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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12일 월요일

"MBC사측, PD수첩 '한미FTA' 방송 막았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12일자 기사 '"MBC사측, PD수첩 '한미FTA' 방송 막았다"'를 퍼왔습니다.
노조 의혹 제기…담당부장 "파업중이라 방송 못한 것"

MBC노동조합이 '공정방송 쟁취'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43일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MBC 사측이 (PD수첩) 제작진 측에게 '한미FTA' 제작을 중단할 것을 종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 MBC < PD수첩> 홈페이지 캡처

12일 발행된 MBC노조 특보에 따르면, 비조합원인 (PD수첩)의 김영호 PD는 한미FTA 아이템과 관련해 촬영까지 모두 마쳤지만 김철진 시사교양2부 부장의 반대로 인해 방송이 무기한 보류됐다.
김영호 PD는 한미FTA가 한국 사회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기 위해 미국과 FTA를 맺은 캐나다, 멕시코 현지 취재까지 마쳤지만 김철진 부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에, 총선 전에 이 아이템은 방송될 수 없다"며 방송을 막아섰다는 것이다. 당초 방송 예정일은 2월 28일이었음에도, 벌써 3주째 제작이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김영호 PD는 이날 특보를 통해 "국장도 (김철진 부장과) 같은 반응이었다"며 "사실상 불방 통보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호 PD는 "(캐나다, 멕시코 등을) 취재해본 결과, FTA가 가져올 파장은 IMF를 능가할 것이다. (15일 한미FTA 발효를 앞두고) 이런 중요한 사안을 아직까지 어떤 방송사에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며 "FTA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사안으로서 빠른 시일 내에 방송을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호 PD는 "캐나다에서 만난 보수적 성향의 법률가 한 사람이 '왜 당신들이 와, 정부가 와야지. 정부가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인데'라고 말했다"며 "왜 이것이 정치적 문제인가. 방송을 막는 분들에게 되묻고 싶다"고 밝혔다.
'그동안 FTA는 취재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취재를 시작하게 됐나'라는 MBC 노조 측의 질문에는 "올 초 신년특집기획을 할 때 자영업자의 몰락을 다루면서 부수적으로 FTA를 취재했다.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이 FTA가 시행되면 자영업자들의 몰락이 훨씬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구성안을 본 김철진 부장이 자영업자들의 개별적 사례를 다루다가 갑자기 FTA가 나오는 것이 너무 뜬금없고, FTA처럼 복잡한 사안을 다루기엔 분량이 너무 짧다며 뺄 것을 요구했다"고 답했다.
김영호 PD는 이어 "그래서 이번 방송에서는 부장의 지시대로 FTA 관련 내용을 빼는 대신, 다음에 FTA를 본격적으로 다루겠다고 했고, 부장도 당시에는 별 말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방송을 막은 당사자로 지목당한 김철진 시사교양2부 부장은 12일 와의 전화통화에서 "보도를 막은 적이 없다"며 "파업 중이라서 (PD수첩) 자체가 방송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김 부장은 "한미FTA가 총선을 앞두고 큰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어떻게 방송을 하더라도 시비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총선 지난 후에 방송할 것"이라고 밝혀, 한미FTA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것이 '방송 보류'의 한 원인임을 인정했다.
김 부장은 '한미FTA 아이템에 대해 촬영까지 모두 마쳤고, 2월 28일 방송할 예정이었다'는 제작진의 주장과 관련해는 "한미FTA 뿐만 아니라 론스타, 재외국민 참정권 아이템 역시 제작이 모두 완료됐으나 파업으로 인해 방송하지 못하고 있다"며 "파업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한미FTA편의 방송 날짜가 확정되지도 않았다"고 맞섰다.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대선판세 가르는 ‘4·11 낙동강 전투’


이글은 대자보 2012-02-23일자 기사 '대선판세 가르는 ‘4·11 낙동강 전투’'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부산경남 민심 이반, 민주당 교만하면 민심 표변 알아야

1990년 3당합당 이후 지역주의가 고착화되어 연고지역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영남-호남에서는 당선이 보장되었다. 공천이 곧 당선이었다. 그 까닭에 양대 정당이 영남-호남지역을 양분해 완전히 석권해 왔다. 그런데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에서 이상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20년간의 정치적 연대인 PK+TK에 균열양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역대 선거에서 수도권이 격전지였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PK가 최대의 격전지로 떠올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PK의 향방이 대선의 판세를 가른다는 점에서 ‘낙동강 전투’로 비유될 정도이다. 

PK는 전통적인 야성지역이다. 1960년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봉화도 마산에서 먼저 들었다. 박정희의 유신체제에 종언을 고하는 1979년 부마항쟁도 부산-마산이 진앙지였다. PK는 신군부에 치명타를 준 신당 돌풍의 주역이기도 하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YS-DJ가 주도한 신한민주당의 후보 5명을 모두 당선시켰던 것이다. 관권과 금품이 난무한 부정선거였지만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은 2석을 얻는데 불과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13대 총선에서는 YS의 통일민주당이 15석 중 14석을 석권했다. 

1990년 YS의 민주통일당이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JP의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여 민주자유당이 태어났다. 이른바 3당합당이다. YS의 연고지역인 PK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연고지역인 TK와 정치적 연대를 맺은 것이다. 이후 PK는 줄곧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확고한 지지기반이었다. 노무현은 PK출신이다. 그럼에도 PK에서 그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했다. ‘호남당’이란 간판이 패인이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그는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입후보했다. 그런데 PK에서 그의 득표율은 29.4%에 그쳤다. 반면에 지역연고가 없는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65.3%의 득표율을 올렸다. 호남의 지지가 노무현을 당선시켰던 것이다. 

MB정권 들어 그 철옹성 같던 PK가 영남지역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6·2 지방선거가 그 시발점이다. 무소속 김두관의 경남지사 당선은 예상 밖의 승리였다. 그는 2003년 노무현 정권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후 2004년 총선, 2006년 경남지사, 2008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이 점에서 그의 당선은 이변이다. 그와 함께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김정길이 45%란 높은 득표율로 약진했다. 기초단체장 10명, 광역의원 23명, 기초의원 174명의 당선됐다. 한나라당의 아성 PK에서 일어난 파란이다. 서울시장 선거패배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날치기의 후폭풍이 MB정권의 권력누수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MB 친인척-측근 비리가 MB정권을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그 틈을 타서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접수하고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친이계의 무저항이 그것을 말한다. 그 배경에는 PK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PK의 이탈은 곧 대선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불만은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불통-강압통치와 TK우대-PK박대 인사에 대한 저항이 깔려있다. 

2007년 12월 대선의 승패는 노무현 심판론이 결정했다. MB의 압승은 친노세력에게 동면의 세월을 안겨줬다. 하지만 MB의 실정은 4년만에 그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줬다.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을 부산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그 선봉장으로 문성근이 나섰고 김정길이 가세했다. 친노세력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를 장악했다. 부산 공략을 통해 대권까지 간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조심스럽게 무소속으로 관망하던 김두관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이라 기치를 들고 통합대열에 가세했다. 다분히 호남을 의식한 대목이라 대권 도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총선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결행하겠다는 뜻이다. 

TK와 PK가 합세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1992년 김영삼, 2007년 이명박 당선이 그것이다. 하지만 두 지역이 분열한 1997년, 2002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노무현한테 실패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간판을 바꾸고 탈색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같은 이유로 민주통합당이 PK에 공을 들인다. 4·11 총선에서 문재인의 부산, 김두관의 경남이란 거점공략이 승기를 잡으면 대권쟁취의 열쇠를 쥘 수도 있다. 하지만 유동성이 너무 크다. PK는 항구도시, 공업지대가 포진해 있어 외지인, 노동자가 많아 역동성이 높다. 민주통합당이 교만한 표정을 짓는 순간 민심도 표변한다는 점이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 본지 고문

2011년 12월 6일 화요일

사회적 합의 없는 한-미FTA 무효다


이글은 대자보 2011-12-06일자 기사 '사회적 합의 없는 한-미FTA 무효다'를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국민 토론없이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날치기, 무효해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진과정을 보면 노무현-이명박 정권은 너무나 닮았다. 두 정권의 안중에는 국민이 없다. 국민적 논의도, 국회와의 협의도 무시한 채 졸속협상-밀실협상으로 일관하면서 모든 내용을 기밀에 부치는 꼴이 매우 흡사하다. 자국이익은 팽개치고 미국이익을 챙기려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는 굴욕적인 협상자세 또한 유사하다. 일반국민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독선적-고압적인 자세도 닮았다. 너희가 왜 국익을 묻고 주권을 따지느냐는 투이다. 

한-미 FTA는 단순한 역내 상품교역의 자유화가 아니다. 포괄적 경제통합으로서 한국경제를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종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협정에 맞춰 한국의 법령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수십개의 관련법을 개폐해야 하고 이에 따라 경제제도-사회체제에 일대변혁이 일어난다. 경제주권-사법주권에 이어 식량안보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내용이 방대하고 난해하며 전문적이다. 이 중에는 국민경제-사회생활에 파괴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독소내용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두 정권이 똑 같이 국민적 논의를 배제했다. 

2005년 6월 노무현 정권이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한다고 기습적으로 밝혔다. 그것도 협상개시 전에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건강보험약가 현행유지,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적용 예외 등 양국간의 핵심적인 통상현안을 미리 양보하는 조건이었다. 이른바 4대 선결조건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강력히 부인하다 나중에 사실을 실토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서울이 아닌 워싱턴에서 발표했다. 자국국회의 권위는 존중하지 않으면서 미국의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굴욕적 협상의 예고였다. 

국민의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영화인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농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반대하자 폭력시위라며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국회의원에게도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영문 협정문의 일부를 그것도 소수의 국회의원에게만 잠시 열람을 허용했을 뿐이다. 복사도 필기도 금지했다. 그리곤 내용을 단순화해서 소비자 혜택이 는다, 중소기업 수출이 증가한다는 따위의 기만적인 홍보에 혈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국민적 반발에 눌려 노 정권은 국회비준을 얻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은 노 정권보다 더 폭력적이다. 재협상을 벌리면서도 무엇을 논의하는지조차 철저하게 기밀로 붙였다. 개괄적인 내용조차 공개를 거부했다. 다만 국회에서 질의과정에 부분적인 윤곽이 드러났을 뿐이다. 두 정권의 협상주역인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불평등 독소조항을 수정하라는 비판여론에 대해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칠 수 없다는 강경자세를 고수해왔다. 재협상은 절대불가라는 그가 미국이 요구하자 민첩하게 행동하며 본질적 내용을 수정하고도 협상과정조차 거의 알리지 않았다. 

협정문 한글본이 오류 투성이인 모양이다. 지난 6월 외교통상부가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오류 296개를 수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오표를 제출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85명이 참여하는 시민검증단과 민변이 점증한 결과는 단순한 교정 말고도 모두 2600여건의 번역수정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그 중에는 법률적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오류만도 500여건이라고 한다. 민변의 정보공개 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일 번역오류를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도 국민의 경제-사회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중대한 사안의 공개를 거부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11월 22일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먼저 본회의 비공개 등의 안건을 날치기했다. 회의록, 참석의원, 찬성의원의 공개를 금지한 것이다. 취재활동의 원천봉쇄를 통해 국민의 귀와 눈을 막기 위한 짓이다. 이어 비준안을 주무장관의 제안설명도 없이 상정하고 토론도 없이 날치기했다. 이와 함께 부속법안 14개도 날치기했다. 그 중에는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은 법안도 당일 발의된 법안도 있다. 39분만에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날치기한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 중에 내용을 개괄적이나마 알고 손을 든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이게 무슨 국민대표인가? 

그 소란을 속에 야당 당직자들이 방청석 유리창을 깼다. 그 바람에 취재진이 들어가고 또 트위터를 통해 실황중계하면서 찬성의원의 명단이 알려졌다. 한-미 FTA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이 없었다. 많은 국민들이 엄동설한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으면서 연일 FTA 무효를 외치나 이명박 정권은 귀를 틀어막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한-미 FTA는 무효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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