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오홍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오홍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언론 주물럭' 노린 사조직 정권의 자업자득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7일자 기사 ''언론 주물럭' 노린 사조직 정권의 자업자득'을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종편은 좀비 TV 되는가

이런 저런 '인증샷'이 수도 없이 생겨나더니, 급기야 특정 TV를 '확실히 시청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종편채널 인증샷'까지 등장했다. 해당 종편채널을 시청한 사람이 인증샷을 그 회사에 보내면, 추첨해서 경품을 주는 전국단위의 '방방곡곡 시청 인증샷 찍기' 이벤트까지 벌어졌다. 일부 종편사에서 그랬다.

해당회사와 관계사 임직원들에게는, 그 인증샷의 개수를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별난 캠페인이 병행되기도 했다. 임직원들은 책임량을 완수하기 위해, 친인척들에게까지 인증샷을 부담시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름이 아니라 종편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신문의 부수늘리기 캠페인에서는, 해당독자가 적어도 일정기간 이상 신문을 구독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TV의 인증샷은, 사진을 찍은 사람이 계속해서 해당 TV를 시청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순간의 증거일 뿐이다. 시청하고 있는 사진 한 컷 잠깐 찍고, 채널 다른 데로 돌려버리면 그만인 것을, 종편의 시청률이 얼마나 바닥권이면 그렇게까지 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야말로 말을 잠시 강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내키지 않는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애처롭고 눈물겹기까지 한 이야기다.

인증샷 보낸 사람이 많아서였는지, 이벤트를 벌인 종편사는 당첨자 발표를 연기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시청률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언론 멱살 움켜쥐고 '사설(私設)정치' 편하게 하기 위해, MB정권이 최시중씨를 앞세워 판을 짜 내놓은 종편채널들의 사정이 요즘 이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판을 벌인 동기가 너무나 불순했기 때문이라고들 거듭 말한다.

시청률이 낮으면 광고가 붙지 않는다. 광고 수입이 변변치 않으면 프로그램 제작에 돈을 들이지 않는다. 당장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생긴다. 곧바로 또 시청률 저하로 이어지고, 광고 사정은 더 나빠진다. 종편들은 바야흐로 이런 악순환의 궤도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것처럼 보인다. 자립 할 때까지 굳건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북돋음을 줄 것 같아, 철썩 같이 믿었던 최시중 씨도 지금은 떠나고 없다.



▲ 측근 비리 연루 의혹 등으로 물러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뉴시스

종편들,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필자는 작년 11월6일자  칼럼에서 종편들에게 '직접광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강도면허'를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최시중 씨를 꾸짖은 적이 있다. 항거할 수 없는 상태의 기업들에게, 광고를 하라고 강요하는 사태를 우려한 것이었다. 국회의원이 바로 그런 항거불능 상태의 공기업에게, 특정 종편TV에 거액을 협찬광고 하도록 '권유'한 사태가 말썽이 되어 보도되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그 위원회 산하 공기업인 한전과 6개 발전회사들에게, 조선일보 종편인 'TV조선' 드라마 '한반도'에 3억4000만 원을 협찬토록 했다는 게 그 이야기다. 권의원은 "이 드라마가 에너지 문제를 다루는 만큼, 발전회사들이 인지도 개선차원에서 협찬을 검토해 달라"고 권유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아마도 조선일보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 말할 것이다. 권 의원도 조선일보와는 아무 상관없이 순수한 자발적 판단으로 '권유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랬으리라 믿는 사람 거의 없다. 심지어 마피아 두목이 부하를 시켜 특정기업에 찾아가 수금을 해 오도록 한 것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 일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더구나 한전은 천문학적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공기업으로, 어디에건 자발적으로 거액을 협찬 할 형편이 못 되는 상태였다. 하기야 설사 그렇더라도, 공기업들 가운데 '국정감사'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해당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의 '권유'를 "못 하겠다"고 거절 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감사도 무서웠고 조선일보도 무서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도저히 항거 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종편의 시청률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시청률이 바닥권을 헤매면 광고가 붙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의 힘'을 동원해 '직접광고 영업'을 하고, 동원할 수 있는 다른 힘을 빌려서라도 광고는 끌어와야 했을 것이다. 물론 다 무리수다. 그렇다고 절차상의 정당성 여부를 따질 계제도 아니다. 사정은 그 만큼 절박하다.

어찌됐건 3억4000만 원의 협찬금은 한전 쪽이 전혀 원치 않는 추가적자로 얹혀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TV조선'의 '한반도'에 강제로 협찬한 꼴이 되었다.

한전 측이 종편 시청률 때문에 협찬광고 덤터기를 뒤집어쓴 경우라면, 같은 이유로 덤터기보다 더한 날벼락을 맞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다. 종편사들의 프로그램 외주 제작사들이다. 계약까지 맺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급하던 외주 제작사들이 최근 종편 본사로부터 잇따라 일방적인 제작 중지 통보를 받고 있다. 수많은 외주제작사 PD들이 일감이 없어 쫓겨나는 중이다.

바닥권 시청률로 광고 수입이 엉망의 상태가 되자, 대부분의 종편사들이 '원가절감'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외주제작프로그램을 방송하던 시간은 종편사의 자체 제작물이나 다른 프로의 재방송으로 메워지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품질은 날로 하향곡선을 그려가고 있다.

당초 종편의 출범은 외주 제작사들에게 꿈이요 희망이었다. 더구나 준비가 덜 된 상태의 출범이어서, 종편사들은 프로그램의 상당부분을 외주제작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많은 '일감'들이 외주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 빠른 외주제작사들은 종편 출범을 앞두고, 유능한 실무인재들을 은밀히 끌어 모으기도 했다. 종편사들도 그랬다.

특히 JTBC의 경우는 재빨리 '중앙과 함께 도전하는 파트너' 모집공고까지 내, 우수제작사 3곳을 선발해 놓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그렇게 JTBC에 뽑힌 3개 제작사를 부러워한 나머지, 중앙의 '중'과 도전의 '도', 파트너의 '파'라는 글자를 따 '중도파'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A사는 '중도파'는 아닐지라도 원래 명성이 있는 외주제작사였다. 종편 출범 4개월 전인 작년 8월부터 일찌감치 한 종편사와 손을 맞추기 시작한 것도 그 회사의 일 솜씨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5차례 방송하는, 평일 저녁 6시대의 한 시간짜리 생활정보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9월 말이었다. 기를 쓰고 30여명의 PD와 작가를 모아 제작진을 구성했다. 그렇게 12월 방송을 시작했으나 2주 만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방적인 제작중지 통보였다. 사전예고도 설명도 없었다. 예정됐던 방송시간대에 '재방송'이 편성돼 있었다. '비용절감'이 이유였을 것이라 했다. 계약 같은 건 중요치 않았다. 언제 또 일감이 나와 일을 맡게 될지 모르는데, '말썽'을 일으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30여명의 PD와 작가들 내 보냈다. 뿔뿔이 흩어졌다.

B사도 또 다른 종편사와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으나 1월 중순 제작중지 통보를 받았다. 전문인력 15명을 내 보냈다. 이런 식으로 외주제작이 중단된 프로그램이 30개 가까이 될 것이라고 한 관계자는 추정한다. 외주제작사들의 모임인 독립제작사 협회 차원에서 피해사례를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하나, 제작사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종편사들과 맞설 힘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라 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프로들도 찬밥 신세다. 구두로 계약을 하고 제작을 시작했더라도 종편사들이 일방적으로 제작비를 깎는 관행이 굳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프로그램은 다 같은 수준인데 지상파 TV제작비의 80%에 불과한 종편의 외주제작비도 또 나쁜 빌미가 되고 있다. 일부 지상파 TV에서 종편 수준에 맞춰 외주제작비를 삭감키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저래 외주제작사들은 종편 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최시중씨는 '판'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종편의 출범은 방송시장의 파이를 키워 수많은일자리가 창출 될 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 호언장담은 거짓말이 되었다. 그리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풍토는 더 나빠졌다. 희망을 노래하던 외주제작사들은 지금 절망을 말한다.

종편을 너무나, 너무나도 많이 허가해 줬다고들 말한다. 많아도 두 개를 넘기지 말아야 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들 해악만 끼치는 좀비TV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중동과 이 정권도 여기에 이를 정도로 상태가 나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이 정권이 방송 발전을 생각한 게 아니라, 우선 사조직에 의한 사설정치의 편의를 위해 언론을 부도덕하게 핸들링 하고자 한 게 문제였다. 따라서 지금의 사태는 자업자득으로 보는 게 옳다. 심각한 부작용들 대부분이 바로 종편허가를 통한 언론 장악이라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거듭거듭 새겨둘 필요가 있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2월 1일 수요일

수렁에 빠진 4대강…MB, 아직도 행복한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01일자 기사 '수렁에 빠진 4대강…MB, 아직도 행복한가?'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지금이라도 박근혜는 '말'을 해야"

심각한 문제점들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놓고, 정부가 사태를 호도하기 위해 우격다짐의 칼을 뽑아드는 몸짓을 보였다. 특히 현장을 조사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이른바 '보(洑)'의 균열과 누수 등안전문제를 지적하는데 대해서도,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할 경우 법률적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다른 사람도 아닌 국토해양부 장관이 앞장서서, 사실상의 협박을 서슴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측이 무슨 까닭에서인지 4대강 구조물들의 설계도면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실상파악을 위한 현장 접근까지 방해받은 적이 많다고 볼 멘 소리를 한다. '보'의 안전문제만을 따져보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투명한 상태에서의 민관합동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민간전문가와 환경단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생명의 강 연구단'이 4대강의 16개 보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은 1월 16일이었다. 이 날 발표에서 특히 주목을 끈 것은 박창근 관동대교수(토목공학)가 지적한 4대강 보의 안전문제였다. 박교수는 낙동강의 구미보·낙단보 등 적어도 6개 보에서, 보의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받이공의 유실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이 직간접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물받이공이 없어지면 보 본체를 받치고 있는 밑 부분 모래가 물에 쓸려 내려가게 되고, 모래 위에 세워져 있던 보가 필경 기초를 잃어 동강 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정부측은 아마도 "보가 동강날 수도 있다"는 대목에 몹시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박교수 발표 사흘 뒤인 1월 19일, 긴급조치 시대 대검 공안부장 쯤 되는 사람이 "국론(國論)분열조장행위 엄단하겠다"하던 식의 협박이 나왔다.



ⓒ프레시안(손문상)
이 나라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취재기자들까지 다 모인 공개된 자리에서 당당하게 나온 문제제기였다. 사고의 가능성을 지적하며 걱정하고 경고하고 공동조사를 제의한 것은, 법률적으로 대응할만한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 내용'도 아니었다. 참으로 희한한 나라다. 민간인 전문가가, 수십조 원을 쏟아 부은 초대형 사업현장을 찾아다니며, 정부도 파악하지 못한 '사고의 가능성'을 자력으로 찾아내, "빨리 손 써야한다"고 알려준 '고마운' 행위를 놓고, "입 다물지 않으면 없애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지적해줘서 고맙습니다. 함께 가 현장을 확인하고 위험을 사전에 막읍시다" 해야 할 일이었다. 오죽하면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위원이 꾸짖고 나섰다.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했다. 보의 안정성과 함께 갈수기의 수질악화, 농지침수피해 등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며 야권 및 시민단체와 함께 공동실태조사를 하는게 옳다고 촉구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협박'을 하고 있을 무렵, 행정안전부에서는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을 불러, 설 연휴를 맞아 대대적인 4대강 홍보활동을 벌이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지역새마을 협의회, 바르게 살기, 4대강 단체 등을 통해 4대강 보 방문 환영 현수막도 걸도록 했다. 문제점 많은 '4대강 여론'을 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생명의 강 연구단'의 안전문제 제기를 보고받은 MB쪽에서, 질책과 함께 '법률적 대응 검토'를 포함한 '자상한' 독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대강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참으로 별스럽다"고 느끼는 대목이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4대강 침묵'이다. 4대강 문제에 대한 박 위원장의 침묵은 이미 '은(銀:웅변)보다 나은 금(金:침묵)'도 아니고, '신비로움'의 단계도 벌써 벗어났다. 무언가 견해를 밝혀야 할 '때'를 놓친 듯하다. 혹시 비상대책위원 가운데, 4대강 사업에 대한 '색깔'이 분명한 사람들을 적지 않게 임명한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시했다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정치인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분명히 '말'을 할 필요가 있다. 4대강 사업은 박근혜 위원장이 그러듯이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4대강 사업은 시작단계에서부터 졸속과 속임수와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동지상고 잔치판'이야기를 빼놓고 보아도 그렇다.

당장 지금 주목받고 있는 보의 안전문제도 분명한 '댐'을 '보'라 우기며 공사를 벌인데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원래 보(洑)란 우리가 시골에서 보았듯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1m 남짓 높이의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가두어 두는 곳을 말한다. 강이나 호수를 가로지르는 큰 구조물을 세워 많은 물을 저장하는 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MB정권은 4대강 16군데에 그렇게 사실상의 '댐'을 건설하면서 '보'라 선전했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에는 냇물을 가로지르는 길이 86m, 높이 4.8m의 아담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 댐이다. 현지 관청에서도 이 구조물은 안흥댐이라 부른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도 안흥댐이라 적혀있다. 4대강의 이른바 '보' 16개 가운데 안흥댐과 같거나 작은 곳은 하나도 없다. 길이는 260~953m에 이르고 이 중 8개 보는 길이가 500m 이상이다. 국제 대(大) 댐 협회(ICOLD) 기준으로 대(大) 댐 (길이 500m이상, 높이 10m이상)에 해당하는 보도 4개나 된다. 모두 '보'들이 아니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구조물인 '댐'을 '보'라 우긴 데는 까닭이 있었다. 국가재정법상 투자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게 되어있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비켜가기 위해서였다. (보는 예비타당성 조사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댐은 댐에 걸맞는 기준에 따라 튼튼한 기초 공사 등을 해야했다. 그러나, 사실상 댐이므로 댐의 개념에 맞춰졌어야 할 설계 등이, 상당수 그냥 이름대로 보의 기준에 맞춰 허술하게 짜 맞춰졌다고 했다. 당연히 안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고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한다.

거쳐야 할 절차 생략하면서 졸속과 속도전 공사가 뒤따랐고, 그 자체가 무리수가 되었다. 댐에서의 '누수'는 건설업계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금기사항이다. 그 때문일 것이다. 4대강 공사 관계자들은 보에서 물이 새는 것을 절대로 누수라 하지 않았다. 우리말 사랑일까, '물 비침 현상'이라고도 했고, '물 번짐 현상'이라고도 했다. (토목공학교과서에도 없는 용어라 했다) 그리고는 반드시 "별거 아니다"는 토를 달았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다음 단계에서는 '물구멍 커짐 현상' 이나 '보 무너짐 현상'이라 할 것인가"하고 묻는다. 솔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 4대강 사업 공사 현장 ⓒ프레시안(최형락)

문제는 '보의 안전문제'가 설사 해결된다 해도, '4대강'은 이미 발을 뺄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당초 MB정권이 4대강 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목적으로 내세웠던 홍수예방은 그 자체가 거짓이었다. 누차 이야기 했고 이미 입증됐듯이, 4대강 본류에는 홍수가 없었다. 지천과 지류가 홍수지역이었다. 4대강 본류에 대한 과도한 준설로 역행 침식 현상이 이어지면서, 지천 지류의 홍수는 그 피해 정도가 더 심해지게 되어있다.

16개 보에 물을 가두면 수질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벌써 함안보와 합천보 상류 지역은 녹조(綠藻)와 갈조(褐藻)가 많이 번식해, 조류(藻類)발생 경보직전의 수준에 이를 정도로, 수질이 나빠졌다는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각 보마다 물이 채워지면, 수위가 높아지면서 인근 수백만평의 농지가 침수된다. 정부도 알고 있다. 농민들의 생업문제가 난감해 질 것이다. 준설해내면 또 쌓이는 모래 때문에 당초 MB가 기대했던 수심6m의 뱃길도 쉽지 않을 것이다.

4대강의 한해 유지비가 2600억 원이 되리라던 정부의 예측은 시행도 해 보기 전에 빗나갔다. 6000억 원 예측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1조 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많은 돈 들이고도, 계속해서 세금 끝없이 쏟아 부어야 할 일이 남은 것이다. 독일의 한 하천 전문가는, 4대강 사업의 후속비용을 지속적으로 부담할 경제력을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는 없을 것이라 했다. 요컨대 비싼 돈 들이고 백해무익한 재앙을 불러들였다는 이야기다.

작년 10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경기도 여주군 한강 이포보에서 열린 '4대강 새물결맞이'행사에서, "오늘 저녁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그 한 달 뒤 필리핀 국빈 방문길에서, MB는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도 국토의 상당부분이 방콕처럼 침수되어 국민이 고통 받았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거듭 말하지만 근래 들어 4대강 본류에서는 홍수가 일어난 적이 없는데도 그는 그렇게 계속 거짓말을 해댔다.

그 때문이었으리라. 극심한 물난리를 겪었던 태국의 총리가 지난 12월 15일 조선일보기자와 만나 '4대강'을 배우기 위해 2012년 봄 한국을 방문키로 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제적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해댄 결과다. '4대강'과 관련해 그가 지금도 정말로 행복하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찌됐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

이런 모든 사태, 예컨대 보의 안전문제, 지천지역의 홍수피해 증가문제, 수질 악화문제, 농경지 침수문제, 끝없는 세금 퍼붓기 문제, 국제적 거짓말 수습문제 등을 일거에 해결할 방안이 있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진실 앞에 겸손하고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는 결단해야 한다.

일부에서 폭파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4대강의 보들은 철거하는 게 순리다. 빠를수록 좋다. 단돈 10원이라도 더 들어가기 전에 그래야 한다. 그게 이익이다. 4대강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오홍근 칼럼니스트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최시중, 허문도보다 더 나쁘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30일자 기사 '"최시중, 허문도보다 더 나쁘다"'를 퍼왔습니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 최시중 청문회, 반드시 필요하다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렸다. 서울 도심에서도 골목마다 거의 눈이 녹을 새가 없었다. 우리들은 취한 발걸음으로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눈물 훔쳐가며 그 미끄러운 눈길 골목들 술집을 끝없이 훑었다. 플라스틱 물바가지에 소주를 붓고 맥주ㆍ정종ㆍ양주 등 술이란 술은 다 섞어서 큰 잔에 나눈 뒤, "통폐합!"이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회사 빼앗긴 설움을 마셔댔다.


그리고는 진눈깨비에 젖은 개처럼 몸을 떨었다. 아무 짓도 할 수 없음을 자학하며 진저리를 쳤다. 필자는 동양방송(TBC)의 기자였다. 1980년 12월, 그 때 우리들이 이를 갈며 뇌리 깊숙이 담아 갖고 다니던 한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허문도 씨였다. 허 씨는 언론 통폐합의 주역이었다.


필자의 기자 생활은 방송 12년에 신문 18년을 합해 30년여가 된다. 경력은 신문 쪽이 훨씬 많은데도, 지금 더 그립고 애착을 느끼는 것은 신문보다 근무기간이 짧은 방송기자 시절이다. 아마도 대학을 나와 바로 시작한 직장으로서의 '첫 정(情)'도 있겠으나, 언론 통폐합으로 회사를 빼앗기면서 겪었던 고통스러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때문에 허 씨에 대한 증오도 더 컸을 것이다.



▲ 1988년 11월 22일 국회 문공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오른쪽부터 허문도 전 청와대 비서관. 한용원 전 보안사 정보처장직무대리. 이병찬 전 검열단장이 80년 언론통폐합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연합

허 씨는 언론 통폐합이 소신이었다고 훗날 청문회에서 말했다. 기본 구상은 △언론과 재벌분리 △방송 공영화 △사이비 기자 정리라 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80년 언론인 대량해직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보안사의 작품이며, "난세적(亂世的) 상황에서는 자유주의적 수단으로 자유를 지킬 수 없다"는, 이른바 난세론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난세적 상황'이 바로 전두환 씨를 비롯한 신군부와 허 씨 자신 등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상황이었음을 실토하지는 않았다. 그 같은 난세적 상황에서 쫓겨난 수많은 기자들과, 정든 회사를 빼앗긴 언론인들이, 80년 그 겨울 울면서 거리를 헤맸다. 몇몇은 얼마 뒤 죽기까지 했다. 허 씨 때문은 아니었을지라도 나이 든 언론인들은 지금도 그 해 겨울을 잊지 못한다.

허문도 씨는 이 나라 언론사(言論史)를 이야기 할 때, 한 시대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그 허 씨(1940년생)보다 나이는 더 많으면서도 한 세대(30년) 뒤에 등장해, 결코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겨 허 씨와 비교되는 사람이 바로 최시중 씨(1937년생)다. 허문도 씨의 전두환 정권과, 최시중 씨의 이명박 정권을 바로 수평 비교 할 수는 없다. 당장 선거절차를 거친 정당성이 있고 없고부터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허·최 씨 두 개인을 비교 할 때는, 정당성이 결여돼있는 전두환 정권의 허문도 씨가, 정당한 선거절차를 거친 이명박 정권의 최시중 씨 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아니러니가 등장한다. 허 씨가 이른바 '소신'에 따라, 사이비 언론의 극심한 폐해를 나름대로 정리했다는 '실적'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다는 특히 두 사람 개개인의 살아온 인생과 '도덕성'을 사람들은 비교하는듯하다. 허 씨가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마디로 최 씨가 도덕성에서 처진다고 했다.

두 사람을 다 아는 언론인들은 서슴지 않고 그렇게 말한다. 최 씨는 유력 정치인의 줄을 잡고 1964년 동양통신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줄을 타고 최 씨는 이듬해인 1965년 동아일보 기자가 된다. 다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1971년, '정치적 행사'와 관련해 당시로서는 거금인 200만 원을, '어떤 사람으로 부터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구속된다. (바로 이 대목과 관련해 최시중 씨는 작년 3월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장후보자 인사 청문회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독재에 항거하다 고문당하고 투옥되기도 했다"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동아일보에서 함께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모두 기절 할 듯이 놀랐다.)

결국 그 200만 원을 되돌려 주고 어찌어찌하여 무죄를 선고받아 사태는 수습되었다. 회사에서 최 씨는 사주의 전기(傳記) 쓰는 일을 맡아 매달리기도 했다. 그는 전두환 씨와골프 회동도 했고, 정치인 장관을 찾아가 줄 대기를 하려한 사실이 드러나 사내에서 말썽 된 적이 있다. 때문에 그를 '기자다운 기자'로 기억하는 동료는 별로 없다. 2007년 MB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상득 의원과 친구였던 그는 날개를 달고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한다.

최시중 씨의 언론 다루는 솜씨는 '탁월'했다. 그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었을 때는, 정부 언론 관계가 YS때까지처럼, 정보기관 등에서 언론사별 담당자를 두고, '밀착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최씨는 먼저 말 잘 듣지 않는 사람 사장자리에서 밀어내고, '충성스런 내 사람'을 심는데 결사적으로 매달리며 '일'을 시작했다. 무리를 하면서 그런 구도를 만들어 갔다. 감사원·검찰과 작당해, 죄 없는 정연주 KBS 전 사장을 몰아 낸 것도 그런 수순이었다.


▲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방통위 브리핑실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오고 있는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일단 그게 된 다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새로 앉힌 사장으로 하여금 걸림돌들 제거케 하고, 말 잘 듣는 언론사 만들도록 했다. 이른바 마피아의 underboss(부두목) 시스템이었다. 두목이 부두목 한 사람의 멱살만 잡고 있으면, 아무리 큰 조직이라도 멋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체계였다. MBC·YTN도 다 그렇게 했다. 바른 눈 박힌 '반골'들 그렇게 보도일선에서 쫓아냈고, <pd>등 '볼만 한' 프로들 그렇게 숨통을 조여 놓았다. KBS·MBC 보도책임자 불신임 난리도, 근원을 찾아 올라가면 다 최시중 씨의 얼굴이 나온다.</pd>

그의 공식 직함은 '방송통신'위원장이었으나, 내용적으로는 직함에 '신문'이 붙어 있었다. '신문'방송통신위원장이었다. '종편(종합편성) 채널'이라는, 아편 듬뿍 바른 당근을 손에 들고,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을 이리저리 멋대로 끌고 다녔다. 조·중·동은 그거 얻겠다고 죽기 살기로 조아렸다. 정신 못 차리고 알아서 기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MB의 '정권 안보'를 위한 언론담당 문지기였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가까스로 제자리 잡아가던 언론풍토는 그의 발길 밑에서 사정없이 유린되었다. 종편에 온갖 특혜 다 주고 미디어렙법 개정 방해하면서, 종편들이 기업에 눈 부라리며, 직접 "광고 내라" 손 벌리고 다니게 하는 '강도 면허'도 내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기업의 광고담당자들 따로 불러, 종편 쪽에 광고 물량 늘려 주라고 호통치는, 터무니없는 주문도 서슴지 않았다. 업계를 마구마구 어지럽혀 놓았다.

종편들 때문에 광고 수입이 격감했다며, 지역방송·종교방송에서는 아우성을 친다. 그런데도 종편들 시청률은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최씨가 다 같이 죽게 된 판을 짜 놓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통위원회의 다른 고유 업무들도 엉망이었다. 2011년의 정부업무평가보고회에서 방통위원회는 꼴찌판정을 받았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했던가. 최씨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까지 검열하겠다고, 뉴미디어 정보심의팀 신설을 강행했다. '시대착오'라는 이야기가 한나라당에서도 나왔다. 미 국무부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정부의 이 같은 표현의 자유 검열에 대한 미국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까지 나왔다. 월스트리트 저널기자가 그랬다. 국제적 망신살이었다.

MB정권 들어서기 전인 2007년, 영국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발표한 한국 IT 산업 경쟁력은 세계 3위였다. 최시중 씨가 방통위원장 되고난 이후 미끄럼타기 시작하던 이 순위가 2011년 19위까지 추락했다. IT강국, 우습게 되었다. 한 눈이나 팔면 다 그런 꼴 당하게 되어있다. "망쳐도 너무 많이 망쳐놓았다"는 소리는 그래서 나온다.

때맞춰 '양아들 게이트'니, '5만원 권 100장'이니, 이런저런 구린 이야기들도 들리기 시작한다. 사표를 쓴 그는 죄 없다고 시침을 떼지만, 지켜봐야 할 일이다. 검찰수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눈 부릅뜨고 주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평소의 희망대로 최 씨가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을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허문도 씨가 그리 됐듯이, 악몽같던 최시중 씨의 시대도 확실히 정리되어야 한다. 청문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홍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