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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9일 수요일

원전 없는 한국, 꿈이 아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2-29일자 기사 '원전 없는 한국, 꿈이 아니다'를 퍼왔습니다.
[창비주간논평] 서울시의 '원전1기 줄이기'가 주목된다

작년 9월 15일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예고 없이 전국 656만호에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3천여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에서는 일제히 전기가 부족하다며 현실적인 대안은 원전뿐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인데 더 많은 전기를 쓰고 더 많은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움츠러들었던 한국의 핵산업계가 이에 힘을 얻었는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규원전 후보지로 삼척과 영덕을 선정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지식경제부 차관은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신년강연회에서 국가를 위해 국내에 불고 있는 탈핵 분위기를 함께 돌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4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프랑스는 (에너지)자급율이 105%인데도 전력의 8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한다면서 독일이 (원전)폐기한다는 건 다른 얘기며, 그들은 프랑스 원자력 발전 전기를 가져다 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가 원전을 쓰지 않으면 전기요금이 40% 올라가야 한다면서 기름 한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로 원전밖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를 넘어 왜곡이며,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유럽의 사례와 전기요금 논쟁

독일은 사민당과 녹색당이 합의해서 2000년 탈핵 원년을 시작할 때 원자력 전기 비중은 30%였다. 그후 10년간 꾸준히 에너지 수요관리를 하고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를 늘려온 덕에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오래된 원전 7기와 고장으로 멈춰 있던 1기를 바로폐쇄하고도 2011년에도 유럽 전역에 60억kwh 가량의 전기를 수출했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고리 2호기가 생산한 전력보다 많은 양이다. 사실 독일은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 당시의 신재생에너지법(EEG)에 의해 촉발된 재생에너지붐으로 지난 2002년부터 전력 수출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이제는 친환경 전기의 비중(20.4%)이 원자력 전기의 비중(17.7%)을 앞질렀다. 2022년까지 가동중인 원전을 모두 폐쇄할 계획이지만 핵산업계의 부도 걱정만 아니면 그 이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즉 원전 가동은 전기가 더 필요해서가 아니라 핵산업계의 경제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는 OECD 국가 중 미국, 일본, 독일, 한국, 이딸리아에 이어 6번째로 에너지 수입이 많은 나라다(2009년 기준 프랑스 134.38Mtoe, 한국 198.1Mtoe). 전기 난방 등 과소비 패턴이 구조화되어 원전 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로 높으면서도 그동안 폐지했던 중유발전소를 재가동하고 겨울에는 주변 나라들에서 전기를 수입하고도 부족해서 지난 2009년에는 제한송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도 원전 폐지가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최고 15%까지 오를 것이라는 논란도 이어졌다. 그런데 8기 원전의 문을 닫은 작년말 전력거래소상 전기가격은 그대로였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는 기술발전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는 반면(태양광은 지난 25년간 1/7로 줄어듦), 원전은 사고 위험으로 인한 지속적인 비용상승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앞으로 2년간 피해보상 비용만 6조엔이고 방사능오염 제염 비용은 아직 계산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그동안 실패한 전력 및 전기요금 정책 탓이 크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제공하고 일반용(상가 및 공공건물) 전기요금 역시 누진율이 없어 최근 몇년간 전기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기를 팔수록 손해다. 결국 작년까지 한국전력공사의 누적 적자는 50조 3천억원에 이른다.



ⓒ프레시안

일본의 탈핵 분위기와 서울시의 당찬 도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어떨까. 정기점검에 들어간 원전이 하나둘씩 늘면서 가동중인 원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전에 일본은 54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었다. 2009년에는 전체 전력공급량의 27%가 원자력 전기였다. 그런데 지난여름 12~16기의 원전만 가동하더니 지금은 2기로 줄었다. 5월이면 그 2기도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 중단될 것이다. 원전이 없는 일본이 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7일자 사설에서 "대지진 후 약 1년간의 절전이 '강요'에서 '적극적인 도전'으로 변하여, 전국의 기업과 가정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정말 '절전은 최대의 전원(電原)'인 것이다"라면서 "절전으로 경제가 위험해지고 국민생활이 혼란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 절약을 통해 경제사회의 형태를 변혁하여 새로운 성장으로 이어가는 전략이 현실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에 54개나 되는 원전이 애초부터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고 평했다.

서울시가 2014년까지 원전 1기만큼의 전기를 줄이겠다고 나섰다. 작년 정전사태로 긴장한 지식경제부가 시행하는 절약 캠페인과는 다르다. 전기 부족이 두려워 전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동중인 원전 1기를 대체하기 위해 전기를 줄이는 것이다. 게다가 시내 지붕 5천 곳에 태양광 발전기를 올린다고 한다. 전기를 소비만 하는 게 아니라 생산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에 원자력 전기가 31%였다. 10여년 전 탈핵 원년을 시작한 독일과 같은 수준이고 대부분의 원전을 가동 중단한 일본보다 약간 높다. 그렇다면 우리가 21기의 원전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할까? 서울시장 한명 바뀌니 원전 1기 줄이는 결정을 했다. 국회의원 10명이 바뀌면 원전 10기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100명이 바뀌면? 우리 아이들을 원전사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날을 10년쯤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7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로 구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3월 10일 시청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많은 시민이 모여 그 힘으로 정치를 바꾼다면 '원전 없는 한국'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변화 담당국장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구제역 사체 퇴비로 쓰자더니, 애꿎은 지자체 핑계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11일자 기사 '구제역 사체 퇴비로 쓰자더니, 애꿎은 지자체 핑계'를 퍼왔습니다.
[미디어현장] 김만구 / 중부일보 기자

1년 전 겨울. 전국에 구제역 쓰나미가 덮쳤다. 구제역과의 사투가 벌어졌다. 수백만 마리의 돼지와 소를 묻었다. 산 채로 구덩이에 내몰리는 돼지들을 보며 공무원은 눈물을 떨궜다. 돼지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려 발버둥쳤지만 포크레인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참혹함에 농장주도 울고 공무원들도 울었다.
공무원들은 낮에는 살처분 밤에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구제역방역에 나섰다. 유독 그해 겨울은 눈도 많았고 추웠다. 파주시청 공무원 10여명이 손가락 절단사고, 추락사고 등 사고를 당했다. 살처분을 담당한 공무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징후로 과도한불안과 걱정, 불면증,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한 여성 공무원은 “계속 눈물이 나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귀속을 맴도는 울음소리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3월에 구제역 가축이동제한이 해제되고 참혹했던 구제역 겨울은 끝날 듯 했다. 하지만 언 땅이 녹으면서 또 다시 문제가 터졌다. 구제역 매몰지 곳곳에서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비상이 걸렸다.  매몰지별로 전담반도 꾸려졌다.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비라도 쏟아지면 그들은 우비를 입고 현장에 뛰어갔다.
전문가들은 “침출수가 지표에 노출돼 쥐나 다른 동물들이 매개해 전이가 일어나고 확산될 경우 동물과 사람에게 모두 해당되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올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면서 “침출수에는 청색증을 일으킬 수 있는 질산성질소와 심한 패혈증을 일으키는 탄저균, 또 병원균과 식중독균 등이 섞여서 나올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심했다. 그러던 3월, 한 통의 공문이 지자체에 도달했다. 농림식품부와 중앙재해대책본부가 꼼수를 냈다. 사체를 매몰지에서 빼내 퇴비 등으로 활용하라는 지침이다. 농림부는 ‘침출수 유출이 우려되는 매몰지는 원통형 저장조를 활용하고, 친환경 발효를 통해 퇴비화시킬 것’ 등의 내용의 공문을 지자체에 보냈다. 별도로 농림부는 법개정도 착수했다.  현행법에서 구제역 사체 비료화는 불법이었다.
법도 개정되기 전에 시범케이스로 농림부와 중앙재해대책본부가 파주의 한 현장에서 사체 퇴비화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그 퇴비를 조경수에 뿌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권고 공문을 내려 보낸 3월이후 5개 시·군이 매몰지 9곳을 뒤집었다.
하지만 법개정이 정부내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문제가 터졌다. 2차 세균 오염이 우려돼 개정안이 용도폐기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비료관리법개정안을 공포하면서 행정예고 때 허용했던 ‘가축 사체를 비료로 활용’할 수 있는 조항자체가 삭제됐다. 안정성 논란이 휩싸인 법 조항이 신설되지 못하면서 중앙재단대책안전본부의 공문과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침은 무용지물이 됐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행정 때문이 5개 시·군은 졸지에 비료관리법, 가축전염병예방법, 축산물위생관리법 등을 어긴 꼴이 됐다.
현행 법에는 ‘도축이 금지된 가축과 그 가축의 사체·축산물 및 부산물’을 비료 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사건이 터지자 농림부가 서둘러 해명에 나섰다. 그 해명이 가관이다. 모든 책임은 해당 지자체에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농림부 한 관계자는 ‘지자체 스스로 판단해서 저지른 행위’라고 발뺌했다. 사체 비료화를 직접 진두지휘까지 하고서도 말이다.


중부일보 김만구 기자
해당 지자체는 “1년동안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어처구니가 없다”고 되받아 쳤다. 당초 구제역 사체 비료화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전문가들은 “사체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80℃의 온도에서 모든 세균이 사멸하지는 않는다”면서 “세균이 영양소, 습도 등 환경에 따라 증식할 확률이 높아 2차 균 오염 등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줄곧 지적해왔다.
침출수를 제거한다고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한 전문가는 “1347년 유럽 전역을 휩쓴 페스트로 인해 유럽 전체 인구 4분의 1이 죽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2003년  중국 홍콩 대만 등지에서 맹위를 떨친 사스도 29개국으로 감염이 확대돼 환자 8000여명, 사망자는 774명이나 됐다”면서 “아직까지도 페스트나 사스가 창궐한 원인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신중한 정책 결정이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구제역 사체가 분해되려면 아직 2~3년이 남았다. 정부는 더 이상  지자체 공무원들의 노고가 헛되게해서도, 검증되지 않은 즉흥적인 발상으로 시민들을 위험에 노출시켜서도 안된다.

2011년 12월 1일 목요일

흔들리는 식량자주권, 한미 FTA 판도라의 상자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01일자 기사 '흔들리는 식량자주권, 한미 FTA 판도라의 상자'를 퍼왔습니다.
[김성훈 칼럼] MB, "차라리 가만히 계셔라"

"한미 FTA로 미국보다 넓은 경제영토를 가지게 됐다"고 광개토대왕처럼 호언하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11월 29일 마침내 한나라당의 단독 비준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장차 국내 농업영토와 식량자주권이 크게 줄어들고, 대한민국의 경제 사법 의료 서비스산업 복지체계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송두리째 헌정하게 되었다. 얼마쯤 생길 이익은 재벌기업, 수출입업자 등 특정산업 특정계층에 한정되는 대신, 피해는 엉뚱하게도 농축산업, 중소상공업 등 취약산업, 취약계층에 재기불능의 멍에를 덧씌울 형세이다. 자영업자와 노동자, 일반서민들도 직간접으로 된서리를 맞게 될 운명이다. 다행인 것은 대통령이나 김황식 총리, 한나라당 의원들도 농업분야가 가장 피해가 클 것이라는 사실만은 어렴풋이 느끼는 모양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위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한미FTA 부수법안 서명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 농무부 경제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미국산 농축산물의 대 한국 수출액이 연평균 19억3000만 달러, 즉 2조876억 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5년 동안 대략 31조3140억 원이 넘는 미국산 농축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총 단순 농업생산액이 약 42조 원임에 비추어 가히 치명적인 타격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성실한 연구원으로 알려진 정부산하 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의 예측치에 훨씬 미달하는 연평균 약 4000억 원, 15년 동안에 합계 약 6조 원 정도의 미국산 농축산물이 수입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미국 측의 예상 수치와 비교하여 무려 5배나 낮게 전망하고 있다. 그러하니 동연구원이 FTA 결과 우리나라 농수산업부문의 생산 감소액이 15년간 합계 12조7470억 원이라고 예측한 것 또한 적당히 할인된 전망치가 아닐지 의심이 되고 있다. 생산비가 평균 2∼4배나 값이 싼 미국산 농축산물의 국내수입액수보다도 우리 농수축산업의 피해 즉, 생산감소액이 3배 가까이 적다는 예측은 아무래도 너무 순진한 것 같다. 아무리 상공업과는 특성이 다른 농수산업 분야라 하더라도, 값이 훨씬 싼 농산물이 관세 한 푼 물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데 국내 농축산업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믿을 이가 얼마나 될까.

그리하여 151명의 농촌출신을 포함한 여당의 결사대 의원들이 최루가스를 무릅쓰고 눈물을 훔치며 통과시킨 한미 FTA 비준안이 내년 초 발효되면, 그 즉시 38%의 농축수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개방 된다. 5년 이내엔 60%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그 후 10년 내에 나머지 모든 농축산물이 마찬가지로 관세 없이 개방된다.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 및 그 위험물질(SRM)도 무관세 수입의 언질을 받았는지 미국 정부와 국회는 협상성과를 아주 만족해하고 자축한다.

돌이켜보면, 한미 FTA 보다 더 일찍 비준된 FTA들에서는 그런대로 관세폐지 예외품목을 꽤 확보했었다. 한-칠레 FTA에서는 협상중단 등 줄다리기 끝에 쌀, 사과, 배, 쇠고기 등 29%를 예외품목으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포도의 경우 국내산의 생산출하기에는 수출하지 않기로 되었다. 그래서 농업분야의 피해를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와 이명박 대통령은 이와 같은 협상배경을 잘 몰랐는지 지난 24일 포도농업이 망하지 않고 있다고 사실을 비틀어 해석하였다. 그 외에도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33.3%, 한-EFTA(유럽자유무역연합)하고는 65.8%, 한-아세안 FTA는 30.9%의 품목을 관세철폐의 예외로 인정받았다. 심지어 한-EU FTA에서도 2% 이상의 예외품목을 두고 있다. 오로지 한-미 FTA에선 그나마 지킬 것 같았던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마저 무관세로 몽땅 내어줄 신세이다. 박근혜 씨는 FTA가 소비자물가를 인하할 것이라 좋다고 말하면서 ISD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지역구 농민유권자들을 외면하고 한나라당의 의회 폭거에 용감히 가담한 모양이다. 그런데, 소비자시민 모임은 무관세로 수입된 칠레산 와인 값을 비롯한 삼겹살 등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비싸거나 아주 높게 팔리고 있는 사실을 조사, 발표했다. 무관세로 수입 개방된 다른 품목들도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의 외국산 수입유통구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있는 모양이다. 참 안됐다.

한미 FTA 협정은 그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농축산물이 홍수처럼 수입되어 국내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SSG/ASG)가 있는데, 한미 FTA에서는 그 발동요건을 아주 까다롭게 했다. 또 품목당 1회에 한해서만 허용하거나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경우는 발동요건을 아예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입량이 폭주하여 국내산가격이 똥값으로 떨어져도,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인 사태가 다반사일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상당 부분의 현행 각종 농업 및 식품관련 지원정책이 자칫 투자자의 소송대상이 된다. 일부는 아예 폐지 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친환경(우리 농산물) 학교 무상급식조례, 농축산협동조합 지원조치, 각 지방자치단체의 농업 지원조치 또는 구매행위, GMO 표시제도 등 안 걸릴 데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그 무서운 투자자-국가분쟁 중재제도(ISD)이다.

대통령도, 박근혜 의원도 모르고 있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중에 세계의 모든 선진국들이 즐겨 의존하는,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multifunctionality)이란 것이 있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농업의 이 다면적인 공익기능이 크게 훼손되어 결국엔 국가의 존립과 삶의 질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우루과이 라운드 때 WTO가 먼저 성안했고 OECD가 채택하고 있는 이른바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non-trade concerns), 다시 말하여 농업의 다면적인 공익기능은 '농림업이 비단 식량과 목재, 섬유원료의 생산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생태계와 기후변화 보전기능,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 완충기능, 수자원 함양기능, 식량주권과 안전성 확보기능, 아름다운 경관유지기능, 지역사회공동체 유지기능, 전통문화보전기능 등등 화폐로 거래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기능'을 포괄하여 말한다. 그런데 이 공익기능들 역시 농림축산업의 몰락과 동시에 크게 훼손된다. 그래서 동서고금에 농업을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 일컬은 것이다. 우리나라 농림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은 화폐가치로 평가할 경우 대략 연간 70조 원 이상의 값어치로 계측된다.

일본의 노다 총리가 지난 11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조야(朝野)가 농업생산액 절반이 감소(약 8조 엔)하고, 식량자급률이 14% 떨어지며, 그리고 화폐로 평가한 농업의 다원적 가치, 즉, 연간 기준 3조7000억 엔이 상실할 것이라고 추계하며 반대를 공론화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샛별 같은 관변 연구기관들과 경제학자들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연구 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현재 식량(양곡)자급률이 25%(쌀을 제외할 경우, 단지 4.5%)밖에 되지 않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농지의 용도변경 등 토지제도를 대폭 풀어놓고, 농업정책은 예산 배려마저 4대강사업에 밀려 계속 홀대해 왔는데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FTA 무관세의 완전 개방이 끝나는 15년쯤 후엔 식량자급률이 한 14∼15%나 되면 다행일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세계 최하위국가로 기록될지 모른다.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은 당분간 가만히 계셨으면 싶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리겠다고 삼천리강산을 불도자로 뒤집어 놓으시더니, 이제는 자빠져 있지도 않은 우리 농업을 이번 기회에 지도를 잘하여 바로 세우시겠다고 하신다. 덴마크처럼 농업수출국가로 키우시겠다 하신다. 턱도 없는 말씀이시다. 우리나라의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은 2010년 현재 단 5억1900만 달러이다. 그것도 라면, 초코파이, 커피, 음료수, 담배 등을 빼고 나면, 순수 국내산 우리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의 수출액은 몇 푼일지 따지기조차 부끄럽다. 같은 해 한국은 59억6000만 달러의 미국 농축산물을 수입하였다. 농업부문 대미무역적자가 한해 54억4100만 달러다. 이 수치는 FTA가 발효되기 전 40% 내외의 관세를 물고 수출·입 된 금액들이다. 장차 관세마저 철폐되어 완전 개방되면 어떤 규모의 적자일지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말씀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최소한 총리가 향후 수년간 22조 원을 농업피해보전 대책을 내놓았을 때 그 내역이라도 좀 챙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눈을 씻고 보아도 수출농업육성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마다 국가 전체예산이 4∼5%씩 늘어나도, 농림축수산 예산은 실질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22조 원은 대부분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윗돌 빼어 아랫돌 괴거나, 이름표를 바꿔 단 이번 22조 원 계획에는 지난 정권 때의 42조 원, 119조 원 농업투자 허풍선처럼 생돈은 1조 원 남짓 조금 집어넣고 세련된 노하우로 짐짓 생색만 크게 내는 수치이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농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은 대부분의 농업인들에겐 아주 공허하게 들린다. 짐짓 만 모르고, 또다시 기회를 잡으면 언젠가 다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침소봉대식 과거의 보도 관행을 되풀이할 것이다.


▲ 지난 2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날치기 국회비준 무효화 및 이명박-한나라당 심판 범국민대회'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7000여 명이 참석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자, 그러면 1년밖에 임기가 남지 않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첫째도 둘째도, 한미 FTA 발효를 늦추거나, 폐기하고, 진솔하게 그 피해를 미리부터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FTA 협상을 내년 1월 개시하겠다는 것은 농업종결 완결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 정권 출범 초기 강만수 경제총수가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이제 농업이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한 뜻이 우리나라 농업을 이제 끝내자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을 버는 기간 이명박 정부는 현 단계 우리나라 농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명실공히 농정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높은 땅값과 소농구조 때문에 가격과 비용 면에서는 경쟁력 증대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농축산업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는 생태공동체 생명농업으로 탈바꿈하여야 살아날 수 있다. 환경도 살리고 기후도 살리고 국민소비자의 건강도 살리며, 농어민의 생존을 보전하는 생명 유기농업의 전국화와 1촌 1가공 식음료품의 발굴 지원 등 적극적인 대안농정의 추진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세방화(世方化, glocalization)의 전략으로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나갈 때에야 비로소차별화가 가능하다.

그리고 제발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정책과 기반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식량자주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만약, 한미 FTA로 식량주권이 무너질 경우 99%의 국민과 우리 후손들이 두고두고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오죽했으면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마저 '식량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국가의 자주를 지킬 수 있느냐'고 호언했을까. 제발 한미 FTA로 착하디착한 우리 농어민들을 '투사'가 아니면 '거지'로 몰아넣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서는 아니 된다.

신이시여, 우리 정부로 하여금 식량주권을 지키고 키워나가도록 굽어살피사 우리 대통령께 그 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전국의 농어민들은 부탁컨대 제발 이 고비를 잘 참고, 땅 팔지 않고, 농촌을 떠나지 않고, 버텨만 주면, 장차 10∼20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농업이 대접받고 농민이 존중받는 그러한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어 보자.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전 농림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