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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6일 일요일

겁쟁이도 절박한 순간에는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 2012-02-23일자 기사 '겁쟁이도 절박한 순간에는'를 퍼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독일로 이주해 36년째 살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아 문화재 실측조사를 했다. 독일어로 건축사 전공책을, 한국어로 에세이(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썼다.



내가 공개적으로 4대강사업을 비판해 왔다고 해서 용기있고 당찬 여자일 거라 생각하면 오해다. 도리어 나는 겁 많고 소심한 편이다. 어린 시절 뛰놀 때도 늘 몸을 사려 한번도 크게 다쳐본 적이 없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 데리고 스키장에 가서도 넘어져 다칠까봐 늘 설설 기다시피 탔다. 아이들이 다 크고 나서 나는 무서운 스키장에 발도 들이지 않는다. 유럽 최고의 여름썰매장에서도 브레이크를 꽉 잡고 살살 내려오는 통에 뒤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게다가 한국 드라마를 보면 폐인이 된다기에 고지식한 나는 그 유명한 드라마 한 편 보지 못했다.
나는 4대강사업을 고발하는 글을 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 이를 악문다. KBS 방송국 간부가 나에게 전화해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을 때는 공영방송의 막강한 법무팀과 재판을 벌이다가 우리집 전재산을 날리고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시나리오까지 떠올렸다. 뮌헨 교포들에게 내가 마련한 4대강사업 설명회 뒷풀이 자리에서 발언했던 많은 원로 교포들에게 독일주재 한국영사관이 전화를 걸어 “당신이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지? 앞으로 조심하라”고 경고했을 때, 나는 뮌헨 교포사회에 서로가 서로를 국정원 끄나풀로 의심하는 풍조가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이렇게 겁 많고 소심한 내가 지난 4년에 걸쳐 일관되게 4대강사업을 비판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걱정과 염치에서다.
독일은 선조들이 강바닥을 파고 보를 세운 댓가로 홍수 증가와 수질 악화에 시달리다 못해 강을 자연 상태로 복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명색이 독일의 하천사업을 모델로 한 하천복원이라면서 독일이 자연에 무지했던 시절 벌인 막가파식 하천개발과 똑같은 방식으로 4대강사업을 했다. 독일의 경우에 비추어봤을 때 환경 재앙과 경제 파탄은 불 보듯 뻔했다. 나는 그렇게 걱정스런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여기에 바쳐온 내 개인적인 희생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내 힘으로 4대강사업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죄 없는 후손에게 재앙을 물려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르느니만 못하다는 간단한 이치가 나를 움직이게 했을 뿐이다. 몰라서 동조하는 이들과 알면서도 묵인한 이들을 통해 나치 정권이 태어나고 유지되었던 역사를 나는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사실 나의 글쓰기는 점점 집요해져 왔다. 날이 갈수록 오기가 커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의 거짓말에 고지식하게 꼬박꼬박 대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글을 전부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KBS 간부에게도 정면돌파하겠다며 맞섰던 것도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옳은 길인 줄 알면서 무섭다고 다른 길로 갈 만한 주변머리가 없어서였다. 뮌헨 교포사회의 화합이 나 때문에 깨질까 하는 염려는 여전하지만 지금 이렇게 밝히는 것도 툭 하면 전화해서 협박하는 해외 공관의 행태를 고발해서 후배 교민들에게 건강한 교포사회를 물려주는 일이 당장의 화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4대강사업에 대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즉시 나는 그간 바빠서 미루어 두었던 비판글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의 4대강공사 현장에서 직접 뛰는 사람들에게 내려치는 매를 막아줄 힘은 없지만 옆에서 같이 맞아주며 매를 분산시키겠다는 정도의 용기는 하룻밤 고민하는 사이에 생긴다.
진실은 용기 있는 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이름 모를 어느 겁쟁이 아가씨에게 배웠다. 남편에게 맞고 살던 어떤 아주머니가 있었다. 가장 무섭게 맞은 것은 집안이 아니라 큰 길거리에서였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뺨이 눌린 채 남편에게 자근자근 밟히며 맞고 있는 데도 사람들은 모두 그냥 지나쳤다. 20분이나 이렇게 맞으며 죽음의 공포를 느낄 무렵 한 아가씨가 나타났다. 그 아가씨는 한 대만 더 때리면 경찰을 부르겠다며 112가 찍힌 핸드폰을 높이 쳐들고 골목길로 지하철역으로 따라다니며 가로막았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날카로운 눈매의 여장부가 아니었다. “그 아가씨, 말리는 내내 파들파들 떨고 있었어요. 우리 신랑이 주먹을 쥐고 때릴 듯하면 주저앉아서 엄마야~~ 그랬다니까. 내 보기에도 나만큼 겁먹었던 거 같애. 핸드폰도 두 손으로 쥐고 있는데 바들바들 떠는 게 눈에 보였어요. 그런데도 계속 뒤따라오는 거예요. 이빨 딱딱 부딪치면서 아저씨 때리지 마세요, 신고할 거예요… 신고할 거예요… 하면서…”
급기야 이 아가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경찰을 호출하는 것을 본 남편은 서둘러 자리를 떴고 아주머니는 힘 없고 겁 많은 아가씨가 그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회고했다. 안 그랬으면 그날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길거리에서 그렇게 비참한 꼴을 보이고 살아갈 기력은 없었을 것 같다고. 이름도 묻지 못한 채 경황 없이 아가씨와 헤어졌지만 아주머니는 그날 이후 남편의 폭력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다른 아내가 맞는 것을 보면 뛰어들어 말릴 용기까지 생겼다고 한다.(산하 김형민 PD의 “위대한 겁쟁이 아가씨”에서. 전문 보기.)평범한 사람도 자긍심을 가지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바른말을 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이 있다. 저 위대한 겁쟁이 아가씨를 생각하면 나 같이 겁 많고 소심한 사람도 비겁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돈다. 소심증을 한번 극복하고 일어선 사람에겐 협박이 잘 통하지 않는다. 힘 있는 자가 아무리 망치를 휘둘러도 여기를 치면 저기서 솟아오르는 두더지 떼의 끈질김을 당할 수 없다. 힘 없고 겁 많은 사람도 고지식하게 끈질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독일에서 발간되는 월간문화지 풍경 2월호에  송고한 글입니다.)

2012년 2월 16일 목요일

미국은 18세 시장, 독일은 19세 국회의원... 우리는, 선거도 못하는 청소년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2-16일자 기사 '미국은 18세 시장, 독일은 19세 국회의원... 우리는, 선거도 못하는 청소년'을 퍼왔습니다.


‘18세 선거권’은 세계적으로 볼 때 뒤늦은 주장이다. 실제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 ‘18세’는 선거를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시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고교 3년생이었던 마이클 세션즈(18)는 지난 2005년 11월 미국 미시간주 힐스데일 카운티에서 시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세션즈는 현역 시장 더글러스 잉글스를 누르고 160년 된 이 도시의 시장이 됐다.

세션즈는 취임을 앞두고 “오전 7시20분부터 정오까지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시장직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하며 또한번 주목받았다. 고교생이 ‘시장’이 되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독일에서는 지난 2002년 9월 안나 뤼어만이 만 19세 나이로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15세 때 녹색당에 가입하면서 정치를 시작한 안나 뤼어만은 국회의원으로 선출 직후 정치인 연금 문제를 제기하는 등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활동에 힘입어 지난 2005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재선에 성공했다. 안나 뤼어만은 재선 뒤 한국을 방문, “청소년도 그 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정치참여는 당연하다”며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권과 권리를 외치기 위해서는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187개국 중 144개국에서 18세 선거권 보장

마이클 세션즈, 안나 뤼어만의 사례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참정권 보장의 지표로 볼 수 있는 것은 선거권 연령이다.

현재 미국 등 세계 각 나라에서는 대부분 만 18세부터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다. 중앙선관위가 200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187개국 중 미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을 비롯한 144개국이 만 18세 이상 선거권을 인정했다. 아시아에서도 홍콩, 인도, 태국 등 18개 국가에서도 18세부터 선거권을 갖고 있다.

캐나다, 호주, 스페인, 독일 등은 선거권만이 아니라 피선거권까지도 18세부터 부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정치제도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현재 정부 주도로 선거연령을 만18세로 낮추는 선거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선거권은 세계 각국의 추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948년 헌법 제정, 정부수립과 함께 근대적 선거제도를 도입하면서 21세 이상에게만 보통 선거권을 보장했다. 1950년에 선거권 연령을 20살로 낮춘 이후 54년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다가 지난 2005년 19세로 한 살 낮췄다. ‘선거권이 청소년 의식 성장과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은 지 한참 지나서였다. 반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나라는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21세에서 바로 18세로 낮췄다.

정치권.시민사회계 무관심 속 더딘 민주주의

우리나라에서 ‘18세 선거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권의 무관심과 함께 ‘18세 선거권 공론화’가 선거 전후에만 반짝일 뿐 지속적인 여론을 형성하지 못한 데 있다.

18대 국회에서도 선거권 기준 연령 하향문제와 관련해 민주통합당 최영희 의원의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통합진보당 홍희덕 의원이 소개한 입법 청원안 등 2개의 의안이 발의됐으나 선거구 조정 등 다른 사안에 밀려 논의조차 못했다. 2000년 노컷운동,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촛불 시위 이후 시민사회와 청소년계 사이에서 ‘선거권을 18세로 낮추자’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총선이나 대선이 지나면 사그라졌다.

선관위 조기호 주무관은 “다른 나라에 비하면 선거 연령이 높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한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현재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곳이 없고 SNS 정치참여처럼 쟁점도 없는 상태에서 선관위가 먼저 나서서 18세 선거권을 공론화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정혜규 기자jhk@vop.co.kr

2011년 11월 23일 수요일

[사설]원전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정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2일자 사설 '[사설]원전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정부'를 퍼왔습니다.
정부의 원자력발전 집착은 미망(迷妄)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정부는 엊그제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제1차 원자력진흥위원회를 열어 2016년까지 세계 3대 원자력 수출강국이 되겠다는 원전강화 계획을 의결했다. 현재 가동 중인 21기를 2022년까지 32기로 늘리고 원전 비중도 36%에서 59%로 끌어올린다는 이른바 ‘원전 르네상스’ 구상에 수출을 도드라지게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사양길에 접어든 원전산업을 녹색성장과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포장한 정책감각도 한심스럽거니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확산되는 탈(脫)원전의 지구적 대세를 거스르겠다는 어깃장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전 르네상스는 정부의 독단과 독주로 일관한다는 점에서 ‘4대강’과 꼭 닮았다. 성장만능주의에 사로잡힌 허망한 짝사랑일 뿐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선진국은 자랑이 아니라 불안과 재앙의 진원지를 뜻하는 오명이 됐다. 또한 원전보다 값싸고 깨끗하며 안정적인 에너지원이 없다는 원전 지지자들의 주장은 허위로 판명되고 있다. 결국 원전 수출의 3대 강국이 되겠다는 것은 ‘지구적 왕따’를 자처하는 셈이다. 세계 3대 원전강국인 일본은 14개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백지화했고, 독일은 2022년까지 무(無)원전을 확정했다. 최대 원전 보유국인 미국도 원전 중독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원전 수출을 늘리겠다는 것은 세계적인 비웃음만 살 뿐이다. 

원전은 소수의 전문가나 정부의 독단에 맡겨질 사안이 아니다. 한번 시작되면 중도에 돌이키기 힘든 까닭이다. 설계수명 30년에 폐원자로 안정화까지 50년을 더하면 원전의 처리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의 짐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더 늦기 전에 가야 할 ‘탈원전’의 길을 정부의 원전 집착이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의 사회적 합의가 절실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