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6일 금요일

희망 버스의 목적지는 ‘인간성 회복’ [노동과 삶]희망 버스와 소금꽃나무 김진숙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이번호부터 부정기적으로 르포작가 이선옥씨의 ‘노동과 삶’ 이야기를 싣는다. ‘노동’은 자본과 더불어 경제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더욱이 노동은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돼 있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노동은 자본과의 관계에서 약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기 일쑤다.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체 나라 경제의 주요 구성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노동의 눈물’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지금보다 더욱 높아질 필요가 있다. 그 눈물을 보듬을 때 건전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경제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상황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문제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 문제는 세계경제 변화와 그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이선옥 르포작가가 처음으로 보듬는 눈물은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00일 이상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씨를 찾아나선 185대의 희망 버스 이야기다.  _편집자
이선옥 르포작가

“하루하루 2차 희망 버스를 기다렸어요. 여러분에게는 왔다 가는 ‘하루’였지만, 저희는 이날만을, 정말 분초 단위로 여러분을 기다렸어요.”
지난 7월9일,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2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에 도착했다. 정말 올까, 설마 185대가 올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기다리던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은 빗속에서도 꾸역꾸역 모여드는 1만 명 넘는 사람들을 보고 그제야 웃었다. 피를 말리던 지난 한 달 동안의 시간을 그들은 “분초 단위의 기다림”으로 표현했다. 당사자의 절실한 언어를 뛰어넘을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다시 절감한 한마디였다.

탈것과 이동수단 총동원


지난 7월9일 2차 희망 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시민들이 대형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다.

희망의 버스, 봉고, 자가용, 비행기, 자전거, 트럭, 휠체어, 천릿길 행군…, 2차 희망의 버스는 탈것과 이동수단이 총동원된 장관을 만들어냈다.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와 이들을 지키기 위해 6개월 넘도록 35m 상공 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모여든 희망 버스.
185일째인 그녀의 농성 날수만큼 응원하자는 뜻에서 무모하게 185대를 제안한 이들도,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무엇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것일까?
지난 6월11일, 1차 희망의 버스가 다녀간 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는 다른 국면을 맞았다. 6월27일, 채길용 노동조합 지회장이 회사와 총파업 철회, 업무 복귀를 전격 합의한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즉각 ‘한진중공업 노사 타결’이란 속보를 날렸고, 정리해고 사태가 정리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현장은 ‘상황 끝’이 아닌 새로운 상황의 시작으로 어지러웠다. 부산역에서 만난 한진중공업 조합원 모두 한목소리로 지회장의 합의를 직권조인이라 비난하며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바로 전날 조합원 200명과 간담회를 했을 때도, 집행부가 복귀 의사를 물었지만 상집 간부 일부와 지회장만 빼고 우리 모두 반대했어요. 복귀하게 되면 진숙이 누나와 농성 중인 조합원 모두 2년 넘게 싸웠는데 남는 게 없으니까요. 지회장 혼자 공권력이 들어오는 날 합의해버린 거예요. 공권력이 들어온다는 소리를 듣고 상집 간부 빼고 모두 85호로 달려가서 크레인을 지키려고 농성하는데, 회사랑 만세 부르는 지회장 사진을 본 거예요. 인터넷으로 타결 뉴스가 나왔는데 아무도 몰랐어요.” -김상욱(29·가명), 2008년 입사, 2011년 해고 
“저는 비해고자지만, 이게 해고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면 다음에 우리니까 내 문제잖아요. 그런데 지회장은 일하면서 투쟁하고, 해고자는 법적인 투쟁을 벌이자고 하는데, 우리는 생각이 달라요. 우리한테는 합의된 게 전혀 없다고, 합의 안 한다고 해놓고 속인 거예요. 우리를 지켜준다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싸웠던 건 정리해고라는 문제와 85호 때문이었어요. 진숙이 누나는 그 목숨과 우리를 바꾸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회장은 합의 후에 투쟁 현장에 얼굴도 안 비치고, 85호에 밥 올리는 데도 협조하지 않고 있어요.” -이정환(35·가명), 2006년 입사, 비해고
부산역에서 한진중공업을 향해 행진하는 길에는 ‘노사합의를 환영하며 조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합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협력업체, 시민단체(라 칭하는 관변단체), 부산 시민, 지역 주민의 이름으로 붙은 플래카드들은 한진중공업의 해고 사태가 끝났다고 못박고 있었다. 행진하던 중 조합원들이 이 플래카드를 주욱 찢었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란다. 노사합의가 아닌 직권조인이며 조합원들의 동의 없는 합의는 무효이다. 김진숙이 아직 그곳에 있고, 그녀를 지키러 간 사수대가 크레인에서 농성을 시작했으므로, 행정대집행으로 끌려나간 조합원들이 크레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시 모이고 있으므로,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정상화는 사실이 아니다.
채길용 지회장이 직권조인을 한 뒤 김진숙은 “처참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이 우릴 버렸다”고, “얻어맞고 끌려나가는 조합원들의 모습보다, 지회장이 회사와 만세 부르는 그 모습이 더 처참하다”고 했다. 노조마저 버린 싸움, 이제 끝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과, 사태가 해결됐다고 왜곡하는 언론에 고립돼, 마지막 남은 기운마저 다 소진한 조합원들이 기대한 건 희망 버스뿐이었다.

한진중 노동자의 마지막 희망 ‘희망 버스’
“옆에 있는 동료들 믿고, 진숙이 누나 믿고, 희망 버스 믿고, 경찰한테 끌려갈 때도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9일까지만 버티자, 서로 그랬어요. 희망퇴직 쓰려는 동료 있으면 제발 그날까지만…, 그날까지만 버티자…. 우리를 보러 온다, 사람들이 온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오늘 이 장면들이 꼭 꿈꾸는 것만 같아요. 사람들 보니까…, 진심으로 연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니까….” -김상욱
“1차 때도 우리 회산데 우리를 보러 손님들이 온 건데 꼭 우리가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는 사다리 하나 달랑 준비했을 뿐인데…. 1차 때도 그랬지만 우리한테는 희망 버스가 엄청난 거예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 부산 끄트머리의 회사까지 와주었잖아요.” -이정환
지회장과 사무장은 조합원들의 형사처벌과 노조 와해를 우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자본과 권력이라는 강자들의 공세에 둘러싸인 노동조합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직권조인이란 건 언제든 정당할 수 없다. 그 행위를 통해 보호하겠다는 조합원 당사자들이 반대할 때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조의 와해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직권조인으로 인해 오히려 노조가 무너지고 있는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묻고 싶다. 비록 차악의 선택일지라도, 혹은 처참한 실패가 보일지라도 조합원과 함께하는 길을 택했다면 지금 같은 분노는 없었을 것이다. 조합원의 가슴을 어루만질 수 없는 합의라면, 옳아도 옳지 않다. 그것이 노동조합 간부의 책임이자 숙명 같은 것이다. 조합원들이 버린 지회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2년 전 쌍용자동차 노조가 77일간의 옥쇄파업 끝에 합의한 ‘노사 대타협’도 벼랑 끝에 몰린 집행부가 선택한 불가피한 차악이었다. 77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쟁을 치른 조합원들은 너무나 지쳐 있었고, 집행부는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다 느꼈다. 차라리 다 같이 죽자던 조합원들의 절규, 몸과 마음의 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는 조합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양보한, 그야말로 피눈물로 맺은 합의였다. 비록 그 합의가 차악이었어도 조합원들은 집행부를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할 수 없었다. 위원장과 집행부가 끝까지 조합원들과 생사를 함께했기 때문이다.

체불 노동자, 스마트폰 구입해 트위터 시작

2차 희망 버스에 탑승해 부산 한진중공업에 들어가려던 한 시민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현장의 사정이 이럴진대, 언론은 노사합의 이후 일부 강성 노조원들과 외부 세력만이 투쟁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합원들은 있는 힘을 다해 현장의 진실을 알리고 있지만 여전히 벅차다. 몇 달째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이 없는 돈에 스마트폰을 장만해 트위터를 시작했다. 김진숙과 이어진 유일한 끈, 세상 밖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트위터가 지금 이들이 가진 최선의 무기다.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강성이어서 남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남은 거”라고, “소수가 아니라 조합원 대부분이 지회장의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아직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열심히 공장 안의 진실을 타전하고 있다. ‘외부 세력’이라 칭한 희망 버스 탑승자들은 이들의 진실을 부지런히 세상 밖으로 퍼뜨렸다. 1차, 2차 희망 버스는 당사자들과 외부 세력이 경계를 넘어 연대한 힘으로 조직됐다. 내부와 외부로 경계를 나눈 건 그들일 뿐, 지금 영도의 밤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우리다. 
2시간 넘게 비를 맞으며 한진중공업을 향해 걸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길 옆에 서서 “고맙습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연방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자식이 한진에 다니거나, 남편이 해고가 된 모양이다. 해고는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살인이므로, 함께 살인의 행렬을 막겠다고 찾아온 이들이 그저 고마운가 보다.

살인게임 즐기는 고양이 앞의 쥐
지난 2월 한진중공업은 노동자 172명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연초에 400명 해고를 선언한 뒤 1월에 290명을 발표했다가, 다시 희망퇴직을 거부한 최종 명단 172명을 추린 것이다. 서너 달 사이 회사가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노동자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회사는 2010년에도 인원 30% 구조조정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해고자인 김진숙의 단식농성으로 현장의 반대가 일어나자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고 합의했다. 2007년에도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 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했고, 2003년에는 김주익 지회장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29일 동안 싸우다 목맨 뒤에야 정리해고를 철회했다. 누군가 죽거나 굶어야만, 누군가 크레인에 올라가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만 겨우 해고를 막을 수 있는 현실이다. 무엇을 더 따내기 위해 굶고, 죽는 것도 힘든데 그저 죽지 않기 위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게 이른바 ‘귀족 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다. 심심하면 한번씩 아가리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살인게임을 즐기는 고양이의 앞발에 잡힌 쥐처럼, 가엾다.
“저는 이가 아파서 5일 동안 치료받으러 점심시간에 외출을 했어요. 월차 내려고 했는데 상사가 일이 많으니 외출로 하라 해서 그렇게 했어요. 외출한 날도 저녁에 다 야근을 했어요. 그런데 그 외출 5번이 근태라고 해고 사유가 된 거예요.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저처럼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잘렸어요. 젊은이들을 뽑았으면 숙련된 기술자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한진을 봐왔어요. 조선 경기는 계속 호황이었고, 제가 해고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이 회사에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했는데…. 회사는 얼마 전에도 집집마다 등기우편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어요. 집회와 농성에 참여하면 경기가 좋아져서 재고용할 때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협박이에요.” -김상욱
“상욱이 경우처럼 해고 사유가 정말 어이없어요. 저는 해고되지 않았지만 미안해요. 옆에 있던 동생인데 두고 가는 게 미안하고, 6개월 동안 같이 먹고 자고 가족보다 더 친형제 같은 사람들인데. 해고로 관계들이 파괴되고 지회장은 얼마 전까지 우리랑 ‘10원짜리’ 욕하고 싸우던 용역들의 호위를 받고 나가니, 참 말할 수 없이 착잡해요.” 
“해고 발표가 났을 때 비해고자들 모두 ‘휴’ 하는 안도가 10%, ‘다음은 우리 차례다’가 90%였어요. 김주익 지회장 그리 되고 잠깐만 없었지, 몇 년 동안 계속이었어요. 저도 연초엔 해고자 명단에 포함돼 발표됐다가, 다시 냈을 때는 빠졌어요. 지금 비해고자여도 언제 잘릴지 몰라요.” -정기선(41·가명), 2003년 입사, 비해고
집단에 대한 폭력이 가장 너그럽게 용인되는 게 바로 노동현장의 ‘구조조정’이다. 그 건조한 단어 너머에는 구체적인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는 직접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 안에서 노동자는 그저 비용일 뿐이다. 개별 인간의 인격과 존엄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 기계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이용되다, 그저 비용으로 처리되는 노동자들의 하찮음이…, 그래서 제일 슬프다. 

자재는 비 오면 덮어주고, 기계 점검도…

한진중공업 노조원(오른쪽)이 희망 버스를 타고 내려온 한 시민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자재는 비 오면 덮어주고, 기계는 고장날까 점검해주건만, 오직 목숨이 있는 인간들만 경제의 이름으로, 산업의 이름으로 죽도록 부려먹다 가차 없이 버려진다. 
해고라는 것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 너그러워도 되는 것일까? 170명을 자른다고 발표하면 주식값이 뛰는 비정한 자본주의를 그냥 용인해도 되는 것일까? 다른 생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해고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한 것일까?
희망 버스는 이 많은 물음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모여 다시 인간의 복원을 외치는 장이었다. 한 사람의 절규에 응답하면서 시작됐지만, 노동자 수만 명의 비참한 현실 때문에 일어났고, 수십만 명의 공명으로 가능했다. 촛불은 광장의 담론을 만들었지만, 희망 버스는 담론을 넘어선 현장의 행동을 만들어냈다. 투쟁 현장조차 중심부가 아니면 외면받기 십상인 서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는 의지들의 총합의 장이었고, ‘결사투쟁’의 세대와 ‘연대 돋는’ 세대 교합의 장이었으며, 노동자계급과 시민계층이 화합하는 장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김진숙이라는 걸출한 여성노동자는 언제나 고립돼 시민권조차 얻지 못한 노동자에게 비로소 ‘시민권’을 안겨주었다. 마치 85호 크레인 위에서 대지를 관장하는 여신처럼, 해고당한 조합원들을 위로하며, 아직 인간의 온기가 남은 사람들을 독려하며, 고통 속에서도 이 모든 사람들을 넉넉하게 품고 있었다.
“회사 사람이 다른 조선업종 직장을 소개해준다고 거기 가서 다시 일하라 했어요. 그런데 딴 데 가면 제가 행복할까요? 가족보다 더 끈끈한 이 사람들을 두고 도저히 갈 수 없어요. 우리는 조합이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누나랑 희망 버스가 지켜주고 있어요. 공권력이 들어온다고 할 때 가장 먼저 85호 크레인으로 달려갔어요.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밧줄로 크레인 계단에 몸을 묶었어요. 수십 명이 달려갔는데, 저 위에서 진숙이 누나가 우리보고 그러는 거예요. ‘공권력 투입돼도 걱정하지 마. 내가 끝까지 너희들 꼭 지켜줄게.’(울음) 우리도 ‘누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누나 꼭 지켜줄게요’라고 약속했어요. 진숙이 누나가 내려오지 않는 한, 누나가 안전하게 내려올 때까지 저는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김상욱
직권조인 이후 몇 차례 크레인을 진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녀는 강제 진압하면 뛰어내릴 수밖에 없음을 호소했다. 크레인에 오른 이후 하루도 내려가는 연습을 거른 날이 없었고, 꼭 승리해서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 김주익의 원혼과 함께 제 발로 내려가겠다고 약속했던 그녀다. 희망 버스가 오기 전엔 설레서 잠을 못 잤고, 희망 버스가 다녀간 뒤에는 그리워서 눈감지 못했던 그녀다. 그러나 2차 희망 버스 참가자들은 끝내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나는 곳 500m 전부터 차벽을 쌓아놓고 통째로 길을 막은 경찰들 때문이다. 그 절망과 고립의 차벽을 넘어, 조선소 앞에서 우리를 기다릴 조합원들과 크레인 위의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썼지만, 경찰은 평화로운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최루액 대포를 무차별로 쏘아댔다. 경찰 덕에 3차 희망 버스가 그 자리에서 결정됐다.

현장에 돌아가면 하고픈 건 ‘여행’
“희망 버스가 돌아가고 나면 당장엔 갑갑하겠지요. 하지만 지난번 1차 버스 이후에 2차가 있었잖아요. 2차 버스를 기다리는 힘으로 버텼으니 또 3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시 그날만 기다리는 거죠. 3차가 언제 잡히겠노 하다가 잡혔다니까, 우리는 또 기다리고 있어요.(웃음) 우리 싸움 꼭 이기지 않을까요? 이렇게 많이 응원해주는데, 꼭 이길 거예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여행을 하고 싶어요. 형들하고 배낭 메고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여행 한번 갔으면 좋겠어요.” -김상욱
일상에 치인 자가 꿈꾸는 여행과 일상이 파괴된 자가 꿈꾸는 여행은 다르다. 이들이 꿈꾸는 여행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파괴된 삶을 온전히 회복하고 싶은 몸부림이다. 이 참혹한 전쟁이 끝나 그녀가 안전하게 땅을 디딜 때까지, 김주익과 곽재규의 영혼이 편히 잠들 수 있을 때까지, 정리해고로 버림받고 용역 깡패들에게 내동댕이쳐진 조합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훌쩍 배낭 메고 여행을 떠나는 그 아무것 아닌 일상을 되찾을 때까지, 희망 버스는 인간의 세상을 향해 계속 달려야 한다. 아니 달릴 것이다. 
namufree@gmail.com

엄청난 순익 보장하는 값싼 티셔츠 [Cover Story]H&M 티셔츠의 세계여행 ④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다.
볼프강 우하티우스 Wolfgang Uchatius 기자

말레이시아를 떠난 화물선은 수에즈운하와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독일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매장의 세계’다. ‘돈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는 고리타분한 옛말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돈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이 옛말은 더 이상 고리타분하지 않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돈을 가진 이들은 53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시자 빌 게이츠가 아니다. 470억달러를 가졌다고 추정되는 금융투자가 워런 버핏도 아니다. 세계에서 최고 부자라고 손꼽히는 사람들의 부는 런던이나 로스앤젤레스나 두바이에서 길을 걷다 쇼핑몰에 들어가는 수많은 이들이 가진 돈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전세계 인구 20%에 달하는 15억 명이 H&M에서 옷을 사입을 수 있을 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들을 ‘세계적 소비계층’이라고 부른다. 이 계층이 가진 재력은 1850억달러에 이른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화려한 H&M 매장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생산은 방글라데시가 했지만 이익은 독일이 챙겨
이 계층들이 있기에 광고업체와 톱모델과 이미지 캠페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계층이 바로 문제가 되는 싼 셔츠를 구입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이 소비계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H&M은 왜 생산업체 운영자들에게 최저임금만을 지급하라고 했을까요? 왜 여공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을 지급하라고는 하지 않았을까요?” “H&M은 왜 생산업체에서 행동강령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를 자사만이 시찰할 수 있고, 다른 독립적인 감시 기관은 할 수 없도록 하는 거죠?”
사람들은 왜 커피 한 잔 값 정도로 낮은 가격의 티셔츠를 필요로 하는가? 티셔츠를 사기 위해 커피 두세 잔 값을 지급하는 일이 그토록 힘든가? 커피 두세 잔 값을 낼 만한 여력이 충분히 있지 않는가?
하지만 세계적인 소비계층은 이런 질문을 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물건을 구입할 뿐이다. 
티셔츠당 4유로16센트가 H&M에 돌아간다. 물건 생산과 운송에 들어간 1유로40센트를 제외하면 2유로76센트가 H&M에 남는다. 그다음 2유로 정도가 매장 임대료와 독일 내 운송비, 판매원이나 회계사의 임금, 광고 및 카탈로그 제작비로 빠질 것이다. 티셔츠 라벨에는 ‘메이드 인 방글라데시’라고 쓰여 있지만, 4유로16센트의 많은 부분이 독일에 남게 된다.

최종적으로 티셔츠당 순익은 60센트가 된다. H&M이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벌을 판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싼 티셔츠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H&M은 이런 숫자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른 의류 전문가들, 예를 들어 롤란트 베르거 컨설팅에서 나온 사람들도 이런 계산이 옳을 거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티셔츠는 이제 H&M 매장에 걸려 있다. 이 매장은 ‘슈피’라고 불린다. 함부르크 슈피탈러 거리 12번지에 있는 H&M 매장을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슈피 매장은 독일에서 큰 매장 중 하나다.
점심시간이어서 고객으로 매장이 꽉 차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산하지도 않다. H&M이 한산한 적은 없다. 보이지 않는 스피커에서는 팝음악이 흘러나온다. 10대 소녀들이 톱을 몸에 대보고 있다. 점원이 금색 칵테일 드레스를 똑바로 걸고 있다. 점원의 이름은 안네다. H&M에서 성은 필요 없다. 모두 그냥 이름만 부른다. 상사에게도 높임말을 쓰지 않는다. 이 기업은 직원을 가족같이 생각한다. H&M은 사실상 지구에서 가장 큰 가족이다.
안네는 6개월 전에 대입시험을 치렀다. 그 뒤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옷을 사기만 했던 곳에서 일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성은 슈미트였다.

한정 제품 구매 위해 새벽부터 줄 선 고객들
안네 슈미트는 H&M이 맘에 든다고 했다. 이 기업은 다양성이 있고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며칠 전 매장으로 프랑스 랑뱅의 수석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특별 컬렉션이 도착했다. 벨벳 정장과 어깨가 뾰족한 재킷 등 오트쿠튀르 의상을 몇십유로에 살 수 있었다. 당연히 수량은 한정됐고, 새벽 4시부터 사람들이 슈피 매장 앞에 줄을 섰다.
얼마 뒤 의류생산직 노동자인 나즈마가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공장 뒷마당에서 처음으로 새로 책정된 임금을 받아 세어보고 있다. 그녀는 5천타카 이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4천타카(약 42유로)를 조금 넘는 돈을 받았을 뿐이다. 
이 의류공장은 월급에서 나즈마가 공장에서 일한 지 3년이 된 해부터 받던 보너스를 없애버렸다. 캄보디아나 베트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두랄브러더스사는 생산비용을 낮춰야 한다. 티셔츠는 앞으로도 계속 싸게 생산될 것이다.
면화 가격 또한 지난해 말부터 조금씩 하향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최고 정점을 지났다고 말한다. 과거에 가격이 정점에 있었던 때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면화 가격이 올라가면 세계 곳곳의 농부들은 이 작물을 점점 더 많이 심는다. 미국도 지난해보다 올해에 1.5배 많은 면화를 수출했다. 곧 지나치게 많은 면화가 세계시장에 나올 것이다.
H&M은 티셔츠 가격을 계속 낮게 유지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 기업은 대중이라는 막강한 힘에 기초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H&M은 세계에 220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모스크바나 이스탄불에서도, 상하이나 서울에서도 똑같은 티셔츠를 살 수 있다. 매장의 세계는 넓다. 매장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티셔츠가 팔린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H&M이 두랄브러더스사에 티셔츠를 많이 주문할수록 할인율이 더 높아진다. 티셔츠 수량이 많기 때문에 그 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싼 티셔츠에 숨겨진 마지막 비밀이다. 사람들이 티셔츠를 많이 사면 티셔츠 가격은 계속 싸게 유지될 것이다.
안네 슈미트가 티셔츠를 손에 들고 있다. 날씬한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고, 붉은 기가 도는 갈색 머리를 가졌다. 그녀는 H&M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지만, 단지 하나의 직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그녀는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하게 될지 모른다.
안네 슈미트가 티셔츠의 재질을 만져보고 위를 쳐다보더니 조용히 웃는다. 자랑스러운 것도 즐거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미안한 듯하다. 그녀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그녀에겐 단지 티셔츠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점이다. 
ⓒ Die Zeit·번역 이상익 위원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재정위기인가, 더블딥 위기인가 [기고]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이글은 미디어스의 2011.08.25 기사를 퍼왔습니다.

▲ ⓒ 연합뉴스
2011년 8월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주가폭락사태가 유럽과 미국에서 이어지는 재정위기와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좀처럼 진정세를 찾지 못하고 추락과 횡보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 등 유럽 주요 국가의신용등급 하락 우려와 재정위기 국가들의 국채를 다량 보유한 은행들의 부실우려까지 겹치면서 추가적인 상황 악화 위험성까지 내재하고 있다. 3년 만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중이다. 
그 가운데 현재의 국면이 실질적으로 위기국면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충격인가 하는 진단이 엇갈리고 있다. 초기에는 일시적 혼란이나 충격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가면서 실물지표들이 확인될수록 더블 딥 가능성을 더 크게 전망하게 되고, 이에 반비례하여 명확한 대응책이 부재하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상황은 바뀐다. 오히려 급격한 거품 붕괴 같은 연속적인 충격은 보이지 않더라도 사태가 매우 장기화할 수 있다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미국과 유럽이 6~12개월 안에 더블 딥에 빠질 수 있다"(모건 스탠리), “리세션 위험이 명백히 높아졌다” (JP 모건), “새벽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메릴린치)는 등 미국 투자은행들의 전망도 빠르게 비관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만 경기 침체로 인정하고 있고 현재는 여전히 낮지만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경기하강 추세가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하반기부터는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완화나 경기부양 정책이 대부분 종료되고 있어 민간 부분의 자생력만으로 경제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지 하는 점이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두 거대 경제권인 북미와 유로권이 서로 악영향을 주면서 경기침체를 부채질 할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핌코 설립자인 빌 그로스는 아예 “미국 경제는 경기회복을 위한 자생적인 능력을 잃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논쟁은 바로 현재 위기가 과연 ‘재정위기’이냐 하는 점이다. 처음에는 언론 매체에서 보도되는 재정위기라는 점을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듯 했지만 재정위기가 균형재정 추구로 이어지고 긴축으로 귀결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이에 대한 강한 비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로버트 라이시 미국 전 노동부 장관이나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마크 웨이스브롯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나 포르투갈 등 일부 나라들을 제외하면 미국을 포함하여 실질적으로 재정위기에 접어든 나라들은 없다는 것이다. 웨이스브롯에 의하면 아직 미국의 정부 부채에 대한 이자지급 비율은 GDP대비 1.4%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만약 미국 국가채무가 문제가 된다면 미국이 발행하는 국채가 시장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유통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요점은 국가부채/ GDP의 비중이 미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100%를 전후를 오가고 있는데, 긴축을 통해 부채 규모(분자) 자체를 당장 줄일 수도 있지만 이는 동시에 성장률(분모)도 함께 떨어져 결국 부채 비율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긴축으로 부채규모를 줄이기보다는 실물경제를 살려서 성장률을 제고함으로써 부채의 상환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긴축이 아니라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사연의 여경훈 연구원 역시 1980년대와 비교하여 국가 부채 비율이 20% 정도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에 비해 지금은 국채 이자율이 2%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부지출 대비 이자 지급 비중이 오히려 과거에 비해 절반 수준인 5.7%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자 상환 부담에 비추어 보았을 때 재정적자가 심각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현재 위기를 재정위기로 진단하는 것은, “재정위기의 지속 불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확산하여, 실제 재정위기가 초래되면 복지지출 삭감을 선택이 아닌 유일한 해법으로 강제하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부활 전략”이라고 비판한다. 
이제 시작이다. 새롭게 찾아온 위기의 성격을 어떻게 규명할 것인지, 진정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우리 연구원은 실물 경제가 재 침체로 들어서는 국면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이 상황을 과도하게 재정위기로 몰면서 긴축과 복지지출 감소로 연결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잘못된 원인 진단에 의한 잘못된 처방이라고 판단한다. 
오히려 지금은 실물경기를 살리고 양극화가 구조화된 상황에서 복지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를 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해 추가 감세가 아닌 적극적인 증세정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금융회사들과 금융거래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은 지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몇 가지 외환시장 건전성 대책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외적인 충격에 취약하다고 본다. 우리 연구원이 꾸준히 제기해온 자본 유출입 통제 장치들과 정책들을 더욱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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깰 수도 놔둘 수도 없는 유로 [Special ReportⅡ]유로 붕괴하나 ④


이글은 한겨레신문 Economy Insight의 기사를 퍼왔습니디.

토마스 다른슈타트 Thomas Darnstadt
만프레드 에르텔 Manfred Ertel
아르민 말러 Armin Mahler
페터 뮐러 Peter Müller
크리스토프 파울리 Christoph Pauly
크리스티안 라이어만 Christian Reiermann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안네 자이트 Anne Seith 기자
그리스와 같은 경제적 취약국이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부채 구조조정을 실행하고 대대적인 채권자들의 탕감 조치 없이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경제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7월12일 그리스 아테네 시내에 위치한 아테네 여신 동상과 그리스 국기 뒤로 달이 떠오르고 있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금은 이른바 ‘헤어컷’이라 칭해지는 부채 할인을 실행할 수 없다. 반대자들은 금융시장이 아직 불안정하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그리스에 대한 부채 할인이 이뤄지면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 뒤처럼 새로운 경제위기가 올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독일은 경제위기 극복에 채권자들도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일의 집권 연립정당인 기민·기사연합과 자유민주당(FDP)이 독일연방의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의회는 이후의 구제책 비준을 거부할 것이라고 한다. 기민·기사연합의 수석총무 노베르트 바르틀레는 “우리가 더 오래 기다린다면 민간 채권자들의 손에 쥐어진 채권이 다 없어진다”면서 “그렇게 되면 독일의 납세자들이 그리스 구제에 드는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 중 강제로 포기하는 사례 없어야
유럽중앙은행은 어느 투자자도 강제로 채권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유로화 수호자’는 경고한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그리스가 채권자들의 완벽한 동의를 받지 않고 채무이행을 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면 그리스의 국가신용도를 가장 낮은 D로 낮춰야 한다. D는 ‘디폴트’(Default), 즉 채무불이행의 약자다. 만약 채무 상환 기간이 채권자들의 동의하에 연장되더라도 그리스의 신용평가는 ‘부분적 채무불이행’(SD·Selective Default) 단계로 낮춰지게 된다.
둘 중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유럽중앙은행은 그리스 국채를 더 이상 담보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리스 은행들은 유럽의 자금흐름에서 광범위하게 차단되고, 유동성을 잃게 될 위험에 처한다. 그리스의 금융 시스템이 붕괴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해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유럽중앙은행과 그 동료들에게 한 가지 협상안을 제안했다. 그리스 채권이 민간 투자자들이 부담에 참여함으로써 담보 가치를 잃게 되면 유럽중앙은행이 그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10명으로 구성된 독일 재무부의 ‘그리스 담당팀’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전문가들은 유럽 국가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그리스에 두 번째 구제금융으로 주어지는 900억~1200억유로의 새 자본 외에, 추가적으로 유럽 구제금융기금 EFSF에서도 차관을 주자고 제안했다. 이 차관을 최고 신용도인 AAA로 평가된 유가증권으로 그리스 은행에 넘겨줘서 이들이 이 유가 증권을 유럽중앙은행에서 받는 대출의 담보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 안을 실행하게 되면 새 구제금융에 지금 계획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이 이 조치를 위해 충분한 자금을 지원하려면 실제로 창립에 필요하다고 산출된 4400억유로를 동원할 수 있도록 재정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회원국들은 보증 범위를 두 배로 올려야 한다. 독일의 부담은 이제 1230억유로 대신 2460억유로로 늘어난다.
‘유로화 지킴이’들은 부수적으로 이른바 ‘파이낸셜 스태빌리티 펀드’(Financial Stability Fund)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최초의 그리스 구제금융 때 만들어진 이 기금은 약 100억유로 규모다. 이 기금은 비상사태에 그리스 은행들의 자본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지금까지 이 기금은 사용되지 않았다.

더 많은 지원이 사태 해결책이라고 믿는 사람 없어
수많은 방해와 요구 조건이 있음에도 그리스에 결국 돈이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로써 유로존 국가의 부채 위기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독일 정부 내에 한 명도 없다. 1년 이상 지속된 위기 상황 뒤 베를린에서도 최악의 상황을 예측해보면서 그에 대비하려 한다.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산하에 있는 위기관리팀은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보고 있다. 만일 한 국가가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거나 회원국 중 하나가 통화동맹에서 탈퇴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공통 통화 구역의 경제적 불균형을 방지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위기 국가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다른 국가들이 손을 떼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이다. 이보다 좀더 현실적인 방법은 그들을 지금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원하면서 상태가 호전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많은 자금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극단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이 실행될 것이다. 진척은 미미하고 경기 호전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으면, 유로 국가들은 그리스 지원을 포기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아테네로 많은 지원금을 보냈음에도 앞으로 계속 지원금을 쏟아붓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렇게 되면 시장에서 자금을 유입할 수 없게 된 그리스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채무불이행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스 신용기관들이 여전히 거대한 금액의 국가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 금융권이 초토화된다.
이런 결과는 다른 나라로 위기가 번져갈 위험이 있다. 그리스가 쓰러지면 투자자들은 다른 경제력이 약한 유로 국가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연쇄반응이 일어나 더 많은 은행이 파산을 걱정하게 될지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서 그리스는 통화동맹에서 탈퇴해 드라크마화를 다시 도입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그리스 정부는 이 방법을 논의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제학자들도 이 방법을 추천했다. “유로화 포기는 차악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뮌헨의 민간경제연구소 IFO 소장 한스베르너 진의 말이다.
미국 뉴욕대학 경제학 교수인 누리엘 루비니도 같은 의견이다. “한 국가는 자국의 통화를 가지고 있어야 환율을 조정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는 3년 전에 이미 경제위기를 예측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루비니 교수는 “지금까지 모든 경제위기에서 자국 통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조처가 위기를 겪는 국가의 경제에 활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명백한 원리가 역사적으로 처음 결성된 유럽의 통화동맹에서는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 통화동맹 탈퇴하면 더 심각한 문제 발생

자국의 재정위기로 어두운 표정이 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왼쪽)와 에반젤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

그리스가 통화동맹에서 탈퇴하더라도 그리스의 부채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부채는 여전히 유로화로 남게 되고 이 부채는 하룻밤 사이에 외환 부채가 된다. 드라크마를 평가절하하기 때문에 유로화 부채는 새로운 국가 통화 대비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그리스는 채무 상환 의무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는 물론 다른 유로존 국가의 은행들도 다시 압박을 받게 된다. 금융권을 위해 또다시 수많은 돈이 드는 구제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은 최종적으로 통화동맹을 통화가치가 높은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들의 그룹과 통화가치가 낮은 자국 통화를 가진 나라들의 그룹으로 분열시킬 수밖에 없다. 유로화 비판가인 전 연방은행 총재 빌헬름 뇔링은 이 해결책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과 함께 유로화 도입에 반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금은 구제금융에 반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통화동맹 붕괴가 아닌 다른 대안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통화동맹이 보증동맹으로 변화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구제책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보증동맹으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2013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계획된 상시 구제금융기금인 ESM으로 이 위험한 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결과는 대략 이런 식이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북부 국가들이 적자 국가들에 장기적으로 재정 지원을 하게 되고, 지금까지 차관으로 계산되던 금액은 이자가 붙지도 않고 갚지 않아도 되는 순수한 재정 지원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채 국가는 지속적으로 보조금 수혜자가 된다. 수혜국들은 이탈리아의 메조지오르노 지역이나 벨기에의 왈롱 지역처럼 경제강국인 이웃들의 기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많은 경제·경영 전문 정치가들은 더 탄탄한 중앙정부를 가진 유럽 정치 연합을 빨리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유로존 국가들이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면 유럽 단위의 경제 시스템을 훨씬 더 잘 조정할 수 있고, 공통 통화는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수혜국에서 개혁이 실행되고 이 국가들의 경쟁력이 상승할 것이다. 얼마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 장클로드 트리셰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조치 권한을 가진 유럽 재경부를 신설할 것을 제의했다. 하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많은 통합이 경제적 불균형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그에 대해서 그 어떤 나라보다 잘 아는 것이 독일이다. 독일은 약 20년 전 동독-서독 통화동맹을 통해 이미 이런 상황을 경험했다. 1990년 7월1일 D-마르크는 1 대 1의 환율로 과거 동독에서 사용되던 마르크와 교환됐고 석 달 뒤 옛 동독 지역들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의 새로운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독일은 통일됐다. 이는 정치공동체가 동반된 통화공동체의 전형적인 사례다.

유로가 독일 통일에서 배워야 할 점
하지만 빠른 통일이 동독-서독 통화동맹의 경제적 충격을 완화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곧 인정해야 했다. 통일 독일의 경제적 불균형은 심화됐다. 옛 동독 지역에서는 생산성을 옛 서독 지역의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데 실패한 수천 개의 사업장이 문을 닫아야 했다.
실업률이 급증하고 동독과 서독 지역 간의 자금 이송은 곧 1조마르크를 넘어섰다. 오늘날까지 옛 동독 지역은 경제력과 생산성과 수입에서 옛 서독 지역에 뒤처져 있다.
독일 통일도 이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독일 통일은 단지 통화공동체의 부정적 결과를 재정적으로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한마디로 새롭게 연방에 가입한 주들(옛 동독)은 유리한 조건으로 서독의 경제력과 균형을 이룰 수 있게 지원받았고, 옛 동독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서독 사회보장 시스템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독일 통일은 유럽의 수뇌들에게 모범 사례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잘못 조직된 통화공동체가 얼마나 빠르게 장기적인 보증동맹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됐든 이런 방식은 현재의 유럽 협약에 위배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협약이 만들어지고, 각국 의회에서 비준돼야 하고, 국민투표도 시행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유럽 국민과 그들의 대표는 그 전에 이미 아테네나 리스본에서 긴축재정 정책이 거리 시위대들의 저항에 막혀 실패하거나 베를린에서 수십억유로에 달하는 채무보증을 실제로 감당해야 함으로써 통화동맹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지 모른다. 
ⓒ Der Spiegel·번역 황수경 위원

2011년 8월 24일 수요일

[사설] ‘오세훈의 주민투표’, 들러리 설 이유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의  2011-08-23자 사설입니다.
아주 낯선 선택을 요구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된다. 두 문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기에 앞서 투표 거부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투표다. 주민투표에선 거부도 보장된 선택인 만큼, 어떤 결정도 민주시민의 권리다.
이번 투표는 특히 청구와 발의 과정에서 허다한 위법 부당성 탓에 투표의 정당성에 문제제기가 많았다. 무상급식 소관 기관인 교육청이 ‘안 해도 되는 투표’가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투표’라고 주장하는 건 그런 까닭이었다. 이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은 투표 거부가 민주시민의 의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이미 선관위에 의해서도 배척됐다. 현재로선 반론다운 반론이 없다.
교육청 지적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교육청 소관 사항을 서울시가 가로채 주민에게 판단을 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교육청에 대한 예산 지원에 관한 사항이라면 할 수 있지만, 예산 사항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문제의 발단은 시의회가 재의 끝에 통과시킨 무상급식 조례였다. 오 시장은 그 적법성에 대해 대법원에 심판을 의뢰했다. 법원이 심사중인 사안은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는 배후에서 주민투표를 조종했다. 결국 중간에 ‘지면 대권 불출마’, 막판엔 ‘지면 시장직 사퇴’ 등으로 배수진을 쳤다. 주민투표가 제 꼼수임을 자인했다.
게다가 이번 투표는 일단 기표소에 들어가면 오 시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구조다. 주민투표에서 발의를 지지하는 사람만 투표소에 가는 경향이 있다. 설사 반대표를 던지러 간다 해도, 투표율만 높여 33.3% 조건을 채우는 들러리 구실만 한다. 여기에 투표 문항 자체가 아전인수의 전형으로, 오 시장에게 절대로 유리하다. 여당 안에서도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오세훈의 투표’라는 지탄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투표에서 지면 복지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망한다며 눈물을 쥐어짰다. 그러나 주민투표와 정부 정책은 크게 관련이 없다. 하다못해 이웃 지자체에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보수성향의 인천시교육감은 엊그제 전면 무상급식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는 이미 교육청과 협력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서투른 몸개그일 뿐이다. 오 시장이 사유화해버린 주민투표, 거기에 들러리 설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영리병원은 발암 물질이다


이글은 레디앙의 기사를 퍼온것입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칼럼] 예고된 재앙 나타나고 있는 중
또 다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 병원’인 영리병원의 설립 허용에 관한 이런저런 논의가 오간다. 청와대와 정부 및 친 재벌 정치세력들에 의해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반복적으로 시도되어 오던 논의가 다시 오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피디수첩을 통해 발암물질을 사용한 어느 치과의 충격적인 일들이 폭로되었다.
어느 치과의 충격적인 일들
실상을 말하면 119개의 지점을 가진 어느 기업 형 사무장 치과에 관한 이야기다. 이 치과는 의료법의 맹점을 이용해 100개가 훨씬 넘는 명의대여 치과를 개설하여 운영한다. ‘병원경영 지원회사’(MSO) 형태의 회사를 만들어 네트워크 형 경영으로 위장하고, 소유주가 수백억 원의 수익을 내고 있다.
방송에서도 지적했듯이, 소유구조와 운영형태, 이면계약 등을 살펴보면 이 기업 형 치과는 이미 영리병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유사 영리병원’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래서 영리병원답게 이 치과는 국민건강보험 진료 비율이 5~6%에 불과하다. 35% 정도인 일반 치과와 비교해보면, 돈 벌이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국민건강보험 진료를 사실상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의료진의 교체 비율은 매우 높다. 2년 동안 평균 3명 이상의 의료진이 교체되었고, 심한 경우에는 한 달에 원장이 3번 교체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 있는 진료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 일차 진료는 책임성을 담보한 지속적 진료(continuity)가 핵심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 때문인지 문제의 이 치과는 H보험회사의 자료에 의하면 의료사고율이 일반치과의 2배에 달한다.
병원인력 중 의료인의 비중도 현저히 낮았다. 비의료인에 의한 치과의료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함인데, 이로 인한 의료사고의 위험은 고스란히 환자가 지게 된다. 또, 이들은 이윤 추구를 위해 맹렬히 홍보하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여 환자를 유인하였고, 방송의 지적처럼 2개의 임플란트 시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9개의 시술을 권유하는 등 엄청난 규모로 과잉진료를 행하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값비싼 병원 인테리어의 이면에서, 보철물을 하청 받은 치과기공사들은 말도 안 되게 낮은 기공단가를 맞추기 위해 하루 15~20시간씩의 장시간 노동에 내몰린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발암물질까지 서슴없이 사용하고, 이 발암물질의 증기로 가득 찬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아무런 전문지식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마스크 하나 없이 죽음의 노동으로 내몰린다.
예고된 영리병원 시대의 재앙
이런 처절한 현실들을 이면에 두고 그들은 말한다. “새로운 경영기법의 도입과 병원 간 경쟁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고 말이다. 또, “의료가격의 거품을 빼고 의료시장을 활성화시켰다, 심지어는 시장개방을 대비해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경쟁력 있는 치과”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은 영리병원 설립 이후 초래될 재앙으로 이미 학계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에서 수 없이 예고하였던 걱정스러운 일들이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우리사회에서 이미 의료기관들의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상당 부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불법성을 인지하고도 웬일인지 이런저런 핑계로 손을 놓고 있다. 그 의도가 심히 의심되는 부분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여당은 여전히 영리병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 6월 9일 청와대가 영리병원 도입을 하반기의 국정 과제로 선정했고, 지난달 11일에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영리병원 설립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으며, 12일에는 보건복지부가 ‘영리병원 추진에 이견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또한, 지난 8일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후원으로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 주관의 영리병원 공청회가 국회에서 개최되었으며, 10일에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사회서비스 선진화 방안으로 영리병원 관련 법률의 우선 통과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영리병원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런저런 법률들을 제출해왔다. 최근 한나라당의 국회의원들이 한사람은 자신이 국회에 제출하였던 영리병원 관련 법률안을 철회하였는데, 같은 당의 다른 국회의원이 유사한 법률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하는 등, 정부여당은 영리병원에 대한 국민적 반대와 압도적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긋지긋한 집착적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유사 영리병원 존재한다
2005년 외국인을 위한 경제특구에서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자는 내용의 말도 안 되는 법률 개정을 이루어낸 이들이 이제 와서 ‘아무런 성과도 없는’ 경제특구를 위한다며 또 다시 ‘국민건강’을 노골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그들의 부당한 시도에 맞서 ‘주식회사 영리병원 반대’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지난하게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돌아보자. 새로운 법률이 시도될 때 마다 그 법률이 가져올 참혹한 상황을 상상하며, 우리들의 분노한 눈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자. 우리사회의 한쪽 구석에서, 그동안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곳에서 이미 영리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유사 영리병원’이라는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치과계의 힘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다란 괴물이 되어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여당이 집요하게 추진하려는 ‘주식회사 영리병원’ 허용 관련 법률안의 처리와 상관없이 이미 이와 유사한 괴물은 현존한다. 그리고 번식해 가고 있다. 과도한 의료비에 시달리며 외국 영리병원 참상을 인지하고, 이미 영리추구에 혈안이 된 병원들에 분노하는 우리네 보통 국민들의 준엄한 시선이 영리병원 관련 법률의 통과 시도를 어쩌면 이번에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조차 허울뿐인 승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유사 영리병원’들, 법률과 상관없이 버젓이 ‘선진 경영과 서비스 정신’으로 위장한 이 괴물을 제대로 인지하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리병원 관련 법률안을 저지하는 투쟁과 함께 국민건강권을 지켜내는 기본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또 하나의 싸움이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의료법의 근본정신을 지켜내는 싸움을 시작하자! 의료법을 훼손해온 각종 특별법들을 총체적으로 돌아보자. 경제특구라는 명목으로 확실한 성과도 없이 허용해 버린 특혜들을 거둬들이도록 해야 한다. 규제완화를 구실로 하나씩 완화되어 국민건강의 증진이 아니라 자본과 병원의 돈벌이에만 활용되는 ‘이미 철폐되었거나 완화된 의료규정들’을 회복시켜야 한다.
영리병원은 우리 국민을 사지로 내몬다. 경험적으로 영리병원은 발암물질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확신을 하냐고? ‘식코의 나라’ 미국의 경험을 보라. 그리고 눈을 들어 TV를 다시 보고, 국내 최대의 치과그룹이라는 곳을 가보시라.
오늘도 버젓이 국민을 상대로, 보건노동자를 상대로 발암물질까지 사용하는 영리병원의 만행이 일어나고 있다. 영리병원의 비정한 미래가 우리 눈앞에 있다. 영리병원 그 자체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발암물질이다.

2011년 8월 23일 화요일

540여년 지켜온 ‘숲의 바다’…5710종 생물들 ‘넘실’


이글은 한겨레신문 조홍섭기자블로그 물바람숲의 글을 퍼왔습니다.

세조때 왕릉 부속림 지정, 천연·인공림 ‘두얼굴 조화’
면적당 생물종 국내 최고, 숲의 미래 밝힌 ‘임학 산실’ 


소리봉 천연활엽수림 전경.
지난 20일 찾은 경기도 광릉 숲의 핵심구역인 소리봉(536.8m) 일대에는 나무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까치박달나무, 층층나무 등의 넓은잎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햇빛에 반짝였다. 지난 540여년 동안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고 성숙한 천연림이다.

어둑한 숲 속에 들어서니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100년을 훌쩍 넘겼을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고목 사이로 수피가 사람의 근육처럼 울퉁불퉁한 서어나무들이 서 있다.

서어나무. 오래된 천연 활엽수림의 대표적인 수종으로 광릉의 소리봉과 죽엽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하늘을 가린 숲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바닥엔 서어나무 고목 한 그루가 널브러져 있다.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어린 까치박달나무와 회목나무가 키 자람을 하고 있었다.

동행한 신재권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5~6년 전쯤 서어나무가 넘어지면서 숲 바닥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다른 나무들이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촘촘한 숲에 생긴 빈틈을 철저히 이용하는 이런 모습은 오랜 자연림에서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리봉 정상에 오르자 도봉산, 수락산, 천마산, 축령산이 남양주시 진접읍의 아파트 단지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광릉 숲은 서울에서 불과 39㎞ 떨어져 있다.

천연림과 인공림이 숲의 바다를 이룬 광릉숲 전경.
그러나 이 숲의 생물다양성은 웬만한 국립공원보다 높으며, 단위면적당 생물종을 따지면 국내 최고 수준이다. 광릉 숲 2240㏊에는 모두 5710종의 생물이 산다. 단위면적당 식물종 수는 광릉 숲이 ㏊당 38.6종으로 설악산 3.2종, 북한산 8.9종을 크게 웃돈다.

이처럼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것은 온대지역에서 이례적으로 장기간 숲이 보전됐기 때문이다. 1468년 조선 7대 왕 세조는 이 지역을 왕릉인 광릉의 부속림으로 지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현재까지 한 해도 멈추지 않고 임업 시험림 구실을 해 왔고, 이에 따라 개발과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림 보전과 생물다양성만 본다면 광릉 숲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광릉 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임업 관련 기관이 들어서, 한반도에 적합한 나무를 어떻게 심을지를 연구해 온 우리나라 임학의 산실이다.

심은 지 90년 된 리기다 소나무 거목.
김석권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연구과장은 “광릉 숲의 가치는 자연림 못지않게 인공림에 있다”며 “90여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가꿔온 광릉 숲에서 우리나라 숲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광릉 숲에서 핵심구역은 소리봉과 죽엽산(600.6m)을 중심으로 한 천연 활엽수림 755㏊이다. 핵심구역을 둘러싸는 완충지역 1657㏊는 인공림이다.

전봇대처럼 꼿꼿하게 기른 80년 생 상수리나무.
김석권 박사의 안내로 임도인 직동로를 따라가며 광릉 숲 인공림의 모습을 살펴봤다. 1914~1917년 심었다는 팻말이 붙어 있는 낙엽송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슴높이 둘레가 1m가량이고 높이는 20여m로 하늘로 쭉 뻗은 모습이 “쓸모없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심은 지 80년이 지난 상수리나무도 마을 주변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상처 없이 미끈하게 자라나 있었다. 상수리나무 밑에 잣나무와 전나무가 자라는 복층 숲에서 인공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김 박사는 “조림한 지 약 30년이 지난 우리나라의 인공림을 잘 가꾼다면 광릉 숲처럼 아름답고 가치 있는 숲으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28년에 심은 전나무 숲. 어린 전나무가 돋아나 천연갱신림이 될 잠재력이 있다.
실제로 1928년 조림한 전나무 숲 바닥에는 어린 전나무가 빼곡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언제든 상층의 관목을 제거하면 전나무 숲이 형성될 수 있다. 독일의 가문비나무 숲처럼 전나무의 천연 갱신림이 형성될 답이 80여년 만에 나온 것이다.

그는 임업을 ‘3세대 산업’이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심고 아버지가 가꿔 자식이 혜택을 보는 산업이다. 우리의 임업은 이제 2세대인데, 자식 세대가 누릴 혜택을 우리가 보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직동로 임도 근처의 90년 이상된 조림지. 천연림과 비슷한 모양이다.
90~100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임업의 유장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능내로 임도를 따라가면 1964년 식재한 잣나무림이 나온다. 나무를 얼마나 조밀하게 심는 것이 바람직한지 알아보기 위한 시험림이다. 2001년 ㏊당 3000그루를 심는 게 가장 낫다는 중간 결론이 나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47년째 지켜보고 있다.

광릉 숲은 ‘숲의 바다’이지만 그 바다엔 길이 나 있다. 광릉 숲은 65개의 임반으로 나뉘고 각 임반은 또 여러 개의 소반으로 나뉜다. 임반은 모두 13개 노선 45㎞의 임도를 통해 접근하도록 돼 있다. 광릉 숲의 관리 지도를 보면 마치 동네 부동산 소개업소의 지번도를 보는 것 같다.

수백년 동안 손대지 않은 천연 활엽수림과, 그것을 둘러싸고 전국 평균의 약 4배인 ㏊당 255㎥의 목재가 축적돼 있는 인공림은 광릉 숲의 두 얼굴이다.

포천/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한국전쟁 이후 도벌 횡행 80년엔 일부 군시설 터로

광릉 숲의 수난사

세조는 1468년 자신의 능이 들어설 자리를 능림으로 정한 뒤 능 주변과 진입로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를 심고 능원과 산직을 두어 관리했다. 광릉에 당시의 나무가 살아남은 것은 없다. 현재 가장 오래된 활엽수는 졸참나무로 수령 200년 지름 113㎝이다. 광릉 숲을 가로지르는 지방도로 383호선 길가에 있는 전나무도 지름 70~90㎝의 거목이다.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시기는 광릉 숲의 최대 시련기였다. 풀뿌리까지 캐 땔감으로 쓰던 시절이었고 도벌이 횡행했다.

임업연구원(현 산림과학원)이 2003년 펴낸 를 보면, 1965년 광릉출장소의 주 임무는 도벌꾼으로부터 나무를 지키는 일이었고, 초막을 짓거나 잠복 근무를 하면서 지켰는데도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도벌꾼과 폭력배가 임업시험장 안에 쳐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도 있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뒤엔 인근 군부대가 숲 115㏊를 군사시설 터로 빼앗아 가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휴양지로 숲을 이용하고 개발하려는 욕구가 새로운 위협으로 떠올랐다. 1989년 시험림 일부가 산림욕장으로 개방됐고 수목원,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원이 개장됐다. 관람객이 몰리면서 광릉 숲 주변에 식당, 노래방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마침내 1997년 광릉 숲 보전 종합대책에 따라 산림욕장과 동물원이 폐쇄되고 수목원의 예약제와 관람 인원 제한 조처가 시행됐다. 국립수목원은 1999년 광릉 숲의 절반 면적을 관할하면서 독립했고, 나머지 숲은 현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산기술연구소가 관리하고 있다. 조홍섭 기자

광릉요강꽃·골무꽃…“우리 고향은 광릉”

광릉서 첫 발견된 식물 10종

광릉요강꽃
‘광릉’이란 접두어를 가진 식물과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식물이 10종에 이른다. ‘광릉’으로 시작하는 식물로는 광릉요강꽃을 비롯해 광릉골무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제비꽃, 광릉개고사리 등이 있다. 광릉에서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됐기 때문이다. 이 식물은 고향이 광릉이라고 할 수 있다.

광릉이란 이름이 붙지는 않지만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식물도 적지 않다. 노랑앉은부채, 개싹눈바꽃, 털음나무, 흰진달래, 털사시나무 등이 그런 예이다.

이들 식물은 나중에 광릉 이외의 장소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병천 국립수목원 식물보전복원연구실 박사는 이처럼 적지 않은 식물이 광릉에서 처음 학계에 알려진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 식물의 약 30%를 기재한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광릉 시험림에서 촉탁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조사를 하러 다닌 결과”라고 설명했다. 조홍섭 기자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