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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7일 수요일

정연주와 김인규, 최문순과 김재철의 차이 [사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3=07일자 사설 '정연주와 김인규, 최문순과 김재철의 차이 [사설]'을 퍼왔습니다.
정권 말, 언론사 파업이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MBC가 지난 1월25일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KBS가 6일부터 파업을 시작했고 YTN은 8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연합뉴스는 13일까지 파업 찬반투표가 진행 중이다. 모두 지난 4년 동안 공정성 시비와 언론 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언론사들이다. 늦게나마 언론의 가치를 지키겠다며 떨쳐 일어선 언론인들에게 국민들은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MBC는 방송문화진흥회가 70%,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방문진에서 MBC 사장을 선임하는 셈인데 방문진 이사는 모두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임한다. 방통위 상임위원회는 대통령이 추천하는 2명과 여당이 추천하는 1명, 야당이 추천하는 2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과 여당이 방통위와 방문진을 통해 MBC 사장 선임에 개입하는 구조라 태생적으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0%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KBS는 이사 11명을 모두 방통위가 추천하는데 여기에서 사장이 선출된다. YTN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KDN이 21.4%, KT&G가 20.0%, 한국마사회가 9.5%, 우리은행이 7.7% 등 공기업 및 정부 관계회사 지분이 58.5%에 이른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가 30.8%, KBS가 27.8%, MBC가 2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YTN과 연합뉴스 역시 사실상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인 김인규 KBS 사장은 전형적인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김재철 MBC 사장이나 배석규 YTN 사장,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 등은 모두 내부에서 선임된 경우다. 굳이 비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오히려 낙하산 사장에 가깝다. 이른바 코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때도 있었다. 정연주와 김인규의 차이는 뭘까. 최문순 전 MBC 사장과 김재철의 차이는 또 뭘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청와대가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에서는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연주 전 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정권이 바뀐 뒤 온갖 압박 끝에 강제로 해임됐다. 배임 혐의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 받았고 해임 무효 소송도 1심과 2심 모두 승소하고 3심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정권이 바뀐다면 김인규·김재철 사장도 같은 운명을 밟게 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이 정치적 영향을 받는 게 안타까웠다"면서 방송법을 개정, KBS 사장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축소해 임기를 보장받도록 했다. 정권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겠지만 사장을 마음대로 갈아치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 못지 않게 애초에 사장 선임 절차부터 독립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대통령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연주가 노무현의 낙하산이었다면 김인규는 이명박의 낙하산이다. 최문순이 노무현의 코드 인사였다면 김재철은 이명박의 코드 인사다. 착한 낙하산과 나쁜 낙하산의 차이일 뿐이다. 김인규의 KBS와 김재철의 MBC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김인규나 김재철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실제로 이병순의 KBS와 김인규의 KBS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엄기영의 MBC나 김재철의 MBC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정권의 눈치를 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분명한 것은 설령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내보내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또 다른 김재철을 임명할 것이고 그 김재철 역시 툭하면 청와대에 불려가서 '쪼인트'를 까일 거라는 사실이다. 최시중이 물러난 자리에 이계철이 들어오는 것을 보라. 최시중이나 이계철이나 얼굴만 다른 이명박의 아바타일 뿐이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김인규와 김재철을 비난하는 것 못지 않게 지배구조 개선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당장은 시민사회의 분노와 기자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이 변화의 동력이다. "사장 한 명 바뀐다고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는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사장 한 명에 좌우되지 않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권 말 언론사 파업은 만시지탄이지만 권력이 언론을 흔들 수는 있을지언정 장악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만들어낼 중요한 기회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다.

MBC보도국 후배가 이진숙 홍보국장에게 보내는 편지


이글은 미디어스 201203-07일자 기사 'MBC보도국 후배가 이진숙 홍보국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퍼왔습니다.
“이제 피 묻은 붓을 내려놓으십시오”

1월 30일 ‘공정방송 쟁취’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시작된 MBC 총파업으로 인해 벌써 2명의 MBC 기자가 ‘해고’를 당했다. ‘종군기자’로 이름을 날렸던 이진숙 기자(MBC 홍보국장)를 바라보며 기자의 꿈을 키웠던 MBC 보도국의 한 후배 기자가 이 국장에게 “이제 그만 피 붇은 붓을 내려놓으라”고 호소한다.  는 7일 MBC노조 총파업 특보에 실린 해당 글을, 노조 동의를 받아 전문 게재한다.

▲ 이진숙 MBC 홍보국장
“바그다드에서 이진숙입니다.”
이진숙 국장을 처음 뵌 건 그때였습니다. 총성이 곧 배경음이던 바그다드 시내 한복판에서 ‘기자 이진숙’은 MBC 마이크를 들고 당당히 서 있었습니다.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지만, ‘어떻게 저길 갔을까?’라는 경외심 때문인지,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표정이 흑백 사진처럼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렇게 느낀 게 저 뿐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함께 언론사 시험공부를 하던 동료가, 자신은 “현장을 누비는 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이진숙’이란 이름 석 자는 수식어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기자 이진숙’이 직접 쓴 경험담이 저희에겐 곧 ‘교재’이기도 했습니다. MBC 기자가 된 이후 명절 때가 되면, ‘기자 이진숙’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지들도 ‘이라크에 있던 여기자’의 안부는 물어오곤 했습니다.
최문순 사장 시절이었던가요. 권재홍 현 보도본부장과 함께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시던 시절, 이진숙 선배는 당시 권재홍 특파원이 회삿돈을 사적인 용도로 쓴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 때문에 결국 회사가 감사까지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동료애’와 ‘원칙’ 사이에서 숱한 뒷얘기가 오갔지만, 적어도 제게 이진숙 기자는 ‘공과 사’는 확실히 선을 긋는, 작은 실수도 그냥 넘기지 않는 엄격한 선배로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던 ‘종군 기자 이진숙’과, 징계 예고와 온갖 협박으로 점철된 서슬 퍼런 회사특보를 찍어내는 ‘홍보국장 이진숙’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기자들 대부분이 파업에 동참한 것은 물론, 부국장과 앵커들을 비롯한 보직 간부들까지 김재철 사장 사퇴를 요구하며 줄줄이 보직을 사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일부 구성원의 불법 파업”이란 딱지를 붙인 ‘홍보국장 이진숙’과, 한때 진실을 위해 발로 뛰던 ‘기자 이진숙’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정말 믿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소한 공과 사의 구분에도 그토록 엄격했던 선배가 김재철 사장의 ‘수상한’ 법인카드 내역에 대해선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하셨던가요. 김재철 사장에 대해선 어떻게 그렇게 관대할 수 있는지, ‘영업 기밀’이란 이유로 어찌 그리 감싸기에 급급한지, 도통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김 사장이 임명한 홍보국장이란 자리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권의 입’이 되길 자처한 사장처럼 선배도 어느새 ‘김재철의 입’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요. 공정방송을 외치던 후배들의 절규보다 웃으며 속삭이던 김 사장의 귓속말이 더 크고 선명했던 건 아닌지요.
“나는 내가 생각했을 때 옳은 일을 할 뿐이다.”
재작년 (PD 수첩 4대강 편) 방송이 보류된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울러 “홍보국장이란 자리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사장이 주도한 수많은 결정과 선배의 신념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제가 이해한 바가 맞다면, 어쩌면 이 편지는 그저 넋두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어코 이 글을 띄울 수밖에 없는 건, 아직도 적지 않은 후배들이 ‘제 2의 이진숙’을 꿈꾸며 험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그다드의 여기자’를 잊지 않고 있는 수많은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그들이 제게 ‘기자 이진숙’에 대해 물어올 때, 저는 어떤 이야기를 해 줘야 할까요.
‘이진숙 홍보국장’의 신념처럼, 저 또한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내 일터 MBC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 때문인지,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신 이 국장의 말씀처럼, 저 또한 이상할 정도로 징계가 두렵지 않습니다.
다시 보고 싶습니다. 포화 속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던 그 때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후배들의 진정어린 호소에 귀 기울이던 예전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자신의 영달에 눈이 먼 야욕가가 아닌, ‘기자 이진숙’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십시오. 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이제 후배들의 피로 물든, 그 ‘핏빛 붓’을 내려놓으십시오. 제발 해고자들이 흘린 피로 만든 잉크, 그 ‘핏빛 잉크에 찍어 쓰는 펜’을 던져버리십시오. 너무 때늦은 바람이 아니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MBC 보도국의 한 후배 기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