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7일 금요일

[사설]‘부자감세’ 철회하면서 부자세금 깎아주다니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6일자 사설 '‘부자감세’ 철회하면서 부자세금 깎아주다니'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소득세 추가감세를 철회하면서 고소득자에 대한 공제 축소안도 함께 없애 고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 9월 여론에 등떠밀려 소득세 최고구간 세율 인하를 포기한 데 따른 고소득자의 세부담 증가분을 사실상 보전해준 셈이어서 추가감세 철회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적용해 고액 연봉 근로소득자의 세금을 분석한 결과 소득세 최고구간(과표 8800만원 초과)이 최초로 적용되는 연봉 1억3000만원 근로자의 실질 세부담은 1516만원으로 추가감세와 공제(공제율 및 공제 한도) 축소가 이뤄진 경우보다 104만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세 최고 세율을 현행 35%에서 33%로 낮추고(추가감세) 공제를 축소하는 경우보다 현행 세율을 그대로 두고(추가감세 철회) 공제를 줄이지 않는 경우의 감세 효과가 더 컸다는 얘기다. 

연봉 1억5000만원인 경우는 추가감세에다 공제축소를 적용했을 때보다 92만원, 2억원인 경우는 63만원의 세금이 더 적은 것으로 계산됐다. 2009년 세법 개정 때 소득 1억원 초과자의 경우 세액공제(한도 50만원)를 없애고 공제율도 5%에서 1%로 낮추기로 했던 것을 개정안에서 삭제한 결과다.

정부는 최고세율 인하를 백지화함에 따라 공제 축소도 폐기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둘을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최고세율 인하 백지화에 따른 고소득자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공제율과 공제한도를 그대로 유지시킨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고소득자의 세금이 줄게 된 것은 추가감세를 철회한 취지와 전혀 맞지 않는다. 고소득자의 실질 세부담이 늘거나 최소한 감소하지는 않도록 공제 제도를 손질했어야 마땅하다.

겉으로는 ‘부자감세’를 철회한다고 해놓고 억대 연봉자들의 세금을 오히려 깎아주겠다면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공제는 최고세율 인하 여부와 상관없이 ‘비과세 감면 축소’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이 의원의 지적은 백번 옳다. 8000만원 소득자의 경우 이미 1400만원의 소득공제를 받게 돼 있는 실정이다. 국회는 부자감세를 철회한다면서 실제로는 부자감세를 더 확대하는 세법 개정안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설]청부폭력까지 행사한 피죤 회장의 엽기적 경영


이글은 경향신문 2011-10-06일자 사설 '청부폭력까지 행사한 피죤 회장의 엽기적 경영'을 퍼왔습니다.
재벌들이나 정부 일각에서는 걸핏하면 ‘반(反)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국가경제의 기둥인 기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다만 대중들은 탈세, 비자금 조성, 편법적 세습 등을 일삼는 기업인들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반기업정서’라는 용어는 법질서를 유린하는 일부 기업인들에게 법적 도의적 면죄부를 건네주려는 저의를 담고 있는 셈이다.

(주)피죤의 이윤재 회장이 부당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한 전직 전문경영인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반기업정서’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고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국내의 대표적인 섬유유연제 업체인 피죤의 소유주이자 최고경영자인 이 회장은 자신이 해고한 이은욱 전 사장이 소송을 내자 인사담당 김모 이사를 통해 폭력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이 전 사장은 실제로 자택 앞에서 조직폭력배 3명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했고, 이들과 김 이사는 모두 경찰에 구속됐다. 모든 정황으로 볼 때 이 회장의 범행 개입은 사실로 여겨지며, 그에 대한 사법처리도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 회장의 엽기적 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너 일가 비자금 조성은 물론 전문경영인의 평균 임기가 123일에 불과할 정도로 그야말로 ‘제멋대로’ 임직원들을 해고했다. 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들을 직접 칼로 찌르는 등 실로 믿기 어려운 상식 이하의 행태를 벌였다고 한다. 이 같은 ‘엽기경영’이 어떻게 30년 동안 버젓이 이뤄져 왔는지 놀라울 뿐이다. 

문제는 이 회장의 경우처럼 사적(私的) 폭력을 행사하고, 기업을 자신의 사유물로 여기는 기업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해고직원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거나, 가족을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러한 실례라고 하겠다. 이 회장 사건을 계기로 기업인들은 자신의 그릇된 행태가 기업 전체에 대한 불신과 반감으로 이어지며, 사회 공동체의 기강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경찰도 ‘유전무죄’ ‘솜방망이 봐주기 수사’ 등의 뒷말과 억측이 나오지 않도록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1-10-06일자 기사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을 퍼왔습니다.
한 경찰관의 용기로 지켜낸 '1500년 절집'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 신비한 이야기를 간직한 마애불
전용호(yong35)


▲ 선운사 가는 길은 도솔천 따라 가는 길 ⓒ 전용호

선운사 마당은 넓다
10월로 들어서면서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난다. 하늘이 파랗다. 전북 고창으로 향한다. 선운사에 꽃무릇 필 때 가본다고 했는데, 결국 올해도 늦었다. 축제도 끝나고, 꽃도 져버렸다. 단풍철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길다. 선운사 나들목을 나와 한적한 도로를 따라간다. 길 양 옆은 풍천장어를 요리하는 식당들로 즐비하다.선운사로 들어가는 길은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천연기념물 송악이 벼랑을 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도솔천을 따라 들어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다. 신작로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면 가지런한 선운사 경내 담장 옆을 걸어간다. 산속에 있는 절집이지만 마치 평지에 있는 절집 분위기다.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2층 구조로 된 천왕문이다. 천왕문 치고는 특이하다. 경내는 넓다. 마당 한가운데 강당인 만세루가 있다. 보통 만세루는 절집 마당 입구를 차지하고 있는데 선운사 마당은 너무나 넓었나 보다. 만세루와 대웅보전 사이에는 연등이 걸리고, 오층석탑이 뾰족하게 섰다.


▲ 선운사 절집 마당 한가운데 있는 만세루 ⓒ 전용호
▲ 선운사 팔상전에서 내려다본 선운사 풍경. 바로 앞 맏배지붕이 대웅보전이다. ⓒ 전용호

선운사가 전쟁 중에 보전되었던 사연은도솔산 선운사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수차례 중창을 거쳐 오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다고 한다. 지금의 절집은 광해군 때 다시 중건되었다.대웅보전은 옛날 건물 그대로다. 웅장하다. 부처를 세 분이나 모셨다. 건물 형태도 맞배지붕으로 깔끔한 느낌이다. 부처 뒤에 있는 후불벽화가 아름답다. 연한 녹색기운이 퍼지는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영산전과 팔상전도 옛 모습 그대로다.
어! 한국전쟁 중에 용케도 살아남았네? 나중에 절집을 나오다가 발견한 비석에서 그 답을 알았다. 한국전쟁 중에 북으로 가지 못한 인민군들이 선운사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국군은 당시 고창경찰서 반암출장소 소장 김재한 경사에게 선운사를 불태울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 후불벽화가 아름답다. ⓒ 전용호

당시 김재환 경사는 "공비들의 토벌은 시간문제이나 선운사 소각은 역사와 문화유산 모두를 잃는 것이니 소각작전만은 철회해 달라. 아무리 전쟁 중이지만 역사 앞에 죄를 짓는 명령에는 응할 수 없다. 지역 치안의 책임은 경찰에 있으니 내 관할은 내가 책임지고 지키겠다"고 완강히 거절하여 국군의 소각작전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선운사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들이 노랗게 익어간다.사람 가는 길과 차 가는 길이 분리되어 있는 도솔암 가는 길선운사를 나와 도솔암으로 길을 잡는다. 도솔암 가는 길은 아직 푸릇푸릇 싱그럽다. 나무에는 '질마재길'이라는 리본이 걸렸다. 도솔천을 따라가는 길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도솔천 주변으로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어떤 나무는 뿌리 밑이 들린 것도 있다. 그러면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도솔천 물은 검다. 도솔천 물이 검은 이유를 설명한 안내판들이 있다. 아마 산속 물이 왜 이리 오염됐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안내문 설명에 의하면 참나무과의 낙엽 등에 함유된 '타닌' 성분으로 인해 검게 보인다고 한다.


▲ 도솔암 가는 길. 아직은 싱그런 숲길이다. ⓒ 전용호
▲ 도솔천 물빛이 검다. 천 옆으로 자라는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내 놓고 있다. ⓒ 전용호
▲ 도솔암 가는 길.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 전용호

도솔암 가는 길은 사람이 가는 길과 차가 가는 길로 나뉘어 있다. 도솔천을 사이에 두고 사람길과 찻길을 만들었다.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싶다면 사람길로, 차를 피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편안하게 걷고 싶다면 찻길을 걸어가면 된다.도솔암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다.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3.2㎞나 된다. 길은 편안하지만 걷는 거리가 길다 보니 조금 힘도 든다. 가는 길에 하늘로 부채를 펼친 모양의 웅장한 소나무인 '장사송'과 진흥왕이 말년을 보냈다는 '진흥굴'도 지난다.붉은 빛 신비로운 도솔암 마애불
평탄한 길이 끝나고 가파르게 오르더니 도솔암이 나온다. 도솔암은 건물이 세 채가 있다. 극락보전을 가운데 두고 동암과 서암이 날개를 펼치듯 자리잡고 있다. 절집 마루에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맑다.


▲ 도솔암 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 전용호

도솔암 바로 뒤로 마애불이 있다. 불상의 높이가 15.6m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다. 이 마애불에는 화순 운주사의 와불만큼이나 신비한 이야기가 있다. 마애불 가슴에는 감실이 있는데, 감실 안에는 비결이 있다고 전해져 왔다.조선말에 전라도 관찰사 이서구가 비결을 얻고자 감실을 열었는데 그 안에 있는 책에는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고 쓰여 있어 놀라서 다시 넣어놓았다고 한다.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감실을 열고 비결을 가져갔다고도 전해온다. 마애불은 붉은 빛이 돈다. 그래서 더욱 신비스럽게 보이기도 한다.신선이 거처했을 것 같은 도솔천 내원궁
마애불 주위로 단풍나무가 아직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나한전이 있고 그 앞에 부서진 삼층석탑을 다시 세워 놓았다. 이곳에 삼층석탑을 세웠을 정도면 예전에 상당한 규모의 절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나한전 옆으로 도솔천내원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가파르게 빙 돌아서 마애불 뒤로 오른다.


▲ 도솔암 나한전 앞 삼층석탑 ⓒ 전용호
▲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도솔천 내원궁 ⓒ 전용호

하늘나라에는 도솔천이라는 천상의 세계가 있는데 그 곳에 내원궁과 외원궁이 있다고 한다. 외원궁에는 하늘나라의 일반 중생들이 살고, 내원궁는 미륵보살이 있는 곳이다. 그럼 이곳은 미륵세상인 셈이다. 내원궁으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가파르다. 한참을 올라 계단에 다 오를 즈음 펼쳐진 풍경에 너무나 놀란다. 높은 바위 틈에 작은 절집이 있다. 아! 이런 곳에 절집을 만들어 놓다니.
건물 안에는 지장보살을 모셔 놓았다. 작은 마당에서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도 있다. 내원궁 난간에 서니 선운산 기암 풍경들이 펼쳐진다. 나무들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풍경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온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옛날 이곳이 거처하는 스님들은 신선이 아니었을까? 2011.10.06 10:27 ⓒ 2011 OhmyNews
원문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6268

[사설] 종편의 ‘광고 직거래’, 민주당이 당운 걸고 막아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0-07일자 사설 '종편의 ‘광고 직거래’, 민주당이 당운 걸고 막아라'를 퍼왔습니다.
여야의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법안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이 최근 미디어렙은 1공영 1민영으로 하되, 종편사는 자율영업을 허용하고 3년 뒤 미디어렙 편입 여부를 판단하자는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에 민주당은 종편의 자율영업을 허용하되 2년 뒤엔 미디어렙에 강제위탁한다는 양보안을 제시했으나 합의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타협이 중요하다지만 여야안 모두 언론시장을 교란시킬 말도 안 되는 발상들이다. 종편사의 광고 직거래가 가져올 폐해를 무시한 무책임한 처사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통한 미디어렙 체제도 물론 문제는 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방송사의 보도·제작과 광고영업을 분리해 자본으로부터 방송의 공공성을 지켜내고 지역방송과 종교방송 등 취약매체를 지원하는 구실도 해왔다.
그런데 종편사가 미디어렙을 통하지 않고 직접 광고주를 만나 거래를 하게 되면 지상파까지 ‘광고전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디어렙 체제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그 파장은 지역방송과 중소방송뿐 아니라 신문산업에까지 미치게 된다. 언론계 전체가 돈에 휘둘리는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력이 방송의 공공성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며 “종편이 광고 직거래에 나서면 자본권력까지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의 입을 막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는 언론의 공공성과 다양성이 무너지고, 나아가 건강한 공론의 장에서만 존립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현 정권이 종편사를 보수언론들에 4개나 무더기 허용한 것 자체가 정치적 포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정부·여당이 광고 특혜를 무기로 종편사들과 유착하고 거래하기 시작하면 내년 양대 선거조차 공정하게 치러진다는 보장이 없다. 이들의 이런 시도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장난이자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판에 민주당이 강제위탁의 단서를 달긴 했지만 종편의 광고 직거래를 허용하는 안을 내놓았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종교·지역방송 지원책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쉽게 양보할 일이 아니다. 미디어렙 문제는 야당이 그 어떤 일보다 최우선 순위의 과제로 삼아 당운을 건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사안이다.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사설] 미국과 중국간 환율전쟁 본격화되나

이글은 서울경제 2011-10-05일자 사설 '미국과 중국간 환율전쟁 본격화되나'를 퍼왔습니다.
중국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본격적인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상원이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미국 정부가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하자 중국이 즉각 무역전쟁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미중 간의 이 같은 갈등이 전면적인 환율 및 무역전쟁으로 확대될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 간의 마찰은 세계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 3일 미국 상원이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한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 법안'은 위안화 절상에 소극적인 중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저평가된 환율을 부당한 보조금으로 간주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기업과 노조가 상무부를 상대로 외국 정부의 환율조작 의혹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다. 지난해 9월 미 하원에서 통과된 이 법안을 이번에 상원이 압도적인 표차로 본회의에 상정하기로 함으로써 상하 양원의 통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미국 의회가 이 법안을 다시 꺼내든 것은 당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턱없이 저평가되고 있는 위안화의 절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역조가 사상최대 규모로 늘어난 가운데 경기회복 지연, 실업률 증가 등 경제사정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미국 경쟁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위안화 절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이 같은 경제난을 풀기 어렵다는 판단인 것이다. 미국은 위안화 가치가 현재보다 28.5% 절상되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1,900억달러 정도 감소하고 일자리는 225만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환율법안의 입법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즉각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위반이라며 공세에 나섰고 인민은행은 미국과의 무역전쟁도 불사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만약 G2 간의 통상마찰이 격화될 경우 국제무역질서를 비롯한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고조되고 있는 미중 간 환율전쟁에 대한 정부와 업계의 관심이 요구된다.

[사설/10월 6일] 민주당, 자신을 깨는 쇄신에 나서길

이글은 한국일보 2011-10-06일자 사설 '민주당, 자신을 깨는 쇄신에 나서길'을 퍼왔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5일 사의를 접었다. 전날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데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사퇴의사를 번복한 것이다. 모양새는 썩 좋지 않다. 하지만 사의 표명과 철회가 정략적 계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물러나면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갈등과 혼선으로 민주당이 더욱 지리멸렬해지고, 박원순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변의 설득이 먹혔다고 본다.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사퇴 철회를 결의한 데다 박원순 후보도 적극 만류하는 상황에서 사퇴를 고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 대표로서 체면은 구겼지만, 손 대표는 선제적으로 사의를 표명함으로써 당내에서 제기될 가능성이 있었던 책임론을 잠재우는 효과를 결과적으로 거둔 셈이 됐다. 사실 손 대표가 당내 경선이 준비되기도 전에 박 후보에 입당 구애를 하고, 천정배 최고위원 등의 출마에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번 사퇴 번복 파동을 거치면서 그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손 대표나 민주당이 처한 상황이 변한 것은 전혀 아니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이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하게 된 현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비난을 받아도 당 지지도가 20%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처지는 달라진 게 없다. 안철수 교수가 거명되자마자 지지도가 50%를 넘고, 당초 5%선에 머물던 박원순 변호사가 안 교수의 출마 포기 이후 곧바로 40~50% 선으로 치솟는 현상에서 민주당의 자리는 없었다.

손 대표가 사의를 표명하면서 "근본적 혁신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라고 밝힌 대로 민주당은 본질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에는 총선이나 대선 때마다 재야와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새 인물들을 충원, 체질 개선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지도자도 없고, 부분적 수혈은 한계를 맞고 있다. 민주당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을 깨는 자세를 취해야 할 때가 왔다. 그 과정에서 인적 쇄신뿐만 아니라 시대정신과 지향점에 대한 토론도 치열하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계룡산의 '웰컴투 동막골' 상신마을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 기자 블로그 물바람숲의 글 '계룡산의 '웰컴투 동막골' 상신마을'을 퍼왔습니다.
통일신라 구룡사터 있는 산골 마을, 전형적인 충청도 민가 정원 고즈넉
최근 국립공원에서 빠져, 옛 정취 어떻게 지킬까 걱정

국립공원 보전운동을 하는 나는 전국 곳곳에 산재한 국립공원을 다녀야 한다.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힘들겠다는 사람도 있다. 둘 다 맞다. 좋고도 힘들다. 내가 사는 지리산국립공원이 아닌 다른 국립공원 출장이 잡히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이다. 해야 할 일보다 가는 길이 겁날 때가 많다.

계룡산 국립공원 북쪽 끝에 자리한 상신마을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차도 없고, 운전도 못한다. 그런 내가 상신마을까지 가려면 기차, 전철, 버스, 택시 등 모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 내게 상신마을은 깊은 산골이다.

상신마을은 충남 공주시 반포면에 속한다. 상신마을에 가려면 32번 국도를 타고 공주 쪽으로 가다가 박정자 삼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들어서야 한다. 희망교를 지나 상신계곡을 따라 마을길을 걸으면 하신마을이 나오고, 하신마을에서 3km쯤 더 들어가면 상신마을이 있다.

상신마을은 남으로 길고, 북으로 갈수록 양쪽에서 좁혀져 삼각형을 이루는 분지형 마을로 버스 정류장과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버스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는 곳이다. 갖가지 모양의 색 바랜 의자에 앉아 인근 대학 학생들이 그린 벽화를 보고 있노라면 버스가 온다.

집집마다 차가 있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버스는 상신마을과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상신마을 버스정류장은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버스정류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초라하고, 촌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으나 하루 4번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리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상신마을이 절터임을 알려주는 당간지주는 이제 마을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었다. 당간지주 옆엔 말하는 어르신과 듣는 어르신, 마냥 하늘을 바라보는 어르신이 함께 앉아 계셨다. 어르신께 마을에 대해 물어보았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70년밖에 안 살았어.’로 시작된 말씀에 의하면 상신마을은 500년쯤 되었단다. 마을이 있기 전에는 구룡사(九龍寺)란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망했다고도 하고, 절이 안 되어 갑사로 옮겼다는 말도 있단다. 절이 사라진 후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렇게 마을이 만들어진 것이다.



‘빈대’가 많아 절이 망했다니 무슨 의미일까? 절에 빌붙어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걸까, 아님 절 안에서 생긴 작은 다툼이 산문을 닫게 할 큰 싸움으로 번졌다는 걸까? 어떤 의미인지 묻는 나에게 어르신은 ‘으음, 글쎄’라고만 하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나 구룡사는 이제 폐사지로 존재한다.

구룡사는 약 3cm 크기의 글씨로 구룡사라 찍힌 기와편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상신마을에는 백제와 통일신라 때의 각종 부도대석(浮屠臺石), 탑재(塔材), 기와조각 등이 있다. 구룡사의 규모는 상신마을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 조각들로 미루어 꽤 컸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상신마을은 계룡산국립공원 인근 마을답게 마을 입구에 하늘과 자연에 예를 표하는 지하여장군과 천하대장군, 솟대가 서 있다. 상신마을 솟대의 특이한 점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 있는 것이든 모두 계룡산국립공원 상봉인 천황봉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신마을은 일제 때는 120호가 있었고, 지금도 130여 호가 산다고 한다. 1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의 들고남이 많았을 텐데, 마을 인구가 줄지 않았다는 건 살기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1933년 상신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다니다가, 대전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와 직장 생활은 외지에서 하고, 정년퇴임과 동시 마을로 돌아온 석지영 노인회장은 상신마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상신마을은 빈촌입니다. 들은 없고, 산에 화전을 해서 고구마, 배추를 길러 먹었어요. 지금은 지하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하늘에서 내린 물로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참 팍팍했습니다. 봄에는 나물 캐고, 가을에는 버섯과 머루, 다래 따서 먹고 살았답니다.’

어르신들은 마을 이야기에 1856년 한양에서 태어나 한일합방 전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가 합방의 비보를 듣고 관직을 버린 후 상신마을에 은거했던 취음 권중면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1916년 회갑 되던 해에 상신마을로 들어와 서당을 차리고 제자를 양성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상신계곡에 구곡(九谷)을 선정하여 바위에 새겨 용산구곡이라 했다. 그의 장남이 소설 ‘단(丹)’의 저자이자 우리나라 단학의 대가인 봉우 권태훈이다. 평범해 보이는 상신마을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상신마을은 입구만 막으면 호수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옴팍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그런 마을을 연상하면 된다. 전쟁이 나자 도회지 사람들은 첩첩산중 상신마을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고 피난을 왔다.

그러나 상신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와 머물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빚었다. 유엔군이 상신마을을 폭격하면서 산중 마을은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상신마을은 숨기 좋은 곳이었으나 일단 들어오면 나가기도 힘든 곳이었다.

상신마을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행주형(行舟形)으로, 샘을 많이 파면 배 밑창이 뚫려 침몰하므로 재앙을 막기 위해 샘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 얼마 전까지 마을사람들의 유일한 식수였던 큰 샘이 나온다. 뚜껑이 덮인 샘을 통해 흘러 나오는 물이 맑고 투명했다. 맛도 좋았다.


상신마을길을 걸으면 전형적인 충청도 민가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충청도 민가 정원엔 큰 나무보다는 작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분꽃, 봉숭아, 금송화, 채송화, 맨드라미, 다알리아, 풍접초 등 소박하면서도 화사한 꽃들은 잎이나 열매, 뿌리를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점하는 자리가 아깝지 않았다. 정원은 따스한 햇살 아래 붉고 노란 빛을 냈다. 한 두 잎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마을길을 걸었다. 돌담엔 호박덩굴이 널려 있고, 감과 대추는 붉은 색으로 익어가고, 장독대로 호두나무 잎이 떨어졌다.


상신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1시간쯤 걸린다. 낮고 포근한 시골집과 높은 담장에 말끔한 잔디밭을 갖춘 고급 전원주택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곳이 상신마을이다. 대도시 대전에 인접한 산세 좋고 공기 맑은 곳이니 고급 전원주택이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 싶었지만 원주민의 자리를 밀어내고 들어오는 대형 건물이 괜히 언짢았다. 10년 후 상신마을은 옛 모습은 어느 곳에도 없고 널찍하게 자리 잡은 도시형 주택들만 남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어르신들은 상신마을엔 20여 년 전 터를 잡은 도예촌 때문에 사람들이 오간다며 큰 장사가 되는 것도 없는 마을이라 했다. 공기도 다르고, 풍경도 멋진 상신마을을 지키고 싶다 하셨다. 그러나 고급 전원주택이 많아지는 걸 보며, 지켜봐야 돈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돈 없는 원주민들은 먹고 살기 힘드니 집도 땅도 팔고 도회지로 나가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일제 때 산 위로 길을 뚫으려는 것을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막았는데 도시사람들이 들어오고, 차가 많아지니 그 길을 뚫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변하는 세상은 영산, 명산이라 불리며 길을 내고, 지형을 변화시키는 일이 금기시되던 계룡산을 변화시키려나 보다. 그래도 될까.


이제 가는 겨, 우리 마을 뭐 볼 건 없잖어, 익숙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으며 상신마을을 떠났다. 상신마을은 지난 해 말에 있었던 국립공원구역조정으로 계룡산 국립공원 밖에 있는 마을이 되었다. 국립공원 안에 사는 주민들의 최대 소원이 국립공원에서 빠지는 거라 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은 뭔 큰 차이가 있겠냐고 했다. 국립공원 안팎 마을이 국립공원이란 경계선 하나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국립공원 안에 사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을과 주민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일, 이건 정부의 몫인 것 같다.

글·사진/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 이 글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계간지 '초록 숨소리' 2011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