한 논의 특히 외환과 관련된 업무를 공공의 영역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제한적이라도 공공의 영역에 둘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민영화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면서 정부 지분을 넘기고, 민간 부분에 맡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전력, 가스, 물, 이런 기본적인 부문에 대해서 가격 안정과 공급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시각이 점점 커지는 중이다. 외환 관리도 이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오면서 군인들이 밀실에서 결정하던 순간도 있었고, 문민정부가 들어왔지만 결국은 관료들과 대통령 측근들이 다 알아서 몰래 결정하던 순간도 있었다. 제도상으로 마지막에 결정하는 기관들이 있지만, 그 기본은 국민적 논의와 합의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우리는 경제 민주화라는 점에서, 아직 충분히 사회적 논의를 하기에 성숙되지는 않았고, 그 중에서도 금융은 아직도 지나치게 금융관료들의 손에 너무 많이 장악되어 있다. 금융에 대한 논의에 기술적인 어려움이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부 금융관료들이 이 모든 것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인 시대 착오적이다.

론스타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범죄집단으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만약 금융위원회에서 상식적으로 제도를 집행해서 '징벌적 매각 명령'을 내렸다면 일은 훨씬 더 순리적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늦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주 방식이라는, 정부와 기업 사이의 중간적 소유형태라는 것이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금 인천공항 민영화를 위해서 동원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 아닌가? 국민들도 참여하고, 다른 금융기관들이 조금씩 참여해서 분산시켜서 필요한 지분을 인수하면, 지금 성급하게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넘겨주는 것보다는 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민영화는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 세계적 금융위기가 여전히 유로존의 위기와 함께 일촉즉발인 지금, 론스타의 주식을 하나금융에 독점적으로 넘겨서 불투명한 메가뱅크를 새롭게 만들 이유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천공항에는 국민주 방식이 가능한데, 외환은행에는 불가능하다, 그렇게 우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제일 나쁜 경우는, 양쪽 은행이 모두 부실해지는 경우이다. 뭐라고 포장을 해도, 하나금융으로 외환은행을 넘기는 것은 대통령 친구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만들어낸 정치적 결정 아닌가? 중소기업이나 소매업 등 다른 분야에서는 조금씩 경제 정의에 대한 얘기가 한국에서도 진행되기 시작하는데, 유독 금융 분야에서는 여전히 밀실행정과 관료 독재가 강하다. 그리고 그 재정적 부실 등 예상가능한 손실은 결국 국민들의 몫으로 떨어지는 것 아닌가?

현재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나는 외환은행을 국민주 방식으로 전환해서 독자회생의 길을 모색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논의를 전혀 해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시간이 없지는 않다. 금융위원회의 결정 사항 그대로라도 6개월 동안, 도대체 어떤 방안이 한국 경제에 최적의 대안이 될지, 모색해볼 시간을 여전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외환은행 문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가 또 있다. 그걸 사회적 논의 테이블에 올려놓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지금 처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금이라도 순리대로 문제를 풀 수 있다. 한국의 헌법 구조상, 금융당국이 국민의 위에 군림하는 상급기관은 아니다


▲ ⓒ연합뉴스

/우석훈 2.1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