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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7일 화요일

장하준 “‘잃어버린 10년’, 전세계가 겪을 수도”


이글은 시사인 2012-01-17일자 기사 '장하준 “‘잃어버린 10년’, 전세계가 겪을 수도”'를 퍼왔습니다.
장하준 교수는 2012년 세계경제는 회복되기 힘들고 앞으로도 조금 나아졌다가 계속 퇴보하는 장기 불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럽에서는 재정위기가 진행 중이고, 미국 경제는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세계경제의 견인차 노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오리무중 국면이다. 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장하준 교수를 만나 ‘솔직한 전망’을 부탁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었다.

2008년 가을 금융위기가 터지자 각 나라가 협력해서 위기 국면을 봉합했다. 다시 심각한 상황이 오고 있는 이유는?
전 세계가 공조해서 재정과 통화를 팽창시켰다. 위기를 일단 진정시키고 숨 쉴 구멍을 만들려는 단기 정책이었다. 환자의 경우라면 영양제를 준 것인데, 영양제로 환자가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금융 개혁도 하고 필요한 투자도 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를 회복시켜야 했다. 그러나 경기가 조금 회복되자 각국은 재정적자를 줄인답시고 정부의 역할을 다시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송인호 제공

특히 유럽은 점입가경인 것 같다.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만약 독일이 갑자기 ‘그리스도 유럽연합(EU)의 한식구인데 끝까지 도와주자’고 마음을 바꾼다면 좋겠으나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지금 EU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그리스 등 재정위기로 어려운 나라를 조금 더 도와주되 이에 대해 엄청나게 조건(구제금융 조건)을 붙이겠다는 거다. 그 조건의 내용은 ‘도움받는 나라’가 재정긴축 등으로 자국 경제를 더욱 축소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다. 결국 ‘위기 국가’들의 경우 구제금융을 받아서 당장 급한 불을 끈다 해도 자국 경제를 축소 지향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경제의 틀을 바꿔 성장을 재개하기도 어렵게 된다. 그리스, 아일랜드 등이 모두 비슷한 처지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다보면 그 나라 내부에서 EU와 유로존을 탈퇴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EU 자체가 흔들리는 국면으로 갈 것이다. 즉, 구제금융을 통해 단기적으로는 위기 상황을 봉합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몇 나라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도 있고, 그렇다면 지금 같은 형태로 EU나 유로화가 유지되기는 힘들 것이다.
예컨대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무사히 받는다 해도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다는 것인가?
그리스가 국가부채를 줄여서 안정적 상황으로 들어가야 EU 전체의 금융시장 혼란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구제금융 조건(재정지출 감축)을 준수하면 할수록 경제가 더욱 침체되어 빚 갚을 능력이 오히려 작아진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될 텐데 그리스가 어떻게 돈을 벌어 부채를 줄일 수 있겠는가. 물론 자국 통화를 평가절하할 수 있다면 수출을 늘려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아이슬란드는 유로존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이 방법을 통해 다소나마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나 스페인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으니 평가절하도 못한다. 평가절하도 못하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재정긴축을 해야 하니, 빠져나올 길이 없는 것이다.


ⓒ시사IN 조우혜 장하준 교수는 한·미 FTA 발효가 조금씩 한국 경제를 잠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유럽 위기가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EU라는 시스템 자체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다.
유로권 전체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6% 정도인데 미국보다 훨씬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치명적 문제는, 유로존 국가들이 단일 통화를 사용하는 강도 높은 경제통합을 이루긴 했으나 사실은 ‘하나의 나라’라는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예를 들어 강릉시가 재정위기에 빠졌을 때 서울 사람들이 ‘저건 강릉의 문제니 도와주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네덜란드·핀란드에서는 ‘왜 그리스에 돈을 대주냐’며 항의한다. 그래서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거다. 시민들은 같은 나라라는 의식도 없는데, 이 나라 저 나라 섞어 너무 빨리 통합한 것이 화근이다.
더욱이 올해에는 유럽에 선거가 많다. 각국 정당이 시민들 눈치를 보게 되면서 금융위기 극복이 더 어렵게 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전체 EU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유럽 유권자들은 선거 때마다 매우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보여왔다고 생각한다. 선거를 하면 집권당은 좌파든 우파든 무조건 쫓겨나는 경향이 있었다. 올해부터는 유럽 시민들이 현재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를 선거에 반영하기 바란다. 그러나 예측이 쉽지 않은 이유가, 나라마다 정치적 구도가 다른데, 일부 국가에서는 EU를 탈퇴하고 이민도 받지 말자는 극우파 정당이 세를 얻을 정도로 정세가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 이런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4월 프랑스 선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유럽 정세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유럽 국가들이 어려운 것은 ‘과잉 복지’로 인한 재정위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재정적자 문제가 금융위기 이전에 심각했던 나라는 그리스밖에 없다. 그리스는골드먼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과 공모해서 재정적자 규모를 감추는 짓까지 했다. 이에 비해 아일랜드는 금융위기 이전 10년 동안 오히려 GDP 3% 규모의 재정흑자를 내던, 매우 우량한 국가였다. 금융허브 육성한다고 날뛰다 완전히 망한 거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도 2~3% 선에서 재정흑자나 적자를 내는 등 비교적 양호했다. 재정 문제가 심각한 나라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더욱이 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은 EU 지역에서는 오히려 복지제도가 약한 나라들이다.
그런데 현재는 재정적자 규모가 무시무시할 정도이던데.
역시 복지와는 상관없다. 유럽 나라들은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다가 엄청난 재정을 탕진했다. 이에 더해 금융위기로 나라 경제가 마비되자 세수가 크게 떨어졌다. 이처럼 재정위기 원인 제공자인 금융자본들이 한동안 ‘잘못했다’며 납작 엎드려 있다가 일제히 “정부 때문이야, 복지 때문이야”라며 ‘엎어치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어떤가. 최근 ‘소비자 신뢰지수’가 소폭 오르고 실업급여 신청 건수가 내려가는 등 간만에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글쎄다. 최근 실업률이 줄었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그것은 아마 구직 포기자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구직 포기자까지 감안한다면 미국 실업률은 15~17%에 이른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미국 경제에는 아직 확실한 회복 기미가 없다. 2008년 위기의 원인이었던 미국 주택시장 또한 거의 회복되지 않고 있다. 주택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고 있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이에 더해 지난여름, 정부부채 상한 확대를 두고 미국 정치권에서 난리를 치다가 결국 정부지출을 대폭 줄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나. 그래서 올해부터 정부지출을 본격적으로 깎기 시작하면 이 때문에 경기가 더욱 냉각될 것이다. 영국도 정부지출을 대폭 깎았는데 지난 1년의 성장률이 거의 0%에 가깝다. 미국에도 비슷한 경기냉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금융위기 책임자들이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가장 피해를 보는 재정긴축을 실시하려 한다. ‘미국 경제는 부자한테는 사회주의, 가난한 사람한테는 자본주의’란 말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다.

안 좋은 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없는데 어떻게 하겠나. 

세계 경제성장의 견인차라는 중국이 있지 않은가? 
글쎄다. 중국이 그나마 성장한다 해도 세계경제에 크게 좋은 효과를 주기는 힘들다. 중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에 불과하다. 각각 25%의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과 유럽에 비하면 너무 작다. 중국의 수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도 문제다. 중국은 세계 금융위기 직후 엄청난 규모의 정부지출을 했고 그 덕분에 지난 2~3년은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경제가 침체된다면 중국의 수출 또한 급락하고 이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 역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인데, 그 규모가 최대였던 1980년대 말에도 15% 정도였다. 그런데 중국은 25~30% 수준이고 그래서 수출이 어려우면 충격도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국이 정부지출로 투자한 사업에서도 각종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지출로 도로와 공항, 철도를 건설했고 여기서 수익이 나야 하는데,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 다른 불안 요인도 많다. 해외에서는 잘 모르지만 연간 수만 건에 이르는 폭동과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빈부격차가 계속 확대되어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이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느 나라가 기관차 역할로 세계경제를 끌어갈 수 있겠는가. 큰 문제다.

중국도 올해 정권교체가 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내수를 키우겠다고 해왔다. 이는 미국이 요구해온 위안화 절상과도 맞물려 많은 기대를 모아왔다. 정권교체가 내수 확대와 위안화 절상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중국 정치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래서 새 인물이 들어온다고 중국 체제가 바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수 확대는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내수 키운다는 것이 말이 쉽지, 정부가 더 소비하라고 한다고 인민이 실제로 더 소비할 수 있겠는가? 
예컨대 중국인들이 적게 소비하고 저축을 많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복지제도가 잘 갖춰지지 않아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복지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대폭 확대할 수 있겠나. 더욱이 상하이처럼 매우 발달한 도시가 있지만, 농촌 지역에서는 돈을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다. 쇼핑센터도 없고 신용카드도 크게 확산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도 한때 저축률이 엄청나게 높은 나라였지만 지금처럼 ‘저축률 낮은 국가’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내수 키우기가 말은 쉬운데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2012년 세계경제는 한마디로 막막하다는 결론인가?
올해뿐 아니라 그 후에도 어디서 어떻게 회복될지 불확실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세계 각국은 재정·통화 팽창으로 번 시간에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어야 했다. 이른바 녹색성장도 그런 모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결국 시간만 낭비한 것으로 끝났다. 돈을 풀긴 했으나 그 돈은 생산적 부문에 투자되기보다 투기성 자금으로 변신해서 여기저기로 쏘다니며 세계경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돈이 생산적 부문에 쓰이게 하려면 금융개혁이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금융개혁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세계 금융위기를 일으킨 독성 자산, 주택시장 붕괴 따위 근본적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유럽이 긴축정책 한답시고 칼 빼들고 나서서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를 더욱 망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뿐 아니라 이후 몇 년간 전망이 어둡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을 전 세계가 겪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시나리오가 보이지 않는다.

장기 불황이 아니라 공황이 닥칠 가능성은 없는가?
글쎄. 예측하기 힘들다. 물론 아직 불안 요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부문의 경우, 대출상환 기간이 2013~2014년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부문에서 대형 부도가 터지거나 중국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해서 세계경제 전체에 엄청난 쇼크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나는 ‘큰 것’은 이미 대다수가 터졌다고 본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세계경제가 조금 성장하는 것 같다가 퇴보했다가 하는 일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장기 불황이다.
예컨대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와 디폴트를 선언하고, 이 나라에 많은 돈을 빌려준 프랑스와 독일 은행들이 패닉 상태에 들어가며, 다른 한편으로 이런 위기가 안 그래도 취약한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자극해 유럽과 세계경제의 갑작스러운 공황으로 폭발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스 디폴트만으로는 감당 못할 쇼크가 아닐 거다. 그리스 GDP는 EU의 2% 정도로 작은 편이니까. 물론 그리스 위기가 이탈리아, 프랑스 등으로 전염되면 그런 공황 상태로 귀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현재는 대규모 지원 못한다고 버티고 있는) 유럽중앙은행이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개입한다거나 하는 조처들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로존이 갑자기 붕괴하는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으리라 예측한다.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정부는 올해 초엔 한·미 FTA를 발효시킬 예정이다. 전망이 어떤가?
그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발효하자마자 하루아침에 나라가 이상해지진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점점 문제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한·미 FTA는 이미 발효되어 있는 한·EU FTA와 맞물리면서 조금씩 한국 경제를 잠식해 들어갈 것이다. 특히 신성장 산업들은 점점 더 발전하기 힘들 것이다.
신성장 산업이라면?
나노·바이오·녹색 등 아직 한국에서 발전되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도 새로운 산업을 신성장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 키워야 할 기계·부품·화학·제약 등도 신성장 산업이라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독일·스위스·이탈리아가 선두인 정밀기계와 화학 부문에서 한국은 점점 더 발전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EU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의 최대 이슈는 복지일 것 같다. 야권은 물론 여권까지 최근 복지 공약들을 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회 합의도 이뤄진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에 따르면 2012년엔 불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복지국가 건설은 물 건너가는 것일까?
복지는 불황일수록 더 힘을 발휘하는 것 아닌가. 불황이 닥쳐도 시민들의 기본 소득이 보장되어야 어느 정도 소비가 가능하고 그나마 경제가 돌아가서 극단적인 사회불안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불황으로 실업한 사람들이 복지 서비스를 통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 규모로 보면(추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번 위기가 1930년대의 대공황보다 더 크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도 선진국 사회가 그때처럼 붕괴되지 않는 것은 1930년대와 달리 복지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 시스템 운영의 경우, 불황기에는 세수가 줄고 지출이 늘기 때문에 정부 재정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 처지에서는 불황이야말로 복지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는 시기다. 이런 측면에서 불황은 복지에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수가 걷히지 않으면 어떻게 복지 시스템을 가동시킬 수 있겠는가?
개인 생활에서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예컨대 병원에 간다거나 자녀를 대학에 보낸다거나… 이런 경우엔 다른 소비를 줄이거나 빚이라도 내지 않는가. 국가 살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하기 싫다’는 말이다. 복지가 필요하고 시민들에게 유익한 것이라면 다른 데서 줄이고 복지에 쓰면 된다. 그래도 모자라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최근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으로 거론된다는 이야기가 이런저런 신문에 났다. 가끔 박근혜 의원과의 정치적 관계를 시사하는 보도가 나오던데 이에 대한 공식 의견을 듣고 싶다.
나도 신문에 난 거 보고 알았다. 

놀랐나?
그동안 온갖 억측에 별 소릴 다 들어봤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그동안 정책적 사안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정당정치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나라당에 그런 위원회가 생겨서 강연을 부탁하고 또 시간이 맞으면 기꺼이 강연하러 갈 것이다.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특정 정당, 특정 후보의 무슨 위원이나 당원, 후원자가 되는 것에는 관심 없다.

2011년 12월 18일 일요일

은행 영향력 줄어야 ‘안전 경제’ 가능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 2011-12-01일자 기사 '은행 영향력 줄어야 ‘안전 경제’ 가능'을 퍼왔습니다.
[Cover Story] 새로운 금융 규칙을 위한 질문 6가지

페터 다우젠트 Peter Dausend 정치부 기자
마르크 시어리츠 Mark Schieritz 경제부 기자, 금융시장 전문

1. 은행은 왜 규제돼야 하나? 
은행을 규제할 새로운 법규정을 모두가 요구하고 있다. 은행을 규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1월17일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 위치한 한 은행 건물 앞에서 학생들이 은행 개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가경제에서 은행은 핵심적 역할을 한다. 은행은 대출을 통해 새로운 돈을 시중에 유통시키고, 금융거래를 통해 돈을 곳곳으로 퍼뜨리면서 기업·가계·국가에 자금을 제공한다. 이상적인 경우는 가장 큰 혜택을 창출하는 곳에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은행이 시중에 자금을 많이 유통시킬수록 국가경제가 성장하고 더 많은 부가 창출될 것이다. 이런 이론에 대해서는 학술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연구자료에 따르면,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금융부문이 선진화될수록 성장동력을 얻는다. 
1970년대 이후 은행부문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는 단순히 조직적 로비활동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정치인들의 확신과 주류 경제학 이론을 토대로 해 은행 규제가 완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의 빌 클린턴, 영국의 토니 블레어, 그리고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의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집권한 1990년대에 은행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회민주주의 정부는 은행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성장이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 구성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전세계는 금융산업의 힘이 막강해지면 국가경제에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금융위기에서 지켜봤다.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국 은행의 자산총액이 1964년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34%인 데 비해, 2007년에는 무려 500배에 달했다. 현재 영국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하게 된 이유는 영국 은행의 대출이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사업이 아닌,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터지기 일보 직전의 거품이 잔뜩 낀 부동산사업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재화의 재분배 과정에서 재분배 당사자, 즉 은행가들만 배를 불렸다. 은행가들은 은행 거래를 통해 돈을 번다. 은행은 고객의 거래로 상당한 수수료를 챙기고, 또한 수백만달러의 연봉까지 받는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은행 규제 법규가 제정된다면 이런 관행은 뿌리 뽑힐 것이다. 

2. 실행되고 있는 은행 규제 제도들은?
정계 역시 은행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은행 규제와 관련해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은 무엇이 있는가?
은행 규제를 위해 시작된 것이 몇 가지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2008년 11월 정상회담에서 금융부문 재편을 위한 47개 조항 계획을 결의했다. 비공식 국제위원회에서 결의된 사항이 각국의 법규정으로 제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소요되겠지만, 그래도 47개 조항 중에 적잖은 조항이 처리됐다.
은행은 과거보다 더 많은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즉, 은행은 과거보다 동일한 자본금으로 좀더 적은 신규 대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은행이 과거보다 자기자본을 넉넉히 가지고 있으므로 손실을 입더라도 그럭저럭 메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은행이 손실을 입어도 국민의 혈세에서 나온 구제금융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게 됐다. 또한 감독기관은 금융기관 감독을 강화했으며, 전세계적으로 조율과 협력을 통해 금융기관 감독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외에 독일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이 파산 은행과 관련해 좀더 간소한 청산 절차 법규정을 마련했다.
신규 법규정으로 은행 거래의 판도가 달라졌다. 직접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금융상품 거래를 줄이는 은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투자 부문에서 가장 큰 수입원은 기업, 일반고객 및 투자회사 등 고객의 위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와 고객용 금융솔루션 개발이 되었다. 고객용 금융솔루션에는 환율 변동에 대비한 금융상품이나 기업에 지속적으로 현금 수입을 보장하는 채권 발행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거래들조차 최근 도입된 규제책으로 인해 과거처럼 높은 수익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에서 은행 직원 수천 명이 해고됐다. 2011년 2분기에는 골드만삭스의 투자의 귀재들조차 손실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금융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부실 스캔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다른 분야에 비해 여전히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금융 분야가 그만큼 높은 가치 창출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금융 분야를 진정으로 규제할 법적 조치를 제정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 11월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은행 건물 앞에서 시위대가 “은행을 해체하라, 부를 재분배하라”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든 채 행진하고 있다.

3. 감독기관의 역할은 무엇인가?
감독기관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감독기관의 향후 조치가 가져올 결과는 무엇인가?
금융기관의 자기자본 비율을 크게 상향 조정해야 한다. 그러면 은행도 금융위기 전처럼 더 이상 무분별하게 대출해줄 수 없다. 특히 감독기관이 호경기에는 대출을 제한하고, 불경기에는 대출을 늘리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법규에 의거해 대출량의 제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화폐 재분배에 대한 은행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은행의 유가증권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거래세를 도입하거나 투명성과 경쟁을 강화해 특정 금융상품의 거래 금지, 혹은 과도한 은행 서비스 비용 부과를 금지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이 도입하는 법규정은 은행뿐만 아니라 헤지펀드와 주택저축은행, 보험회사 혹은 투자펀드 등 금융기관 전반에 적용돼야 한다.
이 법규정이 도입되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적잖은 은행가들이 주장한다.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금융부문은 서슬 퍼런 감독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사회의 부는 늘어났다. 국가가 금융부문의 영토를 확장할수록 국가는 더 많은 책임을 졌다. 환율을 예로 들어보자. 제2차 세계대전 뒤처럼 국가 간 화폐가 연동된다면, 금융산업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인 외환거래의 숨통이 끊길 것이다. 유럽화폐동맹의 위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참여국들이 조율된 경제정책을 운용할 때 고정환율 시스템은 가동될 수 있다.

4. 업무에 따른 은행 분리는 가능한가?
독일의 사회민주당 당수 지그마어 가브리엘이 요구하는 것처럼 은행을 분리할 필요가 있는가?
은행을 분리하자는 주장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사민당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당수가 말하는 은행 분리는, 일반고객 업무와 투자 업무를 분리하자는 것이다. 일반예금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반면, 자본시장에서 투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고객 예금과 투자는 완전히 분리된 영역이므로, 국가는 투자은행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둘 여유가 있다. 영국에서 이 모델이 완화된 형태로 실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공항 이후 도입된 이른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1933년 미국에서 은행 개혁과 투기 규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으로서, 핵심 내용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것이다)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결국 폐지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분리하는 것이 실제 도움이 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반은행도 투자를 잘못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수많은 독일 은행이 독일 통일 이후 옛 동독의 부동산에 투자한 뒤 실제로 큰 손실을 입기도 했다. 상업은행과 거래하는 투자은행이라면 비교적 소규모라도 파산할 경우 전세계 금융 시스템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
파산과 동시에 전세계의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리먼브러더스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고객 예금도 없었다. 즉, 앞으로도 국가가 어쩔 수 없이 순수 투자은행에 구제금융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동시에 전세계 다양한 시장 간의 변동에 좀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겸하는 은행만의 고유한 장점이 사라질 것이다.


지난 11월16일 한 시위자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뱅크오브아메리카 지사를 점거한 뒤 자신의 요구사항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다.

5. 은행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은행 비판론자들은 ‘은행가들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지적한다. 은행가들은 실제로 그렇게 막강한가?
은행들은 조직을 잘 갖추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최고경영자(CEO)가 협회장으로 있는 국제금융협회(IIF)는 국제적으로 금융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외에 유럽금융협회를 비롯해 국가별 금융협회도 별도로 있다. 채권 발행, 기업 민영화, 혹은 지금처럼 구제금융을 할 때마다 정부는 은행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자본시장이 운용하는 연금기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있는 금융산업은 이런 영향력을 도입하려는 법규정 완화에도 예외 없이 끼고 있다. 하지만 은행조차 규제 강화는 막을 수 없다. 로비스트의 힘도 로비 상대인 정치인이 허용하는 정도에서 발휘될 뿐이다. 현 시점에서는 ‘친(親)금융 정치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하튼 현재로서는 정치가 은행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정치에 끌려다닌다는 데 대다수 은행가들이 공감할 것이다.
2008년과는 달리 2011년의 재정위기는 은행의 무분별한 거래 관행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기 때문에, 정계는 2008년만큼 금융산업에 분노하지 않는다. 현재 은행은 투기성 투자 때문이 아니라, 국채를 과도하게 보유하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금융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시위에 편승해 정치는 최대한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다. 정계가 금융자본주의 반대 진영에 서 있는 것이 설정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계가 틀린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은행의 규제 법안 논의는 정계뿐 아니라 시민 사이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소기의 목적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 뉴욕·프랑크푸르트 등 전세계 각지의 점령시위는 그동안 달라진 사회적 의식을 여실히 표출하고 있다. 시민들은 금융자본주의 반대시위를 통해 은행의 저항 따위는 무시하라고 정계를 압박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8년만 해도 금융상품이 세금을 피해 다른 국가로 옮겨갈 위험이 있으므로 금융거래세를 전세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3년 뒤인 현재 메르켈 총리는 유럽과 유로존에서의 금융거래세 도입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당수의 은행 분리 계획이 기독교사회당에서도 두루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독일 국민의 분노가 커져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독일 정계는 금융산업 규제를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슈화할 생각이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은행 분리를 차근차근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6. 각국 정치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은행 규제는 각국의 법률과 국제적 공조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를 실행하는 이들이 바로 각국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은행의 안정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유럽의 정치권은 현재 여유가 없다. 국제적으로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유럽 내부에서는 화폐동맹 핵심 국가들의 안정성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은행은 해결책의 일부분이다. 은행들이 피치 못하게 보유하고 있는 남유럽 국가 국채의 지속적인 감가상각을 감내하려면, 은행들은 더 많은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반면 금융기관은 그리스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합의된 그리스 부채의 21%를 포기하는 대신 30~50%를 포기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그리스 부채 상환 포기 비율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반면, 프랑스인들은 이에 격렬하게 반대한다. 그리스 부채의 상환을 더 많이 포기할 경우, 재정위기가 악화되는 것은 물론 남유럽에 대거 투자한 프랑스 은행들에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은행에 구제금융을 수혈해야 할 경우, 이미 경고를 받은 것처럼 프랑스의 최고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 프랑스 정부에 국가 신용등급 강등은 정치적 대재앙이 될 것이다. 신용등급이 높고 자금 지원 여력이 있는 국가들을 버팀목으로 하는 유럽의 구제금융 지원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Die Zeit·번역 김태영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