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14일 목요일

칠곡보 측면 무너져내려 더 큰 비 오면 뚫릴 위험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의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온글입니다.

시민단체, 낙동강 일대 2박3일 돌아보니 
긴급 땜질하며 피해 감추고 ‘문제 없다’ 말만 되풀이
홍수 예방커녕 재해 유발, 보 양옆 제방 위험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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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보 왼편 어도 부분이 이번 장맛비에 무너졌습니다. 이곳은 6월 25일 무너졌던 왜관철교(호국의 다리) 상류에 있습니다. 

이밖에도 공사가 끝나지 않은 임시물막이 내부가 침수되거나 유실된 것부터 하상유지공 주변이 침식되고 공사가 끝난 저수호안 부분의 침식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피해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으며 보수언론을 통해 '문제없다'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7월 9일부터 11일까지 낙동강 일대를 살펴보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려 낙동강의 피해상황을 모두 살펴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구미 하류 지역에는 수위가 높아 지천들의 침식현황이나 하상유지공 유실여부도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느 인터넷 신문은 피해가 없다고 보도했던데, 현장을 살펴본 본 저희로서는 수긍하기 힘들었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주요한 피해

1. 칠곡보 어도 부분 유실
2. 함안보 임시 물막이 침수, 둔치지역의 공사자재 유실 추정(합천보, 달성보 임시물막이 침수)
3. 청도천 하상유지공 좌안 둔치 유실
4. 저수호안 침식/유실
5. 이계천, 광암천, 감천, 병성천 등 역행침식



비가 많이 왔다지만 임시 물막이나 어도 부분을 빼고 나머지는 고정물로서 유실되면 안 되는 것들입니다. 아직까지 물이 빠지지 않고 한동안 비가 계속될 것 같아 확인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물이 다 빠진 이후에는 하상유지공 유실과 일대 제방유실, 본류구간 재퇴적 등 모든 구간에서 피해가 일어났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포보 이어 칠곡보 어도 유실
 
지난 5월 이포보의 문화광장, 어도 등이 유실된 것과 마찬가지로 칠곡보의 '어도' 부분도 유실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유실되면서 칠곡보 통합관리센터 앞 제방 일부도 쓸려 나가 시공 중인 건물이 치명적인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유실 전 어떤 공사를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만 4월 20일, 5월 20일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곳이 흙으로 채워져 있는 상태에서 공사중이었습니다. 공정상 어도는 소수력 발전소 완공 이후에나 만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사차량, 자재들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 좌우 제방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 이포보, 상주보 사례를 통해 이미 드러났으며 칠곡보 제방마저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 확인 되었습니다. 이는 속도전에 밀려 제대로 된 설계와 수리모형시험 등을 하지 않은 탓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이 사업이 홍수예방 등 재해방지 시설이 아닌 '재해유발'시설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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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보 전경. 구조물 가장 왼쪽이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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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르게 흐르는 와중에도 복구공사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렇게 위험한데도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피해사실을 덮으려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피해사실을 밝히고 물이 충분하게 빠진 뒤 안전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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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이포보가 그랬던 것처럼 보 측면이 완전 유실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작업공간으로 썼던 공간이지만 어도가 시공될 위치입니다(어도공사가 이미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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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 볼 수는 없지만 제방도 상당 부분 유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방수천으로 보강을 해 두었지만 이마저도 제 구실을 못한 것 같습니다.

함안보, 교량 지을 철골구조물도 쓸려 나가

7월 9일 오후 함안보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임시물막이 아래까지 물이 차 있었습니다. 물막이 안쪽에는 마지막 교량을 연결하기 위한 사각형의 철골구조물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주변 곳곳에는 '준설공사 완료'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이 일대는 보 공사를 제외한 공사는 대부분 완료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임시물막이는 완전히 침수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교량이 될 철골구조물은 물에 휩쓸려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반대편 자재를 쌓아두었던 둔치 지역도 마찬가지로 침수되어 임시화장실이 기울고 한 곳에 모여있어야 할 자재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미 일부 자재는 유실된 것으로 보였으며, 이 시간 이후 낙동강 수위가 훨씬 더 높아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남아있던 것들도 쓸려 내려갔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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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보입니다. 상류에 비해 수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보 바로 상류는 다른 구간에 비해 유속이 상당히 느린 듯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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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침수되기 하루 전 모습입니다. 교량이 될 철골구조물들이 용접을 기다리는지 일렬로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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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침수가 되면서 교량 구조물들은 여기저기 나뒹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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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둔치 부분입니다. 공사자재를 쌓아두었지만 비는 이들도 쓸어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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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시공사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길에서 사진을 찍는 것조차 '무조건' 막습니다. 

하상유지공 설치하면 뭐하나, 그 옆이 유실되는데

7월 9일에 도착한 청도천 하류는 급류에 둔치가 유실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낙동강 수위가 높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단단한 보호공 부분은 그대로인 듯 보였지만 우안은 이미 지난 비에 유실되어 보강해놓은 흔적이 있었고, 좌안은 꾸준하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물이 빠진 뒤에는 유지공 아래 물살로 깊이 파인 것과 좌우 유실된 둔치부분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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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천에 콘크리트로 된 하상유지공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3월 23일 사진입니다. 사진 중앙에 나무를 주목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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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에 있던 나무를 기준으로 보시면 나무와 유지공 사이가 모두 쓸려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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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링 팀이 보는 중에도 둔치는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깎여 나가는 강변 호안, 세금 들여 보수해야

이동 중에 본 저수호안 부분은 곳곳이 침식되거나 유실된 상태였습니다. 저수호안은 둔치 아래 강과 직접 만나는 곳으로 공사 전에는 강과 부드럽게 만나거나 안정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많은 곳을 깎아내고 직강화 했습니다. 

보의 수문을 닫고 관리수위까지 물이 차게 되면 대부분 잠기게 될 곳이지만 물이 흘러갈 때는 무너지고 깎이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세금을 들여 친수공간으로 조성할 둔치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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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설공사 완료'라는 표시가 무색합니다. 유실된 토사는 그대로 강 바닥에 쌓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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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된 규모가 상당합니다. 차를 타고 지나는 중에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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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으로 호안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결국 이것들은 다시 보수공사를 해야 합니다. 

역행침식 심각한 이계천, 광암천, 병성천

수위가 비교적 낮거나 둔치가 높은 지천은 역행침식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계천은 하천 왼편에 있던 경작지가 사라졌으며 광암천은 현장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곳 아래까지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병성천은 합류지점에서 1.5km 떨어져 있는 병성교가 있는 곳까지 침식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하상유지공 공사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어 있는지는 수위 때문에 확인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있었다 한들 대부분 떠내려 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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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아래 쪽의 광암천. 수로공사 중에 큰 비를 만나 자재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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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식으로 공사 현장사무소가 위태위태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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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지천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병성천입니다. 이제는 합류부와 1.5km 가량 떨어진 이곳까지 역행침식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땅 속에 묻혀 있던 관로까지 드러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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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m 이상 침식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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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성천보다 하류에 있는 말지천입니다. 이곳은 이미 몇 m 침식이 되어 농지가 수m 쓸려갔습니다. 제방에 있던 나무가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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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에 있는 이계천입니다. 주민 아저씨가 나와 강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멀리 경작지가 쓸려나간 것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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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찍은 이계천입니다. 아래사진과 비교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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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위가 높아 아랫부분은 확인하기 힘들지만 경작지만 봐도 많이 유실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몇 보수 언론은 정부와 시공사가 하는 말만 듣고 앵무새처럼 '문제 없다'를 되뇌고 있습니다.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4대강 여러 곳에서 피해를 감추고 있는 것이 드러났으며 이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거짓으로 공사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대부분의 보는 장마철 전 완공된 수문에 대해서는 임시물막이를 철거하는 등 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소수력발전소, 교량공사 등 아직 완공이 되지 않는 부분까지 이번 비에는 속수무책으로 침수되고 일부는 유실되기도 했습니다. 10월 '그랜드 오픈'을 하겠다며 공사를 강행한 탓입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둔치에 쌓아둔 자재까지도 쓸려간 것으로 보이니 피해규모가 예상보다는 훨씬 더 클 것이라 예상됩니다. 

정확한 분석을 통해 준설이 얼마나 큰 '홍수저감 효과'가 있었는지는 밝혀내야 하겠지만,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준설한 것 만큼 수위가 낮진 않아 보인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강 주변에서 항상 사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준설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추정컨데 보 건설현장 등 4대강 사업구간에서도 이 정도로 물이 불어날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4대강 공사는 일종의 '재해대비' 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속도전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러나 큰 비가 온 뒤 오히려 재해는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40여년 간 꾸준히 대비한 뒤에는 없었던 문제입니다. 4대강 사업의 효과가 크게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비가 이어지는 8월까지는 공사를 중단하고 진짜 공사의 효과가 있는 것인지 사업의 타당성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결과는 '4대강 사업 중단'임을 확신합니다. 

김성만/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녹색연합 활동가

2011년 7월 13일 수요일

[시각] 의료서비스가 기업가치에 놀아나선 안 된다

이글은 한겨레의과학자와 기자가 만드는 뉴스와비평 Science On에서 퍼온 글입니다.



[endo의 편지] (12)

영리병원이 의료 서비스 선진화인가? – 중앙일보의 보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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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병원의 응급실. 한겨레 자료사진



료체계와 관련한 문제에서 보자면, 미국의 환자들은 대체로 의사들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진단과 처방이라고 판단해도 보험회사의 제한으로 최선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에 환자들은 대체로 의사가 환자의 편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최선을 다했음을 이해합니다 (갤럽 조사에서 간호사, 약사, 의사는 미국 대중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 5위 안에 속해 있는 것은 이를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의료체계는 환자와 보험사 사이의 문제로 귀결되고, 의사는 보험사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최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자에게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현대의학의 기본 정신에도 사실 ‘의료체계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라는 웃지 못할 전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 먼저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 의료체계임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최근 <중앙일보>는 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의 의료 분야를 글로벌 비즈니스로 더 진화시키기 위해서 영리 목적의 병원이 빨리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기사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하는 핵심 이유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는 점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한국의 의료 서비스에 굳이 영리병원을 도입할 이유도 없어지기에, 기사에는 사실 모순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에서 근거와 객관적 정의도 없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되는지조차 모르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나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 같은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기업가들의 상업적 이윤 추구라는 목적을 두둔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리병원 20%’ 미국 의료서비스는 선진19국 중 최하위권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보고서(The world health report 2000)에 따르면, 한국의 의료체계 수준은 191개국 중 58위에 올라 있습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싱가포르, 오스트리아, 일본 등이 10위권에 올라 있는 반면에 미국은 37위에 올라 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이 보고서를 다루며 미국의 의료체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반면에, 다른 미국 언론과 저널들은 세계보건기구의 평가 자체에 어떤 결함이 있으므로 의료체계 순위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데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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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o는? 미국에서 현업 의사이자 대학 초빙교수로 일하는 의학자 ‘endo’(필명) 님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온라인 게시판에 유익한 글을 올려 주목받아왔습니다. 사이언스온의 독자이기도 한 endo 님은 생의학의 쟁점들에 관한 글을 부정기적으로 사이언스온에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이언스 온
최근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보건기구와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면 미국이 세계 1위의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미국인의 자존심을 살릴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2008년 미국 보건단체인 커먼웰스펀드(Commonwealth Fund)가 주요 선진국 19개국을 비교한 결과에서도 미국은 19위로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가장 최근인 지난해에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의 7개 나라를 비교한 결과에서도 역시 최하위인 7위를 기록했습니다. 사실상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은 비록 몇개 나라만을 대상으로 한 비교라 할지라도 한 번도 최하위를 면한 적이 없습니다. 덧붙여 전체 병원 중에서 영리병원이 약 20%를 차지하는 미국에서 영리병원의 덕택으로 10년 이상의 기간에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의료체계가 발전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지난해의 7개국 비교 평가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항목 중 유일하게 미국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 부분이 있습니다. 효과적 치료와 환자 중심 치료 항목입니다. 반면에 의료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는 다른 항목인 환자의 안전을 고려한 치료와 만성 질환 및 심장질환 같이 고위험·고비용 수반 환자들에 대한 치료 항목에서는 최하위권이었습니다. 이 항목들에 관한 서비스의 질이 낮을 때 앞으로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이 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 항목인 환자 중심 치료는 개인적인 영리를 추구하는 시장 지향 의료체계와는 대립하는 현대의학의 환자 중심 패러다임에 입각한 치료를 말합니다. 영리병원이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전체 의료체계는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며 이것은 곧 의료 서비스의 질과 많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영리 목적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습니다. 의료 서비스는  의료진과 의료기관, 의료체계, 그리고 환자 등이 체계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평가는 기술적 측면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차원적인 문제입니다.

렇게 <중앙일보>뿐 아니라 한국의 기업가들이나 정치가들 또는 이에 동조하는 일부 학자, 의사들이 걸핏하면 주장하는 ‘세계 수준의 의료 서비스 질의 향상’ 또는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 같은 표현이 과연 누가 어떻게 평가한 어떤 질적인 측면인지, 그리고 어느 나라의 수준을 말하는 것인지는 미국의 예만 보더라도 분명한 기준과 근거도 없고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준과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성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목적을 내세워 무조건 영리병원을 도입하자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막연한 추측과 희망사항을 마치 사실처럼 주장의 근거로 삼아 대중을 속이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성마저 상실한 투기꾼들의  사회적 행패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계보건기구나 커먼웰스 펀드의 평가에서 최상의 의료체계를 갖춘 것으로 나타난 나라들이 외국 환자들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여들여 그런 의료체계를 구축한 것이 아닐뿐 아니라 외국환자를 통해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님은 분명합니다. 일부 외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기업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기나라의 의료체계 개혁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영리병원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영리병원이 오히려 의료체계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자국의 국민이나 의료체계를 희생하면서 기업가들의 배를 불리자는 이야기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를 기업에 이윤 챙겨주는 장사꾼으로 전락시킬건가?



리병원들이 수익 높은 분야에 집중하고 서비스 가격을 높게 책정함으로써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한편, 의료 혜택의 공평성을 저해하여 미국의 전체적인 의료체계 수준이 낮게 평가되게 하는 데 한몫 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한국의 의료체계에서 영리병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비인기 분야 의사들이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비영리 병원들이 영리병원들과 경쟁을 하면 오히려 그와 같은 문제들은 더욱 심각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whoreport그 이면에서 의사를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팔아 기업가에게 이윤을 남겨주는 장사꾼으로 전락시키려는 언론과 정치가들, 기업가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이 사회를 주도할 때 환자들은 필연적으로 상업적 가치 판단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단순한 소비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전인적 치료를 위한 환자와 의사의 관계라기보다는 질병 자체의 치료에만 국한하는 관계를 설정해,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4월 폴 크루만이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환자는 소비자가 아니다‘”라는 글에서 ’환자는 곧 소비자‘라는 말이 생겨나는 미국은 심각한 사회적 가치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을 때의 문제 의식은 이런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중앙일보>의 주장뿐 아니라 영리병원을 옹호하는 대부분의 다른 주장들은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라는 실체가 불분명하고 모호한 목적을 내세워서 기업가들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라는 구체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는 곧 소비자‘라는 관념을 은연 중에 대중에 인식시켜 이기적 물질 만능주의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한국 사회에 퍼뜨리는 것은 일부 기업가들의 이윤 추구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국가 의료체계를 희생시키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정당한 이윤 추구라고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학적 증거 기반으로 최선의 선택을 제공하고 또 제공받을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는 의료체계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는 것이지 의료 서비스가 기업가의 돈벌이 수단이 되었을 때 의료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선진화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생각한다면 의료 서비스의 질에 대한 현황을 정확하고 투명한 자료와 보편타당한 기준을 설정하여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의 개선책을 진지한 사회적 논의에 부쳐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증거 기반의 환자 중심 의학을 실천하여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야 하는 책임을 지닌 자들의 책임있는 자세인 것입니다.







[주요 참고 자료]


<중앙일보>, 존스홉킨스 “한국과 끝났다”, 7월11일치 1면, 2011년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1/07/11/5420754.html?cloc=nnc

Gallup, Nurses Top Honesty and Ethics List for 11th Year
http://www.gallup.com/poll/145043/Nurses-Top-Honesty-Ethics-List-11-Year.aspx

John W. Kenagy, et al., Service quality in health care, JAMA 1999.
http://jama.ama-assn.org/content/281/7/661.short

Karen Flynn, BRIEF OVERVIEW: Systematic reviews for Patient-Centered care. 2010
http://www.va.gov/VATAP/docs/Patientcenteredcare2010.pdf

The Commonwealth Fund, The U.S. Health System: Challenges and Reform in International Perspective, 2009.
http://siteresources.worldbank.org/HEALTHNUTRITIONANDPOPULATION/Resources/281627-1114107818507/101310USHealthReformDavis.pdf

The Commonwealth Fund, How the Performance of the U.S. Health Care System Compares Internationally 2010 Update
http://www.commonwealthfund.org/~/media/Files/Publications/Fund%20Report/2010/Jun/1400_Davis_Mirror_Mirror_on_the_wall_2010.pdf

The Commonwealth Fund, Why Not the Best? Results from the National Scorecard on U.S. Health System Performance, 2008
http://www.commonwealthfund.org/usr_doc/Why_Not_the_Best_national_scorecard_2008.pdf?section=4039

The Commonwealth Fund, Measuring the U.S. Health Care System: A Cross-National Comparison, 2010.
http://www.commonwealthfund.org/~/media/Files/Publications/Issue%20Brief/2010/Jun/1412_Anderson_measuring_US_hlt_care_sys_intl_ib.pdf

The New York Times, Patients Are Not Consumers.
http://www.nytimes.com/2011/04/22/opinion/22krugman.html

WHO, The world health report 2000 – Health systems: improving performance
http://www.who.int/whr/2000/en/whr00_en.pdf

The NewYork Times, World’s Best Medical Care?
http://www.nytimes.com/2007/08/12/opinion/12sun1.html

WSJ, In the Wrangle Over Health Care, a Low Rating for the U.S. System Keeps Emerging Despite Evident Shortcomings in Study.
http://online.wsj.com/article/SB125608054324397621.html

장맛비 뚫고 피어나는 이 단단한 아름다움

이글은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퍼온글입니다.
장맛비 뚫고 피어나는 이 단단한 아름다움
[포토] 장맛비에도 피어나는 꽃 10선
김민수(dach)
▲ 땅나리 고개를 살포시 숙여 땅을 바라보고 피어난다.
ⓒ 김민수

▲ 털별꽃아재비 잔디밭이나 밭에서는 잡초취급을 당하는 꽃이다.
ⓒ 김민수

▲ 까마중 가지과의 꽃으로 동그랗고 까만 열매가 익으면 맛나다.
ⓒ 김민수

▲ 꼬리조팝나무 조팝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화사하고, 한 여름에 피어난다.
ⓒ 김민수

▲ 고삼 꽃 이름의 의미와 상관없이 고삼 수험생들이 생각나다.
ⓒ 김민수

▲ 싸리꽃 보랏빛 싸리꽃에 앉아있는 나비, 어울려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 김민수

▲ 어리연꽃 장맛비에 꽃은 거반 녹아버렸고, 이파리가 벌써 단풍이 든듯 변해간다. 그들의 한창 때도 지나가는 계절이다.
ⓒ 김민수

▲ 부들 씨가 다 익으면 소시지같이 생긴 열매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거품처럼 피어난다.
ⓒ 김민수

▲ 부처꽃 보랏빛 부처꽃과 청년의 푸름이 잘 어우린다.
ⓒ 김민수

▲ 며느리배꼽 열매의 겉색깔은 보라색이다. 작은 꽃은 여간해서 보기 어렵다.
ⓒ 김민수

장마철, 굵은 장대비에도 신나게 피어나는 꽃이 있지만 대부분의 꽃들은 장맛비가 지속되면 녹아버린다.
지리한 장맛비가 이어지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날, 풀섶에는 이런저런 꽃들이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피어나 있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피어날 수 있는 만큼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눅눅한 마음을 말린다.
이번 주 내내 장맛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 속에서 중부지방엔 장대비가 내린다. 장대비에 제 빛을 내지 못하고 녹아내리는 꽃도 있겠지만, 피어나는 꽃들도 있다.
장맛비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꽃들을 보며, 잠시나마 마음 뽀송뽀송하길 바라며 들판에 피어난 꽃을 드린다.
2011.07.11 14:18ⓒ 2011 OhmyNews

2011년 7월 11일 월요일

외가댁 방죽의 추억…연꽃과 가물치와 새마을 운동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의 물바람숲블로그에서 퍼온글입니다.

초록 들판, 두엄 냄새, 초가집 굴뚝 연기…
혼탁한 세상을 조용히 바꾸는 연꽃과 수련 같은 사람이 그립다

외가댁 바로 앞에는 엄청나게 큰 방죽이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어 외가댁에 가면 언제나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이 방죽이었고 밤늦게 도착하여 가볼 수 없을 때면 가장 궁금해지는 것도 이 방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던 그 방죽은 지금처럼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는 말은 없었던 시절이기에 ‘물을 담고 있는 보(堡) 중의 짱’이라는 뜻은 아니었겠지만 어찌되었든 ‘보짱’이라 불렀던 연꽃이 꽉 들어선 연꽃방죽이었습니다. 

보짱은 무엇보다 다양한 생물들을 직접 만져보거나 적어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지금처럼 이름을 조금 더 알지 못한 것이, 그리고 모르면 찾을 수 있는 좋은 도감이 귀했던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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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보짱에는 연꽃과 마름과 갈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수생식물과 수변식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친했던 것은 연꽃이었고 나에게 연꽃의 용도는 도깨비 우산과 간식이었습니다. 

소나기라도 갑자기 내리면 연잎으로 도르륵 도르륵 빗물이 굴러 모여드는 것과, 한껏 고인 물의 무게에 연잎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면 한꺼번에 빗물이 다 쏟아져 다시 빈 잎이 되는 것을 보느라 이미 옷은 다 젖었는데도 커다란 연꽃의 잎을 꺾어 썼었습니다. 

완전히 방수 처리된 연잎이 비를 가려주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연잎에 모여 있던 빗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한꺼번에 물세례를 맞는 것이 시원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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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

놀다 배가 고파지면 그것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언제나 내 주먹만한 크기의 삶은 계란 반쪽 모양을 하고 있는 연밥이 있었고, 연밥 안에 자리 잡은 땅콩 만한 크기의 씨앗은 녹색 껍질을 벗기면 다시 하얀 막이 나오는데 급한 김에 그냥 먹으면 조금 떫은 맛이 나지만 정성을 들여 이것마저 벗기고 나면 제법 달콤한 것이 간식으로 충분했었습니다. 

또한, 보짱의 둑을 지나노라면 개구리들이 물속으로 첨벙첨벙 소리를 내며 뛰어드느라 정신이 없었고, 당시 이름을 알고 있었던 붕어, 잉어, 가물치, 메기, 장어 외에도 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장자리로는 큼직한 우렁이가 슬금슬금 기어 다녔고, 물풀의 줄기를 잡고 기어오르는 우렁이는 가까이 가면 툭 떨어져 물밑으로 사라지고는 했습니다. 

물방개를 잡으러 고무신 신은 발을 물에 그대로 담그면 어느 사이에 거머리 서너 마리가 발목에 달라붙어 몸이 똥똥해질 만큼 피를 빨고 있었지만 그것은 손가락으로 튕겨서 떼어내면 그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무척 귀해진 물장군과 물자라도 수초 한 더미만 끌어 올리면 언제나 만날 수 있었으며, 잠자리와 메뚜기는 그 수를 이루다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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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물치

무엇을 잡는 다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물고기를 잡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보짱에서는 주낙을 놓아 주로 가물치를 잡았습니다. 

주낙으로 가물치 잡는 재미

먼저 미끼로 쓸 미꾸라지나 작은 붕어가 필요했는데 아무데나 고여 있는 물의 바닥이 보이도록 물만 퍼내면 되는 것이었으니 도구는 바가지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주낙은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형들과 함께 놓았는데 양쪽으로 막대기를 꽂고 두꺼운 줄로 연결한 다음 1m 정도의 간격으로 낚시 바늘을 묶고 그 바늘에 미끼를 끼워두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늘은 20개 정도를 묶었는데 중간쯤 미끼를 끼울 때 벌써 앞서 끼운 미끼를 가물치가 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주낙을 거두는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가물치가 대여섯 마리쯤은 항상 걸려 있었습니다. 

한번은 잡은 가물치를 장날 장에 들고 나가 팔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혼자 한 일은 아니었으나 내 행위로 인해 소득이 발생한 것이 그저 신기했고 얼마를 받고 내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장터에서 국수도 먹고 방학 내내 주낙을 할 도구를 마련하기에는 충분했었습니다. 

밤에는 등잔불에 모여 앉아 바늘에 줄을 묶었는데 배운 그대로 잘 되지는 않았지만 꿈을 가지고 하는 일이었기에 더욱 신나고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보짱에서 있었던 일들은 대부분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추억의 대상들이 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하나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떤 모습에 대해 얼어붙을 정도로 취한 순간이었으니 저학년은 아닌 듯합니다. 

외가댁에 도착하였으나 해가 긴 여름날인데도 호롱불을 곁에 두고 모기장 안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으니 그 날은 보짱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다 세수도 하지 않고 보짱을 향해 앞마당으로 나섰을 때 눈앞에 펼쳐져 있고 또 펼쳐지고 있는 정취와 풍경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까지 있었던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탁 트인 녹색의 싱싱한 들판, 적당히 물기 머금은 흙냄새, 벼 잎마다 알알이 맺혀있는 맑은 아침 이슬, 낡은 짚 누리에서 퍼져오는 잘 썩은 볏짚 냄새, 벌써 활짝 피어나 살며시 향기까지 퍼뜨리며 보짱을 가득 채운 연꽃, 보짱 넘어 공손히 엎드려 절하는 모습의 정겨운 초가집 몇 채, 굴뚝 마다 피어오르는 아침 짓는 연기, 초가집을 포근하게 감싸 안으며 걸려있던 잘 읽은 감빛의 아침 해. 이 평온한 모습들은 한 장의 그림으로 어우러져 그 순간 이후로 지금까지도 살고, 살아가고, 때로 살아지며 스스로 만들거나 때로 남이 만들어 주는 힘겨운 날들이 있을 때면 떠올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자연을 모르는 자, 손 대지 마라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75년은 나에게 정말 슬픈 해였습니다. 등잔불과 호롱불에 의지했던 외가댁에 전기가 들어오고, 초가집의 볏짚 지붕이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으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살아 전기와 신식 지붕이 신기할 리 없었고 나는 오히려 등잔불과 호롱불과 초가집 지붕이 좋았지만 그 것은 참을만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놀이터 보짱이 없어지는 것은 너무나 큰 슬픔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귀가 따갑게 들었던 '어제보다 나은 내일의 새마을'을 만든다는 새마을운동의 물결이 결국 외가댁 마을에도 구체적으로 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잘 살아 보겠다고 한 운동이었으니 달리 덧붙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짱과 그 안에 살고 있던 모든 생물을 흙으로 덮어 버린 이유가 단지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얻기 위함이었다면 차라리 한 톨의 쌀을 각자 덜 먹고라도 보짱은 지켜야 했습니다. 

더욱이 30년이 더 지난 지금 그렇게 지키려 했던 쌀은 이제 남아돌아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고 그렇게 덮으려 했던 곳들 중 간신히 사람의 눈을 피해 남아 있는 몇 군데를 이제는 놀이터 대신 ‘습지보호지역’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걸며 지키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부터도 조금만 앞을 내다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정말 모르고 한 일이었다면 그에 대해 혹독하게 죄 값을 물을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자연에 관해서라면 무지는 분명 죄가 됩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죽도록 공부해야 하지만 그래도 다 알지 못한다면 차라리 그냥 두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섣부른 지식으로 자연에 손을 대는 것은 재앙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니 세상에 이보다 더 무모한 실험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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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수련은 연꽃에 비해 나와 인연의 길이가 짧아 친근함은 덜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꽃을 물 위에 피워냅니다. 출근길을 조금 먼 길로 잡아 활짝 핀 수련의 꽃을 보고 왔더니 먼저 눈이 맑아졌고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열대야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여 멍해진 머리도 따라서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얼마 전까지도 수련의 ‘수’는 물일 것이고 ‘련’은 연꽃을 의미할 거라고 확인도 없이 그저 그렇게 내 마음대로 편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수련은 한자로 睡蓮이라고 씁니다. 곧 ‘잠을 자는 연꽃’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름날 물에서 피어나 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대표적인 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연꽃과 수련은 둘 다 수련과(Nymphaeaceae)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속(屬)이 다를 만큼 몇 가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수련의 편평한 잎은 대부분 수면과 맞닿아 있지만 토란의 잎을 언뜻 닮은 연꽃의 잎은 물 위로 한참을 올라와 있습니다. 꽃도 마찬가지여서 수련의 꽃은 배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줍니다. 더러 물 위로 올라오기도 하는데 이것은 서식지의 수심 자체가 너무 얕아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높이는 한 뼘을 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꽃은 잎의 높이와 거의 비슷한 곳에 꽃이 달리니 물 위로 적어도 서너 뼘은 올라오게 됩니다. 연꽃은 붉은색의 꽃을 피우지만 하얀색의 꽃을 피우는 품종도 있어 백련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수련은 하얀색을 비롯하여 보라색, 붉은색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색깔을 띠는 여러 가지 품종이 있습니다. 연꽃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지만 수련의 줄기에는 가시가 없습니다. 가시라 하여도 가시연꽃처럼 찔려서 아플 정도는 아니며, 그저 까칠까칠한 느낌을 줄 정도입니다. 

가장 특징적인 차이점은 수련의 독특한 수면(睡眠) 운동입니다. 연꽃과 수련 모두 이른 아침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저녁 무렵이면 꽃을 오므리지만 수련은 한참 꽃을 활짝 펼치고 있을 한낮이어도 날이 흐리면 펼친 꽃을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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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운동을 시작한 수련

아침은 참으로 맑은 날이었는데 점심 무렵 날이 어두워지며 뚝뚝 비가 떨어졌습니다. 출근길에 환한 얼굴로 인사했던 수련도 비를 맞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점심은 조금 미루고 수련이 잠을 청하는 모습을 만나러 다시 갔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진 지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아서 아직 수련은 꽃잎을 활짝 열고 비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연꽃이나 수련이나 물에서 살고 그래서 물에서 꽃을 피우기에 비와는 잘 어울립니다. 땅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비를 맞으면 꽃잎이 상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애처로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연꽃과 수련의 꽃은 빗속에서 오히려 우아해집니다. 

하지만 수련은 그 우아함도 하염없이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아직 한낮이지만 하늘은 시간이라도 앞당기려는 듯 이른 어두움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수련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꽃잎 접고 낮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연꽃과 수련은 모두 바닥이 뻘로 되어 있어 들어가 걸으면 발이 푹푹 묻히는 바람에 걸음을 옮기기도 힘겨운 시궁에서 뿌리를 내려 살아가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냅니다. 한참 악취가 심할 시궁의 여름날들이 저들이 때맞춰 피워낸 꽃들의 향기에 의해 덮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혼탁하고 그도 지나 악취가 난다는 말을 더러 듣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같이 따라 나옵니다. 하지만 연꽃이나 수련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맑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썩은 물도 바꾸어 놓은 꼴이 되니 말입니다. 하여, 이래저래 어수선한 요즈음은 연꽃이나 수련을 닮아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더욱 그립고 기다려집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