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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8일 수요일

피해자 쪽박 차도 은행은 안전


이글은 시사인 2012-03-28일자 기사 '피해자 쪽박 차도 은행은 안전'을 퍼왔습니다.

중소기업 ㄱ사는 1개월 뒤 해외 업체로부터 수출대금 100만 달러를 받을 예정이다. 그러나 고민이다.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고 있기 때문. 현재 환율(1달러당 940원으로 가정할 경우)에서 100만 달러는 9억4000만원이지만 한 달 뒤에는 9억1000만원(1달러당 910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헤지(hedge:방어)’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은행과 ‘선물환 계약’을 하는 것이다. 한 달 뒤 환율이 어떻게 변동하든, 은행이 ㄱ사의 100만 달러를 예컨대 9억3000만원(1달러당 930원)에 사도록 계약하면 된다. 기업이 ‘일정한 규모의 달러화를 일정한 가격으로 은행에 팔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매입한 것이다. ㄱ사는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위험 중 일부(예컨대 920원으로 환율 하락)를 은행으로 떠넘긴 것이고, 그 대가로 일정한 수수료를 지급한다.

키코는 이런 선물환 계약을 변형한 상품이다. 예컨대 은행 직원이 ㄱ사로 찾아와 달러당 940원을 ‘약정 환율’로 보장해주겠다고 한다. 풋옵션을 주겠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에는 복잡한 조건들이 붙어 있다. 왼쪽 그림을 보면, 환율이 달러당 900~940원인 경우에만, ㄱ사는 은행에 달러당 940원으로 100만 달러를 팔 수 있다. 한 달 뒤 환율이 900원이라도 키코 계약자인 ㄱ사가 풋옵션을 행사하면 100만 달러로 9억원이 아니라 9억4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키코 덕분에 4000만원이라는 수익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키코 계약은 한 달 뒤의 실제 환율이 낮을수록 기업이 이익을 보고 은행은 손해를 보는 구조다. 그런데 은행의 손실에는 한계가 설정되어 있다. 만약 1달러가 녹아웃(Knock-Out) 환율인 900원 이하로 떨어지면 키코 계약이 소멸되기 때문이다.

환율이 940~960원에서는, 실제 환율이 약정 환율보다 높으므로 기업이 굳이 풋옵션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환율이 녹인(Knock-In) 지점인 960원을 넘어서는 순간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계약금액인 100만 달러의 2배인 200만 달러를 약정 환율인 940원으로 은행에 인도해야 한다. 키코 계약에는, 은행이 ‘일정한 규모의 달러를 일정한 환율로 기업으로부터 살 수 있는 권리(콜옵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업은 달러당 960원(실제 환율)으로 200만 달러(19억2000만원)를 사서 약정 환율인 달러당 940원(18억8000만원)으로 은행에 팔아야 한다. 기업엔 당장 4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더욱이 키코 계약은 환율이 내릴 때와 달리 오를 때는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환율이 1000원이 되면, 기업의 손실은 1억2000만원, 1500원인 경우는 11억2000만원으로 올라간다. 결국 기업은 수수료를 내지 않는 대신 엄청난 환율 위험을 떠맡은 것이다.

마침내 드러난 ‘키코’의 진실


이글은 시사인 2012-03-28일자 기사 '마침내 드러난 ‘키코’의 진실'을 퍼왔습니다.
700여 개 중소기업이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 궤멸적 타격을 입은 지 4년이 지났다.  검찰의 의뢰로 미국 금융당국이 보내온 키코 사건 의견서를 입수했다. 이들은 ‘키코는 기업을 기망한 사기’라고 지적

1990년대 초, 미국 오하이오 주에 ‘깁슨 그리팅스(Gibson Greetings)’라는 카드 및 포장지 제조업체가 있었다. 깁슨 그리팅스 경영진은 당시 5000만 달러를 고정금리 9%대로 빌린 상태였는데, 금리인하 추세 때문에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변동금리라면 이자 부담이 확 줄어들 텐데!’

그때 접근해온 것이 ‘뱅커스 트러스트(Bankers Trust)’. 새로운 파생금융상품들을 잇따라 내놓아 혁신 붐을 일으킨 금융업체였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금리 스와프’를 제안했다. 예컨대 깁슨 그리팅스와 반대로, 변동금리로 대출했으나 이후금리인상을 예측하는 업체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업체와 ‘이자 지불 조건’을 바꾸면 된다는 것. 깁슨 그리팅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자사의 고정금리를 변동금리로 바꿨다. 이는 ‘금리인하’에 ‘베팅’한 것이었고, 9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창출했다.

“녀석들은 그게 뭔지도 모를 거야”

깁슨 그리팅스는 이후 뱅커스 트러스트가 내놓는 각종 기기묘묘한 신용파생상품 계약을 29건이나 체결한다. 그중에는 고정금리 대신 ‘시장금리의 제곱을 6으로 나눈 수치(금리가 3%인 경우, 3을 제곱한 다음 6으로 나눈 1.5%)’로 이자를 지급하는 계약도 있었다. 금리가 내리면 ‘대박’이지만, 조금만 올라도 ‘쪽박’이다. 문제는 금리가 계속 인상됐고, 깁슨 그리팅스의 손실이 기하급수로 폭증했다는 것. 그러나 파생상품 계약이 워낙 복잡하게 설계되어 깁슨 그리팅스는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몰랐다. 더욱이 금융자문사 구실을 하는 뱅커스 트러스트는 손실 규모를 실제의 절반 이하로 알려주고 ‘이 정도면 괜찮다’며 관련 파생상품을 계속 깁슨 그리팅스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뱅커스 트러스트의 간부들이 “깁슨 그리팅스 녀석들은 지들이 계약한 상품이 뭔지도 모를걸”이라며 킥킥 댄 것이 녹취되어 폭로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3년쯤 되면 ‘무지한’ 깁슨 그리팅스 쪽도 금융 손실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인 1750만 달러까지 올라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깁슨 그리팅스는 1994년 뱅커스 트러스트를 사기 및 갈취 혐의로 고소한다. 당시 뱅커스 트러스트는 P&G 등 예닐곱 기업으로부터 비슷한 내용으로 고소된 상황이었다. 미국 금융당국은 뱅커스 트러스트에 1000만 달러 규모의 제재금을 부과했다. 이처럼 상황이 기울자 뱅커스 트러스트는 깁슨 그리팅스로부터 받아야 할 2000만 달러 중 600만 달러만 받고, P&G에도 손실액의 83%인 1억5000만 달러를 배상했다. 그러나 이 사건들로 추락한 뱅커스 트러스트의 신뢰도는 회복되지 않았다. 1998년 도이체방크로 인수되면서 이 회사는 역사에서 사라진다.

‘뱅커스 트러스트 대 깁슨 그리팅스’ 사건이 십수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한국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2007~2008년 수출 중소기업들에 집중적으로 판매한 환율 관련 신용파생상품 키코(Knock-In Knock-Out, 18쪽 상자 기사 참조) 때문이다. 키코는 2005년 외국계 금융기관인 한국씨티은행이 제일 먼저 도입한 뒤 은행권 전체로 번졌다. 2009년 10월 송영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키코 마진 중 외국계 은행이 챙긴 비중이 72%에 달한다. 이런 와중에 700여 중소기업이 은행과 키코 계약을 맺었다가 환율(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그 손실액은 3조~4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200여 중소기업이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을 냈다. 그러나 2010년까지 마무리된 1심(지방법원)에서는 대다수 기업이 패소했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기업들은 은행을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수사를 벌이던 검찰(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은 키코 사건과 ‘뱅커스 트러스트 대 깁슨 그리팅스’ 간의 유사점을 발견해낸다. 두 사건 모두, 금융기관이 복잡한 금융상품을 고객(기업)에 팔면서 관련 정보를 은폐했다. 또한 고객 기업들은 자사가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있는지도 몰랐다.

검찰은 2010년 말, 주미 한국 대사관을 통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증권감독원(SEC) 등 미국 금융감독 당국에 키코 관련 사안들을 질의했다. 이 최근 입수한 문건은, 미국의 금융감독 기관들이 답변한 내용을 주한 미국 대사관이 정리해서 다시 검찰로 보낸 것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키코 사건은 ‘뱅커스 트러스트 대 깁슨 그리팅스 사건’과 매우 유사하며, 파생상품 거래 시 우월한 정보를 지닌 계약 당사자가 상대방 당사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숨기거나 잘못 제공한 것은 상대방을 기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키코’는 사기 사건으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그동안 키코 관련 재판에 나온 증거들을 살펴보면, 은행과 기업이 정상적인 시장거래를 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중소기업에게 은행은 진정한 의미의 ‘갑’이다. 이런 은행이 2007~ 2008년 ‘환율이 하락 추세’라며 키코를 사라고 끈덕지게 중소기업을 압박했다. 2008년 키코 공청회 당시 민주당 김동철 의원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20개월 사이, 6개 시중은행 임원들은 중소기업 2453곳을 상대로 1만800번이나 방문해 키코 계약을 권유했다. 업체당 4.4회다. 이와 함께 엄청난 홍보비를 들여 해외연수, 골프 여행, 세미나에까지 중소기업을 끌어들였다. 

3000만원짜리 물건 6000만원에 산 셈

그러나 은행 측은 키코 때문에 기업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정보는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뱅커스 트러스트는 깁슨 그리팅스가 투자한 상품의 손실 규모를 크게 줄여서 알려줬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이 정도의 정보 제공도 삼갔다. 2008년 3월, 키코 계약자인 ㅅ사는 SC제일은행이 보낸 월별 보고서 중 ‘옵션 평가액’이 마이너스로 표기된 것을 보고 놀랐다. ㅅ사의 부장이 SC제일의 담당 직원에게 전화했는데, 답변은 이랬다. “알려고 하실 필요도 없어요. 막말로 얘기해서 옵션 평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물어보실 필요도 없어요.” ㅅ사 부장이 “‘위’에서 궁금해한다”라고 했더니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말씀을 드려도 이해 못하세요”라고 했다. 말하자면 SC제일은 키코가 중소기업의 이해가 미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상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이너스 옵션 평가액’이란 것이 기업의 손실을 의미한다는 것조차 설명해주지 않았다.


ⓒ시사IN 윤무영 검찰의 키코 합법성 여부 질의에 대해 미국 금융당국이 보내온 답변서.

더욱이 은행들은 키코가 ‘제로 코스트’ 상품, 즉 수수료를 낼 필요 없는 ‘환헤지’ 계약이라고 선전했다. 심지어 ‘우수 고객에 대한 특별 서비스’라고 너스레를 떠는 은행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은행이 키코의 복잡한 구조 속에 수수료를 숨겨 받아냈다는 것이다. 키코 계약에서, 기업은 ‘일정한 환율 범위 내에서 일정한 규모의 달러화를 일정한 가격으로’ 은행에 팔 수 있다. 즉, ‘파는 권리(풋옵션)’를 은행으로부터 산 것이다. 그 대신 중소기업들은 ‘환율이 일정한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 일정한 규모의 달러화를 일정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은행에 팔았다. 그러니까 기업은 풋옵션을 사고 콜옵션을 팔았으며, 은행은 풋옵션을 팔고 콜옵션을 샀다. 그리고 이런 계약의 설계자인 은행은 이 풋옵션과 콜옵션의 가격이 동일하다며 키코를 팔았다.

그러나 재판을 통해 은행 내부 자료를 보면, 풋옵션 가격보다 콜옵션 가격이 2~7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중소기업 ㅇ사와 신한은행 간 키코 거래의 경우, 기업이 산 풋옵션은 3000만원, 은행이 산 콜옵션은 6000만원으로 신한은행이 평가하고 있다. ㅇ기업 처지에서는 3000만원짜리 ‘물건’의 대가로 6000만원을 지급한 것이다. 그 차액인 3000만원이 은행의 수수료였던 셈이다. 그러나 계약서에는 풋옵션 가격은 500만원 올려 3500만원으로, 콜옵션 가격은 2500만원 내려 3500만원으로 표기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ㅇ기업에는 알리지 않았다.


ⓒ뉴시스 2010년 10월28일 서울 씨티은행 본점에서 키코(KIKO)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외국계 은행과의 거래 중단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봤듯이, 은행이 키코에 대해 기업에 알려준 정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환율이 일종의 기준선인 녹인(Knock-In)을 넘어가면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 월별 손실 규모는 ‘말해줘도 모른다’고 했다. 무엇보다 옵션의 가격을 숨겼다. 이 복잡한 상품을 설계한 장본인인 은행은 키코에 대한 ‘무지’를 악용해 중소기업을 철저히 농락했다. 한국 법정은 이를 정당한 시장거래로 간주해 은행에 면죄부를 발급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2010년 12월 주미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미국 상품선물위원회(CFTC)는, 은행이 옵션 가격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고객을 잘못 인도했다는 측면에서 키코 사태가 ‘뱅커스 트러스트 대 깁슨 그리팅스’ 사건과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기업들은 키코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손해 보는 거래를 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른 의무 사항(은행의 콜옵션)에 대해서도 자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CFTC는, 은행이 풋옵션과 콜옵션의 실제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다’고 중소기업에 설명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기망적 허위 설명이 될 수 있다.” 즉, 속였다는 뜻이다.

더욱이 물물교환(풋옵션 가격=콜옵션 가격)의 경우, 누구든 자신이 받는 물건(중소기업 처지에서는 풋옵션)보다 내놓아야 하는 물건(콜옵션)이 훨씬 비싸다면 거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행이 풋옵션과 콜옵션의 가격 차이를 알리지 않고 수수료를 숨긴 이유는, 결국 중소기업을 키코 계약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사기적 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CFTC 간부는 말했다.


미국 선물거래위원회, “거짓된 설명은 사기”

이에 비해 한국 법원은 은행 측의 수수료 은폐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은행이 키코 같은 상품을 개발해 내놓은 이상 이에 투입된 비용과 일정한 이윤을 보장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 그렇다면 비록 옵션 가격을 조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비용과 이윤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CFTC 역시 인정한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국내 은행들이 고객에게 이런 사정을 알리지 않아 중소기업들이 거래의 가장 중요한 조건(가격)을 모른 채 키코로 끌려 들어갔다는 것이다. 더욱이 CFTC는 옵션 가격에 반영된 은행의 이윤에 대해 “합리적이어야 하며, 과대해서는 안 된다. 키코 사건에서, 2배 내지 7배 이상의 가치 차이는 과다한 것이며 합리적이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이 CFTC에 이어 2011년 1월5일 면담한 미국 증권감독원 관계자 역시 “(풋옵션과 콜옵션에서) 2배 이상의 가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라고 말했다. “거짓된 설명과 부정직으로 인해 거래가 성사되었다면 이는 사기를 구성한다”라는 견해다. 고객 기업들이 콜옵션 가격이 풋옵션 가격보다 2배 이상 높다는 것을 알았다면 거래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증권감독원은, 키코에 무지한 고객 기업에 대해 “은행은 공개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공개는 “정직하고 완전하며 모든 것을 다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국내 중소기업에게 키코는 ‘환헤지’ 상품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키코 유형의 거래는 고도로 노련하고 환율이 어떻게 변동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진 고객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노련하지 못한 고객에게는 위험한 상품이다. (우리라면) 이런 유형의 거래가 합리적인지 조사에 착수할 것이다.”

키코 사태의 주범이 금융위기라고?

검찰은 질의서를 미국에 보낼 무렵 씨티, SC제일, 외환, 신한을 포함한 시중 7개 은행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해놓았다. 은행들이 키코라는 상품을 어떤 의도에서 만들었는지 파악하려면 내부 서류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검찰은 상당히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 12월 초 법원은 ‘압수수색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모두 기각해버린다. ‘수사상 필요성’만 소명하면 되는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불평이 검찰에서 나왔다. 6개월쯤 뒤인 2011년 5월에는 키코 수사를 이끌며 ‘은행 기소’를 주장했던 박 아무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가 사의를 밝혔다가 다른 부서로 전보 조처된다. 결국 그는 검찰을 떠난다. 이에 따라 검찰 상층부와 수사팀 사이에 은행 기소를 둘러싸고 갈등이 심각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2011년 7월, 검찰은 키코를 판매한 11개 은행을 모두 무혐의 처분한다. “기업이 손실을 본 것은 금융위기에 따른 급격한 환율 변동 때문이지 은행 측이 상품설계를 불평등하게 했거나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는 이유에서다. 애써 입수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와 증권감독원의 견해는 검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직 나쁜 것은 천재지변과도 같은 금융위기라는 것이다.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130개사가 고등법원에서 손해배상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이미 항소심에서 패소한 12개사는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한 상태다.

2012년 3월 4일 일요일

‘키코의 눈물’ 뒤 김앤장의 미소가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3-01일자 기사 '‘키코의 눈물’ 뒤 김앤장의 미소가'를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Ⅱ] 재벌 닮은 김앤장의 문어발식 확장 - ② 중소기업 상대 소송까지 도맡아

중소기업 부도 사태 부른 키코 사건 106건 중 78건 수임… 은행에 승리 안기며 거대 수임료 챙겨
키코 사태에서 김앤장의 활약은 대단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약관 심사에서, 금융감독원의 은행에 대한 징계, 그리고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 이르기까지 김앤장이 관여하지 않은 곳은 없다.


키코 사태는 중소기업인들에게 다시 한번 약자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 키코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인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이제는 모두에게 잊힌 ‘키코’(KIKO), 조금 안다는 사람에게 설명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파생상품 이름이다. 2008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금융위기 때 수많은 중소기업을 사지로 내몬 ‘저승사자’의 이름이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피해 기업만 234개 업체에, 피해 액수는 3조원이 넘는다.
키코는 ‘통화옵션 계약 상품’이다. 통화옵션은 미래 특정 시점에 특정한 통화를 미리 약정한 가격으로 매입 또는 매도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매입할 수 있는 권리는 ‘콜옵션’(Call Option), 매도할 수 있는 권리는 ‘풋옵션’(Put Option)이라 부른다.
키코는 회사와 은행이 약정 환율과 환율 변동의 상한선(Knock-In)과 하한선(Knock-Out)을 정해놓고 계약 기간 중에 환율이 하한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한, 상한선에 해당하는 환율로 달러화를 계약 금액만큼 매도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문제는 이 구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만약 환율이 계약 때 약정한 하한선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즉, 일정한 환율을 터치하는 순간 계약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 반면 환율이 약정한 상한선 위로 한 번이라도 올라가게 되면 회사는 계약 금액의 2~5배를 시장 가격보다 낮은 환율인 계약 환율로 매도하게 되어 회사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제로 코스트’라는 말에 속은 중소기업들
결국 은행은 계약에 따라 환율이 상승하면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반면, 은행과 계약한 기업은 환율이 약정한 환율 밑으로 하락하면 계약 자체가 해지되기 때문에 이익금을 챙길 수 없게 된다. 피해 입은 수출 중소기업들은 바로 이 부분을 계약 당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단순한 설명 의무 위반’이 아니라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수출 중소기업들은 왜 키코에 가입했을까? 수출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손익 차이가 많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통화옵션 상품을 계약해왔는데, 그중 하나가 키코다.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가입한 상품이 아니라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가입한 상품이다. 파생상품을 트레이딩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수출 중소기업들은 일종의 적금에 가입하듯이 키코에 가입한 것이다.
2007년부터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수출 중소기업은 환헤지의 필요성이 점점 높아갔다. 은행은 이런 기업의 어려움을 노리고 키코를 대량 판매했다.
특히 ‘제로 코스트’(Zero Cost)는 여전히 논란의 한가운데 있다. 제로 코스트의 본래 의미는 계약 체결에 드는 수수료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파생상품학회 회장을 지낸 오세경 건국대 교수(경영학)는 “환위험을 헤지하려면 비용이 드는데 은행들은 키코 상품이 비용이 들지 않는 제로 코스트라고 소개했다”면서 “그러나 사실상 제로 코스트도 아니었고, 헤지할 수 있는 구간도 지나치게 좁았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키코 상품은 헤지 상품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중소기업들에 키코 상품을 판매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키코는 헤지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인데 헤지용으로 팔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해석은 달랐다. 법원은 “제로 코스트는 은행이 취하는 콜옵션과 기업이 취하는 풋옵션의 이론가가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라, 은행이 별도의 프리미엄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은행이 영리기업인 이상 필요 비용과 이윤을 수취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은행감독 업무 시행규칙 등에 의하면 파생상품 거래 당사자인 은행은 수수료의 구체적 규모를 공개할 의무가 없으므로, 은행이 중소기업을 기망했거나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 착오를 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쉽게 말해서 은행은 수수료의 규모를 밝힐 법적 의무가 없고, 보통 은행과 거래할 때는 수수료가 발생하기 때문에 프리미엄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해석은 다르다. 검찰은 은행의 사기 혐의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리면서도, “은행이 취득하는 콜옵션의 이론가를 기업이 취득하는 풋옵션의 이론가에 비해 크게 설계해 그 차액 상당액을 은행이 마진으로 수취하는 구조로 되어 있음에도 제로 코스트로 표시해, 마치 옵션 거래의 대가 지급이 없는 것처럼 오인할 수 있어 기업에 일부 불리하게 보인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사기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키코에 가입한 기업에 불리한 구조라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그나마 법원보다 한결 엄격한 해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두 기관은 유명무실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견해가 다르다. 오영중 변호사(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금융 파생상품은 한번 잘못 가입하면, 중소기업은 바로 파산으로 갈 수 있어서 일정 규모 이하 기업에는 위험과 이득, 발생할 수 있는 사건과 그에 대한 손해를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키코 자체가 위험한 상품이다. 키코 상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너무 쉽게 팔았다”고 지적했다.


키코 피해기업 대책위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대책위 사무실에서 금융감독원의 키코 판매 은행에 대한 무혐의 처분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디에
독일연방대법원은 지난해 3월 이른바 ‘CMS 스프레드 래더 스와프 계약’ 사건에서 “CMS 스프레드 래더 스와프 계약처럼 복잡한 구조로 된 금융상품의 경우, 은행은 이와 같은 계약을 체결하는 고객이 높은 위험을 감내할 용의가 있다는 전제에서 곧바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며 “고객의 투자 목표에 실제로 부합하는 적합한 상품만 추천해야 하는 것이 투자 조언자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검찰은 키코와 비슷한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인도의 중앙수사국도 이런 은행들을 사기 등의 혐의를 적용해 수사했고, 이에 은행들은 피해 기업들과 합의를 추진했다. 일본 법원은 50%의 책임을 인정했다.
걸핏하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는 우리나라만 달랐다. 위험천만한 상품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은행에 대해 검찰·법원·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는 한결같이 관대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축소·은폐 수사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검찰은 파생상품의 원조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견을 조회했다. 그 결과, 키코가 ‘사기적 행위’라는 회신을 받아놓았음에도 이 문서를 감춰뒀다. ‘대외비’로 지정해놓고 수사 목록에서 누락했다.
수사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주임검사는 검찰 수뇌부와 네 차례 충돌 끝에 사표를 내고 검찰을 떠났다. ‘금융범죄 척결’을 강한 목소리로 외치던 한상대 검찰총장은 키코 사건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법원은 검찰보다 한술 더 떴다. 의욕적으로 수사하던 검찰의 힘을 빼버린 게 법원이다. 일반적으로 압수수색 영장은 구속영장과 달리 큰 문제가 없으면 발부해준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를 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압수수색은 수사의 출발선이고, 법원도 이같은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키코 사건에서는 달랐다. ‘자유 의사에 따른 계약이기 때문에’ ‘수사의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아서’ 등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버렸다. 키코 판매 과정과 키코 사태 이후 은행에서 벌어진 일을 알 수 있는 길을 원천봉쇄해버린 것이다. 수사의 필요성 때문에 압수수색을 하는데, 수사의 필요성 소명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주연 뺨 치는’ 조연이 등장한다. 바로 김앤장이다. 김앤장은 ‘로펌계의 삼성’으로 불린다. 부장판사·부장검사 출신의 쟁쟁한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법원과 검찰에 학연·지연 등으로 얽혀 있다. 그리고 공정위, 금감원, 국세청 등의 전직 고위 관료들도 김앤장에 대거 포진해 있다. 김앤장에 잠시 둥지를 틀었다가 다시 관직으로 복귀하기도 한다. 힘없는 전직 관료가 결코 아니다.
키코 사태에서 김앤장의 활약은 대단했다. 공정위의 약관 심사에서, 금감원의 은행에 대한 징계, 그리고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 이르기까지 김앤장이 관여하지 않은 곳은 없다.
김앤장은 얼마를 벌었을까
2008년 11월3일부터 2010년까지 제기된 106건의 키코 소송 가운데 김앤장은 78건의 소송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홍성준 사무국장은 지난 2월6일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앞 집회에서 “언제나 그렇듯 키코 소송에서도 김앤장과 맞닥뜨렸다”며 “전관과 전직 고위 관료가 즐비한 김앤장은 숨어 있는 권력, 마피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0년 11월29일 한날한시에 100여 개 기업이 모두 소송에서 지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는 김앤장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정황과 심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키코 사태 덕분에 김앤장이 막대한 수임료를 벌어들인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그 액수는 김앤장만 알고 있겠지만.

글 권순욱  정치경제부장 kwonsw8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