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사설]‘물대포 진압’ 겁박 말고 집회·시위부터 보장하라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23일자 사설 '‘물대포 진압’ 겁박 말고 집회·시위부터 보장하라'를 퍼왔습니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곧바로 물대포를 사용해 진압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지난 21일 이 같은 내용의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 대응 법 집행력 강화 방안’을 전국 지방경찰청에 내려보내 도로 점거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도로 점거로 인한 시민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선에서 물대포 사용을 꺼리고 있어 법 조문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라고 주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국민의 집회·시위에 관한 권리는 무시하면서 엄격한 행정집행만 강조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물대포가 가장 안전한 진압장비라고 주장하지만 물대포는 사용이 엄격히 제한된 위험한 장비다. 경찰 지침에 따르면 물대포는 타인 또는 경찰관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가 있거나 공공시설·재산이 위험에 처해 있을 경우, 또 화재 진압 또는 분신 방지의 필요성 등이 있을 때에만 쓰도록 하고 있다. 고압의 물대포가 시위대에 직사되거나 최루액을 혼합해 쏠 때에는 상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한 진압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은 시민의 안전보다 법집행을 중시하겠다는 뜻이다. 시민들에게 다쳐도 책임지지 않겠다고 겁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찰은 이번 지침 외에도 시위에 대한 대응의 수위를 계속 높여왔다. 미국에서는 의원들도 법을 어기면 연행한다며 강경 대응으로 공권력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바람직한 시위 문화는 강경한 시위진압만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미국은 총기 사용이 허용된 나라여서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더구나 경찰은 2009년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 떨었지만 아직까지 별문제가 없다. 강경 일변도 대응은 오히려 과격 시위를 촉발하는 역작용을 부를 수도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권리는 국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동안 집회 및 시위를 신고제 대신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해 정당한 시위까지 막아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집회 장소는 물론 행진 거리, 차선 개수까지 자의적으로 정해놓고 이를 어기면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이 이처럼 법률이 아닌 자체 규정으로 집회 및 시위를 제한하는 것은 월권이다. 경찰은 자의적인 기준에 따른 엄격한 직무집행만 강조할 게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부터 존중해야 한다. 선후가 뒤바뀐 물대포 사용 지침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

[사설]‘4대강 새물결맞이’ 또 다른 왜곡의 시작인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23일자 사설 '[사설]‘4대강 새물결맞이’ 또 다른 왜곡의 시작인가'를 퍼왔습니다.
엊그제 한강의 이포보와 금강의 공주보 등 4개보 개방 행사가 열렸다. ‘4대강 새물결맞이’로 명명된 이날 행사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대강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역마다 학생과 주민, 공무원이 동원됐고, 공영방송인 KBS는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과 축하공연을 생중계했다. 연예인까지 동원하는 등 4곳의 행사에 40억원가량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4대강 새물결맞이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행사 동원령이 내려지는 등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공주보의 경우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의 협조 요청을 받은 공주시가 공무원과 학생, 주민 1만명가량을 동원했다. 공주시교육청은 학생의 경우 3시간짜리 자원봉사시간까지 부여했다고 한다. 이포보는 버스 100여대가 동원돼 3000여명을 수송했고, 광주의 승촌보는 익산국토청이 광주시와 나주시에 각각 2500명과 500명의 인원을 할당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동원 문화와 다를 바 없다. 일부 지역에선 기념품 배분을 둘러싼 소동이 일어났고, 대다수 주민들은 구경꾼에 머물렀다. 누구를 위한 축제이고, 4대강 사업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4대강 죽이기라는 각계의 비판에도 불구, 살리기라고 강변해온 이 대통령의 주장처럼 공허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벌써 현실화 조짐을 보이는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이다. 친수구역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와 난개발, 지천·지류 공사에 투입되는 막대한 추가 공사비 등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4대강 둔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골프장 건설 사업은 환경파괴의 전조 중 하나로 보인다. 정부가 공사비용 회수와 환경보호 차원에서 4대강 주변에 친수 생태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돈 안되는 투자’를 할 사람은 없다. 4대강사업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새물결맞이 행사를 “‘그랜드 오픈(Open)’이 아니라 ‘그랜드 데스(Death)’”라고 한 비판이 가슴에 와닿는다.

4대강 사업은 앞으로 정부의 대처 방식에 따라 새로운 논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단언컨대 4대강 새물결맞이 행사처럼 과도한 홍보로 일관한다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공산이 크다. 역대정권의 경험이 말해주듯 어떤 국책사업이든 왜곡과 과장에만 몰두할 경우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돼 있다. 홍수피해를 막겠다며 4대강에 올인해놓고 다시 홍수피해를 들어 지천·지류를 정비하겠다는 정부다. 지금은 사업 결과를 냉정히 뜯어보고, 잘못을 따지며, 추가적인 낭비를 막는 길을 찾는 게 옳지 않은가.

'3포'의 나라, 선거혁명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1-10-23일자 기사 ''3포'의 나라, 선거혁명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퍼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80년 '서울의 봄' 시기 우리 국민은 민주화를 고대했다. 박정희의 사망으로 인해 무려 18년간이나 지속되었던 박정희 독재가 마침내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면서 쿠데타를 감행한 신군부세력은 민주화를 원하는 국민의 이 같은 기대를 저버렸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억압 통치의 몇 년 동안 민주화란 요원한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징후는 1985년 2.12 총선을 통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선명 야당으로 등장한 신민당이 관제 야당인 민한당을 누르고 제1 야당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화국면을 계기로 재야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이 급속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국에 걸쳐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마침내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체제를 민주화시키기에 이르렀다.

2011년의 이 시점에서 새삼 1980년대의 과거 역사를 언급하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전환기에 이어 2010년 작년의 6.2 지방선거로부터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가 있을 내년 2012년까지의 기간이 우리의 현대사에서 또 한 번의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시간만 흘렀다고 역사적 전환이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서 20〜30년의 기간은 우리 사회에서 역사적 전환을 야기하는 총체적 모순이 축적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1960년 초 5.16 군사쿠데타 이후 약 4반세기 이상에 걸친 군부독재는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압력을 증대시켰고, 그것은 마침내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으로 분출되었다. 그렇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 4반세기가 되는 2012년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통해 그 동안 누적되었던 우리 사회의 모순이 분출될 가능성이 매우 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한 번의 역사적 전환의 계기가 될 공산이 크다.

민주화 이후 축적된 우리 사회의 모순

1987년 민주화 당시 나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의 헌신과 이에 호응하여 민주화의 항쟁에 동참한 국민들의 열기로 그 어렵던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 사회의 미래 전망은 더없이 밝아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전망이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 발전 이상으로 수많은 문제점들이 노정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더불어 현재의 체제로서는 그것을 더 이상 치유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더욱 확대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도 치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기득권층이 아닌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서민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현재 체제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내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사회적 양극화이다. 이미 박정희 시기부터 구축되었던 지역적 양극화에 더해 민주화 이후, 특히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80 대 20의 극히 양극화된 사회로 변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사태를 더욱 비관케 하는 것은 지역주의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는 우리 정치가 이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패권적 영남지역주의에 의지하여 그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보수 기득권층은 사회 양극화의 문제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탈냉전과 더불어 경제 교류와 평화 구축을 통해 변화되었어야 할 남북관계 역시 보수세력의 강력한 영향으로 인해 과거 냉전시대의 수준으로 되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혁명의 일환으로서의 서울시장 선거

사회의 모순이 축적되면 그것은 변화의 압력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일정한 계기를 통해 분출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분출은 곧 역사적 전환의 계기로서 작용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2010년 작년의 6.2지방선거로부터 2012년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의 과정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누적된 우리 사회의 모순이 분출할 수 있는 계기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분출은 1987년과 같이 민주화 항쟁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선거혁명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권위주의체제에서는 선거가 별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민주화된 상황에서 선거는 누적된 사회적 모순이 분출할 수 있는 중요한 출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0.26서울시장 선거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나? 그것은 작년의 6.2지방선거에서부터 내년의 국회의원 총선과 대통령선거로 이어지는 일련의 선거혁명 과정에서 치러진다는 점에서 그 선거혁명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범야권의 박원순 후보가 TV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10.26서울시장 선거가 2010〜2012년 선거혁명의 한 과정이라면, 그것은 현실 안주가 아니라 변화를 가져오는 선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것은 무엇보다도 복지시대 진입을 위한 선거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작년의 6.2 지방선거는 무상급식 등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인 복지 논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선거 결과는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복지를 원하고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에 극력으로 반발했고 급기야는 무상급식 반대의 주민투표소동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서울 시민들은 오세훈 시장을 사퇴시킴으로써 그들의 복지 요구를 분명히 했다. 그런 점에서 오세훈 시장의 사퇴에 따라 치러지는 10.26서울시장 선거는 복지시대 진입을 위한 또 한 번의 중요한 시험대이자, 그 시험대의 최종적인 판가름이 될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다.

10.26 서울시장 선거가 복지시대 진입을 위한 선거혁명의 일환이라면 그 주체는 누구여야 하나?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을 제외한 모두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층과 사회적 약자층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젊은층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사회 양극화의 최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3포(연애, 결혼,출산의 포기)세대'라는 자조적인 말이 상징하듯, 현재의 상황에서 젊은층의 미래는 온통 회색빛이다. 따라서 이 같은 미래 전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선거혁명의 집단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의 약자층이 적극 나서야 한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약자층은 기득권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거 불참의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로서는 미래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그들의 삶을 향상시킬 미래의 변화는 적극적인 선거 참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4대강 재앙의 축포, 가증스런 MB어천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1-10-23일자 기사 '4대강 재앙의 축포, 가증스런 MB어천가'를 퍼왔습니다.
[윤재석의 '갑론을박'] "사대강(死大江) 준공식은 재앙 선포식"

음울했던 이포(梨浦) 가는 길

지난 22일 낮 경기도 양평을 거쳐 경기 여주로 가는 길은 늦은 가을 날씨답게 스산했다. 내비게이션에 나타난 외부 온도는 섭씨 14도. 보통의 경우 그 스산함은 삽상(颯爽)함으로 치환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사면(金沙面) 이포(梨浦)로 가는 연도에 늘어선 '4대강 새물결 맞이 행사'가 쓰여진 세로 펼침막과 띄엄띄엄 서 떨고 있는 의경들을 보니 갑자기 속에서 불이 났다.

그래도 겨우 참고 이포교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 나타난 거대한 보(洑). 4대강 입안자와 시공자들이 "날개를 편 백로와 알을 형상화해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선전하고 있는 이포보(梨浦洑)였다. 내 보기에 그 거대한 구조물은 마치 나 에나 나옴직한 기괴한 모습이었다.

오후 12시 45분. 오후 1시~6시로 예정됐다는 행사는 아직 준비 중인 듯 강 위엔 10여 척의 요트가 떠 있었고, 행사장인 듯한 둔치엔 대형 스크린과 간이의자가 천여 석 배치돼 있었다. 정말 가관인 것은 하류 쪽에서 볼 때, 왼쪽은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는 점이다. 정부 스스로 현재 93% 진행률로 두 달 있어야 완공된다고 밝힌 바 있다.

준공도 않고 식(式), 명백한 사기(詐欺)

그러고도 준공식이라는 이름으로 어제 한강 이포보를 비롯해 금강 공주보(충남 공주시), 영산강 승촌보(광주 남구), 낙동강 강정고령보 등 네 곳에서 이른바 4대강 새물결 맞이 행사가 동시에 진행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후 늦은 시간 이포보에 나타나 "대한민국의 4대강은 생태계를 더욱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그러한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민 여러분에게 이렇게 안전하고 행복한 생명의 강으로 돌려드리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오늘 저녁 정말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강을 그대로 두면 우리는 미래가 없다. 사람이 가꾸고 고치고 바로잡아야 미래가 있다"는 90년 전 도산 안창호 선생의 발언까지 끌어와 "안창호 선생의 꿈을 오늘 우리는 이뤄내고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 때의 강과 지금의 강을 동일시하는 시공 초월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 22일 오후 경기도 여주군에서 열린 4대강 새물결맞이 기념행사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4대강은 생태계를 더욱 보강하고 환경을 살리는 그러한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민 여러분에게 이렇게 안전하고 행복한 생명의 강으로 돌려드리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며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오늘 저녁 정말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연합

이 사기극을 입안자와 시행자 및 시공자들만 참석했다면 또 별 문제다. 강제동원 흔적까지 포착됐다. 국토해양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의 소행이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지난달 30일 광주광역시와 나주시에 관람객을 모아 달라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는 게 광주시 측의 증언이다. 할당된 인원은 광주 2500명, 나주 500명이다. 익산국토관리청은 어제 전세버스를 광주에 63대, 나주시에 10대 각각 배정했다. 그것뿐일까?

웬 홍보비는 그렇게 쓰나. 2008년 54억 원이었던 4대강 홍보비는, 작년 85억 원 올해는 95억 원으로 늘어났다. 연예인 축하공연ㆍ불꽃쇼 등 전시성 행사에 들어가는 혈세다. 중간 점검이나 자성을 위한 평가 마당은 어디에도 없다.

재앙, 벌써 시작됐다

기왕에 준공식이라고 했으니, 이 시점에서 4대강 살리기(기실 죽이기) 사업에 대해 찬찬히 복기해보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부는 22조 원을 단 2년 몇 개월 만에 쏟아부어, 이른바 4대강 살리기를 뚝딱 해치워 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본류를 냅다 파 제끼다 보니, 지천에서 역행침식(逆行浸蝕)이 심화된 것이다. 그렇게 나온 모래가 재퇴적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일단의 토목학자들의 실측에 따르면, 4대강 죽이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상주보 인근 병성천과 전두환 고향인 합천의 황강에서 30~40%, 함안보 인근에서도 20%의 모래 재퇴적이 발생한 것으로 관측됐다.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resilience)이 4대강 사업을 망치고(?) 있는 셈이다.

그건 자전거 페달 밟듯 지속적으로 강바닥을 준설해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여기에만 최소 연간 6000억~7000억 원이 들어간다. 이의 상세한 내용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언론의 'MB어천가'는 침이 마르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먼저 10월16일자 1면 톱 "메기가 침만 뱉어도 물 넘친다는 곳 올여름 엄청난 비 왔지만 멀쩡했다"를 보자.

기사는 4대강 사업의 핵심인 강바닥 준설과 16개 보 공사가 완공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주에 걸쳐 쟁점이 되고 있는 9개 지점을 심층 취재했다는 투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서 '첫 삽을 뜬 지 불과 2년 만에 완공을 앞둔 이 사업의 결과, 올여름 집중호우가 왔음에도 홍수 예방 효과를 확실히 입증했다'는 정부 측 주장을 앵무새처럼 뇌까리고 있다.

지식도 없이 앵무새 노릇하는 ·

올해 비가 많이 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26일 동안 전국 평균 642mm가 내렸다. 우리나라 강수량 100년 빈도 측정치에 따르면 하루 300~400mm를 호우라 한다. 따라서 올 여름 강수가 많았다는 건 체감일 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집중호우 빈도는 낮았고, 그것도 서부에 치중됐다.

홍수피해 예방효과 역시 마찬가지. 정부는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2006년 '에위니아' 때를 예로 들면서 홍수 예방 효과를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때 홍수 피해는 강원도 일원에 국한 됐고, 그것도 지천에서만 발생했다. 더욱이 올핸 그 흔한 태풍도 없었다.

보 건설로 인한 홍수 피해를 말한다면, 오히려 연천댐 붕괴를 예로 드는 게 정석이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 시절 만든 연천댐은 96년, 99년 두 차례나 붕괴돼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쓸데없는 보를 건설했을 때(그것이 비록 가동보라 할지라도) 얼마나 큰 재앙으로 휩쓸고 가는 지를 보여준 실증적 사례인 것이다.

MB어천가의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의 주필 배인준은 9월 7일자 자신의 기명칼럼 '이포보는 말한다'에서 이렇게 기술했다.

'공사가 90%쯤 끝나 있었는데, 완공되면 강변이 훌륭한 생활레저공간으로 탈바꿈할 것 같았다. 가로수 길은 잘 생긴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한 교목(喬木)과 수백만 그루의 키 작은 나무, 그리고 풀꽃이 어우러져 몇 년 뒤에는 명품이 되지 싶었다.

해마다 범람했던 지천이 본류 하상을 평균 3m 준설한 덕에 올여름엔 끄떡없었다고 한다. 지겹도록 비가 많이 왔지만 본류의 수위가 준설 전에 비해 2.6m 정도 낮아져 지천 물도 잘 빠졌던 것이다.'

강변에 수백만 그루의 나무, 그것도 메타세쿼이아(캘리포니아산 삼나무) 같은 걸 심는 건 그야말로 전시행정, 홍수를 부르는 자충수다. 호우가 내려 둔치 위로 물이 흐르면 거기에 심겨진 나무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고 범람을 부추기는 주범이 된다. 준설 찬사에 대한 반론은 앞에 설명했으니 넘어간다. 참고로 배인준은 1980년대 중반 당시 환경청(현 환경부)을 출입했다.

자전거 도로의 폐해 역시 나무심기와 유사하다. 게다가 호우 후 자전거 도로를 청소 정비하는 게 또 돈 들어가는 작업이다.

무시로 법(法) 무시하며 사업 강행

4대강 죽이기는 첫 단추부터 잘못 뀄다. 기축년 새해를 사흘 앞둔 2008년 12월 29일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만의 환경부 장관 등은 매서운 강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경북 안동 운흥동 영호대교 둔치에서 진행된 생태하천 조성사업 기공식에 참석하고 예천군청에 잠시 들른 뒤, 오후에는 전남 나주 영산대교 둔치에서 열린 같은 성격의 행사에 참석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두 탕을 뛴 이 행사는 모두 4대강 정비사업의 변칙 기공식 자리였다.

이른바 MB의 공약인 '한반도대운하' 사업이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자 편법으로 16개의 보를 만드는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다.

한데, 그 기공식은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 우선 사업비 500억 원을 넘는 국책사업이나 정부 돈이 3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사업이면 무조건 받아야 하는 경제타당성 조사를 지나쳤다. 그것보다 더 위중한 범법. 대규모 토건사업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환경정책기본법 상의 사전환경성 검토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렁뚱땅해버린 것이다. 위법 시 관계자가 실형과 벌금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엄격한 사전환경성 검토에 대해 국토부는 "실제 삽을 뜨는 공사는 사전환경성 협의가 끝나는 2009년 2∼3월쯤 시작할 예정이니 문제될 것 없다"고 발뺌했다. 나중에 보니 한 지점에서 사계절 영향평가를 해야 함에도 2계절만검토하고 넘어갔으니 할 말 다했다. 국토부와 환경부의 공모 혐의가 짙음은 불문가지.

고용 창출은커녕 돈먹는 하마 전락

경제유발 효과는 있었나?

당시 총리실은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19만개 일자리 창출, 23조원 규모의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당시 14조 원을 투입하겠다며 시작한 4대강 정비사업. 그렇게라도 해서 고용이 창출되고 경기가 회복된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과는? 이미 22조 원이 투입됐고, 4대강 죽이기로 망가진 본류와 지천을 원래대로 복구하려면 앞으로 또 얼마가 더 들어가야 할 지 모르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것이다.

실제로 공사현장은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불도저 일색이었다. 그것도 대부분 국내 도급10위권 이내, 즉 재벌기업 계열 건설사들 차지였다. 그 업체들이 11조 원 이상을 가져간 거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중견 건철업체와 지방 건성업체가 줄도산하는 판에. 아무튼 4대강 현장을 보고 중장비전문 학원 등록해 면허 후딱 따서 취업한 젊음이 몇몇을 빼고, 고용 창출은 글쎄?


▲한강 이포보 전경. 배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물가라는 뜻의 '이포'는 그 흉측한 구조물에 이름을 빼앗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연합

쑥대밭으로 변신한 금사면(金沙面) 이포(梨浦)

다시 어제의 이포리로 잠깐 돌아가서 이름 풀이를 해본다. 이포가 속한 금사면은 이름이 재미있다, 금사(金沙)다. 금모래가 즐비하다는 얘기다. 그만큼 모래톱이 널찍하고 물흐름도 유장하다는 얘기, 거기에 이포(梨浦)다. 조선시대 세곡(稅穀)과 물화(物貨)를 싣고 풀던 큰 나루터였으며, 늦봄이면 배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배나무 이(梨)자, 물가 포(浦)자, 그렇게 이포라고 불렸던 그곳. 이제 이포는 그 흉측한 구조물에 이름을 빼앗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좋은 대통령은 나쁜 정책 구사 안 해"

어제 그 괴물같은 미완성 이포보를 보고 아직도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가운데, 문득 이 한 마디가 생각난다.

"대형 토건 사업은 사전 환경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시간에 쫓겨 성급히 결론을 내리거나 공사 착공을 서둘러선 절대 안 된다. 좋은 대통령은 나쁜 정책을 구사하지 않는다."

3년 전 4월 서울대에서 열린 '한반도 대운하와 영향평가' 학술대회 특강 연사로 참석한 찰리 울프 박사(전 국제영향평가학회장)의 말이다.

* 다음은 '4대강 죽이기에 얽힌 비리 의혹'을 다룬다.



/윤재석 언론인

양화대교, 논란의 핵심은 운하 내 선박운항이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1-10-24일자 기사 ' 양화대교, 논란의 핵심은 운하 내 선박운항이다'를 퍼왔습니다.
양화대교는 뜨거운 논란중이다. ‘공사를 해라, 멈춰라, 휘었다, 위험하다, 무면허다’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정작 핵심 사안은 논쟁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논쟁의 핵심 사안을 나경원 후보는 요리조리 피해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바로 운하이다. 즉, 한강에 대형 선박을 띄울 것인가, 띄우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인 것이다.

한강, 4대강에서 가장 먼저 운하사업 추진 중

강에 운하를 만들기 위한 현 정권의 계획은 전면에서 혹은 배후에서 치밀하게 진행되어왔다. 2006년 당시 이명박 대선 후보가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걸고 나왔으며, 2008년 100만 촛불 이후 ‘국민이 원치 않는다면, 하지 않겠다’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포기선언을 했다. 하지만 PD수첩 ‘수심 6미터의 비밀’에서 보여주었듯이, 4대강에 운하를 만들겠다는 집착을 놓지 않고 있다.

반면, 4대강 구간에서 이미 운하공사가 시작된 곳이 있다. 바로 한강이다. 서해와 맞닿는 한강의 끝자락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배를 들여올 수 없다. 그래서 땅을 파서 한강을 서해와 잇는 것이 바로 경인운하 공사이다. 2002년 KDI(한국개발연구원)는 경인운하의 비용편익(B/C)을 0.81이라고 발표했었지만, MB취임이후 갑자기 1.07로 상승하여 공사가 재개되었다.

서해에서 김포까지 이어진 경인운하의 바톤을 서울에서 이어받는 사업이 바로 한강운하다. 운하라는 단어가 국민적 비호감으로 떠오르자 경인운하는 ‘경인아라뱃길’로 이름이 바뀌었고, 90년대부터 사용했던 한강운하라는 이름은 ‘서해뱃길’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했다. 이런 복잡한 꼼수때문에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본의 아니게 두 사업을 합쳐서 ‘서해아라뱃길’이라는 이상한 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강 40km구간은 4대강의 운하계획 중에서 유일하게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예산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이는 오세훈 전 시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충성맹세를 하기 위함이었다. 한강르네상스 사업 중 대부분이 2009년 9월 이전에 준공을 한 반면, 한강운하(서해뱃길) 사업만은 2011년 10월 준공을 목표로 시작했다. 전자는 본인의 성과로 남겨서 2010년 지방선거에 활용하고, 한강운하 사업은 경인운하와 함께 마무리해서 2012년 대선에 활용하시라는 헌정이었으리라.

ⓒ뉴시스 양화대교

용산까지 배들어 오려면 추가로 다리 두 개 더 뜯어야

한강운하는 경부운하 논란에서 제기되었던 경제성, 다리안정성, 환경성 등의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양화대교 논란이다. 서울시가 발주한 연구용역보고서에 의하면, 선박을 10000번 운항했을 때 양화대교는 2번, 서강대교와 마포대교는 1번 충돌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서울시가 추정한 수요에 대입해보면 1년에 약 1.6회의 붕괴사고 나게 된다.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의 간격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그중 기둥간격이 가장 좁은 양화대교에 한해서만 공사를 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며, 한나라당이 시의회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7대 의회에서는 관련 예산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한강운하는 국가사업이기 때문에 (서울시장 후보로서는) 반대할 수 없는 처지”라는 나경원 후보의 주장도 거짓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울시는 양화대교 공사를 시작하면서 ‘디자인개선’과 ‘선박운항여건개선’이라고 목표를 설명했다. 마치 다리를 예쁘게 만들고, 기존의 선박이 다니기에 위험했던 다리를 보수한다는 느낌을 준다. 당시 양화대교 공사가 서해뱃길 사업을 위한 수순이라는 환경단체의 외침에 대해서 언론은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상․하행선이 각각의 2개의 다리로 건설된 양화대교는 공사도 각각 진행되었는데, 하행선 공사에 이어 시작된 상행선 공사 예산을 8대 서울시의회에서 한강운하의 사업성 부족을 근거로 전액삭감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양화대교 공사는 한강운하 사업의 시작에 불과
 

문제는 양화대교 공사를 코끼리 코만지듯이 바라본다는 점이다. 한강운하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양화대교 이외에도 서강‧마포대교도 'ㄷ‘자 모양을 거쳐서 기둥간격을 넓혀야 안전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서울시는 한강운하 사업이 경제성이 높은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이 두 개의 공사도 애써 감추고 있다.

또한 배가 들어오면 터미널이 필요한데, 서울시에서는 여의도와 용산에 터미널을 만들 계획이다. 그 중 용산터미널 부지는 국제업무지구와 연관지어서 만들 계획인데, 지은 지 10년도 안된 아파트 단지이다. 지금도 용산 터미널 부지의 아파트 벽면에는 오세훈 시장이 집을 뺏으려한다는 벽화가 남아있다. 한 가구당 수십억을 호가하는 이 아파트를 터미널 부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보상금액을 필요로 한다. 서울시의 연구용역에는 모두 빠져있는 비용이다.

게다가 다리를 받치는 기둥 간격이 좁지 않아도 한강의 모든 다리에는 충돌방지공이 필요하다. 낭떠러지가 아니더라도 모든 고속도로에 가드레일을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역시 서울시의 연구용역에는 서강‧마포대교만 포함되어 있으며, 형식적인 수준의 설비만 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5천톤급 배를 운항하기 위해서는 바닥 준설과 콘크리트 호안의 정비 등이 필요할 것이다. 이 많은 단계 중에 양화대교 공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민중의 소리 한강 운하

양화대교 공사 중단 요구를 번복했다고?

양화대교 공사 공정률이 70%이므로 공사를 마무리해야한다는 주장은 언뜻 들으면 꽤 합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도 꼼수가 숨어있다. 양화대교는 상‧하행선이 각각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다리이므로 공사의 안전은 서로의 다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공정도 별도로 이루어진다. 고로 하행선다리의 공정률 100%, 상행선 다리의 공정률 40%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양화대교 공사는 기둥간격을 넓히는 것이기 때문에 임시우회로를 만들고, 차량을 우회시킨 다음에 기존 다리의 상판을 해체해서 기둥을 없애고 아치로 대신하는 것이다. 상행선 다리의 공정률은 비록 40%이지만, 기존 다리의 상판을 해체하는 순간 공사를 되돌리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동안 환경단체와 야권에서 공사중단을 요구해온 것은 양화대교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리고 박원순 후보 측의 요구는 양화대교 공사의 지속여부를 차기 시장이 판단할 수 있게 공사를 중단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존다리의 상판을 해체하기 시작한 순간, 양화대교 공사 중단요구는 더 이상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환경단체와 박 후보측이 주장을 바꿨다는 여권과 보수언론의 주장은 다분히 악의적이다. 

양화대교 공사는 공정률이 100%가 된다하더라도 달성한 목표가 하나도 없는 이상한 사업이다. 목표가 한강운하 내 선박운항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서강‧마포대교 공사, 터미널공사, 준설, 충돌방지공 등이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한강운하 공정률로 보자면 1%가 채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언론에서는 양화대교에 대한 공약과 한강운하에 대한 공약을 각각 나누어서 소개하고 있다. 나경원 후보는 양화대교 사업의 완공을 주장하면서 한강운하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상한 것은 배를 띄우는 것이 핵심인 한강운하 사업을 원점 재검토하겠다면서 ‘수상호텔’을 예로 든 것이다. 한강운하사업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일까? 


ⓒ민중의 소리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한강에 배를 띄울 것인지 입장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지난 국감에서 경인운하는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수자원공사는 내부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경인운하의 순현재가치가(NPV)가 -1조5천억원'이라고 중간보고서가 보도되자 최종 누락시키기도 했다. 경인아라뱃길은 사업비가 당초 2조2,500억에서 4,300억이나 증액되었으며, 수자원공사는 5,300억원을 국고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인운하 완공 이후에는 매년 관리비가 약 200억 가량 들어갈 것으로 예측되지만, 사업의 주체인 수자원공사는 인천시에 인계할 시설물을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등 손을 뗄 태세다. 이는 고스란히 지역의 부담으로 남게 될 전망이라 인천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여권의원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경인운하를 둘러싼 이런 어려운 수치들이 의미하는 것은 간단하다. 즉, 운하를 만들어도 띄울 배가 없다는 것이다. 

경인운하를 거쳐서 서해로 나가야하는 한강운하의 경우는 어떨까. 2007년 한강주운연구에서 2.38에 이르던 한강운하 비용편익(B/C)은 투융자심사 두 번을 거치면서 1.75, 1.21로 떨어졌다. 2009년 기본설계에서는 1.14로 떨어졌다. 심지어 2011년 6월,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강운하의 비용편익(B/C)은 0.52에 불과했다. 적자사업이라는 뜻이다. 

현장의 상황이 이렇듯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만, 여권에서는 한강에 정말로 배를 띄우는 사업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 즉답을 피하면서 양화대교 공사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 한강운하에도 경인운하에도 띄울 배가 없다. 이미 다리가 해체되기 시작한 양화대교 공사는 별수없이 안전하게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띄울 배가 없는 운하사업은 폐기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엄청난 서울시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이다. 논란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논쟁을 벌여야 할 때이다. 

신재은 한강운하백지화서울행동 활동가

기독교, 이제 ‘천당 지옥’ 놀음은 그만 둬라!


이글은 대자보 2011-10-23일자 기사 '기독교, 이제 ‘천당 지옥’ 놀음은 그만 둬라!'를 퍼왔습니다.
① 기독교의 인격신, 고작 환상에 불과한 것 아닌가

“어떤 의견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해서, 곧 그 의견이 전적으로 엉터리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버트런드 러셀, 1872~1970, ‘기독교 윤리학’ 중에서)

“조직화된 종교는 수적인 우세가 필요한 마음약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속임수이며 버팀목이다. 종교는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라고 말한다.” (제시 벤추라, 1951~ , 프로레슬러 및 전 미네소타 주지사)

“종교는 환상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1856~1939)

“누군가 망상에 시달리면 정신이상이라고 한다. 다수가 망상에 시달리면 종교라고 한다.” (로버트 퍼시그,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재인용)

“만약 신에게 이야기를 건넨다면 당신은 기도하고 있는 것이고, 신이 당신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은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것이다.” (토머스 사스, 1920~ , 정신과 의사, ‘두 번째 죄’ 중에서)

“개는 자신의 주인을 신으로 여긴다.” (다윈, 1809~1882, ‘인간의 유래’ 중에서)

(정언 생각) 어느 때 어느 곳에서건 대다수가 따르는 의견을 감히 허구라고 내칠 만큼, 독립적인 자유정신을 갖춘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특히 기독교가 절대 요구하는 무조건적 복종의 관점에서,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주인에 대한 개의 태도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신은 그 실체가 없는 ‘추상명사’에 불과하나, 인간은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보통명사’라는 점이다.

② 기독교, 이제 ‘천당 지옥’ 놀음은 그만 둬라!

“평화롭게 그들은 죽을 것이다. 평화롭게 그들은 당신의 이름으로 사라질 것이다. 무덤 너머에서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비밀을 지킬 것이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는 천국의 영원한 보상을 미끼로 그들을 꾀어 들일 것이다.” (종교재판소장,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나는 지금껏 내세에 대한 티끌만한 증거도 본적이 없다.” (마크 트웨인, 1835~1910)

“나는 천국과 지옥, 각 개인들의 내세나 인격신이라는 종교이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를 조금이라도 본 적이 없다.” (토머스 에디슨, 1847~1931)

“나는 자신의 피조물에게 상벌을 가하거나 우리 자신과 똑같은 의지를 소유하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또한 육체적인 죽음을 뛰어넘어 부활하는 인간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나약한 영혼들이 공포와 부조리한 이기심에 사로잡혀 그런 생각에 집착한다. 나는 …… 현존하는 세계의 경이로운 구조를 언뜻 보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성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바치는 것에 만족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1879~1955)

“사망자들(9.11 테러 희생자들)이 모두 낙원에 있으므로, 이승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해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 1918~ , ‘9.11 희생자’ 추모예배 중에서)

(정언생각) 어느 살인강도가 끈질기게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당신에게 접근한다. 당신의 머리에 총을 들이대며 ‘돈을 내놓을래, 아니면 목숨을 내놓을래?’ 협박한다. 당신은 그 총잡이가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었기 때문에, 배심원들이 그한테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게 당신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달린 문제일 것으로 생각하나.

좋다! 당신의 돈을 다 빼앗고서도 그는 여전히 당신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설혹 그가 이번만큼은 당신을 살려주기로 결정했다 쳐도, 그걸 갖고서 그자가 찬양과 숭배를 받아 마땅한 일인가. 그는 단지 요청한 적도 없고 원치도 않았던 협박을 스스로 거두어들였던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 인간이 원하지도 요구한 적도 없는데, 자칭 신이라는 자가 제멋대로 부과한 불구덩이 고문 속에서 고작 몇몇 인간을 구해낸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자비롭다’고 칭송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오늘의 기독교, 더 이상 “천당 갈래, 지옥 갈래” 하는 식의 양자택일적 협박작태는 당장 집어치워야 한다. 그것은 문명 이래 지속된 권력형 공갈협박이었고 오늘도 계속되는 축재형 사기행각일 뿐이다. 진실은, 신이 저지른 중대한 실수 중 하나가 인간을 만든 일이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 중 하나가 신을 발명한 일이었을 뿐이다.

신도, 그리고 천당도 지옥도 신이 아닌 인간이 창조한 추상명사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용이라는 명사가 실제로 쓰인다고 해서, 용이라는 동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로버트 잉거솔이 잘 지적했듯이, 지옥이라는 신화는 “인간이 마음속에 품을 수 있는 모든 비열함, 모든 복수심, 모든 잔인함, 모든 증오, 모든 파렴치함들”을 투사하는 것이다. 설혹 그게 신이건, 사랑이나 아니면 정의건 모든 추상명사는 역시 인간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창조된 것들일 뿐이다.

오늘 21세기에 여전히 정신적 도착상태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아마도 그들이 예배 중 가장 많이 인용했을 법한 성경 구절(이사야서 45장 9절)이다. 주석 한두 마디만 괄호로 덧붙여 그대로 되돌려준다.

“지은 것 중에 제일 하찮고 못된 것(인격신)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지은 이(인간)와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다. 진흙(인격신)이 토기장이(인간)에게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말할 수 있는 거냐?”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개방과 통합 (연) 소장으로서 양극화 해소에 관심이 많으며, 평생 화두로 삼고 있는 주제는‘사람과 경제 그리고 역사’입니다.  

점령월街 운동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글은 대자보 2011-10-23일자 기사 '점령월街 운동이 계속 커지고 있다'를 퍼왔습니다.
[국제동향] 반월가 움직임은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


▲ 曺亨 畵伯이 油畵로 그린 강성종 박사 ©曺亨, 2010[譯者 註釋] 점령월街[Occupy Wall Street] 는 심상치 않다. 매일 증가하고 있는 이 운동은 계절적이 아니다. 이마도 세계의 금융자본주의의 판도를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 개의 기고문을 함께 번역한다. 하나는 Paul Krugman의 “그들의 면역성도 다 없어지고 있다” 와 Neil Garfield의 Krugman의 기고문에 대한 해설: “도적정치(盜賊政治 Kleptocracy)에서 뢰소주의(牢騷主義 Kvetchocracy)로: 월街는 도적질 하다가 비판하면 투덜대고 욕하기 시작한다”. 뢰소주의(牢騷主義) 뉴욕타임스를 정기적으로 번역하는 다음 website 에서 중국어번역에서 인용했다. http://www.huishangol.com/display.asp?id=11318  추가로 이 점령월街운동의 많은 아이디어는 Adbusters 라는 카나다 신문에서 나왔씀을 알려 드립니다. http://bit.ly/poMlXw 

[1] 월街의 면역성도 다 해가고 있다 [Losing Their Immunity]
By PAUL KRUGMAN
뉴욕타임스 2011년 10월 16일

점령월街 운동 [Occupy Wall Street movement] 이 계속 커지고 있음에 따라 운동의 표적으로부터의 오는 반응도 점점 변화하고 있다. 오만 방자한 눈으로 무시하고 깔보던 태도에서 투덜거리고 푸념하는 哭訴로 바뀌고 있다. (내 블록의 한 독자는 금융지배층을 뢰소주의(牢騷主義)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현대판 금융군주(金融君主)들은 데모하는 운동권 사람을 처다 보면서 이렇게 묻는다. 저것들이 우리가 미국경제에 무엇을 공헌했는지 이해라도 할까? 

대답은 이렇다. 물론 잘 이해하고 있다. 많은 데모 자들은 월街와 경제 엘리트들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다. 

토요일 뉴욕타임스는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데모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보고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어느 화폐경영인으로부터인데 “금융복무(金融服務 Financial Services)는 이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사업이다. 우리가 껴안아줘야 한다” 라는 말이다.

이 말은 많은 일을 잘하고 있는 미국 노동자에게 심각한 모독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부구조 [infrastructure] 나 교육에 그 돈을 투자하면 더 낳아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금융복무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정도로 이 문제는 왜 그리고 이게 정말로 우리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방향인지 하는 문제가 아닐까?

미국의 금융화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놀아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때부터 금융산업이 다른 경제분야보다 급성장된 일련의 원인은 고의적인 정책선택 때문이었다. 특히 2008년까지 계속된 규제철폐가 바로 그 원인이다.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不斷成長의 금융산업시대는 不斷成長의 수익과 부의 불평등시대였다. 월街는 직접적으로 경제양극화에 크게 기여했다. 왜냐하면 전체 국가의 수익 중 금융에서 치솟는 상위 1%의 수익이 대부분의 수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상위 0.1%가 상위 1%를 다 차지하고 있다). 더 넓게는 금융규제철폐를 촉진한 같은 정치세력은 여러 면에서 노동조직을 파괴하고 최고경영인의 급여를 제한하는 분노성약속(?怒性?束 愼防衆怒 outrage constraint)도 폐지해버렸다. 그 외에도 많다.

당연히 부유세는 거의 없을 정도로 줄었다.

이 모든 것은 결과를 보면 합리화된다고 가정한다. 월街의 귀재들의 급여는 그들이 기막히게 돈을 많이 벌어드렸기 때문에 당연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막힌 일이라는 것에서는 한 개의 떡고물도 떨어지지 않았다. 위기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1980-2007년 23년간의 중간가구당 수익은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지금 정치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금융규제가 엄격했고 지금보다 부유세가 아주 높았던 세대에 비해서 1/5밖에 되지 안았다. 

그리고 위기가 닥쳐왔다. 이는 현대판 금융이 위험을 감소했고 제도가 더 안정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얼마나 넌센스 인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정부의 緊急救濟는 대공황 때보다도 더 나쁜 재정붕궤로부터 구제가 되였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월가의 급여는 노동자들의 높은 실업률과 줄어든 임금으로 고통을 받는데도 다시 계속 올라가고 있다. 정말, 金融家들이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왜 월街는 사람들의 [점령월街]에 대해서 불평하기를 바라는가? 금융이 미국이 잘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금융경영인이 뉴욕의 두 상원의원이 자기편이 아니라고 불평하며 그들의 선거구민(選擧區民;選民)이 누구인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뉴욕 상원의원들은 그들의 선민(選民)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17명중 16명이 비금융권(非金融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금융인은 유권자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월街가 신용과 돈을 완전히 잃은 것은 불구하고라도 구제금융에 관해서 무한한 감사해야 하는 단 한가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미국정치에서는 돈은 귀신도 부린다 (有錢能使鬼推磨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금융산업자금관리인들은 최근 금융산업을 비판하는 정치인들은 아무리 점잖게 말 하드라도 모조리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이는 벌써서 월街의 돈이 오바마를 버리고 미트 롬니 (Mitt Romney) 공화당 후보를 택하겠다고 말하는 것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런 일이 최근 사건에 대해 월街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점령운동을 봐라. 몇 주일 전까지만 해도 월街는 세계경제를 망치면서 그들의 막대한 급여를 가져가는데 입을 닥치도록 우리의 정치체제를 뇌물로 사거나 아니면 협박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갑자기 사람들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들 [점령월街]의 분노는 수천만의 미국인들과 공감대를 갖았고 이에 대해 월街가 투덜대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原文]
http://www.nytimes.com/2011/10/17/opinion/krugman-wall-street-loses-its-immunity.html?_r=1&ref=opinion 
다음 글은 Paul Krugman의 기사에 대한 Neil Garfield 의 해설이다.

[2] 도적정치(盜賊政治 Kleptocracy)에서 뢰소주의(牢騷主義 Kvetchocracy)로: 월街는 도적질 하다가 비판하면 투덜대고 욕하기 시작한다. 

기막힌 일은 역사는 반복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전만 해도 학자의 책이나 논문 그리고 해설 등은 소비자, 납세자, 주택소유자, 각 계층의 유권자들의 불만이라고 일축해버렸는데 갑자기 미국정부가 우리에게서 도적질해간 직접적인 결과로 자산과 년 수익을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극대화한 극소수에 의해서 납치되지나 않았는지 하는 생각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제 와서 학자들은 불평을 하기시작하고 정부는 그들의 만행에 대한 적절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고 있다. 

점령운동 [Occupy movement] 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눈에 나타나는 것과 현실의 차이만큼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있다. 주식시장은 고고행진! 월街는 증가하는 거대한 이익만 보고하고 있고 다른 부분의 경제는 자금부족과 [그에 따른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의욕부족으로 붕궤되고 있다. 나도 젊었을 때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하든 나는 내 인생과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60년대에는 국가경영과 시민의 혜택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꿈이 공감대를 형성했었다. 

내가 월街에 있었을 때에는 경제성장에 따른 유동성자산이 계속 증가한다고 하는 전제하에서 월街의 가치를 인식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성장이 대부분 국민에게는 환상일 뿐 국민은 임금대신 빚을 저야 하는 사실은 정책의 양쪽 모두 비난을 받아야 한다. 유동자산이 실질적 부와 실질적인 화폐를 대체하게 되였으며 달러의 가치는 장기적인 하강상태에 있게 되였다. 

GDP성장은 월街의 성장에 기인 되였으며 이는 금융복무(金融服務 financial services) 가 16%에서 48%로 급상 한데서 기인된다. 만일 당신이 GDP의 성장으로서 월街가 만든 월街의 성장을 교역서류를 반영한다고 가정한다면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그 성장을 좌표로 삼고 싶어하는 바로] 그 성장은 환상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종이로 만든 GDP 차액 32%를 빼면 당신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는 가구당 두 사람의 수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경제빈혈증에 걸릴 것이다. 

월街가 제조한 허상의 GDP 32%를 빼면 우리의 비참한 환경은 더욱 명확해지고 이해가 갈 것이다. 미국의 GDP는 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축 되였다. 국가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 를 유지하고 새로 건설하는 것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미국의 GDP는 엄청나게 줄어든 샘이다. 미국의 실질GDP는 보고된 것의 반절에 해당한다. 많은 시민들은 이러한 엄청난 GDP의 감소를 실감하고 있고 변화를 요구한다. 그들의 생각은 맞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던지 아니면 [역설적인 얘기이다마는] 이미 다 되여 있으니 더 바랄 것 없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GDP측정은 실질적으로 가치 명세서를 말한다. 이는 일정매매가 이루어지고 그 매매에 가치를 부여한다 반면 다른 매매를 이루고서는 국가의 GNP의 가치부분으로서는 무시해버린다. 우리는 부를 위한 부만 가치로 인정했고 우리의 경제적 자존심의 일부로 계산했다. 지금은 재원이 말랐다. 지난 35년간 제조한 거품을 계속 품어댈 수 있는 충분한 돈이 없다. 지금 유통되고 있는 50조 달러의 실질적인 통화에 근거하면 우리는 600조 달러 이상이 파생상품채무 [derivative debt] 가 유통되고 있다. 다섯 살 먹은 아이도 이래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占領월街 (Occupy Wall Street)운동은 우리에게 우리의 가치와 정책에 무언가 일치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라고 얘기해주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진작 했었어야 한다. 벌서 고치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全球化[globalization] 라는 것은 證券化처럼 그 자체로는 사악(邪惡)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극소수만이 사용할 줄 아는 무기였다. 이는 公平競爭的 環境이 아니며 정보의 非對稱性 (George Akerlof) 과도 相合하지 못한다. 이는 부익부의 몇 사람과 빈익빈의 대다수, 그리고 [운동]경기가 기술적으로 따지게 될 때 심판관을 경기장에서 빼돌리는 결과를 빚은 정부의 문제라는 이념적 입장이라는 결과를 낸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아는 것과 그 누구에게도 중지하게 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道德危險의 폭풍과 함께 추문(醜聞)에 醜聞이 이어지면서 월가 만이 이길 수 있다고 내기를 하듯이 전 세계를 賭臺(Gambling Table)위에 올려놓을 때까지 도박의 위험은 계속 올라갈 것이다. 월街를 비난하는 것은 전쟁터에서 군인이 총 쏘는 것을 비방하는 것과 같다. 군인은 적을 찾아내고 누구는 쏘지 말 것 등을 말하는 명령에 따라 기능을 할 뿐이다. 정부가 문제다. 

군대처럼 월街도 그들이 노동자들의 연금, 중산층의 재산, 창신(創新 innovation)과 그에 따른 이권(利權)에 대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국가의 전망을 목적으로 할 때 내재적인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감각을 사용하지 못한 것에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미국정부는 재난의 결과를 초래한 관행을 중지 못한 잘못이 있다. 유권자들은 자기의 판단과 지식을 사용하지 않고 스스로 구호와 상술에 말려들어간 데 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童話 같은 얘기를 믿었고 그에 말려들어갔다. 좋든 나쁘던 결과는 용납할 수 없게 되여 바꿔야 한다. 변화는 법에 명시된 대로 예외 없이 은행이 붕궤위기에 직면하고 은행이 망할 때 함께 쓰러지는 제도에 대해서 법을 적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만일 은행이 주택을 차압 할 수 없다면, 법을 어기지 않고 법을 무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신용카드, 학생채무, 소비자 채무를 수거해야 한다. 도덕적 감각이 상처를 받는다고 해서 그들로 하여금 그런 짓을 하게끔 용납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법과 합리적 절차를 밟는 국가다. 사람의 국가나 이념적 선택의 국가도 아니다. 법치국가다.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중산층은 급속도로 무산계급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무산계급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가려는 능력은 그들이 도달할 수 없는 차단 물로 막혀져 있다. 가난한자는 더욱 심한 적빈상태(赤貧狀態 abject poverty)로 빠지고 경찰, 소방, 사회봉사, 길이나 다리 전기 수도 같은 하부구조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정부기능은 소홀(疏忽)이라는 무게에 못 견디어 쓰러지고 만다. 부호들은 자기네들 자체의 전기, 도로, 교통수단을 구축하고 사설경찰을 두고 공공 하부구조에 의존하지 않는다. 

밖으로 표현되는 분노 [점령월街]는 부호들에게 아랑곳없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정치와 경제전경(經濟全景 economic landscape)의 자연적인 일부라고 생각해왔던 공공시설과 국민보호는 사라졌다. 우리는 그것은 다시 찾아야 한다. 

[原文]
http://livinglies.wordpress.com/2011/10/17/emporers-invisible-clothes-removed/ 



필자 강성종 박사는 1969~70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적 과학잡지 에 논문을 게재한 세계적인 뇌과학자입니다.
현재 뉴욕에서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과 치매를 치료하는 새로운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진보·좌파 성향의 과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약력 
한국인 최초 세계적 과학잡지 에 논문 게재(제1저자-1969,1970년) 
전 미국 뉴욕시립대학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 교수(1968-94) 
전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 교수(1975~78)
전 서울대 AID교수(78-79) 
전 중국 천진대학 자문교수(86-94) 
전 한효과학기술원 원장(89~95년)
현 뉴욕 Biodyne Research Center 연구소장(치매/우울증) 

* 저서
(라이프사이언스 펴냄)
(라이프사이언스 펴냄)

* 강성종 박사 블로그 : http://quovadis.tistory.com/
* 강성종 박사 트위터 : http://twitter.com/quovadis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