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원자력 신화 가면 벗기면 ‘탈핵’ 전환시대의 논리 보인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 원전 실체 이해 길잡이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해 2030년 탈핵 원년 제안
  
                                                   ▶관련기사/ 독일 11시간 생방송 끝장토론, 원전 완전폐기 결정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핵’을 말하는 목소리가 부쩍 잦아졌다. 원자력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두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원자력 드라이브 정책에 가속을 붙이고 있던 마당에 터진 후쿠시마 사고가 다행스런 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최근의 탈핵 담론은 각종 토론회나 단행본 등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반 원자력’을 넘어 ‘탈 원자력’을 추구하는 이런 움직임은 아직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확산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원자력의 30여년 역사 상 처음 있는, 원자력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로서 주목을 받을 만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기획한 책 (김명진 김현우 박진희 유정민 이정필 이헌석 지음/이매진/1만원)는 그런 대표적인 지적 작업의 결과물이다. 보수 언론과 정부가 제공하는 원자력에 관한 편향된 정보에 답답함과 갈증을 느꼈다면 이 책은 원자력에 관한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쪽이 되지 않는 작은 책이지만 핵에너지 이용의 역사를 일별해 그 성격을 밝히고(김명진), 우리나라 원자력 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유정민), 우리나라 원전의 실태를 훑어보고(이헌석), 독일의 탈 원자력 노선을 분석하며(박진희), 우리나라의 탈핵 시나리오를 제시(김현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출발한 원자력 이용, 마무리도 정치적 사회적 선택이어야


원전에 미래가 있는가. 비 내리는 원전 단지를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이종찬 기자
‘탈핵’을 하려면 그 출발인 ‘입핵’이 어땠는가 알아야 한다. 이 책을 보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됐다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원자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가 끝난 뒤 육군과 핵 주도권을 다투던 해군이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하면서 최초의 경수로 형 원자로를 채용하게 됐다. 

소련이 전력 생산용 원자로 개발에 나서고 이를 이용해 국제적 영향력 넓히는 것을 우려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유엔 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선언하고 개도국에게 원자력 원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추진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결국 이 책에서 이현우가 지적한 대로 “핵 발전은 시작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반대인 탈핵도 정치적 사회적 선택이어야 한다. 안전성 논리나 경제성 논리만으로 원전의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노후 원전 반대 시위. 홍용덕 기자
우리가 후쿠시마 사고를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정책은 일본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21기의 원전을 운전 중이고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을 59%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숙원이던 원전 수출에도 성공해 새로운 수출 전략산업으로 키울 의욕에 차 있다. 

유정민은 한국과 일본이 모두 중앙 집중적 계획과 지원을 통해 원전산업을 육성하면서 원전 계획과 운전에서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공급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펴면서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은 뒷전에 놓였고 재생에너지 개발은 미미한 상태에 머물렀다.

원자력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대책 못 돼

특히 유정민은 전체 에너지 가운데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위치가 종종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2008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에너지 소비 가운데 17.2%가 전력이고 그 가운데 13.5%만이 원전을 통해 공급된다. 결국 원전이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아무리 원전을 늘려봐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또 하나는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에 기여한다는 착각이다. 고속증식로와 핵연료 재처리가 비용과 기술의 문제로 현실성이 없는 상태에서 우라늄의 재고는 30년 정도면 소진된다. 또 원전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시스템이 불안정해 대규모 정전사태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원전은 전기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기 때문에 수송용 석유 등을 대체할 수 없어 에너지 안보에 큰 기여를 하기 힘들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원전 중심의 전력 시스템, 성장과 공급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독일은 그런 전환을 위한 유력한 모델이다.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주요한 산업국가로서 후쿠시마 이후 보수 정권이면서도 탈핵 정책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례는 원자력 없이 산업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구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특수성도 안고 있다. 이 책은 독일이 지난 40여 년 동안 탈핵과 재생에너지 미래를 위한 사회적 성찰, 치열한 운동, 정책적 대안 마련 등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정책이 있을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탈핵 시나리오’는 이렇다. 전체 에너지 소비의 6%, 전체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핵 발전의 비중을 대체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여기서 생기는 전력 부족분은 에너지 수요 관리와 효율화로 해결한다. 또 낡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며 전력 부족분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충당한다. 2030년은 탈핵의 원년이 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아직 시론일 뿐이다.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정치권의 의지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산업계의 협조 없이 나오기 힘들다.


갤럽 여론조사
우리나라 사람들의 원전에 대한 지지는 매우 확고하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2010년 상반기 매달 조사한 결과 ‘안전하다’는 응답은 평균 70.2%에 이르렀다. 올해 후쿠시마 사고 직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은 55.2%로 ‘안전하다’는 응답 41.9%보다 많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꽤 높은 편이다. 

갤럽의 조사를 보면 원자력에 대한 이런 믿음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중국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이 조사에서 원전의 추가 건설에 대해서는 찬성(50.8%)과 반대(46.2%)가 비슷했고, 오차범위 안에서 찬성 응답이 오히려 더 많았다. 원자력에 대한 정부의 오랜 홍보는 원자력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 대중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원자력은 기술자립, 핵 주권, 민족적 자긍심 따위의 정치적 후광을 두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탈핵’은 이 책 뒷 표지에 적혀있는 "원전 지옥, 탈핵 희망!"이란 광고 문구처럼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코 탈핵이나 찬핵이냐 가운데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찬핵이냐 반핵이냐의 논란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은 원전에 미래가 있느냐, 없다면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물을 것이다. 시민의 뇌리에 자리 잡은 원자력에 대한 신화는 그 과정에서 깨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논란과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독일의 탈핵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주관한 원자력에 관한 시민합의회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순복음사태 누구나 궁금한 세 수수께끼


이글은 한겨레신문 휴심정 조현글방에서 퍼왔습니다.

최근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하는 조용기 목사, 왼쪽은 이영훈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제공)

세계최대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내분 사태’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사태에 대해 일반인들은 물론 신자들도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개척자로 절대적 권위자였던 조용기 원로 목사와 그 가족들에 대해 장로들이 반기를 들고 있는 모습과 내분의 와중에서 조 목사의 진짜 의중은 과연 무엇인지 수수께끼같다는 것이다.

■ 조 목사 가족 진짜 재단들과 교회 사유화하려 하나

지난 16일 기독교시민연대 김경직 목사의 폭로 기자회견은 ‘조 목사의 장남 조희준씨와 조 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이 한세대와 엘림복지타운과 (재)사랑과행복나눔을 장악한데 이어 와 교회까지 사유하려하고 있다’는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은 구문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말 송구영신 예배 때 김성혜 총장의 동생으로 조 목사의 처남인 강남순복음교회 김성광 목사 등에 의해 이영훈 목사를 비방한 유인물 1만여장이 배포된데 이어 올들어서는 이영훈 목사가 물러나고 ‘조 목사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한 최자실 목사의 딸인 김성혜 총장이나 김성광 목사가 교회 담임이 된다’는 음해성 소문이 나돌면서 장로들이 교회 당회를 통해 조 목사 가족들의 교회 내 역할을 제한하고 나섰다.
지난 4월22일 조 목사가 예배 도중 엎드려 사죄하고 순복음선교회 이사장직에서 사퇴할 때 가족들도 당회 결정에 순응할 뜻을 내비쳤으나 곧 태도를 바꿨다. 이에따라 (재)사랑과행복나눔 운영권을 놓고 김성혜·조희준 모자와 교회 장로들 간 갈등이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면서 내분은 겉잡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다.

김·조 모자가 (재)사랑과행복나눔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까지 이영훈 목사와 교회 장로들을 비방하고 나서자 장로들은 ‘조 목사 가족들의 교회 사유화 반대’문구를 플래카드로 내세워 시위를 하면서 ‘사유화 음모’를 실체화하고 있다.
그러나 김·조 모자쪽은 “엘림복지타운은 서울시 소유이며, ‘영산조용기자선재단’으로 이름을 바꾼 (재)사랑과행복나눔은 보건복지부의관리감독을 받아 자선을 베푸는 기관인데 어떻게 사유화할 수 있느냐”며 자신들을 무조건 쫓아내려는 이 목사쪽의 음모라고 반박하고 있다.

■ 장로들 왜 조 목사에게 등돌리기 시작하나
지난 5월 순복음선교회 이사장직에서 은퇴할 때까지만해도 조 목사 가족들과 달리 여전히 조 목사는 대부분의 장로들에게도 ‘존경하고 대우해야할 원로’로서 변함없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까지만도 ‘조 목사 이후’를 대비하려는 가족들의 압력에 못이겨 조 목사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식의 동정 여론이 적지않았다.

그러나 시시엠엠 빌딩에서 김성혜총장이 사용하는 사무실을 비우라는 당회 장로들의 결정에 대해 조 목사가 이영훈 목사 앞으로 보낸 글에서 격노를 표명하며 ‘새로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고 쓴 내용이 공표되고, (재)사랑과행복나눔 다툼 와중에서 김·조 모자쪽에 유리한 확인서를 써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장로들의 반발 분위기가 확산됐다.

(재)사랑과행복나눔 운영권을 놓고 교회쪽과 다투는 가족들의 손을 들어준 조용기 목사의 자필 확인서.
■ 조 목사의 진심 과연 무엇일까
조 목사가 ‘새로 교회를 시작할 수 있다’는 편지문건이 터져나올 때만해도 가족들의 ‘압력’에 의해 ‘마음에 없이’ 썼을 것이라고 추측하던 장로들도 ‘조 목사의 진심이 뭔지 모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 자신의 가족들과 교회쪽이 싸우는 와중에 최근 조 목사가 제주에서 부인과 지교회목사들과 함께 모임을 갖은데 이어 최근 부인과 함께 싱가포르에 다녀오면서 조 목사의 저울추가 가족 쪽으로 기운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장로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조 목사가 교회와 가족들 모두 버릴 수 있는 카드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동정론도 없지않다. 교회 안팎에선 무엇보다도 여전히 영향력과 권위를 잃지않으려는 조 목사의 태도 변화 여부가 최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여전히 조 목사의 결단이 사태 해결의 최대 키라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순복음 이영훈 당회장, 조용기 목사 포기하고 독자 생존 모색할까


조용기 원로 목사 이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영훈 담임목사는 지금까지 ‘스승 조 목사’의 그림자도 밟지않은 채 제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조 목사의 가족들과 맞선 것도 그를 대신한 교회 장로들이었다. 그는 언제나 조 목사를 깎듯이 모셨고, 조 목사도 이에 보답하듯 ‘가족들과 교회’간 분란의 와중에도 이 목사에 대한 신임의사를 여러차례 밝혔다.
하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절대자처럼 숭앙되던 조 목사의 위상은 예전같지않다. ‘존경하는’ 조 목사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공격을 삼가던 장로들은 이제 90% 이상이 ‘조목사 가족의 교회 사유화’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하기에 이르렀고, 조 목사가 아들 조희준씨와 부인 김성혜씨의 교회관련 조직들의 장악기도를 돕고 있다며 비난하는 장로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3년 전 조 목사가 담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여전히 굳건하던 ‘교회 내 조 목사의 위상’은 급격히 하락하는 반면 이 목사에 대한 장로들의 단결은 견고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6일 ‘조 목사 가족의 교회 사유화 음모’를 폭로한다는 기자회견을 연 김경직 목사는 “40년 전 처음 조 목사를 만났을 때는 예수님인줄 알고, 옷만 만져도 모든 병이 나을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돈과 권력만 쫓는 황금만능주의자”라고 비판했다. 조 목사에 대한 ‘절대화’가 균열한 일례다.

‘은인자중’의 상징이었던 이 목사의 태도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목사는 지난 주일이던 14일 교회 장로회 조회에 참석해 “시집을 가 봉사와 귀머거리로 지낸다는 3년이 넘었다”면서 “지금까지는 원로목사님과 장로회를 관망만 해왔으나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혀 장로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 목사는 또 그동안 조 목사와 그 가족들로부터 교체 요구를 받던 허동진 장로회장에 대해서도 유임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목사가 이처럼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무게중심이 모아지고 있는 이 목사가 어떻게 ‘문제 해결’에 나설 지 주목되지않을 수 없다. 

2011년 8월 21일 일요일

공공연한 생각, 극단적 표현

이글은 한겨레신문 르몽드디플로마티크기사를 퍼왔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연쇄테러의 혐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남긴 글을 보면, 이번 사건이 정신이상자의 순간적인 광기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상당 부분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이 공유한 사고에서 비롯됐고 여러 해 동안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브레이비크에게 이번 범행은 다문화주의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성격을 띤 정권 및 사회에 대한 투쟁이자, 이슬람의 침략과 식민화 위협에 대한 저항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는 노동당이 추진한 다문화주의 정책에 의해 이민자가 늘어나고 다문화적 상황이 심화돼,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전통적 삶의 방식과 정체성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1세기 전 미국 근본주의와 닮아

노동당의 이민정책에 대한 평가에는 이견이 있겠지만 이민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탈냉전 이후 동유럽·중동·아프리카 등 세계 여러 분쟁 지역에서 양산된 난민의 수용, 유럽연합(EU) 가입에 따라 요구받은 개방정책 등으로 이민자가 급증해 현재 그 수는 전체 인구 470만 명의 12% 정도로 추산된다. 브레이비크는 이런 ‘잘못된 상황을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부 청사나 노동당 청년 당원 등 노동당 테러를 응징 방법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행위로 시작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일종의 선언문인 ‘2083년 유럽 독립전쟁’에서 브레이비크는 성이나 가족과 관련한 언급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 말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외부에서 쉽게 지칭하듯이, 근본주의적 기독교 신앙이 그의 행위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검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명의 충돌’(새뮤얼 헌팅턴)이든 ‘근본주의의 충돌’(타리크 알리)이든 1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에 적용된 문화적 차원의 해석은 성급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사고가 근본주의와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터넷 문서에서 브레이비크가 적으로 규정한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타 문화와 타 인종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1세기 전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를 촉발한 바로 그 요인들이다. 19세기 말 미국 기독교 집단에서 태동한 일련의 경향 또는 운동을 가리키는 개념인 근본주의는 무엇보다 당시 후발 자본주의국 미국 사회가 경험한 급격한 사회변동의 산물이었다.

근본주의는 변화와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다. 개방적인 신학, 전통적인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페미니즘, 전통적인 위계질서·종교·관습에 대한 위협으로 여긴 마르크스주의, 새로운 존재로서 이민자에 대한 증오는 근본주의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20세기 말 이슬람 근본주의 역시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전쟁이자 프리섹스와 퇴폐적 대중문화로 간주된 서구문화의 유입에 대한 거부였다.

비록 몇몇 사례에 국한됐지만, 이번 사태와 관련해 유럽 극우파는 테러라는 방법은 틀렸을지라도 브레이비크가 추구한 대의에는 공감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북부동맹의 중진 의원 프란체스코 스페로니는 “유럽이 유라비아가 돼가는 상황에서 서구 기독교 문명을 지켜야 한다는 게 브레이비크의 생각이라면 나는 그에게 동의한다”고 했다(<한겨레> 7월 29일자).

그런데 유럽 극우파의 이런 대담한 입장 표명은 브레이비크의 견해가 이미 상당 정도 대중화된, 심지어 극우파뿐 아니라 온건한 우파 정치인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견해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한편으로는 공식적으로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견해이지만 이것의 상당 부분은 현 유럽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에서 빌려왔다. 자신의 일기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에 대한 환멸을 표현했지만(<르몽드> 7월 28일자), 그의 견해는 탈냉전·세계화 시대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지지 세력을 넓혀와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 않게 된 지배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가 백인사회의 전통을 훼손한다거나 인구학적·문화적으로 서구사회가 이슬람의 위협(Green Threat)에 직면해 있다거나 하는 그의 논리는 정치가들이 선거 등 공론장에서 오래전부터 효과적인 선전 수단으로 사용해온 것들이다. 유럽의 경우 탈냉전과 함께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가고 이민 문제가 좌우를 확연하게 가르는 거의 유일한 잣대가 되었다. 고용·국방·환경·복지 등 대부분 분야에서 좌파와 우파는 수렴의 경향을 보이며, 이들 간의 차이는 상반되는 철학에 입각한 질적 차이가 아니라 대중이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미묘한 양적 차이가 되었다.

유럽 정치계의 수많은 브레이비크

그런데 핵심적인 정치적 이슈가 된 이민 문제는 우파, 특히 극우파에게 유리한 사안이었다. 자신의 형편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파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투쟁 대상으로 삼아야 할 세력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에서 만병통치약같이 제시되는 우파의 단순화된 이민 담론은, 대중에게 좌파의 정교하고 난해하고 다소 계몽적인 담론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유럽에서 극우주의는 담론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이제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있다. 여러 나라에서 이들은 정권을 쥐고 있거나 제2당, 제3당으로 제도권 정치에 안착했다. 1980년대에 부활해 선거제도나 언론 등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다.

대테러 전쟁이 호전적 문명 담론을 지속시키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도 극우주의의 반이민·반이슬람·반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주변적 위치에 있지 않다. 노르웨이의 반이슬람·반이민 경향,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여, 리비아 공습 참여는 이런 세계적 흐름과 함께한다.

브레이비크와 극우세력의 사고가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에 대한 논의에서 나타나는 ‘이민에 관용적인 선한 백인 대 악한 백인’의 이분법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유럽의 비유럽 이민자에게 적용된 ‘선한 무슬림 대 위험한 무슬림’의 이분법을 닮은 이 논리는 이번 사태를 노르웨이의 노동당 정권과 이 정권의 이념인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축소할 수 있다.

아직 사태 수습과 진상 규명이 급선무이지만, 이번 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도 언급되고 있다. 우선 치안 차원의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노르웨이 경찰의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조차 왕가나 핵심 정치인 경호를 맡은 경우를 제외하면 일상적인 무기 소지를 금지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 이와 함께 아직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범죄율에도 불구하고 최근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에 대응해 경찰력 증강과 무기 소지 허용 등이 필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치안 활동을 이슬람 단체에 집중한 탓에 이번처럼 다른 형태의 위험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르몽드> 7월 27일자).

착한 백인 VS 악한 백인?

다른 한편으로, 브레이비크가 비판한 관용적 이민정책을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최근 관용이 약해졌고, 이번 사태도 이런 변화의 결과이며, 따라서 더 관용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자 추도식에서 더 많은 관용을 호소하고 개방적인 이민정책을 재확인한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와 국민의 절제된 태도에 대해 외부 세계는 9·11 테러 때 부시의 미국이 보여준 호전적 대응과 대조적이라며 경의를 표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극우주의 및 인종주의의 부상을 막을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배제된 세계’에 대한 고려만이 극우주의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사회적 배제 문제를 해결하고 배제된 계층의 상황과 심리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이민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들의 집에 불을 지르거나, 모스크·시너고그(유대교 회당)·묘지 등 이슬람이나 유대교 관련 시설 파괴 같은 폭력만이 인종주의 범죄의 전부는 아니다. 인종주의 범죄는 제도적인 인종주의와 동네·학교·가게 등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공간에서의 일상적인 인종주의, 경찰 인종주의, ‘창구의 권력’이라고 불리는 이민자 관련 기관 담당자들의 차별적인 태도 등 사회 전반에 확산된 다양한 형태의 인종주의를 토양으로 해서 자라난다.

그들의 팍팍해진 삶에 주목해야

좀더 기술적인 차원에서 극우주의와 인종주의가 확산되는 것이나 이 사상이 폭력적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막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상당수의 주류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도 극우파의 견해를 공유하지만, 극우파는 제도권 정치나 주류 언론 등에서 많은 배제를 경험했다. 브레이비크도 ‘2083 유럽 독립선언’에서 합법적 수단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폭력 사용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자신의 글을 보낼 대규모 메일링 리스트를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점도 자신의 사상을 확산할 공론장이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민족문화를 지키는 데 장애물로 거론한 대상에는 노동당과 더불어 국영 언론사와 언론인도 포함돼 있다. 그의 블로그 기사에 따르면, “국영 언론사의 100%”와 “노르웨이 언론인 98%”가 이 장애물에 포함된다(The slaugter in Oslo, www.wsws.org, 2011년 7월 25일자 기사).

그렇다고 이들의 언로를 열어주고 이들을 정상적 집단으로 간주하는 것이 극우주의의 폭력적 표현을 예방하는 길인가? 여기에 ‘어떻게 인종주의에 대처할 것인가’에 관한 딜레마가 있다. 해악적인 존재로 간주해 무시하고 시민사회와 공론장에서 배제해야 하는가? 아니면 통합시킬 것인가?

근대 이후 세계는 종족 간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잘 보여준다. 같은 민족이라도 출신 지역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거나 가정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외모도 다르고 종교나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과 이웃이 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도전임이 틀림없다. 이 이방인이 우리보다 훨씬 못사는 나라에서 왔을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제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에 호소하는 것에도 한계가 생기고, 개개인의 의식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런 노력조차 토박이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종족 간 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자각해야 한다. 단순한 계몽으로 해결될 수 없는 종합적인 과제이며, 어설픈 계몽은 오히려 인종주의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인종주의에 대한 진화론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이자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모델’로 칭송받는 나라 중 하나인 노르웨이에서 야만적인 일이 일어난 점에 외부 세계는 매우 의아해했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는 경제나 복지 수준과 인종주의가 반드시 반비례 관계에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브레이비크의 테러와 함께 이제 인종주의 및 인종주의 폭력이라는 몹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가 현대를 사는 인류 모두에게 제기된 것이다.

글•엄한진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주의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뒤 이슬람주의, 이민, 종교와 정치 등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저서로 <다문화사회론>(소화·2011)이 있다.

2011년 8월 20일 토요일

고문경찰

이글은 한겨레신문 오피니언 hook에서 퍼왔습니다.

역사가.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베를린자유대학교 한국학과 임시학과장, 보훔대학교 한국학과장 대리, 독일 막스 플랑크역사연구소 초빙교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 게임>, <한국의 예언문화사>,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 <조선사회사 연구> 등의 저서와 <미시사와 거시사>, <미시사의 즐거움> 등의 번역서 등이 있다. 신문과 잡지에 연재한 글도 적지 않다.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백승종의 역설>, <갓 쓴 양반들의 성담론> 등이 있다.

그리스 사람 제논은 변증법까지 발견한 훌륭한 철학자였지만, 왕의 비위를 잘못 건드렸다가 고문 끝에 죽었다. 고문에는 성역도 없었고, 그 기술은 역사와 더불어 악랄함을 더해갔다. 일제 때 조봉암은 손가락이 부러지는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이런 강단은 너무나도 보기 드문 일이다. 웬만한 사람은 삼대처럼 꺾이기 마련이라, 권력자들은 정적을 고문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때가 많았다. 조선시대 사화와 당쟁 때도 으레 고문이 등장했다.

고문금지가 사상 최초로 명시되기는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에 이르러서였다. 그 뒤 서양 각국은 경쟁적으로 고문을 금지했다. 실효는 별로 없었지만 일반의 인식은 점차 바뀌어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함으로써 고문폐지를 인류의 과제로 언명했다. 그래도 고문은 끝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해 각국의 독재자들은 고문을 무기삼아 영구집권을 노렸다. 인권모범국가로 자처하는 미국조차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포로들에게 갖은 못된 짓을 다했다.

이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쾌거도 있다. 최근 프랑크푸르트 법원은 독일정부에게 한 아동유괴범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03년 독일경찰은 은행가의 아이를 유괴한 이 범인이 체포되자 고문을 가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선의의 위법행위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판사들은 “이 경우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경찰의 변명을 일축했다. 인간존엄의 원칙을 존중하는 판사들이 건재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시민이 많은 독일이 부럽다.

근본적인 입장에서 보면 조봉암이 퍽 옳았다.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일을 없애고, 또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중략)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게, 행복”하게 살자고 그는 주장했다. 이런 요구를 했다고 이승만은 권력의 셰퍼드 고문경찰을 앞세워 그를 형장으로 내몰았다.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또 어쩔 것인가. 자본의 고문은 아직 진행형이다.

자본주의 새판짜기와 한국의 희망버스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 공동편집인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반작용 시계추가 어떤 새로운 판짜기에 이를지, 어느 지점에서 더 높은 균형에 도달하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여전히 과거의 관성이 짓누른다. 또 대립하는 여러 힘들이 서로 다툰다. 2008년 위기 이후 세계는 어찌 돌아가고,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전환점으로 자본주의의 새로운 판짜기를 위한 움직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위기는 극단에 치달은, 고삐 풀린 자유시장 자본주의가 어떤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생산적 기능의 죽음을 낳은 자본의 탐욕과 거대한 투기화, 대공황 이래 최악의 부채 거품, 그리고 노동권 및 분배·복지의 실종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미국은 토지주택, 화폐금융 그리고 인간노동의 과잉시장화가 몰고 온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안전, 즉 이중의 의미에서 ‘폴라니적 모순’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했다.

7월9일 밤 전국 각지에서 제2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시민들이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로 가기 전 부산역 광장에 모여 비를 맞으며 문화제를 열고 있다.

\삶의 불안과 사회적 불안정, 이중의 모순
반면 떠오르는 아시아의 새로운 용(龍), 중국 경제는 시장의 고삐를 잡아 관리하면 얼마나 거대한 규모로 폭발적·압축적으로 생산적 부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장의 고삐를 풀어 저물게 된 미국과 고삐를 잡아 새롭게 떠오른 중국, 두 나라 운명의 갈림은 2008년에 갑자기 나타난 일은 아니다. 공교롭게 21세기를 시작하는 2001년은 두 나라의 희비가 엇갈리는,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상징적 해였다. 미국의 고삐 풀린 금융주도 자본주의에서는 1990년대 ‘신경제’ 성장의 끝자락에서 정보기술(IT) 거품이 붕괴됐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동산 거품을 띄워 2008년 금융위기로 가는 자기 무덤을 팠다. 반면에 신흥 제조업 강국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의 여세를 더욱 몰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제2의 개방을 단행해 ‘세계의 공장,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하는 새 모멘텀을 구축했다. 그렇지만 미국이 기울고 중국이 떠오른다고 해서, 미국식 발전 패러다임인 ‘워싱턴 컨센서스’가 파탄나고 중국식 발전 패러다임인 ‘베이징 컨센서스’가 뜨게 되었다고 해서 중국이 2008년 위기 이후 글로벌 대안 모델이 됐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중국은 여전히 못사는 나라이고 추격 모델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TO 가입 이래 본격화된 고환율·수출지향 모델은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안으로는 계층·지역 간 불균형과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 통계의 신뢰성에는 문제가 많지만, 지표상으로는 한국보다 더 심하게 나타난다. 밖으로는 대미 무역 흑자, 과잉 보유 달러의 미국 환류에 기초한 아시아와 미국 간 불균형한 의존 구조가 파괴돼 ‘글로벌 리밸런싱’이 진행 중이다. 이는 수출 독주와 수출·내수 양극화로 치달은 성장 체제의 경로 수정을 강제하고 있다. 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뒤덮는 황사에서 보듯, 환경문제가 극심하다.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정치적 낙후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이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어떻게 선진 민주복지 국가로 전환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국은 앞으로 상당 기간을 저물고 있는 미국과 ‘차이메리카’(Chimerical)의 공생관계를 도모할 공산이 크다.

한국판 ‘물극필반’ 운동
그러나 정작 어두운 곳은 등잔 밑이다. 진짜 걱정거리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그런대로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신이 누군지조차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정치적 민주화 이후,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추구하는 발전 모델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이 부분에서 한국이 표류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의 한국 경제는 그간 이명박표 신자유주의 ‘역주행’ 전략, 또는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으로 인해 민주복지 국가로 가는 데 쏟아야 할 아까운 시간을 까먹고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폴라니의 말대로 고삐 풀린 시장만능주의의 역주행에 대한 반작용으로 광범한 사회적 대항운동, 즉 한국판 ‘물극필반’ 운동이 일어나게 됐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공로는 적지 않다. 오히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도한 자유주의적 민주정부 때는 현재와 같은 광범한 노동·시민 연대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이는 역설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보수의 국정 무능력을 여실히 폭로한 이명박 정부는 적어도 세 차례나 기회를 잃었다. 출범 때 과거 민주정부 시기에 대한 평가, 촛불시위에 대한 대응 방식,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대책이 그것이다. 모든 문제는 정부 출범 때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비롯됐다. 이 정부는 이전 자유주의 민주정부 10년이 초래한 한국 경제의 문제를 ‘좌파 정책’ 또는 ‘좌클릭’ 때문이라고 진단한 뒤, ‘우클릭’이 해답이라고 봤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씨는 일찍이 이명박 정부의 태생적 난점을 다음과 같이 짚은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바로 자신을 출범하게 한 그 정치적 포장에 갇히게 되어 국민 지지 기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이게 됐다. 지난 10년간 진행된 서민경제의 어려움은 성장률 저하에도 기인하지만 소득과 부의 양극화, 개방과 경쟁 심화에 따른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양극화 심화는 좌파 정책 때문이 아니라, 경쟁과 개방을 강화하는 보수적 정책에 의한 것이다. 바로 그런 데서 기인한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극도로 우파적인 경제정책 기조로 살리겠다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다. 진단이 잘못됐으므로 처방도 잘못된 것이다.”
이처럼 애당초 자기 함정을 팠던 이 정부는 촛불시위와 마주해 신(新)공안정치로 대처하더니, 2008년 위기 때는 미국의 부시를 본뜬 ‘두 개의 대한민국’과 허망한 ‘낙수효과’(떡고물 효과) 전략을 밀고 감으로써 그 함정을 더 깊이 팠다. 고환율-부자감세-규제완화 정책를 통해 ‘재벌 주도의 수출경제’와 ‘부동산-토건 경제’를 두 축으로 해서 돌아가는 이명박 모델의 귀결에 대해서는 굳히 긴 말이 필요 없게 됐다. 이 대통령이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불통’ 보수파는 여전히 민주복지 국가의 새 시대정신에 역주행하고 있으나, 이미 한나라당조차 변화에 착수해 민주당과 다툴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왜 실패한 걸까? 흔히 이 정부의 정책 기조를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라고 말한다. 여기서 개발주의란 주로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토건 개발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명박식 개발주의와 박정희식 개발주의의 중요한 차이에 대해 몇 마디 말하고 싶다.

85호 크레인과 민주화의 역설
이명박식 개발주의는 국가가 재벌과 지배연합을 구축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발언을 짓누르고 재벌에 온갖 퍼주기를 했다는 점, 그렇게 ‘계급구조적 이윤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박정희식 개발주의와 거의 같다. 그러나 박정희 방식이 재벌에 대해 성과규율의 고삐를 쥐고 있었던 반면, 이명박 방식은 규율의 고삐를 완전히 놓았다는 점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 이는 보수든 진보든 잘 안 보는 지점이다. 금융의 고삐도 놓아버렸다. 노동시장도 마음껏 유연화했다. 물론 개방의 고삐도 놓았는데, 고삐 풀린 전면 개방은 대니 로드릭이 말했듯이, 민중의 민주적 자기 통치권에 족쇄를 채울 뿐 아니라 자본에도 자유로운 탈출구를 열어줘 국가의 대외적 자율성과 자본권력에 대한 자율성을 빈껍데기로 만든다. 그러니 ‘삼성공화국’ 총수 이건희 회장이 정부 정책에 대해 “낙제점은 면하는 수준이다”라고 겁없이 말해도 길들일 도리가 없다. 그동안 열과 성을 다해 고환율, 부자 감세, 각종 규제완화 정책으로 재벌에 일방적으로 퍼주고 서민과 노동자, 자영업과 중소기업의 목을 졸라주었는데도 말이다. 
정부, 국민경제, 서민대중 모두 재벌에 발목이 잡힌 꼴이 됐다. 또 한 가지, 이명박 대통령과 박정희는 둘 다 재벌 주도의 수출지향 정책을 추구한 점은 같지만, 그 효과는 다르다. 대외개방과 재벌권력에 대해 나름대로 고삐를 쥐고 있던 박정희 방식은 국민적 파급효과를 낳은 반면, 이명박 방식은 떡고물 효과도 낳지 못한 채 양극화만 심화했다. 그리고 고용불안과 고용 없는 성장, 무분별한 개방이 낳는 다수 대중의 불안정한 삶에 대해 복지를 확충하기는커녕, 겨우 시작한 국가복지마저 후퇴시켰다. 요컨대 이명박표 ‘강부자’ 정권의 실패는, 아무리 보수 정부라고 해도 국가가 특정 기득권 세력의 포로가 되지 않게 최소한의 규율 고삐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 결코 발가벗은 사익 권력으로 타락해서는 안 되고 최소한의 공공성 체신은 갖춰야 보수도 산다는 교훈을 망각한 데 있다. 
그런데 이명박표 두 개의 대한민국 전략이 실패했다면, 노무현 시대를 이어받는 것으로 족할까. 잘 알다시피, ‘대통령 이후 대통령의 성찰’을 수행하며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키웠던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집권기에 노동시장의 과잉 유연화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 복지의 지체에 대해 자기비판을 한 바 있다. 친노 세력과 지식인 중 누가 이만한 성찰력을 보여주었나? 그러나 그런 노 전 대통령조차 삼성공화국 상황까지 낳은 재벌 체제 개혁 실패, 그리고 돌진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나아간 무분별한 개방의 반민주적·반국민경제적 효과에는 끝까지 침묵했다. 또 그는 김대중 정부에 이어 고환율에 기반한 ‘재벌 독식의 수출 독주-내수 빈혈’의 양극화 축적 체제를 밀고 갔다. 부동산 문제도, 금융은 거의 다 풀어놓고 가격 규제도 미약한 상태로 부동산 보유세에만 매달리는 답답한 처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김진숙이 싸우고 있는 85호 크레인 자리에서 김주익이 목매 하늘나라로 간 것도 슬프게도 참여정부 때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정부 시기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른바 ‘민주화의 역설’이 나타나고 지지 기반이 허물어진 것은 좌파 정책 때문이 아니라,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 정책, 즉 ‘민주주의에 역행한 자유화’와,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두 갈래로 찢어진 민주주의의 역풍 효과였던 것이다. 
밖으로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겪은 뒤, 안으로는 자유주의적 민주화 역설과 뒤이은 MB식 시장만능주의 실패를 체험한 뒤 한국의 대중은 다시 깨어나고 있다. 과잉시장화의 폴라니적 모순에 대항해 사회적 보호와 연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새판은 어떻게 짜일까. 보수의 ‘선진화’ 기획을 뒤엎을 수 있는 복지국가 깃발이 새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명박 이후의 보수’도 복지국가를 내세운다. 복지국가 시민정치운동은 까먹은 시간을 만회하는 운동으로 그칠까, 아니면 지난 민주정부와 여전히 미약한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판 보편복지 국가를 착근시킬 새 동력을 만들어낼까. 시대정신의 빛은 밝은데 이를 구현할 시대의 몸은 정신을 따라가지 못한다.

보편복지의 문, 좁지만 넓은
노동세력이 주도하지 않는 복지국가 운동이라니? 민주화 시대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국가와 재벌 지배연합이 주도한 1961년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의 덫이기도 하다. 더 위로는 1953년, 1948년 체제로 소급되는 약한 진보의 아픔이 서려 있다. 문제는 단지 노동의 힘이 약한 데만 있지 않다. 복지국가 건설이란 곧 국가를 경유하는 공적 연대를 구축하는 일인데 그 사회적 신뢰 기반이 얕다. 각자도생과 불신의 벽을 넘어 보편적 동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공적 주체력 부족이 문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편복지 정치는 약한 노동, 약한 신뢰라는 한국적 조건에서 계급을 가로질러 보편적 동의와 연대를 구성할 수 있는 전략이라는 바로 그 점에서 진보 헤게모니 깃발에 값한다. 한국에서 보편복지의 문은 좁지만 넓다! 최루탄, 물대포, 경찰곤봉, 천민자본의 탐욕을 넘어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희망 버스’의 연대력은 어떤가. 노동·시민의 연대 역량, 배제된 하위 주체와 다중 주체의 광범한 열린 연대를 통해 복지와 노동, 평등한 자유와 사회공공성이 상생하는 모두의 나라를 열려는 창의와 열정이 한 줄기 푸른 희망이다.  
lbch@kangwon.ac.kr

2011년 8월 19일 금요일

미국, 제3차 ‘양적완화’ 손 벌릴까?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에서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Ⅱ]지속되는 달러 위기 ②
여경훈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원
중앙은행이 총수요를 자극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은 기준금리 인하다. 그러나 미국처럼 기준금리가 0%까지 내려가면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다. 장롱 속에 현금을 보관하는 편이 낫지, 오히려 이자를 주면서까지 돈을 빌려주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통상 이 시점에서 명목금리는 제로하한(Zero Bound)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물론 유사 이래 한국 경제는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이런 상황에 부딪혔고, 일본 경제는 이미 1999년 초반 제로하한에 도달했다. 이때 붕괴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은 무엇일까?

2차 양적완화, 중앙은행 자산만 비약적 증가
유동성 공급 확대다. 즉, ‘가격’ 변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양’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크게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기준으로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유동성 부족 문제로 간주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7년 12월부터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시장이 총체적으로 붕괴하자, 정책수단에 변화를 가져왔다. 부동산 파생상품의 증권화 과정과 관련된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단기신용시장에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통상 민간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금공급, 이에 따른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상 자산구성의 변화를 초래하는 프로그램을 ‘신용완화’(Credit Easing)라 부른다. 즉, 민간 금융회사에 예외적인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민간 금융자산을 중앙은행이 매입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에 비해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란 중앙은행의 장기국채 매입과 이에 따라 대차대조표의 규모 확대를 가져오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따라서 2008년 12월~2010년 3월 1725조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과 국채를 매입한 프로그램을 1차 양적완화(QE1)라 부른다.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MBS와 장기국채를 대량 매입해 침체된 주택시장을 부양하고 장기금리를 내려서 실물경제를 회복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FRB의 양적완화 효과가 끝난 직후, 미국 경제는 다시 침체로 빠져들었고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가 시장에 팽배했다. 이런 시장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버냉키는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2차 양적완화(QE2)를 시사했다. 11월부터 6천억달러에 달하는 장기국채를 추가로 매입했다. 그러나 요란하게 시작한 2차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지난 6월 말 소리 없이 종료됐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될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미국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 FRB의 총자산 규모는 대략 9천억달러에 달했다. 2007년 여름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직후 실시한 신용완화 프로그램에서는 총자산 규모에 큰 변함이 없었다. 다만 자산의 구성상 단기국채가 감소하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 대한 단기대출이 증가했다. 그러나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1차 양적완화가 시행된 뒤 대차대조표상 총자산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된 지난해 3월 말 2.3조달러로 증가했고, 2차 양적완화가 끝난 6월 말에는 2.9조달러까지 증가했다. 
부채 측면을 보면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금융위기 이전 평균 400억달러에 달하던 지급준비금은 현재 1.65조달러로 증가했다. 이 중 95%는 법정 지급준비금을 초과한 초과 지급준비금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지급준비금이 6천억달러 정도 늘어났는데, 이 중 98%는 초과 지급준비금이었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한 대가로 시중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했음에도, 압도적인 비중은 다시 중앙은행에 예치된 시중은행 지급준비금 계좌에 머물러 있는 형국이다.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사이에 자산의 구성상 국채와 지급준비금 간 교환만 일어났을 뿐, 가계와 기업에 대한 대출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008년 말에 비해 5700억달러 이상 줄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신규 일자리 창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소기업 대출 잔액의 경우, 1분기 기준 6090억달러로 지난해보다 8.6% 줄어들었다. 
그러면 천문학적인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미국 경제에 어떤 성과를 남겼을까? 각종 실물 및 금융시장 지표를 통해 양적완화의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우선 실업률은 여전히 9.2%로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전 5% 수준이던 실업률은 2009년 10월 10.1%까지 치솟았다. 2009년 중반부터 경기가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2년 동안 불과 0.9%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고용률은 상황이 더욱 안 좋다. 금융위기 이전 63%에 달하던 고용률은 현재 58.2%로 5%포인트 떨어진 상태다. 특히 2차 양적완화 조치 이후 실업률과 고용률 지표는 거의 변함없었다. 오히려 지난 3월 이후 두 지표는 동시에 악화되고 있다. 실업률은 3월 8.8%에서 6월 9.2%로 상승했고, 고용률은 58.5%에서 58.2%로 하락했다.
소비자물가는 2차 양적완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2%에서 지난 5월에는 3.6%로 크게 올랐다. FRB가 중시하는 근원물가 또한 같은 기간 0.6%에서 1.5%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과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도한 것이다. 즉,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FRB가 공식적으로 의도한 소비와 투자 지출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달러가치 하락과 투기적 상품 가격 상승에 따른 것으로, 양적완화의 부정적 효과가 초래한 간접적인 결과다. 
다음으로 경기 동향을 대표하는 제조업 구매력 지수를 살펴보면, 2차 양적완화 시행 전인 지난해 10월 56.9에서 지난 5월에는 53.5로 오히려 악화됐다. 주택시장의 신규주택 착공 건수는 56만 건으로 심각한 침체 국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택 가격을 대표하는 케이스실러 지수 또한 고점보다 33% 정도 하락해 2002년 중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지난해 4분기 3.6%, 올해 1분기 4.2% 떨어져 주택시장의 더블딥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실물경제 회복에 기여하지 못해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브로커가, 중국 당국의 은행대출 축소 발언으로 하락하는 주가를 지켜보고 있다(왼쪽). 금융위기 초기인 2007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한 주택이 차압돼 매물로 나와 있다.

한마디로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실물경제는 거의 회복되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을 앞두고 다시 하강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1차 양적완화가 종료한 지난해 상반기와 모든 실물경제 지표의 추세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FRB는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금리 하락을 유도해 실물경제를 부양하겠다는 의도를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러나 1·2차 양적완화 기간에 실제 장기금리는 거의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에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모습이 뚜렷이 나타났다. 
통상 중앙은행이 장기국채를 매입하면 국채의 시장가격은 상승하고, 이에 따라 수익률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히려 양적완화가 시행되기 전에 수익률이 하락하고 실제 시행될 때는 수익률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는 양적완화가 시작되기 전, 시장에 이미 양적완화에 대한 ‘투기적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국채를 보유하고 있던 금융회사는 양적완화에 대한 기대감만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게 된다. 실제 양적완화 시행 시점을 전후로 국채를 내다팔고 주식이나 원자재 등 투기적 시장으로 자금을 이동했다.
최근 장기금리는 지난 2월 3.77%까지 오른 뒤, 최근 다시 3%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또다시 양적완화가 시행될 것이라는 투기적 수요, 안전자산인 국채에 대한 수요, 그리고 실물경제 침체 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기금리가 2차 양적완화 시행 이후 거의 변하지 않은 데 비해, 투기등급 회사채 수익률은 급격히 하락했다. 예를 들어 무디스 Baa 채권의 수익률은 금융위기 직후 9%까지 치솟았으나 최근 5%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정크본드에 투자한 월가의 금융회사들은 막대한 투자수익을 올렸다. 
FRB는 공개적으로는 표명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자산 가격 부양을 의도했다. 이는 이론적으로 버냉키가 강조하는 ‘포트폴리오 밸런스’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FRB가 안전한 국채를 높은 가격에 매입하면, 금융회사는 보유한 국채를 매도한 금액으로 주식과 회사채, 그리고 원자재 상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킨다. 금융자산의 가격 상승은 대차대조표를 회복시킬 뿐 아니라, 담보가치 상승에 따른 차입 한도 증가로 자산시장의 추가적 부양을 가져올 수 있다. 주식시장 또한 양적완화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시장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을 기준으로 금융위기 직후 저점보다 거의 90%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 8월 말 잭슨홀 연설 이후 지난 4월까지 단기간에 30% 정도 주가가 상승했다. 최근 글로벌 증시가 전반적인 하락 추세를 보이는데, 이는 유럽의 부채 문제도 있지만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에 대한 월가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양적완화의 최대 수혜자 투기적 자산시장 
미국의 양적완화는 기축통화인 달러가치 하락과 환율전쟁을 초래했다. 달러는 2009년 3월의 저점에 비해 17% 정도 가치가 하락했다. 달러가치 하락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고금리와 환차익을 노린 캐리트레이드 증가를 가져왔다. FRB의 대규모 국채 매입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 국채와 달러를 매각하고 신흥국 통화를 포함한 고수익 위험자산으로 자산의 재분배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신흥국의 통화가치는 상승했고, 이는 2차 양적완화 시행을 전후로 일어난 이른바 ‘환율전쟁’을 촉발했다. 즉 양적완화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달러가치 하락을 가져왔고, 이것이 환율전쟁을 일으킨 배후라고 할 수 있다. 
달러가치 하락은 원유를 비롯한 상품시장의 거품도 추동했다. 금융위기 직후 40달러 밑으로 떨어진 원유 가격은 최근 100달러를 넘어섰다. 상품 가격을 대표하는 로이터스CRB지수는 같은 기간 68% 상승했다. 원유가격 상승은 달러가치 하락과 거의 추세를 같이하는데, 대부분의 원자재는 기축통화인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상품가격 상승의 기대는 선물시장에서 투기적 수요를 부추겨 상품가격의 추가적 상승을 가져왔다. 즉, 채권·주식·달러·원자재 등 거의 모든 금융시장을 추동하는 배후에는 기축통화인 ‘달러’를 움직이는 양적완화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한마디로 양적완화 정책은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지 않는 집단, 즉 월가에 가장 많은 수혜를 안겨다주었다. 반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즉 미국의 노동자와 가계는 가장 적은 수혜와 가장 많은 손실을 얻었다. FRB가 양적완화의 수도꼭지를 틀었으나 월가만 단맛을 빨아들였고 아래로 물이 흐르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린스펀의 ‘이지 머니’(Easy Money) 혹은 ‘그린스펀 풋’으로 대표되는 저금리 정책이나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은 이름만 달리할 뿐, 의도한 목적은 동일하다. 이른바 ‘자산시장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노린 것이다. 실제 지난해 11월3일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2차 양적완화를 결정한 다음날, 버냉키는 기고를 통해 2차 양적완화가 추구하는 목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금융 상태를 더욱 완화하면 경제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택대출금리가 낮아지면 주택 구입과 재대출이 더욱 용이하게 될 것이다. 회사채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가 촉진될 것이다. 그리고 주가가 상승하면 소비자의 재산 가치와 신뢰 증진에 도움이 되고, 이는 소비지출을 자극할 것이다. 지출 증가는 소득과 이윤을 제고해, 선순환 과정에 따라 경제성장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그러나 실업률과 주택시장 침체에서 보듯 2차 양적완화는 실물경제 회복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 버냉키가 내린 정의에 따르더라도 양적완화는 명백히 실패한 정책이다. 월가가 요구하는 투기적 자산시장 부양 효과는 달성했지만, 높은 실업률과 가계부채 부담으로 경제 전체적으로 ‘대출’과 ‘투기’가 확산되는 것을 자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득 및 자산 양극화, 가계부채에 의존하는 수요 창출, 경제의 금융화, 취약한 제조업 경쟁력 등 구조적 문제의 치유를 지연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하고 있다.

월가의 ‘활약’에 따라 QE3 시행
1차 양적완화가 최악의 경제침체는 막았다는 데서 조금이나마 점수를 줄 수 있지만, 2차 양적완화는 각종 경제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명백히 실패했다. 따라서 FRB는 3차 양적완화를 쉽게 거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FRB가 움직이지 않으면 월가에서 먼저 3차 양적완화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지난해에도 골드만삭스는 최대 1조달러의 2차 양적완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시장의 기대치를 잔뜩 끌어올린 적이 있었다. 월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자산시장 부양과 실물경제 회복이라는 FRB의 의도는 물거품이 된다. 따라서 FRB는 월가의 분위기 조성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만 2차 양적완화가 명확한 실패로 판명이 났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FRB 입장에서 3차 양적완화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년 재선 승리를 위해 버락 오바마의 처지에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경기회복이 필요하고, 재정정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3차 양적완화는 버릴 수 없는 카드가 될 것이다. 따라서 FRB는 적잖은 부담을 이겨내고, 월가와 오바마의 지원에 힘입어 3차 양적완화의 시기를 조율할 것이다. 그 시기는 미국의 실물경제 침체의 속도와 강도, 시장과 FRB를 움직이는 월가의 ‘활약’ 정도에 달려 있다. 
noreco@korea.ac.kr

2011년 8월 18일 목요일

신용평가사에는 신용이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hook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문학 전반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애쓰고 있다. 급진적 정치기획에 관심이 많으며 20대 생활학습연대조직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고 있다. http://blog.aladin.co.kr/jobonzwa

 현대 자본주의가 운영되는데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장치 중 하나는 ‘신용’이다. 자본주의에서 교환은 화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화폐만으로는 대규모 거래나 자본의 축적과 성장이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신용이다. 자연인 혹은 법인들은(채권을 발행하는 국가도) 상대방이 일정기간 후 상환 또는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인정함으로써 물건이나 돈을 빌려주거나 지불을 연기하는데, 이것을 신용이라 한다. 이러한 신용을 통해 자연인이나 법인들은 지금은 돈이 없어도 자금을 빌려 사업에 투자하고,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상업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 시대 이 신용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라 부를 수 있는 지금도 이 신용은 막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신용을 기반으로 엄청난 파생상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수천 조의 돈이 시장에서 움직인다.
그렇다면 어떤 자연인이나 법인, 더 나아가 국가의 신용은 누가 평가하고 결정하는가? 많은 기관들이 신용 평가 혹은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주목해야 할 이들은 신용평가사이다. 많은 신용평가사들 중 특히 세계 3대신용평가사라 불리는 S&P(Standard & Poors), 무디스, 피치가 세계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과 국가의 신용등급을 발표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저승사자’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행사해왔다. 이들이 매번 발표하는 신용등급이란 한마디로 돈을 빌리려는 국가나 기업에 대한 ‘재무 성적표’이다. 즉 채무를 이행할 수 있는지 여부와 상환 지연 혹은 부분 상환에 따라 손실 규모가 얼마나 될지 측정해 등급별로 표시하는 예측 지표이다. 채권을 사는 투자자들은 투자의 안전성을 가늠하는 정보로 이를 활용한다.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그들은 이러한 등급 설정을 통해, 안전한 투자처에는 자금 유입을 장려해 사업을 확장시키고 부실한 곳에는 자금 유입을 막아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한다).
이 저승사자 중 한 명이 최근 파격적인(?) 신용등급 강등을 발표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S&P가 70년 동안 최고 신용등급인 트리플 A(AAA)를 유지해온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강등하고(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의 하락을 뜻한다) 2년 내 AA로 추가 하향할 수도 있음을 밝힌 것이다. 사실 S&P는 몇 차례 미국에게 신용등급 강등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발단은 미국의 부채한도액이다. 모든 국가에게는 자국 내의 기준에 따른 ‘부채한도액’이 있다. 미국의 부채한도액은 14조 3000억 달러이다. 미국의 부채가 이 한도액을 넘어서면 미국은 공식적으로 디폴트(국가 부도) 상태에 빠지게 된다.(8월 2일이 그 시한이었다.) 따라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 부채한도액을 인상하려고 노력해왔는데, 공화당과 오바마가 내세운 한도액이 서로 달라 갈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S&P는 부채한도 인상을 가지고 계속 정치권이 분열한다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공화당과 오바마가 부채한도액 인상에 합의했음에도 신용등급 강등을 발표했다. 미국이 내세운 부채한도액과 장기 재정적자 감축 계획(부채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함에 따라 상징적이고, 그리고 실제적인 ‘충격’이 있었다. 몇 몇 언론들은 미국의 위기니 몰락이니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신용등급 강등을 위기로 판단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미국은 높은 신용등급을 유지한 대가로 국채를 마음껏 발행하여 재정 적자를 극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미국 국채’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매입하니 재정이 적자 상태여도 금방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국채의 이자율이 낮아도 많은 이들이 미국의 신용도 때문에 미국 국채를 구입했다. 하지만 신용 등급이 강등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위험성이 높다고 판정받은 미국 국채를 덜 사려 할 것이고, 재정 적자에 처한 미국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채 발행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국채를 팔기 위해서는 국채의 이자율을 높여야한다. 이 경우 국채와 연동되어 있는 주택 대부 금리, 자동차 융자 금리 등이 한꺼번에 올라가게 되는데, 이러한 금리인상은 자연스레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더욱이 이미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 등급이 떨어진 미국 국채를 팔아버린다면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신용등급 강등을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1)
그러나 나에게 이 사건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세상에, 아직도 S&P 같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이 객관적인 지표로 작용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실제로 영향을 받다니! 나에겐 다름 아닌 이것이 충격이었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평가는 얼마나 객관적이고, 또 정확한 것일까? 과연 신용평가사들에게 엄청나게 역동적인 변수들을 통해 결정되는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상태를 평가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일까? 바꾸어 말하자면, 남들의 신용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신용평가사는 과연 ‘신용’할만한 이들일까? 폴 크루그먼이 최근 칼럼에서 언급한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신용할 수 없는 자들인지가 드러난다. S&P는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바로 그 달에도 리먼 브라더스의 신용등급을 A로 유지했다. 시장성이 없고 투자가치가 없는 기업이, 즉 신용이 없는 기업이 시장에서 바로 퇴출당하듯이, S&P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이 때 회사 문을 닫았어야 했다. S&P의 신용등급은 아무 객관성이 없는 지표로 전락했어야 했다.
리먼 브라더스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S&P를 비롯한 신용평가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엉터리 신용평가로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그들은 검찰 수사와 청문회에 불려 다녀야했다. 신용 평가사들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 참여 했을 때 공개된 신용평가사 회사 직원들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그 거래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등급을 매겨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부자가 돼서 은퇴할 때까지 이것이 무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2006년과 2007년 신용평가사들이 최고 등급 판정을 내린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상품 가운데 90% 이상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크본드(쓰레기 채권. 투자 위험성이 지나치게 높은 채권)로 판명되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1년 분식회계(회계장부 조작)가 밝혀져 거대 에너지기업 엔론이 파산한 사건이 있었다. 무디스와 S&P는 엔론이 파산하기 나흘 전 그들에게 ‘투자적격 등급’을 매겼다. 채무불이행까지 이르렀던 캘리포니아의 전기. 가스. 수도기업인 캘리포니아 유틸리티스는 채무불이행 2주 전까지 A-등급을 받았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1997년 11월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아 국가부도에 다다르기 직전까지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에게 ‘투자 적격’에 해당하는 A등급을 안겨주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이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자 한 번에 6~12등급까지 강등시키면서 한국이 더욱 빚을 갚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엉터리 신용평가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졌듯이, 국가와 기업들은 높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해 신용평가사에 엄청난 로비를 한다. 신용평가사들이 어떻게 신용등급을 매기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경제에 엄청난 득이 될 수도, 엄청난 타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표가 나올 리가 없다.
즉 신용평가사들은 별로 정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지표를 내세워 권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많은 투자자들과 기업,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입힌다. 이 권력을 이용해 국가와 기업을 협박하기까지 하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신용평가사들이다. 2008년 잘못된 신용평가로 금융위기가 터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놓고. 염치가 없는 건지 낯짝이 두꺼운 건지 이제 와서 미국의 신용등급이 어쩌구 떠들어댄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 없는 국가와 기업을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자본주의의 수호자 행세를 해왔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해서, 신용 없는 신용평가사들도 전부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자본가들과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자본주의가 시장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합리적인 체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자본주의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금융시장에서 돈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신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힘과 권력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신용평가사라는 권력에 의해서 말이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 보여준 충격은 바로 이것이다.
각주 
1) 이러한 예측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신용등급 강등 이후 오히려 미국 국채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양지선, ““S&P, 네가 틀렸어”… 신용등급 강등 이후 美 국채 가격·인기 되레 올라“, 국민일보, 2011.8.17.) 어쩌면 폴 크루그먼이 뉴욕 타임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s&p의 신용등급 평가는 객관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이제는) 실제 경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참고자료

권웅, “신용평가사에 끌려 다니는 오바마”, 시사인 제 202호, 2011.8.4.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30)
박형숙, “신용평가사 ‘빅3’ 너희를 평가해주마”, 시사인 제60호, 2008.11.5.(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3204)
이승선, “미국이 처한 위기는 디폴트가 아니라 신뢰 상실”, 프레시안, 2011.07.28.(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728153642&section=05)
이승선, “美 신용등급 초유의 강등 사태…’트리플 A’에서 ‘AA+’로”, 프레시안, 2011.08.06.(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10806140447)
H, “미국의 정부부채와 신용등급”(http://socialandmaterial.net/?p=1181)
Paul Krugman, “Credibility, Chutzpah and Debt”, The New York Times, 2011.8.7.(http://www.nytimes.com/2011/08/08/opinion/credibility-chutzpah-and-debt.html?_r=3&src=ISMR_HP_LO_MST_F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