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사설]도청의혹 앞에서 뻔뻔스러운 김인규 사장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5일자 사설 '도청의혹 앞에서 뻔뻔스러운 김인규 사장'을 퍼왔습니다.
김인규 KBS 사장이 엊그제 국정감사에서 “도청을 지시한 적도 보고받은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김 사장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KBS 국감에서 이같이 말하면서 “공영방송을 둘러싸고 이런 의혹이 제기돼 유감스럽다”며 생뚱맞은 ‘공영방송론’까지 펼쳤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능멸하는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울러 민주당 대표실을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방송사의 기자가 도청한 것이 거의 확실한데도 진심어린 사죄는커녕 ‘유감’ 운운하면서 어물쩍 넘어간 데 대해서는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김 사장은 “지시하지도 보고받지도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제1야당 대표 집무실 도청이라는 엄청난 행위를 취재 경험이 일천한 일선 기자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저질렀다고는 보기 어렵다. 기자가 자영업자도 아닌 데다, 다른 직종에 비해 지휘계통이 엄격한 언론사의 업무관행으로 볼 때 김 사장의 답변은 진실을 호도하려는 행태로 여겨질 뿐이다. 이는 KBS 내부구성원들의 여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KBS 새노조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7%가 ‘도청에 KBS가 연루됐다’ ‘김 사장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던 것이다. ‘KBS의 연루’가 무엇을 뜻하겠는가. 어떤 식으로든 고위간부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김 사장은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경찰 수사와는 별개로 자체적인 진상규명에 착수할 것을 지시해야 한다. KBS를 이명박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인 김 사장으로서는 공영방송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지만 이러한 진상규명작업이 공영방송이 이행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사실상 수사를 중단한 채 정권과 KBS의 눈치만을 보고 있는 경찰도 사안의 중대성을 깨닫고 자세를 전환해야 한다. 도청사건은 경찰이 깔아뭉갠다고 묻혀지지도 않을뿐더러 언젠가는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경찰을 위기에 몰아넣을 것이다.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사설]저축은행 부실 다음 정권에까지 넘길 셈인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4이자 사설 '저축은행 부실 다음 정권에까지 넘길 셈인가'를 퍼왔습니다.
저축은행이 3곳 가운데 한 곳꼴로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저축은행 89곳의 감사보고서와 경영공시를 분석한 결과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33곳, 37%가 자본잠식 상태였다는 보도다. 특히 이들 가운데 6곳은 자본금을 모두 까먹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고 한다. 적자가 쌓여 자본금을 까먹는 상태가 자본잠식인데, 저축은행 간판을 달고 있는 3곳 가운데 한 곳꼴로 이런 지경이라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정부는 지난달 2차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실시해 부실 저축은행 7곳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경영진단 결과를 토대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 미만인 곳 등 경영정상화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부실 저축은행을 사실상 퇴출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제외한 저축은행 가운데서도 3곳에 한 곳꼴로 자본금을 까먹고 있으며, 20곳은 2년 연속 적자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니 정부가 무엇을 구조조정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진단 직후 대주주 증자나 자산 매각 등 응급조치를 통해 간신히 BIS비율 기준만 맞춰 퇴출을 면한 저축은행이 한둘이 아니라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은 79개 저축은행 감사보고서 가운데 25.3%인 20개 보고서에 ‘특이사항’을 적었다고 한다. 저축은행의 존속 가능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등 투자자 유의사항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아무리 저축은행이 부실 덩어리여도 문을 닫지 않는 한 계속 예금자의 돈을 맡아 운용하게 된다. 자본금을 까먹고, 회계법인이 ‘주의보’까지 발령한 금융기관에 예금자가 돈을 맡기도록 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이들 부실 저축은행에 자금을 지원해 생명을 연장시킬 궁리만 하고 있으니 결국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다음 정권에까지 넘기겠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정부는 최근 확정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저축은행 구조조정특별계정에 1000억원을 융자지원키로 결정했다. 지난 4월 특별계정을 설치할 당시 정부가 2000억원을 출연키로 했지만 규모는 절반으로 줄이고 출연이 아닌 융자 형태로 지원키로 방침을 바꾼 것이다. 저축은행 감독부실에 대한 정부의 책임,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비판 등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여서 정부가 책임있게 저축은행 부실 처리를 마무리짓겠다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이런 식으로는 저축은행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 서민금융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사설] 공교육비 줄여 제주 귀족학교 퍼주는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04일자 사설 '공교육비 줄여 제주 귀족학교 퍼주는가'를 퍼왔습니다.
열흘 전 문을 연 첫 영리학교 ‘엔엘시에스(NLCS) 제주’는 연간 학비(등록금+기숙사비)가 3653만~4206만원에 이르는 초특급 귀족학교다. 서울 강남 3구 출신 아이들이 40%에 육박하는 것은 이 학교의 성격을 상징한다. 위화감 등 국민 통합과 관련해 생각해볼 문제가 많지만, 이보다 더 화급한 것은 그런 학교에서 적자가 발생하면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강부자 정권이라지만, 이건 아니다.
학교법인 ‘해울’의 모회사는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센터다. 개발센터는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이다. 학교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최종 책임은 국토해양부가 지는 구조다. 게다가 앞으로 5년간 예상되는 적자 규모는 무려 179억원에 이른다. 학생 1인당 연 700만원가량 된다. 법인이 작성한 자금수지 현황으로도 그러하니, 얼마나 더 늘지 모른다. 연 학비 4000만원짜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부지 마련하고 학교 짓고, 그것도 모자라 정부가 이만큼 더 지원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정부는 제주자치도 특별법 제정 때 영리학교법인 설립과 외국학교 유치 논의는 이미 끝났다고 입을 닫는다. 하지만 그렇게 배짱 튀길 처지는 아니다. 당시 내세운 명분은 외국의 명문 학교를 유치해 초·중·고교생 유학 수요를 국내로 흡수하자는 것이었다. 채산성도 있고, 나서려는 업자도 자본도 있다고 해 허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나랏돈 200억원으로 학교법인을 설립하고, 만만한 교직원공제회 등의 손목을 비틀어 투자받은 1700억원으로 교사 짓고, 운영 적자는 나라에서 충당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 관 주도 귀족학교인 셈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다 보니, 제주도는 내년에도 이런 학교를 하나 더 개교한다고 한다. 국민이 먹여살릴 귀족학교가 더 느는 셈이다.
영리학교라면 일반 회사처럼 설립부터 운영,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법인이 져야 한다. 적자가 난다면 학비를 올려 수지를 맞추거나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써야 한다. 어느 것 하나 할 수 없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 세금으로 귀족학교를 짓고, 거기에 혈세를 지원하는 것에 어느 국민도 동의한 적이 없다. 아이들 점심 한 그릇에 나라 망한다고 앙앙불락하던 정부 아닌가. 부자들에겐 왜 그리 관대한가. 당장 손을 떼기 바란다. 정부가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귀뚜라미 창업주 부자의 이상한 특허 독식

이글은 한겨레21 2011-10-04일자 기사 ' 귀뚜라미 창업주 부자의 이상한 특허 독식'를 퍼왔습니다.
[2011.10.10 제880호] [특집] 최진민 회장 96개, 장남 24개, 차남 19개 등 경쟁사 유례없는 특허 보유… 
회사·연구원의 특허를 가로챘다는 의혹에 이어 부의 편법 증여 시도 논란

특허권이 부를 편법으로 물려주는 데 쓰일 수 있을까? 중견기업인 귀뚜라미그룹의 사례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가늠자 노릇을 할 수 있을 듯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최근 서울시의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와 관련해 직원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해 논란을 빚은 귀뚜라미그룹의 최진민(70) 회장은 공학박사로 보일러 관련 발명을 많이 해왔다. 이런 공로로 2006년에는 서울대·한국공학한림원이 발표한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에 선정됐다. 최 회장은 보일러 분야에서 220건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보유해왔다. 시간이 흘러 소멸된 것을 빼도 96개나 된다. 최 회장뿐만 아니다. 그의 아들 성환(33)·영환(30)씨도 아버지 뒤를 이어 각각 수십 개의 특허를 갖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특허 부자(富者)’다. 부전자전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특허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최근 서울시의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와 관련해 직원들의 투표를 독려해 논란을 빚은 귀뚜라미그룹 최진민 회장이 지난해 7월 대구의 한 호텔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최 회장을 비롯해 장남과 차남이 수십 개씩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회사와 연구원들의 특허를 가로챈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18살 아들, ‘보일러 공기자동조절댐퍼’ 특허 신청
장남 성환씨는 2003년 귀뚜라미에 입사해 현재 본사가 있는 경북 청도에서 공장장(관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특허출원을 신청한 것은 1998년인 20살 때다. 철학을 전공한 대학생 시절에 ‘보일러의 순간 수압 평형장치’라는 아이디어를 근거로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성환씨는 이듬해에도 ‘가스보일러용 가스연소장치’ 등 3개의 특허를 아버지인 최 회장과 함께 신청했다. 병역 특례 근무를 마친 2004년 이후에도 해마다 2~4건을 신청했다. 시간이 지나자 신청 분야도 보일러를 넘어 에어컨까지 확대됐다. 2005년 ‘하향 송풍 방식을 이용한 에어컨 실내기’ ‘상하 송풍 방향 전환이 가능한 히트펌프형 에어컨’ 등의 특허출원을 신청했다. 성환씨가 이렇게 확보한 특허·실용신안권이 24건이다.
차남 영환씨도 특허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을 보여왔다. 그는 성년이 되기도 전부터 특허를 신청하기 시작했다. 19살 때인 2000년 아버지가 발명했다는 ‘가스보일러의 버너’를 형과 함께 공동 권한을 가진 출원인으로 등록했다. 20살 때에는 단독으로 ‘벽걸이형 가정용 온수보일러’ ‘온돌 난방용 배관호스’ 등을 발명해 특허출원을 신청하는 등 계속 특허권을 획득했다. 영환씨가 지금껏 확보한 특허와 실용신안권은 19건이다.

이와 관련해 귀뚜라미 쪽은 “모두 자격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방혜정 귀뚜라미 홍보팀장은 “(성환·영환씨가) 어렸을 때부터 발명가인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이라며 “장남인 성환씨는 대학 재학 시절 보일러산업기사 자격증을 땄고 2000년부터 병역특례를 귀뚜라미에서 마쳐 보일러 관련 지식과 실력이 있다”고 말했다. 방 팀장은 차남인 영환씨에 대해서도 “대학 시절 공학을 전공했고, 현재도 공학 분야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등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귀뚜라미그룹 본사 전경.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하지만 귀뚜라미에 몸담았던 연구원들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최근 귀뚜라미그룹을 퇴사한 김민호(가명)씨는 “(성환씨가 권리를 갖고 있는) 분젠식 버너·연료전지 폐열 회수 시스템 등은 실제로 내가 보일러개발팀에서 일할 때 동료와 함께 개발한 것”이라며 “연소기술·유체기술 등 기계와 관련한 기술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특허까지 출원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10년간 귀뚜라미에서 일하다 퇴사한 연구원 최성식(가명)씨도 “귀뚜라미에서 일하는 동안 성환씨가 보일러 연구·개발에 참여한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연구원들이 개발한 것에 최성환 실장의 이름만 얹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모두 법인 명의 특허
사실 최 회장의 특허도 회사 연구원들의 특허를 가로챘으리라는 의혹을 전부터 받아왔다. 최 회장이 공학박사 출신이기는 하지만, 워낙 광범위한 분야의 개발을 홀로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보일러가 1990년대 들어 기계식에서 전자공학·기계공학·연소공학·재료공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한데 모여 머리를 맞대야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다. 보일러업계의 한 연구원은 “귀뚜라미에도 연구진이 있어 발명을 하고 있는데 오너 일가의 이름으로 대부분의 특허가 출원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며 “최 회장이 과거 연탄보일러 시절 많은 발명을 했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인터넷으로 보일러를 제어하는 등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첨단 기술이 나와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해야 발명할 수 있는 것을 회장 혼자서 다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연구원도 “고체와 액체 연료를 모두 사용하는 다목적보일러나 화목보일러, 전기보일러 등 다양한 보일러를 혼자서 개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귀뚜라미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원들도 최 회장 혼자 모든 것을 발명하지는 않았다고 증언한다. 귀뚜라미에서 일하다 최근 퇴사한 강형우(가명)씨는 “2007년 경북 청도공장으로 연구소가 합쳐지기 전까지는 최 회장이 2주에 한 번씩 인천·청도·아산 공장을 돌아다니며 개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보고를 듣고 조언했다”며 “아이디어를 내거나 조언을 했지만, 실제로 개발 활동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962년 창업한 귀뚜라미는 2007년 경북 청도에 연구소를 마련하기 전까지 인천·청도·아산공장 등에 개발팀을 뒀다. 최 회장은 이들 공장을 2주에 한 번씩 방문해 기술회의를 열었다. 강씨는 “특허가 출원된 것 중에는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로 특허까지 간 경우도 많고, 최 회장이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품을 설계하고 이를 상품화하기 위한 수많은 세부 조정을 해 제품화한 것은 모두 연구실 직원”이라고 말했다.
현재 최 회장과 아들들은 수백 건의 특허와 실용신안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귀뚜라미그룹이 법인 명의로 갖고 있는 것은 38건에 불과하다.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경우다. 귀뚜라미의 경쟁 업체들과 비교해보면 상황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경쟁 보일러업체인 경동나비엔이 324개, 린나이코리아가 808개(가스레인지 등 다른 분야 포함)에 이르는 특허와 실용신안을 법인 명의로 갖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개인 명의 특허나 실용신안이 1건도 없다. 린나이코리아도 전직 직원 명의의 특허 1건이 개인 명의로는 유일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기업들은 연구원이 개발한 ‘직무 발명’의 경우 특허 신청 때 발명자에 해당 연구원의 이름을 넣고, 사용권한을 갖는 출원인에 회사 이름을 넣는다. 대신 발명자에게는 일정한 보상을 해준다. 하지만 귀뚜라미는 직무 발명과 관련해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이에 대해 귀뚜라미 임원은 “어차피 그 사람들은 그런 것을 하라고 뽑은 사람들”이라며 “회장의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것이어서 그들에게 보상해줄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 귀뚜라미그룹 계열사 주요 지분 현황/ 귀뚜라미 최진민 회장의 특허권 사용료 수익 추이

그러는 사이 최 회장은 귀뚜라미로부터 막대한 특허권 사용료를 받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사이트에서 귀뚜라미 계열사들의 1999년 이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최 회장은 2005년을 제외하고 매해 특허권 사용료를 받아왔다. 귀뚜라미(옛 귀뚜라미보일러)를 비롯해 귀뚜라미가스보일러, 귀뚜라미홈시스 등이 거의 매년 수십억원의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해왔다. 귀뚜라미 등 3개사는 특허권 사용료로 최 회장에게 매년 15억~44억원을 지불했다.
최 회장, 특허 사용료로 10년간 286억 받아
2001년에는 3개사가 최 회장한테 지불한 특허권 사용 대가만 44억4083만원이나 됐다. 특히 귀뚜라미가스보일러는 2001년 24억7034만원을 최 회장에게 지불해 전체 매출(987억8037만원)의 2.5%를 특허권 사용료로 사용했다. 상황이 이렇게 이상하게 흐르자 2003년 국세청은 최 회장의 ‘특허 수입’에 제동을 걸었다. 당시 중부지방국세청이 관련 조사를 한 뒤 최 회장이 매출의 2.5%까지 특허 수입을 받는 건 과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방혜정 홍보팀장은 “2003년까지 최 회장이 관계 매출 수익의 2.5%를 특허권 사용료로 받았지만 이후 1.25%만 지급하고 있다”며 “국세청의 결정은 아이디어를 최 회장이 냈다더라도 신뢰성 테스트, 제품화 과정을 거쳐 수익이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디어만으로 특허료 100%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 회장의 특허 수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귀뚜라미로부터 18억원의 특허권 사용료를 받았다. 그렇게 최 회장이 받은 돈이 지난 10년간 총 286억6686만원에 이른다.
남희섭 변리사는 “첨단 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도 특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는 하지만 중견기업이 매출의 2.5%까지 특허권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귀뚜라미의 한 임원은 “최 회장이 본인의 재산을 불리려는 욕심이 있었다면 주식배당을 통해 받아갔을 것이다. 회장의 특허권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받은 것일 뿐이다”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최 회장 아들들은 특허권과 관련해 사용료를 아직은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특허권과 관련한 상품이 출시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품이 개발된다면 이들도 회사로부터 돈을 받게 된다. 귀뚜라미의 한 임원은 “향후 관련 특허와 연계해 상품이 개발된다면 회장님의 아들들도 특허권 사용료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아들들도 회사 매출이 날 때마다 꼬박꼬박 특허 사용료를 받게 된다. 아버지와 회사가 도와준 특허를 매개로 ‘부의 편법 증여’가 이뤄질 수도 있는 셈이다.
“회사 이익 편취해도 견제장치 없어”
하지만 최진민 회장 일가가 다른 사람의 특허를 도용했으리라는 일각의 의혹 제기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현행법상 ‘특허 도용’의 경우, 발명 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손해배상은 물론 특허권을 돌려줘야 한다. 법무법인 KCL의 김범희 변호사는 “특허는 기본적으로 발명한 사람에게 권리가 있고, 권리가 승계될 때도 발명진흥법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며 “정당한 특허 승계 절차 없이 발명자가 아닌 사람이 특허를 모의 출원했을 때는 특허를 찾아오는 소송을 하면 특허의 출원권을 찾아올 수 있고 부당이득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귀뚜라미의 전직 고위 임원은 “귀뚜라미그룹이 비상장기업인데다 중견기업이어서 사회적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며 “최진민 회장 일가가 특허를 이용해 회사의 이익을 사실상 편취하는데도 이렇다 할 견제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특허와 실용신안은?
특허와 실용신안은 모두 산업재산권에 속한다. 산업에 이용할 수 있는 새 기술이나 제품을 발명한 데 대해 개인 또는 법인의 배타적 재산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법적 정의상 더 ‘고도한’ 발명은 특허에, 그렇지 않은 고안은 실용신안에 해당한다. 특허는 제품 발명뿐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대상이 되지만 실용신안은 제품 고안만 대상이 된다. 특허청에서 인정된 특허권의 존속기간은 20년, 실용신안의 존속기간은 10년이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박수진 기자 한겨레 디지털뉴스부 jin21@hani.co.kr

"한 영화인의 쓸쓸한 죽음,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1-10-04일자 우석훈교수의 칼럼 기사 '"한 영화인의 쓸쓸한 죽음, 되풀이하지 않으려면…"'을 퍼왔습니다
[우석훈 칼럼] "최고은법, 이제는 통과시키자"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당분간 내가 책에서 다루는 소재들은 어렵고 힘든 존재들 혹은 스스로는 자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물, 공기. 아니면 '개도맹', 개구리, 도롱뇽, 맹꽁이 같은 것들이다.

생태경제학과 문화경제학은 막상 해보니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가치 평가, 즉 우리가 지켜야 할 생태계의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이냐, 그리고 보존해야 할 문화재나 문화적 요소들의 가치를 얼마로 볼 것이냐는 가치 평가가 중요한 핵심고리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부수어버린 동대문 운동장을 보존하는 것의 가치는? 이건 문화경제학과 생태경제학이 만나는 지점이고, 그리고 4대강 유적지의 문화재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곳에서 만난다. 생태계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거나 보여줄 수 없는 것처럼, 문화에도 그런 요소가 많다. 이명박 정부의, 그냥 부수어버린다. 이 불도저 앞에서 생태계와 문화재, 이런 것들의 존재가 참담하게 지어져 버린다.

일단 분쟁의 소지를 없애버리겠다고 구럼비 바위부터 먼저 부수어버린 해군의 공사 강행도 생태경제학과 문화경제학이 만나는 지점이다. '다음 세대' 혹은 세대간 형평성 역시 공통점이다. 지금 우리가 불편하다고 없애버리는데, 구럼비 바위가 다음 세대에게는 정말 중요한 유산으로 여겨질지, 지금 우리가 알 수 있는가? 그런 이유로 난 현 정권이 반 생태정권이며 동시에 반 문화 정권으로 생각한다.

몇 년간 두 개의 작업을 동시에 해보니, 명확한 차이점 한 가지가 있기는 하다.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 예를 들면 강화 갯벌을 지키는 저어새나 울산에서 늘 문제가 되는 고래들에게 뭘 직접 물어볼 수가 없어서 늘 답답하고, 간접적인 경로로만 연구해야 한다. 문화경제학에서 진짜 좋은 점은, 궁금하면 직접 만나서 물어볼 수가 있다는 점이다. 제작진이든, 배우든 아니면 스탭이든, 어떻게 생각하느냐, 뭘 하면 좋겠느냐,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생태경제학 보다는 작업으로 보면, 몇 배는 편하다.

그렇지만 역시 사람의 문제이다 보니, 감정이 따라가서 연구자로서는 생태계의 죽음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순간들도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SBS 26층에서 막내작가가 뛰어내렸을 때와 의 곽지균 감독이 자살했을 때로 기억한다. 분석 작업 때문에 영화 을 한참 보고 있을 때, 감독이 자살한 거라서 마음의 애틋함이 더 했다. 막내 작가에서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한류스타에서 성공한 감독에 이르기까지, 문화 산업의 뒤안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죽음이 있었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거라고 하는 야박한 얘기들을 보면서, 그건 너무 무심한 동어반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울증은 자살의 원인인 것이고, 왜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그들이 고립되고, 외롭고 힘들었느냐, 그게 경제학자가 볼 문제이다. 약간만 치료를 받고, 조금만 지원 시스템이 뒷받침이 되었더라면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정말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 고(故) 최고은 작가.
어쨌든 책 작업 후반부에 최고은 작가의 죽음 이후로 일명 '최고은법'이라고 부르는 4대보험에 대한 문화예술인에 대한 특별 조항 같은 것이 8월에 여야합의로 입법하겠다는 것까지 보고 나는 책을 출간하였다. 그 정도는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책에서는 약간 언급만 하였다. 솔직히, 이 정도는 할 거라고 보았었다.

일반적인 노동과는 달리, 문화 산업은 그 특성상 취업 중인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의 경계가 모호하다. 1류급 감독의 경우를 살펴보면, 내 관찰로는 자기들은 '헌팅 중' 혹은 '구상 중' 그렇게 말하지만 법적으로는 미취업 상태이고, 그냥 노는 걸로 보인다. 그건 영화사나 제작사에 정규직으로 취업 중인 스탭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같다. 물론 비정규직의 일반화 속에서 그런 특수 직종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제도 정비 없이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지난 10년간 온 몸으로 겪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얘기하면, 온 국민이 사회당의 공약인 것처럼 기본 소득을 받고 있으면, 문화예술인이라고 해서 별도로 복지 정책을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선별적 복지' 특히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고 굳게 믿는 한나라당의 복지 프레임 내에서 기본 복지로 뭔가를 처리하기에는 요원하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문화예술인들에 대해서 4대 보험을 법적으로 처리해주자는 게 최고은법의 취지이다. 4대 보험에 대한 사용자 납입분을기금으로 처리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를 정부 보조로 직접 할 것인가, 이런 기술적인 논쟁들은 좀 남아있다. 어쨌든 이 정도만 되어도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의 지나친 생활의 격차가 생겨나는 것은 좀 완화해줄 수 있다.

그러나 약속했던 8월이 지났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이런 식이면 또 몇 달 질질 끌면서, 경제 위기니까 긴축 경제해야 한다고 슬쩍 넘어갈 모양새이다.

일단 내가 이해한 바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양쪽 다 발의한 법안에 제동을 건 것은 노동부이다. 명분은, 문화예술인이 노동자라는 것을 관리하기에 어렵다, 즉 비정규직 일반에 대해서 너무 복지정책을 강화시키면 자신들이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걸 '노동자성'이라는 아주 해괴한 단어를 동원하면서 반대 논리를 만들고 있다.

일단 말이 되지가 않는데, 문화 산업이라고 해도, 제작단계에서 다 정상적으로 세금내고, 한국은행에서 GDP 계산할 때 쓰는 국민소득에 다 잡히기 때문에, 그 매출 신고와 세금 경로를 따라서 처리하면 행정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건 문화예술 전체를지하시장 취급하거나, 편의점만도 못한 구멍가게 취급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노동부가 진짜로 이걸 명분으로 법안 처리를 막고 있는 진짜 이유는, 4대보험이라는 자신들의 업무 영역에 문화부가 들어와서, 이럴 수는 없다, 그렇게 반대하는 걸로 이해하고 있다.

보통은 여야의 정치 싸움 때문에 꼭 필요한 정책 법안이 표류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노동부의 밥그릇 지키기가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이해는 가지만, 부처 밥그릇 지키겠다고, 이런 중요한 전환점에서 법안 처리가 계류되고 표류하는 것은 진짜 아닌 듯 싶다. 안 그래도 청년 유니온의 노조 설립을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미적미적 거리고 있거나, 노동자의 권익에 반하는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이번 정권에서 노동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헐리우드와 비교해도 노조나 유니온 같은 보호 장치가 너무 미흡하다. 당장 자기 생활 꾸리기에도 정신이 없어서, 노동부 청사 앞에서 집회할 인력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노동부 밥그릇 지키기 눈치 보면서, 아주 기본적인 4대보험을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적용시키는 1차적인 정책도 반대하는 것은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해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여야 합의도 다 된 거라서, 문안 조정하고, 상정하면 끝나는 일을 언제까지 이렇게 미루고 있을 것인가? 이 정도만 해도, 올 겨울,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 쓸쓸이 자살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김치 남은 거 있으면 좀 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겼던, 그런 눈물 나는 죽음은 많이 줄일 수 있다.

솔직히, 한국의 문화영역에서의 1차 생산자, 기회자들, 그들에게 우리가 해준 게 뭐가 있는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현장에서 외주 제작사의 스탭들의 일상적 삶에, 진짜로 한국 사회가 보태준 거 하나도 없이, 1류급 스타들만 따라다니지 않았는가? 발레, 오페라, 국악, 이런 현장에서 벌어지는 잘 교육받은 연주자나 기획자들의 삶을 보면 우리는 문화에 대해서 논할 자격이 없다. 국제민속음악 대회에서 호평 받거나 우승하는 음악이 국내 음반시장에서 5장, 10장 팔리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러니 그들이 배고프고 힘든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아직 우리는 소비자로서 문화 다양성의 꽃을 피워 올릴 준비가 덜 되어있다. 그러니 그 빈 공간을 당분간 국가가 조금 더 채워주는 수밖에 없다.

토건의 나라에서 문화의 나라로 우리가 바뀌면, 국민경제의 생태적 전환도 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게 나의 믿음이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이미 문화예술 영역에 들어와있는 20대~30대가 하루에 세 끼 밥 먹는 데에 고통스럽지 않아야 한다. 최고은법이, 그 기본은 마련해줄 수 있는 출발점이다. 제발 이 법 만큼은 첫 눈 오기 전에 출발시키자고 부탁 드린다. 4대 보험이 우리의 젊은 문화예술인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사설] 불평등 조약임을 명시한 미국의 FTA 이행법률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04일자 사설 '불평등 조약임을 명시한 미국의 FTA 이행법률안'을 퍼왔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우리 국회도 비준동의 절차에 속도를 낼 태세다. 어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미국 의회 상황에 맞춰 비준안을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일정을 고려하면 여당은 이달 안에 비준동의안 처리를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국민경제와 우리 사회에 전방위로 영향을 미칠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이렇게 졸속 처리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지금까지 협정의 본질적 내용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곁가지 문제에 매달려 정치적 공방만 벌여왔다. 시민사회에서 이른바 ‘독소조항’의 위험을 줄기차게 제기해도 국회는 소수의 목소리로 치부했다. 이런 상태에서 미 의회의 이행법률안 심의 일정에 맞춰 일방적으로 비준동의안을 처리한다면 주권국가의 대의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 이행법률안에는 국회가 새롭게 검토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미국의 이행법률안은 그동안 모호해 보이던 협정문의 조항들이 미국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협정의 법적 효력이다. 법률안 102조를 보면, 협정과 미국 법령이 충돌할 경우 미국 법령이 우선한다(a항의 1)고 돼 있다. 상대국 기업이나 투자자의 법적 구제 수단과 관련한 조항(c항의 1과 2)에서는 미국 정부 이외의 어떠한 자도 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국 정부나 공공기관의 조처가 협정과 어긋나더라도 이를 이유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다.
반면에 정부가 국회에 낸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협정과 충돌하는 기존 국내 법률은 모두 백지화된다. 헌법이 대외통상조약을 법률로 인정하는데다 ‘신법은 구법에 우선’한다는 원칙 때문이다. 또 미국의 기업이나 투자자는 국내 법원을 통한 구제나 국제 중재절차를 통한 제소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협정에 따른 법적 의무와 권리가 두 나라에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은 쌍무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의 이행법률안은 협정이 이런 쌍무 원칙이 무너진 불평등 조약임을 못박고 있다. 국회는 미국 의회의 이행법률안 심의에 맞춰 비준동의 절차에 속도를 낼 게 아니라 협정의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논쟁] 시민단체가 재벌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되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04일자 기사 '시민단체가 재벌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되나?'를 퍼왔습니다.
읽어 보시고 판단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초빙교수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할 때 재벌 기업으로부터 기부·후원금을 모은 게 선거 쟁점의 하나로 떠올랐다. ‘재벌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가 재벌의 돈을 받은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자, 박원순 후보는 “아름다운재단은 대기업 감시기관이 아니라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설립됐으며, 후원금은 투명하게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과연 시민단체가 재벌의 기부·후원금을 받아도 되는가? 시민단체의 성격이 다양한 만큼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는 건 부당한가? 앞으로 생산적인 논쟁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대립하는 두 의견을 소개한다.
‘순수성’ 신화로 옥죄지 말아야
시민단체가 개인·재단 기부만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시민단체들도
정부와 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시민단체가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지금에야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고, 유독 한국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다. 과거에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쟁이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논쟁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시민단체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재정 출처만 다를 뿐 논쟁의 성격상 큰 차이가 없다.
시민단체 혹은 엔지오(NGO)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결성되어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 결사체이다. 따라서 다원성을 중요한 원리로 삼는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에는 다양한 시민단체가 있다. 기능적 차원에서 크게 주창활동을 하는 단체,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단체, 대안사회를 실험하는 단체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시민단체의 재정적 원천 또한 다양하다. 정부는 세금을 걷어서 재정을 충당하고 기업은 재화를 팔아서 재정을 확보하지만, 시민단체의 재정은 회비, 기부금, 정부지원금, 서비스요금, 수익사업 이익금 등 그 원천이 다양하다. 그리고 기부금에도 개인기부금, 재단기부금, 기업기부금 등이 있다. 자율을 중시하는 시민단체가 회비, 나아가 개인·재단기부금으로 운영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 있는 선진국의 시민단체도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시민단체의 재정 부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선진국에서나 개발도상국에서나 공통된 현상이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화일 뿐이다.
시민단체는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각종 공공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한다.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는 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인권옹호, 환경보호, 사회적 약자 지원, 문화부흥, 국제원조 등과 같은 공공성을 실현한다. 이러한 거버넌스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정의 실현과 복지사회 구현에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교육기관이나 복지기관에 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마케팅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즉, 순수한 나눔의 차원에서 기부한다기보다 주로 기업의 이윤창출 수단으로서 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기업 기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서 시장(기업) 공공성의 실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때 기업의 기부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사회공헌활동의 포트폴리오 전략으로서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윤리구매에 대응한 것이다. 소비자가 기업의 윤리경영이나 사회공헌활동까지 고려하면서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의 기부는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다양한 시민단체가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도 단체의 정당성에서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서비스생산 단체보다는 권력감시, 정책제안 등 주창활동을 하는 단체의 정당성이 더욱 문제가 된다. 주창단체도 정부권력, 기업권력, 언론권력, 토호세력, 이익집단 등 견제하는 대상이 다양한데, 기업권력을 감시하는 단체가 기업 기부금을 받으면 정당성이 더욱 훼손될 것이다.
지금 피기부자로 논쟁이 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는 일종의 중개형 시민단체에 속한다. 자금을 모금하여 필요한 곳에 배분하거나, 기부금을 받아 공공정책을 생산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민단체와는 달리 모금이 단체의 주요사업에 속한다. 모금이론에서 ‘20 대 8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전체 기부자의 20%가 전체 모금액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금 전략에서는 큰돈을 주는 기업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이때 기부자가 대기업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에 취직한, 사회적으로 유능하다고 하는 청년이 부도덕하다고 낙인찍어야 한다.
시민단체가 기업에 기부를 요청하지 않으면 기업의 기부금은 줄어들거나 시민사회의 다른 기관으로 갈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자기 필요성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의 추진을 위해 기업에 기부를 요청하게 된다. 후산업사회에서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하므로 앞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기업의 기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초빙교수


자선과 로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자선사업 직접 수행 가능한 기업이

제3의 단체에 기부금 주면서까지
비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기부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검증과 관련하여 시민단체가 받는 후원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설립 취지를 보자면, 정부기관을 감시할 비정부기관(NGO)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서는 아니 되고, 영리단체를 감시할 비영리단체(NPO)는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원칙적으론, 각종 기부금은 누구 돈이든 제대로 쓰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돈은 글자 그대로 돌고 도는 것이라 그 돈을 영원히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기 곤란하고 주머닛돈과 쌈짓돈을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탐관오리로부터 금은보화를 빼앗아 억울한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처럼, 비록 법치주의에 위배된 것이지만 나쁜 사람의 돈으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구 돈이냐를 너무 강조하는 것은 패거리 문화의 연장일 때가 많다. 글 내용이나 발언 내용에 관계없이 특정 언론매체에 글을 쓰거나 출연하는 것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는 줄서기를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언론매체이냐는 것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한 것처럼, 기부금의 출처보다 기부금의 사용 내역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돈을 기부해준 악당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실은 그들을 응징하면서 동시에 다른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주장은 옳을까? 그러한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돈을 준 악당도 그 시민단체에 로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남을 도와주기 위한 순수한 동기였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돈 준 악당의 입장에선 겉으로 자선행위를 하고 속으론 로비도 하는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은 기부 행위가 기부 자체로만 끝나지는 않을 때가 많다. 돈을 기부한 사람은 돈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일종의 대가를 기대한다. 대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정 행위를 해주거나 아니면 반대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아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각종 금품수수 피의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금품을 받았다고 강변하는 것은 매우 황당하다. 남에게 베풀기에 인색한 사람이 돈을 나에게 줄 때에는 나에게 무슨 대가를 바라게 되어 있다.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남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은 후안무치하고 뻔뻔한 사람이다. 받았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의리에도 맞고 인지상정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돈을 잘 쓸 수 있는 단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아 그들을 대신하여 사회적으로 좋게 잘 쓴다면, 그것은 어떤 사회적 기대에 부응한 올바른 대가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돈 준 사람이 할 수 없는 행위를 대신 잘 해줄 수 있으면 그것은 좋은 의미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렇지만 기부금을 낸 단체가 그 자선사업을 직접 잘 수행할 수 있다면, 기부금을 준 의도가 순수했다고 보기 힘들다. 자기가 직접 더 잘할 수 있는 좋은 일을 굳이 남을 통해 더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추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사회기여 활동을 주요 업무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돈을 낸 단체들은 자신이 직접 그 돈을 더 멋있고 더 의미 있게 쓸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만일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돈을 주었다면, 돈 준 단체는 돈 받은 단체로부터 다른 뭔가를 기대하고 돈을 주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기부금의 실제 집행 방향이 기부자의 추구 노선과 다름을 알고 주었다면 그 기부 행위는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모금을 잘하려면 주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갑을 잘 열려고 할까 하는 것뿐 아니라 왜 지갑을 열까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돈 주는 동기가 순수치 않다면 뒤에 문제되어 그 모금단체의 브랜드 가치도 저하되어 좋을 것이 없다. 지속적인 모금을 위해서는 기부자의 뜻과 일치하면서도 기부자가 실제 잘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부금 집행 방식을 보유해야 된다. 기부금 집행 방식이 기업 관련 복지재단과 별다르지 않거나 혹은 반대로 상충하는 것이라면, 기업을 감시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기업의 돈을 가려서 받아야 한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