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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1일 수요일

‘딸 편법입학’ 박희태, 또 ‘부정부패’로 사퇴하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1-11일자 기사 '‘딸 편법입학’ 박희태, 또 ‘부정부패’로 사퇴하나'를 퍼왔습니다.
참 부끄러운 국회의장, 그의 과거를 아시나요…YS 시절 불명예 퇴진했지만 화려한 부활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오후 딸의 대학 편법입학으로 물의를 일으킨 박희태 법무부 장관과 부동산 투기로 말썽을 빚은 박양실 보사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장관을 임명한다.”-동아일보
“딸의 대학 특례입학으로 물의를 빚은 박희태 법무부 장관이 7일 사퇴의사를 밝혔다.”-한겨레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3년 3월 8일자 동아일보와 한겨레 1면에는 이런 기사 내용이 실렸다.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로 뽑혔다. 한겨레는 3면에서 당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일 그의 딸이 2년 전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에 편법입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적심사 관리 주무부서 장관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다. 미국 유학 시절 낳은 딸이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법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귀국 뒤에도 계속 이를 유지하고 있다가 지난 91년 외국인자녀 특례입학 혜택을 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인 자격으로 이화여대에 '정원외 입학'을 했다는 것이다. 박 장관 스스로 즉시 사실을 시인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죄했으니 사회 기강 확립의 주무부서인 법무부의 장관이 '편법'이란꼬리를 달고 있는 한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거세지자 청와대 쪽은 경질을 심각하게 검토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겨레 1993년 3월 8일자 1면.

김영삼 정부 임기 초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희태 법무부 장관의 딸 편법입학 사건이다. 1993년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부정부패’ 사건으로 물러나는 불명예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는 지금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다. 이미 20년 전에 공직과 담을 쌓았어야 할 그가 어떻게 국회의장 자리까지 올랐을까. 박희태 국회의장, 그의 과거로 되돌아 가보자.
박희태 국회의장은 딸의 ‘편법입학’ 사건으로 사퇴한 이듬해인 1994년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경남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인물이다. 법무부, 대검찰청, 서울지검, 부산지검 등 1966년 검사 임관 이후 20년 가량 검찰에서 몸담았던 검찰맨이다.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진출한 이후 1992년, 1996년, 2000년, 2004년까지 연이어 5선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탄핵 역풍 당시 박희태 의원은 현재 경남도지사인 김두관 후보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 번 의원배지의 주인공이 됐다. 

2003년 한나라당 대표, 2007년 국회 부의장을 지내는 등 그는 당과 국회의 주요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경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면서 현 정권의 실세 중 실세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그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다시 한 번 수모를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2008년 7월 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됐다. 최근 ‘돈 봉투’ 사건의 논란을 빚은 바로 그 전당대회다.
조선일보는 2008년 7월 4일자 5면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당선 소식을 전하면서 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그 제목은 박희태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대표로 부활했지만, 국회의원은 아니었다. 그러나 텃밭인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를 떠나 2009년 10·28 재보선에서 경남 양산에 출마한다. 박희태 대 송인배 구도는 누가 봐도 ‘정치 거물’인 박희태 후보의 완승이 예상되는 승부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치 신인’ 민주당 송인배 후보가 34.1%를 득표하며 38.1%를 얻은 박희태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는 진땀 승부였다. 당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지금의 박희태 국회의장 시대는 탄생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박희태 국회의장.

한나라당 대표와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등 ‘이명박 시대’ 박희태 국회의장은 권력의 정점을 경험했다. 그러나 20년 전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부정부패’ 의혹이 다시 그에게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중앙일보는 1월 11일자 1면에 2008년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아무개씨의 실명과 얼굴 사진 등을 공개했다. ‘돈 봉투’를 둘러싼 의혹은 박희태 국회의장의 턱밑까지 번진 셈이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쪽에서는 박희태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20년 전 법무부 장관 시절 딸의 ‘편법입학’ 때도 그는 장관직을 사퇴했지만 결국 언제 그랬냐는 듯 화려화게 부활했다.
이번 사건 역시 한나라당 보좌관의 단독 범행이라는 황당한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런다고 국민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는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다시 한 번 부정부패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할 가능성이 커졌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의장 임기를 이대로 마무리하게 될까. 아니면 ‘보좌관 책임론’ 뒤에 숨어서 위기를 모면하게 될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국회의장에 사퇴하고 19대 총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그를 둘러싼 의혹을 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회의장이라 불리는 정치인 박희태, 그의 선택이 궁금해진다.

2011년 11월 24일 목요일

[사설]내곡동 의혹, 이 대통령은 계속 ‘모르쇠’로 버틸 건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1-23일자 사설 '[사설]내곡동 의혹, 이 대통령은 계속 ‘모르쇠’로 버틸 건가'를 퍼왔습니다.
이른바 ‘내곡동 의혹’은 전형적인 부동산투기의 테크닉이 모조리 등장한 데다 청와대라는 국가권력까지 버무려진 한 편의 ‘엽기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그린벨트 해제, 부동산 명의 신탁, 편법증여, 편법대출 등을 둘러싼 의혹이 전자라면 청와대의 국가예산 전용 의혹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대통령 퇴임 이후 사저 부지를 선정하는 문제에 이런 낯뜨거운 낱말을 입에 담아야 하는 사실 자체가 참담하기만 하다.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입도 꿈쩍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의혹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나왔다. 내곡동 논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이 “이 대통령이 경호처에서 사저 후보지로 검토한 12곳 가운데 내곡동을 추천받은 뒤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승인했다”고 밝힌 것이다. “매입자금으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돈을 썼고 아들 시형씨 명의로 구입하자는 경호처 의견도 받아들였다”고도 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이 대통령이야말로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한 의혹의 몸통이자 꼭대기인 셈이다. 

김 전 처장에 이어 검찰 관계자는 엊그제 내곡동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시형씨를 소환조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권재진 법무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정치적 고려 없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솔직히 대통령의 최측근 비서(민정수석비서관) 출신 법무장관의 언급인 만큼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다만 검찰이 예의 ‘면죄부 발급용’ 수사로 일관한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점은 재삼 강조하고자 한다. 
검찰 수사를 떠나 이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책임있는 해명을 해야 한다. 부지 매입과정을 직접 소상하게 밝힌 뒤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고개숙여 국민의 용서를 빌어야 한다. 지난달 1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쳐 안타깝다”고 말했다는데 도대체 본의는 어떤 것이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 대통령이 내곡동 의혹과 관련해서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