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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용산참사 3년, 국회가 속죄하는 마지막 방법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18일자 기사 '용산참사 3년, 국회가 속죄하는 마지막 방법은?'을 퍼왔습니다.
세입자 함부로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용산참사 방지법' 발의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20일로 만3년이 된다. 변한 건 없다. 여전히 세입자는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몰린다. 재개발 지역에서 폭력사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지만,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강제로 철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게 하는 일명 '용산참사 방지법'이 발의됐다.

민주통합당 정동영 의원실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은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퇴거금지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용역에 의해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재개발 현장 폭력 행위가 사실상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퇴거 금지시기를 명시(일출 전과 일몰 후, 공휴일, 겨울철, 악천후)했다. 원주민 재정착 개념을 도입해 거주민이 개발사업 완료 후 전과 동등한 수준으로 거주하도록 재정착대책의 구체적 내용을 명시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주기 때부터 강제퇴거금지법을 논의해 왔다.



▲ 용산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 ⓒ프레시안(허환주)

이 법을 대표 발의한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이 법은 여야를 뛰어넘는 법"이라며 "국민을 위해 국회의원이 됐다면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란다"고 법안 통과를 당부했다. 정 의원은 "18대 국회는 2월 한 달이면 막을 내린다"며 "18대 국회가 국민에게 속죄하는 길은 마지막 개혁 법안인 이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 의원은 "박근혜 의원이 이 법을 반대하지 않으면 통과된다"며 "99% 서민의 눈물에 무심한 국회가 서민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민생 법안이 꼭 입법되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개발도 안 하는 곳을 뭐가 그리 급해서…"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용산'은 여진히 현재진행형이다. 망루 위에서 농성을 했다는 이유로 7명의 철거민이 복역 중이다. 철거민들을 특별사면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면, 당시 용산참사 진압 작전을 펼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4월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시행사 측은 용산 재개발 지역 공사장 임시식당(함바) 운영권을 유가족에게 주기로 합의했지만 현재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생계 수단이 막막한 상황이다. 유가족 중에는 빚을 내서 다시 식당을 운영하는 이도 있다.

용산참사 직전까지 급속하게 진행됐던 용산 4구역 재개발사업은 참사 이후 여러 악재가 겹치며 사업 추진이 지체되고 있다. 재개발조합은 시공사와의 추가분담금 문제로 계약을 해지하고 시공업체를 재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재입찰이 결렬되면서 이달 중 재공고를 낼 예정이다.

고 양회성 부인 김영덕 씨는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년이나 됐지만 남일당 건물이 있던 곳은 여전히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무리한 진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는 "유가족들은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지내고 있다"며 "더 이상 용산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거민이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고 이상림 부인 전재숙 씨도 "용산참사 현장은 주차장으로 변해 용역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며 "반면, 아무 죄 없는 철거민들은 중형을 받고 복역 중"이라고 비판했다.

조희주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는 "용산참사의 근본원인은 마구잡이식 개발에도 있지만 개발 속에 강제로 철거민을 쫓아내는 것에도 있다"며 "3년 전 강제로 철거민을 퇴거만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더 이상 용산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런 마음으로 법 제정을 촉구한다. 이번 국회에서 처리되길 간곡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18일 저녁 7시 '떠날 수 없는 사람들-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북콘서트를 연다. 19일 저녁에는 서울역 광장에서 용산참사 3주기 추모대회를 개최한다. 용산참사가 발생한 20일에는 마석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사추모제를 진행한다.



/허환주 기자 

2012년 1월 6일 금요일

"용산참사 3년, 이번 설은 가족과 보내게 해주세요"


이글은 프레시안 2012-01-06일자 기사 '"용산참사 3년, 이번 설은 가족과 보내게 해주세요"'를 퍼왔습니다.
[기고] "감옥에 있는 남편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길"

1월이 되면 모두들 행복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지만 그날이후 나에게 1월은 아픈 기억으로 다가온다.

2009년 1월 20일, 온 세상을 뒤흔들어놨던 용산참사.재개발이란 거대한 괴물이 한강로2가가 아닌 용산4구역이라고 금을 그러놓더니 결국은 그 안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 살고자 올라갔던 망루에서 다섯 명은 싸늘한 주검으로 일곱 명은 차가운 감옥으로 가뒀다.

그 후 나에겐 연말연시나 새해가 아닌 용산참사 2주기, 용산참사 3주기를 맞이하며 다시금 그날의 기억을 떠오른다. 너무도 추웠던 그날, 파란색 망루를 쳐다보며 그런 일들이 발생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예전처럼 온가족이 모여 행복한 미래를 꿈꾸리라 믿었는데, 모든 것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2006년 12월, 30년 넘게 갈비집을 운영하시던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의 가게를 남편과 함께 "레아"라는 호프집으로 수리를 한 후 문을 열였다. 손님으로 꽉 찬 가게를 바라보며 너무도 행복했었다.

시아버님은 늦은 귀가로 아들과 며느리가 힘들진 않을까, 매일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후 가게에 들려 청소를 해주셨다. 30년 넘게 갈비집 사장님으로 살아오셨던 어머님은 힘든주방 일을 하시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남편은 가게 안 밖의 모든 일들을 해결해주며 누구보다 든든한 아들, 남편 이였다.


ⓒ뉴시스

1년도 되지 않아 사업시행인가, 그 뒤부터 지옥

매일이 행복했다. 3년만 열심히 살다보면 가게 수리할 때 얻은 빚도 갚고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어 가게 내주시고 옥탑으로 이사하신 부모님들도 편히 살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년도 체 되지 않아 사업시행인가가 나더니 그때부터 지옥 그 자체였다. 물론 재개발이란 말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용산이 개발된다는 소리는 전해왔지만 그렇게 빠르게 진행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곳들을 보면 최하 4년~5년 정도는 걸리고 길면 10년도 넘게 걸릴 수 있다는 게 개발이라고 들었는데 용산4구역은 달랐다.

자고나면 달라지는 게 용산 이였다. 덩치 큰 남자들이 동네를 서성이며 이주를 종용하고 욕설과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사한 빈집엔 죽은 짐승들의 사체, 오물들을 버리며 공포와 악취에 장사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시아버님과 남편은 투쟁 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처음엔 시아버님과 남편은 혼자 짐을 짊어지시려 서로를 못하게 말리기도 했다. 남편은 나이든 아버님이 혹시라도 용역들에게 당하지는 않으실까, 아버님은 아들이 젊은 얘들한테 두들겨 맞는 건 도저히 볼 수 없다며 서로가 서로를 걱정했다. 그런 아버님과 남편을 어머니와 나는 지켜만 봐야했다.

그날도 어머니와 나는 바라보고만 서있었다. 아버님과 남편이 저 멀리 파란색 망루에서 손을 흔들 때도, 경찰들과 용역들이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에게 위협을 할 때도, 특공대의 컨테이너가 하늘 끝 망루로 올라갈 때도, 망루가 화염에 휩싸여 쓸어 질 때도 그렇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단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아버님을 보내야만 했고 남편을 보내야만 했다.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보냈던 355일은 또 다른 전쟁터였다. 건설사나 용역들과의 싸움과는 차원이 달랐다. 모든 집회 현장이나 기자회견, 1인 시위, 추모제마저도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거리로 나와 억울한 죽음을 알릴 수밖에

유가족의 동의도 없이 강제부검을 하고, 화재의 원인이 모두 철거민들에게만 있다면서 경찰 한 명의 죽음을 놓고 일방적인 재판이 시작됐고, 결국 철거민들에게만 4년~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단 한 번도 철거민 다섯 명의 죽음에 대해선 물어본 적도 없었다. 경찰 책임자들은 법정에조차 서질 않았다.

결국 우리는 거리로 나와 억울한 죽음을 알려야만 했고 그 앞은 항상 공권력이 가로막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시아버님은 살아생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산구청에 "용산4구역엔 세입자들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으니 관리처분인가를 연기 해 달라" 고 애원도 해봤지만 대답은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그 구청의 공문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망루에 올랐지만 25시간 만에 한사람은 싸늘한 주검으로 한사람은 차가운 감옥으로 가고야 말았다.

그런데 2010년 11월 "용산4구역 관리처분인가는 절차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무효판결'이 내려져 지금까지 빈터로, 레아가 있던 자리도 망루가 있었던 자리도 포클레인이 아닌 풀만 무성해져 있다.

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도 도시재개발과 관련해 "용산에서 일어난 어마어마한 참사는 지금까지 해왔던 도시재개발의 현 주소였다"며 "자신이 뿌리 내리고 살던 집에서 쫓겨났는데 어떤 주민이 가만히 있겠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렇듯 시간은 흘렀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무리한 개발로 인해 용산은 멈춰져버렸고 장례는 치렀지만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고 참사 생존자인 철거민들은 경찰관을 죽였다는 오명을 쓰고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다.

그런데 법정에 서야할 참사 책임자인 김석기는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뻔뻔하게도 총선출마를 선언했고 아직도 개발현장에서는 무리한 강제철거가 자행되고 용역들의 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정영신 씨. ⓒ프레시안(최형락)

이번 설만은 가족과 함께 보낼수 있기를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인생일 것이다. 그날이후 용산참사 유가족으로, 구속자의 아내로 살았다. 경찰서 한번 가본 적 없던 내가 매일 지하철을 타고 법정으로 구치소로 향했다.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부상을 당한 채 구속이 된 남편을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바다건너 제주까지 가서 용산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진실은 묻어둔 채 장례를 치렀고 남편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분노가 치밀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묻는다면 나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용산참사와 같은 일을 격을 것이고 수많은 개발현장에서 억울한 목소리는 계속 들릴 것임을 알기에용기 내어 활동가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이번 3주기는 추모만이 아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개발사업과 용산참사 재발방지를 위해 마련된 '강제퇴거금지법' 제정과 '구속철거민들의 석방'을 촉구하며, 매일 광화문광장에서 대표자들의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더 이상 열사 분들과 구속된 철거민들을 위해 눈물만 흘리진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용산이 멈췄듯 그들도 멈춰야 한다. 개발로 인해 거리로 내쫒기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되고 벼랑 끝으로 내몰려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

이제라도 참사 책임자들은 화려한 부활이 아닌 법정에 서서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을 져야 할이고, 참사 생존자인 구속철거민들을 감옥이 아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줘야 할 것이다. 2009년 그날 이후 네 번째 맞는 이번 설 명절은 가족과 함께 맞이하게 해 줘야 한다. 제발….

정영신 씨는 용산참사 유가족. 용산참사로 희생당한 고 이상림 열사의 며느리이자, 망루농성으로 5년형을 받고 구속된 용산4구역 철대위위원장 이충연의 아내이다. 현재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영신 용산참사 유가족

2011년 12월 21일 수요일

"황금알 낳는 거위라던 뉴타운, 이제는 재앙"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21일자 기사 '"황금알 낳는 거위라던 뉴타운, 이제는 재앙"'을 퍼왔습니다.
[누구를 위한 뉴타운인가·②] 뉴타운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시 뉴타운 사업은 기존 주거지를 정비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시절, 처음 시작됐다. 뉴타운 사업, 즉 도시재정비사업이 도입되기 전에는 재개발 문제 갈등은 주로 철거세입자와 재개발 조합 간 임대주택 및 보상금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뉴타운 사업 이후 분쟁 양상은 달라졌다. 건실한 주택이 재정비촉진 지구로 지정되면서 지가가 올랐고, 투기 세력의 지분 쪼개기 등으로 사업성이 악화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업성은 더욱 악화됐다. 이 때문에 원주민들은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높은 추가 부담금을 내야 했다. 적게는 1억 원에서 많게는 3억 원을 내는 상황까지 발생한 것.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안 조합원들은 뉴타운 사업에 반대하며 소송에 들어간 상태다. 반면, 여전히 뉴타운의 사업성을 믿는 주민들은 뉴타운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 주민 간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는 1월, 뉴타운 해법을 발표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타운 진행상황에 따라 맞춤형 해법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뉴타운 문제는 쉽게 풀기 어려운 사안이다. 뉴타운 문제가 무엇인지, 왜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살펴본다.

"누구를 위한 뉴타운인가"

① "뉴타운이 로또? 지붕에서 비 새도 수리도 못하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뉴타운사업(재정비 촉진사업)이다. 각종 소송과 주민 간 갈등으로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사업시행인가까지 난 지역에서조차 여러 문제로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왜 그럴까.

2002년부터 지정된 뉴타운지구는 총 35개, 245구역으로 면적은 27㎢이다. 서울시 면적의 4.46%를 차지하는 방대한 크기다.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절 시작된 뉴타운사업은 강북 지역의 주거 환경이 강남에 비해 열악하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강북에 고품격 주거 환경과 교육 여건을 조성해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게 주목적이었다.

공공의 기반시설투자를 전제로 공공에서 개발기본계획을 수립한 후, 민간 주도로 개별 구역별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기존 재개발 사업과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개발이익을 전제로 사업이 추진된다는 점에서는 기존 사업과 큰 차이가 없다.

한마디로 군소단위로 진행되던 재개발을 하나의 대규모 재개발사업으로 진행하는 게 뉴타운사업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하나의 뉴타운지구 안에 여러 정비 구역이 존재한다. 뉴타운지구라는 것은 여러 정비 구역을 묶은 일종의 정비 구역 조합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뉴타운사업의 현재 상황은 어떨까. 2011년 3월 기준으로 총 35개 지구 241개 사업 구역 중 착공에 들어갔거나 준공된 구역은 단 32개에 불과하다. 전체 사업 구역의 87%는 아직 삽질 한 번 하지 못한 상황이다.

소송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2007년~2010년 3월까지 서울시에서 발생한 재정비사업 관련 소송건수는 212건으로 이중 절반가량이 2009년에 발생했다. 자치구별로는 동대문, 성동, 성북, 서대문구 등 재정비사업이 많은 자치구에서 43.3%로 가장 많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사업단계별로는 추진위원회 및 조합설립과 관련한 소송이 134건으로 63%를 차지하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 신길뉴타운지구. ⓒ프레시안(허환주)

주민에게 제대로 정보를 주지 않는 뉴타운

재정비사업의 갈등은 상당부분 정보부족과 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뉴타운사업 동의서를 작성한다. 뉴타운 계획수립 후 주민공람과 공청회가 개최되지만 주민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일방적인 설명회에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겉치레로 공청회 등을 진행하는 이유는 주민이 정보를 알지 못하면 못 할수록 사업 진행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뉴타운사업은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결성해 토지 등을 담보로 아파트를 건설하는 수익형 사업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분양수익이다. 이것이 많이 남아야 지역 주민의 부담금이 줄어든다.

일반분양 물량이 감소하면 분양수익이 감소하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아파트로 들어갈 때 부담해야 하는 부담금액이 증가하는 것.

문제는 이런 부담금을 정비업체에서는 지역 주민, 즉 조합원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데 있다. 부담금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막연한 개발이익에 대한 왜곡된 정보만을 제공하며 사업을 추진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09년 발표한 '묻지마식 재개발사업의 실태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모든 구역의 재개발조합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정한 분담내역 제시 등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일명 '부실동의서'로 조합이 설립됐다. 또한 백지동의서에 주민의 인감이 찍혀 있는 것도 확인됐다. 백지동의서에 주민이 동의했다는 건 사업내역을 주민이 알지 못한 채 동의했다는 이야기다.

결국 조합원들은 나중에야 막대한 추가부담금을 내야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개별감정평가액은 관리처분단계에나 가서 알게 된다. 이는 이후 소송과 주민 간 반목의 원인이 된다.

조합설립동의서 징구시 개관적인 비용분담의 기준을 제시하고 사업시행인가 후 감정평가를 통해 관리처분계획 총회 전에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집 평가액과 추가부담금 금액을 통보해줘야 한다. 하지만 다수의 재개발조합에서 이를 시행하지 않는다. 사업성이 낮은 주택재개발 사업구역일수록 개별감정가가 낮게 나오기 때문이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부담금이 클수록 뉴타운사업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재개발 조합은 이를 최대한 숨기고 있다가 관리처분 총회 자리에서 통지 후 일사천리로 총회를 진행, 결의한다. 관리처분계획이 통과되면 사실상 뉴타운사업 절차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물론 총회를 열 때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한다.



▲ 신길9구역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실에 붙어 있는 포스터. ⓒ프레시안(허환주)

고작 17%만 재정착하는 원주민들

과도한 추가부담금도 문제다. 왕십리, 아현동 등 상대적으로 도심과 역세권에 가까운 지역의 뉴타운지구도 주민이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2억 원의 추가부담금을 내야 한다. 특히 지리적 여건으로 고분양가를 확보할 수 없는 신림, 신길, 상계 등과 같은 서울 외곽지역의 경우는 감당할 수 없는 추가부담금으로 아예 뉴타운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경실련이 재개발사업을 분석한 결과, 23개 지구 평균 아파트 분양가인 평당 954만 원을 적용할 때 30평형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부담해야 할 최소 비용은 1억5000만 원으로 예상된다. 자신의 땅을 내주고도 이만큼의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부담금을 조합원들이 이렇게 내야 하는 이유에는 뉴타운지구 선정 뒤 집값이 상승하는 게 하나의 원인이다. 시행사는 오른 집값 보상금만큼 그 비용을 아파트분양권 인상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주민의 추가부담금이 오르는 이유다.

신길2구역 주민 박정금(가명ㆍ68)씨는 "뉴타운 지구 선정 발표 전에는 한 평에 400~500만 원 하던 반지하 집이 지금은 한 평에 2000만 원을 넘어 간다"며 "결국 외부에서 들어온 투기꾼들만 여기서 시세차익을 얻어가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과도한 부담금은 원주민의 재정착률을 떨어뜨리는 주요원인이기도 하다. 저소득층 밀집 지역이 주를 이루는 뉴타운지역의 영세집주인들의 경우, 전세금을 끼고 주택을 구입한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된다.

이들은 부담금을 낼 수 없어 분양권을 매매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려줘야 할 전세금이 있기에 그걸 제외하면 서울 외곽에 집을 구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부동산 경기가 불경기면 분양권은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지도 못한다. 그나마융자를 받지 않고 집을 구하면 다행이다.

이에 뉴타운지구 내 원주민들의 재정착율은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의 2007년 자료를 보면 뉴타운 재정착률은 17.1%에 머물렀다.

부동산 시장에 좌우되는 뉴타운?

그렇다면 뉴타운사업은 원래 주민들이 많은 비용을 내야 하는 사업이었을까.

뉴타운사업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 자연히 그 지역 집값은 오르게 되고 그 오른 집값, 즉 개발이익으로 큰 비용부담 없이 신축아파트를 분양받거나 분양권을 전매할 수 있다며 주민들을 '현혹'시켜 진행되는 사업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정체되면서 이러한 유혹은 사기극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집값은 떨어지고 기존에 지어진 아파트조차 미분양 사태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로또라고 추앙받던 뉴타운사업은 한 순간에 미운오리새끼가 되어버렸다. 뉴타운사업에 찬성했던 주민들도 엄청난 부담금을 내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지역마다 뉴타운사업 취소 소송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을 단순히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분석하기는 어렵다. 이주원 나눔과미래 사무국장은 "뉴타운의 문제는 부동산 경기의 호ㆍ불황 때문이 아니라 애초 민간의 수익성 위주 프로그램으로 사업성이 없는 지역들을 개발하려 한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 국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욕망했던 사람들이 평범한 거위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착각했던 것"이라며 "이명박과 오세훈 전 시장은 되지도 않는 사업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사람들도 그런 움직임에 동조했다"고 꼬집었다.

이 국장은 "이제야 많은 사람이 뉴타운사업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본격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며 "이제는 시급히 뉴타운사업 탈출 전략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환주 기자

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포이동, 하이데거 식으로 재건하면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12-09일자 기사 '포이동, 하이데거 식으로 재건하면'을 퍼왔습니다.
도시는 변천한다. 도시는 현대문명을 대변해야 하며, 특히 수도는 한 국가의 경제적·문화적 수준을 한눈에 드러내야 하는 외관적 가식성을 지녀야 한다. 또한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창출해 국가의 힘을 상징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것이 수도다. 분단 한국의 수도 서울은 전쟁이 할퀸 도시라는 핸디캡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속도로 고층 빌딩을 짓고 빈민촌을 숨기기에 바빴으며, 쾌적한 북미 신도시를 모방하는 듯한 재개발 사업에다 부동산 투기마저 팽배해 도시 고유의 정체성이 모호할 지경이다. 반면 프랑스 파리는 어떤가. 도시의 현대성과는 상관없이 아직도 19세기 이전의 건축물이 주된 풍경을 이루고 있어 보전의 미학이 유난히 돋보이는 곳이다. 초현대적 이미지와는 상반된 도시계획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이 도시는, 그럼에도 지구촌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망의 도시다. 다소 과거지향적인 파리의 도시계획은 지난 시절 화려했던 프랑스의 ‘국격’을 강조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해, 감정적 공명은 물론이고 거주인보다 먼저 도시 스스로가 존재론적 사치를 누리는 곳이다.


이런 파리에서도 ‘재개발’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프랑스어로 ‘재개발’을 뜻하는 단어로 ‘정비·개발’을 일컫는 ‘아메나제망’(Aménagement) 혹은 ‘재생’이라는 명사 ‘레제네라시옹’(Régénération)을 사용한다. 보전미학이 우선인 파리의 재개발 개념은 고층 빌딩이나 대단지 아파트 건설업을 독려하다시피 하는 신흥 아시아 국가의 그것과 명확히 다를 수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상하수도 공급마저 어려웠던 파리의 빈민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 시세가 가장 낮은 19구와 20구 지역 일부는 아직도 ‘재개발’ 중이다. 신흥 아시아 국가의 ‘싹쓸이’식 재개발 정책보다 거주지역의 역사성을 보전하는 정책이 우선인 이 방식은, 공간 개념에 관한 서구 철학을 따르고 있다.
레제네라시옹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정신은 단지 건물을 헐고 다시 세우는 물리적 작업이 아니라, 공간의 역사를 고려해 그 지역이 수세기 동안 형성한 공간성과 시간성을 파괴하지 않는 재생 작업의 의미를 담고 있다(그러나 프랑스의 도시계획은 이런 의미를 산업 신도시나 이민 세대가 모여사는 대도시 외곽 지역에는 적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거주권은 정의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
역사·문화 유적지만이 공간성과 시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명인의 거주지라 할지라도 그 공간은 거주자의 내면적 역사가 담겼다. 서울 시내의 고층 빌딩 사이에서 존재하는 허름한 한옥들을 관찰하노라면 전쟁에서 살아남은 뒤 재개발의 위협 아래 놓인 그 집이 품고 있음직한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파리 시내의 평범한 거주지를 필름에 담았던 외젠 아제의 사진들 속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만일 아제의 20세기 초 사진 속 장소와 우연히 마주친다면, 100년 전과 별 다름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멈추기에 전력하는 듯한 파리의 보전 위주 도시계획에 소름이 돋을지 모른다.
파리 중심지에서 7층 이상 고층 건물의 건축 허가를 얻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잘 알려졌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파리에는 (몽상가들을 위한) 집이 없다”고 했다. 거주인보다 거주지의 존재감이 더 강한 인상을 주는 이 도시에서는 노숙인(SDF·Sans Domicile Fixe, 정해진 거주지가 없는 사람들)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주거시설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밀려난 계층이 주거권을 지키지 못한 데서 비롯된 고질적인 사회문제는 작고한 피에르 신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정부의 무관심과 만성적 실업으로 마비된 듯한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또한 노숙인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빈민구제 운동에 앞장섰던 대표적 인물로 알려진 피에르 신부는 “주거권은 정의에 관한 질문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주거권이 위협받을수록 그 사회의 정의 의식은 악화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표현이다.
주거권과 사회정의 문제를 결부한 피에르 신부는 빈민구제 운동에 평생을 바친 성직자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알베르 카뮈 그리고 앙드레 지드와 함께 정치적 활동을 펼쳤고, 언론 플레이에 능숙했다. 1954년 겨울 프랑스에 몰아닥친 혹한으로 노숙인의 죽음이 잇따르자,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빈민 현실을 호소하는 연설을 해 전 국민을 감동시켰다. 이 방송의 여파는 과히 혁명적이었다. 국민은 앞다퉈 기부금을 냈고, 찰리 채플린 또한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거금을 기부했다. 오늘날 빈민구제 운동단체 엠마우스재단은 이렇게 설립됐다. 연이어 피에르 신부는 겨울에는 절대 세입자를 퇴거시킬 수 없다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1954년부터 프랑스 북부 지방에 무주택 가족을 위한 집을 짓기 시작한 엠마우스재단은, 현재 39개국에서 무주택 가족들과 함께 장기적 계획을 세워 집을 짓고 있다. 그러나 파리 시내의 주거난은 여전하며, 재개발 사업은 도시 보전을 위한 외관 정비 위주로 진행된다. 피에르 신부가 펼친 노숙인 돕기 시민운동은 ‘돈키호테의 아이들’(Les Enfants de Don Quichote)이라는 단체와 ‘주거에 권리를’(Droit au Logement)가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나는 ‘주거에 권리를’ 단체가 주관한 작품 경매 전시에 참여한 바 있다).



집은 곧 개인의 역사다
동절기가 다가오면 거리 노숙인의 주거 문제는 다시 프랑스의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찰리 채플린이 피에르 신부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건네주면서 “나는 당신의 주거 빈민운동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나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돈을 반환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영화 에는 주거 빈민들이 하룻밤을 보내는 숙소가 등장하는데, 아이의 숙박료를 낼 수 없는 채플린이 관리인의 눈을 피해 아이를 품속에 재우는 장면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노숙인과 철거민의 인권이 위협당하고 있다. 악법도 법이라지만, 50년 넘게 시행되는 행정대집행법은 노점상과 도시 불법 거주민을 강제로 철거시키기 위해서라면 공권력이 용역 깡패를 동원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폭력을 당한 철거민에게 용역 비용마저 합법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비상식적이고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악법이다. 이미 서울 용산과 묵동에서 공권력이 휘두른 과도한 폭력으로 철거민의 인권이 난도질당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서울 포이동 266번지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 지역에 가해진 폭력의 기억은 197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 정권의 이른바 ‘도시정화’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의 판자촌 사람들을 서울 서초동 군 정보사령부 뒷산에 집단 수용했고, 1981년 전두환 정권은 그들을 또다시 강제 이주시켰는데, 그중 하나가 포이동 266번지다. 1988년, 200-1번지였던 포이동이 266번지로 바뀌면서 이곳을 불법 무허가 집단지역으로 규정해 거주인들의 주민등록증을 말소시켰다. 포이동 주민들의 역사는 핍박과 폭력, 그리고 부당함으로 얼룩졌고, 주민들은 어두운 역사에 저항하는 새로운 역사를 10여 년 전부터 만들고 있다. 투쟁 끝에 주민등록증을 회복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이 생기면서 마을의 교육 수준도 높아졌다.
지난 6월 12일 타워팰리스가 내려다보는 이 땅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한국전쟁 이후 빈곤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판자촌 70여 가구가 모조리 타버렸을 때, 가속화된 양극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은 그런 거주지의 가치 상실에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공간은 절대적 공간이었으므로 그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판자촌에서 겪은 고통과 저항의 30년 역사를 고스란히 잃었고(대부분의 피해 주민들은 화재시 몸만 빠져나왔다), 판자촌이라는 물질적 가치를 떠나 각 개인의 역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집은 곧 영혼이다”라고 했으며, “집이란 우리의 최초 엄마”라고 했다. 우리는 집안에서  태아처럼 보호받고 인간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 있는 소소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집은 우리 내면의 세계이므로 집을 인간화하기도 한다. 집은 태어나고, 경험하고, 살아가고, 늙어간다. 집은 그저 인간의 사상, 추억, 꿈을 기다리기도 한다. 집의 몸은 거주인과 이렇게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판자촌이든 호화 저택이든 모든 집은 평등하고, 이것이 집이 소유한 내밀성이자 포이동 주민이 집과 함께 잃은 정신적 가치였다. 

거주인이 소유한 내밀성의 강도
몸의 기관들처럼 내밀스런 삶의 기관, 집을 구성하는 기관, 그 기관들 또한 집의 역사를 기억한다. 집이 소유한 물질적 요소는 그 기능을 떠나 사유의 힘과 상징이 되기도 한다. 집은 때때로 기억을 넘어서는 경험이 된다. 포이동 판자촌이 화재로 전소된 사건을 정보로 입수한 우리는, 전소된 집이 포괄하고 있던 물리적·추상적 요소, 즉 집이라는 몸이 소유할 법한 ‘기관’들을 즉각 인지하지 못했다. 포이동의 어떤 주부는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모두 잃어버린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그 아이들이 성장해 어린 시절을 회상할 연결고리인 그 사진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개인의 역사와 집의 내밀성을 동시에 상실했다. 그러나 인간의 내밀성이 풍요로운 한, 집의 내밀성도 소진됐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이 ‘재생’(레제네라시옹)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다.
이 소외된 영역에서 재건마을 주민들의 존재는 끊임없이 위협당했다. 거주민의 가슴에 ‘불법 거주민’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겨넣은 공권력은 행정대집행법이라는 악법을 그대로 적용해 용역이라는 폭력 수단으로 긴장감을 조성했다. 서울의 다른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길 거부하고 저항에 돌입한 포이동 주민들의 단합된 공동체 의식은 개개인의 내밀성을 풍부하게 했다. 그들의 거주지는 ‘절대적으로’ 재생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권력은 재개발 공간을 해체하려 했고, 그 공간 속의 공동체 역시 해체될 위기에 처했다. 화재로 소진된 집들처럼 개인의 내밀성을 소진시키려는 공권력의 폭력이다. 거주지역이 재개발 사업으로 확정되는 순간 그 지역은 한 개인의 거주지로서 절대공간의 가치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곳은 변형의 공간이며 정체된 공간이 된다. 철거 위협에 놓인 이곳은 거주민이 포기할 수 없는 거주 공간이 되면서도 사건이 잠재된 공간이 된다. 현존재의 거주 불안 개념이 맞닿아 극으로 치닫는 곳이 이 공간인 것이다. 과연 재개발 지역이라는 땅, 이 ‘터’가 포괄한 것은 무엇인가. 이 공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건축하다, 거주하다, 사유하다
공간의 실존성에 관한 철학을 펼쳤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공간 개념에 의하면, 인간이 어떤 특정 장소에서 거주하는 것은 그 공간을 건축했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하는 것 자체가 거주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이데거에게 ‘거주’ 개념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존재 의미가 된다. 거주자에게 공간이 친숙해지고 거주자와 공간의 근원적이고 원본적인 체험이 수렴된 시간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강제이주를 당한 뒤 뱀들이 들끓던 진흙탕을 일구어 거주지를 만들어갔던 포이동 주민들은 화재 이후의 그 ‘터’를 다시 거주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주민 스스로 주거지를 재개발하고 재생하는 셈이다. 6개월 가까이 파란 지붕의 가건물을 지으면서 그들은 존재할 수 있었다. 공권력은 행정대집행권의 명분으로 용역을 동원해 집을 향해, 그리고 그 집을 짓던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휘둘렀지만, 쓰러진 집들은 다시 만들어지기를 되풀이했다. 주민들 스스로 재개발해가던 이 공간에서 생성되는 거주지의 역동성은 주민들 스스로의 풍부한 내밀성, 그 생존 의지에서 분출되고 있다. 이처럼 사건적인 장소가 된 재개발 지역은 공권력과 거주인들 간의 소통이 어려운 공간이며, 폭력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재개발 지역은 거주자에게는 인간적 가치가 존중돼야 하는 주관적 공간(Lieu)이며, 공권력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허물어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객관적인 공간(Espace)에 불과하다. 행정대집행법이라는 악법이 존재하는 한, 포이동 공간에서 현존하는 주민들과 현존하지 않는 공권력은 동상이몽할 수밖에 없다.

생동감 넘치는 공간이 된 포이동
현존재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 도구(Ustensile)의 관계에서, 인간은 도구를 소유할 때는 공간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도구가 사라졌을 때 그 도구를 찾으면서 공간을 인식하게 된다. 포이동 재건마을에서 주거인들과 공간의 관계는 화재로 70여 가구가 전소된 이후 변이됐다. 화재로 공간에서 존재하기 위한 도구(거주지)를 잃은 주민들은, 비로소 공간을 인식한다. 객관적 공간이란, 인간의 거주지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조건 아래 형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화재로 전소된 포이동은 객관적 거주지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몸과 그 공간과 일치감을 이룰 때, 즉 공간과 거주자의 육체가 균형 잡힌 적응 상태에 이르렀을 때 거주지의 주관적 가치가 빛을 발한다. 공간화, 환경에 적응된 상태는 그 공간을 어떻게 차지하느냐의 문제다. 다시 반복하면, 거주지를 잃은 포이동 주민들은 거주지를 만들면서 공간을 차지했고, 하이데거식으로 사고하면 그것은 곧 거주지가 없지만 거주지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현상학적 관점에서 후설의 경우 공간 인식은 공간에 대한 ‘통찰’이며, 하이데거의 경우 이미 형성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성과 연관 있다. 시간이 지난 공간, 시간이 만들어낸 공간, 관계가 형성된 공간 모두 후설에게는 한 개인이 통섭하는 공간이지만, 하이데거의 경우 시간과 도구가 거주인과 함께 형성해야만 바야흐르 공간(Lieu)이 된다. 거주지가 품은 개인의 역사가 화재(사건)로 소진된 포이동 재건마을에서의 사유 가능성은 하이데거의 ‘다자인’(Dasein·구체적이고 개별적 존재, 자기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자) 개념을 떠올린다. 다자인은 곧 공간을 인식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공간 속의 도구(거주지)와 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관계가 형성되면, 공간은 다루기 쉬운 것으로 인식돼야 한다. 다자인과 공간이 형성한 관계를 분석적으로 접근해본다면, 공간은 장소에 따라 인식되고 그 장소는 장소가 포함하고 설치되고 있는 그 모든 존재에 달려 있다고 본다. 동어반복적인(Tautologique) 하이데거의 철학에 의하면, 화재 이후 공간을 인식한 포이동 주민들은 다자인에 도달했고 이미 포이동이라는 장소의 전부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생존에서 만들어진 미학
바슐라르는 상상하는 대상을 깨달음의 무한한 공간으로 이끌어 생동감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고 존재감을 느끼게 하며 최초의 이미지로부터 해방시키고 변화시키는 기능을 ‘상상력’이라고 했다. 포이동 주민들의 거주지를 지켜내고 싶은 열망은 생존 의지를 넘어 예술가의 창의성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집을 상상하고, 상상하는 집을 구체화하고 싶은 그들의 상상력 때문이다. 행복한 공간의 이미지는 주민들 각자가 꿈꾸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파란 지붕이 얹힌 동일한 가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용역의 망치에 전파된 집도 다시 파란 지붕을 얹고 살아났다. 폴 클로델은 대도시의 거주지를 ‘규약적인 구멍’이라고 했다. 포이동 재건마을에 어렵게 지어진 파란 지붕의 가건물 또한 언뜻 ‘규약적인 구멍’으로 인식돼 대도시 풍경 속에서 어렵게 살아갈지 모른다. 파란색 지붕으로 변신한 38억 원짜리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는 이질성을 참기 어려워하는 공권력의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나 주거지의 절대적 기능인 지붕은 지체 없이 그 존재 이유를 말한다. 그래서 포이동의 파란 지붕은 주민들의 거주를 합리화해주고 있다. 또한 개성 없는 가건물들에 미술대학 학생들이 벽화를 그려넣으며 주민들의 생존미학을 북돋워주고 있다. 주민들이 오랜 기간 저항과 생활고로 지쳐가는 동안에도 집은 계속 지어졌다. 포이동 재건마을의 생동감과 역동성은 파란 지붕의 가건물이 상징하는 것이다. 이제 포이동 재건마을의 집들은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땅을 지키며 30년 넘게 서로 의지하고 살던 주민들이 꿈꾸는 미래는 집에 달려 있다. 불확실한 포이동 공간의 거주지들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재생할 것이라고 나는 상상한다. 거주인들이 뿌리 없는 가건물에서 역사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아마 이제 포이동 공간은 역사보다 생동감 있는 현재가 더 중요하리라. 나는 바슐라르가 언급한 ‘집의 몽상가’에 공감하지만 물리적 집은 몽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공간과 사회가 적절하지 않을 경우 몽상할 수밖에 없다. 포이동 주민들 또한 상상할 권리가 있고, 거주에 관한 이런 상상과 몽상이 억압당할 이유는 없다. 집이 우리에게 적절하려면 내면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몽상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보금자리’는 주관적이다. 보들레르가 말했듯이, 궁전에는 “내밀함이 들어앉을 구석이라고는 없는 것이다”. 타워팰리스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주거지는 될 수 없다.



‘예술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에 하이데거는 “명백하게, 예술이 호소하는 것을 만족시키려는 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가장 잘 팔리는 예술가는 중요하지 않고, 예술이 원하는 것을 가장 순수하게 만족시키려는 자가 진정한 예술가라고 했다. 예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예술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는, 하이데거다운 주장이다. 나는 앞서 주거지를 잃고 폭력에 협박당한 포이동 주민들의 생존 과정이 흡사 예술가의 작품 실현을 위한 치열한 상상력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이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에서 말한 ‘상상력’의 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중국에서 부당하게 구속 감금됐던 아이웨이웨이를 떠올려보자. 그는 공권력의 압력과 협박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고 중국 정부가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건들의 다양한 측면을 피해자들(예술가가 아닌)과 함께 발표했다. 불편하거나 진부해질 수 있는 일상성의 이미지를 규모를 갖춰 효과적으로 공개함으로써 동시대 예술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예술가를 ‘불편부당한 목격자’라고 했던 안톤 체호프의 표현이 적절할 아이웨이웨이의 행보는, 맹목적으로 수용되는 현실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예술가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현실 속에 어떤 상상력으로 개입할지는 그들의 과제이며, 그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은 그 누구도 자유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예술가는 자유를 누리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전반적이지만,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예술가는 세계를 향한 인본주의적 신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예술가들은 불편부당한 목격자로서 삶의 본질적 측면을 날카롭게 반추해야 할 책임을 수렴함으로써 자유 또한 반납한다. 포이동 주민들 또한 불편부당한 목격자였음에 다름없다. 그들은 예술가가 아니지만, 집을 재생하는 생존 과정에서 모종의 미학을 창출한 것이다. ‘앵프라맹스’(Infra-Mince),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예술가들은 포이동 주민들처럼 단순하고 무의미한 것에서 꿈을 찾으려 한다. 포이동 주민들은 예술가처럼 창조력을 기를 수 있는 도화선을 찾아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고, 내면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개인적 에너지를 집을 만드는 일에 쏟아부었다. 나는 지난 6월 화재 이후의 포이동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거대 권력의 점유권 강화와 동질성의 강요에 맞서 개별적이고 창의적 과정 속에 놓인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본받아야 할 생존미학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글·사진 / 김량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한국전쟁으로 실향민이 된 친부의 영향을 받아 접경지역에 관한 프로젝트 ‘Light Up Zone’을 진행 중이며, 연평도와 포이동, 민통선 마을 등 지역적·사회적 경계지역에 위치한 거주 조건을 사진과 영상,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는 전시 ‘집의 재생력’을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 (파리가 영화를 말하다) (노엘의 그늘 아래)(Dans l’ombre de Noél)가 있다.

2011년 12월 7일 수요일

“원주민 쫓아내는 뉴타운은 안된다”


이글은 시사인 2011-12-07일자 기사 '“원주민 쫓아내는 뉴타운은 안된다”'를 퍼왔습니다.
김수현 희망서울정책자문위 위원장에게 서울시가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 물었다. 그는 “원주민 쫓아내고 마을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뉴타운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김수현 교수(50·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20대에는 고인이 된 제정구 전 의원과 함께 판자촌 철거 반대 운동을 했다. 30대에는 한국도시연구소에서 활동했고, 40대에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장을 지냈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등을 역임하면서 부동산 정책과 사회정책을 수립하는 데 관여했다. 환경부 차관도 지냈다.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때 한명숙 캠프와 지난 10·26 보궐선거 때 박원순 캠프에서 각각 정책본부장을 맡았다. 농담 삼아 직업이 ‘본부장’이라고 말할 정도. 현안에 밝다. 

지난 11월1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빈민운동, NGO, 행정을 두루 경험한 그를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자문위원회는 정책 전문가 33명, 시민사회 대표 14명, 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7명 등 7개 분과 54명(위원장 포함)으로 구성되었다. 내년 1월까지 2개월 동안 한시 운영된다. ‘박원순호’의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데 조언을 하고, 그 결과물이 1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예전 인수위원회를 연상하면 된다. 총괄 업무를 담당하게 된 김수현 자문위원장을 만나 뉴타운,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서울시가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해 물었다.


‘박원순호’ 서울의 자문을 맡은 김수현 위원장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비서관을 맡아 부동산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두 차례 서울시장 선거(2010년, 2011년)에서 정책과 공약을 담당했다.
이번에 나경원 후보의 공약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명숙 후보의 공약을 많이 베꼈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복지와 교육, 사람 중심의 정책 등 지난 선거 이슈로 정리가 되었어야 할 부분을 오세훈 전 시장이 거부한 것이다. 오 전 시장은 개발주의적 성과주의에 집착했다.  
김현옥 전 시장을 높게 평가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내 전공이 도시계획이다. 역대 시장에게는 각각의 시대적 정신과 과제가 있었다. 그걸 잘한 시장은 당대에 욕을 먹었건 아니건 훌륭한 시장이다. 김현옥 시장은 박정희 시대의 사람이다. 재임 시절에 세운상가를 만들고, 남산터널을 뚫었다. 청계고가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는 서울의 인구가 매년 7~10%씩 늘어나고 있었다. 고속 성장을 해야 하는 서울의 시대적 과제에 맞게 행동한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개발주의 시대의 끝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잘나가니까 너무 흥분해버렸다. 1971년에 광주대단지(현재의 성남시)를 만들어 판자촌 사람을 집단 이주시키려 한 일이 있다. 그때 옮기려는 인구가 서울 인구의 10%였다. 이명박 전 시장이 뉴타운을 만들 때 거기 사는 인구가 10%였다. 서울 인구의 10%가 사는 곳을 4년 만에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었던 셈이다. 그 후유증이 지금 (뉴타운 몸살로) 나타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라 보나?
먼저 전임자가 잘한 것은 계승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했던 것처럼 ‘모조리 지우기’ ‘보복식 행정’은 정말 퇴행적인 행정 문화다. 특히 마을과 복지가 중요하다. 이전에는 마을을 해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여겼다. 뉴타운을 만들 때도 마을 커뮤니티를 말하면 우습다는 식이었다. 뉴타운 사업이 잘되려면 원거주민이 많이 떠나야 한다고 보았고, 원거주민이 10%가량 재입주하는 데 그쳐도 성공이라고 받아들였다. 이제 그런 커뮤니티 파괴형 개발은 불가능하다. 복지도 중요하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양극화 문제로 서울에 위기 계층이 갈수록 늘어난다. 서울다운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에 왔다. ‘돈이 남으면 복지 하자’고 하면 평생 못한다. 박원순 시장은 복지가 투자라고 말한다. 복지는 일종의 투자이고, 경쟁력이다. 

남은 임기가 2년8개월이고, 조정할 수 있는 예산도 많지 않을 텐데.
서울시 1년 예산이 20조원이라고 하지만 시장이 조정할 수 있는 예산은 1조원 정도다. 많은 단체장이 도로 놓고 건물 짓고 하는 하드웨어적 정책에 왜 집착하느냐면 빨리 표가 나기 때문이다. 삶의 질을 개척하는 건 어렵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민심과 성숙한 시민의식이 시장에 대한 평가 잣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본다. 역대 시장에 대한 평가 방식이라면 박 시장이 좋게 평가받을 방법이 없다. 박 시장이 경전철을 뚫겠는가, 한강에 배를 띄우겠는가? 박원순 시장의 현장 행보가 평가 잣대를 바꾸게 하리라고 믿는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방정부의 고유 임무는 주민의 복리이다. 복지와 생활 형편을 챙기는 것. 박 시장의 공약이 상당 부분 서민 생계불안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맞춰져 있다. 


11월14일 자문위 출범식에서 박원순 시장(왼쪽)과 대화하는 김수현 위원장.

어느 토론회에서 박원순 시장이 수습할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한 건가?
뉴타운과 부채 문제다. 이명박 전 시장 당시에 그렇게 많은 인구가 사는 넓은 구역에서 급하게 뉴타운 사업을 시작한 것부터가 파국을 잉태하고 있었다. 정치권도 거품에 대한 기대에 빠져 있을 시기였다. 그 당시에는 그게 시민들의 요구처럼 보였다. 2006년 지방선거, 2008년 총선은 ‘욕망의 정치’ ‘개발 정치’라고 하지 않았나. 뉴타운 사업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뉴타운 사업이 성립하려면 집값이 끝없이 올라야 하는데 부동산 시장 상황이 나빠져버렸다. 뉴타운 사업 진행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구청장들이 인가를 막 내주었는데, 그 구청장이 싹 바뀌었다. 자문위원회는 중장기 계획을 다루기 때문에 뉴타운 문제는 자문위 논의를 넘어선다(김수현 자문위원장은 “뉴타운 문제는 별도로 행정 내부에서 다룰 것이고, 현재로서는 부동산 시장에 ‘시그널(신호)’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라며 이 문제를 언급하는 데 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지역별 사정을 파악하고 주민의 요구와 특성을 감안해 지역별로 차별화된 수습 내지는 진행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부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서울시 부채가 25.5조원이다. 임기 내 7조원을 감축하는 게 박 시장 공약이다. 이명박 시장 말기부터 오세훈 시장 때 부채가 대폭 늘어났다. SH공사의 부채가 18조원으로 가장 많다. 부채 성격을 볼 필요가 있다. 임대주택을 짓거나 지하철을 건설하다 생긴 부채라면 차기 시장, 차차기 시장 때 등으로 세대별 분담을 해야 한다. 부채 성격을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은?
여의도에 무역항을 만들고 5000t짜리 크루즈를 띄워 중국 칭다오와 일본을 가겠다는 계획인데 이건 말이 안 된다. 지금 한강에 떠 있는 유람선이 300t짜리다. 한강은 계절에 따라 물의 수위 차가 크다. 그게 외국 도시를 흐르는 강과 큰 차이다. 5000t급 대형 배를 띄우려면 수심 6m가량을 파야 한다. 그게 운하다. 그렇게 되면 다 뒤집어야 한다. 또 바다에 뜨는 배는 밑이 뾰족하고, 강을 다니는 배는 바닥이 평평하다. 기술적으로 강과 바다를 둘 다 다니는 배가 없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감사원에서도 경인운하에 배를 띄우지 말라고 했던 거다. 이것 말고도 한강과 관련한 몇 가지 사업이 있는데 종합적으로 평가해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2011년 11월 28일 월요일

[사설] 서민 내세워 건설업자와 투기세력 감싸는 국토부장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1-27일자 사설 '[사설] 서민 내세워 건설업자와 투기세력 감싸는 국토부장관'을 퍼왔습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엊그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택정책에 대해 서울시민을 서울 밖으로 몰아내는 반서민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뜬금없는 권 장관의 발언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전셋값 상승에 따른 불만을 서울시에 떠넘기려는 얕은 속셈이 있는 듯하다. 뉴타운 사업 같은 주택정책의 실패에 대해 책임져야 할 당사자는 정부·여당이다. 서민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서울시를 겨냥해 반서민 운운하는 것은 더없는 적반하장이다.
권 장관은 서울시가 재건축 규제를 안 한다고 하면서도 지나치게 공공성을 강조해 걱정이라고 했다. 녹지율을 많이 확보하고 경관을 생각해 층수를 제한하면 주택 총량이 부족해져 결국 구매력이 떨어지는 계층은 서울 밖으로 밀려나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최근 서울 강남지역 재건축안이 보류된 것을 겨냥해 입맛대로 몰아친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재건축·재개발 정책은 큰 틀에서 변한 게 없다. 임대 비율을 높이고 녹지와 아파트 배치 문제 등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유도하겠다는 정도다. 강남 재건축안이 보류된 것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재건축에 따른 수익률이 낮아 스스로 속도조절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주택 공급을 줄이겠다고 한 적이 없으며 국토부 또한 전세난민을 방지하기 위해 재건축 속도조절 정책을 펴온 터였기에 티격태격할 일이 없다.
박 시장은 공공주택 공급 확대, 뉴타운 사업 재검토, 서민 주거지원책 확대 등으로 서민의 주거안정 유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대주택은 비율을 낮추자는 게 아니라 현재 4인 가구 중심의 아파트를 1~2인 중심의 아파트로 지어 공급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임기가 끝나는 2014년 6월까지 공공임대주택을 원래 계획보다 2만가구 이상 늘려 8만가구 공급하겠다고 한다. 또 재개발·재건축 속도를 조절하고 기존 주택개량을 통한 마을 공동체를 형성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일부 재개발·재건축 추진 지역의 집값은 사업이 지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시세가 하락하고 있다. 이는 터무니없는 집값의 거품이 빠지고 투기수요가 사라지는 정상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 물론 개발이익을 기대한 투기세력이나 건설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국토부 장관이 서민을 내세워 실제로는 건설업자와 투기세력을 감싸다니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