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4일 토요일

비바람 맞고 선 바닷가 노부부... 언제 다시 볼는지

  
▲ 파도 파도가 작은 바위를 몰아치고 있다.
ⓒ 정도길
 파도
녹음으로 물든 숲은 맑은 공기를 내뿜으며 사람들에게 건강과 편안한 쉼터를 주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5월 하면 숲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성하의 계절로 접어드는 5월의 마지막 날(30일). 바다는 쪽빛을 뿜으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남해바다와 동해바다가 무슨 차이가 있으랴만, 느낌마저 같을 리는 없을 터. 거가대교를 건너 부산 기장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31번 국도에 접어드는 시점부터 동해바다는 나그네를 반겨주었다.

역시나 차를 몰고 드라이브하는 느낌은 차창 밖 풍경이 아름다워야 제 맛이 나는 법. 그것도 시원한 강줄기나 푸른 바다가 보인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동해바다는 그래서 좋다. 오래전, 7번 국도를 따라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가는 내내 바다를 거의 볼 수 있었기에.

  
▲ 대왕암 대왕암
ⓒ 정도길
 대왕암
울산의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울기등대와 대왕암은 멀리 동해바다로 이어진다. 대왕암공원은 휴일을 맞아 많은 여행객들로 혼잡하다. 무성한 잎을 가진 큰 나무는 축 늘어진 모습으로 그늘을 만들고, 푹신한 산책로는 걷기에 편해 좋다.

입구 안내판에는 4개의 산책코스가 있는데 거리와 소요시간(30~55분)을 알려주고 있다. 45분이 걸리는 A코스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이 코스는 울기등대를 지나 대왕암전망대, 탕건암, 할미바위, 용굴을 경유하는 코스다.

  
▲ 울기등대 앞쪽이 구 등대이고, 뒤쪽이 신 등대이다.
ⓒ 정도길
 울기등대
울기등대는 방어진항을 유도하는 항로표지로, 일본이 1905년 2월 목재로 등간을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으로 울기등간(蔚崎燈干)이라 하였다. 이후 1906년 3월 현재의 장소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치, 1987년까지 80여 년간 사용되었다고 한다.

신 등탑은 주변 소나무 성장으로 해상에서 식별이 어려워 1987년 12월 12일 설치하였으며, 높이는 24.79m로 등명기는 프리즘 렌즈를 사용, 국내 최초로 대형급으로 설치하였다고 한다. 구 등탑은 등대라기보다는 아담한 모양의 집을 연상시켜 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구한말 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축물로, 신 등대와 비교를 통해 당시 건축술과 기법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한다.

  
▲ 대왕암바위 대왕암바위
ⓒ 정도길
 대왕암바위
탁 트인 광장에 이르니 세찬 바람이 분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는 한숨을 삼키며 바위를 몰아치고 흰 거품을 내뱉는다. 흐린 날씨 탓인지 바다는 쪽빛으로 보이지 않는다. 큰 바위가 깨져 작은 바위를 이루는지, 작은 바위 군상이 모여 큰 바위처럼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바위 모양도 제각각 천상의 얼굴로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만 같다. 바위색깔은 녹슨 것처럼 보이고, 황금빛으로도 보인다. 대왕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황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

  
▲ 남측해안 대왕암에서 바라 본 남측해안
ⓒ 정도길
 남측해안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30대 문무왕은 지의법사에게 "나는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고 한다"라고 하였다. 대왕이 재위 21년 만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구의 대왕석에 장사를 지내니 마침내 용으로 승화하여 동해를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가 경주 양북면에 있는 해중릉인 문무대왕릉인 것.

이후 왕비도 세상을 떠나게 되고 한 마리의 큰 호국룡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바다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대왕바위(대왕암)라 불렀으며,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 대왕암 대왕암에서 바라 본 울기등대.
ⓒ 정도길
 대왕암
전망대에 올라서니 저 멀리 상선 한 척만 외로이 떠 있고 망망대해가 끝이 안 보인다.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작은 바위 위로 세찬 물살이 앞뒤로 출렁인다. 물질하는 해녀가 수면으로 올라 숨을 몰아쉬듯, 작은 바위는 파도가 넘은 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만 같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도에도 강태공은 고정된 자세로 한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바다만 응시하고 있다. 몇 마리의 고기를 낚아 올렸을까 궁금해진다.

돌아 나오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바람과 파도를 피하지 못한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일까, 소나무 두 그루가 같은 방향으로 드러눕다시피 하고 있다. 키는 작지만, 나이는 고희를 넘어 보인다. 나이 들어 휘어질 대로 휘어지고, 꼬부라진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다.

북측해안 산책로에 부부송이라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여기 두 그루의 소나무는 '노부부송'이라 이름을 붙여본다. 강한 비바람과 폭풍에도 꺾일지언정 뿌리째 뽑히지 않는, 언제까지 푸름을 잃지 않는, 저 늙은 두 그루의 소나무가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

  
▲ 노부부송 대왕암공원 홍보책자에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늙은 소나무 두 그루. 나그네가 노부부송이라 이름 지어 주었다.
ⓒ 정도길
 노부부송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반복하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고 돌아도 해안가 절벽은 아름답다. 흙이라곤 별로 없는 바위 틈새에서 소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어나 있다. 그 강한 생명력이야말로 진정 자연에서 배워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해안가에서 가장 높은 곳을 '고이'라 하며, 이곳 전망대에선 미포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넙디기'는 해안 바위 중 가장 넓은 곳을 말하며, 넙덕바위가 변한 말이다. 탕건암은 넙디기 앞 바다에 있는 바윗돌로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것.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우뚝 솟은 할미바위도 보인다.

사람도 제각각 자기만의 이름을 가졌듯이 바위도, 나무도 이름을 가지지 못할 것은 없는 법. 앞서 본 늙은 소나무 두 그루에 '노부부송'이라 이름 지어주었는데,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는지.

  
▲ 탕건암 탕건암은 넙디기 앞 바다에 있는 바윗돌로 마치 갓 속에 쓰는 탕건 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인 것.
ⓒ 정도길
 탕건암
  
▲ 할미바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형상으로 우뚝 솟은 할미바위.
ⓒ 정도길
 할미바위
그래서 대왕암 공원에는 이름 붙인 바위와 나무가 수도 없이 많다. 북측 해안에는 바깥 막구지기, 햇개비, 민섬, 수루방, 용굴, 부부송, 넙디기, 할미바위(남근암), 탕건암이 있다. 북동 해안에는 고이와 사근방(사금을 채취했다고 붙여진 이름)이 있고, 남측 해안에는 용디이목, 샛구직, 과개안(너븐개), 고동섬, 중점·노애개안, 배미돌이 있다.

  
▲ 소나무숲 대왕암공원에는 1만 5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하늘을 덮고 빽빽히 서 있다.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참으로 행복하다.
ⓒ 정도길
 소나무숲
해안가를 돌아 언덕길로 오르니 울창한 송림이다. 하늘을 향해 날씬하게 쭉쭉 뻗은 소나무는 20m가 족히 넘을 것만 같다. 대왕암 공원은 울산 12경중의 하나로 이곳에는 1만 5천여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평평한 숲 속, 오솔길을 걷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천천히 걷는 시간만큼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어 좋다.

45분이면 된다던 거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나그네에겐 가진 것은 시간뿐인데, 두 시간이면 어쩌랴. 시간에 쫓겨 박물관을 휑하니 둘러보는 것이나, 여행지 안내판만 읽어보고 오는 여행에서 얻는 것이 무얼까. 여유로움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 대왕암 대왕암공원
ⓒ 정도길
 대왕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 거제 지역신문인 <거제타임즈>와 <뉴스앤거제>에도 송부합니다.

2011년 5월 31일 화요일

"흙이 뒤집히니 먹을 것 천지로다!"

"흙이 뒤집히니 먹을 것 천지로다!"
[사진] 써래질 후 먹이 사냥 분주한 노랑부리 백로 가족
박병춘(hayam)
▲ 트랙터가 흙을 고르니, 노랑머리백로가 먹이 사냥을 합니다.
ⓒ 박병춘


▲ 어서어서 흙을 갈아 엎어 주세요~
ⓒ 박병춘


▲ 맛난 먹잇감들 다 어디 있니?
ⓒ 박병춘


트랙터가 써래질을 합니다. 흙덩어리가 뒤집히니 그 안에 머물던 생명체들이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칩니다. 이때를 놓칠 세라 노랑부리백로가 나타나 먹이 사냥에 분주합니다. 이름 모를 새까지 등장하여 먹잇감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 어서들 나오너라, 내 먹이들아!
ⓒ 박병춘


▲ 뭐부터 먹을까?
ⓒ 박병춘


▲ 우와, 냄새 좋다!
ⓒ 박병춘



▲ 그래그래, 조금만 더 기어올라 와 봐!
ⓒ 박병춘


노랑머리백로에게 육중한 트랙터는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먹을거리 앞에서 뵈는 게 없으니까요.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음식 축제를 즐기고 있는 노랑머리백로. 현대기계 문명과 자연이 만나 묘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 소와 백로의 공생
ⓒ 박병춘


소가 풀을 뜯을 때 주변을 맴돌며 먹이 사냥을 하는 백로를 본 적이 있습니다. 풀 속에 은신했던 곤충들이 종종걸음으로 내뺄 때 백로는 손쉽게 배를 채웠겠지요. 이런 풍경이야 동물과 동물의 교감이니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정겨운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나도 끼어 줘!
ⓒ 박병춘


▲ 기다려, 내가 먹어줄게!
ⓒ 박병춘


▲ 내가 먼저 먹어야지!
ⓒ 박병춘


그러나 이제 백로가 굉음을 내는 트랙터도 무서워하지 않고 먹이사냥을 즐기고 있으니 이를 어찌 보아야 할까요? 인간에게 한 발 다가선 백로의 친밀감이라고 할까요? 아니라면 겁을 상실한 백로의 모험 정신이라고 할까요? 먹을거리 앞에서 백로의 두려움은 사치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거나 노랑부리백로! 잘 먹고 잘 살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위 사진은 지난 5월 29일, 전북 고창의 한 농촌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2011.05.30 21:16ⓒ 2011 OhmyNews
위 사진은 지난 5월 29일, 전북 고창의 한 농촌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이 글은 스크랩된 글입니다.

2011년 5월 30일 월요일

사라진 몸돌을 그려보다, 눈물이 왈칵

사라진 몸돌을 그려보다, 눈물이 왈칵
보물 제27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을 만나다
하주성(tradition)
▲ 육각다층석탑 보물 제27호인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점판암으로 조성한 아름다운 탑이다
ⓒ 하주성


김제 금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의 본사이다. 금산사 경내에는 국보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바로 대적광전 앞에 자리한, 보물 제27호인 육각다층석탑이다. 이 다층석탑은 금산사 소속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현재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이 탑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아쉬움이다.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탑일까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석탑이 대부분 화강암으로 조성을 한데 비해, 이 탑은 기단은 화강암으로 조성하고 몸돌과 지붕돌은 흑색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으로 조성한 다층석탑이다.
▲ 상륜부 원래의 상륜부는 사라지고 훗날 조성한 것이다
ⓒ 하주성


육각으로 조성한 탑, 놀라움으로 다가와
화강암이 아닌 점판암을 이용해 탑을 조성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기단부는 또 다른 색을 지닌 돌을 이용해 흑백의 조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에 대해서도 경이롭기만 하다. 이 탑은 조선조 인조 1년인 1633년 금산사 재건 시에 이곳으로 옮겨왔으며, 원래의 층은 알지 못한다. 현재는 11층만이 남아있는데, 그 외형이 육각으로 되어있어 '육각다층석탑'이라 부르고 있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은 3단으로 되어 있는데, 각 단의 1변의 길이는 아래층부터 각각 80㎝, 70㎝, 65㎝이다. 기단의 각 면에는 용과 풀, 사자상 등이 새겨져 있다. 이 위에 점판암으로 된 2개의 판석이 있는데 아래의 판석에는 복연이, 위의 판석에는 앙연이 각 면에 5변씩 양각되어 있다.
▲ 몸돌 몸돌의 각면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고, 원 안에는 좌불이 선각되어 있다
ⓒ 하주성


▲ 옥개석 몸돌은 사라진 채 지붕돌만 남아있다. 추녀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인다
ⓒ 하주성


현재 11층이 남아있는 탑신부는 각 층마다 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 층에만 남아 있다. 현재 10층과 11층이 남아있는 몸돌은, 각 귀퉁이마다 기둥모양인 우주를 새겨 넣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좌불상을 선각으로 새겨 놓았다. 그 모습이 아직도 완연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 육각다층석탑의 조형이 얼마나 정성을 들인 것인지 알 수가 있다. 각 층의 지붕돌은 낙수면에서 아주 느린 경사를 보이다가, 아래의 각 귀퉁이에서 우아하게 들려있다.
상상만으로도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현재 남아있는 옥개석의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보인다. 각층의 끝마다 달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소리를 낸 것을 상상하면, 가히 그 아름다움을 어디에도 비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현재 꼭대기의 머리장식인 싱륜부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훗날 화강암으로 만든 연꽃봉우리 모양의 장식이 놓여 있다.
▲ 판석 기단부 위에 올려진 판석, 앙연과 복연이 양각되어 있다
ⓒ 하주성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돌이다. 이 점판암을 사용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남은 옥개석은 각 층의 줄어드는 체감비례가 아름다우며,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돌인 옥개석은 1변의 길이가 1층부터 차례로 46㎝, 46㎝, 41.5㎝, 41㎝, 39㎝, 37㎝, 35㎝, 33㎝, 31㎝, 29㎝, 27㎝로 줄어들고 있으며, 현재 몸돌이 남아있는 10층과 11층은 각각 18cm와 17cm이다. 
이렇게 줄어들고 있는 비율로 볼 때, 현재의 9층과 10층 사이에 또 다른 층이 있고, 몇 개 층의 옥개석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9층과 10층의 줄어듦의 차이가 급격하기 때문이다. 이 탑은 몸돌과 지붕돌에 새겨진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
벌써 몇 번이고 돌아본 육각다층석탑이다. 5월 28일 찾아 본 다층석탑 앞에서 눈을 감고 상상을 해본다. 사라진 몸돌의 각 면에도 선각으로 조각을 한 좌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층마다 다르게 새겨진 또 다른 형태의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기단부 화강암으로 조성한 기단부. 기단부는 모두 3단으로 꾸며졌다
ⓒ 하주성


▲ 기단부 기단부는 회색의 화강암으로 조성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흑백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 하주성


찾아갈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그 원래의 모습이 어떤 형태였는지, 그리고 그 전체적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 수가 없어, 늘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이렇게나마 남아있다는 점이다. 오늘도 그 앞에서 걸음을 옮길 수가 없는 것은, 아직도 그 아름다움의 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5.29 11:19ⓒ 2011 OhmyNews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우리 문화제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수없음을 안타까워하다!